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z.Kpfw. 38(t)", 즉 38(t) 전차는 나치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 점령 이후 스코다 및 ČKD의 공장을 점거한 뒤 생산한 차량으로, 남아있는 LT vz. 38 파생형 중 다수를 차지한다.
생산공장에서 TNH-S를 노획한 독일군 내부에서의 평가는 상당히 좋았는데, 1호 전차와 2호 전차는 확실히 개털리고 방어력 등을 제외하면 화력 등에 있어서는 3호 전차에도 필적한다는 것. 다만 이것은 높으신 분들의 생각인지 오토 카리우스의 회고록에 의하면 구식 설계사상으로 인해 전차장이 포수를 겸해야 하는데다 체코제 장갑재의 질이 열악해서[1] 실전에서는 3호 전차보다는 떨어진다는 평을 내렸다. 이는 전면장갑을 관통한 철갑탄이 만든 파편으로 인해 이가 몇 개 부러지는 경험을 한 오토 카리우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당장 전차 한 대가 아쉬운 상황이었던 독일군은 이를 1939년에 Panzerkampfwagen (3,7 cm) L.T.M 38이라는 이름으로 제식화했다. 다시 1940년에는 38(t)로 개명하여 3호 전차를 보조하는 기갑전력으로 활용하였다. 1942년까지 약 1,400대 가량이 생산되었다. 3호 전차의 대용품으로 독일 제7, 8, 12, 19, 20, 22기갑사단에 장비되었다. 동맹이던 루마니아 왕국과 불가리아 왕국 또한 각각 50대와 10대를 공여받았다.
그러나 3호 전차보다도 포탑이 작고, 포탑링도 작아서 37mm를 능가하는 주포를 장착하기 어렵다는 점이 부각되어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T-34나 KV-1 등의 소련군 신형전차를 상대하기 어려웠기에 사실상 2선급 전력으로 물러났다. 그나마 38(t)는 경전차라서 어느 정도의 변호는 가능했다.
Me 323 기간트에 적재중인 Pz.Kpfw. 38(t)
또한 최초로 항공기로 수송된 전차다. Me 323 수송기에 실려서 아프리카 전선까지 이동했다.[2]
1940년, 스웨덴은 독일에게 항의를 하는데, 다름이 아니라 스웨덴 정부 측에서는 1939년 체코슬로바키아에게 TNH-S를 구입하기로 하였고, 그 대가로 선금을 이미 지불한 상태였으나, 3호 전차의 수량이 부족했던 독일이 스웨덴이 구매한 차량들을 압류해 그대로 돈만 떼인 꼴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독일은 스웨덴과 상당히 친밀한 관계에 있었기에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으려고 하였고, 이에 대한 보상책으로 해당 사양을 라이센스 생산 가능하도록 허가 및 기술자를 파견하는데 합의하였으며, 동년부터 스카니아-바비스 社의 공장에서 이를 생산하였다.
기존의 38(t)와 달리 스트리드스방 m/41은 많은 차이점이 존재했는데, 대표적으로 무장의 경우 스코다 社에서 생산한 37mm 포가 아니라, 자국 회사인 보포스 社의 37mm kan m/38으로 무장을 교체하고, 공축기관총과 동축기관총도 자국산 8mm ksp m/36 기관총으로 변경하는 차이점이 존재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차는 "스트리드스방 m/41 S-I"이라는 제식명이 부여되었으며, 후기형인 "스트리드스방 m/41 S-II" 버전에서는 장갑이 강화되고, 129hp의 엔진에서 165hp의 고출력 엔진으로 교체되었다.
"Tanque 39 (40mm)"은 페루에서 제작된 LTP 전차의 파생형으로, 주포를 37mm에서 보포스 40mm 대공포로 교체한 파생형이다.
[1] '47mm 대전차포에 너무 쉽게 관통당하는 약하고 유연치 못한 체코제 장갑판'이라고 평했다. 오히려 포탄 파편보다 장갑재 파편과 볼트가 날아다니면서 피해가 컸다고 한다.[2] 최초의 강습용 공수전차는 영국의 테트라크다.[3] 탑재한 기관포인 2cm FlaK 38의 위력이 너무 약했다. 당장 저거 4개를 달았던 초기형 뫼벨바겐도 화력 문제로 욕을 먹었던 판에 이놈은 그걸 1개만 달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