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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4 04:12:51

상륙장갑차

장갑차의 분류
용도별 분류
병력수송장갑차 · 보병전투차 · 정찰 장갑차 · 상륙장갑차 · 공수장갑차 · 소형 전술차량 · MRAP · 대형 전술차량 · 중장갑차 · 전차지원전투차 · 장갑구급차
구동 방식에 따른 분류
차륜형 장갑차 · 궤도형 장갑차 · 반궤도 장갑차 (하프트랙)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USMarines_AAV_Iraq_apr_2004_116_hires.jpg
미 해병대의 상륙장갑차 AAV-7A1 엠트랙

1. 개요2. 역사
2.1. 탄생 배경2.2. 초기2.3. 발전
3. 목록
3.1. 미국3.2. 러시아3.3. 대한민국3.4. 중국3.5. 일본3.6. 튀르키예

1. 개요

상륙작전시 사용할 수 있는 수륙양용 장갑차. 해병대를 비롯하여 각종 현대 상륙작전의 핵심이 된다.

2. 역사

2.1. 탄생 배경

초기 상륙작전은 장병들이 수송선에서 밧줄사다리를 걸고 보트로 옮겨타 해안으로 저어가서 물에 내려, 수십 kg이 넘는 군장을 짊어지고 거기서부터 걸어올라가는 것이다. 옮겨타는 데 시간이 걸리고 내린 곳부터 한참이 뻘밭인 데다 방어 측은 썰물 해안선 너머에까지 말뚝과 폭탄을 비롯한 방어설비를 갖춰놓았으며 중장비를 올리기는 더욱 어렵다는 심각한 상태가 된다.

이 때문에 우선 상륙정이 등장하였다. 이는 평평한 바닥에 낮은 건현, 전면으로 열려서 다리가 되는 출입문이 달린 상륙장비로, 해안가의 모래사장으로 최대한 올라가 출입 도어를 열고 장병들을 내릴 수 있었지만... 출입문이 열리는 순간 도살장이 된다. 위가 열려 있기에 공중에서 폭발하는 포탄이나 파편에 대한 방호가 없었고 어차피 측면도 방탄이 아니라서 상륙하는 인원과 승조원의 피해도 컸다. LST급이 동원되면 전차까지 올려놓을 수 있지만 그렇게 많지가 않다.

상륙정의 이런 단점을 보완해서 등장한 것이 바로 수륙양용 상륙 장갑차이다. 장갑차가 직접 물 위를 헤엄쳐 땅으로 올라가 최대한 병력을 보호하며 전진한 뒤에야 후방의 출입문을 열고 병력을 내려놓으므로, 상륙인원의 초반 생존 확률을 월등히 높일 수 있었다.

2.2. 초기

사실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도 시험적인 상륙장갑차 LVT-1 엘리게이터가 존재했지만, 성능이 어떨지 몰라서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는 소수만 투입되었다.

그에 반해서 태평양 전선에선 꽤나 잘 써먹었다. 특히 데뷔전인 타라와 전투부터 시작해서 환초가 많은 지역에서 탁월한 수송능력을 보여주었다. 일례로 타라와를 방어하던 일본군 장교가 포로로 잡힌 뒤 산호초를 건너오는 LVT-1 엘리게이터 상륙장갑차를 보고 무척 놀랐다고 진술할 정도였다. 이는 일본군의 상륙 방어계획이 수심이 얕은 산호초 지대에는 상륙주정이 들어올 수 없으니 상륙부대가 멀리 산호초에서부터 걸어서 접근한다는 것을 전제로 짜여있었기 때문이다. 타라와 방어부대는 상륙주정에서 내린 미 해병대가 완전히 노출된 상태로, 심하게는 가슴까지 차오르는 바닷물을 헤치고 느릿느릿 전진해오면, 산호초부터 해변까지의 살상지대에 장애물과 전 화력을 집중해 초전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다는 그럴싸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문제는 이 계획이 상륙장갑차한테 쳐맞기 전까지만 그럴싸했다는 것이다. 타라와 상륙이 시작되자 난생 처음보는 LVT-1 상륙장갑차들이 빠른 속도와 장갑방어력으로 산호초 살상지대를 큰 손실 없이 지나쳐 바로 해변에 해병대원들을 무더기로 쏟아놓았고, 일본 측 방어계획은 시작부터 완전히 헝클어져 버렸다. 물론 타라와 전투에서 상륙장갑차의 이런 초반 맹활약에도 해병대와 상륙장갑차 부대 모두가 해변에서 무시무시한 손실을 입었지만, 상륙장갑차가 없었더라면 아예 작전 자체가 성공하지 못했으리라는 것이 해군과 해병대의 공통된 결론이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USMC-M-Tarawa-p36.jpg

타라와 전투에서 유기된 미군 LVT-1. 전투 종료 직후에 촬영된 모습이다.

이러한 활약으로 세계대전의 말기에는 LVT-2, LVT-3, LVT-4 까지 발전하여 후방 램프도어나 자체 방어무장을 장착하고 화력지원용 로켓발사기 등을 장착하여 상륙전뿐 아니라 상륙 후에도 해병대의 작전을 지원하게 되었지만 물에 떠야 하는 장갑차인 만큼 어느 정도 방어력을 희생해야 했기 때문에 태생적인 방어력 부족은 어쩔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전에 많이 사용하고 투입된 만큼 많은 손실을 입기도 했다. 후에 상륙장갑차는 인천 상륙 작전에도 투입되었다.

과거 사용되던 상륙용 주정을 대체한다는 목적 때문인지 일반적인 APC보다 크고 널찍한 데다 탑승인원도 많다. 상륙장갑차로서는 최대의 크기를 자랑했던 LVT-5는 기본 보병 탑승인원이 22명이고, 낑겨 넣으면 47명 이상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베트남전에서 한국 해병대는 LVT-5에 1개 소대를 넣어 작전에 투입한 적도 있다.

2.3.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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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에서는 더 발전된 LVT-5가 활약 했다. 하지만 여전히 빈약한 장갑과 구조적 취약성으로 지뢰를 밟을 경우 탑승인원 전원이 날아가버릴 위험성 때문에 장갑차 위에 모래주머니로 진지를 만들고 그 위에 해병들이 떼로 올라타는 식으로 사용하곤 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USMarines_AAV_Iraq_apr_2004_116_hires.jpg

걸프전쟁에는 그 유명한 AAV-7A1이 등장을 하게 된다.

1964년 미합중국 해병대는 신형수륙양용장갑차량의 개발을 각 메이커에 요청하였고, 그 중에 FNC社의 안이 채용되었다. 1966년까지 시험개발과 제작이 이루어 졌으며, 그렇게 해서 LVTP-7(Landing Vehicle, Tracked, Personnel, Model 7)이 탄생하였고, 이것을 1970년 6월에 정식 채용하기에 이르렀다. 생산 및 설비가 시작되어 1974년에 발주된 LVTP-7의 생산이 완료되었다.

3. 목록

3.1. 미국

3.2. 러시아

3.3. 대한민국

3.4. 중국

3.5. 일본

3.6. 튀르키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