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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몽골 인민공화국과 소련의 관계에 대한 문서.2. 역사
20세기에 청나라의 지배를 받던 몽골은 신해혁명 직후 복드 칸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선언했으나 중국 군벌들은 이를 좌시하지 않았다. 1921년 러시아 내전에서 도망쳐 온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가 중국 군벌을 몰아내고 잠시간 복드 칸과 함께 몽골의 통치자로 군림했다. 나중에 몽골은 운게른을 몰아내고 소련의 영향으로 공산화되어 몽골 인민공화국이란 이름으로 독립했다.소련은 몽골을 위성국화했고 몽골에는 냉전 시절에 소련군이 주둔했으며 내정간섭을 하면서 몽골이 일본과 전쟁하거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몽골인들을 강제로 징병시키고 몽강연합자치정부와 내몽골을 합쳐서 몽골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병합하려고 했다.
소련 시절의 공산주의 운동 때문에 몽골의 자랑 칭기즈 칸을 지옥에서 기어나온 대마왕으로 그려내고 모든 민족 관련 문화를 부정하게 했던 70년 가까운 역사가 있다. 심지어 1960년대에 몽골의 교육부 장관이 조상의 역사를 알자며 칭기즈 칸 유적지를 발굴하고 논문을 펴내자 관직을 박탈당하고 시골로 쫓겨났다가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소련은 유목을 금지하고 몽골의 전통을 파괴했는데, 할힌골 전투를 계기로 몽골과 만주 지역의 유목민들에게 반제국주의, 몽골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자 몽골 전체 인구의 5%나 되는 몽골인들이 숙청당했다. 심지어 그 와중에 몽골 여인들은 러시아 남성들에게 겁탈당하여 유라시안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소련 치하에서 몽골의 문화가 많이 훼손되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몽골 인민공화국 이외 소련 영내의 칼미크인, 부랴트인, 투바인들이 겪은 탄압도 만만치는 않았다. 국가 무신론을 장려하던 소련에서는 칼미키야의 티베트 불교를 믿는 몽골계 칼미크인들은 티베트 불교는 무신론이지 종교가 아니라는 주장을 했으나 소련은 이를 무시하였고 오히려 기독교나 이슬람보다도 몽골계 민족들이 믿던 티베트 불교를 더 가혹하게 탄압했다. 이는 물론 소련에서 불교가 무신론인지 아닌지 세심하게 분석하고 내린 결정은 아니고 당시 몽골인들에게 막대했던 티베트 불교의 영향력[1]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소련의 영향을 받으면서 몽골어 문자는 몽골 문자에서 키릴 문자로 바뀌었으며 러시아어가 몽골의 주요 외국어로 지정되었고 몽골어에도 러시아어의 차용어가 포함되어 있다.
80년대 말에 공산권 국가들이 민주화되면서 몽골도 민주화되었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였다.
[1] 1918년 통계 기준 외몽골 할하 몽골인 성인 남성의 44.5%가 티베트 불교 승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