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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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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스 그룹
Zeiss Group
파일:자이스 로고.svg
국적
[[독일|]][[틀:국기|]][[틀:국기|]]
설립일 1846년 ([age(1846-11-17)]년 전)
창립자 카를 차이스
관련 주식
1. 개요2. 명칭3. 역사4. 제품
4.1. Zeiss IKon - 철수
4.1.1. Contax
4.1.1.1. 키예프 시리즈4.1.1.2. SLR
4.2. 카메라 렌즈
4.2.1. 렌즈 디자인4.2.2. 관련 렌즈군
4.3. 안경광학용 제품
4.3.1. 단초점 렌즈
4.3.1.1. 플라스틱4.3.1.2. 유리
4.3.2. 누진다초점 렌즈4.3.3. 컨텍트 렌즈
4.4. 의료기기

[clearfix]

1. 개요

광학리소그래피 사업에 종사하는 독일의 유서 깊은 공업 지주사. # # 창립년도인 1846년부터 지금까지 상당한 기술력과 헤리티지를 축적한 회사다. 이전 명칭은 칼 자이스 (Carl Zeiss AG)였고 지금도 IR 문서에는 이전 명칭이 쓰이기도 한다.

자이스의 로고는 파란색 바탕에 하얀색의 Zeiss 글씨로 심플한 편인데, 이를 두고 '파란 방패'라고 많이 칭한다. 이 로고가 붙은 렌즈들은 100만 원이 우스울 정도의 가격대를 형성할 정도로 자이스의 위치는 렌즈 분야에서 로덴스톡(Rodenstock), 슈나이더와 삼두마차급.

2. 명칭

'짜이스'나 '짜이즈' 같은 표기를 쓰는 사람이 많지만, 한국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영어식 발음인 '자이스'라고 자칭한다.

나무위키 항목을 보면 밀리터리 계열 항목에서는 짜이스, 카메라 계열 항목에서는 짜이즈라고 표기가 갈리는 듯. 외래어 표기법에 의한 올바른 표기는 '차이스'이다. 사실 본래 짜이스 또는 자이스로 읽어 왔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 소니 코리아가 디지털 카메라를 소개할 때 '짜이즈'라고 표기하는 바람에 짜이즈라고 읽는 법이 퍼진 것이고 당시에도 자이스 사는 엄연히 '자이스'를 공식 표기로 쓰고 있었다. 즉, 소니 코리아가 범인인 것이다. 독일어에서 SS는 무조건 ㅅ/ㅆ 발음이다. [1]

3. 역사

독일의 광학 기사인 카를 차이스(1816-1888)가 1846년 당시 독일 여러 영방국가 중 하나인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 예나에서 광학과 정밀 역학을 연구하는 공방을 연 데서 출발했다. 그는 식물학자의 제자로서 조직관찰 등의 연구 활동에 필요한 현미경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의 연구는 결실을 맺어 1857년 오늘날의 광학 현미경의 구조를 정립시켰다. 그러나 기계공학적인 접근 방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낀 그는 예나 대학교에른스트 아베(Ernst Abbe) 교수를 초빙해 렌즈 설계에 수학적 모델을 접목시켜 광학 기술들의 이론들을 정립해나갔다. 말 그대로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자이스의 역사가 광학의 역사인 것이다. 결국 아베 교수에 의해 대물렌즈가 개선됨으로써 현미경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개선되었고 미생물학이나 화학과 관련한 발전이 급속도로 진행하게 되었다. 이후 공방에 불과했던 자이스는 성장을 거듭해 1880년대에는 직원 수 360명 수준의 대형 공장을 거느리게 된다.

프라운호퍼 박사가 사망하면서 그의 연구소가 공중분해되는 것을 지켜본 아베 교수는 카를 차이스가 사망하자 오토 슐츠[2]재단을 설립해 자신의 보유분까지 모든 소유권을 재단에 던져버렸다. 이 조치를 통해서 자이스는 회사를 보호할 수 있었던 데다 이익금 전액이 제품 품질 보증, 예나 대학교의 후원, 연구 프로젝트와 직원복지에 쓰이게 되면서 기술력과 명성은 나날이 높아져 갔다. 당시에는 도저히 상상도 하기 힘든 수준의 높은 임금과 복리후생 정책들을 제공하면서 "귀족노조" 논란도 일어났다(...) 덕택에 자이스의 노동자들은 회사에 대한 애정과 아베 교수에 대한 존경이 엄청났다고. 그리고 이는 훗날 회사를 살리는 원동력이 된다.

19세기 말 아베 교수에 의해 분광기가 개발되고, 폴 루돌프 박사에 의해 현대 렌즈의 시초인 테사 렌즈가 개발되면서 재료공학, 천문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또한 카메라 렌즈의 대중화가 시작되었다. 자이스의 쌍안 망원경은 1900년 1월 한 달 동안만 무려 2만 대가 판매되었다고 한다.

자이스의 기술과 성과는 필연적으로 각국 군대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특히 통일된 독일 제국의 군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 것으로 인해 1차 대전이 발발하자 군수 체제로 전환 되었다. 1차 대전의 패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자이스는 군용으로 쓰일 수 있는 망원 기술 같은 분야의 개발이 금지당했고, 이 시기에 정밀 계측, 편광이나 자외선, 적외선에 대한 연구 성과를 쌓을 수 있었다. 민수와 천문 분야에 집중한 결과 세계 최초로 플라네타리움 상영에도 성공하였다. 그러나 민수용을 가장하여 비밀리에 망원 기술을 꾸준히 축적시켜 나아갔고 독일의 재군비가 선언된 시점에서는 사실상 군수기업화 되어 나치의 눈이 되는 조준경들을 생산했다.

1935년에는 AR(Anti Reflection) 코팅 기법을 개발하여 세계 최초로 코팅 렌즈를 만들어 낸다. 이 기술을 통해 유리 표면의 반사광을 기존의 20% 수준으로 감소시켜 향후 발발하는 2차 세계대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나치에 협력했다. 자이스는 쌍안경 카메라뿐만 아니라 저격용 스코프, 티거, 쾨니히스티거 등의 전차의 조준경, Ju 88 / Ar 234수평 폭격 조준기 등의 군수 물품을 제조하여 나치에 납품했으며, 약 4천명 이상의 유대인 강제노동력을 부려먹었다.

독일 패전이 임박한 1945년 4월, 미군이 예나에 입성했다. 전쟁이 끝나고 독일이 연합국 4개국에 의해 4분할될 때 예나가 소련군 관할 지역으로 결정되자 미군은 예나에서 철수하기 전 자이스 사의 기술자들과 일부 생산설비를 자신들 관할 지역인 슈투트가르트로 이주시켰고 자이스가 보유 중이었던 특허, 설계, 연구논문 등을 무단으로 약탈했다. 오늘날까지도 이 때의 문서들이 어디로 갔는지, 누가 열람했는지, 현재 어디 있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이후 진주한 소련은 자신들의 조악한 광학 기술을 만회하기 위해, 자이스 사의 공장에서 노동했던 경험이 있는 노동자들과 자이스의 공장을 전부 뜯어 자국의 우크라이나 SSR 키예프로 강제 이주시켰다.

자이스 사의 유산은 기구하게도 미국이 입수한 자료, 슈투트가르트로 이주한 기술자, 소련 키예프로 이주된 노동자와 공장, 예나에 남은 기술자로 4분할되었다. 소련은 키예프로 옮겨진 노동자와 공장을 아스날 공장에 편입시켜 '키예프 카메라' 등을 생산하게 한다. 그 외 미군에 의해 이주된 기술자들이 오버코헨에 새로 새운 자이스 그룹(Zeiss Group), 예나에 남외 인력들이 세운 VEB 칼 자이스 예나(VEB Carl Zeiss Jena) 두 개의 회사가 서로 경쟁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게 되며 이들은 상표권 소송[3] 등으로 첨예하게 갈등하게 된다.

1990년대 이후 동구권의 붕괴와 함께 VEB 칼 자이스 예나는 경영이 악화되었고 때마침 일어난 독일 통일로 두 회사는 협력관계로 돌아서다 극적으로 합병하여 오늘날의 자이스(Zeiss)가 되었다. 하이덴하임에서 노동자들이 회사를 되살려낸 것과 동구권 붕괴로 인한 합병 과정에서의 위기 극복에는 공동 창업자인 아베 교수의 의지를 이어가려는 노동자들의 열망 덕택이 컸다고 한다. 이는 오늘날 가장 기구한 우여곡절을 겪고도 가장 성공한 기업의 사례로 많은 곳에서 배우려고 한다. 우리나라의 삼성그룹도 회사 내부 교육용으로 자이스의 스토리를 사용했다고 한다.

2차대전 이후 군수품에서도 저격소총망원조준경이나 도트 사이트 등을 제조했으나, 2012년 사업성 부족을 이유로 에어버스에 사업을 넘기며 철수했다. 다만 군수품에서 완전히 손을 턴 것은 아니라서 209급 잠수함에 들어가는 250-a 잠망경, G36A4에 장착되는 4배율 조준경 등을 생산하고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주로 의료용품(안과용 측정기, 미세수술용 현미경, 라식 수술 장비 등)을 만들어서 팔고 있다.[4] 창업자 카를 차이스 본인이 처음부터 업으로 삼아 창업 초기부터 만들던 물건이 현미경이었기 때문에 이쪽 계통의 장비 중에서도 독일의 슈나이더와 함께 명품 대접을 받으며, 회사의 주된 수입원이기도 하다. 그 외에 반도체 계측장비, 3차원 측정기 및 플라네타리움도 만들고 있다. 최근엔 정밀 반도체 공정에 사용될 렌즈 류의 소요가 많아지면서 2016년엔 네덜란드ASML로부터 10억 유로를 투자받기도 했다. ASML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요한 EUV 장비를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할 수 있는 독점 기업이고 자이스는 EUV 장비의 렌즈를 공급하고 있다.[5] 안경 렌즈도 꾸준히 만들고 있으며, 유리 렌즈의 경우 독일이나 헝가리에서 직접 생산[6]하고, 플라스틱 계열 렌즈는 HOYA로부터 재료를 공급받아 헝가리나 중국 등지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이스의 재통일 이후 역사에 대해서 현지 취재 후 작성된 기획기사가 있다. 궁금하다면 이 기사를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

4. 제품

칼 자이스의 제품은 의학, 연구용 광학 기기, 총기용 광학 기기, 카메라 렌즈, 안경 렌즈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앞서 말했다시피 세계 3대 렌즈[7]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DSLR/미러리스 고급품에 해당하는 기종에서 선호할 정도로 카메라나 안경용 렌즈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캐논, 니콘 마운트에서 가장 높은 해상도를 보여 주는 렌즈는 L이나 N렌즈가 아닌 칼 자이스의 Otus(오투스) 렌즈다. 당연히 가격이 굉장히 비쌀 뿐만 아니라 크기도 상당한 덕분에 시그마 등 타 회사의 렌즈를 압도한다고. 그래도 같은 독일회사인 라이카랑 비교하면 그래도 저렴한 편이다[8]. 물론 라이카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라이카는 RF 카메라 회사이기 때문에 소형화를 중시하긴 한다쳐도 너무 비싸다. 자이스는 그에 비하면 같이 명품의 반열에 있으면서도 가격은 합리적인 편.

또한 소니의 디지털카메라에도 이 회사의 렌즈가 많이 사용된다. 소니의 경우에는 카메라 바디와의 테스트도 직접 할 만큼 적극적이다. 소니가 자이스의 대주주라는 소문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고[9], 원래 소니는 광학렌즈계의 큰손이다. [10]

최근에는 Batis(바티스)까지 출시해 더욱더 얄짤없는 칼 같은 선예도와 거리계창을 OLED로 박아버리는 위엄까지 선보였다. 특히 자이스의 T* 코팅은 카메라 렌즈에서는 최고의 코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역광에서 플레어 억제는 감탄이 나올 수준. 하지만 렌즈 필터 코팅은 영 별로인지 방오성능이 형편없다. 원래 명품은 그런거 안따진다

영화용 렌즈로도 유명한데, 아리의 최상급 영화용 단렌즈인 마스터 프라임 시리즈, 울트라 프라임 시리즈와 마스터 아나모픽 시리즈는 자이스와 함께 설계/제작한 것이다. 물론 자이스 자체 브랜드로도 가격에 따라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라인업의 단렌즈와 줌렌즈들을 갖추고 있다. 스탠리 큐브릭배리 린든NASA와 이 회사에서 만든 50mm f/0.7 렌즈를 이용하여 무조명, 자연광 촬영으로 우아한 영상미를 보여준 것으로 유명하다.

스마트폰에 내장된 카메라의 렌즈로 자이스를 채택하는 경우도 있다. 화웨이와 이후 샤오미라이카와 공동 개발한 렌즈를 쓴다면 노키아는 자사 휴대폰 카메라에 들어가는 렌즈 중에 이 회사 제품이 많다.[11] 2013년에 스마트폰 부분에서 독점계약을 했으나 2020년 소니의 엑스페리아 1 II가 자이스 T*코팅 렌즈를 탑재하면서 더 이상 독점이 아니다. 그리고 2023년 vivo에서 출시한 폴더블 스마트폰 X 폴드2도 자이스 렌즈를 탑재했다.

카메라 용 렌즈 뿐만 아니라 군수품에 사용되는 렌즈에도 많이 쓰였다. 2차 대전 당시 저격용 조준경이나 전차용 조준경 렌즈도 자이스 제품으로서, 품질이 좋기로 유명했다.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2012년까지 망원조준경도트 사이트 등의 고품질 군수품을 제작하여 독일군에 상당수 납품하였으며 군수품 업계에서 반쯤 발을 뺀 현재에도 일부 품목들은 생산하고 있다.[12]

안경렌즈에서도 카메라 렌즈처럼 비싸지만 좋은 성능을 자랑한다. 만약 다른 렌즈 제조사에서는 시력에 맞는 렌즈를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고도근시 또는 고도원시이거나 근시원시에 심한 난시가 동반되어 있는 경우라면 눈물을 머금고 비싼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자이스 렌즈를 선택하게 된다. 다른 렌즈 브랜드에서도 그만한 렌즈는 다 나온다. 다만 자이스 렌즈를 한번 쓰면 다른 브랜드로 못 가니까 문제지... 최근 자이스는 듀라비젼 플라스틱라인의 DP코팅의 우수함 때문에 무거운 유리렌즈보단 아베수도 우수하고 매우 우수한 플라스틱 렌즈군이 주력이 되었다. 가격은 일반 렌즈와 비교해서 비싼 편인데, 특히 인디비주얼 렌즈처럼 개인 맞춤으로 제작하는 경우 소비자 가격이 최소 30만 원대 후반부터 시작하지만 그만큼 돈 값은 한다. 비점수차가 줄어들어 사물의 왜곡 현상이 감소하고 넓고 선명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으며,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근거리 대상을 볼 때 눈의 피로감을 줄일 수 있다. 게다가 누진다초점으로 가면 100만 원대이다. 다만, 위에서 말한 대로 가격이 비싼 게 문제.

렌즈 외에도 공작장비용 광학부품 생산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대표적으로 ASML의 리쏘그래피 장비에서 자이스에서 만든 거울을 사용한다.#

4.1. Zeiss IKon - 철수

자이스가 1926년 4개의 회사(Contessa-Nettel, Ernemann, Goerz, Ica)을 흡수 통합한후 차린 카메라 회사. 드레스덴에 거점을 두고, 슈투트가르트와 베를린에도 공장을 두었다. 이후 1975년까지 이 브랜드로 카메라를 생산하다 접었지만 브랜드는 보관중에 있다.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코시나와의 파트너십에서 사용한적이 있었다.

4.1.1. Contax

자이스가 라이카를 잡기 위해 만든 브랜드였다. Contax I 는 이후 등장하는 다른 Contax 레인지파인더 마운트를 만들게 된다. 라이카를 잡기 위해, 수평이동 하던 라이카의 포컬 플레인 셔터의 속도보다 두배 더 빠른 1/1000을 자랑했다. 물론 가격은 엄청나게 비쌌고, 그래서 Argus C3가난한 자를 위한 Contax I 이라 불려지게 된다. 사실 Argus C 시리즈는 이걸 노리고 만든거지만...

그 후 Contax II에서는 레인지파인더와 뷰파인더[13]를 합체시키는 혁신과 더불어 속도도 1/1250을 찍어버리는 등 최전성기를 맞게 된다. 오죽하면 정부로부터 올림픽용 특제 마운트된 Contax II을 주문 받기도 했었다. 그리고 Argus C3과 비슷하게[14] 로버트 카파노르망디 상륙 작전때 전설적인 사진들을 찍어댔다. 당시 라이카의 경우 예술적 경향이 많았다고 하면, 자이스의 Contax는 좀 더 프로페셔널적인 이미지가 강했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드레스덴이 쑥밭이 된 것에도 부족해서 동독 지역으로 가면서, Contax II 개량형의 생산은 자연히 슈투트가르트에서 생산하게 된다. 여기서 크기를 줄이면서 무게도 줄이고, 플래시 동기화 기능도 넣고[15], 뷰파인더도 1mm 늘린늘려도 눈아프다 Contax IIa 와 Contax IIIa가 나오게 된다. 덤으로, 손기정선수가 지른 카메라 중 하나. 기념관에선 IIa 라고 하지만, 위에 있는 셀레늄 노출계로 인해 IIIa 확정.그것보다 당시 가격을 이야기 하면 어케 될지 뻔하니까 안 말하는건가 여튼, Contax IIa나 IIIa의 경우, 황동에 모로코산 양가죽을 씌웠는데 이게 부식이 되면서 혹처럼 튀어나오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를 자이스의 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외에도 레인지파인더 위치를 변경했는데 Contax II의 경우, 세로로 잡았을시 레인지파인더 창을 가리기 때문에 레인지파인더 크기를 줄이게 된다. 그러나 매우 정확한 건 매한가지.

그러나 자이스의 우세도 잠시, 라이카가 M3을 내놓자 자이스는 RF 카메라 사업을 1961년에 접고 SLR로 파게 되지만 이것도 일본 기업들로 인해서... 결국, 일본 기업과 라이선스로 Contax 라이선스를 협의하게 된다. 그래서 필름 당시 야시카가 그 파트너였고, 야시카를 인수한 교세라가 자이스 렌즈를 쓴 똑딱이와 더불어 Contax를 만들었다. 현재는 Contax 브랜드를 다시 회수해서 재단이 보유하고 있다.

여튼, 이런 이유때문에 Contax는 3가지 마운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고정된 렌즈인 RF 마운트, 하나는 SLR에서의 Contax/야시카 마운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세라에서 생산한 Contax 마운트.

초기 Contax RF 마운트는 당연히 키예프 시리즈도 사용했기에 자이스 렌즈 안쓰고 저렴하게[16] 사용은 할수 있긴 하다. 그리고 렌즈가 바깥의 클립과 더불어 렌즈의 고정쇠등으로 안과 서로 물리게 되어 있다. 이래서 Contax RF - 라이카 등의 변환기를 보면 이 클립과 더불어 꽤나 부피가 크다.

초기 Contax RF 마운트는 니콘 RF 마운트[17], 현 RF 마운트와 호환[18]된다. 다만, 설계상 차이를 둘려고 했는지 무한대를 놓고 필름간 거리에서 니콘은 26.51mm, Contax의 경우 26.82mm 가 난다. 즉 0.31mm의 차이가 난다. 그래서 광각을 제외하곤, 거진 호환으로 보는게 좋다.
4.1.1.1. 키예프 시리즈
1946년 예나에 진주하게 된 소련은 전쟁배상금 명목으로 Contax II, III와 부품, 미국쪽 이주를 거부한 노동자들과 함께 예나에 남은 자이스 공장의 Contax II, III 생산설비를 탈탈 뜯어 키예프 아스날 공장[19] 으로 이전한다. 소련 내부에서는 이렇게 받은거 브랜드를 다 갈아버리자 해서 키이우로 이름을 정했고, 렌즈도 주피터나 헬리오스 같은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 키예프에서도 Kiev II, Kiev III로 시작을 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FED(라이카 짭)등과 달리 합법적인 카피품이라 볼수 있겠다.

물론 처음부터 자체 생산을 한게 아니어서, 초기 키예프 II, III 중 7000여대는 칼 자이스 예나가 생산해주면서 교육시켰다. 문제는 그 후로 정품 Contax II, III 부품이 떨어진 후에 서독이 가져간 Contax 짭[20][21]을 팔아먹었다. 물론, 위에서도 말했지만 칼 자이스 예나판 키예프도 있긴 해서 안목을 기르던가[22], 아님 자료를 좀 찾아서 질러야 한다. 이런 탓에 초기 주피터 8은 말이 주피터지, Sonnar와 같은 공정이었다. 아니, 몇몇 뒷판엔 Contax 가 있기도 하다(...) 문제는 소비에트의 망해버린 QA[23]와 더불어 비용 상승으로 인해 가면 갈수록 개악을 했지만... 특히, 저 이주를 거부한 노동자들이 은퇴하던 년은 그야말로 QA의 바닥을 찍었었다. 그러나 이런 렌즈중에서도 특히 붉은 P(П)가 있는 주피터 8은 호평을 받는다. 메인 렌즈로 GOI[24]가 소련 유리에 맞게 수정한 Sonnar 렌즈인 주피터 8 → 무단 조리개인걸 위치에 맞게 구슬을 넣어 단을 준 주피터 8M → Biotar 설계를 가져온 헬리오스 103으로 넘어가게 된다. 물론 기타 렌즈들도 있다. 자이스 Sonnar f/1.5 를 보고 만든 주피터 3[25]이라던가, 광각인 주피터 12라던가 등등…

키예프 시리즈는 1987년까지 생산하게 되며, 지금도 Contax IIa 같은 기종보다 더 저렴하게 팔리고 있다.
4.1.1.2. SLR
1949년 VEB 칼 자이스 예나에서 세계 두번째로 개발한 펜타프리즘 SLR[26]의 첫 이름이 Contax S 이다. 판매된 이름들이 참으로 다양한데, Hexacon, Super D, Astraflex, Cal-Flex, Pentagon 등으로도 찍혀서 팔았었다.

굳이 꼽자면 Contax S, Contax D, Contax E, Contax F, FM, FB, FBM등이 있다.

4.2. 카메라 렌즈

자이스 본사에서 설계하고 타 회사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이다. 칼 자이스, 혹은 자이스 인증 카메라 제품군 렌즈의 설계를 나타내는 명칭들은 다음과 같다.

4.2.1. 렌즈 디자인

소니-자이스 렌즈군과 자이스 독자 렌즈군을 포함하여 자이스가 설계에 관여한 렌즈에는 자이스의 렌즈 디자인 형식이 표기되어 있다.

4.2.2. 관련 렌즈군

자이스가 설계에 관여한 렌즈군이다.

소니에서 출시한 자이스 설계의 렌즈를 제외하면 국내 정품에 대한 사후지원은 세기P&C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AS가 필요한 경우에는 해당 렌즈가 생산된 해외 공장으로 보낸다. 이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이 크게 든다.

4.3. 안경광학용 제품

자이스의 자회사인 자이스 비전 케어 (Zeiss Vision Care)가 개발 및 생산하는 안경 렌즈 및 컨텍트 렌즈 라인업이다.[27]

4.3.1. 단초점 렌즈

4.3.1.1. 플라스틱
4.3.1.2. 유리

4.3.2. 누진다초점 렌즈

4.3.3. 컨텍트 렌즈

4.4. 의료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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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이버 사전에서도 발음을 tsaɪs로 표기하여 SS를 '스'로 발음하도록 되어있다.[2] Otto Schott. 화학자로 차이스와 아베와 같이 일했다.[3] Contax, Zeiss IKon 등등[4] 해당 사업부가 분사하여 2002년에 칼 자이스 메디텍이라는 자회사가 되었다.[5] 투과형 방식인 ASML의 DUV 노광장비 한 대를 기준으로 100개 이상의 렌즈가 탑재되어 있다. 렌즈 무게만 2톤에 달한다고 한다.#[6] 자이스 재단 아래의 유리나 세라믹 전문의 Schott 사가 공급한다. 지금은 손 뗐지만, 내열유리 브랜드 중 Jena Glass가 이 회사의 브랜드로 현재는 라이선스를 주고 있다.[7] 슈나이더, 로덴스톡, 칼 자이스[8] 똑같이 풀프레임이면서 오투스는 55mm f1.4에 약 500만원인데 반해 라이카는 600만원이 넘으면서 화질은 떨어진다[9] 자이스의 지분 대부분이 칼 자이스 재단 소유이다.#[10] 소니의 DSLR을 제외한 타사 마운트용 DSLR 렌즈는 AF의 라이센스 정책 등의 문제로 인해 MF로 제작되나, 소니와 후지필름의 미러리스용 Touit 렌즈군과 소니 E마운트용 렌즈군은 AF로 제조된다.[11] 다만 라이카와 마찬가지로 자이스가 직접 제조한 렌즈가 아니라 인증만 받는 형태이다.[12] G36A2 최상단에 부착된 Z-Point 무배율 도트사이트가 자이스의 제품이다.[13] 유리에 금 도금을 하여 그 안에서 이중합치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14] 이건 당시 정찰병으로 간 Tony Vaccaro가 이걸 들고 개인적으로 찍은 사진들.[15] 몇몇 Contax II에도 있긴 했었다. 이것도 다이얼마다 다른데, 처음 블랙 다이얼의 경우 표준 PC 단자가 아니어서 액세서리가 필요하며, 이후 컬러 다이얼에서는 표준 PC 단자를 사용한다.[16] 사람들이 호평하는 레드 P(П) 주피터 8 이라고 해도 약 5만원 정도니...[17] 제 2차 세계대전때 Contax I 설계를 카피 했으니 당연한... 니콘 S 마운트라고도 한다.[18] 여긴 니콘 마운트와 동일[19] 현재도 우크라이나 국영 사업체로, 모스크바함을 격침시킨 R-360 넵툰등의 미사일등을 생산한다.[20] 간단하게 Contax 로고를 사용하면서, 자이스 이콘을 썼었던 칼 자이스 예나 로고를 붙이는 등... 렌즈도 칼 자이스 예나라고 하나, 이런 걸 보면 믿을만한 건 못된다.[21] Contax 상표는 1951년 서독 법원에서 서독 자이스 것임을 가렸었다.[22] 아님 그냥 제작 연도가 제일 오래된 키예프 II나 III을 사면 된다. 최소한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Contax II, III의 정품 부품을 쓸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렇게 오래된 놈들은 다른 키예프 시리즈와 달리 가격이 높다.[23] 80년대 생산한 렌즈에 먼지가 들어가 있다면 사진은 정상이라도, 이게 정상인 QA일까?[24] 현 러시아 국립광학연구원[25] 주피터 8은 자이스 Sonnar f/2를 기반에 두고 만들었다. 정작, 서방 사람들은 이왕 비싼거 사는거 비싼거 사지하면서 자이스 Sonnar f/1.5 등을 질러서 당시 가격이 쌌던 Tessar 렌즈가 현재 매우 희귀한 물건이 되었지만[26] 최초는 이탈리아의 Rectaflex 인데, 여러 말이 많다. 일단, 생산은 1948년에 처음했으니 이게 두번째다.[27] 과거에 칼 자이스 비전 (Carl Zeiss Vision AG)이라고 불리던 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