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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에로플로트, Tu-114, СССР-Л5611 |
Tu-114의 조종석 |
1. 개요
Tupolev Tu-114 CleatТуполев Тy-114 «Poccия»
투폴레프 Tu-114 클리트
뚜빨례프 Tu-114(뚜-스또쪠쯰르나드짜찌) «라씨야»
소련의 투폴레프 설계국이 개발한 장거리 터보프롭 여객기. 나토 코드명은 '클리트(Cleat)'.
2. 개발
1955년 5월, 폭격기인 Tu-95의 주익과 엔진에 새로 설계한 완전여압식 동체를 조합하여 1957년 11월 15일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개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여객기[1]'였으며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큰 터보프롭 여객기'라는 타이틀은 깨지지 않고있다.개발 계기는 제네바 정상회담 당시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이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보다 더 작은 비행기를 타고 온 것과, 당시 넓은 영토를 가진 소련에 장거리 여객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였다.
때문에 흐루쇼프는 미국 순방에 맞춰 장거리 대형 여객기를 원했고, 그 결과 Tu-95를 여객기로 개조한 기체가 개발됐지만 흐루쇼프는 폭격기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렇게 개발중이던 Tu-114는 미국 순방 당시 무려 테스트 기체에 서기장을 태우고 북해를 날아 미국으로 향했다. 이 당시 기체 하단쪽에 금이 가는(!) 결함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서(...) 기내에는 탑재 가능한 모든 수리용 장비를 갖춘 투폴레프 설계국 기술진이 탑승했고 소련 해군 함선 전체가 출동해 경로상에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아무런 결함도 생기지 않은 Tu-114는 첫 임무를 순조롭게 마치고 개발을 완료했다. 이후 소련 국영 항공사 아에로플로트에 취항한다.
3. 특징
전체적인 성능은 매우 훌륭했으며[2] 초창기 제트엔진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효율인 터보프롭 엔진을 장비함으로 항속거리도 상당했다. 그러나 기계적인 구조가 복잡해[3] 유지, 보수가 까다롭고 랜딩 기어가 높아 정비 접근성도 떨어졌다. 거기에 동축반전식 프로펠러가 만들어내는, 제트 여객기를 뺨치는 엄청난 소음[4]과 심한 진동이 단점으로 지목되었다.이중반전식 프로펠러를 채택한 역사상 최대출력 터보프롭 엔진[5]의 조합으로 870km/h라는 어마어마한 최대속도[6]를 보유했으며
설계 당시 저익기로 구상되면서 프로펠러가 땅에 끌리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랜딩기어를 늘리다 보니 기어 높이만 3m가 넘는다.
4. 운용
1961년 4월 24일부터 인도가 시작되었으며 1963년까지 32대가 생산되었다. 민간 항공사 중에는 유일하게 아에로플로트가 운용하였다. 단, 모스크바(셰레메티예보)-도쿄(하네다) 노선에서는 소련과의 항공 협정 체결로 모스크바를 경유하는 조건으로 시베리아를 통과하는 유럽 노선을 운항하였으며, 초창기에는 아에로플로트와의 코드셰어편으로 아에로플로트 소속 Tu-114에 운항 승무원 1명과 객실 승무원 5명은 일본항공 소속의 인원으로 충원되어 기체 측면에 JAPAN AIR LINES라고 부착하였으며 1969년까지 운용되었다.아에로플로트에서 운용할 당시 Tu-114의 별명은 하늘을 나는 레스토랑이었다. 기내식이 기체 중앙의 하부 데크에 설치된 레스토랑에서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객의 이동에 의한 기체의 무게중심 이동 등을 생각한다면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다.
Il-62가 등장하자 국제 노선에서 빠져 장거리 국내선으로 돌려졌다. 그러나 이,착륙 활주거리가 길어(이륙거리 : 2500m/ 착륙거리 : 1400m) 소규모 국내 공항에 접근이 곤란하는 등 운용이 여의치 않아 결국 1975년 아에로플로트에서 퇴역한다. 민간 여객기 치곤 상당히 짧은 14년간 운용되면서 1만 4천 시간의 비행을 기록했다. 아에로플로트 퇴역 후 소련군에서 운용하다 1991년 완전히 퇴역했다.
5. 제원
승무원 | 5명 |
탑승객 | 120~220명 |
화물용적 | 15톤(최대 30톤) |
전장 | 54.1m |
전폭 | 51.1m |
높이 | 15.44m |
익면적 | 311.1m² |
공허중량 | 91~93톤 |
만재중량 | 131톤 |
최대이륙중량(MTOW) | 175톤 |
엔진 | 쿠즈네초프 NV-12MV 터보프롭 4기, 기당 11,000kW |
생산대수 | 32기 |
최고속도 | 870km/h |
순항속도 | 770km/h |
최고 항속거리 | 12,000km |
최고상승한도 | 12,000m |
익면하중 | 421kg/m² |
추중비 | 168W/kg |
6. 세계 기록
7. 사고
8. 기타
Tu-114는 당시로써는 시끄러운 걸 제외하면, 상당한 명품이라서, 창문을 제거하고, 공중급유 프로브 등 군용장비를 설치한 후, 위에 레이더 접시를 올린 Tu-126 이라는 조기경보기 파생형이 존재한다. 당연히 사용했던 군은 소련 공군이며, 12기정도가 생산되었다. 의외로 미국에도 비슷한 녀석이 존재했는데, 바로 록히드 컨스텔레이션 시리즈의 군용 파생형중 하나인 C-121에 고정형 탐색레이더를 올린 EC-121 워닝 스타다. 다만 이쪽은 232기가 생산되었다.9. 관련 문서
10. 참고 링크
[1] 후에 등장하는 보잉 707보다 탑승객이 많다.[2] 퇴역할 때까지 사고가 딱 한번 났는데 그나마 악천후로 인한 지상충돌 이륙실패이다.[3] 특히 이중반전식 프로펠러는 구동계가 복잡하여 정비요소가 많이 있다.[4] 112 데시벨을 기록했다고 한다... 조용하다고 광고하는 터보프롭 여객기가!!![5] 쿠즈네초프 NK-12MV 터보프롭 4기로, 엔진 1기당 약 1만 5천 마력이라는 전대미문의 파워를 자랑한다. 참고로 C-130이 장비하는 롤스로이스 T56 터보프롭이 1기당 약 4천 5백 마력을 낸다.[6] 세계최초의 제트여객기인 DH-106 코멧의 최대속도가 846km/h[7] 흐루쇼프가 미국 방문할 때의 사진은 아니지만 비슷한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해결법은 사다리를 추가로 가져와서 덧댄 것은 아니고 Tu-114 자체에 내장된 비상용 사다리를 펼친 것이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아래 스텝은 아에로플로트의 사다리로 사진처럼 소련 내에서도 새로 개발된 전용 스텝카가 아닌 기존 스텝카나 사다리 시설로는 출입구까지 닿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저렇게 비상용 사다리를 요긴하게 썼다.[8] 가장 큰 터보프롭 항공기는 An-22이다.[9] 원형인 Tu-95도 당연히 후퇴익이 적용되어있지만 폭격기이므로 논외.[10] 실제로 현역 운행 당시 비행 중 상당히 시끄러운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애초부터 이중반전 로터를 4개나 얹어놨으니 얼마나 시끄러울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