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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조선반도 韓半島 (朝鮮半島) | Korean Peninsula | ||
<colbgcolor=#363><colcolor=#fff> 대륙 | 인문 | 동아시아 |
지질 | 유라시아 (혹은 아프로-유라시아) | |
위치 | 동아시아 | |
면적 | 223,663㎢[1] |
시간대 | UTC+9 | |||
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북한| ]][[틀:국기| ]][[틀:국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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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 한민족 | |||
언어 | 한국어[3] | |||
인구 | 약 7,744만 5,950명(2024년) | |||
인구밀도 | 약 346.2명/km²(2024년) | |||
최대 도시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서울특별시 | |||
자연지리 | ||||
판 | 아무르판 | |||
기후 | 냉대 동계 건조 기후(Dwa, Dwb, Dwc) 냉대 습윤 기후(Dfa, Dfb) 온대 하우 기후(Cwa, Cwb) 온난 습윤 기후(Cf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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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반도(韓半島)는 동아시아에 위치한 반도로, 삼면이 동해, (남해[4]), 서해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만주 지역에 접한다. 면적은 223,663 ㎢이다.[5]2. 명칭
대한민국과 대만에서는 한반도(韓半島)라 부르고, 그 외의 한자문화권에서는 조선반도(朝鮮半島)라고 부른다. 영미권에서는 Korean Peninsula라고 부른다.과거 동아시아에서는 한반도를 가리켜 삼한(三韓)이라고 한 기록이 많이 보이고, 그 다음으로 조선이라는 말이 많이 쓰였는데, 이는 원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일관되게 나타난다. 이때의 조선은 고조선을 말하는 것이며, 고려를 무너뜨리고 세워진 근세의 조선 역시 이로부터 국호가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외에 중국에서는 동국(東國), 해동(海東), 청구(靑丘), 근역(槿域) 등으로 불렀다.
근대에 와서는 Peninsula가 일본에 의해 반도(半島)라는 말로 번역되면서 서양에서 한반도를 가리켜 말하던 'Korean Peninsula'라는 단어 역시 조선반도(朝鮮半島)로 번역되었다. 전근대에는 한반도를 가리켜 삼한이나 조선 등으로 불렀을지언정 조선반도나 한반도라는 단어는 동아시아에서 없었다는 이야기다. 따지고 보면 한반도라는 말보다 조선반도라는 말이 더 오래된 것이고, 현재도 일본은 과거부터 써오던 조선반도라는 표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위키백과 중국어판과 일본어판에도 조선반도로 등록되어 있다. 현대 일본에서 韓国은 대한민국만을 의미한다. 문화권으로서의 한국 또는 지리학적인 의미의 한반도는 각각 朝鮮, 朝鮮半島라고 지칭한다. 한반도의 전반적인 역사를 아우르는 명칭도 한국사가 아닌 '조선사'로 표기하며 현대의 대한민국도 한국사가 아닌 조선사의 개념으로 바라보고 있다. 단 한민족의 언어와 문자인 한국어/한글의 경우 조선어/조선글보다는 한국어/한글로 표기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편 반도 지형을 가진 국가가 동아시아에서는 한국 밖에 없으므로 반도라는 말 자체가 한국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기도 한데, 특히 일본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한반도라는 말은 현대에 와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성립되고 한국이라 부르는 것이 완전히 정착한 후에 함께 자리잡은 것이다. 대한제국이 성립되면서 ‘한국’이라는 새 국호가 공식적으로 강제되었고, 이 시기에 ‘한반도’라는 명칭도 쓰인 것이 문헌상 확인된다.# 그러나 대한제국 시기는 짧았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한국'보다는 '조선'이라는 국호가 더 익숙하게 쓰였던 것처럼 한반도라는 말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는 그렇게 널리 쓰이던 말은 아니었다.
현대에도 대체로 대만을 제외하면 일본과 중국 등에서 조선반도라는 표현을 주로 쓰고 있고, 북한 또한 한반도라는 말을 쓰지 않고 조선반도라는 말을 사용하며, 베트남 역시 조선반도라는 표현을 쓴다. 베트남어로는 Bán đảo Triều Tiên, 한자로 쓰면 半島朝鮮[6]이다. 서한만, 동한만도 또한 서조선만, 동조선만으로 칭해진다. 대한해협도 조선해협이라고 부른다.[7]
그러나 과거 대한민국과 수교했던 대만의 경우 북한을 북조선(北朝鮮)이라고 부르지 않고 북한(北韓)이라고 부르는 등 남한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8] 일단 중국과 베트남은 공산권에 속해서 북한의 표기를 따라가서, 일본은 남북한 중 한 쪽을 정통정부로 인정하기를 피하느라[9] 이전까지 쓰던 '조선'을 남북한을 모두 합친 표현으로 사용한다.[10] 결국 대한민국 스스로와, 과거에 대한민국과 동맹으로 공산권과 대치한 대만이 韓을 한반도 전체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한다.[11] 북한이 붕괴해서 대한민국 주도로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한자 문화권에서 한반도의 표기가 자리잡을 여지는 있다.
홍콩은 중국의 특별행정구라 직접 통치구역도 아니고 영국령 시절부터 꼬박꼬박 Korea는 남한만을 의미해서 중국식과 영국식이 섞여있다. 실제 언론 등의 표기는 남한이라고 하지 조선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땅 자체는 조선 반도라는 중국어 표기와 Korean Peninsula라는 영어 표기가 혼재되고 남한은 南韓, 북한은 北韓으로 중국어 명칭부터 韓자를 쓰며 남북을 확실히 구분한다. 북한은 차오셴(조선), 남한은 한궈(한국)라고 하는 중국 대륙과 다르다. 마카오 역시 마찬가지로 南韓, 北韓이라는 중문표기와 Coreia do Sul, Coreia do Norte라는 포르투갈어 표기를 쓴다.
3. 특징
<rowcolor=#fff> 한반도의 위성 사진[12]과 지형도 |
백두대간을 따라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동고서저의 경동성 지형을 띠며, 북으로는 압록강과 두만강이 있어 중국 대륙과 나뉘어진다.
인문지리학적인 한반도의 크기는 대한민국의 실효 통치 영역[14]과 북한의 실효 통치 영역[15]에서 이 두 나라가 영유하는 도서지역들을 뺀 것이다. 남한은 한반도 전체 면적의 약 44.9%를 통치하고 한반도 전체 인구의 약 66.2%를 차지한다. 북한은 한반도 전체 면적의 약 55.1%를 점거하며 한반도 전체 인구의 약 33.8%를 차지한다. 즉, 남한은 북한보다 면적은 조금 작지만 인구는 2 배를 넘고 북한은 남한보다 면적은 조금 더 크지만 인구는 절반 이하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인문학적 지리 경계[16]를 기준으로 대한민국과 북한의 영토 면적을 산술적으로 합산했을 때, 한반도의 총 면적은 223,663km²이다. 이는 그레이트브리튼 섬(209,331km²)[17]보다 조금 크고 일본의 혼슈 섬(227,943km²)과 라오스(237,955km²)보다 조금 작다. 그 외에 한반도와 면적이 비슷한 지역으론 벨라루스(207,595km²), 후난성(211,829km²), 캔자스 주(213,100km²), 유타 주(219,887km²), 미네소타 주(225,163km²), 루마니아(238,391km²), 가이아나(214,970만km²) 등이 있다. 이는 속령과 미승인국을 제외한 전세계 196 개국 중에서 83 번째[18]로 큰 것이다. 만약 한반도가 반도가 아니라 면적이 같은 섬이었다면, 혼슈 섬에 이어 세계에서 8 번째로 큰 섬이었을 것이다.
한편 간척으로 면적이 계속 늘어났다. 이곳에 나오듯 지난 남한만 해도 반세기 동안 4,000km² 가량 늘었고, 북한 역시 간척을 상당히 많이 했다.
만주 남부, 연해주와 함께 한국사의 주요 무대였으며,[19] 남북국시대가 끝날 때, 즉 발해가 멸망한 이후[20] 일부 만주 연해주 진출 시도 혹은 간접지배나 현재 한국계 중국인들의 사회를 제외하면 한국사의 거의 모두를 이 곳에서 전개했다.
때문에 한국사를 인용할 때 '한반도'라는 지리적 개념과 관련해서 오류를 범하는 경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불교가 한반도에 처음 들어온 건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 '한반도의 청동기 유물로는 비파형 동검 등이 있다. 이는 현재의 영토를 과거에 투영하여 생긴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땅은 자연이라 경계가 없으므로[21] 한반도의 명확한 범위를 지정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한반도는 압록강, 두만강 이남을 뜻한다.[22] 설사 지리적으로 지린성도 한반도에 속할 수 있다 하더라도, 암묵적으로 일반적인 한반도의 개념을 따르면서 논리를 진행시키는 이상 반드시 명확하게 한반도와 그 이외의 곳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역사무대는 한반도가 아닌 곳도 있기 때문에 한반도 이북지역을 말할 때엔 반드시 만주, 연해주, 또는 현재의 중국 둥베이 지방, 러시아 극동 지방,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방 하는 식으로, 제주도의 '육지'와 구분되는 정체성을 설명할 때도 '제주도'로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오늘날에는 휴전선을 기준으로 대한민국과 북한 두 나라가 위치하고 있다. 한반도를 양분한 대한민국과 북한은 UN에 공식적으로 가입된 국가이나 대한민국은 규범적으로는 북한을 나라로 인정하지 않으므로 헌법에서는 한반도(부속도서 포함) 전역을 자국의 영토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 역시 UN 가입 이후에도 한반도 전체가 자국의 영토임을 최고 규약에 명시하는 등 대한민국과 동일한 입장을 견지했으나 2024년을 기하여 김정은 위원장의 주도로 전통적인 선대의 명분이었던 하나의 조선과 평화적인 (적화통일)을 공식적으로 포기하고 전쟁시 '수복' 대상으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조선(북한)과 대한민국을 완전한 별개의 나라로 규정하여 북한 정권 수립 이래 북한에서 남한을 가리키던 표현도 공식적으로 남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변경됐으며 북한 사회·문화 전반에 묘사되는 한반도에 있어서도 이북 지역만을 자국의 영토로 표시하기 시작했다. 통상적으로 대한민국과 미국의 북한 관련 전문가는 이러한 북한의 입장 변화가 북한이 대한민국을 존중하거나 적대 의사를 철회했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한반도의 정세에 불안을 야기하려는 도발 행위이자 내부적인 결속을 다지려는 행위인 것으로 규정한다. 북한이 남조선을 대한민국으로 바꿔 호칭하기 시작한 것도 명목상으로나마 대한민국을 상생과 통일의 대상으로 여기던 기존 입장에서 공식적으로 적대국이자 무력 점령의 대상으로 입장을 선회했음을 내포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23]임을 밝힌다.[24] 남한을 점유하는 대한민국은 북한도 주권 국가로 여기려는 시각이 헌법을 제외하면 정치권에서까지 논의되고 있으나, 북한은 이런 시도를 분단 획책이라며 아주 싫어하였고, 적국으로 주장한 이후에도 '괴뢰한국'이란 정당한 자주 국가가 아니라 식민지라고 주장했으며, 전쟁이 나면 무조건 남한을 점령하겠다고 하였다. 김정은의 두 국가론 이전에서는 일각에서 북한이 통일 포기론을 주장했다는 설이 매스컴을 타자 북한의 입장을 반영하는 조선신보가 빠르게 반박하기도 했다. 심지어 남북정상회담도 국가간의 만남으로 읽힐 것을 우려하여 '수뇌상봉'으로 칭하기도 했다. 어쨌든 두 국가가 기능적으로 한반도에 존재하는 형국이기에 대한민국은 현재 반도에 있어야 할 지리적 이점을 완전히 상실해 사실상 섬으로 취급받는다. 이 때문에 섬나라 특유의 갈라파고스화가 한국에도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거꾸로 본 한반도 및 그 주변 지도가 신문에도 나오고 꽤 유행했던 적이 있다. 물론 편견 때문이지만, 보통의 한반도 지도는 모양새가 꼭 강대국 틈에 끼어있는 형상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도를 거꾸로 보면 유라시아 대륙의 치미는 기상이 한반도에 모여 드넓은 태평양을 향해 힘차게 뻗어나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관점만 조금 달리하면 생각이 바뀐다는 내용이었다.
4. 경계
반도의 정의에 비추어봤을 때 청천강~영흥만(또는 함흥만) 이남만을 '반도'라 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고, 지질학적으로는 추가령 구조곡을 경계로 나뉘기도 한다. 그러나 인문학적 국경선을 반영한 반도의 경계는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으로, 인문학적 한반도의 경계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분명한 것은 고려 중기의 북쪽 경계선(압록강~도련포)이 현재까지 내려왔다면 당시 현행 교과서 기준으로는 고려 영토가 아니지만, 현재 북한이 실효지배중인 함경도(동북면)의 땅을 한반도라 칭하지 않았으리라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국경이 이어져 내려왔다면 한반도는 그 이남이었을 테고, 거꾸로 경계선이 더 북상해 요동이 지금까지 한민족 국가의 영토였다면 요동 반도가 한반도의 부속 반도로 인식되었을 여지도 있다. 조선 초 세종대왕 때에도 북방 방비의 어려움을 들어 '마천령 산맥을 국경으로 삼자.'는 건의가 있었는데 세종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으나, 이게 인정됐더라면 함경북도 땅은 반도가 아니라 대륙에 속한 지역으로 간주됐을 가능성도 있다.[25][26]
이렇게 보면 반도의 '면적'을 어떤 기준에 근거해서 구해야 할지도 생각할 문제. 두만강의 상류 문제에서 불거진 백두산 분할 문제에서 보듯이, 사실 한반도의 경계는 모호하다. 다만 이 강들이 제법 유량과 너비가 상당하고, 산맥들을 가르니[27] 지금의 한반도 경계 자체가 아예 지도 상으로 답도 안 나오는데 억지로 나눈 선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런 문제는 다른 반도나 지리학적 개념에도 흔히 적용되는 문제라서 특별한 것은 아니다. 발칸반도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경계가 대부분 국경선을 따라서 확정된 것이나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 튀르키예가 주장하는 아나톨리아의 경계 등 지리학적으로는 약간 오차가 있어도 국경선 또는 행정구역의 경계를 따라서 지형의 경계가 확정되는 건 흔한 일이다. 예외라면 자국 영토의 대륙부분 전부를 이탈리아 반도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루비콘강 이남 부분만을 이탈리아 반도로 정의하는 이탈리아 정도인데, 이것도 직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반도의 경계인 제노바-베네치아선을 따르지 않고 로마 공화국 시대 '본토 이탈리아'의 경계선을 상당부분 따르고 있다. 문제는 그런 나라들이 영토 주장을 그런 식으로 하진 않는다는 것. 즉 이탈리아 공화국은 자국 영토를 이탈리아 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하지 않는다. 또한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는 나라들도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는 아시아(유럽) 국가이므로 건너편 유럽(아시아) 땅은 우리나라 땅 아님' 같은 논리를 들이대는 나라는 없다.
그리고 한국 헌법대로 하면 이게 순환논리가 된다. 헌법대로 하면 '한반도나 부속도서에 속하면 대한민국 땅임', '한반도에도 부속도서에도 속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땅이 아님'임을 알 수 있는데, 한반도의 기준을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잡은 이유가 바로 대한민국이 거기까지를 영토라고 주장하며 벗어나면 영토로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므로. 압록강과 두만강은 이어져 있지 않으므로 그 사이의 경계는 더욱 모호하며, 실제 대한민국의 명목상 영토 중에는 중국의 실질 영토도 포함된다.
5. 극점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의 극점 문서의 한반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6. 자연지리
산이 많다. 그래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 손 꼽을 정도로 적다.백두산과 그 인근의 산지에서 개마고원을 거쳐 태백산맥에 이르는 긴 능선이 동쪽을 따라 남쪽 해안까지 이어진다. 이 때문에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이른바 '동고서저' 지형을 이룬다. 평지가 비교적 드물고 산지가 흔하다는 인식이 오래 전부터 있었고, 현대에도 산림청 등 출처에서 한반도는 산지가 약 65%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2013년 논문<<지형학적 산지의 분포와 공간적 특성에 관한 연구>>(탁한명 등 3인, 대한지리학회지 제48권(2013) 1호, pp.1-18.)에 따르면 지형학적 기준에서 한반도 전체의 실제 산지는 42% 정도라는 발표도 있다. 남한에서는 산지가 31%, 북한에서는 51%이다. 즉, 실제로는 한국인들 대다수의 인식과는 달리 대략적으로는 한반도의 절반 이하만이, 한반도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남한 지역에서는 불과 전 국토의 1/3 지역만 산지인 셈이다. 이런 변화는 한반도의 산지들이 생성된 지 오래된, 평지나 구릉지에 가까운 산지가 많아서 그렇다.
이런 지형 때문에 한반도의 주요 강은 동쪽 산지에서 발원하여 서해안을 향해 흐른다. 이러한 대표적 수계로는 북쪽으로부터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한강, 금강, 영산강이 있다.[28] 남북으로 긴 반도 특성상 남해로 흐르는 강은 비교적 적으나 섬진강과 낙동강이 백두대간 줄기 남단을 따라 흐르는 물을 모아 남동부 수계를 이룬다. 요 하천들은 동쪽에서 꾸준히 깎은 퇴적물을 주기적으로 범람시켜 서해 및 남부에 평지를 가꾸어왔으며, 주요 도시들은 이 영향으로 동쪽 산맥으로부터 방사상 형태로 자리잡았다.
<rowcolor=#fff> 국립해양조사원이 제작한 한반도의 해류모식도. |
오늘날 지구의 해수면이 높기 때문에 비록 황해는 바다를 이루지만, 사실 황해는 큰 대륙붕의 일부이며 지질학적으로는 대륙의 일부이다. 지질학적 측면에서 중국과 한반도는 한 덩어리 대륙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동해는 그 특성이 무척 다르다. 천만 년에 걸쳐 일본이 동쪽으로 떨어져 나가면서 지각이 벌어지고 이에 따라 수심이 무척 깊은 바다, 즉 동해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동해는 해안으로부터 아주 가까운 거리에 대륙 사면이 놓여 있다. 이 때문에 동해와 서해, 나아가 동해안과 서해안은 서로 이질적인 특성을 갖는다. 한반도의 모양만 보아도 이 특성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반도 동쪽은 강한 단층 활동으로 해안선이 단조로운 반면, 서쪽 해안선은 과거 대륙의 일부였던 만큼 해침(海侵)[29]하면서 선이 복잡하다.
동쪽은 깊은 수심으로, 비록 대양으로 열려 있지는 않지만 제법 높은 파도, 복잡하면서도 지속적인 해류를 가진 반면, 서해는 얕은 수심과 서쪽 대륙에서 유입되는 다량의 퇴적물로 정적이고 혼탁한 것이 큰 차이다. 서해안은 그런 요소로 인해 조간대, 즉 갯벌이 잘 발달해 있다. 한반도의 서해, 남해는 대륙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빙하기에는 종종 중생대 때처럼 일본, 대만과 이어졌었다. 그 당시에는 황해는 육지였고, 남쪽으로는 일본이 대마도 방면 등에서 한반도와 이어져 있었고, 북쪽으로는 홋카이도-사할린이 아프로-유라시아 대륙과 이어져 있었다. 즉, 그 당시 동해는 호수였다.
6.1. 지질
지질학적으로 한반도의 기반암은 크게 세네 영역으로 구분된다. 이에 대해서는 위키백과에 자세히 나와 있으므로 참고 바람. 첫째는 선캄브리아대에 대륙 지각끼리 충돌을 일으키며 유라시아 대륙을 성장시키던 변성암이 있다. 가장 오래된 변성 연대는 기원전 약 20억 년[30]이며 특히 강원도 북부에서 경기도를 포함하는 경기육괴, 울진 즈음에서 전라남도까지 길게 분포하는 영남육괴에서 흔하게 발견된다. 변성암은 보통 충돌대의 심장부를 구성하는 단단한 암석이며, 충돌대의 활동이 끝나면 접합되면서 견고하고 안정적인 대륙으로 변하게 된다. 선캄브리아기의 격한 충돌 산물은 곧 단단하고 안정적인 땅덩어리를 구축했고, 이후 한반도의 골격을 이루게 된다. 어떻게 지금 하나의 땅에 있는지는 첨예한 논란이 있으나,[31] 이 영남육괴와 경기육괴가 옛날에는 서로 떨어져 있었다고 생각하며, 오늘날 북한에 있어 확인할 길은 없지만, 북한의 기반암이 경기육괴와 영남육괴와 어떻게 대비되냐에 따라 한반도는 작은 땅덩이들이 최대 3~4 개 정도가 모였다고 볼 수 있다.<rowcolor=#fff> 한반도의 고생대 지층. | 한반도의 신생대 지층. |
2번째는 고생대와 중생대에 걸친 퇴적암류인데, 두 시기의 암석은 장소와 특성이 상이하다. 고생대의 퇴적암은 조선누층군과 평안누층군으로 대표되며 강원도 남쪽 영월군, 태백시 일대에 특히 많이 분포한다. 이 두 지역의 지질에 대해서는 위키백과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정선평창영월태백) 두 누층군 중 전자는 고생대 초기, 후자는 고생대 말기의 퇴적암류로 되어 있으며 바다에서 퇴적된 셰일과 석회암이 특징적이다. 특히 조선누층군에는 석회암층이 무척 풍부하고 화석이 많이 발견된다. 한편, 중생대의 퇴적암은 한반도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뭐니뭐니해도 경상분지가 가장 다량의 퇴적암을 보존하고 있다. 경상도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상분지의 중생대 퇴적암은, 고생대의 그것과 달리 바다가 아닌 육상[32]에서 퇴적된 것이 많고 붉거나 노르스름한 이암과 사암이 흔하게 나타난다. (지층의 세부적 특성에 대해서는 위키백과를 참조) 이 당시에 한반도 동부에 많았던 화산 활동의 영향을 받아 화산퇴적물도 무척 흔하다.
중생대에 화성 활동이 강했단 말은, 곧 마그마의 관입이 흔했다는 뜻이다.[33] 바로 이 관입으로 마지막 3번째 주요 암석이 만들어진다. 한반도 기반암에서 편마암만큼 흔한 암석인 화강암이 바로 그것이다. 화강암은 본래 산성질 마그마가 지하 깊은 곳에서 천천히 굳어간 것이다. 중생대에 한반도 곳곳에서 산성질 마그마 관입이 일어났으며 이 결과 한반도는 화강암이 사방팔방에서 발견된다. 오죽하면 천 년도 더 전에 그 다루기 어려운 화강암으로 불상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화강암은 특히 영남육괴와 경기육괴에 걸쳐, 강원도에서 전남으로 뻗는 대각선을 따라 다량으로 분포한다. 화강암은 암석 내에 방향성이 없어 모나지 않고 둥그렇게 풍화되는 것이 특징인데, 이 결과 한반도에는 화강암을 골격으로 하는 둥그스름하면서도 큼직큼직한 산이 많아 독특한 경관을 이루었다.
중생대가 끝날 무렵에는 한반도의 암석 형성은 대부분 끝난다. 그러나 신생대에도 화산활동이 있었으며 그 결과 한반도 곳곳에서 신생대 화산활동의 산물이 발견된다. 본토의 경우, 북쪽에는 백두산과 개마고원이 가장 대표적이며, 한국에서는 철원군[34], 보은군, 백령도 등을 포함하는 내륙의 신생대 현무암이 대표적이다. 남쪽에도 있는데, 한반도에서 대표적인 신생대 퇴적암류로 되어 있는 호미곶과 그 남부에 넓은 연대에 걸친 현무암을 포함한 신생대 화산암류가 발견된다. 특징적인 것은, 대략 기원전 1500만 년경을 기점으로 한반도 화산암류에서는 섭입대의 흔적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반도 주변부에는 화산 활동으로 인한 섬도 만들어졌는데, 독도, 제주도, 그리고 울릉도가 대표적이다. 그 중 울릉도와 제주도는 4000-6000년 전까지 화산 활동을 했음이 드러나, 오늘날 열수 및 지진 활동이 보고되는 백두산과 함께 한반도 활화산으로 알려졌다.
기원전 5만 년 무렵에는 지름 200 m 남짓한 유성이 한반도 남부를 1400메가톤에 이르는 에너지로 강타하여 일대 지표를 전부 증발시키고 인류[35]를 포함한 생태계를 초토화시키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해당 크레이터는 경상남도 합천군에 위치하는데 지금은 풍화가 진행되어 초계분지가 되었다. 위성사진으로 봐도 여전히 상당히 지형이 독특하다.
한반도가 어떻게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되었느냐, 즉 지질의 역사에는 아직 논란이 많이 있다. 한반도는 공간적으로 지질학적 영역 대여섯 개로 나눈다. 가장 북쪽, 휴전선 가까이에 분포하는 변성암대인 임진강이 있고, 그 아래로 경기육괴가 있다. 경기육괴와 영남육괴 사이에는 다시 충돌의 흔적이 남아있는 옥천대가 띠 모양으로 분포한다. 영남육괴는 동쪽이 경상분지와 맞닿아 있다. 옥천대의 북부는 변성의 흔적이 거의 없는 고생대 퇴적암류와 맞닿아 있다.
요컨대, 상당부분은 선캄브리아대부터 있던 안정한 지각이며 고생대에 수중에서 퇴적된 퇴적암이 함께 발견된다. 중생대 초기부터는 그곳도 육지로 바뀌었고, 그 시대의 토탄이 굳어 만들어진 석탄이 분포한다. 중생대의 퇴적과 화성 활동으로 오늘날의 구조를 만들어갔으며, 신생대에 걸친 간헐적인 화산 활동이 있었다.
오늘날 한반도의 지각 변동은 거의 없는데, 이는 한반도가 대륙 경계부에서 한발자국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중생대에는 화산 활동과 지진이 잦았을테지만, 태평양 판의 섭입이 뒤로 물러나면서[36] 한반도에는 사실상 조산 운동이 완전히 끝났다. 백두산의 경우 그 원인에 대한 해석이 분쟁 중이지만, 한반도 대부분의 화성 활동은 동해가 열리는 것과 직간접적인 인과 관계가 있으리라 추측된다. 다만 한반도에서 지진은 여전히 크고 작게 일어나고 있다. 이는 한반도가 섭입대의 영향 아래 있어서라기보다는,[37] 오히려 히말라야 조산운동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산발적으로 말했지만, 한반도는 동북부에서 서남부로 이어지는 구조선이 많다. 그리고 보통 이미 구조선이 구축되어 있으면, 땅에 응력(stress)이 가해질 때 그 구조선이 재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즉, 새로 암석을 찢는 것보다는 이미 찢어진 곳을 공략하는 것이 에너지 측면에서 효율적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한반도는 이 구조선의 재활성화에 의해 지진이 많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재활성화를 유도하는 응력은 대부분 히말라야 조산운동으로 인도가 유라시아 땅을 밀어붙일 때 그 힘이 중국을 거쳐 한반도까지 이어지면서 발생한다. 즉, 인도가 티베트고원을 힘껏 밀어붙이고 있는데, 그 영향으로 티벳 고원 동쪽 대륙 전체가 밀려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서는 위키백과에 잘 설명해 놓았으니 참고 바람.
2011년 도호쿠 대지진의 영향으로 한반도 전체 지역이 동쪽으로 3 cm 이동했다고 한다.
평안남도 평원군과 함경남도[38] 문천시를 잇는 선은 한반도에서 횡단거리(동서)가 가장 짧은 구간이다.
한반도는 산성 토양이라 땅 속에 묻힌 유기물이 삭아서 없어지기 쉬우며, 이는 한국사를 연구하는 데 큰 장애물이다. 고고학은 왕릉 등 고분 조사의 비중이 높은데 인골도 삭아 없어지고 나무로 만든 관과 유물들도 없어져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6.2. 동고서저와 서남다도
한반도의 지세는 '동고서저(東高西低)'와 '서남다도(西南多島)'로 요약할 수 있다.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으며, 서남쪽에 섬이 많다는 의미다. 이에 한반도의 서남해안은 다도해(多島海)라고 불린다.[39]동고서저인 이유는 신생대 제3기에 있었던 비대칭 요곡 운동(경동성 요곡 운동) 때문이며, 서남다도인 이유는 황해와 동중국해 일대가 빙하기에 육지였다가 해수면 상승으로 만들어진 리아스식 해안이기 때문이다. 동해는 빙하기에도 거대한 호수 지역이었으며, 간빙기 이전에 이미 바다와 연결되었다. 때문에 삼면의 바다가 가운데서도 유독 서해안과 남해안 쪽에 크고 작은 섬이 많고, 동해안은 울릉도와 독도 등의 일부를 제외하면 섬이 매우 적다.
이 영향으로 한반도 서부에는 도시들이 많으나 한반도 동부는 서부에 비해 도시가 많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40]
6.3. 자원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자원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북한/지하자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지질학적으로 볼 때 광물이 대단히 다양하다. 허나 이런 광물들은 캐서 쓸 때 경제성이 없을 만큼 양이 적으니 문제. 외국의 어느 학자는 한반도를 "광물의 샘플을 모아둔 곳"이라 했고, 지리 교과서에선 "광물의 표본실"이라고 한다.[41] 종류는 많은데 다 적다.[42]
석탄도 상당량이 있고(남한 기준 약 15억 톤) 그것도 최상급인 무연탄이지만 석탄은 경제성이 낮고 환경오염 문제 때문에 점점 사용을 줄이는 처지며, 그나마 이 무연탄은 열랑은 높은데 느리게 타서 발전용으로 쓰기엔 맞지 않아 매년 유연탄을 해외에서 수입해 오는 처지다. 자세한 내용은 석탄 항목 참고. 1960년대에는 남한에서 철광석과 더불어 무연탄이 주요 수출품목이었다. 양양의 철광이 유명했다. 자수정은 울산 언양 자수정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지금도 상당량 채굴된다. 텅스텐도 세계 7위 매장량이고 한때는 생산량 1위였지만 지금은 채굴하지 않는다. 워렌 버핏이 광산에 투자했는데 아직까지 별 신호가 없다. 석회석은 산 전체가 석회석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풍부하여 강원도에 이를 이용한 시멘트 공업이 잘 발달되었다. 정리하자면 알려진 바로는 남한은 천연자원이 종류는 많은데 일부를 제외하고 양이 적다.
그런데 남한 수준의 천연자원조차 못 캐는 나라가 세계적으로 적지 않아서(부룬디, 토고, 감비아, 키리바시 등), 가난한 나라 치고는 딱 중간 정도의 천연자원의 혜택을 보았던 셈이다. 제조업이나 인적 자원 개발을 위주로 한 성장 전략이나 '열악한 조건에서 이룬 성공'이라는 내러티브나 자부심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아예 자원이 없다는 식으로 과장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일본[43], 싱가포르, 이스라엘, 아일랜드 등의 나라에서도 유사한 말이 존재한다. 워낙 경제가 발전하니 자원에 의존할 필요도 없게 된 것이지, 처음부터 자원이 없이 성장한 건 아니었다.
다만 일제강점기에는 이북의 산지[44]에 자원이 제법 풍부해서 각종 중공업 시설들이 북한에 몰려 있었는데 이것이 햇볕정책의 근거가 된다. 이는 정보를 확인할 수 없는 북한에 대한 정보이기에 이를 두고 진영 논리가 심각했다. 대북 경협을 추진하는 듯한 민주당계와 이에 반발하는 이념정치적인 우익 진영 사이에 적은 정보를 가지고 서로 부풀리는 갈등이 있던 것이다. 현재로서는 있어도 북한이 잘 못 캐며, 캐도 대북제재 때문에 팔 수 없으며, 자원이 없을 수도 있는 것만 확인할 수 있는 정보다. 광업 채굴권을 중국에 넘겼다는 뉴스가 2000년대 후반에 등장했으나, 아예 누군가에게 '넘기는' 것은 불가능하며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자체가 불허된다는 명분을 내세워 중국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양보를 제대로 안해주었다는 불만도 있다. # 외부에서 자유로운 교류를 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정권이다. 당장 무역을 심하게 꺼리고 인터넷이 불허되는 것을 보아도 북한은 경제성보다 정보 차단 등을 통한 체제 유지가 훨씬 중요하다.
6.4. 기후
<rowcolor=#fff> 2010년 1월 한파(위)와 2010년 8월 폭염(아래). |
"미군의 한반도 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에서 진행되는 훈련은 해병대의 준비 태세를 위해 필수불가결(integral)하다. 한반도는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기후뿐 아니라 가파른 지형 등 대대 수준에서 훈련 조건이 잘 갖춰진 곳이다."
로버트 넬러, 미합중국 해병대 37대 사령관.
한반도는 전 세계의 인구 밀집 지역 중에서 가장 연교차가 큰 편이다. 일반적으로 온대기후로 인식하는 사례가 많지만, 최한월의 기온에 따른 분류 기준이 0℃라면 실상은 냉대기후인 지역이 가장 넓다. 또한 온대, 아열대 기후가 뒤섞여 있는 형태인 만큼 지역과 계절마다 큰 기온 편차를 보인다.로버트 넬러, 미합중국 해병대 37대 사령관.
이렇게 편차가 큰 이유는 삼면이 바다인 반도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바다의 크기가 그다지 넓지 않아 해류의 영향을 크게 받지 못하며, 시베리아와 맞닿아 있는 점 등으로 인해 소위 '해양성 기후'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지형이기 때문이다.[45] 육지의 기후에는 바다가 크게 영향을 미치며, 북대서양 난류처럼 대서양을 흐르는 따뜻한 해류의 영향을 받는 서북유럽은 한반도와 비교했을 때 같은 위도여도 상당히 따뜻한 날씨를 보인다. 반면 한반도는 태평양과 반도 사이를 가로막는 일본 열도의 존재로 인해 해류의 영향은 미미한 반면, 소위 '한반도 4대 기단'이라고 불리는 기단들의 존재에서 알 수 있듯이 계절마다 불어오는 기단의 특성에 따라 기후가 심하게 변화한다.
이처럼 사시사철 기후를 비슷하게 유지해주는 해류가 없는 대신 영향을 주는 기단들이 아주 극단적이다 보니 한반도의 연교차는 거의 60℃ ~ 80℃가 되는 극심한 연교차를 자랑하며, 더불어 아주 극단적인 기후를 자랑한다. 한반도의 봄은 고비 사막의 기후와 거의 흡사하며 먼지 또한 엄청 날리는 추운 사막기후에 가깝고,[46] 여름은 열대 우림지역의 날씨와 비슷한 기후, 즉 아열대 기후가 된다. 초~중가을은 맑고 건조한 기후, 늦가을은 비가 자주 내리고 쌀쌀한 서유럽의 기후가 되고, 겨울은 시베리아 벌판 한가운데가 되는 냉대기후가 되는 특징을 지닌다.
한반도의 기후를 흔히 '사계절이 뚜렷하다.'고 표현하지만, 심하게 표현하면 계절의 차이가 뚜렷하다 못해 매우 극단적이고, 또 매우 규칙적이다. 쾨펜의 기후 구분을 참고하면 좁은 국토임에도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기후대가 나타난다. 2월에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하면 그 뒤로 쭉쭉 올라가기만 해서 8월 초에 정점을 찍고, 8월 중하순부터 1월 초까지 내려가기만 한 뒤 1월 한 달간 정점을 찍는 패턴이 보통이다. 해양성 기후는 물론이고, 다른 대륙성 기후 지역과 비교해도 유독 이러한 칼 같은 규칙성이 돋보인다.
한반도는 동해발고도 및 동위도 지역 중 가장 추운 지역이다.[47] 유럽에서 한대기후인 곳의 겨울 기온도 삼지연보다 따뜻할 정도다. 물론 삼지연시는 해발고도가 높은 것을 감안해야한다. 그나마 위도 대비 추운 편인 북아메리카 동부 지역이도 같은 위도에선 한반도보다 약간 따뜻하며 뉴욕과 강릉, 시카고와 춘천, 워싱턴 D.C.와 울산, 보스턴, 캔자스시티와 서울, 인천의 1월 평균 기온이 비슷하다. 뉴욕, 시카고, 보스턴은 모두 개마고원과 같은 위도에 있고, 워싱턴 D.C., 캔자스시티도 평양과 동위도이다. 동위도의 중국대륙의 내륙지역과 비슷하다. 북부지역은 대체로 동위도의 중국보다도 춥고 남부지역은 동위도의 중국보다 따뜻한 편이다. 겨울뿐만 아니라 한류와 사하 공화국 때문에 연평균 기온이 고산 지대를 제외하고 동위도 중에서 가장 낮다. 서울은 37.5°의 비교적 저위도에 위치했지만 최한월 평균기온이 -2도, 최난월 평균기온 26.1도, 연평균기온 12.8도로 타 위도 중에서 시원하고, 지구 평균기온인 14.6도보다 1.5~2 ℃나 시원하다. 지구 평균기온과 비슷한 곳은 창원시나 울산시인데(14도대 중반) 무려 북위 35.2°이다. 한국의 여름도 동 위도 치고는 다소 시원한 편[48]이다. 다만 무조건 시원하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 습도가 끔찍하게 높아 체감온도는 높은데다, 실제로 기온이 극단적으로 올라가는 경우도 은근히 많다. 2018년 8월 1일 홍천 41 ℃, 서울 39.6 ℃를 기록하는 등 40도 안팎의 기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서해안이나 남해안, 제주도를 제외하면 폭염이 심하며 반대로 그쪽마저도 열대야는 타지역 대비 심하다. 서울과 연평균기온이 비슷한 지역은 북아메리카에서는 북위 39~42º 전후, 서유럽에서는 45~50°[49]까지 가야 한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북반구의 한극인 사하 공화국은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에 이르는 지역과 동일 경도이다, 하지만 일본 열도는 오호츠크해, 동해의 난류 덕분에 추위가 경감되며[50] 바다의 영향이 적고 사하 공화국에 가까운 한반도에 추위가 타 지역보다도 직접적으로 전달되는것, 같은 이유로 만주도 동일 위도에서 겨울에 가장 추운 지역[51]이다. 그러나 강수량이 가장 적은 시기이고 반대로 일조량은 어지간히 많아서 사진이나 영상에서는 시각적으로 춥다는 느낌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기후적 특이성 때문에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은 물론 한국에 처음 온 외국군과 그 관계자들 그리고 취재를 담당하는 종군기자까지 모두 적잖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플로리다 반도만한 나라에서 전쟁이 벌어지는데 낙동강 전선에서는 살인적인 더위에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고작 4개월뒤엔 장진호에서 미군 역사상 가장 추운 전투가 벌어졌다. 2018년 10월에는 로버트 넬러 미 해병대 사령관이 "한반도는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기후뿐 아니라 가파른 지형 등 대대 수준에서 훈련 조건이 잘 갖춰진 곳"이라 "해병대의 준비 태세를 위해 한반도는 필수불가결(integral)하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 극한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해병대 훈련에 적합하다고 사령관이 직접 발언할 정도로, 한반도의 기후와 지형이 매우 특이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게 장점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바로 무기 수출할 때 한반도에서 무기를 사용할 수 있으면 웬만한 나라에서도 작동이 가능하다고.[52]
하지만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고, 서양인들은 이러한 기후를 오히려 예찬하기도 했다. 한국 인터넷에서는 자신의 문제점은 잘 느끼지만 외국의 문제점은 찾기 어렵기에 미군의 일화만 부각되는 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작가 겸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구한말 조선을 방문하고 정치와 교육 제도는 혹독하게 비판했지만, 우중충한 자국과 대비되는 자연 환경과 건장한 사람들의 모습을 칭찬했다. 수질을 두고는 '하류인데도 물은 수정처럼 맑았으며, 티베트의 하늘처럼 푸른 창공에서 퍼져나온 햇빛이 부서지는 물결에 반사되고 있었다.'라고 묘사하고, 한강 유역에서는 '토양이 비옥하여 많은 농작물이 비료가 없이도 경작될 수 있었다.'라고 묘사했다.
특히 기후를 두고 '기후는 의심할 바 없이 세상에서 가장 화창하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곳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인들도 전혀 풍토병에 시달리지 않으며, 유럽인 자녀들은 이 반도의 어느 곳에서라도 안전하게 양육될 수 있다. 7월과 8월, 그리고 어떤 때는 9월 중순까지 덥고 비가 많이 온다. 그러나 열기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순화되어 활동은 항상 가능하다. 1년 중 아홉 달은 일반적으로 하늘이 맑다. 고요한 대기, 맑고 푸르며 구름 없는 하늘, 참을만한 건조함, 파삭파삭하고 쌀쌀한, 서리 내리는 밤 등, 조선의 겨울은 비할 데 없이 훌륭하다.'라고 묘사할 정도였다. 농사에 필요한 때 비가 온다고 하여 서유럽처럼 고르게 내리는 것보다 오히려 좋게 보았다. 실제로 북한조차 이러한 빈국 중 가장 '축복받은' 기후 때문에 치명적 풍토병이 별로 없어 수명이 자신보다 몇 배 잘 사는 아프리카의 국가보다 길기도 하다. 극단적인 기후는 사람뿐만 아니라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과 이들을 옮기는 소동물에게도 생존의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높은 인구밀도도 사실 그만큼 먹여 살릴 식량이 전근대에 있었다는 의미를 포함하기도 한다.
다만 북한은 적은 유통으로 쉬워지는 통제에만 관심이 있지 교통과 유통 활성화에 무관심하여 수확을 하면 30%가 버려진다고 하고#, 특히 풍년을 더 빼앗길 구실이 될까봐 걱정할 정도로 착취가 심하니 이런 조건을 못 살리는 면이 있다. # 적어도 경제 성장에는 유리한 기후 조건을 가져서 실제로 산업화가 되자 한국은 그동안 누려왔던 높은 농업생산성을 기반으로 인구가 많았기에 값싼 노동력이 많았으며, 싱가포르처럼 에어컨이 없으면 경제성장이 어렵다는 말도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구한말의 서양인들은 신분제, 육체노동 천시 같은 풍조를 아주 나쁘게 여겼지만 사람들의 예의와 예술과 더불어 기후와 민둥산을 제외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좋게 평가했다.
- 시기별 강수량의 편차가 심하고, 이에 따라 하상계수도 매우 크다. 1년 강수량의 50~60% 이상이 여름에 집중되는 반면 겨울에는 강수량이 매우 적고, 이 때문에 하상계수도 따라서 커지는 것. 한강이나 낙동강 등의 경우 하상계수가 최소 100:1에 달하는데 그나마 이것도 홍수조절용 댐 건설과 같은 치수 사업을 통해 줄인 게 이 정도다. 이보다 하상계수가 더 큰 사례는 중동의 와디 정도밖에 없다. 따라서 하천을 이용한 수상교통을 이용하기 힘들다. 사실 중국보다는 덜 극단적이라 그렇지, 여름을 뺀 나머지 3계절은 거의 비가 안 오는 건기란 소리다. 실제로도 서울의 겨울 강수량은 3달 합해서 68 mm에 불과하며, 이는 사막 국가인 카타르의 1년치(71 mm)와 비슷한 수준이다. 치수(治水) 시설이 열악한 북한의 경우 매 겨울마다 물 부족에 시달린다. 대한민국에서도 제한급수가 가장 잦은 계절은 겨울이다. 기온을 제외하고 보면 사바나 기후와 유사한데 실제로도 빙하기 시대 한반도는 완전한 사바나 기후였다고 본다.
- 기온의 평균 연교차가 매우 크다. 중부지방의 경우 월별 연교차가 섭씨 27~28도 이상을 넘나드며, 북부지방으로 갈수록 이 연교차는 더욱 커진다. 개마고원과 같은 북부 산악지역의 연교차는 시베리아에 맞먹는다. 특히 일별 연교차는 심한 한파와 폭염이 모두 있었던 2018년의 경우 남한은 69°C였으며 아예 한반도의 연교차는 무려 81.1 ℃를 기록했다.[53] 이 때문에 태백시같은 일부 고원지대를 제외하면 냉대기후라도 부채, 선풍기, 에어컨 같은 냉방도구가 꼭 필요하다. 큰 연교차는 만주나 요동 지역도 공유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공식 역대 최고기온은 2018년 8월 1일에 홍천군에서 관측된 41.0 ℃이고, 역대 최저기온은 1933년 1월 13일 북한 중강진에서 관측된 -43.6 ℃이다.[54]
- 그 중에서 강화군 이남에서 영광군 이북에 이르는 경기도[55], 충청남도, 충청북도, 전라북도, 강원도, 경상북도 지역은 쾨펜의 기후 구분을 다양하게 경험하게 되고, 냉대 동계 건조 기후의 특징인 한파, 냉대 습윤 기후의 특징인 대설과, 온대 하우 기후의 특징인 폭염과 온난 습윤 기후의 특징인 집중호우가 매번 온다.
즉 봄과 가을은 매우 짧다고 느껴지며 여름과 겨울이 체감상 굉장히 긴데, 농담삼아서 봄-여어어어름-가(을)/갈-겨어어어울이라고도 자조하는 편이다.[56] 여름도 덥고 습하고 강수량도 일정기간에만 집중적으로 내리며 겨울마저도 굉장히 추운 기후이고 봄과 가을은 상술했다시피 지나치게 건조한 계절간의 간극의 크고 굉장히 극단적인 살기 쾌적하지 않은 지역이다. 오죽하면 단군이 부동산 사기를 당했다고 자조하는 드립도 나올 지경.[57]
역사적으로도 이런 기후는 마찬가지였던터라, 조선왕조실록만 해도 510여 년의 기간 동안 추위와 더위가 꾸준하게 언급되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았다. 심지어 조선 중후반 시기에 소빙하기가 덮쳐와 평균기온이 현저하게 낮았을 때도 기온이 쉴새없이 들락날락거린 정황까지 있을 정도.
한국에서 빨리빨리 문화가 발달한 이유로 이 기후를 들기도 한다는 여론이 존재한다.[58] 날씨가 바뀌는 것이 워낙 빨라서 때를 놓치면 다음 해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봄꽃, 휴가철, 단풍 등등, 한달은 커녕 2주만 늦어도 때를 놓치는 것이 허다하다.[59] 현재에도 중요하지만 과거에는 특히 한 해의 생존과 직결되던 농삿일은 말할 것도 없고, 이와 관련된 속담도 많은 실정.
지구 전체에 발생하고 있는 기후 변화가 한국에선 체감이 덜한 이유로 이 부분을 꼽기도 한다. 즉 이미 극단적인 기후 변화가 일상이어서 그 이상의 변화가 발생해도 체감하기 힘들다는 뜻. 조천호 전 기상과학원장의 발언이다. # 실제로 유럽 등지에서 이상기온이 발생하면 한겨울에 늦봄~초여름 수준의 날씨가 나타나는데, 비슷한 강도의 이상기온이 한국에 와도 기껏해야 11월 초중순 늦가을에 9월 하순 초가을 날씨 정도(…) 수준이다.
6.5. 자연재해
한반도는 화산 폭발과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이웃 나라인 일본에 비하면 지진이나 쓰나미, 화산 분화 등 지질학적인 자연재해는 드문 편이다. 주요 재난 구역인 환태평양 조산대에서 조금 떨어져 있으며, 한반도의 지각 자체가 형성된 지 굉장히 오래되어 나름 안정된 지각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최근만 해도 2016년 경주 지진과 2017년 포항 지진이 발생한 바 있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영향으로 한반도가 3cm 가량 동쪽으로 끌려가는 등 지각이 늘어나면서 지진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해서 내진설계 내지 면진구조의 건축물 건설이 필요해졌다. 또한 백두산과 한라산이 활화산이고, 백두산의 경우 분화가 임박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오면서 그 이후에 한반도가 어떻게 변할지 예의주시 해야한다.반면 강수량의 60~80%가 여름에 집중되는 특성상, 기상학적 자연재해는 해마다 일상인 수준. 매 여름~초가을마다 장마와 태풍으로 인한 집중호우 때문에, 반대로 겨울과 봄에는 가뭄과 황사, 산불이 큰 피해를 준다.
다만 지질학적 자연재해에 비하면 그렇다는 것이지 기상학적 자연재해도 중국, 일본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아무래도 평야는 좁고 산지만 널려있는 한반도 특성상 슈퍼셀 속 메조사이클론이 제대로 발달할 수 없다보니 용오름도 아무리 세봐야 겨우 EF1 정도 선에서 턱걸이 할 수준이다.
한편 완연한 가을인 10~11월에는 기온도 내려갔지만 심하게 내려가지 않고 강수량도 적은편이라 폭설, 한파, 폭염, 태풍, 호우 피해도 적으며 게다가 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가뭄, 황사피해도 없어 비교적 재해에 안전한 달이다.
6.6. 생태계
다양한 기후의 분포 및 변화, 그리고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서 면적에 비해 다양한 생물종이 분포하는데 현재 파악된 종은 5만 2628종이다. 특히 기후와 지형을 살펴보면 동남아의 혹서에 가까운 여름과 러시아 시베리아의 혹한의 겨울이 교차하는 극한의 기후대와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어 있는 동고서저 지형으로 인해 동부와 북부는 고산지대 서부와 남부는 저지대에 대부분 큰강을 끼고 있으며 리아스식 해안이 대부분으로 인해 다도해가 형성되어 있어서 여러 다양한 동식물이 살아갈 수 있게 만들었고 다른 나라에서도 생존 할 수 있게 만들었을 정도이다.그러한 이유로 한반도의 경우 전세계적으로 고유종은 적고 생물다양성은 낮은 편이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열대지방과 비교한 것이며 유라시아 대륙의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생물다양성은 비교적 높은 편이고, 개체수나 밀도가 적거나 분포도가 좁은 종들이 서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반도에서 대표적인 우점종으로 고라니, 아무르표범, 등줄쥐, 가창오리, 저어새, 무당개구리, 굴등이 이 사례에 속한다.
과거 빙하시대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더 많았는데 울리매머드, 나우만코끼리, 털코뿔소, 동굴사자, 동굴곰, 동굴하이에나, 메갈로케로스, 오록스같은 화석으로만 존재하는 종들 이외에도 사이가나 몽골야생말, 물소, 히말라야원숭이 등 지금은 다른 지역에선 서식하지만 한반도에서 사라진 종들도 있었다.
포유류는 인간에 의해 많은 종들이 사라진 안타까운 상황이다. 특히 휴전선 이남의 대한민국 영토에선 더욱 그러한데 시베리아호랑이, 아무르표범, 스라소니, 우수리불곰, 늑대[60], 우수리승냥이 등 대형 육식 포유류는 이미 일제강점기를 전후해서 거의 절멸했고 대형 육식 포유류들은 현재까지 목격담이나 발자국 발견 소식 만이 들려오고 있다. 대형 육식 포유류 목격담 모음 유일하게 우수리아시아흑곰은 복원 사업으로 지리산에서 야생 개체군이 살고 있다. 노란목도리담비, 아무르삵, 수달, 시베리아족제비, 쇠족제비, 너구리, 아시아오소리, 한국여우등 소형 육식 포유류 역시 개체수가 크게 줄었들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안정적으로 개체군들이 유지되고 있다. 이는 서식지의 파괴 뿐만 아니라, 사람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동물들을 포획, 살상한 사례도 많았기 때문이다.[61] 이 때문에 고라니, 우수리멧돼지, 노루와 같은 일부 발굽동물들은 천적이 사실상 없어져서[62] 개체수가 크게 늘어났지만 사향노루, 산양은 수가 줄어들어 보호종이며 대륙사슴과 와피티사슴의 경우 남한에서 전멸된 상황이다.[63] 반면 설치류는(다람쥐, 청설모, 등줄쥐, 멧밭쥐, 한국멧토끼, 하늘다람쥐) 고양이로 대표되는 외래종 소형 육식포유류가 늘면서 개체수가 나날히 줄어가는 중이다.[64]
조류의 경우 522종인데 그중 90% 이상이 철새, 나머지가 텃새이다. 주로 도시에 가면 볼 수 있는 텃새 종류는 참새나 박새, 오목눈이, 직박구리, 멧비둘기, 양비둘기 등 소형조류인데 까치, 까마귀가 그 다음 우점종이다. 물까치나 어치, 꿩이나 메추라기도 산에 가면 볼 수 있다. 바닷가에 위치한 항구에서는 괭이갈매기가 우점종으로 서식한다. 오리류는 텃새인 흰뺨검둥오리와 청둥오리가 많지만 기러기등 대부분은 겨울철새이다.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해 백로나 왜가리, 해오라기, 가마우지가 하천에서 텃새로 정착하고 있다. 여름철새로는 제비나 꾀꼬리, 팔색조 등이 있는데, 최근에는 검은이마직박구리나 붉은부리찌르레기처럼 열대성 조류들이 도래하다 못해 아예 정착까지 한 사례가 빈번하다. 겨울철새로는 가창오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전세계 가창오리의 90%가 한반도에 도래할 정도이나 나머지 두루미 등 일부 조류는 희소한 상태이다. 맹금류는 대부분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지만 소형종인 황조롱이나 말똥가리, 청소부인 독수리의 경우 수가 안정적이다.
파충류는 32종이며 도마뱀이나 뱀, 거북류이다. 이 중 독사는 바다뱀 4종에 살모사 3종, 유혈목이 정도인데 열대지방 독사에 비하면 덜 위험한 편이다. 양서류는 21종인데 독이 있는 양서류는 두꺼비나 무당개구리 등 몇 종 안 되는 편이다. 또한 양서류 특성상 행동반경이 좁고 물과 가까이 사는 탓에 고유종도 많은데 주로 이끼도롱뇽이나 제주도롱뇽, 고리도롱뇽 등 도롱뇽류가 많으며 개구리류 중에서는 금개구리나 수원청개구리등도 존재한다.
민물고기의 경우 212종으로 특히 하천이나 저수지등에서 흔하게 사는 종은 붕어나 잉어등 잉어목의 어종, 가물치나 메기, 미꾸라지등 3급수에서도 사는 어종 등이 많다. 고유어종이 학술적으로는 생태학, 지리학 등에 꽤나 연구 가치가 있는 편인데, 민물에서만 살 수 있기 때문에 동물 중에서 행동 반경이 가장 좁기 때문이다. 민물고기는 강의 지류에서 이동하는 정도밖에 할 수 없다. 이런 지엽적인 서식 환경을 생태학이나 지리학 연구에 이용한다. 한반도 고유종은 총 61종이며 이중 5종은 북한에만 서식하는 종이다. 한반도 고유종에는 잉어과가 33종, 미꾸리과가 13종으로 이들이 전체의 75%를 차지한다.
곤충류는 딱정벌레목 3538종, 나비목 3166종, 벌목 2149종, 노린재목 1869종, 파리목 1594종, 날도래목 202종, 메뚜기목 161종, 잠자리목 107종, 하루살이목 80종 정도이다. 그중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종은 장수말벌 등 말벌이나 농작물을 먹어치우는 메뚜기목 곤충류 정도일 것이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장수하늘소나 상제나비 등 북방계 곤충들은 입지가 좁아지고 꽃매미 등 남방계 곤충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실정이다.
한번 걸리면 아예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주혈흡충(Schistosoma)은 일본, 중국을 포함하여 전세계에 상당히 분포해 있지만 다행히도 한반도에는 안산다. 이유는 중간 숙주가 한국에 없기 때문이다.
7. 인문지리
7.1. 인구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인구 문서 참고하십시오.지역 | 총 인구 | 남성 | 여성 |
대한민국[65] | 51,459,626 | 25,649,509 | 25,810,117 |
북한[66] | 25,598,000 | 12,524,000 | 13,074,000 |
합계 | 77,057,626 | 38,173,509 | 38,884,117 |
대한민국과 북한을 합쳐 약 7700만 명 정도 된다.[67] 대한민국은 남자가 12만 명 정도 더 많은 남초였지만 2022년 통계청 자료기준 여성의 인구가 20만명정도 늘어나 여초 국가가 되었다.[68] 북한은 여자가 70만 명 정도 더 많은 여초이다.[69] 그래서 한반도 전체는 여자가 남자보다 60만 명 정도 더 많은 여초다.[70] 다만, CIA the Worldfactbook에 따르면 남북한 모두 54세 이하, 즉 장년층 이하로는 남초라고 한다.
북한의 경우, 출생 시 성비는 105 : 100, 0~14세 유년층 성비는 103 : 100, 15~24세 청년층 성비는 102 : 100, 25~54세 장년층 성비는 101 : 100으로 살짝 남초이지만 대한민국의 경우, 출생 시 성비는 107 : 100, 0~14세 유년층 성비도 107 : 100인데 15~24세 청년층 성비는 112 : 100까지 벌어질 정도로 심각한 남초다. 이것은 1980-90년대의 여아 낙태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는 듯하다. 25~54세 장년층 성비는 106 : 100인데 현재는 1960~70년대가 포함되어 이 정도지만, 1980년대~2000년대 중반 생들이 모두 장년층에 들면 이보다 더 벌어질 듯하다. 그러나 남북한 모두 남자 수 십만 명이 군대에 고정적으로 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55세 이상 중년층 이후로는 남북한 2곳 다 여초이다. 55~64세 중년층 성비는 남한에선 98 : 100으로 살짝 여초이지만 북한에선 90 : 100으로 심각한 여초이다. 65세 이상의 노년층 성비는 남한에서는 71 : 100이고 북한에선 무려 53 : 100까지 벌어진다. 이는 북한의 평균수명이 짧은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남한에선 전체 인구의 82.7%가 도시에, 북한에서도 인구의 61.2%가 도시에 몰려 있다. 남한은 미국이나 프랑스 정도의 도시화율을 기록하고 요즘은 북한 정도면 세계 평균(56.2%)의 도시화율이다. 남한 또한 일본(91.8%)보다 도시화율이 낮다. # 노인 비중은 남한에선 15%를 초과해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 , 북한도 9.6%로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그래도 북한은 아직 유년층 인구가 노인 인구보다 높은 상태지만 남한은 이미 노인 인구가 유년층 인구를 역전해버렸다. 남한의 아주 심한 저출산으로 인해 2021년에는 북한 신생아가 남한 신생아보다 더 많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
UN, CIA 추계는 북한 정부의 자료를 통해 인구를 추정하는 것이기에, 부정확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한다. 2020년대 들어 한국은행 같은 경제기관, 국제앰네스티 같은 인권단체는 탈북민의 증언을 지역별로 재구성하여 실제 출산 상황을 추정하고는 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0년대 기준 합계출산율이 사실은 1명 후반대도 아니고 1.3명대고, 2010년대 후반 정도되면 혜산시 같은 지방 중견도시라도 2명을 낳는 집을 찾기 어렵다는 증언도 나온다. 특히 평양은 남한 급으로 저출산이 심하다는 추정을 한국은행에서 하기도 했다.
7.2. 지정학적 가치
북쪽으로는 압록강과 두만강이 있고 강폭이 좁은 곳을 개마고원이 막고 있으며[71] 한반도 내에는 청천강, 대동강, 임진강, 한강 같은 넓은 강이 연이어 있고 이들 강이 좁은 곳은 백두대간이 막고 있기에 근대 이전까지는 강이 얼어붙는 겨울이 아니면 공격하기 어려웠다. 영향력이 전세계적이라 해당 관련국이 목숨 걸고 사수하는 지브롤터 해협, 말라카 해협, 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 바브엘만데브 해협, 호르무즈 해협, 보스포루스 해협 등과 비교했을 때 중요성이 덜하지만 적어도 동아시아 대륙에서는 태평양으로 뻗어나가고, 동시에 태평양에서 동아시아 대륙으로 확장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최고의 거점이다.<rowcolor=#fff> 한반도의 분수계 형세. 백두대간이 천혜의 방벽 역할을 한다. |
한반도에 있던 국가들은 지리적 조건을 활용하면서 대륙에 위치한 중원 국가 및 만주의 국가들과 외교전을 벌여왔으며, 해양 국가인 일본과도 외교 관계를 맺어 왔다. 한반도 지리를 보면 수-당의 대군이나 북방 유목민들이 고전한 이유와 일본이 임진왜란 때 점거했던 경남 지역에 왜성을 구축한 이유, 이순신의 보급로 차단이 가져온 전략적 성과, 6.25 전쟁 초기 국군이 일찌감치 전략적 후퇴를 감행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한 이유 등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중국이나 일본, 몽골 등의 이민족 왕조들이 오랜 전란(戰亂)을 끝내고 강력한 통일국가로 변모할 경우, 넘처나는 힘을 투사(投射)하는 곳이 바로 한반도였다. 한나라[72], 수·당제국[73]은 통일 후 바로 한반도로 눈을 돌렸고, 거란,[74] 몽골,[75] 후금[76]은 중원을 공략하기 전에 후방 안정화를 위해 한반도를 공략했으나 위에서 서술된 수많은 침략사례들의 결말에도 나오듯 한반도의 지리가 천혜의 요새나 다름없었기에 한반도를 완벽히 점령하는데 성공한 세력은 근대 시대 열강이었던 일본 제국 밖에 없었다. 수천 년의 역사에서 외세에 한반도 전체가 완전히 병합된 건 35년으로[77] 상당히 짧다. 수나라[78]와 거란[79]은 아예 탈탈 털려서 멸망 또는 하락세에 접어들었고, 당나라와 몽골[80]은 몇십년간 고생하다가 겨우 눌러놓고 조용히 시키는데 성공했으나 당은 신라와 연합한 점 때문에 한민족 국가의 힘을 빌렸고 이마저 백제와 고구려를 먹고 신라마저 집어먹으려다 나당전쟁에서 오히려 역공을 당해서 크게 패배하는 바람에 신라를 멸망시키지 못하고 한반도에서 쫒겨나고 이후 발해의 건국을 막지 못해 요동, 만주 지역까지 토해내야 했고 몽골 또한 고려를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고 부마국으로 삼는데에 그쳤다.[81][82] 또한 16세기 도요토미 정권 또한 명의 지원과 조선군민의 처절한 저항 끝에 처음 목표로 했던 조선 점령에 실패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결국 패전 후 쫓겨나다시피 하면서 돌아갔다.[83] 17세기 청나라는 병자호란에서 단기간에 조선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긴 했으나 후방에 명나라가 아직 존속 중이었고 본 목적이 조선과 명나라와의 관계를 끊는 것이었으므로 조공국으로 삼는데 그쳐 조선이 청나라에 합병되거나 멸망하지는 않았다. 이후 19세기 후반 임오군란 때 청나라가 임오군란을 진압하여 조선을 간섭하긴 했으나 이번에도 조선은 청나라에 병합되거나 멸망하진 않았으며 얼마 못가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패하여 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났다.
한반도의 일부 지역이라도 점령하는데 성공한 경우는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설치한 한나라[84]와 고구려와 백제의 영토에 잠시나마 안동도호부와 웅진도독부를 두어 관리했던 당나라, 고려의 철령 이북을 점령하고 한반도를 간섭했던 몽골 제국 정도였고, 한반도 전체를 완전히 점령했던건 일본 제국 밖에 없었다. 게다가 일본 제국마저 조선이 당시 세도 정치로 청나라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막장이었던 점도 크고 일본 제국도 이 막장 국가 조선을 먹기 위해 상당히 고전했으며 상술했듯 일본 제국을 제외하고는 한반도를 완전히 장악하진 못했다.[85][86][87]
<rowcolor=#fff>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중간지인 한반도. |
이렇게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통일을 한 후, 해양세력은 대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북방세력은 중원공략 전 후방안정화를 위해[88] 틈만 나면 한반도를 공략했다. 또한 근, 현대에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그리고 미국, UN과 중국이 참전한 6.25 전쟁 등 1900년 ~ 2000년도까지 국제급 전쟁이 한반도 인근에서 수차례 터졌다는 것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예일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 20세기까지 해양 국가인 일본의 국력이 대륙 국가인 중국의 국력을 앞섰기에 해양 국가와 대륙 국가의 길목이라는 의미가 커졌던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섬이라는 고립된 위치가 일본이 문물을 수용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주었고 발전의 속도가 한반도에 비해 현저히 늦었다. 이로 인해 국력이 한반도의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낮았기 때문에 일본이 백제의 요청으로 군사를 보내거나 왜구들이 약탈하는 것을 제외하면 일본이 공식적으로 한반도를 침략한 것은 임진왜란이 근대 이전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임진왜란도 명나라가 희대의 암군인 만력제의 시대였고 조선도 선조 시기인데 일본은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군사력이 최고조였고 조명 연합군의 지휘권을 가진 명나라군이 전투에 적극적이기 보다는 협상으로 전쟁을 끝내려 했고 일본도 초기의 대륙 진출보다는 삼남 지방 지배로 목표를 수정했기에 조명연합군과의 전쟁에서 7년을 끌 수 있었다.
다만 서구 문물이 도달하는데 어려움이 많아서 한반도 대신 중국 대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청나라, 일본 열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일본의 영향 때문에 서구와의 교류가 다른 동북아시아보다 꽤 늦었다. 그래서 한반도가 섬으로 표기되는 지도가 17세기까지 존재했을 지경이었다. # 일본은 당시에 네덜란드와 직접 교역을 하였고, 중국에도 16세기에 마테오 리치가 활동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서구화가 늦은 것이 산업화를 어렵게 하였으며, 전기 가로등 같은 문물을 영국이 1881년에 도입할 때 조선은 1887년에 그리스나 오스만 제국보다 이르게 도입할 정도로 아주 이런 문물 도입에 소극적이지는 않았지만 결국 일본의 국력을 따라잡지 못하게 되어 나라가 일본에 빼앗기게 된다. 중국, 일본이나 기타 북방 민족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의식했으나, 러일전쟁이나 청일전쟁이 발발해서야 한반도의 중요성은 서양에 좀 인식되고 6.25전쟁이 발발하고 더 그 인식이 커졌으며, 본격적으로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한국의 발전과 중국의 위협으로 인해 서양에서도 한반도의 중요성이 크게 인식되었다.
그러나 한반도의 지정학적 의미가 근대 이전에도 작진 않았다. 대륙의 패권 교체기에 북방유목민족이 중원을 칠때 후방에서 가장 위협적인 세력이 한반도 세력인 고려와 조선이었다. 그래서 북방 유목민족들은 중원을 치기 전에 꼭 한반도를 공격했고 한반도를 공략하는데 실패한 세력은 결국 중원 전체를 손에 넣지 못했다.[89]
현대에 들어와서는 주변에 러시아, 중국, 일본이라는 강대국 3국이 자리잡았고, 보너스로 태평양을 통해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도 동맹을 맺는 골때리는 상황이 펼쳐졌다.[90] 일본 측에선 원나라의 일본원정[91] 등을 사례로 들어 한반도가 일본을 공격하기 좋은 위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오카쿠라 카쿠조(岡倉覚三)는 한반도에 대하여 '일본의 심장을 겨누는 단검'[92]이라며 교두보로서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Okakura 1905: 280)[93] 물론 러일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한 말이라고 하며 저런 주장 자체는 정한론을 펴는 자들이 한일병합을 밀어붙이는 근거로 써먹었다. 한편 지금은 예전과 의미가 조금 달라졌지만 러시아의 경우 한반도를 얻을 수 있다면 극동함대가 부동항을 얻을 수 있다.[94] 중국의 경우 한반도를 장악할 수 있다면 동해와 서해를 내해로 쓸 수 있으며, 동아시아 장악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뿐더러 대표적 반중 국가이자 태평양 일대 군사력 구도에서 미국과 가까운 군사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을 견제 및 침공 할 수 있는 사실상의 불침항모를 얻는다. 덤으로 한국군에 의한 위협도 크게 줄어드는 건 보너스.
반대로 한반도를 미국이 장악한다면 중국의 국가 역량 대다수가 집결된 동부 지역을 견제 및 타격할 수 있는 불침항모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은 물론이요, 한반도를 배제할 경우 동부 연안 상륙 혹은 중국 본토 공략에서 대륙에 다리를 놓는 결정적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 괜히 중국 측에서 대한민국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을 지원하고 '미국 없었으면 진작에 손 봐줬을 나라'라며 게거품을 무는 것이 아니다. # 거기다 미국의 입장에선 보너스로 러시아까지 동시에 견제할 수 있고 중국과 러시아 이 둘을 육지를 통해서도 견제 할 수 있기 때문에 잃으면 정말 뼈아픈 곳이다.[95] 중국과 러시아를 처음부터 땅 밟고 가는 것과 공중전과 해전을 동시에 수행해서 생기는 틈 사이로 상륙을 해 교두보를 차지하는 것과 비교하면 난이도에서부터 차원이 다르다. 실제로 전쟁에서 공격자가 방어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불리한 형태의 작전 중 하나가 상륙작전이다.
이 복잡한 지정학적 조건 탓에 한반도는 국제 정세에서 큰 주목을 받았으며, 이른바 세계의 화약고 중에서도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꼽힌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 그 자체는 잘만 활용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지만 자칫 전쟁이라도 나면 여느 화약고와 비교를 불허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전에 이를 막기 위해 주변 국가들이 강력하게 통제하는 것이 마치 원자로를 관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비유하여 세계의 원자로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이다.
다만, 이 복잡한 지정학적 조건이 꼭 나쁜 것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좋든 싫든 미중일러같은 세계적인 강대국들이 관심을 갖는 지역에 있기 때문에, 선진 문물을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는 한반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역사에 흐름에 아예 뒤쳐져 버려지지는 않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고대부터 중세까지는 중국으로부터 선진 문물을 잘 흡수했고, 근대와 현대에는 남한의 경우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원조와 외자를 유치하고 최신 공업 기술과 자유민주주의를 습득해 선진국으로 부상했다. 실패 국가라 불리는 북한조차도 러시아나 중국으로부터 군사 원조와 핵무기 제작 기술이나 사회주의를 받아들이고 특히 과거 중소 간 등거리 외교로 국체를 보전하기 쉬웠으니 지정학적으로 오직 저주만 받았다고 말하긴 어렵다.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자리잡은 국가들은 충분히 자기 입장을 내세울 수준의 지역강국은 될 수 있었으며,[96] 땅덩어리의 크기를 감안하면 이는 지정학적으로 훌륭한 위치에 자리잡았단 증거로 볼 수 있다.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절묘하게 놓여있으면서 러시아 극동지역까지 커버할 수 있는 위치이다보니, 현대에 들어서는 대규모 인터넷망, 데이터센터, 철도, 항구, 공항 같은 정보통신과 교통 및 물류운반 시설들을 짓기 매우 좋으며, 경제적으로도 이러한 지정학적 조건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대표적인 예시
게다가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와 인구 밀집도를 자랑하는 한중일 3국의 수도인 베이징[97]-서울[98]-도쿄[99] 벨트지역과, 인근의 항구도시로 한국 부산, 인천, 중국 상하이, 톈진, 일본 오사카, 일본 나고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홍콩, 마카오, 대만의 가오슝이 있으며, 이 모든 지역들이 한반도 중심부를 기준으로 반경 약 1,000km ~ 1,500 km 이내에 존재하므로 전부 다 합지면 대략 16억 남짓한 인구와 25조 달러[100]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전쟁이 나면 수많은 사상자와 함께 이 모든 인프라가 전부 박살나버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은 문제아인 북한을 억제하려고 군사력에 상당히 집중하고, 한반도 주변 국가들도 어떻게든 한반도에 전쟁을 안 나게 하려고 분쟁을 하더라도 외교전으로만 진행하고 군사적 충돌은 안 일으키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심지어는 북한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과 9.11 테러 이후의 분노한 미국을 두고 북한이 한 행동에서 보이듯, 자기네들 때문에 진짜로 전쟁이 날 것 같으면 알아서 꼬리를 내릴 정도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세계의 화약고라는 표현과는 달리, 외교전이 아닌 실제 군사적 충돌의 위험도는 오히려 덜한 편이다. 즉 일단 전쟁이 터지면 가장 위험하지만, 그 전쟁 자체가 터질 가능성은 생각보다 낮다는 이야기.[101]
7.3. 지역 구분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의 지역 구분 | |||||||||||||||||||
북부 | 중부 | 남부 | |||||||||||||||||
<colbgcolor=#6065d5> 관북 | <colbgcolor=#bdca42> 관서 | <colbgcolor=#e4de59> 해서 | <colbgcolor=#de2f65> | <colbgcolor=#4f6bda> | <colbgcolor=#a831e8> | <colbgcolor=#3cc647> | <colbgcolor=#23a0c9>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상세 정보 열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wiki style="margin: -5px 0 -11px; word-break:keep-all" | * 위에 빨간색 표시로 묶인 2개는 강원(관동)이다. | ||||||||||||||||||
<colbgcolor=#f5f5f5,#2d2f34> 북부 | 관북 | 라선 · 함북 · 함남 | |||||||||||||||||
관서 | 평양 · 평북 · 평남 | ||||||||||||||||||
해서 | 개성 · 황북 · 황남 | ||||||||||||||||||
중부 | 강원(관동) (영동 · 영서) | 강원 | |||||||||||||||||
수도권(경기) | 서울 · 인천 · 경기 | ||||||||||||||||||
충청(호서) | 대전 · 세종 · 충북 · 충남 | ||||||||||||||||||
남부 | 영남 | 부산 · 대구 · 울산 · 경북 · 경남 | |||||||||||||||||
호남 | 광주 · 전북 · 전남 | ||||||||||||||||||
제주 | 제주 | ||||||||||||||||||
| }}} | }}}}}}}}} |
한반도의 지역 구분 | |||||||
현대의 지역 구분 | 기준 | 전통적 지역 구분[102] | |||||
<colbgcolor=#f0f0f0,#2d2f34> 북부지방[103] | <colbgcolor=#fff0f0,#402020> 중부지방 | <colbgcolor=#f0f0ff,#1d1934> 남부지방 | 구분 | <colbgcolor=#f0f0f0,#2d2f34> 북부지방 | <colbgcolor=#fff0f0,#402020> 중부지방 | <colbgcolor=#f0f0ff,#1d1934> 남부지방 | |
123,214km² 한반도 면적의 55.1% 북한 면적의 100.0% | 45,362km² 한반도 면적의 20.3% 남한 면적의 45.2% | 55,087km² 한반도 면적의 24.6% 남한 면적의 54.8% | 면적 | 95,710km² 한반도 면적의 43.0% | 55,124km² 한반도 면적의 24.8% | 71,742km² 한반도 면적의 32.2% | |
26,160,821명[104] 한반도 인구의 33.8% 북한 인구의 100.0% | 33,105,080명 한반도 인구의 42.7% 남한 인구의 64.5% | 18,198,608명 한반도 인구의 23.5% 남한 인구의 35.5% | 인구 | 19,293,838명 한반도 인구의 25.5% | 33,016,251명 한반도 인구의 43.3% | 23,783,257명 한반도 인구의 31.2% | |
212.3명/km² | 729.8명/km² | 330.4명/km² | 인구 밀도 | 201.6명/km² | 598.9명/km² | 331.5명/km² | |
평양직할시 2,999,466명 | 서울특별시 9,386,705명 | 부산광역시 3,289,401명 | 최대 도시 | 평양시 2,538,450명 | 서울특별시 9,386,705명 | 부산광역시 3,289,401명 | |
평양직할시 남포특별시 나선특별시 개성특별시 강원도 황해북도 황해남도 평안북도 평안남도 함경북도 함경남도 자강도 양강도 |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경기도 강원특별자치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울산광역시 전북특별자치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제주특별자치도 | 지역 목록 | 평안북도 평안남도 함경북도 함경남도 |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경기도[105] 강원특별자치도[106] 황해도 |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대전광역시 울산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충청북도 충청남도 전북특별자치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제주특별자치도 | |
* 남한 지역의 면적과 인구는 각각 국토교통부 2023년 지적통계 및 행정안전부 2024년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 북한 지역의 면적과 인구는 각각 국가통계포털 및 조선중앙통계국 2008년 인구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
한국의 지리적으로나 대체적인 큰 구역은 (북부지방), (중부지방), (남부지방)으로 한국 자체가 동서는 짧고[107] 남북은 길다. 그래서 이렇게 3분하는 때가 많다. 그리고 남부 아닌 남해 상 도서지역인 제주도가 있다. 애초 이쪽은 본토와 크게 이질적이라 관점에 따라 한반도가 아닌 별도의 지역으로 보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때는 북선(함경도), 서선(평안도, 황해도), 중선(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남선(경상도, 전라도)으로 4등분도 했다. 북한의 경우 서북지방(평안도), 동북지방(함경도), 중부지방(경기도, 황해도, 강원도), 서남지방(충청도, 전라도), 동남지방(경상도)의 5개 지방으로 구분한다.
북부 지방은 만주나 연해주, 몽골, 베이징, 허베이 성 등과 비슷하고 중부 지방은 산둥이랑 비슷하며 남부 지방은 일본이나 남중국, 대만과 비슷하다. 연평균 기온으로 볼 때 제주도는 지중해의 코르시카나 사르데냐, 경상도와 전라도는 프랑스, 수도권과 충청도는 잉글랜드 남부, 강원도와 황해도는 독일, 평안도는 폴란드나 우크라이나, 함경도는 노르웨이나 스웨덴 정도와 비슷하다.
애초 고모령을 통과한 부산광역시부터는 아열대기후에 해당하며 식생 등이 이질적이다. 서울 등 경기지역 식생보단 오히려 상하이의 식생과 비슷해진다. 수도권의 경우는 칭다오 같은 산동이랑 기후가 비슷하여 식생도 비슷하다. 베이징 같은 하북 지역이나 만주, 몽골 등 북중국은 당연히 경기지역보다 춥고 건조하며 오히려 북부 지방이랑 유사하다. 참고로 북부 지방에는 냉대 내진 아한대기후답게 불곰이 살기도 한다.
7.3.1. 북부지방
북부지방은 대한민국 국가지도집에 따르면 북한이다. 평안도와 함경도는 냉대기후에 속한다. 전통적으로는 '중선'에 황해도를 포함하듯 황해도나 조선시대의 강원도는 중부지방에 넣는 경우가 많았고, 한국지리 교과에서는 황해도를 가로지르는 멸악산맥을 북부와 중부의 기준으로 삼는 기준을 알려주기도 한다. 예컨대 전통 가옥이나 기후적인 측면에서 멸악산맥 남부만 경기도와 같은 분류에 묶는 경우도 있다. 휴전선은 세 개의 도(황해도[108], 경기도, 강원도)를 갈라놓았고, 심지어 판문점 같이 마을 하나가 갈라지거나 태봉국 철원성 같이 유적 하나를 남북한으로 가르는 등 역사와 아무 관련이 없기에 분단 이전의 역사는 좀 다르게 볼 부분이 있다.분단 전까지 황해도는 중부지방으로 분류됐으며, 분단 이전 문헌을 보면 평안남도도 중부지방에 넣는 경우가 이따금씩 있었다. 그래서 황해도는 사람이 순박하다든지, 편하게 농사를 짓는다는 식으로 용맹하고 힘들이며 농사를 짓는 그 위쪽과 다르게 언급되기도 했다. 막걸리 같은 중부 이남의 식문화도 황해도에서는 잘 즐기기도 했다. 북한과 비슷한 구분도 없지는 않아서 황해, 평안, 함경을 묶어 삼북, 북삼도라고 부르기도 했고 관서와 해서를 합쳐 서북이라 통칭하기도 했다.
한편 차별대우를 운운하는 시각도 있으나, 조선 후기는 경향분기라고 하여 한양 출신 양반이 아니면 지방은 충청도든 전라도든 경상도든 모조리 밀려나고 신분차도 심한 시대였다. 경기권 바깥은 전부 한 번은 반역향으로 찍히거나 동학농민운동이니 임술농민봉기 같은 수많은 반발 움직임이 대표적인 예시다. 조선 초중기는 북방은 외침을 매우 심하게 받고 국경너머가 정세가 안정되지 못해 성장이 더뎠던 것이고, 조선 후기 들어 북방이 안정되어 무역이 원활해지고 감자 등을 들여오거나 광업이 쉬워져 경제적으로 발전하며 정치적 문제가 수면위에 떠오른 것이다. 심지어 구한말에는 평양을 제2의 수도로 삼으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차별과 관련된 양반 분포의 경우에는 이승만과 같은 황해도 출신 인사가 기호파를 자처하면서 기호 지방 문서에서 보듯 황해도 출신 백두진 재무장관 등을 아꼈다.
사상가인 함석헌은 자신이 평안도 출신인 '상놈'임을 낡은 계층의식이 없는 것이라며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대한민국에서는 오히려 구체제의 모순에서 벗어난 측면도 있어 이 특성을 바탕으로 월남 후 대한민국의 혁신과 근대화를 이끈 인물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 사실 오지인 함경도마저 이성계와 연관이 깊어 조선8도는 누구도 역사성을 온전히 무시하지는 못했다. 한국인들에게 이 지역의 문화 요소도 북한에서 유래됨은 몰라도 장화홍련전, '하나님'이라는 개신교의 용어, 벽창호, '영변의 약산', 삼수갑산, 북어, 함흥차사 등 잘 알려진 요소가 적지 않다. 오래 전부터 송시열 같은 삼남 출신도 평양 출신인 선우협의 비문을 써주고, 금오신화에서는 대동강의 부벽루도 묘사되고는 했으며, 용비어천가에는 함경도 북부의 지명이 묘사되기도 했다. 감자, 콩 같은 작물도 이 지역을 거쳐 유입되었고, 아예 만주어를 거쳐 수입된 '엉터리', '선지'와 같은 어휘도 이곳을 거쳐 남쪽으로 퍼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황해도는 본관의 경우 연안 이씨, 평산 신씨처럼 삼정승을 배출하는 가문이 많았고 율곡 이이의 종가 등이 있다. 황해도도 구월산이라는 단군의 도읍이 있었다는 말이 있는 산이나, 심청전 같은 이야기로 현대 한국인에게 유명한데 북한에 있다는 곳은 김소월의 시 같은 북한 땅과 관련된 문화 유산을 파괴하는 김정은과 전혀 관련이 없는 역사마저 비하받는 경향이 심하여 중국의 문화공정의 먹잇감이 되고는 한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함경도 문화인 떡구유, 강원도와 함경도의 과즐이라는 한과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중국 문화냐고 하는 비극이 있었을 정도다. 분단 전 평양의 경우 아예 비문화적이고 기형적인 상업도시라며 북한이 더 싫어한다. 북한이 세워질 적 김일성의 무리는 북한에서 소수였다. 김일성은 그냥 소련이 밀어주었을 뿐이다. 평양에서 왔음을 자처하는 한국 숭실대학교 등지에서 기념되는 우파 성향의 조만식 같은 사람이 가장 명망이 높은 정치인이었다. 그리고 남한에서도 김일성의 하류층 대상의 꾀임에 넘어가 6.25전쟁 당시 같은 마을 사람끼리도 서로 죽이는 경우도 흔했다. 분단 전 북한에 해당하는 지역은 그냥 전라도, 경상도 같은 곳과 인식이 비슷해서 가루지기 같은 작품에서는 아예 평안도 여자와 전라도 남자가 사랑을 하는 것이 주된 내용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문화라든가 기후 면에서 일제강점기에 '북선'과 '서선'으로 구분되듯 평안도와 함경도의 차이가 심하다. 공통점이라면 외부의 적에 용맹하게 대응한다는 이미지가 있었고[109], 양반과 노비가 모두 드물어 대체로 사람들끼리 신분이 평등했다는 것이다. 고조선부터 시작하여 백두산과 평양 때문에 한민족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고, 조선 후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는 상업이 발전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의 잡지인 '별건곤'에서는 평안도의 '색향'[110]에 대한 이미지와 함경도 여성의 장사를 잘하는 모습을 설명하기도 한다. # 평안남도를 제외하면 평균적으로 키가 크기도 했다. 장준하, 백선엽, 주현, 시인 백석과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고 평안남도 출신이지만 야구감독 김응용도 있다.
그러나 음식의 경우 평안도는 싱거우나 함경도는 맵고 짠 음식도 많으며, 식생도 중부지방 느낌이 어느 정도 나는 평안도에 비해 함경도는 종비나무 같은 나무를 보면 이국적인 느낌이 난다. 사투리의 차이도 어휘와 억양 차가 심해 처음 듣는 사람도 구분이 가능해 흔한 북한말의 이미지는 평안도 말투고, 함경도 말투는 요즘으로 따지면 경상도에 비유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함경도의 민요는 평안도의 것보다는 강원도나 경상도의 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이런 지방의 민요와 더불어 '동부민요'로 묶는 것이 일반적이다. 화법도 예절을 중시하고 거절을 바로 잘 못하는 평안도와 달리 함경도는 솔직함을 중시하고 직설적이다. 소련이 영향을 행사하기 전 해방 직후까지는 정치성향도 정반대여서 평안도는 우파가 득세했고, 함경도는 좌파가 우세했다. 참고로 황해도는 중립적이었다고 한다. 사실 이 두 지방만 떼고 보면 동서로 상당한 거리 차가 있어 평양과 라선의 거리가 평양과 전라남도 해남의 거리와 비슷할 정도다.
역사적으로 북부지방을 얘기할 땐 백두산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면 십중팔구 평안도 이야기다. 사실 역사의 초창기에는 평안도 일대는 남만주 지역과 더불어 한민족의 중심지였다. 고조선이 나타난 곳도 논란은 많지만, 현재는 대체로 랴오닝강~평양 사이를 중심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고구려 시기에는 역사 내내 중심을 차지하던 지역으로, 국내성조차 압록강을 마주보고 현재는 만포시, 강계시와 붙어있다. 농토가 풍부하고 여러 정치적 이유로 평양으로 수도를 이전, 이후 250여년간 수도의 지위를 유지도 했다. 특히 고구려의 경우 삼국 중에서도 압도적인 국력을 가진 한민족의 대표주자였기 때문에 고구려 후기 시대의 평안도는 진정 전성기였다.
그러나 고구려 이후 한국 역사에서는 최고 중심지 위치에서는 밀려나고 제2, 제3의 지역으로 바뀐다. 이는 요동의 상실로 인해 평안도가 대북방의 최전선이 되어버려 더 이상 한반도 정주 국가의 중심지로서 기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려시대에는 고구려의 수도라는 점에서 크게 중시되었고 제2의 수도 서경으로 대접받았으며, 조선시대에도 여기에 기자의 봉토라는 인식까지 이어져 평양은 조선 제2의 도시로 군림할 수 있었다. 평안북도 의주군도 국경에 위치했기 때문에 중국과의 교역지라는 이점을 살려 경제적으로는 굉장히 번성하기도 했다. 현대에도 일제강점기에 신의주시가 그 기능을 맡아 북한에서 평양에 비슷한 수준으로 잘 산다. 다만 다른 곳은 소위 '밀무역'을 비롯한 여러 유형의 무역을 차단하는 경우가 흔해서 북한 치하에서 국경도시가 고난의 행군 무렵을 제외하고는 신의주, 라선을 빼면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다만 정치적으로는 중부, 남부 지방과 달리 당파를 형성하지 못해 조선 중기 이후부터 구한말까지 중앙권력에서 소외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함경도는 역사의 중심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111] 강원도에도 궁예의 태봉국 철원성이 있었고 마찬가지로 수도가 없었던 황해도도 고려시대에 수도권의 배후지 역할을 했고 고구려 제2의 수도인 한성이 있었으며 평양을 수도로 한 국가의 배후지이기도 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함경도의 입지가 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평안도가 발전하던 시기에도 정조가 함경도는 평안·황해도처럼 재화가 풍부한 것도 아니고 삼남 지방처럼 벼와 솜이 풍부하지도 않다며 위로할 정도였다. # 심지어 북간도조차 발해시대 수도가 위치해 한때 크게 번영했었다. 그래도 한민족과 여진족의 성산인 백두산이 위치해있어 상징성 부분에서 의미가 있다. 근대에는 탈북민, 조선족, 고려인의 대부분의 고향이나 기원이 함경도이기에 주목받기도 한다. 2000년대까지는 실향민이 많은 평안도가 이 지역을 대표하여 북한 사람이 모두 '네다'라는 평안도 사투리만 쓰는 줄 알고 싱거운 음식만 먹는다는 등 오해가 있었으나 그 이후에는 탈북민, 조선족의 영향으로 'ㅁ까'라는 함경북도 사투리와 평안도 사투리가 섞인 묘사가 등장하는 등 다른 오해가 생기고 있다. 사실 함경북도는 '네다'를 안 쓰고, 평안도는 'ㅁ까'를 쓰지 않으니 구분을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함경도가 나오는 건 동예와 옥저와 말갈 언급할 때 정도며, 그 외 윤관의 동북 9성이나 세종대왕의 4군 6진 개척 때나 가끔씩 나오는 정도. 오히려 국어 교과에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들어 충청도 인구에 육박하게 되는 경제적 발전으로 이곳 출신 예술인이나 그 작품이 언급되는 정도다. 그 전에는 8도에서 가장 인구가 적었다. 삼수갑산 같은 극한의 오지에서도 해모수와 관련된 전설이 있기는 하고 나름 역사가 있긴 해도 분단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면도 있다. 이성계 가문이 함흥을 중심으로 세력을 길러 조선을 건국하긴 했지만 수도가 된 적은 없다. 게다가 태조의 출신지라는 위상도 얼마 안 있어 바닥을 뚫고 떨어져버리는데, 조선 초에 연달아 발생한 여러 반란들 때문에 함경도 전역이 반역향으로 찍혔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사건이 국경인의 난으로, 아예 왕자 두 명을 일본 장수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겼다는 이유로 조정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정약용도 이 사건을 들며 함경도에 대해 좋지 않은 서술을 남겼다. 평안도는 기자가 도읍한 곳이라고 하여 중화의 문명을 일찍이 받아들인 곳이라고 인식되었으나, 함경도는 여진의 유습이 남아있다는 인식도 있었다. 고려 때부터 이미 강동6주의 편입을 통해 4군 일대를 제외한 전역이 고유 영토로 인식된 평안도와 달리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지기 전에는 함경도 주민을 제외하면 조선의 영토는 맞으나 '고유' 영토라는 인식도 비교적 낮았고 여진으로부터 수복한 '점령지'라는 인식이 강했다. 또한 함경도의 전 주인인 여진족은 조선으로부터 야만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더욱 천대받기 일쑤였다.
이에 함경도 주민은 제대로 된 조선인임을 인정받기 위해 함경도가 조선 왕조의 중요한 근거지임을 알리려 했고, 지역 반란이 있었다 해도 지역민들이 봉기하여 주모자들을 처단했음을 부각시켰다. 이시애는 토호는 맞지만, 국경인의 난에서 국경인은 전라도 출신으로 유배되었으나 자신이 진압했다는 것이다. 또한 단군과 기자 이래 조선의 고유한 영역이었다고 주장했다. 변경지대라는 특성 때문에 고착된 무예에 능한 사람들이 주로 산다는 궁마지향이라는 관념을 극복하기 위해 지역마다 중앙의 주요 학자들과 학맥이 이어진 문학지사들이 있는 유교적으로 교화된 곳이라 강조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중국과 대항한 고구려·발해의 문화권과 연관된 백두산이 중시되는 분위기에 편승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영·정조 시기 조정이 함경도 지역의 왕실 유적을 현창[112]하는 분위기와 맞물려 왕실과 관련된 비석 등을 세우도록 요청했다. #
조선초 북부 지방 지명 중에는 대놓고 변방임을 드러내는 지명들도 보인다. 안변(安邊), 영원(寧遠), 삭주(朔州), 강계(江界) 등. 함경북도 지역은 조선 초 4군 6진 개척 등 여진족 정벌을 통해 얻은 영토이기에, 기존 여진식 지명을 조선식 지명으로 개칭하거나 아예 새로 지은 지명이 많다. 다만 현지에서는 여진족과의 관계는 한민족이 이들을 밀어냈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한국 배우 이순재는 두만강변 회령시에서 태어났는데 자기 조상이 6진을 개척했다고 믿는다. 일제강점기에도 나운규 등 문화적으로 유명한 사람도 있었다.
그래봤자 함경도는 애초에 명문가가 부재했고 평안도 역시 명문가가 이미 여말선초 이후로 홍건적의 난 같은 외침 등으로 초토화되어 거의 사라졌기에 조선 건국 무렵 평양 출신 조준까지만 영의정이 되고 그 후손은 능력이 없어 중앙 진출이 사실상 막혀 있었다. 조선 후기에 평안도 출신 인물들이 과거에 많이 급제하나 예전부터 내려온 명문가가 없어 승진을 못하는 결과적 차별이 이어졌고, 이것에 대한 불만의 터진 예가 바로 홍경래의 난이다. 하지만 조선의 체제 내에서도 개혁하려는 거상으로 불린 임상옥 같은 인물도 있어 '충효'를 내세우며 조정 입장의 홍경래의 '반란군'을 제압하는 의병을 모집하기도 했다. 그는 중인치고는 종3품 도호부사까지 올라가는 출세를 하여 조선 전역의 비슷한 신분끼리 두고 보면 매우 성공한 부류였으나 '경향분기'라는 흐름 속 한양 위주의 명문가가 권력을 독차지하는 판국에 그는 명문가는 아니었기에 한계가 분명했다. 임상옥이 다른 지방의 비슷한 신분보다도 출세했듯 평안도 출신 그 자체로 차별한 건 아니지만, 한양 명문가에 비하면 차별받을 신분이 많던 것이다. 평안도는 돈을 조선에서 가장 잘 버는 지역이었기에 이렇게 문벌이 낮은 사람들이 갑부가 되면 임일권, 오일순 같이 돈으로 지방 군수 같은 신분을 사는 경우도 있었다.
그 때문에 조선 왕조에 대한 적대감이 강했다. 다만 양반이 아닌 사람 끼리는 지역 구분 없이 어울리는 편이었다. 차별은 '상놈'이기에 받은 것이다. 애시당초에 평안도와 함경도 북부는 조선시대 들어 삼남 지방 출신이 개척한 곳이다. 죄다 북한에 있고 여기서 살았던 실향민도 거의 세상을 떠났으며, 북한도 실질적으로 전통을 중시하지 않아 정보가 부족해, 현재적 관점에서 지역차별을 언급하는 주장이 인터넷에 상당히 많다. 그러나 함석헌 같은 3.1운동을 기억하는 수준의 고령층 실향민 등의 발언이나 독립운동사, 일제강점기 이 지역 출신 인사 등의 행적으로 미루어 보면 단지 이 지역 출신은 신분이 천하다는 이유로 이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차별받은 것이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서로 동조하고 잘 어울렸다. 이런 모습은 가루지기 같은 작품이나 동학농민운동과 같은 움직임에도 호응하는 모습에서 나타난다. 홍경래의 난에서 자주 인용되던 정감록은 길한 곳으로 강원도나 그 남쪽의 지역을 언급한다. 실제 차별을 아는 사람인 함석헌의 증언은 이 글을 참조하자. "평안도 쌍놈이다 해서 차별대우하던 데에서도 임금이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성을 향해서 며칠을 두고 통곡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그러나 일반적으로 봐서 임금이 고맙다, 우리 임금이다 하는 그런 건 없었지요."라지만 여기도 고종 독살설 등으로 분개하여 3.1운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조선은 신분 갈등이 더 컸지 지역 갈등은 서로의 역사성을 인정하기에 부수적인 문제였다. 그 함경도도 북부는 조선 왕조의 의지로 새로 얻은 곳이다. 분단이 되기 직전까지는 평안도 쪽이 우파가 득세하고, 함경도의 좌파는 수많은 인물들이 훗날 김일성에 의해 숙청 당하는 등 전혀 지금과 같은 분단을 예상하지 못했으며, 한국 전쟁 때도 이곳을 대한민국이 차지하여 통일을 하려다가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평안도는 아예 분단 직후에는 신의주 반공학생사건처럼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 시위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경성과 평양 축구팀이 상당한 라이벌이었는데 이건 그냥 평양이 큰 도시일 뿐이라 과거에는 민족화합, 현대에는 남북화합의 수단으로 인식된다. 괜히 경평전 부활이 남북교류 과정에서 언급되는 것이 아니다. 이건 조선일보가 주최한 대회인데 "조선의 양대 도회인 평양과 경성 두 도시의 친목을 위하여 실로 축복하여 마지 않는다"라는 안재홍 부사장의 언급이 있어 친목을 위한 대회라는 언급이 있다. # 실제 경평전 참가자는 민족 단합을 위해 경기가 주최되었다고 한다. # 마라토너 손기정 같은 평안도 출신도 경기도 출신의 심훈 등과 인연을 이어 현재 그 후손까지 잘 지낸다.
상해임시정부에서도 대립이 있었는데 이것도 결국 신분별로 모인 것이라 여운형 같은 신분 의식이 없는 사람은 경기권 출신 양반이었으나 평안도 출신인 안창호와 잘 지냈다.
평안도의 경우 조선 후기 중국(청나라)과 교류하는 길목이었기에, 무역을 통한 상업이 발달하기도 했다. 한양, 개성, 더 포함한다면 동래를 제외한 중부와 남부지방보다 더 상업이 번성했다고 평가받았다. 이 지역이 발전하던 시기는 전부 무역을 활발히 하던 시기였다. 상업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해방 직전까지 남아 있다고 할 정도다. 실향민도 이곳 출신은 공산주의가 싫어 월남한 면도 크지만 리버럴한 성향이 있다고 할 정도다.
18세기의 택리지에서는 “부유한 상인이나 큰 장사치는 앉아서 재화(財貨)를 움직여 남쪽으로는 일본과 통하며 북쪽으로는 연경(燕京)과 통한다. 여러 해 동안 천하의 물자를 끌어들여 더러는 수백만 금의 재물을 모은 자들도 있다. 이런 자는 한양에 많이 있고, 다음은 개성이며, 또 다음은 평양과 안주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고, 19세기의 임원경제지에서는 "남으로는 일본, 북으로는 중국과 무역을 해서 수백만 금을 벌어들인 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한양에 가장 많고 다음이 개성이며, 그다음은 영남의 동래와 밀양 그리고 관서의 의주·안주·평양에 많다. 그 모두가 남북을 연결하는 통로상에 있어 국내 상업보다 배의 이익을 얻고 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
그러나 무역을 세계에서 유례없이 기피하는 북한 정권이 들어서며 이 지역은 크게 몰락하게 된다. 현재의 북한도 수출중심 정책을 펴야 성장할 수 있으나 자력갱생 강조와 같은 정반대의 정책을 펴서 경제적으로 큰 폐단을 낳게 된 것이다. 농업으로만 먹고 살기에는 청천강 상류 일대를 제외하면 소우지라 평안도도 '진압농법'으로 수분 증발을 막아야 벼농사가 제대로 될 정도였는데, 아래와 같은 이유가 있다.
신의주~철원을 잇는 선의 이북은 너무 춥고 산이 많아 농사를 잘 못하니 인구밀도가 낮은 편이다. 평안남도는 좀 예외지만... 개마고원과 중강진은 특히 악명이 높아서 쌀 농사를 못할 정도며, 해안을 빼면 연간 최저기온이 -2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지역이 없다.[113][114] 심지어 10월이나 5월에도 눈이 오는 지역이 다반사다. 북부지역에서 가장 발달하고 온난한 남포 앞바다가 겨울이면 꽁꽁 얼 정도이니[115]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남한에서 겨울에 바다가 어는 것은 혹한이 올 때나 가끔 강화도-인천 앞바다가 어는 정도임을 감안하면 얼마나 추운 곳인지 잘 알 것이다. 게다가 함경도 지역은 평안도와 비교하면 그 곳에서 가장 적은 연강수량을 기록하는 대동강 하류가 800~900mm인데 반해 강수량이 매우 적어 함흥 남쪽을 제외하고 베이징 수준의 600mm 가량의 비가 온다. 조선시대에는 함경도는 수렵이나 인삼 채취, 북어 잡이, 광산 등으로 생계를 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공업으로 먹고 사는 지역이었다. 그나마 이 지역은 흥남에 세계 3위 규모의 거대한 비료공장이 들어서고, 무산 등지의 광업도 활성화 되었으며, 러시아와의 무역도 가능해지며 일제강점기에는 경제적인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흔히 춥다는 관념이 많지만, 강원 영서와 평안남도가 비슷한 수준이고 동부전선 고지 근처는 개마고원을 제외한 평안북도 산간과 비슷하다. 인구의 대부분은 당연히 그나마 기온이 견딜만한 수준인 곳에서 살며, 현대 북한에서도 개마고원은 추운 곳으로 손꼽힌다. 혜산이 그나마 크지만 평안도의 도시들에 비하면 작은 편이다. 평양과 신의주의 1월 평균 기온은 -5.5 ℃, -7.2 ℃로 남한에서 평균 기온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제천(-5.2 ℃), 철원(-5.7 ℃), 평창(-6.9 ℃)과 비슷한 수준이고, 김화(-7.9 ℃), 임남(-9.7 ℃)보다는 살짝 높다. 각각의 최저기온은 평양 -30.2 ℃, 신의주 -26.0 ℃, 평창 -28.9 ℃, 철원 -29.2 ℃로 오히려 평양이 더 낮다.[116] 연평균기온은 평양 11.0 ℃, 신의주 9.1 ℃로, 철원(10.3 ℃), 평창(7.1℃)보다는 높지만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정도이고, 서울(12.8 ℃)에 비하면 확실히 낮은 편이다. 개마고원 일대는 한반도에서 기후와 식생, 지형이 유달리 이질적인 지역이다. 로저 셰퍼드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평안도의 산세는 남한과 비슷하나 개마고원의 차이가 심하다고 언급했다.
함경도 동해안 지역은 서쪽의 평안도, 남만주의 동위도 지역들과 비교하면 비교적 따뜻하지만, 아무래도 남한보다는 위도가 높은 탓에 좀 춥다. 한반도 북부를 통틀어 가장 따뜻한 원산의 1월 평균 온도가 -1.8 ℃로 서울과 비슷한 수준이며, 함흥(-5.5 ℃), 청진(-6.5 ℃), 나선(-7.1 ℃)은 중부 지방보다는 확실히 춥다.
이 때문에 한국 전쟁에서 미군은 근현대 들어 난생 겪어보지도 못한 동한기 전투를 한반도에서 치렀다. 특히 1950년 연말에 미국과 중국이 치른 장진호 전투는 기념비적인 동한기 전투로, 전사한 미군/중공군보다 얼어죽은 미군/중국군이 더 많았다. 이 지역은 너무 추워서 러시아와 견줄 만하거나, 그 이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평안도는 조선 후기 쯤 되면 충청도의 인구를 앞질러서 8도 중 전라도와 더불어 2~3위의 인구를 기록했으며, 함경도도 충청도의 인구를 따라잡기도 했다. 이곳이 경제적으로 주로 발전하던 시기는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다. 일제강점기에는 평안도는 경의선 일대의 도시가 새로 발전하여 의주 같은 기존 전통 도시가 몰락했고 남포라든가 함경도의 여러 도시처럼 인천의 제물포와 비슷한 성장 과정을 거친 경우도 있다. 남남북녀라든가 북청 물장수, 명태의 고장 같은 여러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오지만 분단으로 인해 일부를 제외하고 그 존재감이 매우 낮아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원래의 인구도 제법 있었으나 도시화율도 높았기에 도시의 규모가 세간의 인식에 비해 컸다. 인구 순으로 따지면 평양이 2위, 청진이 6위, 흥남이 7위, 신의주가 8위, 원산이 9위, 함흥이 10위로 11위인 전남 광주, 14위인 충남 대전보다 인구가 많았다. 지금의 북한이 관리하듯 흥남과 함흥을 하나의 시로 합치면 대구급의 인구가 된다. #
현재 주요 도시로는 평양시, 함흥시, 청진시, 신의주시, 남포시, 개성시, 해주시, 사리원시, 안주시, 강계시, 나진시, 원산시, 송림시, 혜산시 등이 있다.
이 지역에 자원이 많아 일제강점기 한반도 유수의 공업지역으로 발돋움도 했다. 연은분리법이 처음 고안된 곳이 함경도의 단천이다. 만약 분단이 없었으면 강원도 태백시, 삼척시를 보면 북부의 엄청난 광물자원을 토대로 80년대까지는 전국에서 알아주는 공업단지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신 냉전 때문에 1990년대까지는 소련 때문에 발전이 더뎌진 일본 도호쿠, 홋카이도 등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성장이 제약되고 수도권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가 나타날 가능성도 높다. 대강 평양은 90년대까지는 부산과 대구 사이의 경제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으며, 중국의 개혁 개방이 있어야 현재보다 더 상황이 나은 만주와 연계된 일본 도호쿠나 홋카이도 이상의 경제 성장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 수도권의 경제력을 더 높여 경기 북부가 경기 남부에 비견되는 성장을 이룩하여 도쿄권 다음의 경제력을 가진 도시권이 수도권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북한의 광물자원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존재한다. 물론 캘 자원이 없는 상황을 대비하자는 주장은 타당하겠지만, 콩고민주공화국[117] 마냥 자원이 많아도 광업 기술력 부족과 독점으로 가난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영월군의 상동광산처럼 시대에 따라 경제성이 없다가 2020년대 들어 다시 주목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상동광산도 캐나다 업체가 광업권을 가져 돈이 한국에 제대로 흘러가지 않는 등 광업으로 돈을 버는 문제는 상당히 복잡하다. # 북한의 폐쇄성, 기술 부족 때문에 어떤 자원이 있는지는 북한 당국도 자세히는 모를 것이다.
7.3.2. 중부지방
중부지방은 대한민국 국가지도집 기준 수도권, 강원특별자치도, 충청도다. 다만 충청도는 삼남과 같은 분류에서는 더 남쪽의 전라도와 경상도와 묶이기도 했으며, 충청도의 차령산맥이 중부와 남부의 경계라는 시각도 있다.중부지방 역시 인천 이남 서해안과 서울, 경기남서부, 강원도 영동지역만 온대기후에 속하고 나머지 지역은 대부분 냉대기후에 속한다. 그래서 폭염, 폭설, 혹한, 가뭄, 수해 등 기후에 관련된 재해들은 거의 항상 북부와 같이 따라다닌다. 북부에 혹한이 찾아오면 중부지역도 어김없이 혹한이 찾아오고, 가뭄이 들면 똑같이 가뭄으로 몸살을 앓는다. 당장 강추위로 유명했던 2010년 겨울엔 혜산이 -40도를 찍었다는 비공식 기록이 있었는데, 철베리아 짤방으로 유명한 딱 그 시점이었다.
그리고 2015년 전례가 없는 대가뭄조차 한반도 중북부가 같이 따라가고 있다. 원래 강수량이 적은 북부가 조금 더 심하지만 이쪽도 만만찮은데, 남부지방은 간간히 비가 내려서 매우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작물에 있어서도 경기도 일부에서 재배 가능한 포도, 복숭아 정도를 제외하면 중부와 북부는 별 차이가 없다. 다만 개마고원에는 또다른 신세계가 펼쳐지므로 여기는 예외.
다만 강원도(영서)의 경우 지리적, 기후적으로는 중부보다는 북부와 가까운 성격을 보이는 것이 많다. 두메산골이 워낙 많기 때문으로, 겨울 기온도 평양보다 추운 곳이 있을 정도다. 물론 영동의 경우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함경도와 경상북도 동해안 외에는 묶을 곳이 없을 정도로 한반도의 그 어떤 곳과도 다른 기후 분포를 보인다. 딱히 중, 남, 북부라는 카테고리로 서술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삼국시대에는 오랜시간 백제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고구려가 강해지고 백제의 국력이 약해지면서 백제-고구려-신라로 이어지는 주도권 싸움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무척 치열해졌다.[118] 통일신라시대에는 수도 서라벌에서 멀었기 때문에 다시 변방으로 떨어졌지만 중국과의 무역에선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이러한 경제력을 발판으로 송악(개성)의 토호였던 왕건이 고려를 세웠다. 후삼국을 고려가 통일한 이래 지금까지 1100년을 역사의 중심에 있는 지역으로서, 개성과 서울 모두 중부지방에 있고 60km 정도 밖에 안 떨어져 무척 가깝다.
현재도 정치적 중요성은 어디 떨어지지 않고 있다. 서울특별시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휴전선이 중부지방의 한복판을 관통하는 것만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 중부지역에 한반도 전체 인구의 40%가 몰려있으며, 이 중 80% 이상이 수도권 지역에 몰려있기도 하다.[119]
주요 도시로는 서울, 인천, 대전, 수원, 원주, 춘천, 강릉, 고양, 성남, 용인, 의정부, 평택, 안양, 부천, 안산, 천안, 청주 등이 있다. 인구가 몰려있는 중부 지역답게 도시도 많고,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위성도시가 상당히 발달했다.
강원도는 태백산맥을 경계로 영동과 영서의 생활방식이 완전히 달라 사실상 남남과 마찬가지로, 같은 지역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는 곳이 상당히 많다.
7.3.3. 남부지방
남부지방은 경상도, 전라도, 제주특별자치도다. 행정구역은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울산광역시, 경상북도, 경상남도, 전북특별자치도, 전라남도, 제주특별자치도로 나뉜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같은 남부지방이여도 사회, 문화, 정치, 역사, 자연 등 여러 분야에서 다른 지역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이질적인 특징을 보인다.해양 및 열대성 기단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지라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온대기후(영하 3°C 기준)가 주를 이루는 곳이다. 냉대기후는 경상북도의 일부 산악 지역 등 매우 제한적인 곳에서만 나타난다.
지리적으로 북부, 중부와는 기후가 상당히 달라서, 충청 이남과 수도권 이북은 큰 차이를 보일 때가 많다. 경상도 상당수 지역과 전라도 남해안은 눈 구경하기도 힘들 정도고[120], 여름에는 거의 매년 태풍과 수해, 폭염 피해를 심하게 입는다. 그러나 가뭄 피해는 적은 편이어서, 중부와 북부에서는 한 번 시작되면 농사를 포기할 정도로 심각해지는 가뭄은 남부지방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하여 예부터 서울 사람이 평양에 가면 크게 다른 점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서울 사람이 대구, 부산에 가면 다른 나라에 온 것 같다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이 때문에 한반도에선 오로지 남부에서만 재배가 가능한 작물이 상당히 많다. 대나무를 비롯해 고구마, 녹차, 감귤 등등 상당수의 작물들을 충청 이남에서만 볼 수 있다.[121]
가장 축복 받은 기후 덕택에 전근대 사회에서는 예부터 가장 부유하고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었다. 인구의 경우 북부와 만주로의 인구 이동이 심화된 일제강점기 말기에도 한반도 인구의 50%가 삼남지방에 몰려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전라도와 경상도 농촌의 이촌향도로 인구가 줄었지만, 그래도 부산, 대구, 울산, 창원, 포항, 김해, 양산, 구미, 거제, 경산, 진주, 안동, 경주 등 경상도 대도시권 내의 도시들의 경우 수도권 못지 않게 밀집되어 있으며 위성도시도 많이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농촌 인구만 놓고 보면 여전히 남부로 갈수록 인구밀도가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경제적으로는 호남평야를 낀 전라도가 가장 부유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고려부터 조선 후기까지 세수의 1/3 이상이 전라도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122]
역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 중요한 지역 중 하나였다. 지리적 입지가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기후가 좋아서 작물 생산량도 많고 사람도 많이 사는 만큼 지역 토착 세력의 위세가 상당히 드센 곳이었고, 그를 바탕으로 지역 유지들이 중앙 정치에서 강한 입김을 많이 내뿜었다. 신라 때는 천 년 동안 수도가 경주였으므로 말할 필요가 없고,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정치는 중부지역에서 하지만 사실상 남부지방의 유지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할 정도였다. 고려 초중기 서경, 서해도 세력과, 조선 후기 경기출신이 장악하던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남부지역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오랫동안 불피웠고 이는 대한민국이 들어선 지금도 마찬가지. 초대~3대 대통령(이승만), 4대 대통령(윤보선), 10대 대통령(최규하), 20대 대통령(윤석열)을 뺀 모든 대통령이 남부지방 출신임을 생각하면 수도만 중부지역에 세워놓고 남쪽 사람들이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건 여전하다.
주요 도시로는 부산, 대구, 광주, 울산, 창원, 전주, 포항, 김해, 양산, 여수, 순천, 광양, 안동, 구미, 진주, 거제, 경산, 목포, 제주 등이 있다. 전통 도시가 가장 많았던 지역이지만 정작 천 년이 넘게 지역 중심지였던 다수의 도시들은 몰락하고 동남부 해안과 경부축을 중심으로 도시 분포가 상당히 바뀐 상황이다. 같은 지방이라도 소득 불평등이 매우 심한 지역 중 하나로서, 남동임해공업단지가 몰린 경상도 해안지역과 경부선 인근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반면 경북 북부 일대와 전라도 쪽은 도시 풍경이 1980~90년대에서 멈춘 곳이 상당히 많을 정도로 상당히 낙후되었다.
7.4. 사실상 섬
우주에서 본 한반도의 밤 심지어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은 그나마 빛이 있는데 북한 쪽은 평양을 제외하면 원산, 함흥, 라선 등 몇 군데 없어서 정말 섬처럼 보인다.고대와 중세의 중동과 서양에서는 한반도 중남부를 섬이라고 인식했다. 남북국시대와 고려 시대에 왔던 이슬람 상인들도, 개항기 프랑스 지도 등에도 그랬고. 예를 들면 알 이드리시의 세계지도에서 통일신라가 여러 개의 섬으로 그려져 있고, 쿠시나메에서도 통일신라가 6개의 섬으로 된 나라라고 전해졌으며, 1636년작인 테세이라의 일본전도에서도 한반도가 섬으로 잘못 그려져 있다.[123]
이것은 주로 이들이 북쪽 육로를 이용하지 않고 동중국해를 항해해 한반도 해안에 도착한 후 남도에서 교역하고 갔기 때문이다. 배 타고 오가는 나라로 인식했고 북부지방에 대한 인식은 희박한데다, 한국과 중국의 국경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이 백두산을 경계로 거의 붙어 있는 것으로 묘사하다 보니 해협으로 오해받아 그렇게 인식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섬에 가까운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역사적으로 대륙세력의 침공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이기도 했다. 다만 대륙세력의 침공으로부터는 안전해도 해양세력의 위협에서 안전한 것은 아닌데 실제로 섬나라나 반도 국가들은 가장 먼저 서양 해양세력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쿠바, 히스파니올라 섬, 필리핀처럼 일찍부터 식민지가 되어버린 경우도 많았다. 물론 한반도는 20세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해양세력의 침공으로부터도 안전한 편이었는데 당연히 이는 한반도가 섬에 가깝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일단 한반도 자체가 유럽과는 완전히 정반대편인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위치해서 거리 자체가 너무 멀었고 또 일본 열도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형태라 해양세력이 들어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지리적 요건은 양날의 검으로서 서양세력과도 계속 교류를 한 중국, 일본과는 달리 조선이 해양세력과 교류를 하는 것을 늦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일례로 데지마를 통해 네덜란드로부터 국제정세(아편전쟁 등)에 대한 정보를 얻어 쿠로후네 사건 당시 빠르게 개항을 결정한 일본과 달리 이러한 정보를 얻을 통로를 명나라, 청나라에 간접적으로 얻어야했던 조선은[124] 일본보다 개항이 늦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섬에 가까운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해양세력이 들어오기 불리한 지정학적 측면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현재 남한은 자연지리적으로는 분명히 반도이지만 북한 때문에 육지를 통해 다른 나라로 못 간다. 그리고 북한도 들어가기조차 어렵고[125], 나가는 것은 아예 김정일이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고 하던지라... 현재 인문지리적으로는 섬의 성격이기도 하다. 북한에서는 자신이 통치하는 영역 전역을 둘러싸는 장벽[126]을 둘렀고, 위성 사진으로 확인 가능하다. 특수한 때를 빼면 외국으로 나갈 때 비행기나 배를 써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한 북한도 대부분의 주민이 해외여행의 자유가 없으며 러시아 극동에서 중국으로 유입되는 호랑이나 표범등의 맹수류도 북한으로 유입이 쉽지 않은 상태이다. 사실상의 섬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참고로 이런 특성은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특이한 경우이다.[127] 이런 불편은 남북통일 등의 정치적 격변 전까지 지속될 것이다.
8. 한반도의 역사
자세한 내용은 한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한반도 북부의 예맥족과 한반도 중남부의 한(韓)족이 자리를 잡아 주권을 행사해왔으며, 한국 최초의 왕조인 단군조선 이래 역사적으로 많은 한국의 왕조가 존재했다.
고대에 신라와 발해의 남북국시대가 막을 내리고 고려의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이래 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통일왕조를 이룩했으나 근대에 이르러 마지막 한국의 왕조국가인 대한제국이 외세에 강제 병합되어 멸망하고 이후 40여년에 이르는 혼란기를 거치면서 통일정부 수립에 실패하여 현대 한반도에는 KOREA라는 공동 영문명으로 사실상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고 있다.
단일 통일국가는 볼드체로 표기.
8.1. 상고 - 후삼국시대
- 고조선
- 진국
- 부여[128]
- 대방군
- 낙랑군
- 한나라
- 진번군
- 임둔군
- 현도군[129]
- 옥저
- 동예
- 고구려
- 마한
- 백제
- 진한
- 신라[130]
- 변한
- 가야
- 발해
- 후고구려(마진, 태봉)
- 후백제
- 탐라(제주도)[섬]
- 우산(울릉도, 독도)[섬]
- 번외 - 여수전쟁 때 수나라는 한반도 북부까지 일시 점령했지만 고구려군의 거센 저항으로 결국 철수했다. 당나라도 신라와의 연합으로 간신히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웅진도독부와 안동도호부를 두고 한반도 지배를 시도했다. 하지만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당나라도 국력을 상당수 소진한 상태였고, 국제정세도 변동한데다가 나당전쟁까지 패배하면서 결국 한반도를 완전히 지배하는데 실패했다. 당나라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신라 좋은 일만 한 꼴이 되었다.
8.2. 중세
- 고려[133]
- 탐라[섬][135]
- 후발해, 정안국[136]
- 번외 - 거란족의 요나라, 여진족의 금나라, 동진(동하) 및 그 외 압록강의 여진족 군벌들, 대요수국, 동요, 몽골 제국과 원나라, 몽골의 지배를 받은 여진족들은 한반도 북부에도 걸쳐져 있었지만 한국 역사로 보진 않는다.
8.3. 근세
- 조선 - 조선 초기까지는 여진족 및 야인이라 불린 일부 이민족들은 함경도 북부, 평안도 북부에도 거주했지만 4군 6진 개척으로 압록강, 두만강 이북으로 쫓겨나면서 현재의 한반도 모양이 되었다.
- 번외 - 임진왜란 시기 한반도 남부에 일시적으로 왜성이 축조되지만 조선이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여 왜군은 철수했다. 후금, 청의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평안도와 함경도 일부를 침공해 만주족에게 점령당했지만 얼마 안가 철수했다.
8.4. 근대
- 일제강점기
- 번외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담보하는 모체인 한성정부가 3.1운동 이후인 1919년 4월 23일. 24인의 13도 대표자들에 의해 한반도 지역 인천 만국공원에서 수립되었다.
8.5. 현대
9. 여담
- 한일시멘트의 로고가 한반도를 'S'자로 형상화했는데, 과거 시멘트 상표명도 '한반도표'였다.
- 한반도의 모양은 흔히 호랑이 모양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것은 근대 이후에 나온 개념이며 한반도의 모양을 지금과 같이 위성으로 정확하게 본 모양이 아닌 전근대 이전에는 한반도의 모양이 정확히 어떤지도 알기 힘들었다. 대강의 형태가 그려지기 시작한 이후로, 조선시대에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나오고 이후로 많은 유학자들은 노인이 대륙을 향해 절하는 모양새라고 평가했다. 즉, 중국을 사대해야하는 이유가 한반도 모양새에 있다는 느낌으로 봤던 것이다. 이후 일제가 한반도를 침략하기 직전 다양한 형태로 조선의 지세와 지질, 자원을 파악하면서, 고토 분지로가 한반도의 모양을 토끼와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에 반발한 최남선이 지금 익히 알고 있는 호랑이 모양의 지도를 삽화로 쓰면서 무너져가는 조선 민중의 자존심을 고취시키며 유행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담겨있는데, 최남선 이전에도 포항의 호미곶의 지명을 예로 들며 그 이전부터 호랑이라고 보았을 거라는 추측도 있지만 사실 호미곶의 지명은 2000년대 들어서 공식화했으며 그 이전까지 어떠한 공식문서에도 그 지역을 호랑이 꼬리로 보고 지은 근거가 없다. 호랑이 모양의 한반도는 100년 남짓된 개념이다. 대륙에 산다고 마음이 드넓은게 아니며, 동그란 섬에 산다고 다 둥글둥글하지 않듯, 한반도의 모양이 대륙에 읍하는 모양새니 사대해야하고, 토끼를 닮았으니 사냥감이고, 호랑이를 닮았으니 기상이 높다는 이야기는 단지 추상적인 개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자세한 것은 한반도 형상 호랑이 vs 토끼 참조.
- 인터넷에서는 네티즌들이 한반도의 형상을 나팔부는 천사 모양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 남북한을 통틀어서 표현할 때 한반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남북관계에 있어서 남북한 사이의 긴장 완화를 한반도의 긴장 완화, 한반도의 평화 등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섬까지 고려하는 더 엄밀한 표현으로는 '삼천리', '팔도'라는 표현이 있는데 남북한이 한 나라였던 조선 시대에서 유래한 표현이라 전통적 맥락에서 많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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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반도의 면적은 영국, 루마니아, 라오스, 가나와 비슷한 면적이다[2] 2024년, 김정은 주도 하에 북한 주도의 평화적 남북 통일을 공식적으로 포기했으며, 따라서 관련 법제도를 모두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만을 자국의 영토로 규정하도록 변경했다. 물론 대한민국의 실체를 인정하고 평화로이 공존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적대국가로서 유사시 정복 대상으로 삼고 있다.[3] 참고로 남북한은 이 언어의 서로 다른 표준을 제정하여 대한민국 정부는 '표준어', 북한 정부는 '문화어'라고 한다. 북한에서는 '조선어/조선말의 표준어'가 문화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서로의 정부는 다른 언어를 쓴다고 하지 않으며, 실제로 문화어 자체도 북한의 '평양말' 선전과 달리 서울 방언에 기반했다. 그래서 북한에서 가장 표준어와 유사한 방언이 문화어다. 주성하 기자 같은 반북 성향의 논자도 한국에서 남북 교류를 핑계로 문화어와 한국 표준어의 차이를 지나치게 과장한다며 불만을 드러낼 정도다. 저정도로 차이가 있는 상태에서 극심한 정치 갈등으로 다른 언어를 주장하는 세르보크로아트어가 있지만 구 유고연방 밖에서 그냥 한 언어로 간주된다. 그나마 다른 언어의 논의가 있는 것은 '제주어'뿐이다.[4] 국제해양법상으로는 동해의 일부에 해당한다.[5] 세계에서 10번째로 큰 반도이다. 발칸반도는 반도의 지위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으며, 반도로 인정될 경우 한반도는 11위로 떨어진다.[6] 베트남어에서는 수식어가 피수식어 뒤에 온다. 그래서 조선반도가 아니라 반도조선. 베트남 공산당은 당공산월남이라고 한다.[7] 일본에서는 대한해협을 쓰시마 해협이라 부르고, 조선해협은 서수로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물론 이것은 일본의 입장일 뿐이며 대한해협이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명칭이다.[8] 단, 대만에서는 정치적으로만 韓을 사용하고, 지리적으로는 朝鮮이라 칭하는 경우도 많다.[9] 일본은 한일기본조약에 의거해 아직까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북한 지역을 통치하는 명목상의 합법 정부로 인정한 것도 아니고, 따라서 일본의 관점에 따르면 북한 지역은 명목상 주권 미설정 구역이다.[10] 단, 중국과 베트남은 '조선'이 북한만을 지칭할 수도 있고 한반도 전체를 뜻할 때도 있어서 맥락에 따라 주의가 필요하다. 중국과 베트남이 과거에 남한을 인정하지 않고 남조선이라고 부르다가 수교 이후 한국으로 부르기 시작한 탓에 명칭이 꼬였다. 일본은 북한을 '북조선'이라고 부르고, 남북한을 모두 가리킬 땐 '조선'이라고 한다. 앞 주석에서 설명했듯이 일본은 아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를 인정하지 않고 북한 일대를 주권 미설정 지역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런 일본 입장에서 한반도 전체를 조선이라고 하니 자연히 (일본의 공식 입장에 따를 경우) 나라가 없는 지역인 북한은 자연히 북조선으로 불리는 것이다. 하지만 훗날 일본이 혹시라도 북한과 수교하는 일이 벌어지면 호칭에 변화가 생길지도 모르겠다.[11] 홍콩은 1997년 이후에도 꼬박꼬박 南韓/ South Korea 등이라고 표기하며 공식표기다. 중국 본토의 입장을 전혀 따르지 않는다. 어차피 1국가 2체제라 간접 통치니까 중국 정부와는 별개의 정부인 홍콩 정부나 언론이 굳이 중국 공산정부를 따를 필요도 없다. 하지만 비교적 중국본토에 우호적인 마카오는 반환을 앞둔 1990년 이후 중국본토의 입장을 서서히 따라가는 중이다. 그래도 마카오 민간에서는 南韓이나 Corea del Sur 등이 많이 쓰인다.[12] 중간에 선처럼 남북을 가르는 것은 군사분계선으로, CGI로 경계가 두드러지게 표시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 DMZ 일대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위성사진에서도 유독 푸르게 선 형태로 보이기 때문에 CGI가 없어도 자세히 보면 보이기는 한다.[13] 흔히 땅끝마을이라 부르는 곳이다.[14]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 전체와 그 부속도서지만 남북 분단으로 인해 실제로는 대략 절반 정도만 통치한다. 기상예보 등에도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은 자주 칭하지만 북부지방이 거의 칭해지지 않는 것이 특징. 북부지방은 북한이 점유하고 있는데 이 또한 대한민국의 영토로 간주하기 때문이다.[15] 참고로 북한 쪽 헌법은 영토 얘기가 없지만, '당'이 통치하는 국가이기에 법보다 노동당 규약이 더 중요하다. 이쪽은 자국의 영토를 '공화국북반부'라고 하고 통일에 대한 주장이 대한민국 헌법보다 구체적이었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북한의 대남기조 변화로 인하여 주장하는 영토의 범위가 현재 실효지배 범위와 일치해졌다. 물론 여전히 대한민국을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고 언제든지 공화국의 영토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므로 워딩만 바뀌었을 뿐 남한 영토에 대한 주권행사를 포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16] 지질학적 '반도'의 개념이 아닌, 북한의 북쪽 경계를 한반도의 끝으로 두는 것.[17] 영국의 북아일랜드 등을 뺀 본토 섬의 크기와 거의 같다. 단, 인근 부속도서들을 포함하면 229,761km² 이고 여기서 북아일랜드까지 더한 일반적인 '영국'의 면적은 243,891km², 해외령인 지브롤터나 포클랜드 제도 등이 합류하면 262,061km²으로 남북한을 더한 면적보다 조금 더 커진다.[18] 영문판 국가별 면적순 목록[19] 만주 벌판이란 이미지가 떠오르는 고구려 또한 가면 갈수록 한반도 북부지역이 중심 지역이 됐고, 평양으로 천도 이후엔 이것이 더 뚜렷해진다.[20] 발해의 옛 땅에서 세워진 발해의 후계 국가들이 고려 중기 시기까지 계속 있었지만, 이들의 영역과 정체성, 존속기간이 간단하게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인지 보통 무시되는 편이다.그러나 만주와 연해주에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성터가 나와서 바뀔 여지가 있다.[21] 경계란 어디까지나 인간이 정하는 것이다.[22] 한반도라 하는 것은 순수하게 지리학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결국 '대한민국 영토와 북한 영토의 합집합에서 섬을 제외한 것'이다. 아래에서 더 자세히 다루긴 하지만. 지리학적으로 따지면 신의주시는 한반도이고 단둥은 한반도가 아닐 이유는 없다.[23] 헌법에서는 '반도'라고 부를 수 있는 '한반도'가 아닌 남북한의 도서 지역을 말한다.[24]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당시 UN에서 '한반도 전체를 영토로 삼는 헌법조항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보이자 대한민국에서는 헌법 개정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UN의 권고를 따르지 않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 아니다." 하고 결정하여 UN 가입 이후에도 기존의 영토조항을 그대로 남겨두었다. 북한은 애초에 민족 내부의 특수 관계라는 남측의 합의를 받아들였고, 자신의 실효 지배 지역이 '공화국북반부'라는 당규약이나 10대 원칙 같은 헌법 이상의 규범은 폐쇄적인 북한 특성과 남측의 무관심함에 그 대처가 잘 알려지지 못했다.[25] 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함경도의 영역이 대륙에 속해 보이는 느낌이 더욱 잘 느껴진다.[26] 인문지리학 또는 지리정치학(지정학)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느냐 또는 사람들이 어떻게 부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이 관점에서는 함경도 지역을 포함한 한국 지도 전체가 한반도이다.[27] 예컨데 중국이 1962년의 조중변계조약을 불만으로 생각하는 것도, 산맥으로 따지면 백두산의 더 많은 영역을 차지할 수 있어서다.[28] 재령강은 대동강 수계에, 임진강은 한강 수계에 포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외에도 황해도의 남대천과 안성천, 삽교천, 만경강, 동진강 등이 서해로 흐르나 수계 및 유역면적이 매우 좁아서 크게 구분하진 않는다.[29] 바닷물의 수위가 높아져 대륙 안으로 물이 '침입'하는 것.[30] 해당 연대는 2000년대 초반, 대이작도의 혼성암 혹은 편마암의 저어콘 분석을 통해 얻어졌다.[31] 비교적 충돌 역사가 상세히 알려진 중국 등지의 충돌대와 비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 충돌대의 한반도로의 연장성은, 황해라는 사람이 어찌 할 수 없는 지형상의 한계로 직접적인 증명을 할 길이 없다.[32] 호수, 강 등을 말한다.[33] 쥐라기 때 대보 조산 운동으로 대규모의 마그마가 관입해서 대보 화강암을 만들기도 했고, 백악기 후기에 불국사 변동으로 불국사 화강암 등이 만들어졌다.[34] 한탄강을 따라 널리 분포하는 화산암류로, 북한 오리산이 그 시발점이라 생각된다.[35] 당시 구석기 시대의 호모 사피엔스[36] 이 과정에서 일본이 한반도로부터 뜯겨져 나갔다.[37] 영향이 아주 없진 않다. 어쨌거나 가까이 있긴 하므로.. 그러나 후술하는 요소에 비하면 적은 수준이다.[38] 북한 기준으로는 강원도다.[39] 실제로 대한민국 정부에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40] 한반도 중서부에는 서울과 인천을 비롯한 수십 개의 수도권 도시들에 천안, 아산, 대전, 세종, 청주, 전주, 익산, 군산, 광주, 목포 등등 수많은 도시들이 있는 반면 한반도 동부에는 부산, 울산, 창원, 김해, 양산, 대구, 구미, 포항, 경산 외에는 거의 없다시피 하며 강릉과 경주는 인구 수로는 목포 급이긴 하나 도농복합시라 도농분리시인 목포에 비하면 시가지가 크지 않다.[41] 이 표현은 남북 모두 사용하며 옆나라 일본도 이런 표현을 쓴다.[42] 근가야가 철을 중국과 일본에 대량 수출해서 막대한 이익을 보았다는 얘기도 있고, '금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는 서동요 설화나, 운산금광의 무지막지한 채산량, 일제강점기 황금광 시대를 본다면 제법 설득력 있어 보인다. 몇 안 되는 한반도의 풍부한 지하자원인 텅스텐도 따지고 보면 과거엔 그걸 쓸 기술이 없었던 자원이다. 다만 삼국시대에서 신라 경주의 금 산출은 채광이 아닌 사금일 가능성이 높다.#[43] 한반도 같은 이야기가 있으나, 역시 경제 성장 과정에서는 이와미 은광, 규슈의 탄광, 아시오 구리 광산, 마츠오 광산의 황과 같은 혜택을 입기도 했다. 특히 이와미 은광이 에도 시대 일본의 경제적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44] 북한의 평야 면적이 남한과 비슷하다.[45] 반도국가지만 서해(황해)는 중국 대륙이 가로막고 있고 동해 부근에는 일본 열도가 가로막고 있어서 사실상 거대한 호수나 다름없다. 그나마 남해 부근이 탁 트여 있으나 수심이 깊지 않아 영향은 미비하다.[46] 실제로 황사가 고비 사막에서 유입된다.[47] 한반도의 연평균기온은 남한 10~15도, 북한 6~12도이며 남한 위도인 34~39°는 지구 기준 14~17도, 북한 위도인 38~43°는 지구 기준 12~15도이다. 특히 겨울 기온은 전세계 동위도 & 동해발고도 지역 중 가장 낮다. 서유럽에서 한반도와 같은 겨울 기온을 가진 곳은 최소 북위 54도 이북으로 북위 56도선 바로 아래에 있는 에든버러의 1월 평균 기온은 부산광역시와 비슷하고, 코펜하겐의 1월 평균 기온은 대구광역시와 비슷하다. 극단적인 예로, 북대서양 난류가 정통으로 통과하는 노르웨이 해안의 섬들에서는 북위 71도까지 올라가야 서울과 1월 평균 기온이 비슷하다.#[48] 서울과 비슷한 위도에 있는 아테네와 세비야의 7월 평균 기온은 29 ℃. 대전과 동 위도에는 세계에서 제일 더운 캘리포니아 데스밸리가 있다. 애초에 한반도 남부는 북아프리카 마그레브와 동위도다.[49] 북위 45º 30'인 밀라노, 베네치아, 북위 49º인 파리의 연 평균 기온이 서울과 비슷하다. 북아메리카 동부로 내려가도 북위 40º 45'인 뉴욕의 연 평균 기온이 서울과 비슷하다.[50] 한반도의 겨울이 동위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아주 눈에 띄어서 그럴 뿐, 일본도 겨울에 꽤 추운 편이다. 북위 35º 40'의 도쿄의 1-2월 평균 기온은 시애틀(북위 47º 40') 런던(북위 51º 30'), 더블린(북위 53º 20')의 1-2월 평균 기온과 비슷하고. 연 평균 기온으로 봤을 때도 나폴리(북위 40º 50'), 바르셀로나(북위 41º 20')와 비슷하다.[51] 만주 최대 도시인 하얼빈은 북위 46º선 바로 밑에 있는데, 프랑스 라로셸의 위도와 비슷하다. 하얼빈의 1월 평균 기온은 -18℃지만 라로셸의 1월 평균 기온은 7 ℃. 북위 53º인 만주 최북단 모허의 1월 평균 기온은 -30 ℃지만 동 위도에 있는 영국 리버풀의 1월 평균 기온은 5 ℃다.[52] 실제로 K-9 자주곡사포의 경우, 노르웨이로 수출할 때 타국의 자주포들은 노르웨이의 혹한을 못 견디고 퍼지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한국의 경우 어차피 한국의 겨울은 혹한을 자랑하고 여름에도 엄청난 습도와 더위, 폭우를 수반하므로 한국의 기후를 버텨내는 것에 대해 노르웨이군으로부터 운용합격 평가를 받아서 K-10과 더불어 수출되었다.[53] 2월 5일 북한 량강도 삼지연시 최저기온 -40.1 ℃, 8월 1일 강원도 홍천군 41 ℃.[54] 다만 비공식적으로 1936년 2월 4일 혜산에서 -47 ℃의 한파를 기록한 정황이 있다. 그 외에도 2019년 7월 6일에 같은 지역에서 46.0 ℃를 기록한 전적이 있는데 실제로 이날 서울에 동풍 영향으로 강한 더위가 있는 날이긴 했지만 전후날을 고려했을 때 이는 명백한 관측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다음날 일최저가 12.4도인데 아무리 북쪽 지방의 여름 일교차가 크다 하지만 46.0도 > 12.4도 하강은 말이 안되는 수준이기 때문. 그리고 7월 6일 당일에도 일평균이 고작 21도대였다.[55] 개성시, 개풍군, 장풍군, 연천군, 포천시, 파주시 제외[56] 한국인들은 일상생활에서 보통 봄을 3~5월, 여름을 6~8월, 가을을 9~11월, 겨울을 12~2월의 3개월씩으로 나누지만, 에어컨과 난방의 가동을 기준으로 현실적인 계절을 구분한다면 3월 중순~5월 중순이 봄, 5월 말~9월 중순이 여름, 9월 하순~11월 중순이 가을, 11월 말~3월 초가 겨울로 봐야 할 정도로 여름이 길고 가을이 짧다.[57] 물론 헛소리에 가까운 우스갯소리로 단군조선의 중심지는 한반도가 아니라 요동-요서, 즉 현재 랴오닝성 일대에 있었다.[58] 다만, 한국의 빨리빨리문화는 새마을 운동과 한강의 기적으로 만들어진 문화이며, 그 이전까지의 한민족의 국민성은 전통적으로 빨리빨리와 무관하며 느긋하고 태만했다.[59] 그나마 여름이 길다고는 하지만 휴가철이 몰리는 한여름에는 장마의 절정을 피하면 보통 남는 기간은 길어야 3주 정도이다. 단풍도 절정을 찍고 2주 정도 지나면 시베리아 고기압이 내려오면서 가을 풍경이 빠르게 마무리된다. 옆나라 일본 등에 비해도 단풍철은 (단순히 일찍 오는 것을 넘어) 길이가 짧은 편이다.[60] 유라시아늑대, 몽골늑대.[61] 과거에 분단 이전에 한반도는 세계적으로도 좁은 지역에 다양한 동물이 서식하던 곳이다. 또한 인간들의 편애를 받는 길고양이들의 개체수가 늘어나 생태계에서 비슷한 지위를 지닌 고양이라는 경쟁자가 늘어나고, 소형 육식 포유류들이 주식으로 삼는 쥐나 새 같은 소동물들의 개체수가 줄어든 것도 한 몫 했다. 반면 대형 육식동물이 남한에서 절멸한 것은 일제에 의한 정치적인 멸종 사업 때문이다. 거기에 북한의 난방자원이 석유나 석탄 또는 도시가스가 아니라 아직도 아궁이에 나무를 태워서 난방하는 곳이 흔하기 때문에 나무의 부족으로 민둥산이 되면서 육식 동물들의 서식지가 망가진 것이 크다.[62] 굳이 있다면 공식적으로 노란목도리담비, 들개, 반달가슴곰 정도인데 노란목도리담비는 덩치가 작아서 새끼 위주로 사냥하고 들개는 누군가가 키우다가 버린 개체들이 조상인 경우가 대다수라 정상적인 생태계의 일원이라기엔 애매하다. 반달가슴곰은 국내의 맹수들 중 체급이 가장 큰 만큼 마음만 먹으면 멧돼지나 고라니 성체도 잡아먹을 수 있지만, 종의 특성상 사냥을 자주 시도하진 않는다.[63] 다만 농장에서 탈출한 개체들은 서식하지만 수도 적도 토종아종이 아니다.[64] 길고양이의 경우 노란목도리담비등의 천적으로 인해 야생지대에 나타나지 않고 민가 근처나 도심에만 서식하고 있다.[65] 2022년 국가통계포털 주민등록 인구통계 자료.[66] 2022년 대한민국 국가통계포털 발표 자료. 다만 북한 특유의 폐쇄성으로 인해 정보가 불확실할 수도 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북한의 실제인구는 2022년 기준 2550만 명 가량이라고 한다.[67] 만약 통일국가였다면 국가별 인구 순위가 세계 20위쯤 된다.[68] 성비 100.5 : 100[69] 성비 94.3 : 100[70] 성비 98.4 : 100[71] 현대에는 북한이 자국민 탈출을 막는데 유용한 요건이 되기도 한다. 북한 내에서 10%도 안되는 인구 비중을 차지하는 개마고원에 포함되는 압록강 상류 출신이나 두만강 상류나 중류 출신이 탈북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압록강 하류 출신은 내륙 출신 수준으로 드물다.[72] 고조선을 멸망시킨 후 한사군 설치[73] 여수전쟁 여당전쟁[74] 여요전쟁[75] 여몽전쟁[76] 정묘호란, 병자호란[77] 일제강점기 때 대한제국이 일본제국에 병합되었다. 원 간섭기 당시 고려는 해외에서는 몽골에 병합된거 마냥 지도에 표시되는데 실제로는 병합되지 않았고 나라도 멸망하지 않았다. 물론 부마국으로 자주국이 아니긴 했다. 또한 조선이 청나라에 패해 항복한 사건 이후로 조선을 청나라의 영토에 포함시키는 해외 지도가 있으나 실제로는 조선은 청나라의 조공국이 되는데 그쳤기에 합병당하지 않고 국가를 존속시켰다.[78] 살수대첩[79] 귀주대첩[80] 주력군이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방어하기에 그나마 수월했다는 반박이 있을 수 있으나, 몽골제국의 말발굽이 닿은 모든 지역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전체가 유린 당했다고 보는게 맞다. 민중들이 처절하게 저항하고 지배층들도 강화도에서 버티면서 싸우다보니, 고려가 완전히 멸망하지 않은 것.[81] 이는 공민왕 시기 원나라의 간섭을 떨쳐내는 빌미가 된다.[82] 몽골과 후금의 경우는 한반도 점령보다는 중원 공략 전에 후방 안정화가 진짜 목표였으므로 굳이 한반도 지배에 목매지 않았다는 부분도 있다.[83] 이후 히데요시의 라이벌이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동안의 전쟁에 모든 걸 쏟아부어 기력을 다했던 도요토미 정권을 직접 무너뜨리고 에도 막부를 열게 된다.[84] 부여와 한반도 남쪽의 진국은 살아있었지만, 애초에 부여와 진국은 한나라의 공격 목표가 아니었다.[85] 일단 한나라는 전투에서 상당히 고전했지만 고조선 지배 세력의 내분이라는 호재 덕택에 비교적 단기간 안에 고조선을 멸망시킬 수 있었고, 평안도와 황해도 북부 일대는 수백년간 통치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한사군과 한나라 본토와의 거리가 상당해서 지배력을 미치기도 힘들었던데다가 남아있던 토착세력들의 입김을 무시할순 없었기에 본국의 관리와 토착세력이 합작해서 지배하는 어중간한 형태로만 통치를 이어가다가 결국 고구려로 흡수되었다. 함경도 지방 역시 오래 지나지 않아 동예, 옥저로 독립했으니 완전히 먹었다고 보기도 애매하다. 결정적으로, 오늘날 북한 지역만 영향력을 끼쳤을 뿐 한반도 남부 지방에 있던 진에는 손을 뻗지 못했다.[86] 당나라는 그 유명한 당 태종이 수차례 고구려를 침공했으나 계속해서 패배했고 당 태종마저 고구려를 정벌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로 당나라는 고구려에 매우 고전했다. 이후에도 고구려를 쳤으나 계속해서 격퇴당했고 끝내 고구려에서 내분이 일어나고 신라와 연합해 동시에 고구려를 친 덕에 겨우 고구려를 멸망시키긴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당나라 혼자의 힘으로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이 아닌 신라와 같이 침공해 멸망시켰으므로 한반도 전체를 지배할 수는 없었고 나당전쟁에서 패배하여 당나라는 신라를 멸망시키지 못하고 백제의 영토를 상실했고 대동강 이북 지역의 고구려 영토만 차지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발해의 건국으로 인해 대동강 이북 고구려 영토와 만주조차 상실했다.[87] 몽골 역시 수많은 장수들을 잃고 고려와 7차례 전쟁을 할 만큼 꽤 고전했고 결과적으로 철령 이북 영토만 합병했고 고려 전체를 멸망시키거나 병합하지는 못하고 부마국으로 삼는 데 그쳤다. 이마저 상술했듯 공민왕 대에 자력으로 몽골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철령 이북을 탈환하는 데에 성공했으므로 일본 제국이 유일하게 한반도 전체를 완벽히 지배한 외부세력에 해당되나, 이는 비밀 공작으로 조선의 근대화를 방해하면서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이겨서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열강으로서의 위상과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은 영향이 매우 컸는데, 만약 둘 중 하나라도 백중세 내지 패배를 했다면 일본은 조선을 먹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저 두 전쟁 역시 일본의 국운을 걸고 한 전쟁으로, 특히 러일전쟁은 미국과 영국의 자금 지원을 받고도 국력 소모가 너무나 극심했다. 여러 전투를 이겼으나 재정/인구 소모 구조 상 전쟁 지속은 불가능하다고 판단, 승자임에도 불구하고 배상금을 한 푼도 못 받고 선전효과만 얻은 채 서둘러 종결했다. 이후로도 의병들의 게릴라전으로 남한대토벌도 꽤 걸렸다.[88] 러일전쟁을 치른 러시아도 북방세력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89] 거란과 수나라는 고려와 고구려에게 패배하여 몰락의 길을 걸었고, 원과 청은 고려와 조선을 공략해 조공국으로 삼은 후, 중원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90] 미국, 러시아, 중국은 UN 상임이사국이자 거대한 국토와 인구를 갖춘 국가들이다. 또한 한국과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깊게 연관된 미중일은 전세계 국내총생산 순위에서 1, 2, 4위를 차지하는 경제 대국들이다. 이 중 그나마 가장 세력이 약한 일본도 미중의 입김이 워낙에 압도적이여서 그렇지 한국의 2.5배에 달하는 엄청난 총 경제력[137]과 더불어 군사력도 평화헌법이라는 제약을 가지고 있음에도 한국과 큰 차이가 안 날 정도로 세계에서 인정받는 수준이다.[91] 다만 고려는 원나라의 압력으로 참전을 강요당했기에 결이 다르긴 하다.[92] "Korea lies like a dagger ever pointed towards the very heart of Japan."[93] Okakura, K.(1905), The awakening of Japan. J. Murray.//Fujisawa, R.(1923). The recent aims and political development of Japan / Fujisawa Rikitaro. (Williams College, Williamstown, Mass. Institute of Politics. Publications). New Haven. Robert Myers(2001), Korea in the Cross Currents: A Century of Struggle and the Crisis of Reunification, New York, Palgrave. David Halberstam(2007), The Coldest Winter: America and the Korean War, New York: Hyperion. 최형두(2012), 아메리카 트라우마 - 어느 외교 전문기자가 탐색한 한미관계 뒤편의 진실, 위즈덤하우스. 에서 재인용.[94] 가장 동쪽 남단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주변 해역에선 선박 표면이 얼어서 얼음으로 도금했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춥다. 러시아가 차지한 지역 중에선 상위권의 기온이지만 쇄빙선을 필수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건 변함 없다. 그놈의 부동항을 얻기 위해서 러시아가 서쪽으로 진출해서 겨우 따낸 것이 흑해이지만 흑해에서 지중해로 나가는 루트가 막혀서 고립된 상황이다. 그런데 한반도를 얻는다면 우방국인 중국으로 비교적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어 작전 수행 범위가 넓어진다.[95] 중동이나 인도 쪽을 통해 공격하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지도를 펴보면 그렇지가 않다. 중동 부근의 나라는 중국 동부의 핵심지역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미군조차도 보급을 할 수가 없을 뿐더러, 한국만큼이나 미국에 우호적인 국가가 없다. 만약 중국이나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킨다면 중동 국가들은 중립을 선언할 수도 있다. 인도 쪽은 그나마 중국과 좀 더 가까운 거리에 있긴 하나, 마찬가지로 미국과의 관계가 한일에 비하면 데면데면한데다가 결정적으로 중인 국경지대에 매우 거대한 장애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쪽도 가망이 없다. 동남아 쪽에서 상륙을 해서 들어가려고 해도 동남아 국가들이 미국의 상륙을 허락할지도 미지수이고, 상륙한다 해도 동남아에서 중국 동부까지의 거리가 만만치 않다. 그리고 미얀마, 라오스 방면의 국경지대는 전부 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마냥 쉽지만은 않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가 베트남쪽에서 치고 올라오는 방법인데 이쪽도 산들이 듬성듬성 있어 뚫고 지나가기엔 큰 에로사항이 존재하며 아무리 낮은 산이더라도 100m 쯤 돼 보이는 산악지형을 뚫고 지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결국 미국 입장에서 중국과 러시아 극동지대 전체를 견제할 만한 곳은 현실적으로 한반도밖에 없다.[96] 현대에도 미중일러가 세계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강대국이라 묻히는 것이지, 한국도 '강대국의 최소'에 준하는 최상위급 지역강국에 해당한다.[97] 2,170만 명, GRDP는 한국 전체의 1/3 정도로 대만 전체 GDP와 비슷하다.[98] 930만 명. 거기다가 한국 수도권 전체로 확장하면 인구 약 2,500만 명에 경제 규모는 세계 4위의 도시권으로 네덜란드 전체 GDP와 맞먹는다.[99] 1,300만 명. 일본 수도권 전체로 확장하면 인구 약 4,300만 명에 뉴욕 이상으로 거대한 세계 최대의 대도시권이며, 이탈리아 전체 GDP와 맞먹는다.[100] 미국 전체 GDP와 비슷한 규모.[101] 사실상의 핵보유국인 북한과 세계구급의 군사력을 가진 한국이 남북전쟁만 벌여도 큰 전쟁인데, 상황에 따라 거기에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한꺼번에 전쟁에 개입함은 물론, 미국과 동맹관계인 유럽 및 호주, 중국과 대립관계인 인도까지 끼어들 가능성도 있다.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면 세계 주요국 전체가 한꺼번에 끼어들어 싸우는 인류사 최대의 전면전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장 6.25 전쟁만 해도 미국과 중국, 그리고 소련이 휴전했기 망정이지 만약 미국이 작정하고 한판 붙자고 나섰다면 자칫 3차 대전이 발발할 수 있었다. 거기다 백번 양보해 미국을 제외하고 동아시아 국가들 끼리만 승부를 본다고 쳐도 중국, 일본, 한국, 대만의 경제규모는 세계에서 비중이 매우 크다. 저 나라들이 붙는 순간 대공황을 따위로 만들 경제불황이 몰아칠 가능성이 있다.[102]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이후와 괴리가 있어서 해당 기준으로는 제대로 된 값을 산출할 수 없다. 이 부분의 면적과 인구는 추정치이므로 대략적인 참고만 하기 바람.[103] 사실상 북한이다.[104] 북한이 UN에 제출한 통계이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인구가 적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105] 미수복 경기도 포함[106] 미수복 강원특별자치도 포함[107] 다만 청천강-함흥만 이북 지역은 동서로 꽤 길다. 평양에서 함경북도의 중심도시 청진만큼 떨어진 남한의 도시는 전라도와 경상도에 있다. 이런 곳은 인구가 적었다는 등의 이유로 북부로 묶이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긴만큼 문화 등이 차이나는 경우도 많아 후술하듯 북선, 서선으로 이런 지역을 나누기도 했다.[108] 황해도였던 서해5도를 대한민국이 실효지배하게 되었고, 옹진군은 휴전선 이북에 있는 지명에서 유래했다.[109] 함경도는 후에 설명하겠지만 '궁마지향'이라며 무를 잘 다루는 이미지가 유교적 소양을 강조하고 싶을 때는 역으로 문제가 될 지경이었고, 송시열도 평안도와 함경도를 두고 "서북 지방의 여자들은 매우 건강하고 민첩하니, 이들에게 포를 쏘는 연습을 시켜... 성을 지키게 한다면 남자 병사만 못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할 정도였다.[110] 미인이 많은 곳이라는 뜻이다. 상업이 발달하여 풍류를 즐기려는 시도가 유명했기 때문이다.[111] 비록 발해의 남경은 함경도에 있었다지만, 수도가 아닌 5경 중 하나였을 뿐 서경과 더불어 가장 정치적 존재감이 없었다. 상경, 중경, 동경은 모두 발해의 수도였던 역사가 있지만 서경과 남경은 아니다. 굳이 들자면 함흥 일대 옥저, 두만강 일대 북옥저와 동부여 정도가 있다.[112] 밝게 나타나거나 나타냄.[113] 위도에 비해 날씨가 굉장히 지랄맞다. 비슷한 위도의 미국 북부에 비해도 훨씬 추우며(미국 북부는 전반적으로 강원도 지역과 연평균 기온이 비슷하다. 뉴욕과 강릉, 시카고와 춘천의 연평균 기온이 비슷하니까.) 남유럽과는 비교할 수 없다(혜산과 동위도인 바르셀로나는 서귀포보다도 연 평균 기온이 높다.)[114] 북위 41~42도에 불과한 개마고원 지역의 1월 평균 기온은 무려 북위 78도에 있는 스발바르 제도 이상으로 춥다. 그나마 캐나다나 시베리아로 내려와도 북위 55도 전후에서 개마고원과 비슷한 1월 평균 기온을 띈다.[115] 그러나 이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엘니뇨 현상 때문에 최근 몇 년 동안 유례없는 혹한이 찾아와 생긴 것이다. 구한말 러시아가 탐낸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 남포 앞바다는 부동항이었으며, 최근 10여 년간 매번 얼음이 생긴 것이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강화도 앞바다에 유빙이 생긴 것 만큼 북한에서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을 정도였다.[116] 다만 철원기상대가 21세기 다 되어서 생겼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117] '자원의 저주' 문제가 대두될 정도다. 북한도 이런 현상이 비슷하게 있어 국제사회는 광물에 대북제재를 거는 경우가 많다.[118] 그래서 흔히 삼국시대에 한강 유역을 차지하는 세력이 주도권을 쥐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삼국 중 강성한 세력의 최대판도의 한계가 한강유역이었던 것이다.[119] 경기도 약 1280만 명, 서울특별시 약 1033만 명, 인천광역시 약 300만 명으로 합치면 약 2613만 명이다. 이는 약 2500만 명인 북한의 인구를 뛰어넘는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인구는 약 5150만 명으로 수도권에 대한민국 인구의 과반수가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120] 다만 전라도 서해안 지역은 대표적인 다설지이다.[121] 다만 농업 기술의 발전으로 전통적인 남부지방의 특산물들이 북상했듯이 기존에 남부지방에서조차 볼 수 없었던 작물들이 새로 들어오고 있다.[122] 그러나 그만큼 강력한 수탈 대상이어서 일반 백성들은 마찬가지로 먹고 살기 힘들었다고는 하는데, 사실 조선의 세수는 그렇게 빡세진 않았다. 자세한 사항은 조선/오해 참조. 판소리가 전라고에서 발전하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로 곡창지대라 먹고살만하니 서민문화가 발전했다는 설이 유력하게 뽑히고 있으니 강력한 수탈이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애초에 조선시대 수탈 이미지는 대체로 미디어에서 나왔거나 식민사관이 잘못퍼져서 생긴 편견에 가깝다.[123] 상단엔 Tauxem, 하단엔 Corij가 쓰여 있는데 각각 조선과 고려로 보인다. #[124] 서양의 학문이었던 서학도 경로로 따지면 중국에서 건너온 문물이었다.[125] 북한/관광 문서 참조. 그냥 외국인이라도 입국에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다.[126] 휴전선과 북중국경뿐만 아니라 서해안과 동해안에도 항만 시설과 산간 오지를 빼면 장벽이 확인된다.[127] 여담으로 통일부에서 제작한 사실상 섬나라를 주제로 한 포스터가 화제가 되었는데 불안정한 국제 정세 때문인지 일부에서는 이런 지정학적 형상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심지어는 4대강 운하 대신에 분단선 운하를 추친해야 했었다는 의견과 극단적으로는 전세계 핵무기를 모아 북한 영토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과격한 의견까지 나올 정도다. 물론 진지하게 따지면 제아무리 핵무기라도 땅 위에 건설된 문명을 쓸어버릴 수는 있겠지만 지형 그 자체를 바꿀 위력은 되지 않는다.[128] 다만 부여의 경우 건국 초기에 함경도 지역까지 세력권을 두고 있었던 걸 빼면 한반도에 영토는 없고 만주지방에 영토를 두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의하면 고구려 대무신왕 이전의 부여는 세력권이 함경북도 일대를 포함했다. 그리고 동부여의 세력권 역시 함경북도 일대를 포함한다.[129] 고구려의 의해 만주로 후퇴.[130] 서기 676년에 삼국통일을 이룬 이후부터 698년에 발해가 건국되기 이전까지 한반도 유일 독립국이었다.[섬] 섬이라서 한반도에 속하지 않음.[섬] [133] 통일국가로서는 936~1392[섬] [135] 한반도 국가의 속국으로서 938 ~ 1404[136] 흥요국, 올야국, 대발해는 만주에 존재했었고 후발해 정안국도 대부분 만주에 기반을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