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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colbgcolor=#fff> 크루프 Krupp AG | ||||||
창설일 | 1881년 | |||||
해체일 | 1999년 | |||||
직원 수 | ||||||
업종 | 중공업, 조선업, 방위산업 | |||||
위치 | 독일 에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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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크루프 사는 독일 에센 지방에 자리잡았으며 4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크루프 가문이 창립한 기업이다. 철강과 군수기업으로 유명했다. 1999년 티센(Thyssen AG)과 합병하여 대규모 다국적 기업집단인 티센크루프(ThyssenKrupp AG)로 거듭났다. 두 회사가 합병하면서 나온 새 로고도 두 회사의 로고를 한데 합쳐놓은 형태로, 이 중 동그라미 3개가 정삼각형의 구도로 겹쳐있는 게 크루프의 흔적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아직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1]2. 역사
18세기 말, 영국에서 최초로 주강(鑄鋼) 기술이 발명되었으나 산업의 우위를 지키기 위해 제조법은 비밀에 부쳐졌다. 1810년, 프리드리히 크루프(Friedrich Krupp; 1787년 ~1826년)는 영국이 독점하고 있던 주강 기술을 밝히는 것에 뜻을 두었고, 에센에서 강철 주물(鑄物) 공장을 세우면서 크루프 가문의 금속 관련 사업을 시작하였다.아들인 알프레트 크루프(Alfred Krupp; 1812년 ~ 1887년)는 마침내 독자적으로 주강 제조기술을 개발하였고 강철 롤러, 철도용 강철차륜의 주요 생산자로 떠올랐다.[2] 그는 유동상(流動床, fluidized bed) 공법에 투자하였고, 독일과 프랑스에 있는 많은 광산들을 인수했다. 그 시대의 기업으로서는 드물게도, 크루프 사는 공장 노동자들에게 주택, 의료, 퇴직금 등의 사회적 보장을 제공하였다.[3]
이런 복지시스템을 돌린 이유가 좀 재밌는 편인데, 알프레트 크루프가 딱히 공산주의에 호의적이거나 직원들에게 자상했기에 그랬던 것은 아니고 '내 명령에 복종해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책임지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 그런 것이다. 알프레트 크루프는 직원들에게 충성서약을 요구했고 직원이 볼 일 보러 가는 것도 감독관에게 보고하게했으며 직원들은 정치에 관심가지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을 정도로 직원들을 철저히 통제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에게 복종하는 대가로 수많은 복지를 제공해준 것이다. 자본주의의 파도가 몰려오면서 귀족과 왕이 서서히 과거의 존재가 되어가는 시대에, 누구보다 귀족적인 사고를 지닌 알프레트 크루프가 누구보다 선진적인 사회 복지 시스템을 만들어서 굴렸다는게 참으로 아이러니한 결과물이다.
당대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던 크루프는 1840년대부터 일명 크루프 포로 불리게 된 강철제 포신 대포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세계 최초였다. 그리고 이 제품을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에 전시하여 대영제국에게 한 방 먹이기도 했다.[4] 서멧도 이 회사에서 1926년에 개발한 금속이다. 특히 프로이센 왕국, 러시아 제국, 오스만 제국, 청나라의 군대가 주요 고객이었다. 미국의 철강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주요 생산품이있던 철도 관련 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게 된 회사 상황, 그리고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이라는 2가지 요소는 크루프가 점점 더 무기 산업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1880년대 후반에 이르면, 병기 제조가 크루프 사의 전체 생산량 중 약 50%의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알프레드가 회사를 시작할 당시 크루프의 종업원은 5명이었다. 그가 사망할 즈음에서 20,000명이 크루프에서 일하고 있었다. 세계 최대의 공업 기업, 독일 제국 최대의 개인기업이었다. 1903년에는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전시관을 세우고 대포를 전시한다. 또한 같은 해에 정식으로 기업법인을 설립하여 주식합명회사(Aktiengesellschaft; AG)가 되었다.
20세기 전반에는 구스타프 크루프 폰 볼렌 운트 할바흐(Gustav Krupp von Bohlen und Halbach; 1870년 ~ 1950년)가 회사를 이끌었다. 그는 크루프의 상속자인 베르타 크루프(Bertha Krupp; 1886년 ~ 1957년)와 결혼하면서 부인 쪽의 성(姓)인 '크루프'도 썼다. 1933년,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뒤 크루프는 독일 재무장의 중심적 역할을 맡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주요 개발, 생산 무기로는 1호 전차, 88mm 대공포, 4호 전차, 티거 2의 포탑[5], 구스타프 열차포, 7호 전차로 계획된 뢰베가 있다. 크루프 산하의 조선소에서는 유보트도 131척 제조하였다. 1943년, 히틀러의 특별 지시에 따라 크루프는 개인 회사로 전환되었다. 구스타프와 베르타의 장남인 알프리트 크루프 폰 볼렌 운트 할바흐(Alfried Krupp von Bohlen und Halbach; 1907–67)가 소유주가 되었다.
정부에 발주받은 병기를 납품할 때, 1호 납품품의 값을 받지 않는 전통이 있었다. 이는 구스타프 열차포와 같은 고가의 병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2.1. 크루프 재판
뉘른베르크 군사법정 전쟁범죄자 재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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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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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재판 | 플리크 재판 | 이게파르벤 재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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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프 재판 | 빌헬름 가 재판 | 최고사령부 재판 | }}}}}}}}}}}} |
독일의 패전 후, 구스타프는 치매를 앓고 있었고 재판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 뉘른베르크 계속재판 법정은 '크루프 재판(Krupp Trial)'에서 '약탈' 및 크루프사의 다음에 대한 죄를 물어 알프리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징역 12년 선고와 함께 소유 지분의 75%를 매각할 것을 명령한다.
1. 평화에 반한 죄: 침략전쟁을 획책하고 국제 조약을 위반하는 데 참여한 죄.
2. 인도에 반한 죄: 점령국에 대한 약탈, 파괴, 착취에 참여한 죄
3. 인도에 반한 죄: 독일이 점령한 지역의 민간인, 독일인, 전쟁포로들을 모살, 멸절, 노예화, 강제이주, 감금, 고문, 노예노동에 동원하는 데 참여한 죄
4. 평화에 반한 죄를 저지르기 위한 계획 또는 음모 일체에 가담한 죄
하지만 냉전이 심화되고 인수자도 나서지 않자 1951년에 미국 점령군 당국은 그를 석방하였고, 알프레드는 1953년에 회사 경영을 재개하였다.
2.2. 티센과 합병
알프리드가 사망한 이듬해인 1968년, 크루프는 또다시 개인 회사에서 주식회사가 되었다. 1999년에 크루프는 가장 큰 경쟁 상대였던 티센과 합병한다. 이를 통해 탄생한 티센크루프는 독일 기업 규모 5위에 오르는 한편, 세계 최대급의 철강 생산 기업이 되었다.한국하고는 별 상관이 없어보이는 회사 같지만 산하 회사 한국지사인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가 있었다. 이 회사는 2021년 티케이엘리베이터코리아로 분리되었다.
3. 제품
3.1.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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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트럭 | 크루프 프로체 | ||
건설기계 | 바거 288 | ||
군용차량 | A7V · 경 트랙터 · 노이바우파초이크 · 1호 전차 · 4호 전차 |
[1] 단, 합병 이후의 티센크루프는 본업인 철강 분야의 부진으로 인해 2021년에 한 사모펀드에 엘리베이터 사업부를 통째로 매각했다.[2] 크루프 사의 로고인 동그라미 3개가 겹쳐져 있는 모습은 바로 이 철도차륜을 형상화한 것이다.[3] 비슷한 시기 미국과 영국의 노동자들 처우가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소모품 취급으로 개막장이었던 걸 생각하면 정말 선구적이다. 산재를 입어도 퇴직금이나 치료비는 커녕 위로금이라도 받으면 다행이었던 수준.[4] 대영제국이 만국박람회를 연 것은 자신들의 총체적인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영국은 후미장전식 암스트롱포를 생산하여 국력을 과시하고 있었는데, 암스트롱포는 후장식이라 연사속도가 빠르다는 혁신적인 장점이 있었지만 이 대포는 연철로 제조하였기 때문에 강선이 없었고 영점도 잘 맞지 않았다. 반면 크루프는 강철 포신을 절삭하는 방식으로 기존 연철 대포 대비 2배나 강성이 높은 대포를 만들어냈다. 물론 강선도 팔 수 있었던 건 덤.[5] 편의를 위해 포르셰, 헨셸형이라고 부르지만 두 형태 모두 크루프에서 생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