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ИС-2 (Объект 240) |
1. 개요2. 제원3. 내부4. 개발사5. 형식6. 파생형7. 평가8. 실전
8.1. 제2차 세계 대전
9. 운용국10. 미디어11. 모형12. 참고 문헌13. 둘러보기8.1.1. 독소전쟁
8.2. 냉전기8.1.1.1. 바그라티온 작전8.1.1.2. 타르투 공세8.1.1.3. 하부 슐레지엔 공세8.1.1.4. 동프로이센 공세8.1.1.5. 모라바-오스트라바 공세8.1.1.6. 부다페스트 공방전8.1.1.7. 봄의 새싹 작전8.1.1.8. 베를린 공방전8.1.1.9. 프라하 공세
8.1.2. 계속전쟁1. 개요
브로니 기갑 무기 박물관 소장 폴란드 인민군 소속 IS-2 1944년형 기동 영상 |
현재는 생산국의 표기법을 존중하자는 의견에 의해 IS-2라 부르는 경우가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서구식 발음표기에 의거한 JS-2라는 명칭도 통용되는데, 이는 러시아 정교회나 기독교나 가톨릭 모두 성경을 기반으로 한 종교이기 때문에 이오시프든 조셉이든 모두 성 요셉을 가리키고, 오직 발음상의 차이일 뿐이기에 IS-2, JS-2 모두 틀린 표기가 아니다.
발음법은 키릴문자 "ИС-2"를 기준으로 "이스-드바(IИС-Два)"나, 약자를 풀어서 "이오시프 스탈린-드바(Ио́сиф Ста́лин-Два)"라고 칭한다.
2. 제원
IS-2 중전차 Object 240 | ||
개발 및 생산 | ||
개발기관 | SKB-2 | |
개발연도 | 1943년 | |
생산기관 | ChTZ, 키로프 공장 | |
생산연도 | 1943~45년 | |
생산량 | 3,395대 | |
운용연도 | 1944~95년 | |
운용국가 | 소련,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중국, 쿠바 | |
제원 | ||
전장 | 6.77m (포신 포함 시 9.83m) | |
전폭 | 3.07m | |
전고 | 2.63m | |
중량 | 46t | |
탑승인원 | 4명 (전차장, 포수, 조종수, 탄약수) | |
공격력 | ||
주무장 | 48구경장 122mm D-25T 전차포 1문 (28발) | |
조준장치 | TSh-17 | |
부앙각 | −3[2]// +20° | |
회전각 | 360° | |
부무장 | 12.7mm DShK 대공기관총 1정 (250발) 7.62mm DT 차재 기관총 3정 (2,520발)[3] | |
기동력 | ||
엔진 | 하리코프 V-2-IS(V-2-10) 액랭식 디젤엔진 | |
최고출력 | 520hp | |
출력비 | 11.3hp/t | |
현수장치 | 개별 토션 바 | |
무한궤도 폭 // 매수 | 650mm // 좌우 각 86매 | |
최고속력 | 37km/h (야지 주행 시 15km/h) | |
항속거리 | 240km (야지 주행 시 160km) | |
접지압력 | 0.8kg/cm² | |
초호능력 | 2.5m | |
초월능력 | 1m | |
등판능력 | 36° | |
도하능력 | 1.3m | |
방어력 | ||
장갑형식 | 주조 및 균질 압연 장갑 | |
차체 | 전면 | 상부: 120mm / 60°[4] 하부: 100mm / 30° |
측면 | 90mm | |
후면 | 상부: 60mm / 49° 하부: 60mm / 49° | |
바닥면 | 상부:30mm 하부: 20mm | |
포탑 | 전면 | 100mm |
측면 | 90mm / 20° | |
후면 | 90mm / 30° | |
상면 | 30mm |
3. 내부
IS-2M 내부 상세도 |
4. 개발사
시제 중전차 IS-122[5] |
IS-2 극초기형[7] |
IS-2 |
5. 형식
IS-2 초기형과 후기형의 장갑 레이아웃 |
5.1. 초기형
1943년형 |
1944년형 포탑을 단 1943년형[8] |
대기갑전에서도 독일군의 중전차들마저 일격에 침묵시킬 수 있는 공격력과 경우에 따라 71구경장 8,8cm KwK 43 전차포는 무리여도 56구경장 8,8cm KwK 36 전차포나 8,8cm FlaK 대공포의 철갑탄을 방어하는 방어력은 확실히 이점으로 작용했다. 대기갑전은 T-34-85 말고도 SU-85, SU-100 등의 자주포들이 주로 활약했고 스탈린 전차의 1차 임무는 뛰어난 중장갑과 대구경 강선포를 내세운 대건물, 대보병용이고 기갑전은 2차적 임무였다. 그렇다고 해서 IS-2의 대전차 능력이 T-34나 SU-85에 비해 밀렸다는건 아니고 IS-2의 대구경 강선포는 강력한 화력으로 전선돌파중에 마주치는 적 중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성능은 가지고 있었다.
다만 85mm M1939 52-K[9] 대공포나 100mm 강선포 같이 대전차전에 훨신 더 써먹기 좋은 포가 있었음[10]에도 고폭탄 화력이 뛰어나 전선돌파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122mm이 선택된건 맞으며 100mm포가 대전차전에서 더 유연하게 쓸만하다는게 입증된 이후이자 100mm 강선포의 포탄도 충분히 생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22mm 전차포를 주포로 탑재하였다. 전선돌파중 이전에 비해 방어력이 상승한 서방전차(M47 패튼, M48 패튼)와 마주치는 경우 이 서방전차들을 손쉽게 상대하기 위해 주포가 변경되었다.
2차대전 시기 나치독일과 냉전시기 서방은 KV-1과 IS-2, IS-3를 잡기위해 자국 중전차의 대전차전 성능을 매우 중시했으나 소련 중전차는 2차대전 시기든 냉전시기든 자체교리에 맞게 전선돌파 목적을 먼저 충족하도록 설계되었다.
5.2. 후기형
IS-2 1944년형 |
초기형 IS-2들은 전투에서 제 역할을 잘 맡곤 했지만, KV-1부터 존재했던 차체 전면의 조종수 관측용 해치와 해치를 넣기 위한 각진 전면 장갑 설계라는 치명적인 문제가 여전히 있었다.[11] 1943년형 IS-2의 조종수 관측창은 전면장갑의 한 가운데에 위치했기 때문에 지붕에 조종수 탑승구가 없는 전차에서 조종수의 시야 확보에는 도움이 됐지만 동시에 전면부 방어력이 크게 저하되는 원인이자 큰 약점이 되었다.[12]
소련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되어 1944년 봄부터 IS-2의 부분변경 설계가 시작되어, 차체 전면을 비롯한 일부 설계가 바뀐 1944년형 IS-2가 등장했다. IS-2 1944년형의 개량점으로선 기존의 120mm 계단형 정면장갑을 폐지하고 60도 경사의 120mm 경사판으로 전면 상단 설계를 교체하면서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개폐식 조종수 관측창을 제거하였다는 점이 있다.[13] 이것으로도 전면부의 방어력의 강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차체 하단의 경우 처음에는 1943년형처럼 주조장갑으로 제작되었지만 1944년 말부터는 용접장갑 형식으로도 생산되기 시작했다.[14]참고
차체 전면 설계 이외에도 포탑 설계또한 부분적으로 수정되면서 포방패가 확장되고 포수 조준경 위치가 주포에서 떨어지게 변경되었다. 그리고 차체 후면에는 수송시 사용하기 위한 주포 고정장치가 추가되고 포탑 상부에 대공용 DShK 기관총도 추가되었다. 물론 후기형 차체에다가 초기형 포탑을 달아놓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44년형에서 약점으로 지목되었던 장갑부를 개량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정면장갑에 불과했기에, 시가전이나 참호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이 시기즈음부터 독일군이 대량으로 운용하기 시작한 성형작약탄두 대전차 화기, 즉 판처파우스트를 상대로는 취약한 약점부위들이 관통되면서 적지 않은 수가 보병과의 근접전에서 파괴되게 된다.[15] 덤으로 전면 장갑의 변경과 개폐식 관측창의 삭제로 조종수 시야는 희생될 수 밖에 없었고, 아직 차체 전면에 노면에서 튀는 물과 흙먼지 등을 막아주는 스플래시 보드도 없어서 조종수의 시야는 영 좋지 않았다. 그리고 이전에 생산된 초기형 차량들도 많았던 만큼 후기형 차량들이 초기형 차량을 전부 대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D-25T 주포의 성능과 소련군 물량은 독일군 장병들을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기에 충분하고 소련군 입장에서 IS와 같은 중전차의 주 임무는 적 보병진지를 돌파할때 확실하게 선두 대열을 맡아줄 존재의 필요였기에 임무는 충분히 수행했다고 볼수있다. 단지 또 다른 임무로서 전선에서 어쩔 수 없이 부여된[16] 독일 중전차와의 교전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이건 결국 활용방법이 달랐던 전차들의 맞붙음에서 벌어졌던 손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소련 군부도 이미 IS-1과 초기형 IS-2의 방호력이 부족해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고, 1943년 말부터 방어력 증대를 위해 전면 장갑 설계를 부분변경하는 작업과 별개로 IS-2의 대규모 개량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많은 공장의 설계팀들이 각자의 설계안을 내놓았고, 그 중 후술할 100번 공장이 만든 IS-2U와 ChKZ 공장의 SKB-2 설계국이 만든 키로베츠-1이 주목을 받아 IS-3의 개발 기반이 되었다.
5.3. IS-2M
ИС-2М (1943) |
ИС-2М (1944) |
1950년대 중반에 소련군은 실전 경험과 IS-3의 개발에서 얻은 노하우들을 토대로 IS-2에 대한 현대화 개량 작업을 진행했다. 1954년부터 처음 계획되었고, 1956~1957년 무렵부터 창정비를 통해 본격적으로 실시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이 개량을 거친 전후 개량형 차량들을 IS-2M으로 명명했다. 참조
현대화 개량은 대부분 1944년형을 대상으로 실시되었으는데, 43년형 IS-2 객체 일부도 수혜를 받아 IS-2M 사양으로 개수되었다. 43년형 역시 다른 부분은 모두 개량되었지만 차체 전면의 계단형 장갑과 개폐식 조종수 관측 해치는 개수할 수 없었기에 IS-2M 원형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이를 보고 구분이 가능하다.
개량점들은 다음과 같고, 이러한 특징들은 IS-2과 IS-2M의 주요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사격통제장치와 관측장비에 대해서는 조종수 관측창의 프리즘 슬릿이 신형 부품으로 교체되었고 차체 전면부에 신형 헤드라이트 1쌍이 추가되었다. 이에 따라 헤드라이트가 아예 없었거나 우측에만 1개 붙는 기존과 달리 증가장갑 압쪽 양 옆에 대칭적으로 라이트가 생긴 형태로 변했다. 전조등 부품 보호를 위한 철망형 가드레일 구조물도 생겼다. 또한 야간작전 시 등화관제를 위해 적외선 필터를 부착한 헤드램프와 함께 사용하기 위한 TVN-2 또는 NRZ 야간 관측장비가 장착되었고 이 덕에 주포의 유효사거리가 증가하였다고 한다.
장갑 및 차체 개선 사항은 다음과 같은데, 우선 차체 전면에는 흙탕물이 조종수의 관측창으로 튀는 것을 막기 위해 차체 전면에 스플래시 보드가 추가됐고, 전시 중 끊임없이 지적된 포방패 틈 사이의 누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방수포 걸이가 용접으로 신설되었다.
또한 차체 측면에 기존의 궤도 보호 커버를 T-54와 동일한 형태로 교체하였고, T-10처럼 궤도 상단을 가리는 알루미늄제 사이드 스커트를 추가하였으며 추가적으로 전시 중 판터파우스트 및 성형작약탄에 당한 전훈으로 IS-3와 동일한 형태의 공간장갑이 신설되어 공간장갑 안의 빈 공간은 공구함 등으로 사용되었고, 기존의 연료탱크가 설치된 부분은 추가적인 연료탱크를 달아둘 수 있게 엔진룸 덮개에 외부연료탱크를 적재할 수 있도록 하여 기존의 항속거리인 240km에서 400km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차체 전면에도 T-62와 동일한 연료탱크가 추가되었다.
추가적으로도 차체 후방에 BDSH 원통형 연막 생성장치 2개를 추가해 전투 중 후퇴할 시 생존성을 높였다.
포탑 개선 사항으로는 양쪽 측면에 존재하는 권총 총구가 화학무기 및 유탄 문제로 폐지되었으며, 후방의 포탑 기총구는 기관총이 들어갈 곳만 용접하고 그대로 환풍구로 변환시켰고, 이 덕에 차체의 환기 성능이 좋아졌다.
내부 구조 변경 사항은 다음과 같다. 포탄 적재량이 기존의 28발에서 35발로 늘어났으며 동시에 개선된 D-25 포를 사용해 주퇴복좌기가 개선되면서 반동 제어가 향상되었고, 반동 메커니즘의 일부 부품은 T-54와 공유하게 되었다.
구동계 개선 사항으로는 엔진을 T-54에 적용된 V-54 기반의 신형 V-54K-IS로 교체하였다. 전자식 시동장치, 연료 분사기, MOHP-2, VTI-2 전기 펌프, 에어 필터도 장착되었으며, 후면 베어링에 직접 고정식 부착 장치가 있는 오일 펌프와 오일 냉각 시스템을 갖춘 새로운 기어박스가 사용되었다. 유성 회전 메커니즘은 반강체 연결을 통해 종감속장치에 연결되었다.
기타 개선 사항으로는 보기륜의 캡이 5개 볼트 조임에서 10개 볼트 조임 형태로 교체되고, 리턴롤러 및 서스펜션 베어링도 신형 부품으로 변경되었으며, 통신장비가 R-113으로 교체되었다.
6. 파생형
IS-2는 소련에서 생산된 중전차들 중, 가장 성공적이며 타국에 공여도 많이 된 모델이기에 소련 군부에서나 타국에서나 여러 개량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 중, IS-2를 베이스로 한 페이퍼플랜들 또한 존재하는데, 각각 "IS-2U"와, "IS-M"이 존재한다.
이 중 IS-2U는 1944년에 IS-2 대규모 성능 개선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당시 등장한 IS-2의 개량중 하나로 비슷한 시기에 먼저 등장한 IS-6 중전차를 개발한 조제프 코틴의 개발팀이 설계했다. 설계도면만 남았고 실차는 제작되지 않았다.
1944년형 IS-2를 기반으로 전면장갑을 IS-6 개선형 설계안(오비옉트 252U)에 먼저 적용되었던 쐐기형 형상으로 바꾸고, 포탑도 오비옉트 701 초기 시제차와 비슷하게 포수 조준경이 전면 좌측으로 옮겨진 돌출된 형태로 부분적으로 재설계했다. 포탑 전면장갑에는 측면 방향 경사가 추가되고 포방패 또한 좁아졌으며 주포도 개선되었다. 쐐기형 전면 장갑은 V.I. Tarotko가 설계했고, 전면 방어력을 증가시키면서도 조종수 출입 해치를 제대로 설치할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었다.
동시기에 개발중이던 키로베츠-1(Object 703)과의 경쟁에서 패배하였으나, 소련 군부는 IS-2U의 독특한 쐐기형 전면 장갑에 관심을 가져서 양산될 키로베츠-1에는 IS-2U와 동일한 쐐기형 전면장갑 설계를 적용하도록 했다. 이렇게 IS-2U에서 선보여진 쐐기형 전면 경사 장갑 설계가 키로베츠-1에 적용되면서 현재의 IS-3가 완성되었다.
IS-M은 IS-2 대규모 개선 프로젝트에 제안된 N. F. 샤슈무린의 설계안. 엔진룸과 포탑 구획의 위치를 바꿔 차량 레이아웃을 후방 포탑형으로 뜯어고치고 지지롤러 없는 대형 보기륜 6쌍이 들어간 신형 토션바 현가장치를 적용했다.참조 신형 현가장치뿐만 아니라 기존 IS-2와 동일한 형식의 현가장치를 단 설계안도 있다.
비록 채택되지 못하면서 페이퍼 플랜으로 그쳤으나 신형 현가장치 설계와 같은 일부 요소가 IS-6의 개발에 사용되었다. 현가장치는 오비옉트 244 시제차를 거쳐서 IS-6으로 넘어갔다.
이 설계안을 기반으로 1944년 초부터 개발된 152mm BL-8 중포로 무장한 후방 전투실 자주포도 계획되었지만 역시나 페이퍼플랜으로 그쳤다. 대신 BL-8 포는 ISU-152에 시험적으로 장착되었다.
6.1. 소련
6.1.1. 자주포 개수형
6.1.1.1. ISU-152
ИСУ-152 «Зверобой» |
6.1.2. 무장 교체 파생형
6.1.2.1. IS-2M (D-10T)
ИС-2М (Д-10Т) |
본래 IS-1이 개발될 당시, 85mm 주포가 화력이 부족하다는 의견에 따라 이를 기반으로 100mm D-10 주포를 단 파생형 오비옉트 245나, 이를 개량한 오비옉트 248이 개발되었는데 당시 소련 군부에서는 대보병 화력의 부족이라는 문제점에 채택 및 양산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전후 냉전 시기에 들어서며 전술 및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자 일부 차량에 이러한 개조를 행한 것이다.
6.1.2.2. IS-2M (D-81)
ИС-2М (Д-81) |
본디 해당 차량은 T-64를 개발할 당시, 125mm의 포를 견딜 수 있을 만한 플랫폼을 찾다 때 마침 구식 중전차인 IS-2M을 이용하자는 의견이 통과되며 시제 전차포인 D-81를 얹은 것이다.
반동을 버틸만한 무거운 중량에, 360도 회전 가능한 포탑, 그리고 다른 구식 전차들보다 조금이나마 넓은 포탑 용적 덕분에 테스트를 순조롭게 마쳤으며, T-64가 개발되는데 공을 세웠다.
6.2. 폴란드
6.2.1. 비무장 개조 파생형
6.2.1.1. IS-2 구난전차
IS-2 Wóz zabezpieczenia technicznego |
6.2.1.2. IS-2 제독차량
IS-2 dekontaminacyjny Tank |
7. 평가
7.1. 장점
- 강력한 화력
IS-2의 122mm 포탄에 포탑 측면을 직격당한 5호 전차 판터 |
실전은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티거에 적어도 70발을 철갑탄으로 채운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경심철갑탄 같은 탄은[17] 게임안에서나 관통이 되니 안되니 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런 특수탄은 연합군 / 추축군 공통으로 게임처럼 그냥 막 쏘는 탄이 아닌 한 차량에 몇 발 없는 필살 탄종으로, 아껴뒀다가 중전차 상대로나 쓰는 탄이다. 텅스텐이 워낙 귀하다보니 경심철갑탄이 가장 보급이 잘 된 소련군조차도 전차당 몇발 수준으로밖에 지급할 수 없었다.[18] IS-2의 경우 보통 HE 18발 AP 10발, 또는 HE 20발 AP 8발을 적재했으며 철갑탄은 특화점을 격파할 때나 사용하고 대전차전에서도 대부분의 경우 고폭탄을 그대로 썼기 때문에 탄약의 비율 자체보다는 애초에 탄약 자체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 되었지만, 대신 화력의 경우엔 그 이상이었기에 이런 점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오토 카리우스도 전투에서 마주쳤을 때 처음 본 주포 덕분에 위협을 느끼고 즉시 제거 시도를 했다. 기밀해제된 소련군의 문서를 확인하면 D-25T 강선포의 탄착군이 의외로 괜찮은 것을 알 수 있다.
- 견고한 장갑
IS-2 후기형의 차체 정면장갑은 120mm 60°경사장갑을 지니고 있어 차체 상단만큼은 티거와 판터의 주포는 물론이고 당대 최강의 대전차포인 88/71 PaK 43마저도 방호할 수 있었다.[19] 측면 방호력 또한 보병진지에 돌입할 때 가장 위협이 되는 사단 대전차포 대대의 7,5cm PaK 40 대전차포에 대해 지근거리 방호가 가능한 무지막지한 수준이었다.[20] 또한 티거의 주포로도 정면에서 차체 하단이나 포탑 등 평평한 부분을 맞추거나 차체 상단의 약점인 관측창을 맞추면 격파할 수 있었지만, 차체 상단의 경사장갑은 뚫기 힘들었다.
- 체급에 비해 가벼운 중량
IS-2는 중량 또한 46톤에 지나지 않으며, 티거 전차 3대를 수송할 때 IS-2 4대를 수송 가능했다. 소련군의 전차답게 가격과 생산성 또한 우위에 있어서 가격이 4호 전차 후기형과 비슷한 수준에 불과했고 티거의 ¼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IS-2가 판터와 비슷한 수준의 전차전을 할 수가 있었고 전선 충격력 면에서는 더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분명한 장점.
- 개량의 용이
후일 생산된 IS-3나 IS-4가 초기 품질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때, IS-2는 기존 수량이 매우 많은데다 개조가 쉽다는 장점으로 많은 개체가 현대화 개량을 하여 서방의 1-2세대 주력 전차를 상대로도 충분히 전투가 가능할 수준의 중전차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는 타 중전차들이 시대에 뒤쳐져 사라졌던 것을 생각하면 이것 또한 매우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7.2. 단점
- 작은 크기로 인해 비좁은 내부 용적
후술할 단점들은 근본적으로 모두 이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IS-2는 직계 선조인 KV-1와 비슷한 중량을 가지고 있지만, 차체의 크기가 확연히 더 왜소하다. 이것은 당시 소련제 엔진 출력의 기술적 한계로 인한 동일 중량이라는 제한 내에서 독일의 신형 전차들에 맞설 수 있는 화력과 방어력을 달성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종수 해치를 아예 폐지해버리는 극단적인 디자인을 채택하였고, 포탑 역시 122mm 포 탑재에 맞춰 대형화할 수 없었다. 실제로 IS-2의 크기는 중형전차인 T-34-85보다 살짝 더 큰 정도이다.
- 매우 느린 연사력
장전시간은 발당 평균 30초, 최소 20초로 매우 느렸는데. 이는 당시 기술적 한계를 포함한 복합적인 문제점으로 발생한 것으로, 주된 원인은 이 포탄이 분리장약식인 것과 작은 차체에 비해 매우 큰 주포와 과도한 경사장갑 설계로 가지게 된 비좁은 포탑 내부 용적으로 인한 제한된 승무원 활동 공간과 피로도 증가 때문이다. 우선 IS-2 전차의 주포로 개발된 46.3구경장 122mm D-25T 강선포는 원래 보병사단 포병연대의 사단 지원용 야포로 쓰이던 46.3구경장 122mm A-19 평사포를 개수하였기 때문에 분리장약식의 포탄 역시 계승되었다.
IS-2의 122mm D-25T 전차포탄[21] |
포탄을 일체형으로 변경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그렇게 되면 철갑탄은 길이 약 1.2m에 무게는 25kg이 넘어가게 되어 티거 2에 탑재된 KwK 43 71구경장 8,8cm 강선포의 1.1m짜리 철갑탄보다도 길어지게 되어 사실상 분리장약식만도 못하기에 계획은 취소되었다. 그나마 티거 2는 포탑이 넓어서 여유 공간이 많아 1.1m짜리 포탄이라도 비교적 수월하게 장전했겠지만 원래 53구경장 85mm D-5T 강선포를 탑재할 목적으로 설계되었던 포탑에 무리하게 122mm를 구겨넣어 안그래도 좁은 포탑에서 1.2m짜리 포탄을 장전하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일단 탄약수의 피로를 덜기 위해 포탄 받침대가 설치되었다곤 하지만 공간 자체가 좁다. 이는 초탄사격 후 수정사격이라는 전차포술의 기본기를 지키기 어렵게 만든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당시 대다수의 대구경 전차포들도 이런 문제점을 안고 있었는데. 야크트티거의 주포인 12.8cm PaK 44도 개발을 할때 같은 문제로 인해 일체장약을 포기하고 전통적인 분리장약으로 선회했으며, 전후에 개발된 M103 전차와 FV214 컨커러의 주포인 120mm M58도 분리장약을 채용했다. 이 문제가 해결된 건 비교적 가벼워진 분리철갑탄과 소진탄피의 대대적인 사용 이후부터였다.
- 구경에 비해 낮은 관통력
D-25 포는 고폭탄 화력이 우수했지만 철갑탄의 관통력은 비교적 뒤쳐졌다. A-19 야전 평사포를 개수하면서 개발된 대전차포 전용 포탄을 개발하지 않고 기존 야포용 포탄도 혼용하였고, D-25의 포구탄속이 상대적으로 저구경인 85mm와 100mm 고속 대전차포보다는 떨어지는 점과 소련의 낮은 철갑탄 관통자 가공 기술로 인해 생겨난 문제점이였으나, 애초에 포 자체가 고속으로 철갑탄을 쏘기 위해 개발된 것도 아니었고 철갑탄이 안 먹힐 경우 고폭탄을 사용하면 그만이었기에 상대가 수량이 적은 티거 2급의 떡장갑 중전차가 아닌 이상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일단 위력 면에서는 152mm 강선포를 탑재한 SU-152같은 자주포를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주포였다. SU-100 자주포에 쓰인 100mm D-10S가 운동 에너지탄 관통력과 재장전 시간 및 준비탄의 숫자 등등 대전차전만 놓고 본다면 여러가지 측면에서 122mm보다 훨씬 훌륭했고 실제로 IS-2의 주포로 거론되기도 하였으나 1944년 당시에는 아직 100mm D-10S가 배치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보급의 문제도 있었고 방어선에 순간적으로 강력한 타격을 가하는 능력에서는 122mm의 고폭탄이 더 위력이 강력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선택된 것은 122mm A-19 포였다.[22][23] 비록 100mm 보다 철갑탄 관통 성능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122mm도 대구경의 무거운 탄자에서 나오는 무식한 파괴력은 어디로 가는것은 아니었기에 1500m 밖에서도 명중만 하면 티거도 격파할수 있었고 4호 전차나 3호 돌격포등의 자잘한 적 전차를 상대할 때에는 SU-122나 SU-152를 운용하면서 얻은 경험으로 대구경주포의 고폭탄만으로 충분히 박살낼수 있다는 게 증명되었기에 독일전차부대를 상대로 꽤 전과를 내기도 했다. 고폭탄의 화력을 지나치게 무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2차대전기 전차들보다도 압도적인 장갑을 가진 현대의 주력 전차도 122mm 고폭탄을 취약부위(상부, 측면 뒤쪽 등)에 제대로 맞으면 상당한 피해를 입는다.
- 부족한 준비탄
용적대비 큰 주포는 다른 문제점도 야기했는데 포탄이 지나치게 큰 나머지 충분한 포탄량을 적재하기 어려웠다. 이는 심지어 전차의 이곳저곳에 포탄을 닥치는대로 쑤셔넣어 만든 결과물이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좁은 전차내부에 무리하게 적재한 포탄은 탄약수의 노고를 가중시킨다는 단점도 야기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적이 나타났을 때 손쉽게 쏠수있는 준비탄[24]의 숫자가 진짜 몇발도 안됐다. 덕분에 안 그래도 28발이라는 적은 탄약적재량을 그나마 제대로 활용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IS-2 운용방식은 독일식 중전차 교리처럼 방어선을 뚫는 적을 격퇴하거나 적 전차를 사냥하는 것보다는 적 방어선에 대한 돌격과 탱킹, 이후 히트앤런의 사이클에 가까웠기 때문에 소련은 큰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다.
7.3. 총평
오전 9시에 적이 신형 초중전차를 앞세워 공격해오자 티거가 소방수로 나섰다. ...(중략)... 티거는 스탈린 전차를 향해 먼저 선공을 가해 차체 전면에 정확하게 명중시켰으나 포탄은 튕겨나갔다. 우린 이전까지 8,8cm 포탄을 튕겨내는 차량을 본 적이 없었고 다들 당황했다. 적도 공격을 가해 왔으나 사격은 부정확했고 포탄은 멀리 다른 곳에 떨어졌다. 티거는 적 전차의 궤도를 향해 2탄을 날렸고 스탈린 전차의 궤도와 보기륜을 부쉈다. 움직임을 멈춘 전차의 전차병들이 해치를 열고 달아났다.
바그라티온 작전 1944(Operation Bagration 1944) 서적에서 발췌.
바그라티온 작전 1944(Operation Bagration 1944) 서적에서 발췌.
전차의 포수가 전방 1500m 거리에서 다가오는 적 전차 2대를 발견했다. 숲에 매복한 아군 4호 전차가 약 1200m 거리에서 초탄을 날렸다. 그 차량 2대는 152mm 돌격포[25]와 스탈린 초중전차였다. 돌격포는 금세 화염을 내뿜으며 주저앉았지만[26] 적의 초중전차를 격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놈이 후진하는 것을 본 전차병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4호 전차 1939~1945 (Panzer IV 1939~1945) 서적에서 발췌.
이러한 수기를 보면, 독일군은 IS-2를 중전차가 아닌, KV-1 중전차와 구분하기 위해 초중전차라고 호칭했던 모양이다.4호 전차 1939~1945 (Panzer IV 1939~1945) 서적에서 발췌.
IS-2는 1944년부터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시작했다. 전선돌파라는 측면에서 IS-2는 독일군에게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 중갑으로 무장하고 달려드는 IS-2는 독일 보병사단 예하 대전차포 대대의 주력 대전차포였던 7,5cm PaK 40으로도 저지하기 쉽지 않았고, 저지에 실패할 경우 122mm 고폭탄의 위력은 독일군의 웬만한 야전 방어 구조물에도 구멍을 내기에 충분했으니 소련 특유의 물량으로 전선 각지에서 T-34-85 떼거지에 섞여서 몰려들어오는 IS-2 무리를 상대하는 독일군 보병 입장에선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물론 초기형 IS-2는 성과가 영 좋지 못했는데 이는 적의 강력한 저항이 예상되는 곳을 돌파한다는 중전차였으면서도 초기형 IS-2는 차체 전면에 약점이 있었다. 바로 조종수의 시야 확보를 위해 조종석 전면을 경사가 심하지 않게 하고 이 부분에 직시형 조종수 관측창을 설치한 것인데 이는 KV의 그것을 답습한 것이었다.
그 부위의 장갑이 얇은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 독일군은 그 두께도 관통할 수 있고 명중률 역시 뛰어난 강력한 대전차포인 7,5cm PaK 40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를 이용해서 그 부분을 정확하게 노릴 수 있는 경험 있는 대전차화기 운용병들도 상당히 많았다. 이러다 보니 IS-2는 2km 밖에서 56구경장 8,8cm FlaK 대공포나 티거의 56구경장 8,8cm KwK 36 전차포에 상술한 약점을 맞아서 격파되는 사례도 많았다. 물론 그 당시의 부족한 광학 장비와 주포 수준에서 2km 이상에서 약점을 맞춘 것은 매우 운이 좋은 사례이며 가장 숙련된 전차병들 역시 2km에서 약점을 맞추는 것은 운이 좋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대전차전에서는 두드러지는 성과가 별로 없었다. 이는 대부분의 독일 전차보다 화력과 방어력이 우세함에도 연사력이 너무 낮았기 때문에 독일의 판터나 티거에게 우위를 점하지 못했던 것으로, 독일 측은 방어자로서 은엄폐하고 유리한 타이밍에 공격하는 이점이 있었던 데다가, IS-2에게 대전차전은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임무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27] 다만 122mm 포의 강력한 화력은 적전차 타격시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완파할 수 있었기에 독일군 또한 IS-2를 절대 만만히 보지 않았고, 셔먼 VC의 경우와 같이 최우선 격파 목표로 삼았기에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추가로, 소련군의 중전차의 손실율은 50%로 소련군의 중형전차나 경전차 손실률인 80% 비해 매우 낮았다.[28] IS-2는 나름대로 개량도 했던 만큼 상황에 따라서는 활약을 벌이기도 했다. IS-2의 활약이 유명한 전투 중 하나가 1944년 8월 산도미에쉬 인근 비스와 강의 교두보 확보 전투다. 여기서 IS-2는 티거 2와 전투를 벌였는데 8월 13일 제71근위독립중전차연대의 IS-2M 11량이 제105중전차연대 소속 티거 2 14량의 공격을 저지하였다. 4량의 티거 2가 격파되는 동안 소련군은 3량의 IS-2M을 잃었다. 이 밖에도 극소수의 몇몇 사례가 존재하긴 하지만 단점들이 그렇게 큰 문제로 떠오르지 않았던 방어전에서는 소련군이 IS-2M을 가지고 그럭저럭 괜찮은 교환비를 보여주기도 했다.
대전 후기의 주력 중전차로 꽤 많은 물량이 나타나 독일군 측에 위력적인 인상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나름 상당한 희생을 치르기도 했다. 초기형의 경우 차체 앞의 수직 형태의 관측창이 가장 약점으로 작용하여 스탈린 전차보다 체급이 아래인 4호 전차한테도 이 부분을 맞고 격파당한 일도 있었다.[29] 상대인 판터나 티거도 초창기 쿠르스크 전투 등에 투입될때는 체급이 낮은 T-34나 심지어 경전차에게 격파당한 사례가 많았던 것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스펙이나 단점을 제치고서라도 이것을 직접적으로 상대하는 독일군 입장에서는 점점 버거운 상대가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전술했듯이 IS-2의 역할 자체가 전선을 돌파하는 것이라서 방어력을 최대한 증강하는 방향으로 개량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고, 마침내 IS-2 후기형에 이르러서는 독일군의 주력 대전차포였던 48구경장 7,5cm PaK 40 대전차포나 4호 전차의 7,5cm KwK 40 전차포로는 IS-2 후기형의 전면 장갑을 아예 뚫지도 못하고, 8,8cm FlaK 대공포나 36 티거 1의 56구경장 8,8cm KwK 36 전차포는 물론 판터에 주로 실린 70구경장 7,5cm KwK 42 전차포 계통으로도 IS-2 후기형의 포탑이나 차체 하단을 맞춰야만 정면에서 격파가 가능했으며, 티거 2의 71구경장 8,8cm KwK 43 전차포 계통 같은 초고성능 대전차포들을 데려와야만 IS-2를 정면에서 쉽게 관통할 수 있었는데 당시 독일군에는 IS-2 후기형을 뚫을 만한 포를 탑재한 차량들의 생산량도 부족한데다 적지 않은 숫자의 해당 차량들이 서방 연합군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서부전선으로 끌려가는 판이라[30] 동부전선의 지휘관들 입장에선 그냥 막을 방법이라는 게 없어지게 되었다. 후기형에 이르러서는 동부전선의 전황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었던 셈이다.
총평으로는 소련 육군의 새로운 지상전 교리에 맞춰 잘 설계된 전차였으며 2차 세계대전 중반부터 냉전기까지 소련 중전차 설계의 방향성을 확립한 전차라고 볼 수가 있다.[31]
전후 냉전 시기 1950년대 말에 중소국경지역에 도태된 IS-2 전차를 고정포로 배치하면서부터 퇴역이 논의되었으나 후계자인 IS-3 초기형의 용접 접합 결함과 낮은 신뢰성, 대보병 화력지원 차량의 부재 등으로[32] 퇴역하지 못하고 최전방에서 무려 1970년대까지 마르고 닳도록 굴렀다.(...)
IS-2M으로 개수된 이후로는 동독이나 쿠바에도 지원되어 사용되었으며, 122mm 야포의 특성상 최전선보다는 후방 보병지원에 안성맞춤이라는 점이 부각되어 쿠릴 열도나, 사할린 등의 극동 부대에 다수가 이관되어 소련이 멸망하고 러시아로 바뀌었던 1995년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워낙 개체수가 많다보니 최근에는 Ka-50 헬기의 고정식 기관포 사격 표적으로 이용되거나, 혹은 전승절 퍼레이드나 박물관 페스티벌 등에 동원되는 의장용 개체들도 다수 있다. 따라서 IS-2는 엄밀히 말하자면 현재까지도 러시아군 내에서 사용 중인 셈.
8. 실전
8.1. 제2차 세계 대전
8.1.1. 독소전쟁
IS-2를 지급받고 환호하는 소련 전차병들[33] |
엄청난 화력과 뛰어난 기동성, 그리고 여러 성능은 일선의 소련군들을 만족시켰으나, 상술한 전면 장갑 결함으로 여러 고전을 겪기도 하였다. 이에 키로프 공장에서는 개량형인 44년형을 선보이면서 대전차전에서는 좀 밀리긴 했지만 대보병 작전 및 여러 공세에서 뛰어난 성능을 여과없이 보여주었으며, 독소전이 승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8.1.1.1. 바그라티온 작전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의 소련 육군 소속 IS-2 네임드 차량 "영웅 형제를 위한 복수 (Месть за брата героя)"[34] |
특히 1944년 6월 초, 우크라이나 방면을 탈환하는 작전에서 데뷔전을 치른 IS-2는 근위중전차연대로 참전하였는데, 약 8량의 IS-2가 손실되었지만, 엘레판트 대전차자주포 및 6호 전차 티거 40량을 완파하는 쾌거를 보여주었다. 이는 더 이상 독일군은 전차 전력에서 소련에게 우위를 점하기 힘들어졌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추가로, 바그라티온 작전 중 벌어졌던 오글레두프 전투 중에서도 IS-2는 대활약하였는데, 킬리멘코프 산하의 IS-2는 중전차대대 산하 티거 2 14호차, 15호차 총 2량을 완파하였으며, 우다로프 산하의 IS-2는 2호, 6호, 7호차를, 벨랴코프 산하의 IS-2는 16호차을 완파하는 대활약을 하였다.[35]
8.1.1.2. 타르투 공세
타르투 공세 당시의 독일 국방군 노획 IS-2[36] |
이 시기 IS-2 1량이 독일군에 의해 노획되어 에스토니아에서 선전 및 견인용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다만 해당 전차에 대한 기록은 여기서 끝나고 알 수 없는데, 1944년 9월 경, 어두워지는 전세에 독일군이 라트비아로 철군하면서 해당 전차는 버려지거나, 혹은 격파되었다고 단편적으로나마 추측되는 중에 있다.
8.1.1.3. 하부 슐레지엔 공세
브레슬라우 공방전 당시 격파된 소련 육군 제1우크라이나전선군 산하 제87근위중전차여단 소속 IS-2 "537번차" |
이 시기, 독일군은 쏟아지듯 몰려오는 소련군을 상대로 시가전에서 대응하기 위해 판처파우스트와, 대전차포를 시내 곳곳에 배치해두어 소련군의 IS-2와 돌격포들은 손실을 크게 입었음에도 크게 분전하여 종국에는 브레슬라우를 포위하는데 성공하여 독일군의 군세를 크게 약화시켰다.
브레슬라우 공방전의 성공으로 소련은 적의 심장인 베를린으로 향하는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성공함과 동시에, 이제 앞으로 브레슬라우에서 베를린까지 약 350km을 앞두고 있었다.
8.1.1.4. 동프로이센 공세
동프로이센 공세 당시의 소련 육군 소속 IS-2와 승무원들 |
당시 소규모 거점은 SU-76M이, 중장갑 차량 및 토치카나 건물 파괴 임무는 ISU-152/122가 진행하였음에도 시가지 곳곳에 숨어있는 전차들과 독일군을 상대로 강력한 화력을 통해 침묵시켰으며, 종국에 동프로이센을 점령하는데 성공하며 독일은 자국의 발흥과 역사적인 가치가 있던 쾨니히스베르크를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8.1.1.5. 모라바-오스트라바 공세
오스트라바 거리의 소련 육군 산하 제4우크라이나전선군 소속 IS-2와 승무원들 |
이 시기, 소련군은 상/하부 슐레지엔 공세로 얻지 못한 독일군의 측면 지역과 모라바의 공업지대를 점령해 독일의 중부집단군을 확실하게 약화시키기 위해 최후의 공세를 기획하였고, 이것이 바로 모라바-오스트라바 공세였다.
수많은 IS-2와 중자주포들이 동원되어 독일군을 지속적으로 강하게 압박하였으나, 독일군은 모라바를 지키기 위해 완강히 저항하여 2달간의 격전 끝에 소련은 모라바와 오스트라바를 점령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1차적인 목표였던 독일군의 측면을 확보하는 것에는 실패하였다.
그러나 공업지대의 손실로 독일은 가뜩이나 전투 장비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었던 상황에서 더욱 압박을 당하였고, 이는 궁극적으로 독일군 전체에게 악영향을 불러오게 되었다.
8.1.1.6. 부다페스트 공방전
부다페스트 공방전 당시 전선으로 이동 중인 소련 육군 소속 IS-2 |
이 시기 헝가리 왕국군은 소련에 저항하며 38M 톨디, 40M 투란, 43M 즈리니 등등의 자국산 전투차량들을 투입하였으나 이는 강력한 소련의 공세에 무용지물이었으며, 소련과 헝가리/독일 양 측 모두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은 끝에 부다페스트가 함락되며 헝가리는 저항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이 전투에서 소련군이 피해를 입은 것을 보고 전세를 오판해 하단의 봄의 새싹 작전을 기획하게 된다.
8.1.1.7. 봄의 새싹 작전
봄의 새싹 작전 당시 벌러톤 호로 진격 중인 소련 육군 소속 IS-2 |
이 시기 독일은 패색이 짙어지는 와중, 헝가리의 너지커너저 유전을 지키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무장친위대와 중전차여단을 다수 투입하였으나, 당시 중전차여단들은 말이 중전차여단이지 전차들을 망실한데다 무기도 변변찮아 보병부대나 다를 게 없던 최악의 상황이었던데다, 독일군들 또한 겁에 질려 전장을 이탈하는 등 총체적으로 난국인 상태였다.
결국 독일군은 IS-2, SU-100등의 강력한 기갑차량을 내세워 돌격해오는 소련군을 막아내지 못하고 너지커너저 유전을 내주게 되었으며 그 마저 가용가능했던 전투차량들 조차 운용하기 어렵게 된 나치 독일은 더 이상의 공세는 물론이고 전투 능력마저 상실하게 되었다.
8.1.1.8. 베를린 공방전
베를린 공방전 당시의 소련 육군 제7독립근위중전차여단 소속 IS-2 "414번차" |
이 당시, 소련 군부 측에서는 독일군이 완강할 저항을 할 것으로 예상하여 대부분의 IS-2를 최전선 시가지 이곳 저곳에 배치하였는데, 적전차에 맞서 활약하였으나 판처파우스트에 의해 약 60여량이 손실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종국에는 결국 브란덴부르크 개선문을 넘어 베를린을 점거함으로서 기나긴 전쟁이 막을 내리게 하는데 공을 세웠다.
8.1.1.9. 프라하 공세
프라하 공세 당시의 체코슬로바키아 육군 산하 제1독립전차여단 소속 IS-2 |
이후 프라하 공세가 성공적으로 끝남과 동시에 8량의 IS-2들이 1945년 5월 17일 프라하에서 열린 제1독립전차여단의 기념식에 동원되면서 전후 체코슬로바키아군의 기갑전력이 되었다고 한다.
8.1.2. 계속전쟁
계속전쟁 당시 카렐리야 지협의 소련 육군 소속 IS-2[37] |
계속전쟁 당시 투입된 IS-2들은 핀란드 방위군에게 어마어마한 공포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숱하게 소련군을 상대해 온 핀란드군은 침착하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숲으로 IS-2를 유인해 독일제 PaK40 대전차포를 이용해 격파하거나 육탄공격을 통해 격파하였고, 이에 당황한 소련군은 후퇴하려다 늪지대에 돈좌하여 전차를 버리고 도망치기도 하였다.[38]
특기할 사항은 당시 투입된 소련군은 노련한 숙련병이 아니라, 급하게 차출되어 카렐리야로 보내진 신병들이었던데다 그들이 상대한 핀란드 방위군은 몇 년 전부터 소련군을 쓰러뜨려온 산전수전 다 겪은 숙련병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비록 핀란드 방위군은 무기도 빈약하고, 기껏해야 판처파우스트나 대전차포 몇 문에 의지해야 했던 암울한 상황이었지만 꼭 강력한 무기가 없더라도 전술을 통해 무찌를 수 있다는 전훈을 남겼다.
하지만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전황은 핀란드에게 안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소련군은 일련의 손실로 핀란드군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고, 중과부적으로 핀란드는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결국 1944년 중엽, 소련군은 수많은 전차를 이끌고 이전 겨울전쟁 당시 굴욕을 당했던 비보르크로 수많은 IS-2와 더불어 T-34들을 동원하기에 이른다.
BT-42 및 여러 핀란드의 전투 차량들이 동원되어 어떻게든 소련군을 막아보려 완강히 저항했으나 이는 결국 언 발의 오줌 누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고, 핀란드 정부에서 패배를 인정하고 소련과 동맹을 맺으며 계속전쟁은 이렇게 끝이 났다.
8.2. 냉전기
8.2.1. 6.25 전쟁
마량산 전투 당시의 중화 인민지원군 제1사단 소속 IS-2 "402호차" |
다만 중공군은 IS-2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중공군에게 IS-2는 단순한 중전차 역할로 투입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중공군이 IS-2를 동원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는데, 122mm의 화력을 안전하고 멀리 날려보낼 수 있는 몇 안되는 귀중한 전략자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중국은 1950년 7월 경 만주 다싱안링에서 철군하던 소련군으로부터 전차 수리 공장과 ISU-152, ISU-122, 치하, T-34-85 등등 다양한 장비를 얻었으나 본격적인 자주포였던 ISU 시리즈들은 사정거리가 짧다는 점과 여러 제약이 겹친다는 문제점으로 이를 함부로 투입시키기에는 어려움이 따랐기에 ISU-122과 동일한 포를 지닌 IS-2를 대신 투입시킨 것이었다.
이 때문에 중공군은 최전선에서 이를 사용하지 않고, 후방에서 안전하게 자주포로 이용하였고, 휴전협정 이후로는 다른 중공군 장비들과 같이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알려져 있다.
6.25 전쟁 중 중공군의 IS-2의 활약으로는 상단의 "402호차"가 유명한데, 연천 왕징리 근처 마량산에서 벌어진 영국군 제1사단과의 포격전 중, 지형의 문제로 포격이 어렵자 전선으로 돌격하여 고폭탄으로 6개의 UN군 벙커를 파괴시키고 제19보병사단을 지원했고, 이후 승무원들은 이에 대한 공로로 2등 공로훈장을 수여받았다고 한다.
6.25 전쟁 중 파괴되거나, 격파된 IS-2의 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는 많은 수가 동원되어 전선에서 격파된 T-34-85나 SU-76M과 달리 철저히 손실을 방지했기 때문이다.
8.2.2. 1953년 동독 봉기
라이프치히에서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주독 소련군 소속 IS-2 "780호차"[39] |
이는 베를린 외곽에 주둔하던 소련군을 자극했기 때문에 주독 소련군 측에서는 자신들이 지닌 전투차량들과 동독 경찰 8천여명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진압한 것으로, 당시 동독에서 일어났던 봉기는 계획된 것이 아니라 즉흥적인 시위였기 때문에 시위 지도부가 조직화되지 못했고 결국 진압당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9. 운용국
9.1. 유럽
9.1.1. 동유럽
9.1.1.1. 소련
쿠빙카 전차 박물관 소장 소련 육군 제7독립근위중전차여단 소속 IS-2M |
구식 중전차인 IS-2를 소련에서 오래 사용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데, 우선 후계자인 IS-3나 IS-4가 초기 품질이 좋지 않았던데다, 이후 생산되는 중전차들 또한 냉전 시기에 들어서면서 주력 전차인 T-54, T-55 등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렸기 때문에 생산 수량이 급감하였다.
소련 군부에서는 어찌 됐던 구식 전력이지만 초기 주력 전차와도 무리없이 전투 가능하고, 대구경 포를 얹어 보병지원에도 좋은 중전차에 대한 수요를 포기할 수 없었으며, T-10M이 개발된 직후인 1958년 경 T-10M의 부품을 이용해 IS-2를 현대화하여 IS-2M으로 대다수의 개체를 개량하였다.
이렇게 개수된 IS-2M과 IS-2들은 1970년대까지 최전선인 동독, 폴란드, 체코 등지에 배치되어 서방 세력의 위협을 막아내는 소방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후 중전차들의 수요가 급감하고, 후계 중전차들의 품질이 안정화 된 이후로는 일선에서 물러나 쿠릴 열도, 사할린, 부랴트 공화국, 혹은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의 중앙아시아나 극동 군구로 보내져 해안포, 자주포 역할을 수행하였다.
9.1.1.2. 러시아
승리의 날 열병식 참가 러시아 육군 소속 IS-2M[40] |
이후로는 Ka-50 헬리콥터의 사격 표적으로 소모되는가 하면 생산 댓수 및 헌역으로 운용되었던 수가 많았기에 기동 가능한 차량이 현재도 많아 의장용으로 다수의 IS-2M이 운용 중에 있다고 한다.
9.1.2. 중부유럽
9.1.2.1. 독일
나치 독일과 동독을 구분지어 설명하도록 한다.9.1.2.1.1. 나치 독일
독일 국방군 노획 IS-2 네임드 차량 "Bestimmt für OKW (국방군최고사령부를 위하여)"[41] |
이 전차들의 운명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다. 독일군이 노획한 T-34-76은 운용 기록이나 편제 면에서 기록이 많이 남아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부분으로[42], 그나마 남아있는 자료로는 상단의 타르투 공세와, 베를린 공방전 직전 소수의 43년식 IS-2들이 대기 중인 사진이 남아있다.
베를린 공방전에 투입되었던 IS-2는 타 소련제 차량들과 같이, 격파되거나 혹은 회수되는 결말을 맞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9.1.2.1.2. 동독
독일-러시아 박물관 소장 국가인민군 소속 IS-2M |
동독에서 운용된 IS-2M은 1943년형과 44년형을 가리지 않고 모두 운용되었는데, 1950년대 말엽에 들어서면서 잔존한 IS-2를 IS-2M으로 개수하였고 이렇게 개수된 IS-2M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일선에서 운용되었다고 한다.
해당 IS-2들은 퇴역 이후에도 치장물자로 관리되었다가, 현재는 구 동독 지역 기념관이나 박물관에 구 국가인민군이 사용했던 IS-2M들이 다수 전시 중에 있다.
9.1.2.2. 폴란드
브로니 기갑 무기 박물관 소장 폴란드 육군 소속 IS-2 "4244호차" |
9.1.3. 체코슬로바키아
레사니 기술 박물관 소장 체코슬로바키아 육군 산하 제1독립전차여단 소속 IS-2 |
본디 해당 단차는 제1독립전차여단 소속으로 편제되어 프라하 해방에 참전한 이후, 1950년 5월에 현 마살리크 광장에 기념비로 정태보존 되었다가, 1990년에 기념비를 철거하며 해당 단차도 회수되어 복원 끝에 기동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9.2. 아시아
9.2.1. 동아시아
9.2.1.1. 중국
베이징 전차 박물관 소장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IS-2 105호차와 608호차 |
중국이 운용한 차량들은 대부분이 43년형이었고, 소수의 개체가 44년형이었다고 하며 6.25 전쟁 휴전 이후인 1954년에는 22대가 추가적으로 중국에 보내져 50년대 말까지 현역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현재 43년식은 베이징 전차 박물관에 2량, 베이징이공대학에 1량, 그리고 군 기지에 1량이 전시되어 있으며 44년식은 1량이 중-러 국경지대에 전차호로 사용되었다가 방치 중에 있다.
9.2.2. 중앙아시아
9.2.2.1.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승리 공원 소장 우즈베키스탄 육군 소속 IS-2M |
현재는 타슈켄트 승리 공원에 운전 강습용으로 사용되던 IS-2M이 전시 중에 있다.
9.2.2.2. 타지키스탄
두샨베 야외 전시 타지키스탄 육군 소속 IS-2M "201번차" |
현재는 두샨베 시에 1량이 야외 전시 중에 있다.
9.3. 북아메리카
9.3.1. 쿠바
쿠바에도 전력 증강의 일환으로 20량의 IS-2M이 공여되었으며, 피그만 침공 당시에도 20량의 IS-2M이 T-34-85CZ와 같이 투입될 예정이었으나 예비부속 문제 및 122mm 포의 탄약 부족 등으로 실제 투입되진 못하고 사탕수수 농장 주변의 경계임무만 수행했다고 한다.이후 1970년대 소련이 T-55를 공여하자, 이를 퇴역하고 대부분의 개체를 스크랩하거나, 수중 어초로 쓰기 위해 바닷속에 투하하였다.
현재도 아바나 앞바다에 스킨스쿠버 잠수를 하면 어초로 사용중인 IS-2M을 볼 수 있다고 한다.
10. 미디어
자세한 내용은 IS-2/미디어 문서 참고하십시오.11. 모형
대전말 소련군을 상징하는 중전차이면서도 발매 바리에이션이 그리 많지는 않다.11.1. 프라모델
- 드래곤 모델
드래곤 초창기 제품으로 IS-2와 IS-2M 두가지가 있다. 둘다 일단 쓸만은 하지만 드래곤 초창기 제품 아니랄까봐 조립성은 즈베즈다제보다는 나은 수준. 연결식 궤도 조립이 빡빡하여 아주 고생스럽다. 또한 오류가 좀 있다. 사이버 하비 한정으로 IS-1도 발매되었다. 사실 타미야제가 나오기 전까지 IS-2를 만들려면 레진 제외하고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던 키트였다.
- 즈베즈다
동구권 키트가 대개 그러하듯 거칠고 투박한 소련 전차의 프로포션을 잘 재현하고 있으나 플라스틱 질이 좋지 않고, 4분할인 데다가 어떤 짓을 해도 도색이 벗겨지는 영롱한 은빛 연질궤도는 만들면서 골치 아프게한다. 또한 조립성도 좋지못하고 부품들의 디테일도 좀 투박한 편이라 제대로 만들려면 사실 이래저래 손이 가는 키트. 특히 포방패 모양이 너무 두루뭉실하게 되어 있어 디테일에 신경쓰는 모델러에게는 매우 거슬리는 부분이다. 23,000원대라고 싸다고 좋아했다가는 피를 본다. 제대로 만든다면 궤도나 포방패 등등 손볼 곳이 많아 비싸다는 타미야제 못지 않게 되는 키트.
- 타미야
현재까지 IS-2M의 결정판이라 불릴만 하며, 약간의 오류를 제외하고는 타미야다운 조립성과 뛰어난 퀄리티를 보여준다. 특히 반연결식 궤도[43]와 연질궤도를 선택해서 조립할 수 있고 타미야로서는 드물게 에칭도 포함되어 있다.
Soviet JS-2M Heavy Tank - Early 05589 |
IS-2M에 85mm D-5T 대전차포와 여분의 포방패와 별매 122mm D-25T 대전차포를 이용하면 초기형 IS-2의 재현도 가능하나, 이렇게 재현하게 되면 IS-2m의 포탑(포를 기준으로 포방패 양쪽 넓이가 비대칭)에 IS-2 차대(IS-1의 차대)인 하이브리드 형태가 되어 버린다. 흔히 볼 수 있는 IS-2(주포를 기준으로 포방패 양쪽 넓이가 대칭)를 재현하려면 동사의 KV-122의 포탑 전면부 및 포방패 부품을 유용해야 한다. 실차중에 전시된 차량을 보면 IS-2m 포탑에 IS-1 차대인 형태[45]와 도 있으므로 이는 제작자의 취사 선택에 달려있기는 하다. 또한 포탑의 측후면의 손잡이도 IS-1과 IS-2와는 달라 이부분도 별도 재현해야 한다. 여하간 초기형 IS-2를 완벽하게 구현하려면 생각보다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므로 참조하시길 바란다.
11.2. 페이퍼 크래프트
워게이밍 러시아 서버에서 1944형 도면 2개를 배부하고 있다.모델 / 박스
12. 참고 문헌
- IS-2, IS-2M 잔존 개체 목록
- 위키피디아 노어판 IS-2 문서
- 위키피디아 영문판 IS-2 문서
- Tanks encyclopedia 소비에트 IS-2
- Topwar 기고 칼럼 "D-25: 대안이 없었다고!"
- Topwar 기고 칼럼 "모라비아-오스트라비아 공세 작전"
1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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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 독일 국방군/차량, 퀴벨바겐, 슈빔바겐, 슈타이어 1500A, Büssing-NAG T500, Büssing-NAG G31, Büssing-NAG L4500, 오펠 블리츠, 포드 B3000S, V3000S, V3000A, 보르크바르트 B3000, 메르세데스-벤츠 G5, 메르세데스-벤츠 L1500, 메르세데스-벤츠 L3000, 메르세데스-벤츠 LG3000, 메르세데스-벤츠 L4500, 메르세데스-벤츠 L6500, 크루프 프로체, 타트라 T111 | |
모터사이클 | DB / DBK, KS 750, 케텐크라프트라트, R-7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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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독일 기갑 병기의 역사와 루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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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 <colbgcolor=#fefefe,#c0392b> 탱켓 | TK-3, TKF, TK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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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차 자주포 | TKS-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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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트럭 | PF-621L, PF-621R, 우르수스 A, 프라가 RVO, 베를리에 CBAO, 쉐보레 15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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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차 | 차륜장갑차 | OT-64 SKOT (A/C), OT-65, BRDM-2 | |||
궤도장갑차 | OT-810, BPzV, OT-62(A/B/Vydra), BVP-1 · OT-90, BVP-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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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 타트라 148 · T-813 · T-815, 스코다 6L · RSO · 706, 프라가 V3S | ||||
자주포 | 자주곡사포 | ST-II, ShKH vz.77 Dana, 2S1 Karafiát, 2S7 Pivonka | |||
자주박격포 | 2S4 튤판 | ||||
대전차 자주포 | ST-I, ST-III, SD 75/40N, SD-100, TSD-152 | ||||
대공 차량 | 자주대공포 | Vz.53/59 PLDvK, STROP-(1/2) | |||
단거리 대공미사일 | PLRK S-1M2, PLRK S-10M, 9K33(M2/M3) 오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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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포 | 자주곡사포 | 2S7 PiwoniaR, 2S1(M/T) Goździk, wz. 1977 DANA-T, AHS 크라프, AHS 크릴, K-9A1, {K9PL} | |
자주박격포 | TOPAS-2APR, {로소막-Rak}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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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 소형 | 둥펑 EQ-2050, UAZ-469 | ||
트럭 | 우랄-4320 | |||
자주포 | 자주곡사포 | AAPMP-T-100M/R, AAP-T-122M/R, AAMP-T-130M/R, 2S1 그보즈디카, 2S3 아카치야 | ||
자주박격포 | ||||
대공 체계 | 자주대공포 | ZSU-57-2, ZSU-23-4 쉴카, Yatare-23M, BTR-23M, BTR-60-30-2M, Duplex-BTR-37M, Duplex-T-57M | ||
대공미사일 | 2K12 쿠프, 9K33 오사, T-55A (S-75), T-55(S-125) | |||
다연장로켓 | BM-21, BM-21M, BM-24 | |||
※ 윗첨자R: 퇴역 차량 ※ 윗첨자C: 노획 차량 ※ 윗첨자M: 개조 차량 ※ 윗첨자C: 노획 차량 ※ ※ {중괄호}: 도입 예정 차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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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기(1914~1945) | 냉전기(1945~1991) | 현대전(1991~) |
[1] 동일한 사례로 스탈린 전차의 직계 조상격인 보로실로프 전차 역시 클리멘트 보로실로프의 이니셜 "КВ (Климент Ворошилов)"를 따서 명명되었다.[2] 포탑을 작게 만들어서 -3밖에 나오지 않고, 사실상 부각이 없는거나 마찬가지이다.[3] DShK는 1944년부터 추가됐으며, DT는 각각 포탑 전방(공축 기관총)과 후방, 차체 전방에 1정씩 달려있다.[4] IS-2 초기형의 경우 수직구간에 조종수 관측창이 존재하여 당시 독일 보병사단 예하 대전차포 대대의 주력 대전차포로 운용되었던 7,5cm PaK 40 대전차포에게도 자칫하면 약점사격으로 격파당할 수 있었다. 1944년형(개량형)에 와서는 120mm 60도 경사장갑으로 대체되어 없어진다.[5] D-25T를 장착한 양산형과 달리, T자형 머즐 브레이크와 A-19 평사포를 탑재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6] IS-1이 개발되고도 거의 생산되지 않은 이유는 화력이 동등한 SU-85와 T-34-85의 양산 계획이 잡힌 것과 소련군이 재대로 된 교리도 없이 대충 튼튼한 KV-1을 보병들이나 T-34와 함께 투입하던 시절은 지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1943년 말에는 이미 소련군 내에서 종심 전투 교리 하의 충격 집단 운용 교리가 자리잡았기 때문에 122mm의 IS-2를 양산하기로 했으며, 미국의 랜드리스로 받은 압도적인 물량의 트럭과 열차 및 철도 설비들로 확실한 기동력까지 갖춘데다 무전기까지 대량으로 받아 부대의 협동의 미비 및 지휘체계의 미비까지 해결되어 독소전쟁에도 이미 충분히 유리해져 소련이 전략적으로 확고한 공격자 입장에 서게 되었기에 붉은 군대 내에서 중전차의 역할은 적 전차를 막기 위해 중전차를 사용한 독일과는 달리, 마치 냉병기 시대의 중기병처럼 예비대로 빠져있다가 한순간 적의 취약점에 압도적인 충격을 줘서 방어선을 깨부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85mm포는 기존의 KV-1의 역할이었던 '더 튼튼해지고 느려진 T-34' 정도의 포지션으로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변경된 교리 하에서 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좀 더 큰 포가 필요했다. 이에 새 주포 선정을 위해 KV-85를 이용하여 이런저런 포를 달아보고 앞서 설명한 IS-85를 유용한 여러 파생형 차량들이 개발되었으며, 이 중 대전차 능력은 가장 떨어지지만 막강한 고폭탄의 화력 덕분에 순간적인 전선돌파 목적에는 가장 적합한 54구경장 A-19 야전 평사포가 선택되었다.[7] 1944년 리가 고속도로에서 촬영되었다.[8] 1944형 포탑은 1943년형과 달리 포수 조준경이 주포와 멀리 떨어져있다.[9] KS-12로도 불리는 소련의 대공포 T-34-85 1943년형에 탑재된 52구경장 D-5T 강선포의 근본이 된다.[10] IS-85M/IS-3/Object 243의 85mmBM포는 당장 쓰기에는 오래놔두면 포신이 휘는 문제가 있었고 IS-100/IS-4,5/Object 245,248의 100mm는 구축함포를 유용한 물건이라 철갑탄은 개발중인 단계였으며 탄약이 긴데다 일체형 포탄이라 좁은 포탑 내에서 장전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게다가 고폭탄 화력도 122mm에 비해 떨어졌다.[11] 당시 소련의 수석 전차 개발자였던 조제프 코틴은 조종수의 시야 확보 때문에 이 설계를 지지했다. [12] 차체 전면의 관측용 해치를 없애지도 못하는건 T-34 전차와 마찬가지로 당시 소련 전차 설계 방식 때문이다. T-34와 IS-2 모두 엔진과 변속기가 세로로 배치된 구조였고, 두 차량에 사용된 소련의 V-2 엔진은 V형 12기통 엔진이기 때문에 엔진룸이 차지하는 길이가 상당해졌고, 이로 인해 포탑과 승무원 거주 공간은 차체 앞으로 밀려났다. 포탑이 차체 전면에 바짝 붙는 바람에 차체 앞부분에는 공간이 없어서 제대로 된 관측기기나 조종수 탑승구를 지붕에 설치하지 못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T-34는 전면 장갑에 탑승구 해치를 뚫고 IS-2는 전면에 개폐식 관측창을 달게 되어 전면부에 방어력이 떨어지는 약점 부위가 생기게 되었다.[13] 물론 조종수의 시야를 아예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전면부를 완전히 막아버린건 아니고 가느다란 슬릿형 관측창을 뚫어놓기는 했다. 슬릿형 관측창의 존재로 조종수가 그래도 앞을 볼 수는 있지만 관측창이 아예 열리던 1943년형 보다는 시야가 좁아지는건 어쩔 수 없었다.[14] 주조장갑 버전의 경우 장갑 형상이 더 둥근 편이고, 전면 하단도 주조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전면 하단부는 1943년형 버전과 비슷하게 생겼다. 반면 용접장갑 버전은 차체 전면이 더 각지고, 하단부도 용접식으로 변경되면서 형상이 더 각지게 바뀌었다.[15] 이건 시가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한다. IS-2의 정면장갑은 판처파우스트를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방호력을 갖췄지만 측면이나 후면은 근거리에서 헷처로도 관통이 가능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소수지만 이런식으로 헷처가 측면에서 공격해서 IS-2를 격파한 사례도 있다. 그리고 참호전에서는 발생하기 힘든 일이지만 시가지에서는 적 전차의 상부장갑을 노려서 발사하는 일도 가능하다.[16] 이 즈음에 소련군의 대전차전 교리는 T-34가 벌떼같이 몰려가서 독일군을 박살낸다였다. 그래서 IS-2에 100mm대신 122mm를 탑재한 것이다.[17] 영국같은 경우는 분리철갑탄.[18] 소련은 전차마다 3-4발은 싣었다곤 하지만, 소련 전차에 비해 포탄을 훨씬 많이 싣을 수 있는 미국이나 독일의 경우 HVAP/APCR의 부족으로 한 발도 싣을까 말까 했다.[19] 하지만 차체 전면 상단의 조종수용 관측창은 면적은 훨씬 작아졌지만, 맞출 수만 있다면 장거리에서도 독일군의 대전차포에 관통될 수 있는 약점으로 남았다.[20] 다만 PaK 40은 입사각이 좋다면 근거리에서 IS-2의 측면을 충분히 관통할 수 있었다. 방어력 확보에도 한계는 있어서 모든 적 대전차화기로부터의 생존을 보장할 수는 없었다. 소련의 IS-2는 독일제 7,5cm KwK 40 전차포에 대해 영거리를 제외한 전 거리에서의 측면 주요 부위 방호 확보가 목표였고 독일의 티거와 티거 2는 소련제 76mm ZiS-3 사단포에 대해 확고한 측면 방호를 요구받았다.[21] 왼쪽부터 철갑탄 장약통(탄피), 고폭탄 장약통, OF-471 고폭탄, BR-471 철갑유탄, BR-471B 저저항피모철갑탄이다.[22] 여기서 드러나는 거지만 독일군과 달리 소련군은 중전차를 만들 때 적의 강력한 저항이 예상되는 장소에서 맞아가면서 적의 저항을 분쇄하거나 돌파해서 적의 전선을 격파하는 용도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지만 IS-2의 대전차능력은 독일군의 중전차들과는 달리 그리 뛰어나지는 않았다. 많은 문제점이 개선된 1944년형에서도 좋게 쳐줘봐야 티거 E형에 겨우 비슷한 수준에 불과했다는 평이 나올 정도니 말이다. 혹자는 고폭탄이 없었기에 대전차전에서 뛰어난 100mm 대신 당장 쓸 수 있는 122mm를 선택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으나 100mm의 고폭탄이 충분히 양산된 뒤에도 IS-2는 계속 122mm 포를 장착하고 생산되었으며 IS-2의 후계자들인 전후 소련 중전차들은 100mm의 대전차전 성능이 확실히 입증된 이후에도 그냥 기존의 122mm를 개량만 해서 달아놓고 신규 개발 및 생산되었다. 스탈린 전차의 포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100mm포의 고폭탄이 없었다는게 마이너스는 맞으나 애초에 전선돌파를 위한 122mm의 화력이 가장 뛰어나서 선택된 것이지 대전차전에 좋은 100mm를 쓰려다가 당장 고폭탄이 없으니 122mm를 쓴 게 아니다. KV-1 전차의 존재와 함께 엄청난 물량을 뿜어대는 소련 전차를 상대하기 위해 개발된 독일의 중전차 개발사를 소련에 대입해서 여기도 똑같겠지 하면서 생각하는 초보적인 실수를 하지 말자.[23] 방어전에서는 아래에도 예시가 하나 나와있기는 하지만 122mm의 문제점이었던 장전시간 및 준비탄 숫자의 문제들이 그렇게 큰 문제로 떠오르지는 않았고 방어자였기에 관측에서 그리 큰 패널티를 받지 않았기에 D-25T 주포의 명중률을 그대로 살려서 2km 이상의 거리에서부터 교전에 들어가서 성공적으로 방어한 사례가 많다. 이것도 그나마 대전차전을 염두에 두고 122mm을 한 번 더 개량한 D-25T 주포였기에 가능했던 일로 장전시간이나 준비탄의 문제가 더 심각했고 주포 정확도의 문제도 있었던 A-19를 그대로 달고 다니던 초기 IS-2 전차들은 문제가 더 심했다.[24] 전장에서 바로바로 꺼내쓸수 있는 포탄들. 게임과는 달리 포탄은 준비탄과 예비탄으로 나뉘어져있다. 준비탄은 앞서 설명한대로 곧바로 꺼내서 사용할 수 있는 포탄을 이야기하고 예비탄은 나중을 위해 저장해놓은 포탄을 뜻한다. 모든 포탄을 다 포탑 주변에 적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공교롭게도 포탑 공간의 한계와 여러가지 위험요소들(유폭이라든가) 때문에 그러지 못했고 이렇게 준비탄과 예비탄으로 나뉘어서 적재했다. 준비탄을 다 쓰면 예비탄을 차체에서 꺼내와서 한발씩 매우 느리게 장전해야 한다.[25] SU-152 또는 ISU-152로 추정된다.[26] 경사각이 매우 얕은 75mm(SU-152)~90mm(ISU-152)의 전면 장갑을 가진 중돌격포라 4호 전차의 통상 사격에도 충분히 근거리에서 전면 격파를 당할 수 있었다.[27] 할베 포위망에서 탈출에 성공해 살아남은 독일군 판터 전차의 승무원은 운 좋게 아군 전차와, 판처파우스트를 가진 아군 보병들을 만나 피해 없이 IS-2 전차 3대를 격파한 기록이 있다.[28] 1944년 소련군의 전차 및 자주포 완전손실 총계는 23,700~24,400대 정도로 추산되는데 같은 시기 독일군이 동서남북 전 전선에서 상실한 전차 및 자주포 완전손실 총계는 11,979~12,079대 정도로 추산된다.[29] 심지어 장갑차들에게 측면 공격을 허용해 격파당한 기록도 있었다.[30] 히틀러는 주력들을 서부로 보내 서방 연합군의 진격을 저지한 다음 전력을 다시 동부로 보내서 막는 사이에 서방과 강화할 시간이라도 벌려고 했고 그 결과 벌지 전투가 일어나게 되는데, 너무나 터무니없는 작전이라 벌지 전투는 독일군의 목표 달성 실패로 끝났고 독일군 전력을 더 빠르게 소모시켜 소련군의 베를린 진격 속도만 더 빨라지는 결과를 낳았다.[31] 특히 이후 소련군 최후의 제식 중전차인 T-10M까지 주포 구경은 122mm 미만으로 내려가지 않았다.[32]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ISU-152가 있었으나 최대 사정거리가 4km가 한계였고, 같은 포를 얹은 ISU-122가 있었으나 지원포격보다는 대전차 임무를 도맡고 있었다. 이 탓에 그나마 대구경 포를 멀리 제약없이 날려보내는 IS-2가 계속해서 사용되었던 것이며, 결국 냉전에서는 "중전차"로서의 아이덴티티는 사라지고 대신 보병 지원 특화 차량이나 간이 자주포 개념으로 변경되었다 볼 수 있다. 현 대한민국 육군의 M48A3K / A5K와 같은 케이스.[33] 포탑 가운데에 서있는 트렌치 코트를 입은 여군은 알렉산드라 사무센코 대위. 쿠르스크 전투에서 T-34-76 전차를 지휘해 티거 전차 3대를 격파한 에이스로 제1근위전차군의 유일한 여군이자 부상당한 대대장을 대신해 전차 대대를 성공적으로 대리 지휘한 경험도 있으며 애국전쟁 훈장과 붉은별 훈장까지 서훈받은 우수한 장교였다. 유일하게 소련군으로 싸운 미군 조셉 배얼 하사를 받아준 인물이자 그가 있었던 수용소로 그와 함께 달려가 수용소를 해방하는 임무를 하였고, 그로부터 자신의 남편이 독일놈들 손에 전사했다는 충격적인 보고를 받고 분노했던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인물. 조셉 배얼 하사가 부상당해 후송된지 한달이 조금 안되는 시점이자 조국의 승전 직전인 1945년 3월 3일 야밤, 아군 전차가 시야 불량 문제로 그녀를 보지 못하고 밟아버리면서 극심한 부상을 입었고 얼마 못가 사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자료에서는 독일군의 자주포에 깔렸다는 말도 있다. 이러나 저러나 깔려죽었다는 건 사실인 걸로 보이지만 그녀의 업적과 파란만장한 삶에 비하면 너무나 충격적이고 허무한 죽음이다. 일설에 따르면 사무센코 대위는 여군으로서 스페인 내전까지 참전했다는 설까지 있는데, 당시 소련의 재스페인 참전병들은 당장 내전 당시 소련의 대스페인 작업을 총지휘했던 안토노프 오브셴코부터 대숙청 당했고, 비교적 적은 수만 노하우와 경험을 전수할 수 있는 멀쩡한 상태였다. 정말로 사무센코가 스페인 내전 참전 경험까지 있었다면 20세기 여성과 전차의 역사 양쪽에서 전무후무한 경력을 쌓은 인물이었겠지만, 스페인 내전 참전설은 당시 증인들의 착각이었다는게 중론이다.[34] 소비에트 연방 영웅 수훈자였던 니콜라이 크라시코프 (Николай Красиков)가 1943년 11월 11일 우크라이나 빈니치야에서 전사하자 그의 형이자 당시 이 전차의 승무원이었던 미하일 크라시코프 (Михаил Красиков)가 포탑에 이 글귀를 그려넣었다. 미하일은 이 전차를 타고 독일 포메른으로 진격하던 1945년 3월 전사했는데, 이 때 전차도 격파당한 것으로 추정된다.[35] 오글레두프 전투 중 티거 2 1량이 소련군에게 노획당하기도 하였다.[36] 1944년 8월 에스토니아 신문 "에스토니아의 단어 (Eesti Sõna)"에 올라온 사진이다. 타르투 공세에 대한 설명과 함께 게재되었다고 한다.[37] 1944년 6월 9일 촬영된 사진으로, 소속 여단을 알 수 없다.[38] 다만 핀란드 방위군은 이렇게 유기된 IS-2를 노획해서 사용하지는 않았다. 이 탓에 계속전쟁이 종전되고 나서도 이 전차들은 계속 방치되다 소련군이 다시 회수하거나 고철로 폐기했다고 알려져 있다.[39] 1953년 7월 17일 촬영되었다.[40] 평시에는 피스마 전차 박물관에 소장 중에 있다.[41] 위 사진은 1944년 찍힌 것이며, 해당 IS-2는 1944년 5월 9일 우크라이나 북부 Tlumaczk에서 독일군에게 노획되었지만 실전에 투입되지는 않고 관통실험용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42] T-34는 1943년부터 실전에 투입된 IS-2와는 달리 1941년 독소전쟁 개전 시점에서부터 꾸준히 사용된 만큼 독일군이 더 많이 노획해서 사용했고, 그 때는 아직 독일이 승승장구할 때라 사진 기록도 제법 많이 남겼다.[43] 위쪽 부분 궤도가 한 덩어리가 아니라 각각의 궤도 조각으로 분할되어 있고 물결 모양의 틀을 제공하기 때문에, 궤도가 처진 형태를 구현할 수 있다.[44] 1950년대 개수된 현대화 개수형으로 1944년 개수형인 IS-2M과는 다르다.[45] 기존의 IS-1을 IS-2와 동일한 성능으로 개조하면서 IS-2m의 포탑으로 교체하거나 파손된 IS-2를 수리하면서 생긴 형태 등으로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