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k, Cruiser, Mark I (A9) |
1. 개요
영국군이 운용한 최초의 순항전차.2. 제원
Tank, Mk. I Cruiser A9 Mk. I 순항전차 A9 | |
형식 명칭 | 순항전차 Mk. I (개발명 A9) |
중량 | 13.0t |
전장 | 5.79m |
전폭 | 2.50m |
전고 | 2.65m |
승무원 | 6명 (전차장, 포수, 탄약수, 조종수, 기관총수 2명) |
장갑 | 최소 6mm, 최대 14mm |
주무장 | 2파운더포(40mm 52구경) 1문 (100발) |
부무장 | 7.7mm 빅커스 기관총 × 3 (3000발) |
엔진 | AEC제 179 6기통 150마력 공랭식 가솔린엔진 |
출력비 | 11.8hp/t |
현가장치 | 홀스트만 현가장치 |
항속거리 | 240km (포장도로) |
속도 | 40km/h (포장도로), 15km/h(야지) |
총 생산대수 | 125량 |
3. 개발
원래 영국은 A9 전차를 주력으로 할 생각이 없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빅커스 Mk.III(전투 중량 16톤의 A6 전차)가 차기 주력전차였으며 시제품까지 나왔다가 계획이 엎어진 것이다.3.1. 전차 무용론과 정경유착의 조합
계획이 엎어진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휴 엘리스(Hugh Elles) 중장이라는 적이 된 아군 보정을 받은 듯한 내부의 방해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 전차 군단 사령관이면서 전차가 대대적으로 투입된 1917년의 캉브레(Cambrai) 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역이었으며 당시까지만 해도 전차에 대한 믿음과 이를 활용한 전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하지만 전차가 진보할수록 대전차포와 대전차 소총같은 대전차 화기 또한 발전을 거듭했는데 이런 현상을 너무 과대 평가해서 전차는 더 이상 대전차 화기를 능가할 수 없을 것이라 믿게 되었다는게 문제였다. 그래서 휴 엘리스는 전차의 미래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었으며, 이후로는 퇴역 때까지 전차 무용론에 가까운 행동을 보였다.
문제는 휴 엘리스가 영국 육군의 재군비 계획이 겨우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을 무렵인 1934년 4월에 영국 육군 병기국장(Master-General of the Ordnance)에 임명되며 전차 조달의 책임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전차 전문가에서 전차 무용론자로 흑화한 사람이 전차 조달의 책임자가 된 어이 없는 사태가 터진 것이다.
대표적으로 휴 엘리스 중장이 저지른 만행이 마틸다 전차중 첫번째인 A11 마틸다의 생산과 관련된 것이었다. 애초에 전차를 아예 생산하지 않으려고 했다가 해당 전차에 60mm 장갑판을 설치하면, 당시 독일 육군이 보유하고 있던 3.7cm PaK 36 대전차포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주위에서 줄기차게 설득해서야 간신히 결재 도장을 찍은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어렵게 생산이 결정된 마틸다 I을 보고 콩알만한 것이 생긴 게 꼭 오리 같고 움직이는 것도 비슷하니 마틸다란 이름과 아주 딱 어울린다면서 비웃을 정도였다.
이렇게 전차라고 하면 발작증세를 보이는 휴 엘리스 중장이 A9 전차를 승인한 이유는 바로 빅커스 사의 기술이사 존 카든(John Carden) 남작이 설계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존 카든의 또 다른 직책은 바로 영국 육군 기계화 국장이라는 요직이었다. 방위산업체 임직원이 정부 조달의 핵심부서장을 동시에 담당하는 정경유착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전차 무용론자 + 이익에만 몰두한 업체라는 환장의 콜라보가 일어난 결과 합리적으로 값싼 전차(reasonably cheap tank)란 말이 자랑거리가 된 전차가 등장하게 된다.
3.2. 설계 변경과 땜빵전차
A9 전차가 1934년에 울워스(Woolworth) 전차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계될 때는 그 때 당시 기준으로 강력하지만 느리고 둔중한 Mk.III와 A6의 사각을 보좌하는 근접 지원(Close Support) 차량으로 주포도 장갑관통력이 거의 없다시피하는 1차대전식 산포인 QF 3.7인치 산악 곡사포를 전차 탑재용으로 개조한 3.7 inch (94 mm) L15 곡사포를 탑재한 보조 전차였으나 계획이 엎어지면서 취소된 전차들을 대체할 염가판 전차로 떠오르게 된다.이런 사정으로 인하여 A9 전차는 주포를 2파운더 대전차포로 변경해서 영국 육군이 원하던 무기는 아니었으나 그럭저럭 쓸만한 대안으로 떠올랐으며 기존의 설계에 따른 근접 지원 차량으로서의 전차도 소수 생산해서 함께 운용했다.
이리하여 A9이라는 형식명을 단 A9 전차는 1936년부터 양산되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는 1936년부터 시제품인 A9E1을 바탕으로 양산명령이 떨어진 후 1937년에 Mk.I은 125대가 주문되었다. 이중 선행 양산형 50대가 빅커스에서 만들어지고 75대가 아일랜드 벨파스트에 위치한 할랜드 & 울프 중공업(Harland & Wolff)에서 생산되었다. A9 전차 중에서 일부 수량은 3.7 inch (94 mm) L15 곡사포를 탑재한 근접 지원(Close Support) 전차인 Mk.I CS로 제작되었다.
개발 당시에는 순항전차 개념이 없었으나 이후에 순항전차 구분이 생기면서 최초의 순항전차는 순항전차 Mk.1 A9 전차가 되었다.
4. 형식
4.1. Mark I (A9)
Mk. I (A9) |
5. 파생형
5.1. 장갑강화 파생형
5.1.1. A10 전차
Tank, Cruiser, Mark II (A10) |
5.2. 무장 교체 파생형
5.2.1. Mark I CS
근접지원용 전차. 2파운더 대신에 QF 3.7인치 산악 곡사포가 원본인 3.7 inch (94 mm) L15 곡사포 1문으로 무장했다. 탄약은 대부분 연막탄으로 구성된 40발을 적재했다. 연막탄을 적재한 이유는 그 당시 영국 전차 교리에 따라서 전차 부대의 후퇴를 위해 다량의 연막을 발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6. 특징
개발과정의 우여곡절 및 땜빵으로 긴급변경된 상황에서 최초의 순항전차가 된 지라 문제점이 많았다.6.1. 장점
전간기 동안 전차 기술을 선도한 영국이기에 당시 기준으로는 선진적인 점이 있었다.빅커스에서 자체 개발한 주포탑의 경우 장갑 얇은 것을 빼면 준수했다. 항공기 개발 경험을 살려 폭격기용 총탑 기술을 적용시켜서 세계 최초로 동력식 회전 포탑을 장비하고 있었다. 포탑 선회에 필요한 동력은 유압식을 쓰고 있었고 반응속도도 양호했다. 다만 유압식 특유의 약점인 피탄시 고압유가 새어 나오면서 발화하는 화재발생문제로 인해 이후의 영국제 전차는 보다 안전한 전기식으로 수정되었다.
그 외에도 전차장, 포수, 탄약수가 탑승하는 3인용 주포탑을 채용하였으며 주포탑 바스킷도 도입하였고 무전기도 주포탑에 탑재했다.
차체 하부에는 지뢰 폭발에 견디기 위해 저항력이 높은 V자 선체형의 바닥을 처음 채용했는데, 이러한 설계는 MRAP에도 일부 쓰이는 방식이다.
화력 면에서도 일단 2파운더 수준이면 그럭저럭 당시 기준에서도 대전차전에 한한다면 준수한 수준이었고 이외에도 기관총을 많이 탑재해서 스펙상으로 보이는 화력은 좋아보였다.
6.2. 단점
A9(순항전차 Mk.1)은 빅커스 미디엄 Mk.3의 설계 요소를 일부 가져온만큼 장갑이 리벳으로 접합되고 외부에 기관총탑이 있는 전간기식 전차 설계가 적용되었다.설계사상도 구식인 것은 둘째치고라도 원래 후방이나 후위에서 보병 지원이나 할 전차로 설계된 물건이 최전방에서 적과 포탄을 주고받는 순항전차로 변경되었는데도 이런 점을 반영하지 않고 원가절감이나 한 결과가 매우 컸다.
6.2.1. 주행력
현가장치로는 홀스트만 현가장치를 채택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슬로우 모션 타입(Slow Motion Type)이라는 것이다. 아주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전의 생산품인 빅커즈 미디엄이나 브렌건 캐리어 계열 차량에 사용되던 것을 보강한 것이었다. 경전차 계열에서는 2륜 1조이던 보기륜 구조를 3륜 1조로 하중을 분산시킨 것인데 24인치 보기륜을 19.5인치 보기륜 2개가 보조하는 독특한 스타일로 한쪽 무한궤도에 2개조씩 장착되었다.해당 현가장치는 신뢰성이 좋았지만 순항전차용으로 쓰이기에는 반응속도가 느렸다. 그리고 초기형에는 브레이크 드럼의 결함과 현가장치의 과열이 발생하였으며 정비가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도 문제점이라고 지적당했는데 그나마 이들 문제점은 일부라도 개선되긴 했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고 남은 문제점도 많은데다가 애초부터 순항전차용 무게를 감당하면서 고속 주행하기에는 걸맞지 않은 현가장치였다. 그래서 고속을 내는 순간 현가장치의 반응속도가 느려서 충격을 제대로 빠르게 흡수하지 못하므로 전차가 마구 흔들려서 심할 경우에는 전차 승무원이 몸을 못가누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무한궤도도 기존의 탱켓 계열 제품을 기반으로 만들어져서 A9 전차같은 크기와 중량을 가진 전차가 쓰기에는 폭이 좁아서 험지돌파력이 크게 떨어지는데다가 심심하면 제자리에서 이탈하는 단점이 있다. 특히 작은 보기륜에 주먹만한 돌멩이라도 끼어드는 순간 주행불가나 무한궤도 이탈이나 현가장치 파손같은 대형 사고가 터지기 때문에 이후의 영국 전차들은 한동안 크리스티 현가장치로 전환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에는 고속성능을 내기 어려운 보병전차인 발렌타인 전차에나 채택되었다. 그 이후의 홀스트만 현가장치는 사실상 환골탈태한 후에나 전후에 채택된다.
여기에 더해서 엔진도 시원치 않았다. 기존의 취소된 전차보다 가벼웠기에 원가절감을 생각하고는 승용차인 롤스로이스 팬텀 II의 120마력 휘발유 엔진을 탑재하려 했지만 개발이 진행되면서 시제품의 중량이 10톤에서 12톤 이상으로 무거워졌다. 덕분에 런던을 주행하는 2층버스에 사용되던 6기통 AEC 179 150마력 휘발유 엔진으로 변경되었다.
상용 버스 엔진을 그대로 가져다 쓴 엔진은 원가절감에는 좋았으나 출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최초의 순항전차로서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40km/h의 최고 속력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건 포장도로상에서의 기록이고 비포장 도로만 만나면 앞서 말한 성능이 부족한 현가장치 및 폭이 좁은 무한궤도와의 환장적 조합에 의해 15km/h로 급격하게 낮아졌다. 덤으로 항속거리도 포장도로보다 크게 떨어졌다.
덕분에 순항전차 답지 않게 적의 강력한 공격을 속도로 회피하기가 어려워지게 된다.
6.2.2. 방어력
장갑도 당시 대다수의 전간기 전차들처럼 매우 얇았기 때문에 가장 두꺼운 부분도 최대 13mm였다. 이후 전차들처럼 공간장갑을 쓴 것도 아니라서 장갑 관통하면 그대로 끝난다. 게다가 많은 부분은 고작 6~7mm의 장갑이라 사실상 양철조각이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2호 전차도 당시의 주무장인 20mm KwK 30 기관포의 관통력은 딱 500m에서 14mm였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 표준교전거리에서 A9 전차를 격파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독일군 보병이 주력으로 쓰던 37mm 대전차포 PaK 36에게도 손쉽게 격파당했다.그 당시 전차들이 다 그렇다고 치부하기도 곤란한게 독일군의 1호 전차나 2호 전차는 당시 독일의 열악한 사정으로 인해 숫적으로만 주력이었지 애초부터 체급이 달라서 A9 전차와 비교할 대상이 아닌데다가 3호 전차나 4호 전차도 몇 대 안되는 초기형이나 15mm 장갑이었지 개량형부터는 최소 30mm 장갑을 두르고 다녔다.
장갑이 얇은 것도 문제인데 구조적인 결함도 있었다. 안그래도 작은 전차에 기관총탑이 두개나 되니까 조종수는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그래서 시야 확보를 위해 조종수실을 기관총탑보다 더 돌출된 수직 사각형 구조물로 만들었고, 전면관측창 겸 해치가 앞으로 열리는 구조를 채택해 방어력이 약해졌다. 하지만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시야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더해서, 양 옆 기관총 포탑의 화약연기가 조종수석으로도 들어오는 탓에 밀폐 전투가 필요한 교전시에 환기를 위해서 해치를 열고 다녀야 하는 경우도 흔했다.
기관총탑 자체의 문제도 컸다. 수직장갑이라서 말 그대로 적의 소구경 기관포탄만 맞아도 관통당하는데 그런 물건을 전면에 두개나 노출시켜놓았으며 A9 전차의 폭을 생각해본다면 2기의 기관총탑과 조종수석을 모두 전면에 배치하기에는 폭이 부족해서 기관총탑을 매우 작게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다가 구경에 비해 덩치가 큰 수랭식 기관총을 설치해놓았으니 기관총수는 말 그대로 총탑 사이에 끼인 상황이 돼서 전투효율이 나락으로 갔다.
덕분에 전면에 경사장갑을 적용해놓은 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며 전면에 피탄시 조종수와 양측 기관총수 2명이 동시에 죽거나 부상을 입어서 전투수행은 커녕 후퇴하기도 곤란한 상황을 만들게 된다. 안그래도 전차에 6명이나 필요한 상황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답이 없다.
6.2.3. 공격력
장갑이 빈약하면 화력으로 적이 공격하기 전에 선제공격해서 제압하는 방법을 쓰기도 어려웠다. 일단 앞서 말했듯이 순항전차치고는 속도가 그렇게 좋지도 않은데다가 주포인 2파운더는 동급의 전차포중에서 관통력이 높았지만, 당시 상황으로는 고폭탄이 없다시피해서 보병 및 비장갑 목표물에 대한 공격능력이 제로에 가까웠다.부무장인 기관총의 경우, 기관총 자체는 준수하지만 기관총탑에 제대로 된 배기시설이 없어서 조금만 사격을 지속하면 화약연기로 인해 사수가 호흡곤란이 올 지경이었으니 사실상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덤으로 기관총탑이 협소한데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수랭식 기관총을 탑재한 결과 기관총수가 기관총탑 안에 끼어들어간 형태가 만들어져서 재장전이 매우 힘들어졌으며 기관총탑 회전도 원래 허용치보다 적게 움직여야만 재장전 및 사격이 가능하다는 답 없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차라리 차제 전면장갑 고정식 볼마운트 기관총이 몇 배나 효율이 높을 지경이었다.
해당 폐쇄식 기관총탑은 모양만 조금 바뀌어서 크루세이더 전차(MK.1)에도 1기가 탑재되었으나, 역시 동일한 문제가 발생해서 철거당하고 만다.
원래 기관총탑의 경우에는 없애려고 했으나 설계자가 고집을 부려서 남긴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진짜로 답이 없었다.
결국 대전차포를 상대할 경우 전차 포탑의 공축기관총 유효사정거리까지 급속 전진해야하므로 이 과정에서 대전차포의 정확한 사격을 받고 불타는 전차가 되기 딱 좋았다.
Mark I CS형의 경우에는 3.7 inch (94 mm) L15 곡사포가 주포이므로 대전차포나 보병 상대를 주포로 하기에는 적합했지만 영국 전차 교리에 따라서 적재 포탄의 대부분을 연막탄으로 채워서 고폭탄의 숫자가 모자랐다. 덤으로 주포에 장갑관통력이 없다시피해서 적 전차가 등장하면 연막을 뿌리는 것 외에는 대응이 불가능해지는데다가 수량도 부족해서 진퇴양난이었다.
7. 실전
7.1. 제2차 세계 대전
프랑스 침공 당시 칼레에서 촬영된 궤도가 끊어지고 유기된 영국 원정군 소속 A9 CS 전차 |
영국 본국에 아직 남아있던 예비전차들은 북아프리카 전역에도 보조전력 겸 정찰전차로서 참전했으나 애초에 수량이 적고 구식전차로 평가받은데다가 손실도 많아서 1942년부터 슬슬 보기가 어려워졌지만 영국군의 대규모 공세때 남아있는 전차들이 보조용으로 재투입되기도 했으며 이 때 위장을 위해 전차 위에 방수포를 사용한 트럭 껍데기를 착탈식으로 장착한 특수 버전이 버트럼 작전 당시 투입되었다.
원래 생산량이 적은데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초반~초중반의 전투에서 많이 파괴되거나 격파 및 손실되는 바람에 현재는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 실차량 1대가 살아남은 게 전부다. 인도에도 1대가 남아있긴 하지만 주포가 모조품이면서도 길고 차체의 상당부분을 발렌타인 전차에서 유용해서 원본과는 거리가 조금 있다.
8. 미디어
8.1. 월드 오브 탱크
A9이 영국 1티어 경전차로 등장한다.9. 모형
9.1. 프라모델
- Gecko models - A9, A10 기본형과 두 전차의 근접지원형(CS)버전이 1/35 스케일로 발매되었다.
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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