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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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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
2.1. 의미2.2. 현대의 장승2.3. 대중문화
3. 수난4. 여담5. 함께 보기

파일:external/www.lifeinkorea.com/bChangsp2.jpg 파일:CD969DFA-71C9-4B2B-8872-7580D399B342.jpg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長栍

1. 개요

한국에서 마을의 수호신으로 믿고 받들던 조각상. 한국의 토템폴이라 할 수 있다.

2. 특징

장승이 전국적으로 퍼진 지는 생각보다 오래 되지 않아, 조선 시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세웠다. 그리하여 20세기 초에는 장승이 없는 마을이 오히려 드물 지경이었던 듯.

주로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한 쌍이 짝을 이루어 길 양편에 섰다.

주로 문서 최상단의 사진과 같은 목조로 된 장승이 대부분이지만 경상도, 전라도에서는 석재로 제작한 '돌장승'도 많다.[1] 이러한 지역의 장승은 대체로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한 쌍이 아닌 그냥 장승 하나가 우두커니 선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정형화된 구조가 대부분인 목재 장승보다 곡률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많아 장승의 모습이 훨씬 다양하다.
파일:external/www.jeonlado.com/48_00518_28-6.jpg
위 사진은 조선 후기에 제작된 전라남도 보성군의 해평리 석장승으로, 바닷일의 안전과 마을의 액막이를 위해 세웠다고 한다.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는 장승을 '벅수'라고 부른다. '벅수'가 장승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아예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학설도 있다. 즉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은 '벅수'이자 장승이지만 '장승'의 개념 그 자체를 통째로 대표하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한쌍의 구조물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상술된 내용처럼 별달리 훼손되거나 분실된 경우가 아님에도 처음부터 하나만 세워진 장승도 전국 도처에 존재한다.

돌하르방도 조선 후기 본토의 장승문화가 제주도로 건너가 지역 나름의 형태로 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학설도 존재한다.

영어로는 Village ward 또는 Totem pole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한국 전통 문화의 산물이기에 'jangseung'으로 음차해도 되고, 의미를 풀어서 Korean totem pole이라 해도 무난하다.

처음 볼 땐 좀 그렇지만 은근히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간다.

'이정표'라는 점만 놓고 보면 비슷한 구조물로 솟대도 있다. 솟대는 장승같이 험상궂진 않고 미학적으로도 수려하다. 다만 솟대는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성역으로서의 상징물'로 시작해 후대에는 '풍요의 기원을 담는 상징물'로서 기능하는 구조물이기 때문에, '이정표'로서의 설치된 형태를 제외하면 '무속적 기능'으로서는 장승과 기능은 다르다.

2.1. 의미

마을마다 장승을 직접 깎아 만들기 때문에 자세히 보면 각 마을이 제작한 장승마다 모양이 달랐다. 악귀를 쫓는 영험을 기대하여 험상궂고 해학적인 얼굴로 깎는데, 나무뿌리 쪽이 머리가 된다. 보통 마을 입구에 세우지만 길에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 이정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마을의 수호신에서 나그네의 수호신으로 역할이 확장된 것이다.[2] 신격이 낮은 하위신이지만, 그런 만큼 민생들과 밀접한 신이기도 하다.

한국 신화에서는 무조신 바리공주의 남편인 동수자 혹은 무장승이 장승들을 관리하는 신으로서 부임 받는 설화가 많다. 신화적인 의미에서 한국의 장승들은 인간세상(마을)의 경계를 수호하는 역할이므로, 바리데기가 이승(인간세계)과 저승(신의 세계)을 이어주는 역할을 맡을 때, 바리데기의 남편은 두 세계의 경계 혹은 길을 수호하는 신에 대응한다는 해설이다. 바리데기의 남편은 산신이나 용신이나 객사한 여행자를 돌보는 신이 되는 전승도 있는데, 역시나 장승들이 지닌 역할로도 치환가능하다.

이외에 황우양 신화에서는 토지신이 되는 황우양이 자신을 속이고 아내 막막부인을 빼앗으려던 악당 소진랑을 징벌하며 장승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신과함께 신화편에서도 각색되어 나온다.

민화에 따르면, 장승들끼리는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지나던 길손에게 굴욕[3]을 당한 장승이 대방장승(임금장승)에게 고소를 넣으면, 사안을 평가한 장승위원회 판결로 해당 가해자에게 수많은 질병을 벌로 내렸다.[4] 그 예로 변강쇠가 장승으로 장작을 만들자 팔도장승회의를 열어 조선의 500가지 질병으로 변강쇠를 죽였다는 민담이 있다.[5] 장승에게 해코지를 했던 가해자는 질병에 걸린다는 뜻인데, 그 병을 낫게 하려면 막걸리북어대가리를 갖다 바치고, '장승님 제가 잘못했어요!' 하고 빌면서 장승귀를 잡고 입을 맞추면 병이 낫는단다.

그밖에 인사성 없는 어린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부모님들이 웃어른에게 인사하지 않으면 죽어서 장승으로 환생한다는 미신도 말하곤 한다.

서울 장승백이(장승배기)의 장승은, 성묘하러 화성(華城)에 가던 정조가 지세가 거칠고 한낮에도 어두워[6] 길을 지키기 위해 세운 것으로, 임금이 세웠기 때문에 '대방장승'이라고 불린다는 얘기가 있다. 일단 근처에 대방동도 있고.[7] 참고로 서울의 그 장승배기의 장승은 옛 시흥군(상도동)과 옛 과천군(노량진동)이라는 두 고을의 경계에 있던 것이다.

2.2. 현대의 장승

지금도 종종 장승을 수공업으로 만드는 장인들도 있는데 엄청나게 돈을 버는 직종까지는 아니지만, 장식물로 수요가 많아서 주문이 꽤 있기에 그럭저럭 번다고 한다. 과거에는 나무나 돌로 만들던 것이 콘크리트나 철물로도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관리하기가 쉬우니.
파일:Koma_stn(SITM).jpg
일본 사이타마현의 코마(高麗)역 앞에 있는 장승.

장승은 한국 고유의 민속문화이지만, 일본에도 몇 군데에 존재한다. 일본에서는 장승을 주로 쇼군효(장군표, 将軍標)라고 부른는데, 이들 쇼군효들은 당연히 현대에 들어와서 세운 것이다. 고구려 왕족을 모신 신사로 유명한 고마 신사 같은 곳에 있는데, 애초에 삼국시대에는 지금 우리가 보는 장승이 없었다. 민단에서 세운 것으로 원래는 나무였으나 파손되어서 2005년에 돌로 다시 만들었다.

2.3. 대중문화

마법천자문에서 지킬 수(守) 마법으로 장승을 소환한다.

신과함께 이승편 단행본의 에필로그에서 저승차사를 잡귀라며 들여보낼수 없다며 가로막지만 해원맥이 상대해 강림도령이덕춘을 놓친다.

열렙전사에서 소환물로 등장한다. 그런데 지하여장군을 지하대장군으로 표기해 검열 논란을 일으켜 수많은 항의 끝에 지하여장군으로 고쳤다.

마블 코믹스에서는 타이거 디비전 소속 인물 중 대장군(Thr General)이라는 이름의 히어로로 등장한다.

3. 수난

19세기 들어 근대화가 이뤄짐에 따라 장승은 미신의 하나로 여겨져 탄압받았다. 또한 구한말 시기 유입된 기독교 선교사들은 장승을 우상숭배의 일종으로 여겼다.

이로 인해 19세기와 20세기에는 많은 장승이 사라지게 되었다. 구한말 시기부터 근본주의적인 기독교 신자들이나 선교사들이 장승을 훼손하기도 했고, 1930년대 일제시대 식민 당국은 ‘미신 타파’라는 미명 아래 전국의 장승을 대대적으로 없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조국근대화라는 이름 하에 새마을 운동과 같은 의식 개조 운동이 이뤄지면서 장승은 떨쳐버려야 할 미신의 대상으로만 간주되었다.

지금도 근본주의 개신교 신자들이 장송을 훼손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서울 동작구 장승백이의 대방장승도 이들에게 방화를 당한 적이 있고, 현재도 지하여장군이 철복대를 두르고 있다. 2012년 하반기에 천하대장군 및 지하여장군 모두 새롭게 교체되었다.

1990년 5월 연세대 장승부부 사건이라 하여, 조국통일염원의 상징으로 연세대학교 도서관 앞에 세워 명물이 되었던 장승 부부가 교내 개신교 신자들의 반발엔진톱 등으로 테러를 당한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이전인 1990년에 일어난 사건이라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당시 교내(校內)에서는 굉장한 격론이 일었던 사건이다.

학생회 측은 '그렇게 보기 싫었습니까?' 등의 대자보로 개탄했지만, 당시 교목(校牧)[8]을 비롯한 개신교계 교수들은, '방법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옳은 일을 했다.'고 종교적 신념을 내세우면서, 잘못된 방법이라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총학생회는 장승을 단순히 "민족 정신의 상징"으로 보고 설치한 것이지만, 어린 시절 이후 무종교였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 1970년대 새마을 운동에서도 미신적, 종교적이라는 이유로 마을 장승이 파괴되었던 만큼 당시 장승이란 것에는 분명 종교적인 의미가 있었으며 그렇기에 당시 보수적이었고, 21세기에 비해 좀더 종교적이었던 미션 스쿨 내 사회에서는 문제가 되었던 것. 물론 일반인이 보기에는 이런 행위 자체가 "자기들끼리만의 논리"에 불과하겠지만, 연세대 자체가 그 종교 내부의 논리로 설립된 곳이기에 이런 논란이 생긴 것이다.

4. 여담

장승에 대한 어린이 동화는 <으악, 도깨비다>가 있다. 내용은 기차와 버스 타고 내려서 타박타박 반나절을 가면 바람만 아는 깊은 산골에 장승마을이 있었고 주먹코, 멋쟁이, 뻐덩니, 키다리, 키다리의 여자친구, 짱구, 퉁눈이가 살고 있었다. 낮에는 평범한 장승이지만 밤이 되면 팔다리가 생겨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놀 수 있다. 단, 동이 트기 전까지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데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그날도 즐겁게 놀고 있을 때 동이 트려고 하자 장승들은 서둘러 원래 자리로 돌아갔지만 멋쟁이는 돌아오지 못했고 결국 멋쟁이는 밤이 되어도 팔다리가 생길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친구들이 밤마다 찾아왔자만 멋쟁이는 즐겁지 않았고 날이 갈수록 몸은 망가졌다.

그런데 어느 날, 짱구가 친구들에게 멋쟁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리자 친구들은 경악한다. 왜 사라졌는지 생각하다 사람들이 마을의 옹기를 멋대로 가져가던 중에 멋쟁이를 납치한 거라고 추측한다. 뻐덩니는 달아나자고 하지만 퉁눈이는 멋쟁이를 버릴 셈이냐며 반대한다. 이에 뻐덩니는 멋쟁이를 구하려다 우리까지 잡히면 어쩌라고 그러냐며 장승들은 두 편으로 갈라졌고 결국 싸우게 되었다. 이에 키다리가 말리면서 여긴 돌아가신 옹기 할아버지가 만들어 준 우리 마을이야. 끝까지 이곳을 지키겠다고 한 약속, 벌써 잊어버렸어? 라고 말하자 모두 싸움을 멈추고 깨달았다. 옹기 할아버지의 약속을 지켰기 때문에 장승 친구들은 밤마다 놀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장승들은 모두 멋쟁이를 구하러 간다.

멋쟁이룰 찾고 있을 때 트럭에 실린 멋쟁이를 봤고 장승들은 사람들을 놀래주기로 해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사람들에게 다가오자, 사람들이 도깨비가 나타났다며 달아났고 멋쟁이를 구하는 데 성공한다. 그 뒤로 마을에는 장승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으로 끝난다.

5. 함께 보기



[1] 충청도에서도 적게나마 발견되었다.[2] 본래 역할에 따라 명칭도 다르고 지역색을 띠었으나 점차 장승으로 통합되었다. 지역에 따라선 아직 법수, 벅수라는 이름도 사용한다.[3] 노상방뇨, 징검다리 대용 등[4] 또다른 얘기에는 한 모진 행인이 장승을 뽑아 징검다리 대용으로 썼는데 뒤에 오던 착한 행인이 물에 처박힌 장승을 손수 꺼내고 닦아준 후 갈 길을 떠났다. 이후 이 장승은 대방장승에게 모진 놈에게 천벌을 내려달라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대방장승은 장승을 건드리면 동티가 나는 건 모두 다 아는 사실인데도 아랑곳않고 막대할 정도면 평소에도 막가파라 벌을 내려도 눈 하나 꿈쩍 안 할 거라며 난색을 표했다. 결국 대방장승은 맘 착한 행인에게 가벼운 두통을 내릴 테니 그자가 바치는 젯밥이나마 얻어먹고 화를 풀라했고, 두통에 걸린 그가 부랴부랴 막걸리와 북어를 바치며 고사를 지내자 해를 입은 장승은 그자에게 내려진 천벌을 거두어주었다. 이 착한 행인에게 사죄의 의미로 장승이 꿈에 나타나 재물을 내려줬다거나 과거에 급제할 답안지를 줬다는 후일담도 있다.[5] 다만 변강쇠도 대단하다. 처음에는 한두 가지로는 전혀 통하지 않았고, 점점 질병이 늘어나도 어느 정도 버텼다. 점점 병마에 지쳐갔지만 말이다.[6] 지금이야 뻥 뚫린 도로와 주택가지만, 당시엔 시흥(금천)과 과천이라는 두 고을의 경계가 될 만큼 험하디 험한 고갯길이었다. 그리고 근처에 살피재라는 고개도 있다.[7] 일단 대방동의 유래는 번대방이라는 옛 이름이다.[8] 개신교 미션스쿨에서 종교교육을 맡는 목사. 학생들은 교수목사라는 뜻으로 아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