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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정부 항공기 Cоветский правительственный самолет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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Ил-62M, CCCP-86535 | |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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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 기간 | 1955년 ~ 1991년 12월 26일 |
운용 기관 | 소련 공군 산하 제235 독립 정부 비행대대 235-й Отдельный Правительственный авиационный отряд[1] |
1. 개요
소련 최고지도자의 국가 수반 정부 전용기에 대한 문서.공식 명칭은 ‘소련 정부 전용기’라는 의미의 'Советский правительственный самолет'이지만, 미국의 ‘에어 포스 원’처럼 공식 고정 호출부호(콜사인)·애칭은 없었고 ’정부 전용기(правительственный самололёт)‘ 또는 ‘정부 항공대(235 독립 항공대)’가 운용하는 정부(지도부) 수송편으로 불렸다.
한편 언론·대중적 통칭으로는 '에어 포스 원', '1호 비행기'에 대응하는 '보르트 넘버 원(Борт № 1)'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실제 러시아어 자료에 “일류신 Il-62가 수십 년 동안 소련 및 러시아의 ‘정부기(보르트 № 1)’로 쓰였다”는 표현이 기록되어 있다. 즉, 미국처럼 ‘공식 호출부호’가 아닌 관습적 별칭에 가까우며, 실제 항공 교신 호출부호는 'STATE AERO'였다고 한다.
2. 특징
모든 전용기의 운용 및 관리는 러시아 공군 소속 제235 독립 정부 비행대대가 담당했지만 항공기들은 정부 소속으로 직접 도입하지 않고 모두 아에로플로트 소속 기체들을 임차해 이용했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에어 포스 원처럼 국가 이름이 새겨진 전용기 특별도장을 사용하지 않고, 아에로플로트 도장을 그대로 사용했다.또한 초기에는 해외 순방이 있을 때마다 왕복 비행 단위로 일반 여객기를 임차한 뒤 개조해 사용했지만, 니키타 흐루쇼프 정권 시기부터는 공식적인 정부 전용기로서 장기 임차를 시작해 기체의 준비율과 활용성을 높였다. 레오니트 브레즈니프 이후부터는 자주 바뀌던 전용기를 Il-62로 통일시키고 단일 기체만을 계속 사용하기 시작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사용된 소련 정부 전용기는 일류신 Il-62M으로, 현재 북한의 참매 1호와 동일한 형식이다.[2]
3. 역대 변천사
3.1. 이오시프 스탈린(~1953): 더글라스 C-47
아에로플로트 소속 C-47 |
또한 흥미롭게도, 스탈린은 소련의 항공 설계국들에게 자국산 항공기를 개발하고 서방제 항공기들을 복제시키기도 하는 등 항공 산업을 장려했지만 막상 본인은 소련제 항공기 탑승을 거부하고 미제 항공기 사용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소련에서 개발한 리수노프 Li-2라는 C-47(정확히는 민수형인 DC-3)의 라이센스 생산형이 있었음에도 스탈린은 '정품 미국산 C-47'만을 신뢰했다고(...)
3.2. 게오르기 말렌코프(1953-1955): 일류신 Il-12/Il-14
CCCP-91491, Il-14P 같은 형식의 다른 기체 |
다만 공식적인 정부 소속으로 장기 임차를 하지 않았고, 회담 참석이나 해외 순방 등 항공기 사용이 필요할 때에만 특별비행편 개념으로 단기 임차를 한 뒤 내부를 임시적으로 개조했다고 한다.[5] 그래서 정부 전용기라고 부를 수 있는 특정 기체가 없으며, 그가 탑승했다고 전해지는 기체들의 등록부호들도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3.3. 니키타 흐루쇼프(1955-1964)
니키타 흐루쇼프 정권 소련 정부 전용기 | |||
제조사 | 기종 | 사용 기간 | 등록부호 |
일류신 | Il-14P | 1955-1965 | CCCP-61755 |
투폴레프 | Tu-104 | 1956.03~04 - ? | (불명) |
투폴레프 | Tu-114 | 1959.09 - ? | CCCP-Л5611L5611 |
일류신 | Il-18 | - | (불명) |
3.3.1. Il-14
CCCP-61755, Il-14P 촬영 날짜 미상 |
CCCP-61755에서 하기하는 흐루쇼프 서기장 촬영 날짜 미상 |
그러던 중 후술할 일련의 사건으로 니키타 흐루쇼프에게 밉보인 Il-14P는 Tu-114에게 최고지도자 전용기 자리를 물려주고, 일반 정부인사 전용기로 쓰이다가 1965년 즈음에 퇴역했다.# 이 기체는 이후 아에로플로트, 키예프 공장 항공 등 여러 민간 항공사에서 운용되다가 1987년 완전히 퇴역했다. 현재는 러시아 외진 숲에 버려져있는데, 러시아 측에서 방치하는 것을 보면 한 때 최고지도자의 전용기였다는 사실이 잊혀졌거나, 이미 손상이 심해 복원을 포기하고 폐기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동일한 제원과 옵션을 갖춘 기체를 유고슬라비아의 요시프 브로즈 티토에게도 선물한 적이 있는데, 이는 유고슬라비아의 첫 Il-14였고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가장 최신이자 최고급 기체였다고(...) 등록부호는 YU-71301. 해당 기체는 현재 베오그라드 항공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3.3.2. Tu-104
3.3.3. Tu-114
CCCP-Л5611, Tu-114 Tu-114의 프로토타입 |
1955년 제네바 회담에서 니키타 흐루쇼프는 당시 미국 대통령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의 전용기였던 VC-121E 컬럼바인 III(록히드 슈퍼 컨스텔레이션)을 목격하고, 자신이 타고 온 Il-14와 너무 차이나는 것에 열등감이 폭발했다. Il-14는 컬럼바인에 비해 크기는 절반도 안됐고, 속도는 더 느렸으며, 항속거리도 8분의 1 수준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흐루쇼프는 모스크바에서 제네바까지 약 2,500km 거리를 가는데에도 중간에 1번의 급유 착륙을 해야했지만, 아이젠하워는 단 한번의 기착 없이 약 6천 km가 넘는 대서양을 횡단해왔다.
게다가 당시 제네바 회담에는 미국 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까지 참석한 2차 세계대전 전후 열강들이 모인 자리였으며 그만큼 전세계의 외신 기자들도 모여있던 상태였기에, 두 비행기의 극명한 차이를 드러낸 모습이 전세계에 생중계되었다.
니키타 흐루쇼프는 서방에 개방적이었지만, 동등한 위상으로 친선을 유지할지언정 미국보다 열등한 모습을 보이거나 경쟁에서 밀리는 것은 극도로 싫어했다. 회담으로부터 복귀 직후 흐루쇼프는 불같이 당장 미국보다 더 큰 정부 전용기를 개발할 것을 지시했고, 이 지시를 받든 설계국이 바로 투폴레프였다. 투폴레프는 이미 서방과의 기술력 경쟁 목적으로 Tu-104를 개발했지만, 여전히 대서양을 횡단하기에는 항속거리가 짧았다. 투폴레프는 Tu-104의 사례처럼 기존의 군용기를 개조하는 방식으로 개발비와 연구기간을 대폭 줄였고, 그 결과 최종적으로 탄생한 기체가 Tu-114이다. Tu-114는 1957년 초도 비행에 성공, 1959년 9월 경 소련 정부 전용기로 자리잡음과 동시에 곧바로 미국 워싱턴 해외 순방에 투입되었다.
3.3.4. Il-18
3.4.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 미하일 고르바초프(1964~1992)
브레즈네프 정권 이후 소련 정부 전용기 | |||
제조사 | 기종 | 사용 기간 | 등록부호 |
투폴레프 | Tu-134 | 1956 - ? | (불명) |
일류신 | Il-62M | 1964? - 1992 | CCCP-86460 |
일류신 | Il-62M | 1964? - 1992 | CCCP-86461 |
일류신 | Il-62M | 1964? - 1992 | CCCP-86535 |
밀 | Mi-8 | ? - 1992 | - |
3.4.1. Il-62
RA-86461, Il-62M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로 편입된 사진 | CCCP-86535, Il-62M 1989년 12월 몰타 국제공항에서[6] |
현재 CCCP-86535를 비롯한 정부 소속 Il-62들은 전부 스크랩 처리되었다.
3.4.2. 기타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소련 최고지도자들 중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헬리콥터를 공식 정부수반기로 채택했다. 또한 당시 개발 중이던 Il-96의 시험비행과 개발 과정을 참관하는 등 차기 정부 전용기로서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나, 개발이 완료되기 이전에 소련 붕괴가 발생하면서 소련 정부 전용기의 맥은 Il-62M에서 끊겨버렸다. Il-96은 소련 붕괴 이후에 개발이 완료되어 러시아 대통령 전용기부터 사용되었다.3.5. 소련 붕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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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4. 여담
5. 둘러보기
[1] 235th Separate Government Aviation Detachment[2] 즉 북한은 원조 사용국인 소련보다도 30년 이상 운용하고 있는 셈이다(...)[3] 당시 미국도 대통령 전용기를 형식상 보유하고 있었지만 미국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D. 루즈벨트가 열차나 크루즈선을 통한 이동을 더 선호하면서 정부에서의 공식 사용이 늦어졌다. 루즈벨트가 비행기를 탑승하게 된 계기도 카사블랑카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야하는 상황에서 독일군의 유보트들이 해상에서 판치기 시작해, 크루즈선의 이용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당시 미국 정부가 최초로 확보한 대통령 전용기였던 더글라스 돌핀 수륙양용기는 그의 임기 동안 단 한번도 사용되지 못하고 퇴역당하기도 하는 등 루즈벨트 대통령도 비행에 무관심했다.[4] 여기서 Il-14P는 정부수반(Presidential)의 의미가 아닌 여객형(Passenger)을 의미하는 기호이다.[5] 즉 일반 여객기를 빌려서 좌석을 전부 뜯어내고 소파와 책상 등을 설치해 VIP 살롱형으로 이용했고, 일정이 끝나면 다시 일반 여객기로 전환해 되돌려주었다.[6]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몰타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