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硫黄島 / Iwo Island일본 도쿄도 관할의 화산섬이다.
2. 위치
일본의 화산섬(특히 도쿄도 소속)이라고는 하지만 일본 본토와는 남쪽으로 약 1,000km 가량 동떨어져 있으며 거의 일본 본토와 괌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사실 이곳이 소속한 오가사와라 제도 일대의 섬이 다 그렇지만 이오지마를 비롯한 이오 열도는 개중에서도 최남단에 가깝다.위치는 도쿄에서는 정남쪽 방향이며 위도는 대만과 비슷하다.
3. 자연
2021년 들어 이오지마를 포함한 주변 땅이 한 달 10c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융기[1]하면서 이오지마 전투 중 가라앉은 미 해군 수송선들의 잔해들이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이상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뉴스[2][3] 화산폭발이나 대지진의 전조가 아닌가 의심되는 중이다. 특히 땅 전체가 미친듯이 융기하는 전조증상은 세인트 헬렌스 화산 폭발에서 보듯 마그마 챔버가 통째로 솟아오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에 지질학자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활발한 화산활동은 대개 같은 섭입대의 다른 화산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잘못 건드려졌다간 일본 본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과학계가 집중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자연의 거대한 분노 앞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2021년 8월경 미나미이오지마에서 북쪽 3km, 이오섬에서 남쪽 50km 정도 떨어진 대형 해저화산 후쿠토쿠오카노바에서 분연주가 16km 정도까지 치솟은 분화가 있었고 섬이 생겼다. 35년 전에도 분화로 섬이 생겼으나 침식으로 2달만에 소멸했다. 분출물이 마그마가 아닌 부석 위주라서 그런 것으로 추정. 이번 분화로 분출한 부석이 오키나와에 도달했는데 이것을 2021년 10월 현재 일본 아마존에서 판매중. 이 섬 역시 35년 전과 마찬가지로 2022년 즈음에는 다시 침식되어 사라졌다.
9년 동안 면적이 1.3배 늘어났다.#
원래 이 지역이 평소에도 화산활동이 빈번하여 1960년대에도 베요네즈 열암 등에서 화산활동으로 새 섬이 생겨나기도 했고 이 사건이 일본침몰 소설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2023년에는 본섬 남쪽 해안가에서 불과 1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화산섬이 솟아올라 활동중이다. 가깝고 해저로도 이어진 상태라서 잘하면 본섬과 합쳐질 가능성도 있다. #
태풍의 영향도 자주 받는 곳이고 이오섬 부근 해상에서 태풍이 발생할 때도 있다. 기후는 열대 우림 기후이다.
4. 명칭
이름의 뜻은 '유황 섬'인데 활화산이 존재하는 데다 섬 곳곳에 가스분출구가 있어서 섬 전체에 유황 냄새가 만연하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화산 섬에는 으레 유황 냄새가 나기 마련이기 때문에 이 섬 외에도 같은 원리로 '이오지마', '이오토'라고 이름이 붙은 섬들이 좀 있다.본래 섬 원주민과 일본 육군은 이곳을 이오토(いおうとう)라고 불렀으며 일본 해군은 여기서도 육군과 대립하여 이오지마(いおうじま)라고 했다.[4] 이오지마는 일본 해군의 용어를 미군이 따라 사용한 것이다. 1968년 일본으로 반환될 당시에는 이오토로 표기되었으나 1982년의 지도 개정시에 이오지마로 이름이 신청되어 버려 2007년까지 일본 국내에서도 이오지마라는 표기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원주민 측의 요망에 따라 2007년부터 이오토가 다시 공식 명칭이 되었으나 미국에서는 여전히 이오지마(Iwo Jima)라는 명칭을 사용 중이다.
참고로 '이오'가 영어로 'IWO'로 표기되는 건 태평양 전쟁 이전에 역사적 가나 표기법으로 いわう로 わ행을 썼던 것이[5] 로마자 표기법에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6] 현대 일본어 로마자 표기법으로는 단순하게 Iōtō(ō는 장음)가 된다.
한국어로는 '이오섬'이 표준 표기이다. 명칭 부분의 한자가 2자 이상이므로('硫黄') '토'나 '지마'를 떼고 '섬'을 붙인다. 그러나 비표준 표기인 '이오지마섬'도 자주 쓰인다.
5. 역사
5.1. 과거
태평양 전쟁 중 일어난 이오지마 전투로 유명하다. 열흘이면 이오지마를 점령하는 데 충분하다는 예상과는 달리 이 성조기가 정상에 세워지기 위해 이 섬에서 25일간의 전투를 치렀고, 최종적인 통계에 의하면 무려 28,686명의 미군이 전사, 실종, 또는 부상을 당해야만 했다.이오지마 전투에서 승리한 미군이 점령하여 미 육군항공대와 공군이 기지로 사용하다가 1968년 일본에 반환했다.
태평양 전쟁 관련 사진 중 가장 유명한 사진. 소설 및 영화 아버지의 깃발의 소재가 되었으며, 이것이 여기서 촬영된 사진이다.
사진에선 5명으로 보이지만 사실 카메라 구도 때문에 1명이 가려져 나오지 않았다. 즉 저기 성조기를 꽂고 있는 군인은 총 6명이다. 성조기를 꽂고 있는 참전용사 6명 중 3명은 전투 중 전사했고 그중 최고참 마이크 스트랭크 병장은 아군 함포의 오폭으로 전사했다. 그리고 생존한 3명의 참전 용사들의 삶도 불행했다.
이 사진은 스리바치산[7] 정상에서 찍은 성조기의 사진 중 두번째 사진이다. 처음 세워지고 촬영된 성조기는 약간 작았기 때문에 몇 시간 뒤 미 해병대 6명이 두번째 깃발을 세웠다. 이 사진의 촬영자는 당시 종군 기자였던 AP통신의 조 로젠탈이다.
5.2. 현재
이오지마 전투로부터 7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이곳에는 해상자위대 항공기지[8]만이 있을 뿐, 원주민들은 이 섬으로 귀향하지 못 하고 있다. 전투 당시의 불발탄이 아직 섬 곳곳에 남아 있는데다 땅 한 번 잘못 디디면 불발탄 건드리고 끔살당하기 때문이라고... 이 정도면 가히 데스 월드. 섬을 덮고 있는 토양이 철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지뢰탐지기 같은 걸로 찾기 어렵다고 한다.그런 이유에서인지 이오지마 전투를 다룬 책 아버지의 깃발 서문에서 정부에서 초청받은 방문객을 제외한 모든 국적의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오지마 전투 이후 미 육군이 비행장 등을 정비하면서, 시간 관계 등으로 사망한 일본인들을 가매장한 위에 그대로 활주로 포장 등을 한 데다, 전투를 위해 굴착해 둔 동굴에 방치되어 수습되지 못하고 있는 유해들이 상당해, 폭발물 제거와 병행하여 유해 발굴 사업이 진행중이기도 하다. 유황이 가득한 동굴에서는 부패가 거의 진행되지 않은 미라들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 때문인지 이오지마에 주둔 중인 자위대원들 사이에서는 많은 괴담들이 떠돈다. 예컨대 화물칸이 비어있는데도 수송기가 무거워서 활주거리가 늘어나는 현상 등이 그러한데, 아무도 없는 화물칸에서 기뻐하는 소리가 들린다든지 기장이 화물칸에 본기는 본토로 직행하고, 오랫동안 수고 많으셨다는 말과 거수경례를 하자 비로소 기체의 무게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던지 하는 에피소드 등 여러 이야기들이 있다.#(카페 가입 필요)
일본 가나가와현의 아츠기 기지를 주둔지로 하고 있는 주일 미 해군의 항모 비행단 중 하나인 제5전투항공단(CVW-5)이 기지 이전 장소[9]로 이곳을 검토한 적이 있으나 얼마 가지 않아 취소되었다. 항공기로도 일본 본토에서 2시간 가까이 걸리는 오지인 데다 활주로가 1개 밖에 없는 등 기반 시설이 부족하고 위에 언급된 불발탄 처리 문제 등 단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 본토와 이오지마가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중간에 관제가 불가능하다는 문제도 존재한다.
2015년 종전 70주년을 맞이해서 유나이티드 항공을 통해서 괌 안토니오 B. 원 팻 국제공항에서 이오 섬까지 차터편을 운항했었다.관련 게시물(영어)
6. 사건 사고
2016년 3월 4일, 인천을 출발해 사이판으로 가던 제주항공 소속 보잉 737 여객기가 엔진 이상으로 이오섬의 해상자위대 비행장에 비상 착륙했던 사건이 있었다. 이오섬이 망망대해에 있는 해자대 전용 비행장이라 민간 제트기의 응급수리가 어려웠기 때문에, 제주항공은 대체기를 급파하여 일단 승객 120명만 원래 목적지인 사이판 섬으로 보내고, 비상착륙한 항공기는 해자대의 허가하에 부품과 정비 인력을 태운 화물기를 현지에 보내 수리하여, 1주일 만에 인천국제공항으로 돌아왔다.# 민간인의 출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자위대 시설이라 항덕들이 이용 후기를 기대했지만 당시 승객들의 경험담이 올라오진 않았다.이전에도 민항기가 비상착륙한 경우는 여러번 있었다. 2003년 3월 30일에 괌을 출발하여 센다이 공항으로 가던 컨티넨탈 항공 931편, 2014년 11월 9일 간사이 국제공항발 괌행 델타 항공 294편이 엔진 이상으로 이 곳에 긴급착륙했던 적이 있으니, 제주항공의 사례는 3번째였던 셈.
7. 미나미이오지마
이오섬 남쪽에 직경 2km, 높이 916m 가량의 무인도 '미나미이오지마(南硫黄島)'가 있다. 화산 활동으로 탄생한 지 약 3만 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어린 섬이기에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허가받은 사람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으며, 허가받은 사람도 들어가기 일주일 전부터 과일 등 씨앗이 포함된 음식을 먹으면 안되고 배설물은 전부 가져와야 한다.
이 섬에는 쥐가 없기에 이곳 생태계는 게가 지배하고 있다. 섬 위에 만들어지는 구름과
8. 여담
오키나와현에 이오토리섬이라는 비슷한 이름의 무인도가 있는데 한자도 비슷해서 이오지마로 오인받는 경우가 있다. 활화산으로 인한 유황 냄새가 만연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점까지도 이오지마와 비슷하다.9. 그밖의 섬
9.1. 일본 가고시마현의 화산섬
硫黄島/Iōjima. 가고시마현 남쪽 오스미 제도 미시미무라에 있는 섬이다. 이 섬 또한 화산섬이며 일본에서 최초로 촌(村)에서 운영하는 비행장이 존재한다.초화산인 키카이 칼데라(Kikai Caldera)가 있으며 그 곳에서 거대 용암 돔(해저화산)이 발견되었다.관련 기사 관련 정보 관련 논문
화산 주위로의 등반은 금지되어 있으며, 야생공작, 천연 해수온천, 그리고 섬 그 자체가 볼거리이다. 유황으로 인해 섬 인근 해안이 노란색이다. 섬에 식당은 없고 유일한 종류의 숙박업소인 민박집에서 식사를 제공한다. 일본인 관광객은 소수만이 방문하며, 드물게 영상촬영을 하는 외국인이 찾아오기도 한다. 자전거를 빌려 섬을 한바퀴 돌아보는 것도 괜찮다.
9.2. 일본 나가사키현의 화산섬
伊王島/Iōjima.나가사키현에서 남서쪽으로 10㎞ 떨어진 스모나다[角力灘]에 있는 섬이다. 네이버 등지에 보이는 "이오섬 여행"은 대부분 본 문단의 섬에 대한 여행기이며 2의 섬도 간간히 보인다. 1의 섬은 당연히 아니며 1의 섬은 현재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상태이다.
10. 위에서 따온 것
10.1. 이오공감의 별명
이글루스의 이오공감에 붙은 가장 유명한 별명중 하나. 유래는 물론 1.10.2. 미합중국 해군의 와스프급 강습상륙함 7번함 USS Iwo Jima
현재의 이오지마함인 USS Iwo Jima (LHD-7)로 유래는 당연히 이오지마 전투다. 사실 이전에도 이오지마라는 명칭의 함정은 있었다. 1945년 8월에 건조계획이 취소된 에식스급(중에서도 후기 버전 타이콘데로가급) 항공모함 CV-46, 이오지마급 강습상륙함의 네임쉽으로서 1961년 취역하여 1993년까지 활동한 LPH-2, 2001년 취역하여 현역인 와스프급 강습상륙함 LHD-7이 있다. 이중 LPH-2 USS 이오지마는 아폴로 13호에서 겨우 살아돌아온 우주 비행사들을 구조하기도 했다.해병대의 용맹스러움을 상징하는 이름이기 때문에 해병대를 수송하는 강습상륙함의 함명으로 오랫동안 쓰일 것으로 보인다.
[1] 구글 어스에서 보면 섬의 북쪽 해안가 이미지가 2019년과 2021년 이미지가 섞여 있는데, 2019년에는 물이 덮고 있는 곳이 2021년에는 흙이 드러난 상태인 게 보인다.[2] 해당 기사에서는 전투 종료 후 접안시설을 만들기 위해서 가라앉힌 배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나온다.[3] 구글 어스에서도 섬의 남서쪽 해안가에 2022년 이미지에 Shipwreck Cluster(米軍沈船群)라면서 배의 잔해들이 보인다.[4] 일본에서 지명의 글자는 음독할 때도 있고 훈독할 때도 있으며 어떻게 읽는지는 각 지명마다 다르고 통일된 바가 없다. 시정촌 단위 명칭 중 하나인 町도 어떤 데서는 '초'라고 음독하고 어떤 데서는 '마치'라고 훈독한다.[5] 대응 한자인 黃의 한국 한자음이 '황'인 것과 마찬가지로, 운모가 합구(원순모음)인 것이 일본 한자음에 반영된 것이다.[6] 유사하게 현대 일본 화폐 단위인 일본 엔이 Yen으로 표기되는 것도 과거에 /e/, /ye/, /we/가 합류하여 표기가 오가던 때의 흔적이다.[7] 摺鉢山. 산의 형세가 절구를 엎어놓은 듯 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8] 참고로 이 항공기지는 오가사와라 제도 내에 있는 유일한 공항이다. ICAO 코드는 RJAW 이다. 민간인은 이용불가.[9] 아츠기 기지가 오래된 곳이다 보니, 어느새 기지 주변까지 민간인 거주지역이 확장된 상태이다. 덕분에 소음 공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는 여론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