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bordercolor=#c68a12,#43454d><tablebgcolor=#fff,#1c1d1f><bgcolor=#c68a12,#010101><tablealign=center><-2> 판소리 열두 마당 ||
전하는 다섯 마당 | 수궁가 · 심청가 · 적벽가 · 춘향가 · 흥부가 |
사라진 일곱 마당 | 가짜신선타령 · 강릉매화타령 · 무숙이타령 · 배비장타령 · 변강쇠타령 · 옹고집타령 · 장끼타령 |
1. 가루지기 타령
대한민국의 판소리. 판소리 제목에는 "~가(歌)" 또는 "타령"이 붙고 판소리를 소설화한 작품의 제목에는 "~전(傳)"이 붙는다. 즉, 〈가루지기 타령〉이나 〈변강쇠 타령〉, 〈횡부가> 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원래는 <변강쇠 타령>이 맞다고 한다. 다만 고우영이 이 판소리를 만화로 개작하며 제목을 〈가루지기 전〉이라 지은 바는 있다.전래 설화를 바탕으로 조선 후기에 신재효가 정립한 판소리 여섯 마당 중 하나. 횡부가, 변강쇠타령, 가루지기타령[1]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평안도에서 태어난 옹녀와 경상도에서 태어난 변강쇠가 각각 남과 북에서 고향을 떠나 중간에서 만나 서로를 운명이라 알아보고 탐하는 질펀한 성적 묘사로 유명하지만
사회, 재난, 죽음과 삶의 욕망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1.1. 줄거리
옹녀는 팔자에 상부살이 겹겹이 낀 여인으로, 결혼한 남자는 병, 사고, 범죄를 저질러 처형되는 등 온갖 사유로 죽고 심지어 스쳐간(글자 그대로) 남자마저 죽는 바람에 인근 열 동네에서 남자의 씨를 말리게 되고, 이에 열 동네의 여인들이 작당하여 옹녀를 쫓아낸다. 보따리 하나 들고 남쪽으로 내려오던 옹녀는 또한 삼남에서 온갖 여자를 농락하며 북쪽으로 올라오던 변강쇠와 남도와 북도의 경계점인 청석골에서 만난다. 둘은 천생연분임을 알아보고 그 자리에서 결혼을 하여 청석골 깊은 산으로 들어가 사는데..옹녀는 나름대로 정착하려고 애쓰지만, 게으름뱅이 변강쇠는 주는 밥을 먹고 밤일에만 힘쓴다.(...) 나무라도 해 오라고 옹녀가 재촉하자 변강쇠는 길가의 장승을 뽑아 오고, 놀란 옹녀가 도로 갖다 놓으라고 설득하는데도 듣지 않고 그 장승을 패어 땔감으로 삼는다. 횡액을 당한 장승은 모든 장승의 우두머리인 대방장승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대방장승은 전국의 장승들을 불러모아 변강쇠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갖가지 병으로 도배하게 한다.[2] 그리하여 변강쇠는 온갖 병을 한 몸에 앓다가 끝내 죽게 되는데, 옹녀에게 "내가 죽은 후 개가를 했다가는 그 서방을 죽이고 말겠다."라고 저주를 내린 후 벌떡 일어서서 눈을 부릅뜨고 (장승과 같은 몰골로) 죽는다.
변강쇠의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옹녀는 목욕하고 새 옷 입고 화장하고 길가에 서서 나그네를 유혹하며 "집 안의 시체를 처리해 주면 같이 살겠다"고 현상을 내건다. 지나가던 걸승부터 시작하여 초라니, 명창이라 하는 가객과 놀이패들 온갖 남자들이 옹녀의 미모에 홀려 다가오지만, 방 안에 서 있는 변강쇠 시체의 흉악한 모습을 보고는 놀라서 죽어 버리고 옹녀의 집 앞에는 시체만 계속 쌓인다. 마침내 말뚝이처럼 생긴 한양 출신 마종 뎁득이가 소문을 듣고와 나선다. 변강쇠의 저주를 풀고[* 자신은 눈을 감은 채, 옹녀가 위치를 일러주는 대로 긴 막대기를 뻗쳐서 변강쇠 시체의 눈을 감긴다.근데 뜻대로 잘 되지 않았고 등골 오싹하여 돌아가려 하지만 옹녀가 그를 붙잡는다. 옹녀의 유혹에 곰곰히 생각하다가 집 뒤편으로 돌아가서 장승처럼 서서 죽은 송장을 뒤에서 밀어 넘어뜨린다. 변강쇠 뿐만 아니라 그동안 죽은 남자들의 시체들이 너무 많아 도와줄 사람들 찾는데 마침 소문듣고 찾아왔다가 한발 늦은 사당패들이 돈받고 도와주기로 한다. 그리하여 다같이 모두 짊어지고 가는데 시체를 둘씩 짊어지니 너무 무거워서 잠시 쉬자 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자리에 꼭 붙어서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되었고 [저주의 2막..] 결국 그들의 욕망을 참회하며 유유상종 불쌍한 인생 잘 묻어주고 묘도 보살피겠다 빌고서야 시체에서 떨어질수 있었다. 그렇게 다른 남자들의 시체는 다 그럭저럭 짊어서 다 묻을 수 있었으나 뎁득이 등에 붙은 변강쇠의 시체만은 떨어지지 않아 나란히 서 있는 나무 2그루 사이로 지나가 변강쇠 시체의 위아래 토막이 나무에 걸려 떨어져 나가게 하고, 남은 가운데 토막은 바윗돌에 대고 비벼 갈아서 떼어낸다. 본인 살도 갈아냈을듯
-마지막 대사 -
"풍류남자 가려서 백년해로하게 하오. 나는 고향 돌아가서 동아부자(同我婦子) 지낼 테오."
[유부남!]
아무튼 색정을 떨치고 개과천선하여 돌아갔다~~~
1.2. 기타
이 판소리의 백미는 변강쇠와 옹녀가 처음 만나자 마자 한눈에 서로에게 반해서 그 자리에서 간단하게 식을 치르고 풀밭에 신방을 차리는 장면인데, 서로의 그곳을 묘사하는 이른바 <기물 타령>이라 불리는 이 대목 및 이어지는 남녀상열지사를 묘사한 내용만도 글자로 따져서 2,000여 자가 넘는다. 원고지 10장이 넘는 분량.궁금한 사람은 직접 보자. 수위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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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중국사대기서의 금병매와 마찬가지의 이유로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한 듯 하다.
다른 여섯 마당인 흥보가, 수궁가, 춘향가, 심청가는 현재 어린애들도 익히 알고있는 이야기이지만, 이 가루지기타령은 적벽가와 더불어 그리 알려지지 못했다. 적벽가의 경우는 다른 판소리들과 달리 중국의 삼국지가 배경이기에 이질감에 따른 것이라 볼수 있으나, 이 경우는 성에 대한 터부가 작품을 묻어 버린 케이스.
박동진(국악인)에 의해 다시 복원되어 불렸으며 현재 변강쇠타령, 가루지기타령이라고 앨범까지 남아있다.
이대근 주연의 영화 변강쇠로 인해 변강쇠와 옹녀가 색정남녀로 이미지가 고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사실 변강쇠와 옹녀는 조선 후기에 여러 사정으로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 살아야 했던 유랑민들의 비참한 현실을 반영한 인물들이라는 것이 국문학자들의 견해다. 일부에선 변강쇠가 급살을 맞았다는 것을, 타지인을 경계하는 조선시대 마을 사람들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런 배경으로 해석하면 상당히 불쌍한 인물들이지만, 그런 점들은 잊히고 성적인 면모만 부각된게 아닌가 싶다. 즉 이대근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이미지가 포르노 취급이 되어버린 고전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국립창극단에 의해 <변강쇠 점 찍고 옹녀>라는 창극으로도 만들어졌다. 2014년 초연. 당연히 미성년자 관람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