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대전이 끝난 후 세계 처음으로 유의미한 숫자가 양산된 신개발 전차로[2]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전차가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연구하기 위해 "실험 기계화부대(Experimental Mechanization Force (EMF))"에서 사용되었고, 개발된지 20년이나 지난 후 2차대전에서 실전에 투입되게 된다.
빅커스 미디엄 마크1은 이전의 영국 전차들과 달리 완전한 포탑을 가지고 있으며 현가장치도 용수철을 사용한 것으로 바뀌었고 사람이 걸어가는 수준의 속력을 가졌던 기존 전차들에 비하면 속력 또한 상당히 빨라졌다. 하지만 이 전차의 가장 중요한 개선점은 3인승 포탑을 적용하였고 현대 전차 승무원의 역할과 동일하게 전차장, 포수, 탄약수의 역할을 엄밀하게 구분하였다는 점이다.[3] 다만 공축기관총은 주포에 고정된 방식이 아닌 탄약수가 따로 움직이는 방식이였다. 정작 빅커스를 포함한 영국 전차 설계사들은 이후 다포탑 전차에서 삽질을 하게 된다. 물론 이때도 주포탑만큼은 3인승 포탑을 적용하고 차장, 포수, 탄약수의 역할을 구분하기는 했다.
영국의 순항전차, 보병전차 분류가 등장하기 전의 전차이지만 "실험 기계화부대(Experimental Mechanization Force (EMF))"에서 순항전차 개념을 검증하는데 쓰였고, 기술적으로는 마틸다 II 전차의 차대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순항전차와 보병전차 모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24년 시작으로 1925년에 빅커스 보병전차 Mk.1을 기본으로 개발되었다 약 100여대로 제작된 전차가 1925~1934년까지 양산되었다. 시대에 비해서 포탑이 매우 큰 것을 알 수 있으며, 1932년부터 무전기가 포탑 후면으로 이동하였으며 이를 수납하기 위해 뒤통수가 튀어나오게 했고 이는 이후 영국 전차들에 공통점이 된다. 또한 보이듯 식민지 군에 배치되어 있을 때 이탈리아와 일본이 식민지를 침공하여 전투를 치렀다. 소련이 1921년 15대를 구입해가서 ‘English Workman'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런데 시기를 보면 MK.1을 구입한 것 같은데 구입한 것은 MK.2라고 한다.
첫 자주포는 원래 영국에서 생산되었으며 개발 시작은 1923년, 1925년 시제차량이 빅커스 보병전차 Mk 2를 기반으로 18 파운더 야포를 장착하여 만들어졌다. 몇몇 시제차량이 만들어졌으며 1925년 시험운행을 시작하였다. 영국 정부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결국 1928년 계획이 취소되었다. 360도 포탑 회전이 가능했던 선진적인 자주포였으나, 그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차체는 마틸다 전차에 쓰이게 된다.
[1] 적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비전시 + 대공황기의 생산량이다.[2] 이전에는 프랑스의 2C 전차가 10대 정도만 생산되었고, 이미 전차의 아버지, 어머니인 Mk 시리즈 전차와 르노 FT는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3] 3인용 포탑은 프랑스의 초중전차 Char 2C에서 채용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