ИСУ-122 |
1. 개요
파디코보 군사 박물관 소장 ISU-122 기동 영상 |
2. 제원
<colbgcolor=#556B2F> ИСУ-122 | |
제원 | |
개발국가 | 소련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
개발기관 | 키로프 공장(JSC) |
개발자 | 제100호 공장 설계국 |
개발연도 | 1944년 |
생산기관 | 첼랴빈스크 키로프 공장, 레닌그라드 키로프 공장 |
생산연도 | 1944년 4월 ~ 1945년 |
생산 댓수 | ISU-122: 1,735문 ISU-122S: 675문 도합 2,410문 |
운용 연도 | 1944년 ~ 현재[1] |
운용 국가 | 소련 포함 도합 3개국 사용 |
전장 | 6.67m |
전폭 | 3.07m |
전고 | 2.48m |
전비 중량 | 45.5t |
탑승 인원 | 5명 (차장, 조종수, 포수, 탄약수1, 탄약수2) |
엔진 | 하리코프 모델 V-2-IS 디젤 엔진 |
최고 출력 | 520hp |
출력비 | 11hp/t |
현가 장치 | 토션 바 현가장치 |
최고 속도 | 37km/h (도로) 15 ~ 20km/h (야지) |
항속 거리 | 120km (야지), 170km (도로) / 170km (야지), 220km (도로) (내장 연료 탱크만 적재 시/ 외장 연료 탱크 추가 적재 시) |
주무장 | ISU-122: 122mm A-19S 평사포 1문 (30발) ISU-122S: 122mm D-25S 전차포 1문 (30발) |
부무장 | 12.7mm DShK 대공기관총 1정 (250 ~ 300발) |
3. 내부
ISU-122 도면 |
기본적인 구동계와 장갑 등의 요소는 형제인 ISU-152와 완전히 동일한데, 이는 ISU-122가 태생부터 152mm 야포의 부족으로 탄생한 차량이라 무장만 교체한 형태였기 때문으로 이 덕분에 ISU-122는 ISU-152나, IS-2와 많은 부품이 호환되어 전선에서 여러 호평을 받게 되었다.
무장인 122mm A-19S 야포는 기존 122mm A-19 군단포를 기반으로 하여 차량 탑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소소한 개량을 거친 물건으로서, 기존 122mm 군단포가 가지고 있던 이점인 고화력 및 넓은 사정거리를 그대로 물려받아 직사, 곡사를 겸용할 수 있어 대전차, 대보병 화력 모두 만족스러운 성능을 내었다. 이후 ISU-122S 형식에 와서는 기존 A-19S 야포에서 IS-2와 동일한 D-25 전차포로 교체되면서 반동의 감소는 물론이고 해당 포는 반자동 폐쇄기가 장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 빠르게 포격이 가능했다.
부무장인 DShK 중기관총은 1944년 말부터 기존 생산 차량 및 신규 생산 차량에 탑재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ISU-152가 실전 투입 결과 장전시간이 길고 느리다는 문제점 탓에 보병들을 상대로 제압할 수단이 부실하다는 점이 지적되며 덩달아 수혜를 받은 것이었다. 이 덕에 ISU-122도 ISU-152와 같이 대전기 소련 전투차량들 중 몇 안되게 중기관총을 장착한 차량이라는 이점이 있었다.
광학장비는 2종류로 구분되었는데, 대전차 및 직사사격을 염두로 하는 포수 전용의 CT-18 조준경과, 대보병 및 곡사사격을 염두로 하는 파노라마 헤르츠 전차장 조준경이 있었다만 CT-18 조준경은 1.5km가 최대 한계였으며, 그 이상의 거리를 포격하기 위해서는 헤르츠 조준경을 이용해 곡사사격을 해야 했다고 한다.
4. 개발사
오비옉트 242 |
152mm ML-20S는 생산라인이 완전히 잡혀있던 152mm M1937 야포를 기반으로 만들기는 한거지만, 기존의 152mm와는 달리 밀폐된 공간에서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만드는 것이라 부분적으로 바뀐 설계 때문에 원본 야포와는 별도로 새로 생산 라인을 잡아야 했고, 기존의 공장들에서 생산 라인을 다시 잡는데 이런저런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본격적으로 공장라인이 가동되기 전까지 생산량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런 와중에 ISU-152는 예정대로 양산이 시작되었는데, 덕분에 주포만 없는 ISU-152 차체 재고가 공장 내부에 쌓이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다.
한편 122mm D-25T 포를 장착한 중전차 IS-2 초기형 차량들은 KV 시리즈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전면 관측창 약점이 있었고 이 약점에 의해 예상 이상의 많은 상실이 발생했으며 위에 써진 ISU-152의 양산 차질까지 겹쳐지면서 자칫 잘못하면 전선에서의 직사 화력 공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퍼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널려있던 ISU-152의 차체에다 재고가 많이 쌓여있어서 보급이 용이했던 122mm A-19S 주포를 달아서 만든 것이 ISU-122다. 이미 ISU-152를 개발할 때 옵션안으로 122mm급 주포를 장착하는 설계안까지 나왔던 상황이므로 개조작업은 매우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어쨌든 이런 뒷사정으로 인해 원래는 탄생하지 않았어야 하는 자주포가 탄생했지만, ISU-122는 땜빵용 자주포답지 않게 활약이 꽤 있었으며 그 결과 꽤 많은 수가 양산되었다. 이는 설계사상의 측면에서 122mm을 운용하는게 꽤 힘들었고, 2차례에 걸친 개조 끝에 쓸만한 수준으로 바뀐 IS-2와 달리, 애초부터 152mm을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차량이 122mm 주포를 사용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를 봤던 것이 크다.
1944년 8월부터는 IS-2의 주포로 쓰인 D-25T 기반의 D-25S 주포를 탑재한 ISU-122S(ISU-122-2, Object 249)도 병행생산되었다. ISU-122S의 경우 기존 ISU-152/122와는 다른 둥근 포방패를 장착했다는 특징이 있다. D-25 주포는 A-19보다 폐쇄기가 개선되었기 때문에 재장전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생산량은 ISU-122가 1735문, 개량형인 ISU-122S가 675문이다.
5. 형식
5.1. ISU-122
ISU-122 시리즈의 기본 형식.같은 차체를 쓰는 ISU-152와 마찬가지로 초기형 차량들은 1943년형 IS-2의 차체를 기반으로 설계되었고 차체 전면 하단이 주조장갑이다. 반면, 후기형 차량들은 차체가 개량된 1944년형 IS-2를 기반으로 설계되었고 차체 전면 하단도 용접 장갑으로 변경되어 더 각지게 되었다.
형제인 ISU-152와 달리 엔진 개선이나 현대화를 받지 못하였지만, 1960년대 초까지 헌역의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5.1.1. 초기형
ИСУ-122 Обр. 1944 |
후기형과의 차이점은 이 시기 생산된 초기형 ISU-122 생산분은 DShK 중기관총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다만 44년 말, 소련군 상층부에서 하달된 중전차 및 중자주포에 보병을 제압 가능한 중기관총을 장착하라는 명령이 하달되며 정비창에 실려온 차량들에도 DShK가 장착되었기에 중기관총을 아예 장착하지 않았던 초기형의 ISU-122는 현재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1944년에서 1945년 경 키로프 공장에서 남아있던 43년식 차체를 전부 소진하면서 단종되었으며, 신규 생산분은 새롭게 개선된 하단의 후기형으로 세대교체 되기에 이른다.
5.1.2. 후기형
ИСУ-122 Обр. 1945 |
상단의 초기형이 1944년 말이 되며 기존 초기 IS-2의 차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자주포 차체를 전량 소모하자 원본인 ISU-152와 동일하게 하단을 용접 장갑으로 변경한 차체로 세대교체되어 키로프 공장에서 신규 생산되었다.
ISU 시리즈의 상징과도 같은 DShK 중기관총은 후기형부터 공장 출고 당시에 달려나오기 시작했으며, 종전 이후로 고정식 차체를 지닌 자주포의 수요가 급감하며 단종 처분을 밟게 되었으나, 소련군 내에서는 1960년대까지도 일선에 준하는 장비 취급으로 초기형과 같이 사용되었다가 이후 여러 우방국에 팔려나가면서 퇴역하였다.
5.2. ISU-122S
ИСУ-122С |
독소전쟁 주간 675문 만이 시범 생산되어 사용되었으나 전후 다수가 유실되었고, 현재는 폴란드에 "1010호차" 1문이 정태보존되어 있는 상태이다.
6. 파생형
6.1. 소련
6.1.1. 무장 교체 파생형
6.1.1.1. 오비옉트 243
Объект 243 |
해당 파생형은 1944년 개발되어 테스트를 진행하였으나, 포신의 내구성 문제와 거친 지형에서는 너무 긴 포신 탓에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고, 또한 약실이 너무 커 차체 내에서 제어하기 힘들다는 평가가 내려져 개발이 중지되었다.
6.1.1.2. 오비옉트 251
Объект 251 |
해당 파생형의 주포는 약실의 무게 탓에 포신에 머즐브레이크 대신 무게추가 달려있었으나 약실이 너무 컸기에 차내에서의 포 조작 문제로 생산안이 기각되었으며, 양산화 되는 것은 ISU-122S가 되었다.
6.1.1.3. 오비옉트 250
Объект 250 |
개발 당시 주포의 반동을 줄이기 위해 특이한 머즐브레이크를 장착하였으나, 122mm와 152mm 그 사이의 어중간한 화력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사장되었다. 그래도 S-26 주포는 2차 대전 종전 직후 개발에 들어간 IS-7 중전차 초기형 모델의 주포로 활용되기도 했다.
현재 애국 공원에 한 문이 보존되어 있다.
6.1.2. 비무장 파생형
6.1.2.1. ISU-T
ИСУ-Т |
6.1.2.2. BTT-1
БТТ-1 |
차체 전면부에는 크레인을 달 수 있었고 엔진룸 위에 개방형 화물칸이 신설되었다. 일부 차량은 60년대에 현대화 개량을 거치면서 ISU-T와 함께 엔진이 T-54에 적용된 V-54 엔진 기반의 신형 엔진으로 교체되었다.
7. 평가
7.1. 장점
- 높은 탄약 적재량
IS-2와 달리, 152mm 포를 쓰는 것을 전제로 설계된 차체에 122mm 포를 얹었기 때문에 많은 장점들을 얻게 되었다. IS-2의 포탄 적재량은 28발이고 그것도 탄약수가 장전하기 힘든 장소들까지 우겨넣으면서 달성한 숫자지만, ISU-122는 포탄 30발을 적재하고 있으며, 이 포탄들을 2명의 탄약수가 장전했다. 그리고 이는 전투지속능력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고작 2발 많음에도 전투지속능력이 높은 이유는 IS-2는 실내 공간이 좁아서 준비탄이 몇 발 안되기 때문이다. 준비탄을 제외한 나머지 탄은 탄약수가 전차 내부를 탈탈 뒤져서 꺼내야 하는 예비탄에 가까웠는데, 포탄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예비탄을 꺼내쓰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이에 비해 ISU-122는 준비탄의 숫자도 많고, 예비탄도 IS-2보다는 꺼내기 쉬운 곳에 있으며, 탄약수가 2명 탑승할 수도 있었다. 이는 실제 전장에서 IS-2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대구경 포에 반비례하는 상대적으로 빠른 발사 속도
IS-2에 비해 주포도 안정화장치를 추가하는 등 개량하고, 전투실이 넓고, 탄약수도 1명 더 있기 때문에 주포의 발사속도가 빠르다. 그래봐야 ISU-122의 A-19S 주포는 분당 1.5발에서 2.5발 정도의 발사속도를 가졌지만, 반자동 장전장치를 가진 122mm D-25 주포를 채용한 ISU-122S는 분당 2발에서 3발까지 발사속도가 증대되었으며 숙련된 탄약수들이라면 분당 4발까지 가능했다. IS-2의 경우 많은 것이 개량된 1944년 형에서는, 더 뛰어난 정확도를 가지고 순간적으로 분당 6발에 가까운 속도로 사격이 가능하기는 했으나, 1944년 형도 포탄 내부적재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으므로, 전체적인 전투지원능력은 ISU-122쪽이 더 뛰어났다고 보면 된다.
- 더 나은 주포의 부앙각
IS-2가 포탑의 형상 및 주포장착위치의 문제로 인해 하방사격이 거의 불가능해서 낮은 곳에 위치한 적들에게 당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도 했지만, ISU-122는 상대적으로 주포가 낮은 위치에 달리는데다가 하방사격이 가능하므로 독일군이 ISU-122 앞에서 이런 짓을 하면 바로 박살난다.
7.2. 단점
- 상대적으로 낮은 포병 화력
ISU-152와 같은 차체를 쓰기 때문에 ISU-152와 일부 단점도 공유하며, 주포의 차이 때문에 당연히 ISU-152보다는 주포의 화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화력의 문제는 ISU-152보다 더 빠른 발사속도를 통해 어느정도 해결을 봤으므로 적이 122mm로 대응가능한 수준이 아닌 다음에야 완전히 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소련군에게 이런 적은 티거 2를 비롯해서 매우 소수에 불과했다.
- 미미한 개선안
ISU-122S가 개발된 후에도 ISU-122 기본형은 계속 생산되었는데, 이는 122mm A-19S 포가 남아돌았기 때문이다. 결국 극초기 IS-2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이나 다름 없는 주포를 계속 썼으므로 당연히 장전 시간이나 정확도라는 A-19S 야포의 여러가지 단점도 이어받았다. 이는 A-19에서 개선된 주포인 D-25를 탑재한 ISU-122S에서 해결되었다.
- 무분별한 혼성편제
ISU-152나 ISU-122나 설계사상 및 주 임무가 비슷했으므로 소련군 상부에서 ISU-152와 ISU-122를 굳이 구별하지 않고 혼성편성해서 부대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4] 하지만 일선지휘관들은 이런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주포같은 부품이나 탄약공급 등 여러가지 면에서 양 기종의 물품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하는 등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 발생했고 ISU-152가 간접사격 모드로 장거리 화력지원을 할 때 ISU-122는 ISU-122에 맞게 별도로 간접사격이 가능하도록 계산을 해주거나[5] 아니면 간접사격을 완전히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7.3. 총평
한번 생각해보시죠. 지금 기억하기로는 559.6 고지였네요. 리발코 사령관이 우리와 함께 있었고요, 클리멘코프의 자주포가 본부 산하 근위대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왼쪽에 독일 전차들이 나타났습니다. 무려 18대나요!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요? 리발코 사령관의 낮빛이 변하고, 전투 태세를 취하기 시작했으며, 근처에 있던 클리멘코프의 지휘를 받았습니다. 누군가 외쳤습니다. "독일놈들이 쏘지 못하게 해!" 이 때 클리멘코프가 말하길, "잡았어!"
어떻게 되었을까요? 1.8km 거리에서 발포한 포탄이 최선두에 있던 전차를 격파하고, 두 번째에 있던 전차가 그것 때문에 기어나오기 시작하자 그는 두 번째에 있던 전차를 격파하고, 세 번째 전차가 또 나오자, 그는 전차를 격파했고, 네 번째 전차가 나오자.... 그는 나치들을 막았고, 그들은 도망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요? 리발코를 만나서 어땠는지 물어보시면 그도 증언해줄 겁니다. 어찌됐건 바로 그곳, 전장에서 클리멘코프는 1급 조국전쟁훈장을 전투복에 박게 되었습니다.
제309근위자주포연대 소속 사령관 코브린 중령의 ISU-122 에이스 클리멘코프에 대한 회고록에서 발췌.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요? 리발코 사령관의 낮빛이 변하고, 전투 태세를 취하기 시작했으며, 근처에 있던 클리멘코프의 지휘를 받았습니다. 누군가 외쳤습니다. "독일놈들이 쏘지 못하게 해!" 이 때 클리멘코프가 말하길, "잡았어!"
어떻게 되었을까요? 1.8km 거리에서 발포한 포탄이 최선두에 있던 전차를 격파하고, 두 번째에 있던 전차가 그것 때문에 기어나오기 시작하자 그는 두 번째에 있던 전차를 격파하고, 세 번째 전차가 또 나오자, 그는 전차를 격파했고, 네 번째 전차가 나오자.... 그는 나치들을 막았고, 그들은 도망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요? 리발코를 만나서 어땠는지 물어보시면 그도 증언해줄 겁니다. 어찌됐건 바로 그곳, 전장에서 클리멘코프는 1급 조국전쟁훈장을 전투복에 박게 되었습니다.
제309근위자주포연대 소속 사령관 코브린 중령의 ISU-122 에이스 클리멘코프에 대한 회고록에서 발췌.
실전에 투입된 ISU-122는 122mm이라는 대구경이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고 상당한 전과를 기록했기 때문에 종전때까지 생산되었으며, 전후에도 일부 차량이 계속 사용되었다. 위에 언급된 장점이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특히 당초 예상과 달리 152mm을 써야 했던 차량이 122mm을 쓰면서 얻은 정확도 및 발사속도, 준비탄 문제의 해결로 인해 소련군은 ISU-122에게 구축전차 업무를 자주 맡겼으며 IS-2 1944년형 및 SU-100이 본격적으로 투입되던 시기에도 많은 ISU-122들이 구축전차 업무를 맡았다는 것에서 소련군의 ISU-122에 대한 평가를 짐작가능하다.
여기에 152mm보다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강력한 고폭탄 성능을 자랑하는 122mm를 ISU-152보다 빠른 속도로 더 많이 쏠 수 있었으므로, 소련군의 일선 지휘관들은 시가전, 참호전에서 돌격포로써의 역할도 만족스러울 만큼 해낼 수 있다고 호평했다.
총평으로는, 땜빵치고는 나름대로 활약을 한 차량이라 볼 수 있는데, 다른 국가의 경우 구축전차나 대전차자주포가 원하던 주포의 생산량이 적어서 하급 주포를 장착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이럴 경우 사실상 계륵 이하의 존재가 돼서 있으나마나한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ISU-122는 시기를 잘 타고 난 자주포라고 보면 된다. 이 자주포와 정반대되는 포지션에 있는 자주포가 바로 SU-85다.
ISU-122가 이정도로 활약할 수 있었던건 소련군이 필요로 할때 생산에 차질이 생긴 IS-2와 ISU-152를 잠시 대체할 역할을 잘 맡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똑같은 포를 장착할 경우 포탑이 있는 전차가 포탑이 없는 자주포보다 강력하다. 그러나 ISU-122는 포탑이 없다는 것과 자주포를 매우 다양한 용도로 써먹는 소련군의 교리를 빼더라도 IS-2와 비교해도 나은 점이 많았기에 종전까지 생산이 지속되었다.
물론 이런 일은 ISU-152도 충분히 해낼 수 있지만, ISU-122가 맹활약을 하던 시기에 ISU-152의 숫자는 적었으며, ISU-152가 본격적으로 투입되던 시점에 ISU-122는 가치를 충분히 증명해보였기 때문에 소련군은 ISU-122를 종전까지 계속 양산했다. ISU-152와 비교했을 때 122의 장점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었으므로[6] ISU-122 역시 ISU-152가 맡았던 다양한 업무들을 수행하곤 했다.[7]
IS-2가 본격적으로 개량되어서 투입되기 전까지, ISU-152가 본격적으로 양산되기 전까지 ISU-122가 생산되고 투입되어서 소련군에게 충분한 전과를 올려주었고, 덕분에 ISU-152나 IS-2 1944년형이 본격적으로 양산되는 시점에서도 많은 수의 ISU-122 계열 차량이 생산되어 ISU-152와 함께 중 자주포로써 제 역할을 맡으면서 122mm 주포의 성능을 바탕으로 그 업무를 충실히 해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땜빵은 땜빵인지라 독소전쟁이 종결된 다음에는 생산이 사실상 중단되었다.[8] 종전후에도 그나마 한동안 계속 운용되기는 했지만, ISU-152보다 화력이 약한게 문제여선지 퇴역할 때까지 ISU-152보다는 취급이 좋지 않았다. 1950년대부터는 많은 차량이 구난전차나 로켓 발사대로 마개조 되기 시작했고, 1960년대 초에 다른 역할의 장비로 전환되지 않은 ISU-122 계열 차량들은 소련군에서 전부 퇴역했다. 일부 차량은 1950년대 초부터 ISU-152와 함께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이나 중국 등지로 수출되어, 전후에도 많은 숫자가 양산된 T-34/85, SU-100, ISU-152, IS-2와는 다른 운명에 처한 셈이다.
일부 ISU-122들은 50년대~60년대 사이에 개량을 받기도 했지만 개량 과정에서 엔진이 T-54의 V-54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신형 엔진으로 교체된 ISU-152K와 달리 ISU-122는 엔진이 기존의 것으로 유지되었고, 그마저도 현대화 개량이 아니라 관측창과 통신장비만 변경되었다.
8. 실전
8.1. 제2차 세계 대전
8.1.1. 독소전쟁
8.1.1.1. 바그라티온 작전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그단스크의 소련 육군 자주포연대 소속 ISU-122[9] |
기존 ISU-152가 하기 힘들었던 대전차 임무 및 시가지 내에서의 돌격포 임무 등에서는 외려 ISU-152보다 탁월하다는 운용 인원들과 일선 장교들의 호평 하에 지속적으로 생산하기에 이른다.
8.1.1.2. 동부 카르파티아 공세
동부 카르파티아 공세 당시 포격 준비 중인 소련 육군 제1우크라이나전선군 소속 ISU-122S 소대[10] |
하지만 거친 산악지대인 탓에 자주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워 아주 조금 헝가리 내로 전진했다는 의의만 남긴 채로 결국 독일군을 몰아내는데에는 실패했으며 이후 소련군의 헝가리 진입은 봄의 새싹 작전 당시 절치부심하여 다시금 이루어지게 된다.
8.1.1.3. 비스와-오데르 대공세
비스와-오데르 대공세 당시 우쯔에 진입한 소련 육군 소속 ISU-122 |
이 때, 대공세가 소련의 승리로 끝나며 독일은 소련에게 결국 본토로의 침공을 허용하고 말았으며, 이는 향후 독소전의 향방을 결정짓는 전투로 기록에 남았다.
8.1.1.3.1. 동프로이센 공세
쾨니히스베르크 포위전 당시의 소련 육군 제3벨로루시안전선군 소속 ISU-122S "16호차"[11] |
8.1.1.4. 베를린 공방전
베를린 전투 당시 "베를린은 독일에 머무를 것이다" 낙서를 지나치는 소련 육군 소속 ISU-122[12] |
특히 122mm 포의 탁월한 화력과 대전차능력은 이 시기에도 빛을 발했는데, ISU-152나 IS-2가 투입되기 힘든 환경에서 수많은 ISU-122들이 대전차임무에 투입되어, 끝까지 저항하는 독일군의 티거 2, 야크트판터, 5호 전차 판터 등의 강력한 기갑차량들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고 시가전 내에서 돌격포로 정말 큰 활약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9. 운용국
9.1. 유럽
9.1.1. 동유럽
9.1.1.1. 소련
상트페테르부르크 포병 군사사 박물관 소장 소련 육군 소속 ISU-122 |
9.1.1.2. 러시아
파디코보 군사 박물관 소장 러시아 육군 소속 ISU-122 |
9.1.2. 중부유럽
9.1.2.1. 폴란드
폴란드 군사 박물관 소장 폴란드 인민군 소속 ISU-122 |
현재도 몇몇 차량이 복원을 거쳐 의장용으로 사용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9.2. 아시아
9.2.1. 동아시아
9.2.1.1. 중국
베이징 전차 박물관 소장 중국 인민해방군 육군 소속 ISU-122 "211번차" |
중국군은 공여받은 ISU-122 40문을 총 10개의 연대로 나누어 1개 연대 당 4문씩 편제하여 사용했으며, 이 중 6문이 1954년 베이징 열병식 당시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0. 미디어
10.1. 게임
10.1.1. 월드 오브 탱크
ISU-122S |
10.1.2. 워 썬더
소련 육군 4랭크에 배치되어 있는데 A-19 야포를 탑재한 ISU-122와 D-25S 전차포를 탑재한 ISU-122S가 존재한다.파괴력이 강력하나 ISU-122는 장전 속도가 느리다. 게다가 포가 워낙 탄속이 빨라서인지 근접에서 쏘면 가끔씩 그냥 빵꾸만(...) 뽕 나고 신관은 작동 안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위력을 제대로 보려면 장거리에서 저격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게 제일 이롭다.
ISU-122S는 상당히 빠른 편에 속하기에 강력한 화력을 빠르게 발사할 수 있다.
10.1.3. 강철의 왈츠
비올라 바체에브나 |
10.1.4. Steel Division 2
일부 소련 보병사단들의 대전차 부대로 등장한다. IS-2급 공격력으로 2km에서 판터나 티거까지 처치할 수 있고 보병이나 대전차포도 잘 잡지만 방어력이 IS-2보다 부족해서 PaK 40급 공격에도 죽어버리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3호 돌격포나 4호 전차와 싸워도 최대한 2km정도의 장거리에서 공격하는 것이 좋다.
의외로 측면장갑이 튼튼한 편이라 약한 포들로는 안 뚫린다.
11. 모형
11.1. 프라모델
12. 참고 문헌
- ISU-152 및 ISU-122 생존 개체 목록
- ISU-T 및 BTT-1 생존 개체 목록
- 위키피디아 영어판 ISU-122
- 위키피디아 러시아어판 ISU-122
- 아카데미칸 오비옉트 243 문서
- Dzen 기고 칼럼 "대승리의 자주포 ISU-122 1부"
- Dzen 기고 칼럼 "대승리의 자주포 ISU-122 2부"
- Topwar 기고 칼럼 "무기에 대한 이야기. ISU-122: 최전선 군인의 힘든 길"
1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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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포 | - | ISU-152 · ISU-122 · 2A3 콘덴사토르-2P · 2B1 오카 |
제2차 세계 대전기의 폴란드군 기갑장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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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간기 차량 | 피우수트스키 장갑차, 포드 Tf-c, 오스틴-푸틸로프O, 제프리-포플라프코O, 가포드-푸틸로프O, 에르하르트 E-V/4O, 피어리스O, 피아트-이조르스키O, 푸조O, 카든 로이드 Mk.VIO, 르노 FTO, 르노 M26/27O, 르노 NC-27O, 피아트 3000O | ||
전차 | <colbgcolor=#fefefe,#c0392b> 탱켓 | TK-3, TKF, TKS | |
경전차 | 7TP, 빅커스 Mk. EO, 르노 FTO, 르노 R35O, 호치키스 H35O | ||
프로토타입 | TK-1, TK-2, TKW, TKS-B, PZInż.160, 4TP, 9TP, 10TP, PZInż.130 | ||
페이퍼플랜 | 13TP, 14TP, 53TP | ||
장갑차 | 경장갑차 | 푸조 장갑차O, Wz.28, Wz.34 | |
중장갑차 | Wz.29 우르수스 | ||
대전차 자주포 | TKS-D | ||
자주포 | TKD | ||
군용차량 | 모터사이클 | MOJ 130, 소쿠우 200, 소쿠우 600, 소쿠우 1000, 포드코바 98 | |
차량 | CWS T1, PF-508 와지크, PF-518 마주르, PF-508/518, 라플리 V15RO, 르노 AGKO, PF-618 그롬, Wz.34 하프트랙, 라틸 FB6O | ||
군용트럭 | PF-621L, PF-621R, 우르수스 A, 프라가 RVO, 베를리에 CBAO, 쉐보레 157 | ||
견인차 | PZInż.302, C2P, C4P, C7P, 시트로엥-케그레스 B2 10CVO, 시트로엥-케그레스 C6 P14/17/19O | ||
자유 폴란드군 장비 | 르노 FT, 르노 R35, 르노 R40, A13 Mk.III, 마틸다 I, 크롬웰, 크루세이더, 처칠, M3A3 스튜어트, 셔먼 I, 셔먼 IIA, 셔먼 IB, 셔먼 III, 셔먼 V, 셔먼 VC, 셔먼 IC, Mk.I 아처, 유니버설 캐리어, M3 하프트랙, 험버 장갑차, M6 스태그하운드, 모리스-커머셜 LRC, AEC 도체스터 ACV, M10 GMC, 3호 전차G형O, 4호 전차O | ||
폴란드 인민군 장비 | T-34-76O / T-34-85O, T-70O, IS-2O, BA-20O, 윌리스 MBO, BA-64O, M4A2 (76)O, BA-64, SU-57O, SU-76MO, SU-85O, ISU-122O, ISU-152O, 유니버설 캐리어O, M17 MGMCO | ||
폴란드 국내군 장비 | 쿠부시, Sd.Kfz. 251 D형O, BA-20MO, BA-202(r)O, M14/41O, 헤처O, 4호 전차H형O, 5호 전차 판터O, 6호 전차 티거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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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대 | T-72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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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대 | 레오파르트 2PL, M1A2 SEP v3, K2GP, {K2PL} | ||
경전차 | PT-76BR, | ||
장갑차 | 차륜장갑차 | 쿠부시R, KTO 로소막, BRDM-2, SKOT-(1A/2A · 2AP), BTR-40R | |
궤도장갑차 | TOPASR, BWP-1(C/D), BWP-2(D)R, MT-LB, {BWP 보르숙}, {CBWP 사업 K-9 차대기반}, | ||
차량 | 소형 | {K-151 레그완}, 타르판 혼커 2000 · 스콜피온 · 스콜피온-3, 투막, 온실라, 디펜더, 벤츠 GD 290/250, WD-43, 샌드캣 | |
트럭 | 벤츠1017A · 유니목 1300L, ZiL-131, ZiL-157, 이베코 스트라리스 · 트래커 · 유로카고 · MP720 시리즈 · M40.12WM, Star 200 · 244 · 266(M) · 660(M) · 944K ·1466ML · 1444, Jelcz P/S662D · P662D · P642D · C642D · C662D · P/S862D · P/S842D 타트라 T-815, KrAZ-255, 우랄-375D, 우랄-4320, GAZ-66, FMTV | ||
자주포 | 자주곡사포 | 2S7 PiwoniaR, 2S1(M/T) Goździk, wz. 1977 DANA-T, AHS 크라프, AHS 크릴, K-9A1, {K9PL} | |
자주박격포 | TOPAS-2APR, {로소막-Rak} | ||
대전차 자주포 | SU-57R, M10 아킬레스R, ASU-57R, ASU-85MR, SU-100R, ISU-152R, M36B1C/R | ||
대공 차량 | 자주대공포 | ZSU-23-4MP BiałaM, | |
단거리 대공미사일 | 9K31 Strzała-1R 9K35 Strzała-10MR, ZRK-SD RombR · 9K33BM3 ŻądłoM, Mała NAREW | ||
다연장로켓 | BM-24R, BM-21R, WR-40 랑구스타M, RM-70/85, M142 HIMARS, {호마르-K}, {호마르-A} | ||
지원 차량 | 구난차량 | BPz 2, {M88A2 허큘리스} | |
교량차량 | {M1110 JAB} | ||
※ 윗첨자R: 퇴역 및 의장용 차량 ※ 윗첨자M: 개조 차량 ※ {중괄호}: 도입 예정 차량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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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기(1914~1945) | 냉전기(1945~1991) | 현대전(1991~) |
[1] 본가인 소련에서는 1950년대에 퇴역 후 치장장비로 전환되었다가 그 후예인 러시아가 현재 행사용으로 운용 중에 있다.[2] 오비옉트 243의 주포로 장착된 BL-9와 부품만 다르고 동급의 탄도 성능을 내는 포다.[3] 해당 함포는 2차 대전 초에 T-100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SU-100Y 자주포의 주무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4] 어차피 소련 자주포들은 SU-85와 SU-100을 제외하면 애초부터 장거리 포격을 포함하여 다용도로 사용될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주포였던데다 기본적으로 체급별 차이는 방어력과 주포 뿐이었기에 예전에는 심지어 특성이 완전히 다른 SU-122와 SU-76M을 동시에 편제하는 일까지 있었다. 예전에 비하면 ISU-152와 ISU-122의 혼합편제는 그렇게 이해하기 힘든 일은 아니다.[5] 당연하지만 일이 두배.[6] 화력이 떨어진다는 것만 제외하면 ISU-122는 ISU-152보다 재장전속도, 탄약 적재량 숫자, 정확도, 보급시간에서 우위를 가졌으며 떨어진다는 화력도 독일군의 자잘한 경장갑차량 및 토치카 정도는 날려버릴 수 있는 122mm였다.[7] 비록 ISU-122가 양각이 18도로서 20도인 ISU-152보다 더 나빴고 A19 자체가 ML-20에 비해 곡사포로서의 성능이 낮은 단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간접사격시 14.3km나 되는 사정거리를 가지는 등 오히려 대전당시의 ISU-152보다 더 긴 사정거리를 가졌기에 자주포로서 역할도 꽤 자주 했다.[8] 다만 Steven Zaloga의 저서 'IS-2 Heavy Tank, 1944-1973'같은 자료에 따르면 1947년에서 1952년까지 생산이 재개되어 3130대가 제작되었다고 한다. ISU-152와 혼동된 수치인지는 명확하지 않다.[9] 1944년 촬영되었다.[10] 1944년 10월 경 헝가리 인근에서 촬영되었다.[11] 1945년 3월 촬영된 사진이다.[12] 1945년 5월 3일, 베를린이 공식적으로 항복한 날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