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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Мир
Mir
1. 개요
러시아어로 '평화'를 뜻하는 미르(Мир, Mir)는 과거 냉전시대의 미국-소련간 우주 경쟁의 산물로 태어났지만 오히려 상호협력을 통해 더 큰 과학적 진보가 가능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1.1. 소련의 반격
소련은 1961년 최초의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를 발사해 우주시대의 기원을 열었지만, 8년 뒤 미국에 달을 선점당했다. 우주정거장 건설을 통해 이 패배를 만회한다는 전략을 세운 소련은 1971년부터 3차례에 걸쳐 소규모 우주 정거장 살류트를 발사하여 다시금 우주개발 경쟁에서 미국을 앞지르게 되었음을 과시했다.이에 미국도 질세라 소련이 포문을 연 우주 정거장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미국은 새턴 로켓을 활용하여 Skylab을 쏴올렸는데 소련 로켓보다 훨씬 우월한 성능을 지니고 있던지라 살류트보다 훨씬 크고 여유로운 우주 정거장을 확보 할 수 있었다. 크기가 넉넉하니 재활용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했고[3] 미국 우주 정거장은 적절한 재활용으로 보급품을 오래오래 쓸 수 있었는데 반해 소련은 그딴 거 없어서 그냥 보급품 떨어지면 폐기인 상황이니 Skylab이 살류트를 이긴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때 Skylab에서는 84일 우주체류라는 기록을 세웠다.
1.2. 새로운 우주정거장의 탄생
결국 Skylab에 의해 소련의 우주 정거장 관련 기록이 다 콩라인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이번에도 미국에 지기에는 정말 싫었나본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게 된다. "더 큰 우주 정거장을 쏴서 미국을 확실히 앞지르자!"고는 하고 싶었지만 문제는 소련은 Skylab보다 우주 정거장을 발사할 로켓 엔진 기술이 후달렸다. 로켓 엔진 기술이 밀리는건 더 큰 물건을 띄우지 못한다는 뜻이고 크기에서 밀리는 것은 즉 공간도 좁고 재활용 시스템 등의 장기적 프로그램에 맞는 기능을 집어 넣지 못해 기록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 다시 말해 이번에도 소비에트가 우주 경쟁에서 번번이 미국에 밀린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고심 끝에 우주 정거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버린다.[4]후속작 살류트 4호부터 본격적으로 "로켓 기술의 근본적 제약"을 극복하고자 한 노력을 개시한다. 우선 본 모듈은 그대로 두되 복수의 우주선을 도킹 가능케 함으로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려 했던것. 그러니까 재활용 수준이 아니라 우주선에다 화물을 실어서 우주정거장에 보급을 하는 완전히 신개념을 개발한 것이다. 살류트 4호와 그 후속작으로 발사된 살류트 5호에 이 기술이 적용 됐고 본격적으로 살류트 6호와 7호에 써먹어 보았는데 결과는 대박. 종래의 Skylab이 세워 놓았던 우주 기록을 죄다 경신했다. 이 때 레오니드 포포프는 채소를 키워 자급자족을 시도하는 등의 노력으로 무려 184일을 우주에서 버티는 위엄을 과시했고 미국은 우주정거장 사업에서는 결국 GG를 치고(물론 새로운 우주정거장 프리덤을 발사할 계획은 있었으나 돈 문제로 우주왕복선 스페이스랩 프로그램에 전념했다.) 기고만장해진 소련은 아예 "우주선 여러 개 도킹 따위의 작은 스케일보다 모듈을 여러 개 끼워가지고 그냥 우주계의 혁명을 일으키는게 어때?!" 하는 비범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결국 공밀레의 결과로, 1986년 1월 19일에 마침내 미르의 20t짜리 중앙 모듈을 우주로 발사했다. 이 모듈은 살류트 프로그램의 7번째 정거장으로 예정되어있던 DOS-7[5]로, 다음해 3월에 기상 관측 모듈 크반트[6]와 결합하게 된 것을 시작으로 미르에는 1996년 4월까지 생물학실험실·생명지원장치 등이 설치된 모듈 7개가 추가되었다. 이후 미르는 러시아 우주개척의 상징물로 자리잡았다. 이때 소련 우주비행사 유리 로마넨코는 장장 324일을 우주에 체류하는 대기록을 수립하셨다. 그리고 소련에서는 서방에 선전하는 차원으로 동구권 각국에서 우주인들을 배출 시켜 주었다. 쿠바와 베트남이 그 대표격. 믿기지는 않을테지만 시리아, 아프가니스탄도 이 기회에 어떻게 줄을 잘 잡아서 각각 1987년, 1988년에 우주인을 배출했다.
1.3. 미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막대한 돈이 들어간 미르를 유지할수 없었던 러시아 항공우주청은 1993년 예산문제로 프리덤 계획이고 뭐고 줄줄이 취소가 되던 NASA와 눈이 맞아 우주왕복선과 우주 정거장을 공유하기로 협상을 완료했다. 그 후 아틀란티스가 STS-71 미션에서 첫번째 도킹을 성공하면서, 이후 7년간 수많은 임무를 성공시키며 우주개발의 한획을 그은 성공적인 우주 정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원체 미르의 제작이 알려진 후 미국에서도 '프리덤'이라는 이름의 우주 정거장 제작계획을 발표했지만, 때맞춰서 냉전이 끝났다. 덕분에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와 미국의 우주프로젝트는 어느것이든 대규모 예산삭감을 당해 프리덤 계획은 취소된다. 다만 이미 건설된 모듈들을 버리기 아까워 후에 미르의 후속작 미르2의 모듈들과 합체해 유명한 ISS가 탄생한다.
1.4. 노후화, 그리고 폐기
96년경부터 잔고장이 빈번히 발생하기 시작했다. 특히 우크라이나에 있던 우주개발 설계국과 기업들이 대거 국영화 조치로 러시아의 영향권을 벗어나며 우주선 제작에 상당한 지장이 빚어졌다.[7] 산소 발생 장치가 고장나 우주비행사들이 산소통을 짊어지고 숨을 쉬어야 하는 일이 있었고, 급기야는 화재와 프로그레스 보급선의 도킹 실패와 충돌[8] 같은 아스트랄한 대형사고가 줄을 이었다.[9] 또한 이런 사건을 로스코스모스가 자체적으로 처리하고 NASA가 ESA보다도 늦게 사후 통보를 받는 사태가 빚어지면서 미국 관계자들이 치를 떨기도 했다.매년 2억달러씩 유지비가 들어 복구할 수가 없어 폐기될 예정이었으며 결국 2001년에 들어 폐기되었는데, 폐기되기 전에는 영화 스튜디오 등으로 쓰려고 민간에서 구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너무 비싼 유지비 때문에 사는 사람이 없었다. 이후 MirCorp라는 우주여행사가 급조[10]되어 소유즈 발사 비용을 지불하는 식으로 미르의 수명 연장을 시도했고, 로스코스모스는 이미 STS-88에서의 자랴-유니티 노드 도킹으로 건설이 시작된 ISS에 집중하기로 결정, 미르를 MirCorp에 넘겼다. 그리고 데니스 티토라는 미국 엔지니어를 첫 우주여행객으로 내세워 우주여행사업을 시작했다.[11]
그러나 미르에 깊숙히 관여하는 MirCorp에 대해 미국 정치인들이 거센 비판을 하는 등 논란이 심했으며,[12] 결국 2000년 6월 MirCorp의 펀딩으로 진행한 처음이자 마지막 유인 우주선 소유즈 TM-30이 세르게이 잘료틴, 알렉산드르 칼례리[13]를 태우고 미르를 떠났다. 그리고 MirCorp에 티토의 뒤를 이은 여행객들의 문의가 빗발쳤지만 러시아는 폐기해야 된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미르의 운명은 결정되었다.[14][15] 그리고 2001년 3월 23일, 폐기를 위해 고도를 낮춰 대기권에 재진입시켰으며 남은 잔해는 태평양의 피지 근처 바다에 가라앉힘으로써 임무를 끝내게 되었다.
2. 모듈
2.1. 코어 모듈(기본 구획 궤도 정거장 '미르')
2.2. 끄반트-I
2.3. 끄반트-II
2.4. 크리스딸
2.5. 스펙뜨르
2.6. 셔틀 도킹모듈
2.7. 프리로다
3. 기록
- 지구순회 : 15년간 9만 바퀴
- 방문우주인 : 104명(러시아 42, 미국 7, 기타 55)
- 최고 탑승액 : 300억원(일본, 도쿄방송국이 1990년 창사 40주년 기념으로 아키야마 도요히로라는 기자를 1주일간 머물게 함)
- 실험수 : 2만여 회
- 사고횟수 : 1500여회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1998년에 개봉한 영화 영화 아마겟돈에 직접적인 이름 언급 없이 '러시아 우주 정거장'이라고만 불리면서 등장한다. 겉모습은 미르와 많이 비슷하게 생겼지만 크기는 2배 이상 크고, 작중 11년이나 된 낡은 고물 우주선이라고 언급된다. 이런 묘사들과 함께 1998년 당시 활동 중인 우주정거장은 미르 하나뿐이었기에 미르를 모티브로 한 것은 확실하다. 레프 대령이라는 소련 우주비행사가 혼자 머무르고 있는데 너무 오랫동안 혼자 지내서 정신이 약간 이상해진 것으로 나온다. 미국 우주선들이 연료 보급을 위해 잠시 도킹하지만 레프가 미국인들에게 자기 가족 자랑을 하면서 한눈 파는 사이 낡은 장치들이 고장을 일으키면서 폭발해버리고 레프는 얼떨결에 미국 우주선을 타고 탈출해서 운석 파괴 임무에 함께 했다가 인류를 구하는 결정적인 공을 세운다.
- 1999년 개봉한 호러 영화 바이러스의 오프닝 장면에서 역시 웅장한 장면으로 들어간다. 열대저기압 연구 및 태풍 관측을 하며 지구, 남태평양에서 연락을 받고 있던 러시아 과학선 '''아카데미 블라디슬라프 볼코프(Academic Vladislav Volkov)[18][19]으로 태풍 레이아의 자료를 전송하려는데 전파 형태로 온 외계인에 의해 본의 아니게 정거장이 점령된 상태에서 외계인을 과학선으로 옮기게 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미르호의 승무원들은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 7일 후 태풍을 만난 시스타호 선원들이 이 과학선을 만나게 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 미르가 임무를 마치고 지구 대기에서 산화한 2001년에는 한동안 소위 미르붐이 일어났었다. 대단한 건 아니고, 매체는 우주 과학에 관심을 많이 보였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르 모형 제품들로 구성된 전시회 등이 전국 곳곳에서 문을 열었다. 참고로 비슷한 시기에 이런 과학 관련 전시회가 꽤나 많이 열렸었다. 2002년에 처음 문을 연 인체의 신비전 같은 거나...
- 2009년 10월 4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384회에서 미르호의 폐기가 그동안 발견되지 않고, 어떠한 지구 환경에도 적응하는 250여 종의 독성 변종 박테리아 때문이라는 주장을 했다.유튜브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 무한도전 그래비티 제로 특집에서는 무도팀이
일자눈썹우주인 살리잔 샤리포프와 함께 미르 우주정거장 내부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가가린 우주센터에 있는 복원품을 구경하는 것이다. 이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진짜 미르는 2001년에 임무를 마치고 산화했다. 그리고 바보전쟁: 시빌 워 특집에서 우주 관련 퀴즈 대결을 펼쳤는데, 이때 유재석이 문제를 내기 위해 2001년에 소멸된 우주정거장이 미르라고 말하자, 하하가 미르재단이라고 언급해 자막에서 큰일 날 소리라고예언나왔다.역시 없는 게 없는 무한도전
- 1993 대전 엑스포에서 미르를 모형으로 한 전시관이 러시아관에 설치되었었다. 러시아에서 모형을 만들어 분해한 후 대전까지 직접 옮겨와 다시 설치하느라 엄청난 수고가 들어갔다고 한다. 외부는 물론이거니와 내부도 상당히 충실하게 재현되었다.
- 핀란드에서 만든 SF 영화인 아이언 스카이에서 폐기되지 않고 우주전함으로 개조되어 등장하는데, 미국과 영국외 수많은 국가들이 우주선에 미사일이나 레일건, 기관포, 핵무기를 탑재했을 때 혼자서 무려 빔병기를 탑재하였다. 웅장한 등장에 더해 울려퍼지는 러시아 국가와 각국 귀빈들의 박수로 인해 위엄이 선다.
러뽕
5. 관련 문서
[1] 엔데버가 쓰인 미션인 STS-89에서 촬영.[2] 스펙터 모듈(제일 오른쪽의 모듈.)을 잘 보면, 태양광 패널이 구겨진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는 1997년의 프로그레스 화물선과의 충돌 때문이다.[3] 심지어는 샤워시설과 겔레이는 기본이고 냉장고 전용식기, 트레이까지 구비해둬서 지금껏 우주정거장 중 우주식량이 가장 호화스러웠고 또한 잘 먹었다.[4] 이는 마치 R-7 로켓을 개발할 때와 유사했다. R-7 로켓은 소련 로켓 엔진 기술이 미국에 비해 처절히 떨어질 때 "야 로켓 엔진 한개 가지고 딸리면 여러개 묶어서 크게 만들면 되잖아?"라는 위대하신 세르게이 코롤료프 옹의 빛나는 기지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물론 R-7 로켓의 개별 엔진을 다발로 묶을 때의 제어가 진짜 뭐 빠지게 힘드므로 코롤료프의 흰 머리는 늘어만 날 수 밖에 없었지만... 결국 사고가 터진 게 유인 달 탐사용으로 개발하던 N-1 로켓은 엔진 30개를 다발로 묶는 짓을 하다가 제어가 안되어 대폭발하고 소련은 결국 달 계획을 포기. 이 클러스터 엔진은 결국 컴퓨터 기술이 만렙을 찍는 21세기에 와서야 스페이스X 정도가 제대로 써먹는 매우 제어 난이도가 높은 기술이었다.[5] седьмая долговременная орбитальная станция, 7번째 장기체류 궤도 정거장. 원래는 Мир라는 이름을 그대로 썼으나 조립된 전체를 칭하는 명칭과 구분하는 차원에서 базовый блок, 영어로는 코어 모듈이라 불렀다.[6] квант, '양자(quantum)'라는 뜻[7] 사실상 미르의 반절은 우크라이나에서 만든 셈이다. 크반트 1/2, 프리로다 등 미르를 구성하는 모듈 상당수는 하르코프에 소재한 하르트론 설계국에서 제작되었다.[8] 게다가 이 사고는 도킹 시스템 이상이나 우주선 고장도 아닌 러시아 우주비행사의 수동 도킹 테스트 중 실수가 원인이었다.[9] 이 때문에 프로그레스와 충돌한 스펙터는 예정보다 일찍 폐기해야 했다.[10] 경영진은 미국인들이었으나 러시아 우주산업의 핵심인 소유즈 제작사 에네르기야가 60%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11] 그러나 데니스 티토는 끝내 미르에 가지 못하고 대신 ISS에 가게 된다.[12] NASA 국장은 데니스 티토를 우주에 환장해서 러시아에 돈을 바치는 매국노라 비판했고, NASA의 돈줄을 쥔 바버라 미쿨스키 의원을 비롯한 여러 정치인들도 이러한 사업을 못마땅하게 여겼다.[13] 이들은 이후 ISS 엑스퍼디션에서도 활동한다.[14] 이후 MirCorp 창립자 월트 앤더슨은 탈세혐의가 걸려서 9년간 감방에서 살아야 했다.[15] 이 과정에서 엔싱크의 멤버 랜스 배스, 그리고 NASA 국장의 보좌관이었던 로리 가버가 각자 펀딩을 받아서 미르로의 우주여행을 도모했으나 모두 훈련 도중 계획이 취소되었다. 그리고 로리 가버는 이후 우주개발 민영화를 주장하며 존 케리, 힐러리 클린턴 등 민주당 대통령 후보들의 우주개발 자문으로 활동한 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NASA 부국장으로 임명되어 스페이스X 등의 민간기업들과의 협력을 이끌어냈으나 SLS에 환장한 NASA에 일갈을 날린 뒤 그만뒀다.[16] 전원 공급이 주된 기능인 만큼 태양 전지판이 꽤 크고 많다.제 사냥감이죠[17] 이를 위해 초대형 SAR(합성개구레이더)이 장착되어 있다.[18] 정확히는 45,000톤급의 미사일 위성 추적용 과학선으로 길이 6,042피트에 2개의 증기터빈을 갖추었다. 최신 과학선답게 파라볼라 안테나가 3개 장착되어 우주와 실시간 통신이 가능할 정도로 당대 최고의 최첨단 과학장비를 탑재했으며, 최신 로봇공학기술을 갖춘 42개 연구팀과 5개 공장이 참여하여 총 300명의 승무원들이 탑승했다. 대신 자체 무장이 없고 해적 등에 대비해 AKM과 RPG-7등 소형화기들이 탑재되어 있다.[19] 소유즈 11호 승무원으로 활동하고 귀환 도중에 동료 승무원 2명과 함께 질식사했던 블라디슬라프 볼코프에게서 따온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