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中型坦克 |
1. 개요
1970년대에 중국 인민해방군이 10년 넘게 개발하다가 결국 취소하게 된 중국의 최초의 국산전차가 될뻔했던 중형전차 프로젝트. 참고
2. 제원
자체중량 | 37.5t |
길이 | 6.35 m (차체) 9.52 m (전체) |
폭 | 3.28 m |
높이 | 2.25 m (큐폴라 제외), 2.46 m (큐폴라 포함) |
주무장 | 120mm 활강포 x 1 12.7mm 54식 대공기관총 x 1 |
부무장 | 7.62mm 59식 동축기관총 x 1 2연장 대전차미사일 발사기 x 2 |
승무원 | 4명(차장-포수-조종수-탄약수) |
항속거리 | 500km |
최대가속도 | 55km/h |
엔진 | 수랭식 디젤 엔진의 630~650마력[1] |
현가장치 | 유기압 현가장치(122-1) 토션바 서스펜션(122-2) |
추가정보추가정보2추가정보3
어째서 120mm라는 기준을 잡았는지는 상당히 불명이다. 다만 당시 소련제 전차의 주포가 115mm인 점을 감안하여 더 강력한 주포를 위해 적용한 것인지 아니면 서방에서 개발중이던 최신 120mm를 적용한 것인지도 불명이다.
3. 상세
이 전차는 원래 소련에게 받은 기술들로 T-54의 라이센스 생산형인 59식 전차를 생산하던 중국이 중소결렬 이후로 소련의 기술적인 지원을 못 받게된 상황에서 국산 전차 개발을 시도하면서 탄생했다. 1960년대 당시 소련에서는 T-64가 배치되었고 서방에서도 M60 전차, 치프틴 전차, 레오파르트 1, AMX-30 등의 신형 2세대 전차들이 나왔다. 외국 전차들에 대한 정보를 얻은 중국 당국은 신형 전차를 개발하여 외국과의 기술적인 차이를 따라잡고자 했다.1967년부터 장갑병과와 59식 전차를 생산한 내몽골 자치구 바우터우의 617공장 연구소가 협력하여 외국의 2세대 전차에 대항할 수 있는 신형 전차의 목표로 하는 성능·신기술에 대한 검토를 개시했다. 같은 해 12월 국방공업과학위원회는 장갑병과가 제출한 개발계획을 비준해 제품번호 WZ-122가 주어져 '122형 중형탄극'이라고 호칭되게 됐다. 이렇게 당시 개발이 진행중이던 59식 전차의 개량형(69식 전차)과 병행하여 더 강력한 새로운 전차 개발이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1969년에 중국-소련 국경분쟁이 발발하면서 중국군은 소련군의 T-62같은 신형전차들 상대로 59식 전차들이 크게 열세라는 것을 인지하였고, 앞으로 소련으로부터 기술적인 지원도 없을 만큼 군사 전력격차가 커지게 될 것을 예상했다. 특히 국경분쟁후 중소결렬이 심화됨에 따라 소련은 중국에게 신형무기 인도를 철저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소련이 국경분쟁에서 무기의 질적 우위를 과시한 점은 중국에게도 위협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서둘러서 지상무기에서 가장 기초적인 군수체계인 전차를 국산화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중국에게는 당시 전차개발 기술이 부족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본질적으로 59식 전차를 베이스로 하는 전차의 개발을 1970년 3월에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1223과 1224 전까지 개발은 전혀 순조롭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바로 중국의 모든 걸 수십 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문화대혁명이 진행 중이던 시점이었으니 제대로 개발이 될 리가 없었다. 기술인력이 죄다 반동으로 쓸려나가던 시절이니 당연도 했다. 개발 당시 122 3기형을 만든 기술자들이 많이 숙청당해서 122 3기형은 새로 교체된 기술자들이 개발을 맡기도 했다.
4. 개발
4.1. 122 (3액형)
122 |
1221 코드가 붙은 개발 프로젝트의 첫 시제품은 1970년 9월 25일에 완성되었다. 전차의 주포탑과 궤도 및 휠은 기존의 소련제와 거의 동일하다시피한 디자인 스타일이었지만 현가장치와 같은 일부 구성 요소에서는 소련제와 달랐다. 전후좌우 자세제어가 가능하고 자동 궤도 장력 조절 기능이 있는 유기압 현가장치와 유압식 유체 클러치가 들어간 변속기, 유압식 선회(조향)장치로 3가지 유압제어 기술이 접목되었기에 일명 122 3액형(3液)이라고 불렸다.
엔진으로는 700마력 수랭식 디젤엔진이 사용되었고, 자동 소화 장치, 적외선 야시장비, NBC 방호장치, 컴퓨터 사격통제장치[2]와 같은 당대 최신 기술들을 도입했다. 주무장으로는 자체 개발한 120mm 활강포가 사용되었으며 탄약에는 소진탄피가 적용되었다. 포구제퇴기도 장착 가능했다고 한다. 포의 성능에 대해서는 포신 길이 5,750mm, 포의 총중량 2,563kg. 부앙각은 -6도~18도, 발사 속도는 3~4발/분이라고 알려졌다. 무전기의 경우 중국산 CWT-176형 무전기가 사용되었다.
부무장으로는 공축기관총과 차체 전방 기총으로 장비된 7.62mm 기관총 2정에 더해 포탑 외부에 대공용으로 71식 20mm 기관포 1문 또는 12.7mm 중기관총을 쌍열로 달 수 있다.
개발당시 복합장갑도 고려되었으나 122 3액형과 122 3기형에는 적용되지 않았고 기존 59식 전차와 유사한 용접식 차체와 주조식 포탑이 사용되었다.
특이하게 차체 좌우 양측에 2연장으로 302형 대전차미사일 발사대를 설치하여 부족한 공격력을 강화하려고 한 것으로 보이나 실효성이 의문이 될 수 밖에 없었다.[3] 미사일 탑재는 당시 소련과 미국에서 9K119 스비리와 MGM-51 시레일러같은 전차포발사 대전차 유도 미사일을 개발한 것을 의식한 결과지만 기술력 부족 등의 이유로 포발사 방식 대신 외장형 발사관 설치를 택한걸로 여겨진다. 미사일 발사관들은 포방패와 연결되었기 때문에 주포와 동일한 방향으로 상하가동했다. 대전차 미사일 유도에는 포탑의 적외선 탐조등을 사용했는데, 조준기로 확인한 목표물에 적외선을 조사하면 미사일 꼬리의 수신기가 그걸 탐지해서 목표물로 향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전차에게 계획된 기술적인 수준은 당시 중국의 기술력으로는 개발이 불가능한 수준이라 엔진과 화학제품에 요소들은 어떻게 수요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목표는 거창하게 소련의 T-62는 물론 T-64를 뛰어넘고 서방의 레오파르트 1, M60 전차를 뛰어넘는 ROC를 적용했지만 중국에서 실용화가 도저히 되지도 않고 생산기술력 자체도 없는 물건이 나온 것이었다. 분당 3~4발 발사속도도 그렇지만 120mm 활강포도 69식 전차 초기형에 사용된 100mm 활강포와 마찬가지로 부족한 공업력 때문에 완성도가 낮고 성능도 별로라 트러블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4]
결국 지나치게 무리한 첨단기술 적용으로 개발에 문제가 생기면서 프로젝트가 일시 중단되었다. 그렇게 3액형 시제차는 몇가지 시험만 받다가 보관되었고 중국 당국은 무리한 첨단기술 도입을 줄이고 새 전차를 기존의 기술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설계해보기로 계획을 바꿨다. 이후 122 계획과 별개로 122 3액형 시제차를 기반으로 704형 중형전차도 개발되었다.
302형 대전차 미사일 역시 개발이 개시된 1969년 이후 별다른 성과가 없었고, 대전차미사일 국산화에 속도를 내던 중국군은 302형의 개발을 보류하고 소련제 9K11 말륫카를 복제한 HJ-73을 양산했다. 이후 302형 미사일도 개발 취소되었지만 일부 기술은 HJ-8의 개발에 응용되었다.
4.2. 122-1 (3기형)
1221 |
두번째로 등장한 차량은 122-1으로 명명되었다. 첫번째 차량에 적용된 유기압 장비들은 기술적인 불완전함과 신뢰성 문제 때문에 거의 모두 기계식으로 바뀌면서 유기압 현가장치도 토션바 서스펜션으로 교체되고 유압식 변속기와 선회장치도 종래의 기계식 5단전진 1단후진 변속기와 기계식 선회장치로 변경되었다. 이 때문에 일명 122 3기형(3機)으로도 불린다. 포탑 외부의 대공 부무장도 122 3액형에 사용된 것의 지나친 반동 문제로 12.7mm 중기관총 1대만 장착되었다. 대전차 미사일 발사관들도 제거되었다.
1973년까지 바우터우, 난징 등을 누비며 3000km를 주행하는 것과 같이 여러가지 시행착오 및 시험테스트를 거쳤으나 신뢰성 부족과 성능미달, 기술 문제만 확인을 하게 되고 결국 개발에 다시 제동이 걸리면서 1974년에 최종적으로 개발 종료된다.
이후 개발이 진행되면서 발전된 시제차량으로 1223/1224/1226/1226F2가 각각 나오게 된다.
4.3. 122-3
개혁개방시기에 접어들면서 59식 전차와 비슷한 동구권 전차 설계에 서방 기술들을 접목하는 방향으로 개발되었다.1970년대 후반이 되자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문화대혁명이 끝나면서 122 전차의 개발이 재개되는 환경이 갖추어졌다. 그러나 이미 당시 서양에서는 3세대 전차가 차례차례 등장하기 시작했고, 2세대 전차로 만든 122 중전차 수준에서는 각국 3세대 전차에 대항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개혁개방으로 서방과의 관계 개선에 따라 각종 신기술의 입수가 가능해진 것도 국산기술만으로 만든 122 중전차에 있어서는 불리했다.
1978년 4월에는 '5종 신형 차량 회전령 소조'는 당조 확대 회의를 개최하고, 새로운 국산 2세대 전차의 달성 목표, '레오파르트 2의 수준을 기점으로 해, T-72에 대향할 수 있는 제 「2세대 전차의 개발」을 결정해, 이에 따라 122형 중전차의 개발은 발전적으로 해소되었다. 이 결정에 따라 122형 중전차를 바탕으로 1223형, 1224형, 1226형, 1226F2형 등 차세대 전차의 테스트 베드가 개발되어 각종 신기술 실증에 사용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차세대 전차의 연구 개발과 함께, 서쪽과의 관계 개선에 따라 입수 가능하게 된 각종 신기술을 바탕으로 서구권 2세대 전차에 준한 성능을 가지는 전차의 개발도 결정되었다. 이것에 의해 제작된 것이 122형 중전차의 상부와 69식 중전차의 차체 하부를 결합시킨 1223형 시작 전차이다.
1223이 훗날 만들어진 80식 전차(WZ-122/ ZTZ-80)의 기반이 되었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다.
4.4. 122-4
개혁개방시기에 접어들면서 서방의 기술을 적용하는 것으로 개발 방향이 바뀌면서 만들어진 1224는 레오파르트 2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전차가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중국 군부가 레오파르트 2의 도입과 라이센스 생산도 고려해서 중국군 장교 시찰단이 독일의 크라우스-마파이를 방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정적, 기술적 문제 때문에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와서 1978년 8월, T-72에 대항하기 위한 전차로 레오파르트 2처럼 용접 장갑을 적용한 국산 전차를 개발하는게 결정되었다.
1978년 8월에 산둥성에서 열린 제5차 기계 산업부 회의에서 새로운 전차에 43~45톤급 중량, 2000m 범위에서 T-72의 전면 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 120mm 활강포, 새로운 900~1000마력 엔진, 최고 속도 65km/h와 평균 속도 45km/h, 취약한 교량 인프라를 고려한 깊은 심수도하 능력, NBC 방호 장비와 소화 시스템을 탑재하기로 결정하였고 동년에 1224 1차 프로토타입이 제작되었다.
1224 차량은 서양식의 각진 용접 포탑을 달고 작은 보기륜 6쌍을 사용하여 한눈에 보기에도 기존 동구권 전차들과 달라보였다. 탄약고도 서방 전차들과 비슷하게 포탑 버슬에 별도로 배치했고, 17발 자동 장전 장치를 개발할 계획도 있었지만 나중에 신뢰성 문제로 포기했다. 엔진으로는 독일의 MTU사가 개발한 MTU MB8V331 TC41 민수용 디젤엔진과 617공장이 만든 고유 토크 2플레이트 유성 기어 시스템을 사용했다. 또한 MB8V331의 부족한 냉각 시스템으로 인해 엔진룸 상단에 대형 팬 2개가 추가로 설치됐고 엔진룸도 큰 엔진 크기에 맞게 눈에 띄게 높아졌다.
서방제 기술이 대폭 사용되면서 토션바 서스펜션과 변속기 부품도 대부분 독일에서 수입했다. 나중에는 616공장에서 개발한 국산 12150ZL V형 12기통 엔진으로 테스트를 실시했으며 987hp를 기록했다.
이외에도 636공장에서 제작한 신형 8V150 엔진도 계획되었지만, 해당 엔진 실린더 뱅크 각도가 60도[5]인 것과 기타 이유로 인해 취소되었다. 이러한 배치와 관련된 설계 문제로 인해 회전 균형이 무너지고 과도한 진동이 발생하여 엔진이 어느 속도 이상으로 가속되지 못하게된다.
1977년 봄에는 제5기계공업부가 독일의 기술 지원을 받아 라인메탈 120mm 활강포를 역설계하여 신형 전차포를 개발했다. 1979년 2월 29일에 실시된 첫 사격 시험에서 포구초속 약 1700m/s에 도달했으며, 다음 시험에서는 포구초속 1411.2m/s로 68도 경사의 204mm 강판을 관통했다.
1979년에 완성된 후 3월부터 연말까지 테스트를 실시하여 차량의 대부분의 부품에 대한 신뢰성이 입증되었으나 민간용 MB8V331에 잘 맞는 엔진 냉각 시스템이 더 크고 강력한 중국산 12150ZL을 냉각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아서 엔진에 따라 과열되는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시험 결과 전반적인 성능은 만족스러웠지만 우수하지는 않은 것으로 판명되어 제5 기계 산업부는 이어서 새로운 프로토타입 제작에 착수했다.
4.5. 122-6/122-6F2
122 중형전차 계열의 최종 설계안이다. 1224 설계안의 개발 종료 이후 개발된 1226은 1224보다 보수적인 설계안으로, 둥근 주조 포탑이 사용된 것처럼 다시 외형이 59식 전차같은 동구권 전차처럼 바뀌었다.
1226에는 세부적으로 1226과 1226F2라는 두 개의 전차가 존재한다. 두 전차간 눈에 띄는 차이점은 없지만 유일한 차이라면 다른 유형의 중국산 엔진이다. 전자가 636공장에서 생산한 8V165 엔진을 사용했다고, 후자는 616 공장의 12150ZL 엔진의 개선형을 사용했다. 두 전차 모두 전진 기어 4개와 후진 기어 1개가 있는 유압식 자동변속기를 사용했다. 617 공장에서 개발한 이 자동변속기는 변속기와 엔진을 쉽게 교체하고 제거할 수 있는 파워팩으로 결합되었다.
또한 토션바 서스펜션이 일본의 74식 전차의 서스펜션과 유사한 유기압 현가장치가 포함된 토션바+유기압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유압식 선회장치도 적용되면서 초대 설계안인 122 3액형에서 계획한 기술들이 10년 넘어서 만들어진 1226에서 완성된 셈이 되었다.
1226은 주무장으로 1224의 120mm 활강포를 계승했지만 장전 메커니즘을 반자동 장전 장치로 단순화했다. 그리고 복합장갑도 사용되었다.
1981년부터 1982년까지 프로토타입이 테스트되었으며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변속기를 비롯한 일부 부품의 내구성이 낮고 신뢰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어서 결국 채택되지 못했다.
4.6. 704 중형전차
122 3액형에서 파생된 중형전차 계획. 허난성 낙양의 704분창에 의해 개발이 이루어진 122형 전차의 발전형으로 1970년대 동안 개발되었지만, 개발이 장기화됨에 따라 소련의 T-64와 T-72에 대항하려면 추가 강화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양산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일부 기술은 1980년대에 개발된 중국 전차들에 사용되었다.참조
5. 결말
결국 122 계열 전차 개발에서 큰 성과는 없었고, 끝내 70년대에 중국의 국산 전차는 나오지 못했다.하지만 122의 개발 과정은 중국산 전차 개발에 있어서 발전이 되었고, 이후 개발된 3세대 전차급 후속 전차들의 기술적 기반이 되었다. 122 중형전차는 1980년대에 88식 전차(WZ-122A)로 이어지면서 88식 계열의 최초인 80식 전차(WZ-122)의 기반을 마련했고(정확히는 69/79식의 차체를 사용한 122-3을 기반으로 이어졌다), 80식 전차 프로젝트에서 파생된 85식 전차(WZ-132C)는 이후 96형 전차와 99형 전차로 이어진다.
122 중형전차 개발 과정에서 만든 중국산 120mm 활강포같은 일부 기술은 89식 자행대전차포에도 사용되었다.
현재는 베이징 인근의 전차 박물관에 80식 전차 차체 위에 주포가 빠진 122 전차 포탑을 올려둔 전시물이 남아있다.참조
6. 기타
자료가 상당히 제한적이라서 누락된 정보도 적지 않으며, 특히 전차 프로젝트명을 놓고 122인가 WZ-122인가 혼동하는 경우가 적지않다.그러나 WZ-122는 이 전차 이후 개발된 80식 전차의 코드명이고 이 중형 전차는 그냥 122다. 예전에 작성된 중국 기록 자료들에는 전부 122라고 나온다. 하지만 이 전차가 등장하는 게임들에서조차 이름이 WZ-122로 잘못 나오는 경우가 많다.
7. 미디어
7.1. 게임
7.1.1. 워 썬더
122 3액형이 중국 트리 6랭크 프리미엄 전차로 출시되었다.7.1.2. 아머드 워페어
Zhang Feng 딜러에 6티어 프리미엄 전차로 122-4가 존재한다.7.1.3. 월드 오브 탱크
122 3액형이 122 TM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트리의 8티어 프리미엄 중전차로 추가되었다. 또한 122-4가 워게이밍의 변형을 거쳐 BZ-75라는 이름으로 중국 중전차 테크트리 10티어에 추가되었다.7.1.4. 월드 오브 탱크 블리츠
본가 PC월탱과 마찬가지로 122 3액형이 중국 트리의 8티어 프리미엄 중형전차로 추가되었는데, 블리츠의 중국 전차 이름 통일 표기에 따라 WZ-122 TM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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