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전쟁 개전 직후 독일군은 자주포 부족을 겪었다. 처음에는 10,5cm[1] leFH 17 야포를 3호 전차 차체에다가 얹을 생각을 하였으나 곧 이 방안은 무효화되고 그 대신 4호 전차 차체를 쓰기로 한다.
그러나 이 방안 역시 무산되고 다시 당시 독일군의 주력 야포였던 15cm sFH 18를 전용으로 개발된 차체에 얹기로 한다. 그렇다고 차체가 완전히 새로 개발된 것은 아니고 3호 전차의 구동정치와 조향장치, 4호 전차의 차대 및 엔진, 서스펜션을 섞어서 개발한 차대다. 해당 차체는 독일의 구축전차인 나스호른(Nashorn, 개발 중에는 호르니세라고도)에도 사용되었다.
주포는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15cm 급. 휴행 탄수는 최대 18발이다. 아무래도 탑재수량이 적다보니 같은 차대를 이용한 탄약 운반차량도 생산되었다. 무장은 주포 외에 MG34 기관총 1정을 자체보호용으로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장갑은 어차피 자주포인 만큼 경장갑이었으며, 적 유탄파편이나 소총탄 정도를 막는 10~30mm 수준이었다. 그래도 자주포치고 톤 당 마력수는 높은 편이어서 주행속도는 40㎞/h급으로 당대의 전차들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며, 덕분에 빠르게 진지이동이 가능했다. 승무원은 조종수 포함 6명. 총 700여대가 양산되었다.
대형 주포를 탑재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지붕이 없는 개방식 전투실을 가졌고, 덕분에 비나 눈이 오면 승무원들이 다 맞아야 하므로 캔버스 천을 지붕 대용으로 사용해야 했다. 완전 방수라기보다는 빗물을 한 켠으로 모으는 효과 정도를 기대했던 듯 하다. 한편 전투실 공간 확보문제 때문에 엔진 위치는 본래의 4호 전차 차대와 달리 후방에서 중앙으로 좀 더 앞쪽으로 이동했다.
차체 전방에는 주포 고정을 위한 A프레임 주포 고정대가 설치되어 주포를 사용하지 않고 이동중일때 안정적으로 고정할 수 있었다. 해당 주포 고정대는 초기형 나스호른도 사용했다.
초기형/후기형 구분이 몇몇 부속품 중심으로 보여서 뚜렷하지 않은 나스호른과 달리, 훔멜은 후기형에 오면서 차체 전면의 조종수와 무전수 탑승실이 재설계되면서 차이가 보다 뚜렷한 편이다.
후기형 차량들은 차체 전면의 탑승실이 더 확장되면서 조종수 탑승구역만 튀어나온 초기 생산분이나 나스호른과 달리, 튀어나온 부분이 차체 폭만큼이나 커졌고, 해치와 관측창이 하나 더 생겼다. 이런 설계 변경으로 조종수와 무전수의 탑승 공간이 한층 더 여유로워졌다. 이 외에도 후기형 나스호른과 마찬가지로 헤드램프가 1대로 줄고, 차체 전방의 예비 보기륜들이 차체 후방에 거치되는 식으로 바뀌고, 리어 머플러는 차체 측면의 배기파이프로 대체되고, 차체 후방 흙받이도 삭제되는 등의 변화가 생겼다.
나스호른/훔멜 차체에 베스페의 주무장으로 쓰인 10,5cm leFH 18 곡사포를 장착한 사양으로, 12대 정도의 극소량만 제작되었다. 일명 훔멜-베스페로 불린다.
1943년 2월부터 생산된 베스페는 1944년 6월에 바르샤바에 있는 FAMO(Fahrzeug- und Motoren-Werken) 생산 공장이 소련군에게 함락당하여 생산이 중단되었는데, 여전히 전차와 보병을 지원하기 위한 10,5cm 곡사포로 무장한 차량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오자 나스호른과 훔멜을 생산한 DEW (Deutsche-Eisenwerke AG) 사에서 개발했다.
[1] 10.5가 아니라 10,5인 이유는, 유럽식 표기에서 소숫점은 ,로 표기하기 때문이다. 세자리마다 소숫점을 찍는 대신 띄어쓰기를 해서 표기한다. 미국식으로 1234.56은 유럽식으로는 1 234,56이다. 사실 SI체계에서는 이게 과학적으로 적확한 표현으로 미국식의 세자리 컴머(,) 표기가 국제표기법 상으로는 오히려 잘못된 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