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K 시리즈에서 Vk는 Versuchskonstruktion(Experimental design 즉 실험용 설계/디자인), Vollkettenfahrzeug(Full-tracked motor vehicle 즉 궤도로 움직이는 차량)을 의미하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육군 병기국(Waffenamt)에서 개발중인 프로토타입 전차에 지정한 코드번호와 그 코드번호가 붙은 일련의 전차 시리즈를 의미한다.
이러한 명명법에 따라 VK 45.01(H)이라는 코드를 풀어서 해석하면 헨셸(H)에서 설계한 45톤급(45) 차량 중 1번째(01)로 설계된 차량이라는 뜻이 된다.
다만, 코드네임의 숫자는 오직 중량과 제작사, 동일 계열의 차량만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코드네임의 순서가 개발 순서를 뜻하는게 아님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일단 전후의 계획으로 갈수록 전차의 중량이 점점 증가했기에 전차 중량을 뜻하는 숫자가 큰 프로젝트가 대개 나중에 시작된 프로젝트이기는 하나, VK 65.01의 경우처럼 대전 초에 시작된 프로젝트도 있어 절대적이라고는 볼 수 없다. 게다가 판터와 티거 2의 경우에 이르면, 성능 향상을 위해 초기의 프로젝트보다 중량을 10톤 이상 증가시켰음에도 이전의 프로젝트에서 이어진 후속 프로젝트라는 이유로 중량 코드를 그대로 유지하였기 때문에 실제 차량의 중량과 코드네임의 중량이 맞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단적인 예로는 개발과정에서 코드네임의 중량(VK 100)보다 100톤 이상 무거워진 마우스를 들 수 있다.
1940년 VK 9.01의 생산버전인 VK 9.03이 만들어진다. VK 9.03은 Maybach HL 66엔진을 탑재하여 3000rpm에서 180마력을 기록했으며 최대속도는 도로에서 60km/h를 기록했다. 3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는 Pz.Kpfw.Ⅱ Ausf.H와 4명이 탑승하는 Pz.Kpfw.Ⅱ.Ausf M의 두 가지 형태가 만들어졌다.
M.A.N.사는 1941년 1월 8일 500대의 VK 9.03을 생산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1941년 8월 1일 250대의 VK 9.03과 250대의 VK 13.03으로 변경되었다.
1942년 시험 도중 여러 문제가 발생하여 VK 9.03설계는 폐기되었으며, VK 13.03을 생산하게 된다.
3호, 4호 전차에 이은 차기 주력전차 프로젝트. 만 사, 크루프 사, 다임러 벤츠 사가 참여하였다.
3/4호 전차와 큰 차이가 없는 규격의 전차에 조금 더 강한 출력의 엔진과 조금 더 두꺼운 장갑을 적용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독소전쟁을 기점으로 전차들의 성능이 상향평준화되기 시작해 3/4호 전차의 업그레이드 정도로는 전장 상황을 따라잡기 벅차게 되자 이들 설계안은 주력전차로써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프로젝트는 폐기되고 주력전차 계획은 VK 30.01(1941) 계획으로 이어진다.
다임러-벤츠사에서 1939년에서 1941년까지 개발된 중형 전차 시제품이자 VK 20 시리즈 중에서 유일하게 실제 시제품이 제작된 전차이다. 본래 2차 대전 중 육군의 표준 중형 전차로 채택될 예정이었다. 생산된 시제 전차는 동부 전선에 배치되었으나, 실전 테스트 동안 수많은 문제점이 발견되었으며 결국 1941년 부적합 판정을 받고 기획안이 취소되었다. 이후 시제 전차는 베를린 공방전에서 격파되었다고 한다.[2]
45톤급 중(重)전차 개발 프로젝트. 채택된 VK 45.01(H)는 6호 전차라는 제식명칭을 받고 양산되어 6호 전차 티거가 된다. 일단 두 전차 모두 포르쉐 박사가 설계한 포탑을 장착하였다. VK 45.01 (P)의 경우 3대가 개발용 프로토타입 포탑을 사용하였으며 5대의 프로토타입형 VK 45.01(P)중 크머스도르프의 1대는 티거2의 주포를 시험 장착하였다. 포탑은 당연히 프로토타입 포탑이다.
VK 45.01(H) 헨셸 사에서 개발한 45톤급 시제 차량으로, 포르쉐에서 개발한 VK 45.01(P)와의 경합에서 승리한 뒤 6호 전차 티거가 된다.
1943년, 히틀러는 헨셸 사와 포르셰 사에 장포신 8.8cm 주포를 탑재하고 전면 150mm, 측면 80mm의 경사장갑을 갖춘 새로운 중(重)전차의 설계를 명령한다. 티거 때와 마찬가지로 헨셸 사와 포르쉐 사가 경합에 참여하였으며, 물론 티거 때와 같이, 포르셰 사의 설계안은 헨셸의 설계안(VK 4503(H)-현재의 티거 2)에 밀려 미채용되었고, 헨셸의 차체에 4502(P)용으로 개발된 곡면형 포탑을 탑재해 양산된 것이 티거 2이다.
VK 45.02(H) 티거 2 개발 경합에 헨셸이 처음 제시했던 설계안으로, 완전히 새로운 설계의 전차가 아니라 티거의 설계안을 약간 개선해 8,8cm 71구경장 포를 대충 얹어놓은 것에 불과한 티거의 개량형 격 전차였다. 내부적으로는 판터의 엔진과 냉각 시스템을 비롯해 판터의 부품을 공유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너무 성의없는 설계안이었기 때문에 기갑총감부에서 기각을 먹여 시제 차량도 제작되지 않은 채 프로젝트가 폐기되었다.
VK 45.03(H) VK 45.02(H)가 물을 먹자 헨셸이 제시한 신형 설계안으로, 최종적으로 채택되어 티거 2가 된다. 해당 프로토타입은 현재까지도 남아 영국의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본래는 위의 VK 45.02(H)가 티거 2로 계획되었고, VK 45.03(H)가 티거 3으로 계획되었으나, 상술한 대로 VK 45.02(H)가 탈락하자 헨셸이 급하게 경합에 제시한 것이 우리가 아는 6호 전차 B형 티거 2로 채택된 것이다. 여러모로 장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1] 전면장갑이 무려 80mm였기에 베이비티거 라고도 불렸다.[2] 소련군이 크게 관심을 가지지는 않은 탓인지, 안타깝게도 현재 격파된 VK 20.01(D) 사진은 남아 있지 않다.[3] 45라는 중량 구분은 판터와 마찬가지로 티거 2가 티거 프로젝트에서 이어진 후속 차량이었기 때문이지 시제 차량의 무게가 45톤이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티거 2의 중량은 70톤에 육박했다.[4] 없는 경우에는 워게이밍의 창작력으로 만들어 낸다.[5] 인게임 약칭 Ob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