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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20:47:46

충각

1. 개요2. 위상
2.1. 고대2.2. 중세2.3. 근대2.4. 현대
3. 특이한 예시 및 개념의 확장4. 미디어

1. 개요

충각()은 군함에 장착되는 단단한 구조물과 바로 이를 이용하는 전술을 말한다. 영어로는 "ram" 이라 부른다. 여기서 ram은 컴퓨터 램이 아니라 숫양을 뜻하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1] 숫양은 이 생기면서 서로 화나면 바로 그들끼리 들이받으며 싸우거나 하기 때문에 배를 들이받는 충각뿐 아니라 성문을 뚫는 공성추 같이 들이받는 무기도 ram이라 불렀다.

말 그대로 기다란 뿔처럼 생긴 물건으로, 선박선수나 선미에 있으며, 높이로 보면 주로 흘수선 근처에 설치된다. 사용목적은 배를 급속으로 전진시켜서 상대방 배에 충각을 충돌시킴으로서 구멍을 크게 뚫어놓는 것.

2. 위상

2.1. 고대

파일:external/www.abc.se/olympram.jpg
곧바로 배와 배는 그 놋쇠 뱃머리를 부딪치며 전투에 들어갔다. 그리스 배가 먼저 공격하여 페르시아 갤리선을 산산조각냈다.
- 아이스퀼로스의 "페르시아인"에서 묘사된 충각전술
이 충각의 등장은 현대로 보면 화약무기가 발명된 것 만큼이나 혁명적이었는데, 이유는 충각의 등장으로 인해 적의 배를 직접 박살내는 전술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 당시 배는 작고 좁은 데다가 당연히 화포 따위는 없고 적함을 파괴하려면 기껏해야 불화살로 태우는 정도가 전부였는데 이 충각이 달린 배가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냥 적함의 측면에서 전속력으로 돌진하면 두쪽을 내줄 수 있다. 배에 전투원을 태워 바다에 내보낸다는 개념을 넘어서서 배 자체가 무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무식한 질량과 속력으로 때려박는 전법이니만큼 K=1/2mv^2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당연히 제대로 된 파괴력을 내려면 일단 배가 크고 아름다워야 무거워야 하고(=자원이 많아야 함), 적어도 적함보다는 장갑이 강해야 하며(=기술력이 좋아야 함), 속력이 높아야 한다(=노를 젓는 등의 빠른 속력을 위한 인원이 많아야 함). 그래서 충각전함을 소유한 나라는 많은 자원, 뛰어난 기술력, 많은 인구를 가진 몇몇 강국뿐이었고, 곧 충각전함 보유국 = 강국이라는 이미지가 자리잡았다고 한다. 해전사에 있어 전열함전함항공모함으로 이어지는 크고 강력한 전투함 = 강대국의 상징이란 이미지가 고대부터 있었던 셈이다.

더불어서 무엇보다 이로인해 가장 큰 변화는 군함과 상선의 분화로, 그 이전까지는 적당한 속도에 다수의 병력이 탑승가능한 선박이라면 아무 배나 군사적 용도로 전용될 수 있었다. 때문에 평시에는 상업적인 용도로 운용하던 선박을 전쟁이 발발하면 전투원을 싣고 전투함대의 일원으로 편성하는 식이었으나 충각의 등장 이후부터는 군사적 용도로 사용할 선박은 필수적으로 충각을 보유해야만 했기에 건조 당시부터 충각을 위한 설계와 적 충각을 방어할 내구력을 요구하게 되어 전투용 함선과 상선용 함선의 구분이 시작되었다.[2] 본격 무장상선과 사략함대

거기에 충각의 발명으로 고대 해전의 양상 또한 크게 바뀌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대체로 쌍방이 접근해서 화살 등을 날린 뒤 상대방의 배에 올라타 백병전을 벌이는것이 보통이었다. 이러힌 교전 양식은 무대가 물 위라는것만 제외하면 실상 육상에서의 그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허나 충각이 발명되고 나서는 적 함선의 후미나 측면을 향해 빠르게 항진해서 적함을 들이받고 다시 새로운 표적을 찾기 위해, 그리고 적 함에 박혀있어 움직일수 없어진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군함에 빠른 기동력을 요구하게 되었으며 충각 등이 모두 뱃머리 부분에 위치했기 때문에 서로 간섭하지 않기 위해 가로로 늘어선 횡렬진 형태의 포진이 기본적인 진형이 되었다.

또한 그 이전과 달리 배에는 백병전을 위한 전투원들보다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노를 젓는 노잡이들이 더 많이 요구되었으며[3] 역시 더 많은 노를 탑재하기 위해 3단 노선이 개발되었다. 또한 이런 일련의 과정에는 무엇보다 능숙하고 노련한 승조원들이 필요했기에 서로 숙련된 노잡이 인력을 조달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였으며 심지어는 적국에 복무하다 포로로 붙잡힌 노잡이들의 경우 오른손을 잘라버려서 만약 해방되더라도 다시 적국 군선에서 복무할 수 없도록 하기도 했다.

이 당시의 충각은 발전과정이 매우 복잡한데, 일단 내 배는 안부서지면서 다른 배를 박살내야 하고,[4] 일단 구멍을 뚫었으면 쉽게 빠질 수 있도록 해서 내 배와 상대방의 배가 얽혀서 같이 침몰하는 것을 막는다는 복잡한 것이라서 다양한 종류의 충각이 발달한다. 초기 페니키아그리스 갤리선들은 단순히 뾰족한 뿔 같은 형상의 충각을 달았지만 뿔 형상은 다시 빼내는 것이 어려워, 타격은 타격대로 주고 아예 박혀버리지는 않도록 끝부분이 넓적한 망치 형상으로 개량되었고 재료도 목재에서 청동제로 변화되었다[5]. 위 사진의 배는 1980년대에 살라미스 해전 당시의 그리스 3단층 갤리선을 복원한 그리스 해군의 올림피아스 호로, 청동제 충각의 정면이 王자 모양으로 개량된 모습이며, 이 충각이 최종 개량형 충각의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이집트의 경우 고대부터 충각이 아래 중세시기의 충각과 비슷하게 배의 직접 파괴가 아니라 적선의 선원들의 교란/물에 빠뜨리기가 주력인 용도로 사용되었다.

2.2. 중세

중세부터는 충각이 상대방의 배를 박살내는 것보다 적 배를 흔들어 적 선원들이 물에 빠지는 것을 유도하거나, 를 부러뜨려서 추진력을 상실하게 만들거나, 다른 배로 돌격하는 돌격반을 위한 다리역할을 하도록 변화되었다. 이는 조선기술의 발달로 인한 배의 내구성 증가와 해전의 양상이 고대와는 크게 달라짐에 따른 것이다. 이때부터 충각의 위치도 다소 변하게 되는데, 이전에는 흘수선에 위치하던 충각들이 흘수선 위쪽으로 올라가게 된다.

2.3. 근대

파일:Soerensen_Seeschlacht_bei_Lissa_1866_Rammstoss.jpg
▲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당시 벌어진 리사 해전의 기록화. 오스트리아 해군 기함 SMS 페르디난트 막스 함의 충각 공격을 받고 침몰하는 이탈리아 왕립 해군 레디탈리아 함의 모습이다.

당연히 화포가 발달한 시대에 들어서는 충각 자체가 별 의미가 없어졌다. 굳이 현대까지 안가고 근대의 갤리온급 전함만 봐도 대부분의 대포가 배의 양측면에 위치해있다.[6] 즉 여기로 돌격하는건 완전 자살행위였으며, 애초에 그 당시의 군함의 주력인 범선은 바람의 도움이 없다면 급격한 선회나 가속이 힘든 물건이었다. 무엇보다 적함에게 수직으로 함수나 함미를 내밀게 되면 가장 위험한 종사(raking fire)[7]를 뒤집어 쓸 수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ow_of_HMNLS_Schorpioen_Oct_2011.jpg
그럼에도 심지어 철갑선의 시대에 들어와서도 충각으로 쏠쏠한 재미를 본 사례가 없지않다. 철갑선의 태동기에 일시적으로 장갑의 발전이 함포의 발전을 앞섰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 시기에는 함선의 장갑이 두꺼워지면서 당시 포로는 맞추기도 힘든데 맞더라도 도저히 격파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 그중 유명한 것이 1866년의 리사 해전으로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중 오스트리아 해군이 이탈리아 함대를 상대로 충각 돌격후 포격을 퍼부어 대승을 거둔 전투이다.[8] 그러다보니 꾸준히 군함에 장비되었고, 전투용 장비으로서의 충각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은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등장으로 해전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뀐 이후의 일이다.

다소 요상한 방법으로 쓰이기도 했는데, 배로 직접 들이 받는 대신 길다란 장대 끝에 폭탄을 매달아서 선수쪽으로 늘어뜨려서 들이받아서 기폭시키는 활대 기뢰(Spar Torpedo)라는 물건이 있었다.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헌리(잠수함)의 주무장이 활대 기뢰였고 이걸로 북군의 군함 후사토닉을 격침시켰다. 충각보다는 사정거리가 길었지만 어차피 거기서 거기인지라 얼마 안가서 사장되었다. [9]

2.4. 현대

물론 현대에도 전투용으로서의 의미는 없다. 충각이라는 구조물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닌데, 진짜로 이걸로 들이받는 용도로 쓰는 건 아니고 단순히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설치된다.[10] 당연하게도 모양도 기존의 충각과 다른데다가 충격에 대비한 시설물이 거의 없으므로 이걸 가지고 적함에 구멍을 뚫으려고 하면 자신의 배부터 박살나기 딱 좋다.[11]

의외로 가끔이지만 현대전에서도 함선이 적함에 들이받는 공격을 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는 항공기의 자발성 특공이나 보병의 총검돌격처럼 함선의 체급 차가 너무 크거나[12] 자신이 충각 외에는 피해를 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작거나, 혹은 상대를 박아도 멀쩡할 정도로 크거나, 피해가 너무 커서 남아있는 게 말 그대로 몸뚱아리밖에 안 남은 함선이 도망칠 수조차 없을 때[13] 선택하는 최후의 돌격이다. 함체라는 게 생각보다 훨씬 튼실하기 때문에 정말 목숨을 걸고 돌격해 들이받는다면 적어도 적함을 식겁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리고 정말로 들이받는다면 상대에겐 물질적인 피해와[14] 정신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 보통 이쯤까지 가면 성공해도, 실패해도 격침당하는 상황이기에 항복하는 게 옳겠지만, 악에 받친 인간은 그 무엇이라도 저지를 수 있다.

고의적인 충각공격은 아니지만 전투 중 충돌 사건의 예가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뉴욕급 전함 뉴욕이 우연히 독일의 유보트를 들이받아 격침시킨 사례가 있다. 이외로도 잠수함은 사소한 외부 장갑 파손으로도 심각한 피해를 입으며[15] 장갑 자체도 약하기 때문에 잠수함에 대한 충각 돌격은 대잠전술의 하나로 인정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는 노르웨이 침공 당시 영국의 구축함 HMS 글로우웜이 독일 구축함들과 교전하다 중순양함 아드미랄 히퍼의 등장에 위기에 빠져 연막을 살포하고 숨어버리자 도주하려는 글로우웜을 격침시키기 위해 히퍼가 연막으로 접근했으나, 글로우웜이 연막에서 튀어나와 히퍼를 들이받아 한 달 동안 수리해야 할 정도의 피해를 입히고 침몰했다. 당시 생존자인 램제이 대령에 의하면 충돌 당시 조타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비스 베이 사건도 들이받는 데는 실패하긴 했지만 훌륭한 돌격 사례로, 이쪽도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

군사적 대립 상황에서 상대국 함선이 영해선 등을 침범하였을 경우 이런 전술을 쓰는 경우가 가끔 있다. 본격적으로 함포나 미사일을 썼다간 전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충돌을 통해서 강제로 밀어내는 형태. 냉전 시대에 미 해군과 소련 해군의 함선들이 이런 식으로 서로 충돌한 적이 자주 있었다. 진짜 전쟁이라 부르기에는 뭣 하지만 대구 전쟁 당시에 아이슬란드 경비정들도 영국의 대형 트롤 어선들 상대로 충각을 걸었다. 한국 해군 역시 북한 해군을 상대로 서해교전 이전까지 많이 썼었다. 동해에서도, 대한민국 어선 삼진호가 일본 EEZ경계를 침범했다는 이유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에게 세 차례 들이받혀 전복당해 가라앉은 적도 있다. 어부들은 근처의 다른 어선에게 구조되었다.[16]

이외에도 이지스함들이 유조선 혹은 상선들에 들이박아 파손되거나 침몰한 사례도 있다. 아무래도 이지스함이 가장 많은 미해군에서 가장 흔하고 그 다음이 일본 해상자위대, 그리고 노르웨이 해군이 이지스함으로 충각을 하거나 충각을 받아서 사고를 친 바 있다.

3. 특이한 예시 및 개념의 확장

1~2차 세계대전에서는 구축함들이 잠수함을 상대로 폭뢰나 함포를 쓰기 어려운 상황일 경우 그대로 들이박아버리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물론 이 경우 공격한 구축함도 어느 정도 피해는 각오해야 했지만 승무원들의 만족도는 더 높았다고. 특이한 사례로는 타이타닉의 자매선인 초호화 여객선 RMS 올림픽은 수송선으로 징발되었을 때 그 거대한 선체를 이용한 충각 전술로 U보트를 격침시킨 전적을 갖고 있다.[17] 그리고 영국의 전함 HMS 드레드노트쏘라는 포는 안쏘고 충각으로 독일 잠수함 U-29를 격침시킨 기록이 있다.

이 밖에 모가미급 중순양함들도 미군 잠수함에 들이받아 이 항목에 올라왔을 수도 있었고 함생 역시 역전할 기회가 있었으나 그러지 않고 회피기동 하다가 서로끼리 들이박았다.

JFK가 어뢰정 정장(해군)으로 근무하던 PT-109는 일본 해군의 후부키급 구축함 아마기리의 충각에 침몰하였다. 다만 이는 PT-109의 정장 케네디 중위가 당직 중 졸다 구축함을 제 때 발견 못하고 충돌당했다는 게 정설이다. 어쨌든 케네디는 이를 영웅담으로[18] 선거유세에 적극 활용하였고, 그의 당선 후 영화[19], 노래, 플라모델 등으로 상품화되었다.

전차전에서도 충각이 사용되었는데, 스페인 내전 중인 1936년 10월 29일에 세묜 쿠즈미치 오사즈치가 지휘하는 T-26이 국민군 소속의 탱켓을 충각으로 격파한 사례가 세계 최초라고 한다.

이외에도 독소전쟁 당시 소련군이 자주 실시했다. 당시 소련군의 주력전차인 T-34KV-1등이 독일 전차들과 달리 전방 장갑이 경사장갑인데다가, 속도가 빨라서 포를 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자주 써먹었으며, 포탄을 아끼기 위해서 지상에 대기중인 항공기나 야포, 시설물등을 파괴할 때 들이받아 부숴버리곤 했다. 일설에는 독소전 개전 초기, 개전 전까지 군의 반란을 염려해 탄약 지급이 적거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빈 깡통으로 출전한 전차들이 잇몸으로 때우느라 자주 충각 돌격을 했다는 설도 있다.

미국 경찰의 경우에는 검문을 거부하고 도주하는 차량을 추격할 때 피트 매뉴버(PIT maneuver)라고 불리는 기술을 사용하는데, 경찰차로 도주 차량의 뒤쪽 가장자리 부분을 강하게 들이받아 강제로 오버스티어가 일어나게 만들어 정지시키는 기술이다. 이는 추격전은 길게 끌면 도중에 민간인이나 경찰의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미국 경찰차들은 절대로 용의차량의 앞으로 안 가고 뒤를 따라다닌다. 보통 차량 전방에 setina 사의 푸시범퍼를 장착하고 있다. 어느 고수들은 피트가 걸리면 귀신같이 복귀해서 경찰들이 애를 먹게 한다고 한다. 다만 이게 고속에서 실시하면 양쪽다 위험해서 최후의 수단으로 쓰이고, 보통 스파이크 트랩이나 특수한 장치를 쓴다.

3.1. 공중전: 공중충돌

공중전에서도 적기와 충돌시켜 적기를 격추하는 방식이 있었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공중충돌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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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디어

전술했듯이 근대 이후로는 활용도가 거의 사라진 전술이지만, 굉음과 함께 상대 함선을 들이받는 모습이 강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전함이 등장하는 서브컬쳐에서 자주 나온다.

십중팔구 시전 직전에 '전 승무원, 충격에 대비하라!' 라는 방송을 하는 것이 클리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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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cf6ed4cb3601b333c44902915f14d0444ef5f92c5f40674052e513d965d13332.jpg파일:external/static.tvtropes.org/Voyager_rams_timeship.jpg
"모든 승무원. 충격에 대비하라"
장 뤽 피카드, 2379 스타트렉 네메시스 中.
[사례]
* USS 켈빈이 셔틀이 탈출할 시간을 벌기 위해 나라다와 충돌한다.
  • USS 디파이언트의 무장이 사용 불가 상태가 되자 시도했다.
  • 크롤의 스웜쉽은 함선 여러 곳을 관통하거나 아예 함선에 박는다.
  • USS 엔터프라이즈-E가 시미터를 막기 위해 사용한다.
  • USS 보이저가 크레님족 타임십에게 사용해서 타임라인이 복구된다.
  • 언딘이 보그 큐브에게 사용했다.
  • 젤리피쉬가 적색 시약을 점화하기 위해 나라다에게 사용한다.
  • 젬하다 파이터가 USS 오디세이에게 사용해 오디세이를 파괴시킨다.
  • 클링온 분열함은 두꺼운 장갑을 바탕으로 클로킹으로 은밀히 접근한 후에 목표에 들이받는다.
파일:510604812051648_2021-05-10_205116.jpg
[1] 램제트 엔진 할 때의 그 램이다.[2] 물론 여력이 있으면 전투와 운송을 겸용할 수 있는 배를 만들 수도 있다. 조선의 경우 한선의 강한 내구력에 힘입어 화물선을 튼튼하게 만들어서 전투용으로도 쓸 수 있는 맹선을 운용했다. 그러나 조선 초기가 지나면 이것도 한계에 부딪히고 전투용인 판옥선이 등장한다.[3] 이를테면 고대 아테네의 3단 노선에 탑승하는 승무원은 약 200 명 정도였으나 그 중에서 전투를 위한 전투 병력은 20 명 남짓이었으며 함장이나 갑판장 등의 일반 선원들이 10 명이었고 그 외의 나머지 170명은 노를 젓는 노잡이였다고 한다.[4] 충각돌격은 적선에 주는 피해도 크지만 자신이 입는 피해도 만만치 않다. 때문에 배를 지지하는 구조가 약하다면 충각돌격을 건 배도 무사하지 못하게 된다. 임진왜란 때 세키부네가 충각도 못하고 끔살당한 것도 이 이유다.[5] 충각은 구조상 항상 물에 반쯤 가라앉아 젖어있는 상태인데, 목재가 물을 먹어 젖은 상태로 다른 목재와 맞닿으면 뻑뻑하게 들러붙기 때문이다. 청동이나 황동 등 금속을 씌우면 오히려 매끄럽게 빠진다. 동시에 젖은 목재 충각이 썩어버리는 것도 방지할 수 있었다.[6] 다만 임진왜란의 경우 조선 수군의 판옥선이나 거북선은 그 튼튼한 선체덕분에 종종 충각 전술을 이용했다. 무엇보다도 당시 왜선들은 측면에 제대로된 대포를 장착한 경우가 몇 없었다. 다만 이는 '몸통박치기' 이지 '충각돌격' 은 아니다. 대형 소나무 선체를 쓴 조선 선박이 소형 삼나무 선체의 일본 선박보다 크고 단단하니 부딪쳤을 뿐이니까.[7] 선박의 장갑은 함선의 옆구리를 따라 장착하기 때문에 선수와 선미쪽은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약해진다. 이를 노려서 함선의 진행 방향으로 포격을 가하면 선박 내부를 말 그대로 쓸어버릴 정도로 큰 타격을 줄 수 있다.[8] 자세한 내용은 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 항목을 참조할 것.[9] 매체 등장 사례로는 한제국 건국사뇌창이 있다.[10] 이를 구상선수(bulb)라고 하는데, 물론 용도가 바뀐만큼 모양 또한 망치 모양에서 저항을 최대한 적게 받는 형상으로 바뀌었다. 조파저항을 감소(배의 형상에 관계없이 선속에 비례해 발생하는 저항. 당연히 빠른 배일수록 총 저항에서 조파저항의 비중이 크다.)시킴으로써 배의 항해성과 경제성을 향상시켜주는 효과가 있어 특수한 목적을 갖는 몇몇 선박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선박에 달려있다.[11] 더군다나 군함의 경우에는 구상선수 안에 소나를 넣어두는 경우가 많기에 들이받으면 소나가 망가질 수 있다.[12] 제2차 세계 대전존 F. 케네디PT 보트를 들이받은 후부키급 구축함 아마기리 호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 외에 연합군 해군의 호송선단 호위함들이 종종 U보트들이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 잠항하기 직전에 고속으로 들이받아 격침시켜 버리는 전술을 쓰기도 했다.[13] 도망쳐도 어차피 잡혀 죽는 게 뻔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지켜야 할 다른 함선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야 한다거나.[14] 아무리 함급이 차이가 커도 최소 수백~ 천 톤짜리 함체가 들이받는 것이다.[15] 잠수에 최적화된 설계가 무너지게 된다.[16] 일본의 과잉 대응을 이유로 당시 정치 쟁점화 되는듯 하다가 뉴스1, 뉴스2에서 사라졌다.[17] 1차 세계대전에서 상선으로 설계된 배가 군함을 침몰시켜버린 유일한 기록이다. 그래서인지 네이버캐스트의 무기의세계 항목에 실려있다…[18] 원인이야 이래저래 논쟁거리가 있지만 어찌됐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부상을 입었음에도 바다에 빠진 부하들을 구출하여 일본군의 수색을 피해 모두 무사히 귀환시킨 공로로 영웅대접을 받게 되었다.[19] 참고로 이 홍보영화를 만들려고 미군이 미국 전역을 다 뒤졌는데, 온전히 남아있는 PT보트가 없어서 대여 형식으로 공여한 대한민국 해군의 PT보트를 다시 가져가 촬영했다. 당시 대한민국의 국방력은 지금처럼 강한 편이 아니어서 PT보트 한 척도 귀한 전력이었던 탓에, 보트를 돌려달라는 요구를 대한민국 해군이 완강히 거절하였지만, 미 해군은 PT보트를 돌려주면 애쉬빌급 고속정을 대신 빌려주겠다는 엄청난 보상을 제시해 결국 돌려주었다. 대한민국 해군은 이 거래를 통해 미국에서 건조된 애쉬빌급 한척을 그대로 받고, 생산 라이센스도 받아와 백구급 유도탄고속정을 만들었다. 이때의 경험으로 참수리급 고속정이 만들어졌으며, 미사일 플랫폼으로서의 고속정급 함정의 운용개념은 윤영하급 유도탄고속함의 개발로 이어졌다. 영화 한 편이 현대 대한민국 해군의 연안전투력을 발전시키는데 본의아니게 큰 기여를 한 것이다.[20] 위그선인 룬 급은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으로 충각 대미지를 넣을 수 있다.그래서 별명이 카미카제다[21] 월탱의 경우엔 저렇게 위에서 찍어누를 경우 한번에 대미지가 들어가는 게 아니라 도트 대미지 들어가듯 들어간다. (월탱 개그 영상에서 보면 저런 식으로 눌러잡는 영상이 꽤 많다.) 물론 전자처럼 정면에서 고속으로 들이박거나 머리 위로 쿵 하고 떨어지면 한번에 빡!하고 들어간다.[22] 보통은 꼬리날개 모듈 파괴 판정을 받고 꼬리날개가 잘려나가 추락했지만, 가끔 들이받은 쪽이 느리고 내구도가 낮은 복엽기인 반면 들이받힌 쪽은 튼튼한 공격기라면 운이 좋다면 공격기는 살아남는 경우도 있었다.[23] 이 상황이 가장 자주 나오는 경우가 난전 중이거나 한 대를 여러 대가 추격하는 과정에서 비행 경로가 겹쳐 발생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거의 우연의 일치라서 어쩔 수 없지만, 후자는 괜히 적기 잡으려고 무리하다가 사고 친 경우가 절대 다수이므로, 레이더 등으로 주변을 항상 살피는 습관을 길러야 후자는 물론이고 전자의 상황까지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24] 실제론 거북선만의 산물이 아니라 판옥선들도 자주 써먹은 것으로 여겨지는데, 당시 일본의 주력 전투선들이 조선의 주력 전투선인 판옥선보다 내구성이나 크기 면에서 현저히 밀렸기 때문이다.[25] 물론 USS 디파이언트같은 예외도 있다.[26] 커크 선장은 마지막에 엔터프라이즈호로 전송되어 복귀한다.[27] VOY에서 보그 큐브가 언딘한테 시도.[28] DS9에서 젬하다 어택쉽이 갤럭시급 USS 오디세이한테 시도해서 격침시킨다.[29] 물론 여러 현실적 문제 때문에 대부분 그 전에 퇴역시키지만 작중에서 간혹 등장하는 난파하거나 버려진 오래된 함선들을 보면 200년은 충분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30] 함선을 새로 만드는 수준이라 보면 된다.[31] USS 보이저가 타임쉽에게 시전하는 사진인데 보이저의 함급인 인트레피드는 장거리 탐사선/순양함급이다.[32] 아예 제국 함선의 기본 설계가 충각 돌격을 염두에 둔 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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