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1f2023><tablebgcolor=#ffffff,#1f2023> [[T-34-76| ]] | }}} | |||||
파생형 | 실전 | 운용국 | 미디어 | 모형 |
Т-34-76 |
1. 개요
T-34-76 1942년형 기동 영상 |
T-34-76 1941년형 기동 영상 |
소련군이 붙인 별명은 로지나(Родина: 조국, 모국)이라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많이 쓰인 말이 아니었으므로 현지에서 찾을 때는 그냥 Т-34[3]라고 해야 알아듣는다. 독일군이 붙인 별명은 미키 마우스인데, 여기에 관해서는 후술된 1942년형을 참조할 것.
핀란드군에서는 "물오리(Sotka)"[4]라 불렀다. 측면에서 볼 때 전방에 쏠려있는 포탑의 모습이 마치 물오리 같다면서 붙인 이름. 개량형 T-34-85는 "긴부리 물오리"라 불렀다.
2. 제원
<colbgcolor=#556B2F> Танк Т-34-76 | |
제원 | |
개발국가 | 소련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
개발기관 | 하리코프-모로조프 기계 설계국 (KhMDB) |
개발자 | 미하일 코시킨 알렉산드르 모로조프 |
개발연도 | 1939년 ~ 1940년 |
전차 생산기관 | 제183번 스탈린 전차 공장 코민테른 증기기관차 183번 공장(KhPZ) 우랄열차공장(UTZ) 우랄마쉬(UZTM) 제르진스키 기념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STZ) 첼랴빈스크 트랙터 공장(ChTZ) 붉은 소르모프 제112번 공장 제174번 공장 하리코프 디젤 75공장 모스크바 40공장 |
부품 생산기관 | 제9호 야포 공장 야로슬라블 타이어 공장 |
생산연도 | 1940년 ~ 1944년 9월 |
생산 댓수 | 1940년형: 117대 1941년형: 3,014대 1942년형: 12,520대 1943년형: 19,682대 도합 35,120대 |
생산 단가 | 1940년형 ~ 1941년형: 269,000₽ 1942년형: 193,000₽ 1943년형: 135,000₽ |
운용 연도 | 1940년 ~ 현재[5] |
운용 국가 | 소련 포함 도합 10여개국 |
전장 | 6.68m (포신 포함 시) / 5.95m (포신 미포함 시) |
전폭 | 3.00m |
전고 | 2.45m (차체 전고) 0.40m (포탑 전고) |
전비 중량 | 1940년형: 25.6t 1941년형: 28.3t 1942년 ~ 1943년형: 29.8t |
탑승 인원 | 4명 (전차장, 조종수, 탄약수, 무전수) |
엔진 | 하리코프 모델 V-2-34 12기통 4행정 수랭식 디젤엔진 |
최고 출력 | 500hp |
출력비 | 1940년형: 19.53hp/t 1941년형: 17.66hp/t 1942년 ~ 1943년형: 16.77hp/t |
변속기 | 수동변속 4단 전진&1단 후진 |
현가 장치 | 크리스티 현가장치 |
최고 속도 | 53km/h / 25km/h (평지 주행 시 / 야지 주행 시) 후진 10km/h |
항속 거리 | 250km / 220km (내장 연료 탱크 적재 시 평지 / 야지), 340km / 310km (외장 연료 탱크 추가 적재 시 평지 / 야지) |
주무장 | 1940년형: 76.2mm L-11 강선포 1문 (77발) 1941년형: 76.2mm F-34 강선포 1문 (77발) 1942년 ~ 1943년형: 76.2mm F-34 강선포 1문 (100발) |
부무장 | 1940년형: 7.62mm 덱탸료프 전차 동축기관총 2정 (1,890발) 1941년 ~ 1943년형: 7.62mm 덱탸료프 전차 동축기관총 2정 (2,898발) |
3. 내부
T-34-76 (1943) 내부 상세도 |
우선, 먼저 설명할 특징으로는 역시 T-34의 대표적인 구조인 경사장갑 구조를 꼽을 수 있는데, 이는 여러번의 실전으로 기존 소유하고 있던 T-26, T-28, BT 전차 들의 한계를 실감하여 차세대 주력전차가 될 T-34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선진적인 설계를 적용하도록 하여 나온 산물이었다. T-34의 전방위 장갑은 약 45mm 두께의 전면 60도, 측면 40도로 이루어져 있어, 정면장갑의 경우 이론상 약 90mm 수직 장갑과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이 덕에 동시대 타국의 3호 전차나, 4호 전차, 밸런타인 전차 등과 견주어 봤을 때도 전혀 밀리지 않는, 독소전 초반에는 마치 움직이는 토치카와도 같은 견고함을 보여주었다.
무장은 초창기에는 76.2mm L-11 포를 장착하고 있었는데, 해당 포는 본디 T-28이 장착하고 있던 동구경 주포인 L-10 전차포를 개량하여 T-34에 장착한 것으로, 고폭탄 화력이나 대인 진압 능력은 겨울전쟁 때 T-28이 활약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 뛰어난 편이었으나, 주포의 구경장이 짧다는 문제 탓에 대전차화력이 빈약하다 판단되어, 독소전쟁 주간인 1941년, 76mm 야포인 ZiS-3를 기반으로 한 신형 전차포인 F-34로 교체되어 기존의 대인살상능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구경장이 길어진 덕분에 대전차화력도 어느 정도 챙길 수 있었다.
구동계는 불후의 걸작이라고 손꼽히는 V12 V-2 디젤 엔진을 장착했는데, 가솔린이 주력이던 시대에 어째서 디젤 엔진을 장착했냐면, 당시 소련은 산유국이었지만 원유를 정제 및 가공하는 기술이 부족했고, 추가로 추운 날씨 때문에 디젤유의 선호도가 높은 편에 속했다. 또한 주철 엔진의 개발이 어려웠던 탓에 놀랍게도 알루미늄을 이용하여 엔진을 만들어 냈으며,[6] 이 때문에 기존 가솔린 엔진을 사용하던 다른 전차와 달리, V-2 엔진을 장착한 T-34는 엔진 냉각에 유리하다는 점과, 추운 날씨에서도 문제 없이 가동 가능하다는 장점은 물론, 적에게 노획당했을 때도 디젤유를 사용한다는 점 탓에 오래 운용하기 까다롭다는 이점을 보유하게 된다.
4. 개발사
А-34 |
하지만 T-34가 채용되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험난했다. 1940년 T-34 전차의 채용이 사실상 확정되어 제183호 공장에서 500대,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에서 100대를 생산하기로 계획되었던 차에 독일로부터 3호 전차 2대가 수입되는 난항을 겪게 되었다. 소음은 치하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요란하기 그지없었던 T-34에 비해서 비교적 소음이 적은 3호 전차는 소련 기술진을 경악하게 만들었고 안정된 서스펜션과 넓은 포탑 내부 공간, 그리고 전차병 개개인에게 지급되는 차내 인터폰 및 우수한 성능의 무전기 등 T-34가 3호 전차에 비해 유리한 것은 공격력과 방어력뿐이었다. 하지만 당장 T-34가 못쓸 물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포병 병과원수 그리고리 쿨리크(Григо́рий Кули́к, Grigory Kulik)는 이를 빌미로 계속 시비를 걸면서 T-34의 설계 및 생산 자체를 원천 봉쇄하려 한다.
그리고리 쿨리크 |
그 이후 수석 기술자가 된 모로조프가 재설계했지만 쿨리크는 끈질기게 훼방을 놓았는데, 심지어 T-34M(A-43)의 개발이 완료될 때까지 기존 T-34의 생산을 중지할 것을 제의하는 판국이었다.[9]
이렇게 온힘을 다해서 방해하는 쿨리크에다가 여러가지 악재까지 더 겹쳐서 1940년 제183 공장과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에서 생산될 약 600대의 T-34/76은 겨우 117대만이 생산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쿨리크의 만행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는데, 실탄을 낭비한다며 기관단총 도입을 막았고 지뢰도 쓸모없다고 주장했던 것이다.[10] 결국 바르바로사 작전부터 시작된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는 커다란 원인이 되었다. 그 책임을 물어 육군 소장으로 강등된다.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는 전화로 스탈린에 대한 험담을 하다가 도청에 걸려서 반혁명죄로 처형된다. 그리고 쿨리크가 그렇게 밀던 A-43은 독소전쟁이 발발한 뒤 T-34의 생산라인에 차질을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폐기된다.
5. 형식
흔히 T-34/76, T-34/85 등의 주포별 분류법은 독일에서 사용한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 대신 - 하이픈을 사용하여 T-34-85와 같이 표기했다. 독일은 T-34-76을 세분화해서 분류하였으나, T-34-85 1943년형(D-5T 장착형)과 1944년형(ZiS-S-53 장착형)은 동일하다고 여겼는지 분류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본국 소련에서는 형태에 따라서 특별히 분류하지 않았다. 서방에서도 독일 자료를 의존했으나, 1960년대부터 동구권 국가에서 발행된 책자를 입수한 서방에서는 T-34에 대해서 비교적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또한, 흔히 T-34는 만들기 시작해서 그냥 많이 만들었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의 모델만 주구장창 생산했다기보다는 생산연도 및 공장에 따라 전차 형상에 제각각 상당한 차이가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포탑이나 포방패, 보기륜 모양 등이 달라진다.
육각형 포탑의 경우 기존 T-34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성능이 향상된 경우지만, 철제 보기륜마냥 성능이 이전 생산형보다 오히려 더 떨어지는 경우가 존재했다. 이 경우 고무 타이어 공급에 차질이 빚어졌고, 상황이 워낙 급박한 상태에서 생산을 지속해야 했기에 발생한 문제다.
이 분류법은 독일식 분류법으로 정작 소련에서는 특별히 구분하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크게 주포의 구경에 따라 분류한다. 76mm L-11 또는 F-34 전차포를 주포로 탑재한 T-34-76, 57mm ZiS-4 전차포를 주포로 탑재한 T-34-57, 85mm D-5T 또는 ZiS-S-53 전차포를 주포로 탑재한 T-34-85로 분류한다.
T-34는 스페인 내전에서 기존의 고속/경장갑 중심의 전차들이 37mm PaK 36 같은 견인식 소구경 대전차포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경험에 대한 반성에서 탄생한 중형전차이다. 동맹국 생산을 포함하여 1940년에서 1948년까지 약 8만 4천여 대가 생산된 것으로 추산되어 대전 중 생산된 전차로서는 최다 숫자를 자랑한다.
초기에는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한 대구경인 76.2mm포를 주포로 장비하였으며, 미국의 크리스티 현가장치는 경쾌한 기동력을, 넓은 캐터필러는 극한지에서의 기동력을 보장하였다. 차체와 포탑의 전/측면 장갑부에 크게 60도급 피탄경사설계를 도입하였다.
독소전 극초기에는 주력 대전차포의 구경이 대부분 37mm에 그쳤기에 전면에서 T-34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없었고, 이는 방심하던 독일군에게 큰 충격을 불러왔다. 기존에 독일의 주력 대전차포인 37mm PaK 36은 T-34의 장갑앞에서 무력했기 때문이며 결국 PaK 36이 "도어 노커"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된다. 물론 105mm 야포나 8,8cm FlaK를 사용하면 격파할 수 있었으나 그 이외에는 대응 수단이 마땅하지 않았다. 그후 독일군은 5cm PaK 38과 이를 선회포탑에 장착한 3호 전차 J형을 투입해서 어느정도 T-34를 상대할 수 있게 되었으나 5cm 포도 귀한 APCR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확실하진 못했고 결국 7,5cm PaK40 대전차포를 배치하여 동등한 전력으로 사용 할 수 있었다.
이 형식을 보통 T-34-76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생산 시기에 따라 꾸준히 개량이 가해졌기에 주포가 같은 T-34-76이라고 하더라도 1943년형처럼 연도에 따라 별도로 구분하는 게 옳다.
경쾌한 기동성과 상당한 화력, BT 고속전차로부터 물려받은 경사장갑 설계로 당시 3호 전차,4호 전차가 주력이던 독일군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후 독일군은 T-34의 장점을 적극 도입한 5호 전차 판터를 새 주력으로 개발하는 등 기갑전력 개선에 박차를 가하지만 이미 서서히 수세에 돌입한 상황에서 독일의 국력은 소련을 따라가기에 역부족이었다.[11]
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 중기에 유럽 대부분의 자원과 공업력을 장악했기에 잘만 운용했다면 풍족한 자원과 함께 엄청난 공업 생산력을 갖출 수도 있었으나 전통적인 장인 위주 공업 시스템 때문에 품질은 매우 우수한 반면 생산성은 낮았는데, 인력난으로 숙련공들까지 하나둘씩 군대에 징집되면서 그 자리를 전쟁 포로들이나 동유럽에서 징집된 노동력으로 때울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들은 직접 싸우는 대신 마지못해 만드는 물건의 기본적인 품질도 저하시키는 식으로 저항했다.[12] 많은 사람들의 인식과는 달리 독일은 1941년 즈음엔 이미 총력전 체제에 들어섰으나, 기업들의 낭비와 비효율적인 전시경제체제의 운영으로 인해 공업 효율이 극도로 나빴다. 프리츠 토트 - 알베르트 슈페어 등의 생산개선을 거쳐 독일의 생산력은 1944년 즈음에는 소련과 맞먹는 수준까지 올라갔지만 이미 전세의 주도권이 뒤집힌 상태였다.
반면 소련은 독소전 초기에 주요 공업 지대를 죄다 빼앗기고 전쟁 중기까지 영국에 비해 랜드리스를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13] 빠른 총력전 돌입과 저품질 대량 생산에 의해 여전히 독일에 뒤지지 않는 생산력을 발휘했다. 초기에 소련군 병기의 품질은 독일에 비해 훨씬 떨어졌지만 공장의 규모가 커지고 갈수록 경험이 쌓이면서 생산 속도는 더 빨라지고 품질도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고로 전쟁 초반에는 품질이 높고 하나 하나가 강한 병기를 가진 독일군이 매우 우세했으나 숙련공의 느린 양성 속도 때문에 생산량도 답보 상태였고, 전쟁에서 밀리면서 갈수록 연합군의 집요한 폭격으로 공업력과 자원줄도 떨어져 가니 뒤늦게 총력전에 돌입해서 비숙련공을 돌리기 시작해도 이들이 쓸 여유 자원도 공업력도 부족해진 독일에 비해 경험과 규모에 의해 갈수록 더 많이, 쓸만한 품질의 병기가 튀어나오는 데다 랜드리스에 의한 추가적인 자원과 영토 해방에 의한 공업력과 인력까지 추가된 소련의 생산시스템은 대전후기의 생산력 차이를 엄청나게 벌려버렸다.
독소전쟁 발발 시점에서 소련군이 배치한 T-34는 960대(생산은 1,220대)였고 이는 독일군이 동원한 전차 3,000여 대 중에 3호 전차와 4호 전차의 수량이 약 2천 대 정도였음을 감안해 보면 그렇게까지 모자르지는 않을 정도의 숫자였다. 그러나 막 새로이 배치된 신형 전차다보니 제대로 운용할 줄 아는 승무원 및 정비 인력이 거의 없을 정도였고, 대숙청으로 인해 지휘체계에 심각한 혼란이 발생한 데다 예비 부품과 탄약비축량마저도 극히 부족해[14] 거의 힘을 쓸 수 없었다.[15] 심지어 한 소련 육군 전차병은 '파시스트 놈들 땅크는 펄펄 날아다니는데 이 쌍놈의 T-34는 조금만 달려도 퍼져버린다. 변속기도 독일 놈들이 더 좋았고, 우리 건 엿이나 바꿔먹으면 딱 맞는다.'고 했다. [16]물론 소련도 독일처럼 중전차를 가지고 있었지만 소련의 중전차는 독일의 중전차와 다르게 대전차전보다는 전선 돌파나 보병 지원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소련의 교리상 대전차전은 T-34와 SU-85/100이 우선 투입되었고 IS-2와 ISU-152는 필요하다면 대전차전에 투입되는 정도였다.
거기다 소련은 독일과 달리 전차를 분산운용하였는데, 이는 전훈의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된 바가 컸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전투가 이어진 스페인 내전에서 운용된 소련제 전차는 본질적으로 장갑이 얇은 경전차인 데다가, 호위 보병없이 단독으로 운영되는 대실수를 저지르는 등의 삽질이 겹쳐져서 그다지 활약을 못하고 보병에 큰 피해를 입었는데, 공화국군의 군사고문으로 갔던 소련 육군 장교들이 이것을 보고 한 목소리로 "대규모 전차운용은 별로 효과없고, 역시 전차는 보병에 딸린 보조역을 맡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소련 육군은 스페인 내전 이후 사단급 이상의 기갑부대를 모두 해체하고 기껏해야 보병사단에 부족한 여단이나 연대급으로만 기갑부대를 운용했다.
그러다가 독일군이 폴란드 침공, 프랑스 침공에서 대규모 전차운용으로 성공을 거두고 겨울전쟁에서 소련이 참패하면서 다시 예전대로 전차부대를 대규모로 편성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독소전쟁이 발발하고 신편되거나 재편중이었던 소련 육군 기갑부대는 아직 제대로 전투를 벌일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실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모스크바 방어전 이후에는 생산량도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하고 소련 육군 지휘관들이 전차의 집중운용 개념을 어느 정도 습득하고 활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서 1944년부터는 본격적인 개량형인 T-34-85에게 바통을 넘기고, 남은 T-34-76은 새로 보충되지 않고 전장에서 격파될 때까지 사용하다가 박살나면 T-34-85로 교체고, 박살난 전차는 쓸만한 부품은 다 뜯긴 후 방치되거나 고철로 변했다. 그래서 의외로 생산량에 비해 21세기 시점까지 남아있는 양은 매우 적고 대부분은 박물관에 전시된 상태다.
라브리넨코와 승무원들 |
5.1. 1940년형
T-34 1940년형 |
대다수의 차량에 무전기가 장착되어 있지 않아서 협동 작전에 난항을 겪었으며, 주포인 30.5 구경장 L-11 포도 장갑 관통력이 낮았기에 얼마 안가서 1941년형으로 개량되었다.
5.2. 1941년형
KhPZ / 112번 공장 생산 T-34 1941년형 |
STZ 생산 T-34 1941년형 |
1941년 당시 2,800여 대가량이 생산될 예정이었으나 그 수를 뛰어넘은 3,014대가 양산되었다. 하리코프에서 1,560대 이상, 니즈니 타길에서는 25대, 112번 공장에서는 173대, 스탈린그라드에서는 1,256대가량이 생산되었다.
또한, 생산 공장마다 약간씩 형태가 달랐다. 이는 당시 각 공장마다의 방식으로 스스로 문제점을 해결하여 생산했기 때문이다. 붉은 소르모보 공장의 경우에는 76.2mm 포탄의 탄피를 이용해서 엔진시동에 필요한 압축공기탱크를 제작했다.[18]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STZ)은 보기륜을 감싸는 고무의 공급이 부족해지자 철제 보기륜을 제작하기도 하였는데, 특히 스탈린그라드에서 생산된 전차는 통짜 보기륜과 특유의 포탑으로 단박에 구분할 수 있다. 독일군들이 스탈린그라드 코앞까지 와도 밤낮으로 트랙터 공장 노동자들은 쉬거나 대피하지 않고 전차를 생산했다. 생산하는 즉시 도색도 안 한 상태로 바로 투입되었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불필요한 부분의 공정을 최소화시켜 생산력을 올렸다.
5.3. 1942년형
UTZ / ChTZ 생산 T-34 1942년형 |
UZTM 생산 T-34 1942년형 |
112번 공장 생산 T-34 1942년형[19] |
STZ 생산 T-34 1942년형 |
무겁고 열기도 힘든 탓에 러시아식 만두인 피로조크라고 불리기까지 한 대형 해치가 가벼우면서도 방탄성이 있는 2인승 해치로 재설계되어 탈출시에는 전차병이 더 빨리 탈출할 수 있게 되었고, 포탑 또한 약간 대형화되었다. 두 개의 둥그런 해치를 수직으로 활짝 열어제낀 상태의 T-34를 정면에서 보면 영락없는 생쥐 얼굴로 보여서 독일군은 이때부터 T-34를 미키 마우스라는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43년형이 본격적으로 실전에 투입된 1943년부터 T-34의 비공식적인 별명이 된다.[20]
그러나 전선 코 앞의 STZ의 경우는 공장도 언제 폭격당할 지 모르는 상태였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포탑은 1941년형의 것으로 생산했고 보기륜은 통짜 철제, 불필요한 부품은 빼서 도색도 안한 상태로 바로 투입되었다.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에서 생산된 1942년형들은 당시 고무 부족으로 통짜 철제 보기륜을 제작하여 달았다. 결국 쇠로 된 바퀴와 쇠로 된 궤도끼리 달라붙어 정말로 끔찍한 소음을 유발했으며, 전차병들은 이 소리를 참고 다녔다. 포탑 역시 주조형으로 1941년형보다도 오히려 비좁았다.
이 밖에도 112번 "붉은 소르모프" 공장 또한 1941년형의 포탑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추가적인 사항으로 탱크 데산트 상황을 고려하여 포탑에 보병 승차용 손잡이를 장착하고 있었다.
5.4. 1943년형
UTZ / ChTZ 생산 T-34 1943년형 |
UZTM 생산 T-34 1943년형 |
6. 평가
6.1. 장점
- 대구경 장포신 주포
상대인 독일은 대전차용 주포를 3호 전차에 장착하고, 대보병용 주포를 4호 전차에 장착하여 전차들마다 역할을 분리하였지만, T-34는 처음부터 다용도를 상정하고 개발된, 76.2mm의 장포신 주포를 장착하여 2차대전 초기 중형전차 중 가장 큰 구경의 주포를 가지게 되면서 대전차 용도와 대보병 용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21]
T-34-76 및 T-34-85 측면 장갑도 |
- 300km가 넘는 탁월한 항속거리
T-34의 경쾌한 주행 능력과 함께 최대 300km가 넘는 항속거리(서울-부산 직선거리정도)는 독일군에게 상상도 못할 속도의 대규모 포위기동을 가능하게 했다. 사실상 43년 가을부터 45년 2월까지의 독소전쟁은 소련군의 대규모 포위기동이 성공하느냐와 독일군이 이를 저지하거나 성공적으로 탈출하느냐의 싸움으로 점철됐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T-34로 편성된 소련 전차군들이었다. 독일 전차들은 항속거리가 100~150km 수준인데다가 그 거리를 T-34처럼 쉬지않고 기동하다가는 주행계통이 고장나며 퍼져버렸다.[23] 1943년 7월 쿠르스크 전투중 프로호로프카 전투는 T-34의 주행력을 여지없이 보여준 전투였다. 약 500여대의 T-34를 주력으로 하는 소련군 제5전차군은 자체기동으로 약 400km를 주파하여 프로호로프카에 전개하여 돌출부를 따러 전진하는 제 2 SS 기갑군단을 저지했다. 이 전투에서 소련군은 전술적인 참패(전차 손실교환비는 10:1)를 했지만, 독일군은 이 전투에서의 소모로 더 이상의 전진이 불가능했고, 소련군은 결과적으로 돌출부를 방어하는데 성공하였다. 결국 히틀러는 치타델작전을 취소했고, 동부전선의 균형추는 소련군에 기운다.
- 가격이 저렴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생산시에 숙련된 노동자나 기술자가 별로 필요하지 않다.
가격이 상당히 저렴한데, 독소전 중기 이후에는 압도적인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여 값이 더 떨어졌다. 이 가격은 전쟁 초반에 26만 루블에서 19만 루블까지 떨어졌는데, 당시 티거 1의 가격이 25만 마르크였다고 한다. 당시의 환율을 제대로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외국 밀덕들의 가격 평가에 의하면 가격비는 티거에 비하면 1:4~5 정도이며, 4호 전차와의 가격비는 1:1.5~2, 판터와의 가격비는 1:2.5~3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티거 1대를 발주해서 전장에 올려놓으면 T-34는 같은 가격으로 4~5대가 달려드는 셈이니 왜 T-34가 전장에서 떼로 몰려올 수 있는지를 설명해준다.[24] 게다가 독일 군수업체들은 끝까지 중간에서 이윤을 최대한 떼먹었지만, 소련 공산주의 체제에선 이윤같은건 없고 투입=산출인 점도 있다. 당장 T-34의 궤도와 독일제 Sd.Kfz. 251의 궤도를 비교해 보자. T-34는 그냥 궤도 한 조각이 철판 하나고 거기에 핀 몇 개 꽂아서 연결하면 끝이지만 독일제의 경우는 볼베어링과 충격흡수패드 및 온갖 부품이 다 들어간다. 심지어 T-34의 경우 궤도들을 연결하는 핀이 좌우로 미끄러져 빠지지 않도록 고정하는 장치도 없다! 차체 안쪽에 작은 돌출부위가 있어서 안쪽으로 빠지지는 않게 도로 쳐넣는 기능을 했고 안쪽은 그냥 못대가리 형태로 해서 바깥쪽으로는 빠지지 않게 했다. 이렇게 구조를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서 생산성을 높였던 것이다.
그만큼 마무리가 거칠거나 성능이 부족한 부분도 있었지만 이는 전차의 예상 수명을 개별 부품이 넘어서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설계의 복잡도, 마무리 및 품질 관리(QC) 과정을 간략화한 결과물이었고, 개별 차량의 신뢰성은 감소되었지만 그만큼 더욱 많은 물량을 쏟아낼 수 있었다. 또, 전차전의 경우와 달리 대보병전에선 T-34도 위력이 충분한 만큼 여러 상황을 종합해서 따지면 T-34 5대가 티거 1대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며, 게임과 달리 실제 전장에서 대보병전에 비하면 대전차전은 매우 드물게[25] 발생했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이는 굉장한 장점이다. 간단한 예로 티거 1대가 T-34 5대와 붙어서 이길 수 있다 쳐도[26], 보병 전력이 동일하고 주요 거점 5곳을 점령해야 한다는 상황이라면 T-34는 1대씩 보병들에게 딸려 보낼 수 있어 전차 지원을 등에 업은 병력이 4군데를 점령할 수 있는데, 티거는 T-34 1대를 격파하고 1곳밖에 점령하지 못한다. 그 뒤에 티거는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략적으론 포위당해서 후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더해 독일의 중전차들은 전략적인 자력 후퇴를 할 수 없는 한심한 구동계 신뢰성을 가지고 있기에 기록상으로는 자폭 또는 고장으로 인한 비전투 손실로 기록되나 실질적으로는 T-34가 독일의 중전차들을 전투없이 박살내버린게 되어 교전비만 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숨어있는 엄청난 전과를 만들게 된다. 더욱이 이 소련은 이전부터 의무교육이 덜 된 민중들이 많아서 무기를 개발할때 '무학력자라도 이해할 수 있는 무기'를 지향[27]해왔는데 이게 제대로 맞아 떨어진 것이다.
- 동력계통과 완충구조의 우수성
V-2 12기통 디젤 엔진은 헤드와 블록 모두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었고[28] 디젤엔진의 특성상 소음과 진동이 심했지만, 휘발유 엔진과 다르게 겨울철 낮은 온도에서도 시동이 잘 걸렸고 연비도 우수해 300km대 항속거리 달성에 매우 큰 공을 세운 엔진이다. 그래서 독일도 V-2 엔진의 카피와 더불어 자체적인 디젤엔진을 도입하려고 했지만. 당시 전차에 쓸만한 디젤 엔진을 생산할수 있었던 벤츠에서 개발에 실패하는 바람에 독일군의 기갑부대는 끝까지 가솔린 엔진으로 움직였는데, 이는 석유자원이 부족한 독일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 반대로 소련은 정유기술은 부족해서 항공유는 미국의 원조를 받고 있었지만, 디젤엔진에 쓰이는 경유는 그다지 정유기술이 필요하지 않아서, 소련 기갑부대는 연료가 부족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 훈련을 부실하게 받은 병사도 쉽게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조작이 간단하다.
소련군은 직전의 농업집단화때문에 농민으로부터 수십만의 트랙터 운전사들을 양성했는데 이들을 모두 전차병으로 징집하여 운용했음에도 T-34-76 전차의 운전병으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 구동계가 모두 전차의 후방에 있다.
이는 BT 고속전차 시리즈부터 내려오는 일종의 소련 전차의 특징으로, 당시 독일군도 전차의 구동계를 최대한 후방에 설치하려 각종 기술적 시도를 해보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것이 장점인 이유는 당시 전차들은 엔진이나 변속기의 고장이 잦아 잦은 수리를 해야했는데 변속기가 전면에 있는 경우 일단 변속기가 들어갈 공간까지 고려해서 전면장갑을 붙여야 하기때문에 T-34같은 경사장갑을 쉽게 도입하기 어렵다. 도입하더라도 승무원의 공간을 많이 희생해야 했었고. 게다가 수리를 하려면 정면장갑 일체를 들어내야 했기 때문에 야전에서는 수리가 사실상 불가능해서 단지 크레인으로 엔진룸 상부장갑을 연뒤 손상부위만 교체하면 되던 T-34와의 정비 편의성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물론 정면에 변속기가 있어서 일종의 이중방호는 가능하다고는 할 수 있을진 몰라도 굳이 그것때문에 관통시 기동력이 무력화되게 설계해봤자 그 상황은 이미 준격파 수준으로 전차를 포기해야 한다. 일반적인 총력전 상황에서라면 어지간히 인구가 부족해서 승무원 한명 한명을 아껴야 되는 상황이 아닌 이상 당연히 후자가 유리하다. 그리고 소련은 그렇게 멸망위기 수준으로 인구가 모자란 적은 없었다. 반대로 전차 차량 수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지만 인구가 절대적으로 모자란데다 제대로 된 적 전차란걸 마주할 일이 드문 현대 이스라엘의 메르카바는 엔진이 앞에 있다.
- 궤도핀 고정장치가 필요 없다.
상술하였듯 이는 T-34의 궤도핀을 안에서 밖으로 박는 방식으로 설계하고 그에 따라 차체 측면에 궤도핀 차개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운행하기만 해도 핀차개가 알아서 궤도핀이 삐져나올 때마다 차넣어 주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운행할때마다 일일이 궤도핀이 빠지진 않았나, 고정장치가 손상되진 않았는가를 실필 필요 자체가 아예 없다. 그나마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충격이나 피탄, 핀차개에 차인 것에 의한 궤도핀의 손상여부와 핀차개가 핀을 차며 입은 마모 및 휨/파임 등의 손상정도 뿐이다. 그것도 궤도핀의 경우는 충격등에 의한 손상여부를 매일 봐줘야 하겠지만 핀차개의 경우는 굳이 매일 볼 필요까지는 없다. 핀차개는 정해진 기간마다 한번씩 보는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참고로, 궤도핀의 수동 분리는 궤도의 맨뒤쪽 차체보다 뒤로 돌출되어 있는 동륜뒤에 감긴 궤도를 바깥쪽에서 망치나 오함마, 적당히 길고 궤도핀보다 작은 직경의 쇠막대, 그리고 필요하다면 옆에서 보조해줄 빠루나 기계식 잭과 그걸 고정해줄 크고 무거운 물체와 같은 흔하고 단순한 도구만으로 한다.
6.2. 단점
보통 독소전 초기에는 훌륭한 공수주 스펙에 비해 뒤떨어지는 소프트 스펙이, 독소전 후기에는 단차시점에서 독일의 중전차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스펙이나 서방제 전차와 비교되어 신뢰성 부분, 그리고 그런 신뢰성 부족의 원인이 된 인명경시사상에 기반한 설계가 까인다.모든 소련제 병기에 해당되지만, 특히 부품자체의 정밀도가 낮거나 마무리가 거칠어 잔고장이 심했다. 흔히 2차 세계대전기 소련군 무기는 단순하고 고장안나는 튼튼한 신뢰성을 가진것으로 적, 아군 모두에게 평가를 받았다. 이는 소총이나 화포등 일부 장비에 관하여는 사실인데, T-34의 경우 이와는 크게 달랐다. 흔히 '보드카만 부어도 굴러가는', '1000km를 달려도 고장한번 없이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독일 전차보다 신뢰성이 우수한'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100km마다 부품교체, 500km를 달리면 최종구동계가 완전히 고장나버리는 신뢰성이 바닥인 물건이었다. 서방식 신뢰성과 다른 싼 부품을 계속 갈아치우는 동구권식 신뢰성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결함품이었다. 일례로 다음과 같은 상황들이 있었다.
- 모자란 구동계통 설계 능력
해당 부분 기술은 다른나라에서는 민간 기업들끼리의 판매 경쟁으로 기술력이 발전 하였으나 소련은 이런 체제가 아니었다. 특히 트랜스미션 자체가 소련의 저열한 금속가공 기술 덕분에 수명이 매우 짧았고 조작하기가 힘들어 어떤 때엔 기어 자체가 안 들어가 망치로 때려 넣어야 했다. 따라서 운전수는 망치를 필수품으로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런 점이 비좁은 운전석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기동력을 저하시켰다. 그나마 소련에서 상태 양호한 공장과 산업기반은 전쟁 초반에 죄다 독일에게 점령당했다. 독일군의 점령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후방으로 옮긴 열악한 공장에서 제작되었으며, 만드는 사람들도 원래 이 일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대거 투입 되었다.
또한, 전장에서의 소모가 극심했던 까닭에, 소련군은 개별 단차의 마무리나 성능 개선에 신경쓸 상황도 거의 없었다. 실제로 개전이후 T-34의 개선점은 대부분이 생산성 개선을 위한 단순화에 집중되어 있을 정도다. 다르게 말하면 고장나기 전에 적 포탄에 터져나가니 한대라도 더 많이, 빨리 만드는게 중요해진 것이다.
이후 전황이 조금 나아지자 또 당황스러운 사태가 벌어진다. 이번에는 전차가 있는데 사람은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 41~42년간에 성인 남성이 수백만명씩 희생된 소련은 슬슬 후방에서 징집해 전방으로 보낼 병사 숫자가 모자라지는 상황이 온 것이다. 게다가 전장에서 싸울 전투병의 숫자가 모자른다고 군수, 지원분야 병과를 전부 해체해버리고 죄다 전투병으로 밀어넣는 조치가 취해졌다. 그럼에도 전쟁후반기로 가면 보병부대 전투원 숫자보다 포병과 기갑병과 숫자가 더 많은 부대도 흔한 지경이 된다. 결국 T-34가 고장나도 정비지원을 해줄 정비부대나 군수지원대 같은게 사실상 없다.
이 상황에서 소련군이 선택할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다. 전차가 고장나면 그대로 버리고 새 전차를 받거나, 전차병을 보병부대로 보내 버리는것. 엔진이나 트랜스미션 같이 복잡한 부품을 정비교육도 제대로 받은적 없는 징집병들이 쉽게 교체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나마 예비부품이 있으면 브레이크 라이닝 등 툭하면 고장나는 부품은 아예 고장날 것이라고 간주하고 해당 부위 전체나 예비부품을 전차에 탑재한 상태로 출격했다. 그나마 후방에 과생산 해놓은 전차는 많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조치였던 셈.[29]
T-34와 반대로 셔먼은 고장이 적어 호평이었는데, 본국이 대서양 건너편에 있었던 탓에 공장으로 돌려보내서 수리를 받을 수 없는 여건에서 싸우는 것을 감안하고 소련이 생산 비용을 악착같이 줄인 것처럼 신뢰성을 악착같이 강화했기 때문이었다. T-34가 T-34/85로 전환되는 과정에 수천대의 구형 T-34/76 재고를 안고도 전선에는 전차가 부족한 공급문제가 생겼을 때가 있는데 이때 랜드리스로 들어온 2000여대의 M4 셔먼을 부족한 T-34 대신 정예부대에 집중적으로 몰아주었으며 전차병들은 셔먼을 무고장 전차라며 사랑했다.[30] 1944년 이후 들여온 76mm M4A2 셔먼은 제1근위기갑사단, 제9근위기갑사단 등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T-34/85 대신 집중적으로 배치되었다. 물론 75mm 셔먼이나 밸런타인 전차 같은 경우에는 T-34/85에 비해서 화력이 떨어지므로, 지휘부 입장에서는 다른 T-34/85가 있을 때는 비교적 쉬운 임무에 투입하는 경향이 있었다. 전차병 입장에서는 어찌 되었든 잘 고장이 안나면서도 어차피 어려운 임무는 강력한 T-34가 먼저 투입되고 화력이 떨어지는 랜드리스 차량들은 비교적 쉬운 임무에 투입되니 싫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31] 전차 자체의 전투력과는 별개로 개별 부품의 품질은 워낙 우수했기에 수직안정기를 비롯한 여러 부품이 카피되어 T-54를 비롯한 후기형 전차에 사용되었다.
잦은 엔진 고장의 원인은 초기형에 사용하던 공기 필터가 대기중 부유물을 걸러내기는 커녕 공기의 흐름만 차단하는 불량품이었기 때문이다.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니 출력 자체가 낮아지고, 걸러지지 않은 모래는 실린더 내부로 끼어들어가 엔진 자체를 망가뜨리기 일쑤였다. 애버딘 시험장에서 평가를 받은 보고서에서는 미군이 '스파이가 방해 공작의 일환으로 설계를 엉망으로 한 것 같다'고 혹평했다는 언급까지 있다. 이 문제는 1943년형 등 후기형에서 일명 사이클론 필터로 교체하고서야 해결되었다.[32]
- 불편한 구조
승무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구조와 승무원의 배치, 측면 장갑의 경사장갑화로 인한 거주 공간 감소[33] 등이 원인이다. 실제로 T-34의 내부는 온갖 장비들이 꽉차서 지독하게 비좁았고, 승무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서 포탄 피격 및 관통시, 최소한 조종수는 거의 무조건 사망하고 나머지 승무원도 2~3명씩 중상 또는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 전차장과 포수의 역할 통합
왼쪽이 전차장 겸 포수 자리, 오른쪽은 탄약수 자리 |
- 승무원간 간섭되는 구조
트랜스미션 레버가 옆의 무전수(및 전방 기총 사수)의 탄약고(기관총 탄약을 넣어두는 곳)와 가까워서, 레버가 앞으로 가 있으면 기총수가 기관총 재장전을 할 때 애로사항이 꽃피었다. 또한 이 전방기총사수용 관측창은 오로지 손가락 구멍만한 기총 조준구밖에 없었다.
- 장갑재의 재질 악화
1941년까지 생산된 장갑판은 큰 문제가 없었으나, 마리우폴 제철소가 함락되고 마리우폴에서 가져온 재고가 바닥나는 1942년 이후에 생산된 장갑판은 설계대로라면 막았어야 할 포탄에도 깨져나가는 현상이 발생했다. 공장마다 표준화도 제대로 되지 않아 희소원소의 비율이 제각각이었고, 시설은 부족한데 생산해야 하는 물량은 많았던 탓에 열처리를 하는 시간도 같이 줄어들었다. 결과적으로 장갑판의 내구성을 결정하는 경도와 인성이 같이 줄어들어 방어력이 상정한 것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용접 방식도 생산성 향상을 위해 가스 토치로 대충 잘라낸 후 용접하는 등 열처리가 풀리는 현상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어 접합부의 내구성도 약했다. 결국 피격시 비관통 상황에서도 장갑판이 깨지거나 떨어져나가는 현상이 발생해 승무원의 생존성이 악화되었다. 장갑재의 물성은 종전 시기까지도 1941년 당시 수준까지 회복되지 못했으며 미국 측에서도 상정한 것보다 10% 가량의 방어력 감소가 발생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 #)
- 장갑강화 불가
포탑이 전방에 치우쳐 있으므로 전면장갑을 강화할 경우 차체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장갑강화가 힘들다. 이런 이유로 인해 1942년 이후에 등장한 대전차 화기 상대로는 방어력의 우수성이 퇴색했다. 현지개수로 정면에 강판을 추가로 덧댄 몇몇전차가 있기는하나 이정도의 개수로는 독일의 75mm를 막기 힘들어, 주로 쓰인건 아니다.
- 전면의 약점 노출
포탑이 너무 앞으로 치우친 관계로 전차 상면에 조종수 해치를 못 만들기 때문에 전면장갑에 조종수용 출입구를 만들었다. 게다가 조종수용 관측창도 작아서 시야 확보가 힘들기 때문에 일반적인 이동시에는 출입구를 열고 다니는 일도 많았다. 이렇게 되면 차체 전면에 큼직한 약점이 생기는 셈이라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심지어 한국전쟁때는 이 약점을 노린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의 37mm포에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단점은 끝까지 고쳐지지 않는다[34]
- 생존성 부족
해치의 수량이 모자라고 위치가 빠른 탈출에 적합하지 않다. 포탑의 전차장 해치와 조종수/보조 조종수겸 기관총수 바로 위의 해치를 합쳐서 총 3개의 해치를 설치한 M4 셔먼과 다르게, 이쪽은 해치가 2개밖에 없으므로 탈출을 제 때 못하다가 승무원이 유폭으로 사망했다. 특히 전면 조종수 해치는 구조적인 약점이었으므로 일반적인 해치보다 작게 만들 수 밖에 없었는데, 키가 큰 현대인들은 전면 해치를 열어두어도 탈출하기 버거울 정도다. 바닥에는 조종수용 탈출구가 있었지만 크기가 워낙 작기도 했고, 있어봤자 전복된 차량의 탑승자 생존성은 어느 나라나 심각히 낮기 때문에 실효성은 어느정도 의구심이 들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 작은 크기에도 어떻게든 비집고 탈출할수는 있었다. 애초에 불가능했으면 이게 IS-2에 장착되지도 T-10M을 거쳐 T-72[35], T-14[36]등 현대 동구권 MBT, M1 에이브람스[37]와 같은 세대를 제외한, M60까지의 서구 MBT까지 이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때문에 서방연합군에서 T-34에 대비되는 M4 셔먼[38]에 비해 압도적으로 승무원들의 생존율이 낮았는데 특히 조종수는 거의 90% 확률로 사망하였고 전방기총사수도 조종수보다는 낫지만 어차피 피차일반으로 생존율이 낮았다. T-34가 격파될 때마다 생존하는 승무원은 평균 2~3[39]명밖에 되지 않았다. 다만 이는 후술할 비좁은 내부와 전쟁중반부터는 독일 중형전차들의 화력강화와 소련의 전시생산체제와 공장들의 임시시설 대피로 인한, 안그래도 안좋았던 금속품질의 급격한 악화로 잘뚫리게 된 장갑, 소련 포탄제조기술 부족으로 인한 낮은 구경대비 관통력으로 인한 비교적 낮은 적 격파가능성이라는 세가지 원인이 겹친게 화근이었다. 이중 하나라도 해결 봤다면 승무원들이 저만큼 개고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비좁은 내부구조
전차 내부가 비좁아 내부에서 이동이 상당히 제약되었다. 전술한 것과 같이 조종수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처럼 있어야 조종이 가능했다. 3인용 포탑을 채용했지만 전차장은 좌석에 앉을 경우 무릎이 포수의 등에 닿아 방해가 되었고, 탄약수는 딱히 앉을 공간도 없이 탄약 상자 위에 서서 허리를 숙여 탄을 장전하는 생고생을 해야 했다.[40] 이 같은 내부공간 협소로 인해 체구가 평균적으로 작은 동양계를 선호했다.[41]
- 크리스티 현가장치의 내부공간 차지
크리스티 서스펜션은 고속이동과 장거리 주행에 적합하여 소련의 상황에 맞았지만 내부공간을 서스펜션이 차지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원본 크리스티 전차 및 그 파생형들은 옆면에 공간장갑을 만들어 서스펜션을 넣었지만 수리시 공간장갑 탈거를 위해 옆면의 바퀴를 모두 때어내야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소련은 과감하게 공간장갑을 제거하고 승무원 구역에 서스펜션을 노출시켜 낭비되는 공간을 줄이고 수리를 위한 접근성을 향상시켰다. T-34의 내부사진을 보면 철봉들이 승무원구역을 침범하고 있는데 그게 서스펜션이다.
- 환풍기 부족
전면에 해치가 달린 문제점과 겹쳐서 운전수들이 전투 중 문을 열어놓아 격파되는 경우가 다른 전차보다 많은데, 환풍기가 부족하여 포연이 빠져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T-34-76은 포탑에만 하나의 환풍기가 있었으며, T-34-85로 업그레이드 할때에도 포탑에 하나의 환풍기를 더 추가했다. 반면 미국, 영국, 독일은 포탑 뿐 아니라 차체에도 환풍기를 설치했다.[42]
- 부실한 조준장치
렌즈의 시야가 왜곡되고 상이 흐리게 나오며 사격시 충격으로 깨지는 등 전반적인 품질이 뒤떨어져 조준에 크나큰 지장이 있었다. 렌즈는 고난도의 재료 및 가공기술을 요하는 물건으로 조금만 삐뚤게 깎아도 상이 왜곡되거나 희미해지는 문제가 생기므로 숙련된 기술자가 반드시 필요하며 대량생산에는 이런 품질을 유지할 노하우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또한 광투과율에도 큰 문제가 있어 광량이 부족한 새벽, 해질녂은 물론이고 기상이 나쁠때에도 조준기를 통한 상 획득이 쉽지 않았다. 미국과 더불어 2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독일은 이미 충분한 기술적 노하우를 쌓은 후여서 전쟁시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후발주자였던 소련은 이런 기술적 토대가 부실했다. 더욱이 렌즈를 제작한다고 해서 좋은 조준경을 만드는 건 또다른 문제인 것이 조준경은 포 발사에서의 엄청난 충격을 견뎌낼 내구성 및 조준 정밀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기술적 노하우를 요구하는 건 똑같았다. 미 병기국이 공여받은 T-34를 테스트하며 "미국제 조준기에 비하여 선진적이다"라고 극찬했다는 이야기를 인용하며 2차대전의 잘못 알려진 오류 10가지라며 영어권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 있는데 이는 전간기 교환장교들이 독일전차를 탑승해보고 자이스사의 슈트리히 조준법을 기억해 소련 기술자들에게 리버스 엔지니어링 시킨 부분에 대한 칭찬이었다. T-34의 조준기는 광학적으로는 명백한 실패작이었다.
- 저품질 잠망경
조준장치의 문제와 겹쳐 관측용 잠망경의 품질과 시야확보가 상당히 부실했다. 넓은 시야와 주변 관측은 전차전이건 대보병전이건 생존성과 방어, 선제공격 등 여러가지와 직결되는 부분인데, 잠망경의 시야가 20~30도 정도만 확보 가능할 정도로 끔찍하게 좁았고 진흙 등의 이물질이 묻는 것에 매우 취약했다. 게다가 보이는 영상의 품질까지 엉망이라 기동중에 흔들거리면 잠망경을 통한 주변 관측은 더더욱 힘들었다. 그로 인해 평상시는 물론 전투중에도 해치를 열고 운전하거나 시야를 확보하려 하는 막장사태가 벌어졌고 이는 전차장갑에 보호받지 못하는 취약점까지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은 물론 한국전쟁 당시에도 이 부분을 공격받아 파괴당한 사례들이 상당히 많다. 참고자료와 잠망경 사진포함
- 무전기의 부재
T-34는 중기형 까지 무전기가 없어서 각 전차들에게 무전을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전차장은 해치를 열어 다른 전차에게 손짓이나 수기 신호로 지휘를 해야만 했다. 무전기가 장착된 차량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는 상부의 지시를 수신받을 지휘차량만 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즉, 차량간 긴밀한 전술 이행을 위한 용도가 아니었으므로 차량간 통신은 수신호에 의존해야 했다. 게다가 주변을 관측할수 있는 관측장비가 부족했다.[43] T-34에 무전기가 일찍이 장착되었더라면 적어도 손실율은 많이 줄었을 것이다. 사실상 초기 모델에도 전 무전기를 장착하려 했으나 당시 상황이 상황이었는지라(우랄 산맥 너머로 공장 이전중이었다.) 다수를 투입할 수가 없었기에 지휘 차량에만 보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급 상황이 나아진 이후에는 전 차량에 설치하게 되었고(대략 43년 중반) 1944년에 나온 85모델은 차체에 있던 장비를 포탑으로 옮겼다. 무전기가 없거나 있어도 도움 안되고 숙련자 외엔 협동플레이가 되지 않으며 자신의 상황이나 잇점을 살피지 못하고 있다 정도로 정리된다. 오토 카리우스가 말한 소련 전차병들 최대의 약점이 무전기였다.
6.3. 총평
물론 T-34가 2차대전 최고의 전차는 아니었지만 주어진 임무는 확실하게 수행해냈고, 그 엄청난 물량은 전쟁의 전세를 뒤집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중략) 그러나 T-34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니다.
― 크롬웰 프로덕션 〈2차대전사〉, 〈독일 전차의 완성, 타이거〉
상대국이던 나치 독일의 타이거 전차처럼 전장을 지배할 정도로 최강은 아니지만 전차의 집단 운용에 매우 최적의 전차라고 할 수 있다.― 크롬웰 프로덕션 〈2차대전사〉, 〈독일 전차의 완성, 타이거〉
57톤의 티거나 45톤의 판터는 26~31톤 T-34보다 중량이 1.5에서 2배 차이나는 중(重)전차이며, 제작단가나 사용자원, 그리고 노동력은 T-34에 비해 서너배에 달한다.
오히려 T-34는 같은 체급의 4호 전차 등과 비교해야 옳으며, 이렇게 보면 대단히 좋은 전차에 속한다.
또한 순수 스펙만으로는 무기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데, 전쟁무기로써 우수한 전차란 전차 자체의 기계적 능력뿐 아니라 생산성, 운용편이성, 유지보수능력 등 제반사항까지 포함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T-34는 독일 전차에 비해 기계적 능력과 인명경시로 인해 승무원 편의성은 많이 떨어지지만 제아무리 판터 전차나 티거2처럼 기술적으로 우수한 무기라도 생산 및 운용비용이 너무 비싸거나 고장이 잘 나면 결국은 전투에서는 이기지만 전쟁에서는 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결과론적으론 주포 구경을 높인 T-34-85가 등장할 때까지 전선에서 잘 버텼다는 것이 중론이다.
생산량에 관련된 유명한 이미지[원문] |
"양이 곧 질이다.(Quantity will be transformed into quality.)"[45]
― 블라디미르 레닌, The Russian Revolution: 1917-1921 - 80페이지
― 블라디미르 레닌, The Russian Revolution: 1917-1921 - 80페이지
"양은 양만의 질이 있다."
― 이오시프 스탈린
1941년 당시 소련의 전투/전투근무 지원능력은 매우 열악해서 많은 T-34들이 퍼진 채로 줄줄이 노획되거나 자폭했다. 원수같은 쿨리크 원수의 방해 때문에 예비 부품과 구난전차가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1942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사실 독일군의 진격을 피해서 원래 있던 공장부지에서 생산시설만 간신히 빼돌렸다가 황무지에 대충 건물 세워서 총력전 명목으로 비숙련공까지 동원하여 가동시킨 공장에서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T-34는 비교적은 복잡했고, 주력으로 양산을 하려고는 했으나 설비가 뒤떨어져 41년 당시에는 경전차들을 더 많이 생산했고, 42년에도 경전차가 거의 중형전차만큼 양산되었다. 이 시기에는 터져나간 수보다 훨씬 많은 T-60 경전차와 T-34를 만들어내서 버틴 것과 다름없다.[46] 이 찍어낸 전차에 탑승할 승무원들은 바로 스탈린의 강제적인 농업 집단화로 만들어졌다고 과언이 아니다. 집단농장에 수용한 농민들에게 집단기계화 영농을 위해 대대적으로 트랙터, 콤바인의 운전교육을 시켰는데, 이때 교육받은 트랙터 및 콤바인 운전사들을 바로 전차운전병으로 징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집단농장화가 농업의 생산성은 극도로 떨어지만 전차병 양산에는 도움을 주었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오시프 스탈린
개별 부품의 신뢰성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1940~1941년형이 1942년 이후 형식보다 더 우수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겨우겨우 시베리아로 뜯어옮긴 공장에서 여성, 노인, 소년 같은 비숙련공들이 완성도가 어떻든 일단 닥치는 대로 뽑아대던 1942년도에 생산된 T-34/76는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Studies 28-1호에 실렸던 보리스 카발레르칙의 Once Again About the T-34에서 설계상 보장시간이 100시간밖에 안 되었으며, 이마저도 야전에서는 고작 70시간 정도뿐이라는 매우 뒤떨어진 신뢰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까였다.
하지만 소련 기술자들이 바보였기에 부품의 내구성을 깎아먹은 것은 아니다. 이는 제1차 5개년 계획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계획적 구식화(Planned Obsolescence)의 개념을 미국 기술자들[47]에게서 배워와서 써먹었기 때문이다.[48] 한창 독일이 침공하고 공장을 철도로 옮기던 1942년에 T-34의 기대 수명은 공장에서 생산된 후 약 6개월 미만이었고, 생존 기간에 전략 기동 거리는 약 1,500 km에 불과했으며, 전투에 돌입하면 평균 생존 시간은 14시간에 그친다는 연구 결과가 도출되었다.[49] 즉, 개별 전차가 평균적으로 1,500 km 가량을 기동하고 격파당하는 상황에서 개별 부품의 설계 수명을 그 이상으로 늘리는 데 투자하는 것은 오히려 자산과 인력의 낭비라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부품의 설계 수명은 야지에서 시속 20km의 기동을 70시간 정도를 버틸 수만 있게 저렴한 재료를 투입하고, 품질 관리를 최소화하고, 조금이라도 복잡한 부품은 최대한 생략하거나 간략화하였으며, 그리 아낀 생산 역량으로 악착같이 더 많은 T-34와 살아남은 T-34에게 배급할 예비 부품을 생산했다. 그 결과로 1941년 대당 27만 루블이었던 생산 비용이 1943년에는 대당 14만 루블로 절반 정도로 줄었다.
하지만 숫자로 메꾸는 것에도 문제가 있었던 위기상황이 닥친 적도 있는데, 폭증하는 손실에 비해 생산된 전차의 전선 배치 속도, 승무원 훈련의 적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76mm형의 구식화와 85mm형의 개발로 인한 차종 변경 문제 및 재고 차량 처리 때문에 1943년 12월 시점에는 1만 8천 대가 넘는 재고 전차를 후방에 안은 상태에서, 독일군과의 가용 전차 비율이 역대 최저 수준인 1.7:1까지 떨어지는 참사를 겪기도 했다.[50]
물론 소련군이 그냥 구식 전차에 승무원이 바보라고 해도 닥치는 대로 그냥 밀어넣었으면 이제 독일군은 끝장이나 마찬가지였을 테지만, 형벌 부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시점에 이르면 독일의 슬라브인 민간인 학살 정책[51]과 전사자들로 소련에서 병사가 될 남자가 바닥나기 시작한 때이다.
따라서 위의 상황이 닥치자 그야말로 승승장구로 잘나가는 전선에만 전차를 몰아주는 극약처방을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당장 T-34의 생산량을 감안하면 단순계산만으로도 전차병이 336,000명이 필요하게 되는데,[52] 아무리 격파된 전차에서 승무원이 살아남아서 다른 전차를 올라타는 경우가 많다고 해도 100% 승무원이 생존하는 경우보다는 보통 1명 이상이 죽고, 1명 이상은 심각한 부상을 입어서 전투 능력을 영구적으로 상실하는 경우가 많으며, 전차가 폭발해서 승무원이 몰살당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전차를 몰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좋은 인원을 함부로 소모하는 것은 당시 소련의 인적자원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53]
이런 위기상황은 1944년 중반쯤에 완전히 극복되었는데, 자세한건 T-34-85 참조.
1943년식이 나온 이후, 전황이 바뀌며 품질이 다시 안정됨과 동시에 가격이 무려 135,000₽[54]까지 내려가며 19,682대가 추가로 1944년 9월까지 생산되어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에도 각국에 판매되었다.
7. 파생형
자세한 내용은 T-34-76/파생형 문서 참고하십시오.8. 실전
자세한 내용은 T-34-76/실전 문서 참고하십시오.9. 운용국
자세한 내용은 T-34-76/운용국 문서 참고하십시오.10. 미디어
자세한 내용은 T-34-76/미디어 문서 참고하십시오.11. 모형
자세한 내용은 T-34-76/모형 문서 참고하십시오.12.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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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타입 | T-25, 경 트랙터, 대형 트랙터, Pz.Kpfw. Nb.Fz, 호이슈레케 10, D.W.1/2, 5/4호 전차, VK 시리즈, 기갑 자주포, VK 30.01 / 02, VK 36.01, VK 45.01(P), VK 45.02(P), VK 65.01, 판터 2, 8호 전차 마우스, E-100, 게쉬츠바겐 티거, 로이머 S, Kätzchen 병력수송장갑차, 8,8cm 바펜트레거 | |
페이퍼 플랜 | 3/4호 전차, VK 16.02 레오파르트, 7호 전차 뢰베, 9 / 10호 전차, E 시리즈, 1인용 경전차 시안 "마우스", 슈투름판처 Bär, 슈투름판터, P.1000 라테, P.1500 몬스터, 마레샬 구축전차 | |
차량 | 독일 국방군/차량, 퀴벨바겐, 슈빔바겐, 슈타이어 1500A, Büssing-NAG T500, Büssing-NAG G31, Büssing-NAG L4500, 오펠 블리츠, 포드 B3000S, V3000S, V3000A, 보르크바르트 B3000, 메르세데스-벤츠 G5, 메르세데스-벤츠 L1500, 메르세데스-벤츠 L3000, 메르세데스-벤츠 LG3000, 메르세데스-벤츠 L4500, 메르세데스-벤츠 L6500, 크루프 프로체, 타트라 T111 | |
모터사이클 | DB / DBK, KS 750, 케텐크라프트라트, R-75 | |
그 외 | 동부용 궤도형 트랙터, 동부용 차륜형 트랙터, 수륙양용 트랙터, 골리아트 지뢰, 보르크바르트 4호, 스프링거 무인자폭차량, VsKfz 617, 쿠겔판처 | |
기타 | 독일 기갑 병기의 역사와 루머 | |
※ 당시 독일은 고질적인 무기부족, 점령국가의 치안을 이유로 기존의 노획 전차 및 차량(Beutepanzer)에 새로운 제식명을 붙여 사용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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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기의 크로아티아군 기갑차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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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 <colbgcolor=#5b2c6f> 탱켓 | TK-3, L3/33, L3/35 | |||
경전차 | 르노 FT, 르노 R35, 호치키스 H39, L6/40, 1호 전차 B형 | ||||
중형전차 | M14/41, 3호 전차 N형, 4호 전차 F1형, 4호 전차 G형, 4호 전차 H형, 38(t) 포탑 장착 M15/42 | ||||
노획 전차 | T-34 1941년형 | ||||
자주포 | 세모벤테 47/40 | ||||
돌격포 | 3호 돌격포 G형 | ||||
장갑차 | AB 41, AB 41 'Ferroviaria', Partizanska Oklopna Vozila, 1호 전차 포탑 장착 로렌 37L, Sd.Kfz. 251, Sd.Kfz. 221 | ||||
기타 차량 | 오펠 블리츠 A, 퀴벨바겐, 쉬빔바겐, BMW R-75, C2P, 윌리스 MB | }}} {{{#!wiki style="margin-top: -30px; margin-bottom: -10px; letter-spacing: -0.9px; font-size: 0.82em;" | ※둘러보기 : 크로아티아군의 운용장비 | 대전기 기갑장비 | }}} }}}}}} |
제2차 세계 대전기의 핀란드군 기갑장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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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 경전차 | <colbgcolor=#fff,#393b42>르노 FT 코이라스/나라스 | Mk. E (Psv.K/18)F | MK. E (Psv.K/36)F | T-26EF | BT-5S | BT-7S | T-26A/B/C 비꾸S | KhT-130/45S/F | KhT-133/45S/F | T-60S | T-70 세미데샤트카S | T-37S | T-38S | |||
중(重)전차 | T-28(A) 포스티바우누/포스티유나S | T-34B 솟까S | T-34/85 핏케풋끼넨 솟까S | Pz.Kpfw IV Ausf.J 넬로넨/라비스틴 | KV-1A/B 클리미S | ||||
화염방사전차 | KhT-130S | KhT-133S | ||||
장갑차 | L-182 | BAB AS | BAB B FAI-M/BA-20(A)S | BAF AS | BAF BS | BAF CS | BT-43S/F | Pula-ajan panssariautoF | Sisu 장갑차F/P | ||||
돌격포 | Stug III Ausf.G 수트루미 | BT-42 크리스티S/F | JSU-152S | ||||
자주대공포 | ItPsv 41 | ||||
화포견인차 | T-20 콤소몰레츠S | T-26VS/F | ||||
구난차량 | ISU-152VS/F | BA-10NS/F | ||||
훈련용 차량 | 카든 로이드 Mk.VI | 카든 로이드 M1933 | T-38-KVS/F | T-38-34S/F | KhT-26S | T-26TS | T-26KS/F | D-8S | ||||
※ 윗첨자S: 소련군에게서 노획 ※ 윗첨자F: 자체 개발 및 개조 차량 ※ 윗첨자P: 경찰용 | }}} {{{#!wiki style="margin-top: -30px; margin-bottom: -10px; letter-spacing: -0.9px; font-size: 0.82em" | ※둘러보기 : 핀란드군의 운용장비 | 대전기 기갑차량 | }}} }}}}}} |
제2차 세계 대전기의 헝가리군 기갑장비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제2차 세계 대전 헝가리 왕국군의 기갑차량 | ||||
전차 | 경전차 | <colbgcolor=#fefefe,#191919>35M 안살도, 37M 안살도, TKS, C2P, 르노 UE, 1호 전차, 38M 톨디, 42M 톨디 II, 42M 톨디 IIA, 43M 톨디 III, T-38, 호치키스 H35, 호치키스 H39, V-3, V-4 | |||
중형전차 | 40M 투란, 3호 전차, 4호 전차, 5호 전차 판터, 소뮤아 S35 | ||||
중전차 | 44M 타스, 6호 전차 티거 | ||||
노획전차 | T-27, T-34-76, T-34-85, T-28, T-70, T-26S, BT-7, BA-6, T-20 콤소몰레츠, M3 스튜어트, M3 리 | ||||
장갑차 | 39/40M 처버, AB41 | ||||
자주포 | AHD, 마르더 II, 톨디 판셀바다즈 | ||||
돌격포 | 43M 즈리니 II, 44M 즈리니 I, 3호 돌격포 | ||||
구축전차 | 헤처 | ||||
차량 | 38M 보톤드, 오펠 블리츠, Kfz 70, 37M | ||||
자주대공포 | 40M 님로드 | }}} {{{#!wiki style="margin-top: -30px; margin-bottom: -10px; letter-spacing: -0.9px; font-size: 0.82em" | ※둘러보기 : 헝가리군의 운용장비 | 대전기 기갑차량 | }}} }}}}}} |
제2차 세계 대전의 루마니아군 기갑장비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 제2차 세계 대전 루마니아 왕국군의 기갑차량 | ||||
<colbgcolor=#ce1126> 장갑차 | Sd.Kfz. 222, OA. vz. 27, OA. vz. 30, SPW ușor, SPW mijlociu, Şeniletă Malaxa tipul, T-20, AB40/41, BA-10, BA-3-2, CKD Praga TN SPE 34/TN SPE 37 | ||||
전차 | <colbgcolor=#ce1126> 경전차 | 르노 FT, 르노 R35, T-60, T-26BC, T-26SC, R-1, R-2, R-2a, R-2c, T-37A, T-38, BT-7C, 톨디 경전차C, 7TP | |||
중형전차 | T-3, T-4, T-5, C.L.T 34C, T-34-85, R-3, V-8-H, M3 중형C | ||||
중전차 | KV-1C, 6호 전차 티거C, IS-2C | ||||
대전차자주포/구축전차 | TACAM T-60C/M, TACAM R-2M, TACAM T-38M, R35 대전차자주포M, 마레샬 구축전차C/M, 헤처C | ||||
돌격포 | TAs T-3, 43M 즈리니C | ||||
차량 | Sd.Kfz. 8, Sd.Kfz. 11 | ||||
※ 윗첨자C: 노획차량 ※ 윗첨자M 자국생산 및 개조형 | }}} {{{#!wiki style="margin-top: -30px; margin-bottom: -10px; letter-spacing: -0.9px; font-size: 0.82em" | ※둘러보기 : 루마니아군의 운용장비 | 대전기 기갑차량 | }}} }}}}}} |
제2차 세계 대전기 유고슬라비아 기갑차량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제2차 세계 대전 유고슬라비아 왕국군 및 파르티잔의 기갑차량 | ||||
장갑차 | <colbgcolor=#fefefe,#393b42>AEC Mk.II | ||||
전차 | 탱켓 | Брза борна кола T-32 | |||
경전차 | 르노 FT, M.28, 르노 R35, M3A1 스튜어트, M3A3 스튜어트 | ||||
중(中)형전차 | T-34-85 | ||||
대전차자주포 | SO-75 M-3A3 | ||||
자주대공포 | M3A3 스튜어트 20mm 플라크피어링38 대공포 장착형 | ||||
자주포 | M8 "캐딜락" | ||||
노획 및 개조차량 | L3/35, L6/40, 소뮤아 S35, SO-57, 3호 전차, 38(t) 경구축전차 헤쳐, Pz.Kpfw. T-34 747(r) "판터", 4호 전차, 3호 돌격포 G형, Sd.Kfz. 251, 40M 투란, PaK38 탑재 Sd.Kfz. 250, AB 41 | }}} {{{#!wiki style="margin-top: -30px; margin-bottom: -10px; letter-spacing: -0.9px; font-size: 0.82em;" | ※둘러보기 : 유고슬라비아군의 운용장비 | 대전기 기갑차량 | }}}}}}}}} |
제2차 세계대전기의 뉴질랜드군 기갑장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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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차 | <colbgcolor=#fefefe,#00008b>유니버설 캐리어, 링스 장갑차 | ||||
전차 | 경전차 | 밥 셈플 전차, 스코필드 전차, Mk.6 경전차, M3 스튜어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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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획 전차 | Pz.Kpfw. T-34 747(r), Pz.Kpfw. M4 748(a) | ||||
자주포 | 비숍 | }}} {{{#!wiki style="margin-top: -30px; margin-bottom: -10px; letter-spacing: -0.9px; font-size: 0.82em" | ※둘러보기 : 뉴질랜드군의 운용장비 | 대전기 기갑차량 | }}} }}}}}} |
제2차 세계 대전기의 몽골군 기갑차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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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형전차 | T-34-76 1943년형, T-34-85 | }}} {{{#!wiki style="margin-top: -30px; margin-bottom: -10px; letter-spacing: -0.9px; font-size: 0.82em;" | ※둘러보기 : 몽골군의 운용장비 | 대전기 기갑차량 | }}} }}}}}} |
한국전의 북한군 및 인민지원군 기갑차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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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 경전차 | <colbgcolor=#fefefe,#191919>공신호 전차CN, M5A1CN/? | |
중형전차 | T-34-76X, T-34-85, M4A2 (76) WX | ||
중전차 | IS-2CN | ||
화염방사전차 | OT-34CN | ||
장갑차 | BA-64, BTR-40 | ||
자주포 | SU-76M, LVT(A)-4 (ZiS-2)CN | ||
다연장로켓 | 카츄샤 다연장로켓 | ||
차량 | GAZ-51, GAZ-63, GAZ-64, GAZ-AA, ZiS-5, ZiS-6, ZiS-150 | ||
모터사이클 | M-72 | ||
노획 차량 | M24 채피, M4A3 (76) W HVSS, A27M 크롬웰NONE, M26 퍼싱, M19 더스터, M41 고릴라, 센추리온, M36 GMC, 옥스포드 캐리어, 와스프 IIC, M46 패튼, M18 헬캣 | ||
※ 윗첨자?: 사용 여부가 불확실하고 일부 자료(사진 등)에만 등장하는 차량이거나 증명이 되지 않은 차량 ※ 윗첨자CN: 인민지원군이 사용 ※ 윗첨자X: 소련에게 공여받은 차량이나 소수 만을 운용 ※ 윗첨자NONE 전시 중 전량 유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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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도네츠크 인민 민병대 기갑차량 둘러보기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5px -0px -11px;" | <colbgcolor=#000000> 도네츠크 인민 민병대 (2014~2022) Народная милиция ДНР | ||||
MBT | <colbgcolor=#000000> 기타 전차 | IS-3D | |||
1세대 | T-54, 오비엑트 169rus, T-62Mrus | ||||
2세대 | T-72B1, T-64 | ||||
3세대 | T-72B3rus, T-90rus | ||||
장갑차 | 차륜장갑차 | BTR-4C, BTR-60C, BTR-70C, BTR-80C/rus | |||
궤도장갑차 | BMP-1, BMP-2, BMD-1C, BMD-2D, MT-LBC/rus, BRDM(K111-1)C, YPR-765C | ||||
차량 | 험비C, 테크니컬 | ||||
포병장비 | 자주박격포 | 2S4 튤판, 2S9 노나-S | |||
자주포 | 2S1 그보즈디카, 2S3 아카치야, 2S7 피온 | ||||
자주대공포 | ZSU-23-4 쉴카, ZPU-4 | ||||
다연장로켓 | BM-21, BM-27, BM-30 스메르치, 체부라시카 | ||||
※ 윗첨자D: 전량 격파되거나 손실함 ※ 윗첨자C: 노획 장비 ※ 윗첨자rus: 의용군 및 러시아 지원 장비 | }}} {{{#!wiki style="margin-top: -30px; margin-bottom: -10px; letter-spacing: -0.9px; font-size: 0.82em" | ※둘러보기 : 도네츠크 인민 민병대의 운용장비 | 현대 기갑차량 | }}} }}}}}} |
소련, 러시아의 주력전차/러시아식 분류 | |
시대별 세대 구분 | MBT 세대 구분(서구권) |
1세대 전차 T-34-76, T-34-85, T-44 | |
2세대 전차 T-54, T-55, T-62 | 1세대 MBT T-54, T-55 |
3세대 전차 | 2세대 MBT T-62, T-64(A/BV), T-72(A/B/BA), T-80(B/BV/U) |
4세대 전차 T-90 | 3세대 MBT T-64(BMU/EU), T-72(B3U/B3MU), T-80(U/UK/BVMU), T-90 |
5세대 전차 T-14 | 3.5세대 MBT |
※ T-34부터 T-64(Object 432)까지 중형전차, T-64A(Object 434)부터는 주력전차로 분류 ※ 윗첨자U: 소련 해체 이후 개발된 차량 |
[1] 서방식 세대구분법과는 다르다.[2] 이는 1944년 생산분까지만 합한 숫자로, 독일의 총 전차 생산량이 모든 전차 다합쳐서 3만대를 조금 넘는다.[3] тэ-тридцать четыре(떼-뜨리찻-츼띄리)[4] 물오리의 아종인 포차드를 말한다.[5] 일부 국가 한정. 본가인 소련에서는 냉전 초기에 퇴역 후 치장장비로 전환되었다.[6] 독일도 V-2 엔진을 굉장히 고평가 했고, 또 어떻게든 이를 카피하고자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고 한다.[7] 독일의 37mm와 50mm 포의 중간정도 되는 위력이었다.[8] 레닌그라드 전차공장 지대에서 수석 설계자로 근무하다가 쾌속전차를 개발하던 하리코프 기관차 공장으로 전속되었다.[9] 사실 A-43은 T-34 초기형에서 단점으로 거론되었던 2인용 포탑 대신 3인용 포탑을 사용하고 여러 가지 설계상의 문제점을 개선할 목적으로 개발되던 것이라 완전히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다.(Zaloga, S., Sarson, P., T-34/76 Medium Tank 1941-1945, 1997, 13) 개발이 T-34의 생산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쿨리크 본인이 사사로운 취향 때문에 T-34의 생산을 완전히 중단시키라고 압력을 넣은 것이었다.[10] 기관단총은 시가전과 백병전이 난무했던 2차 세계대전 때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었고 지뢰는 저격수와 더불어 적이 진군하는 걸 방해하는 무기 중 하나였다. 전차도 없던걸로 만들려고했던걸 보면 무기와 전쟁, 세태를 보는 안목이 없어도 너무 없었던 것.[11] 하술할 군수장관 알베르트 슈페어의 언급대로, 독일의 생산력은 오히려 1944년 정점을 찍었다. 연합군 폭격은 유효했으나 비효율적이었고, 중요거점지대를 피해간 덕에 독일 군수생산 체계는 점점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1943년 내지 1944년 초중반까지는 호각지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는 스탈린이 연합국간 정상회담에서 서부전선의 개전, 즉 상륙작전을 계속 종용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12] 상관없어보이는 말이지만,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참가한 알렌 M. 섬너급 구축함 USS 래피가 독일군 해안포에 한 발을 맞았는데 이것이 체코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불발탄이었다.[13] 이란 방면을 통한 랜드리스는 42년이 되어야 운영되기 시작하여 41년에 우크라이나의 농업 지대를 빼앗겨 식량 제공 대상 1순위인 군인에게마저 최저 칼로리 제공에 애로사항을 받고 있던 소련에게 꼭 필요한 랜드리스였고,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큰 힘을 발휘하였다. 본격적인 랜드리스는 이미 소련이 우세해진 43년이 되어서야 제대로 누리게 된다. 그리고 43년이면 이미 스탈린그라드 전투까지 막 끝나고 독일이 수세에 몰린 상황이었다. 이후 대량의 랜드리스를 바탕으로 항공유 부족을 해결하여 공군을 제대로 갖추고 50만대의 군용 트럭을 지원받아 육군의 기동력과 보급능력을 해결했으며 수백만대의 무전기를 지원받아 부대 간 소통을 해결하였다.[14] 철갑탄을 아예 지급받지 못해서 대전차전에서 별 소용이 없는 고폭탄만 쏘거나, 심하면 포탄이 아예 없어 동축 기관총만 쏘다가 산화되기 일쑤였다. 이 역시 쿨리크가 포탄 생산을 방해해서 벌어진 사태이다. 단 76mm 고폭탄이 대전차전에 그렇게 쓸모없지는 않았다.38(t) 경전차나 3호 전차 등 대전 초기 독일 주력 전차에 대해서는 효과적이었다.[15] Zaloga, 10-11[16] 남의 떡이 커보이는 관점의 문제이긴 하지만, T-34의 변속기는 러시아의 공업능력 부족때문에 레버를 망치로 쳐야 조작이 되는가 하면 주행 중 변속을 하려다 기어가 모조리 갈려나가서 퍼지는 등 온갖 문제를 일으키는 애물단지였다. 반면에 독일군 전차 엔진은 조작성과 부품 품질은 우월했지만 가솔린 중전차 특성상 토크와 순항능력이 나빠서 엔진과열로 인한 잔고장이 잦았고 특히 연료품질에 민감해서 독일군 전차병들을 애먹였다. 미군의 셔먼은 다 좋은데 높은 접지압 때문에 궤도가 땅에 푹푹 빠져 죽을 쒔다.[17] 독소전 발발 당시 독일군 주력전차가 3호전차였는데, 전차 성능으로만 보면 T-34가 더 좋았으나, 대규모 숙청으로 인하여서 유능한 지휘관들이 제거되고, 무능한 인간들이 지휘하면서 패했다.[18] 전황이 악화되었을 때의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 제품도 이렇게 만들었다.[19] 포탑에 보병 승차용 손잡이가 달려있으며, 포탑이 특유의 주조 형태로 구분이 가능하다.[20] 나치스가 정권을 잡기 전인 1930년에 디즈니 최초의 유성 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1928)가 독일 전역에서 개봉된 덕에 미키 마우스는 독일 병사들(대표적으로 스페인 내전때 부터 자신의 기체에 미키 마우스를 그려넣었던 루프트바페 에이스 파일럿 아돌프 갈란트가 있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았다.[21] 물론 T-34-76 1940년형은 단포신 이었다.[22] 500m 이상의 거리에서도 T-34를 안정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PaK 40과 KwK 40이 일선에 본격적으로 배치되기 시작한 것은 1942년 봄의 일이다. T-34가 1940년부터 일선에 배치되기 시작하고, 바르바로사 작전이 1941년 여름에 시작되었음을 감안하면, 최소한 개전 초 1년 동안, T-34의 실질적인 위협은 Ju 87, 88mm 대공포 정도가 전부였다.[23] 이 문제는 대전 중반부터 불거진 치명적인 문제로 사실상 독일 기갑부대가 거덜난 가장 결정적인 이유로 손꼽힌다. 티거나 판터는 무게가 타국 전차들에 비해 무겁지만 이 무게를 버틸 수 있을만큼 기동계통이 강하지 못해 장거리를 이동할 때에는 반드시 철도수송을 해야 했는데, 갈수록 악화되는 전장 상황에 그럴 여유는 전혀 없었고, 결국 이런 중전차들은 포위망을 여는데에 소모되거나 퇴각하는 아군을 따라 같이 가지 못하고 뒤에 남겨져 소련군의 진격을 최대한 막는데 사용되었고 그것으로 끝났다. 바그라티온 작전이 개시되고 7월 한 달 동안에만 티거가 무려 130여대가 손실되었는데, 티거 총 생산 대수의 10%에 달하는 숫자이다.(당시 동부전선에 전개된 중전차대대 6개 대대 중 전멸 1, 장비전손 및 탈출 2, 심각한 손실 1, 반도 고립 1)[24] 참고로 T-34의 대량 생산 경험이 나중에 T-54/55의 기계적 신뢰성을 담보하는데 유용한 피드백이 되었다.[25] 추축국은 연합군에 비하면 전차의 보유량이 매우 적었고 이 부족한 숫자의 전차들로 전과를 내기 위해 이 전차들을 집중적으로 모아서 사용했다. 이 때문에 개별 연합군 전차가 추축국 전차를 만날 확률은 매우 낮았다. 그래서 심지어는 대전차전을 상정하고 운용된 미국의 대전차 자주포들도 고폭탄을 철갑탄만큼 넣고 다녔으며 소련 전차들은 티거 2나 야크트티거가 존재하던 대전 후기에도 철갑탄보다 고폭탄을 훨씬 더 많이 싣고 다녔다. 애초에 전차부대를 상대한다고 해도 근처에 보병이 없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소련의 엄청난 전차물량을 소수의 전차로 방어해야하는 독일의 전차들도 AP와 HE의 비율이 5:5수준은 맞췄다. 물론 영국에서 만든 마틸다 II는 연합군 소속이지만 2파운더 탄종 특성상 멍텅구리 철갑탄만 가지고 다니는 경우가 초기에는 많았다.[26] 물론 대전차전에서도 티거1 1대가 T-34/85 4~5대를 상대로 이긴다는 것은 쉽지 않다. 17:1 같은 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일이다.[27] 대표적인 무기가 바로 AK-47로 생산, 구조도 단순한데다가 성능도 뛰어났다.[28] 2010년도에도 대배기량 디젤 엔진 블록은 주철로 만든다.[29] 미국도 B-29를 정비할때 비슷하게 비행시간 75시간마다 모든 엔진 교체로 고장을 해결하기도 했는데, 이경우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당시 B-29가 장착하던 엔진들은 피스톤 엔진 기술의 절정을 찍은, 무려 18기통 2200마력짜리 엔진들로, 실제 수명은 수천시간마다 오버홀 받으면 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쪽은 엔진 카울링과의 설계가 안 맞아 엔진 온도가 수천도까지 달아오르는게 문제였던것. 단 시간 안에 설계를 고칠 방법은 없는데, 반대로 정비인력과 군수능력은 수백대에 달하는 이 B-29들의 각 4개씩의 엔진을 75시간마다 교체 가능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요약하면 T-34는 사람도 군수력도 없는데 후방에서 기형적으로 탱크만 많이 만들어서 벌어진 사태, 그리고 B-29는 시간이 없는데 사람과 군수력은 빵빵해서 벌어진 일이다.[30] 하지만 역설적으로 잘 탑승하지 않았는데, 이는 셔먼의 차고가 높아 적에게 쉽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자세한 사항은 M4 셔먼 참조[31] 과거 한국군 전차병들의 선호전차는 M47 > M48 > K1 순이었다. 뒤로 갈수록 성능이 훨씬 좋지만 갈수록 좁아져서 전차병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 육상자위대 소속 전차부대원들도 90mm포를 장착했지만 결함이 많은 61식 전차보다 포는 작지만 조종성이 훨씬 뛰어난 M41 워커 불독을 선호했다.[32] 소련이 미국에 운반을 위해 유조식 여과기에 오일을 제거한 것을 미국인들이 건식 여과기로 착각하여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국의 기술자들이 바보도 아니고 시험평가 때는 실물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설명서 및 제원표도 같이 보내어서 평가받도록 한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신빙성이 낮다. 6.25 전쟁 당시 노획한 T-34/85를 미국이 애버딘에서 재평가한 테스트에서도 앞선 테스트에 비해서 나아진게 없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차량 상태도 괜찮은 편이었다고. 이 필터문제는 사이클론 필터로 교체하고도 완벽히 해결된 것은 아니고 IS-2부터 적용된 신형 필터에서 최종 해결된다.[33] 경사장갑을 도입해도 처음부터 두께가 얇은 측면 장갑을 강화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그 대가로 거주성을 지나치게 희생하여 전투 효율이 떨어질 지경이 되었으므로, 후속 전차인 T-44부터는 측면 장갑을 수직장갑으로 만들게 된다.[34] 제대로 된 전면전에선 생각외로 큰 약점이 아닌데, 해치만 노리고 쏘기가 쉬운 것도 아니었고 후기형의 경우 해치의 두께가 전면 장갑보다 더욱 두껍도록 개조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무거운 해치를 여는걸 돕기 위해 전용 스프링 장치가 달려있어서 해치를 열 때는 스프링의 힘으로 밀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전면 장갑에 저렇게 큰 구멍을 뚫을 경우 전면 장갑의 강성과 내구성이 전체적으로 약해지고, 당연히 전차의 전체적인 생존성에 악영향을 끼친다. 후기형 전차인 IS-3와 T-44에서 전면 해치를 없앤 결정적인 이유이다.[35] https://www.reddit.com/r/TankPorn/comments/76btxr/t72_escape_hatch_its_behind_the_drivers_seat_and/[36] https://imgur.com/r/TankPorn/CxfmuRQ[37] M1 에이브람스와 그걸 기반으로 탄생한 K-1 전차, K-2 전차는 조종수가 반쯤 눕는 자세를 취하는데, 이때문에 바닥에 해치를 둘 공간이 없어져버려 포탑쪽으로 탈출하게 했고, 이로 인해 전복시 탈출이 불가능해졌다.[38] 참고로 셔먼과 M24 채피, M46~48 및M60 패튼에도 바닥 탈출해치가 있다.[39] 사실, 어느 나라 전차나 전복시를 제외하곤(전복사고시엔 요즘들어 도로 아니면 거의 무조건 해치 닫고 다니는 동구권을 빼면 운전수, 전차장, 포수는 거의 100% 깔려죽는다. 한국군 전차들의 전복사고시 4인승인 패튼이나 K-1초기형을 제외한 차종들의 승무원 전원사망이 많은 이유가 3명만 타는 K-1A1과 K-2는 운행시 전 승무원이 다 밖에 나와있기 때문임과 동시에 전복후 살아남아도 재수없게 강에 빠졌을시 침수가 일어나면 차량 바닥장갑쪽으로는 탈출루트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포탑 인원들이 살아남기 좋긴하다. 거긴 같은방향 차체보다 장갑이 강하므로.[40] 이게 앞에서의 단점과의 시너지가 엄청난데 잘못해서 해치 안으로 포탄이나 수류탄등이 날라오면 바로 승무원 전원 사망이며, 거기다 안이 자주 뜨거워져 해치는 수시로 열어줘야 하고 소련제 포탄 특성상 포탄이 잘 터져서 탄약유폭까지 쉽게 일어나기 때문이다[41] 그래서 월드 오브 탱크에서 연재되던 웹툰인 붉은 마녀에서 동양인 병사들이 승무원으로 나오며, 영화 화이트 타이거: 최강전차군단에서도 T-34의 탄약수로 동양계 병사가 등장한다.[42] 환풍기 설치 자리는 약점이기 때문에 각 국은 여러 방식으로 환풍기를 숨겨놓는 개량을 실시했는데, M4 셔먼은 A2부터 차체의 둘출형을 매립형으로 바꾸고 E6부터는 포탑 환풍기를 포탑 뒤통수로 옮겼으며, M46 패튼은 포신형 제연기를 장착하고 M47 패튼부터 정면 둘출형 환풍기를 제거했고, 5호 전차 판터는 환풍기 방어용 둑을 환풍기 앞에다 설치했다.[43] 중기형인 T-34-76까지 이랬고 T-34-85부터는 관측장비를 늘렸다. 하지만 여전히 기총사수는 손가락만한 기관총 조준구밖에 관측장비가 없었다.[원문] "T-34 is an ugly tank, but the T-34 is an easy tank to make. And when the Soviet Union is fighting Hitler, they start to make T-34s, and they just make a lot of them." (T-34는 볼품없을지는 몰라도 만들기는 쉬운 전차였습니다. 소련이 히틀러를 상대하게 되자 그들은 T-34를 생산하기 시작하였고, 그저 많이 만들었습니다.) 출처: 디스커버리 채널 Top Ten Tanks- # 1: The T-34. 다소 어색하게 번역되었지만(T-34를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냥 많이 만들었다는 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해당 다큐멘터리에 나온 이 자막이 T-34의 미칠 듯한 생산력과 묘하게 잘 어울려서 국내에서 대량생산 또는 물량공세의 밈으로 쓰였다. 이후 합성된 자매품으로 미국의 알레이버크급 구축함 버전이 있다.[45] 헤겔 변증법의 양질전화에 대한 표현으로, 충분히 큰 양은 질적 변화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정상적인 공정을 거쳐 만들었다면 고성능이 아니더라도 양이 많아지면 효율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뜻이다. 규모의 경제나 란체스터 법칙에서도 비슷한 의미를 강조한다.[46] 실제로 41년 소련의 전차 손실은 약 2만 대인데, 42년까지 모든 전차를 합쳐 2만 5천 대를 생산해서 버텼다.[47] 미국 기술자들 사이에서 서열이 가장 높았던 건축가인 앨버트 칸(Albert Khan)은 1929년~1932년 사이에 521개소에 달하는 공장의 설계를 제공했고, 4000명이 넘은 건축가와 엔지니어를 미국인 공학자 수준으로 훈련시켰다. 10년 뒤의 M4 셔먼이 쏟아져나온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공장도 앨버트 칸의 작품이다.[48] Jonathan Parshall, 2013 International Conference on WWII - Kursk The Epic Armored Engagement[49]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한창일 때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현 볼고그라드 트랙터 공장, VgTZ)에서 생산된 차량은 페인트를 칠할 여유도 없이 즉시 전선으로 투입되어야 할 정도로 전황이 급박했다(Zaloga, Steven J., Peter Sarson (1994). T-34 Medium Tank 1941–45 (New Vanguard 9), p.23).[50] 이 상황에서 소련은 랜드리스로 받은 75mm 셔먼을 T-34 대신 전방 주요 부대들에 투입했으나, 셔먼을 받았던 이 부대들은 곧 T-34-85로 다시 교체됐다.[51] 가장 큰 이유다. 독소전은 물론 양측의 병력 손실 규모도 어마어마한 전쟁이었으나 그 막대한 병력손실에도 어떻게 하면 저 슬라브인 민간인들을 더 저렴하고 간단하게 더 잘, 더 많이 죽일 수 있을까에 엄청나게 대해 연구하던 독일 정부의 적극적이고 계획적이며 체계적인 슬라브 민간인 학살로 인한 피해가 더 심각했다.[52] 독소 전쟁 중 인원수에 비하면 적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보병 계열은 무식하게 가르쳐줘도 수만이든 수백만이든 보병으로 징집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전차를 운용해야 할 전차병을 보병에게 가르치듯 가르쳐주고 투입하면 팀킬은 물론 각종 사고가 벌어질 가능성이 안 봐도 뻔한 경우가 많다. 그나마 T-34는 전차 운용을 배우기가 아주 쉽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전차병 수요 충당할 수 있던 것.[53] 불과 1차대전 때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자동차를 모는 사람은 지금의 전용기 조종사 정도의 고급 인력이었으며, 이 정도는 아니어도 2차 대전 때 자동차, 전차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상당한 고급인력이었다. 그 당시 자동차들은 지금 차량과 달리 주행을 보조해주는 전자 장비 같은 게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대부분이 수동, 기계식이라 운전 난이도가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당시에는 차량의 잔고장이 잦은 편이어서 운전사들은 현지에서 간단한 정비나 수리를 할 수 있어야 했다.[54] 당시 환율 고려 달러 가치 환산 35,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