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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D5EAF><colcolor=#FFF> 낙소스 Naxos | Νάξος | |
국가 | [[그리스| ]][[틀:국기| ]][[틀:국기| ]] |
중심 도시 | 코라(낙소스 시)[1] |
인구 | 2만 명[2][출처] |
면적 | 429km2[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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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틴 문자[5]: Naxos
그리스에서 10번째로 큰 섬이다. 키클라데스 제도에서는 가장 큰 섬이며, 강옥의 함량이 높은 암석 금강사의 산지로 유명하다.
2. 역사
그리스 신화 속에서는 몇 번 등장한다. 제우스가 어릴 적 크로노스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빼돌려졌을 때 자라난 곳이 바로 낙소스의 자스산(山)[6]이라 하고, 제우스의 아들 디오니소스도 자스산에서 자라났다고 한다. 또한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리아드네와 함께 크레타에서 도망쳐 나왔을 때 잠시 낙소스에 정박했는데, 모종의 이유로[7] 잠든 아리아드네를 섬에 버리고 몰래 떠났다고 한다.2.1. 키클라데스 문명
낙소스의 역사는 트라키아인들이 정착한 기원전 4천 년 무렵부터 시작한다. 이들은 약 2세기 동안 섬 동쪽에 여러 마을을 세우고 살다가 소아시아에서 온 카리아인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단검과 같은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 여럿 발견되었는데, 특히 자스산의 동굴에서 금박이 발견되어 인간 활동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또한 이때부터 특산품인 금강사가 다른 섬에 수출되었다.기원전 3천 년쯤부터 낙소스를 비롯한 키클라데스 제도에서 키클라데스 문명이 시작되었는데, 낙소스는 큰 섬이라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는 현재 낙소스市가 된 지역 그로타에서 발견된 집 여러 채와 화려하게 장식된 무덤들로 알 수 있다. 당시 낙소스에서는 조형 미술이 발달해서 여러 조형물이 발견되었는데, 조형 미술이 낙소스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2.2. 고대
이후 이오니아인들이 낙소스를 차지하고 상업 활동을 하면서 번영하였다. 이후 페르시아 전쟁 당시 페르시아에 대항해 봉기를 일으키며 다른 폴리스들의 항쟁에 영향을 주었다. 이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가 승리하면서 스파르타, 마케도니아 제국,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이집트, 로도스 등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41년에는 로마 제국에 점령되었다.[1] 그리스에서는 섬의 중심 도시는 섬 이름을 따서 짓는 관례가 있는데, 이때 섬과 도시를 구분하기 위해 '마을'이라는 뜻의 '코라(Χώρα)'라는 이름으로 부른다.[2] 이 중 절반가량이 낙소스 시에 산다.[출처] https://www.greeka.com/cyclades/naxos/geography/[출처] https://www.greeka.com/cyclades/naxos/geography/[5] 라틴어를 비롯해 영어, 프랑스어, 에스파냐어 등의 라틴 문자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언어에서 이렇게 표기한다.[6] Βουνό Ζας: '제우스'에서 따온 이름이다.[7] 이유는 전승마다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