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水甲山
1. 개요
삼수갑산(三水甲山) 내 왜 왔노 삼수갑산이 어디뇨
오고 나니 기험(奇險)타 아하 물도 많고 산 첩첩(疊疊)이라 아하하
내 고향을 도로 가자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삼수갑산(三水甲山) 멀더라 아하 촉도지난(蜀道之難)이 예로구나 아하하
삼수갑산(三水甲山)이 어디뇨. 내가 오고 내 못 가네
불귀(不歸)로다 내 고향 아하 새가 되면 떠가리라 아하하
님 계신 곳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내 못 가네
오다 가다 야속타 아하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아하하
내 고향을 가고지고 오호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불귀(不歸)로다 내 몸이야 아하 삼수갑산 못 벗어난다 아하하
김소월, <차안서선생 삼수갑산운(次岸曙先生 三水甲山韻)>
오고 나니 기험(奇險)타 아하 물도 많고 산 첩첩(疊疊)이라 아하하
내 고향을 도로 가자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삼수갑산(三水甲山) 멀더라 아하 촉도지난(蜀道之難)이 예로구나 아하하
삼수갑산(三水甲山)이 어디뇨. 내가 오고 내 못 가네
불귀(不歸)로다 내 고향 아하 새가 되면 떠가리라 아하하
님 계신 곳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내 못 가네
오다 가다 야속타 아하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아하하
내 고향을 가고지고 오호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불귀(不歸)로다 내 몸이야 아하 삼수갑산 못 벗어난다 아하하
김소월, <차안서선생 삼수갑산운(次岸曙先生 三水甲山韻)>
함경남도의 삼수군과 갑산군을 통칭하는 용어다. 그러나 관용어로 사람의 발길이 닿기 힘든 대단히 험한 벽지(僻地), 몹시 어려운 지경이나 최악상황을 의미한다.
2. 유래 및 파생 표현
조선 초 4군 6진 개척으로 압록강-두만강 이남의 영토를 완전히 확보한 15세기 중엽에 생긴 말이다. 당시 삼수군은 삼수군 영역을 넘어 혜산군 별동면과 장진군 전역, 신흥군 동상면까지 관할하고 있었고, 갑산군은 별동면을 제외한 혜산군 전역과 풍산군 풍산면, 웅이면, 천남면까지 관할하는 지금의 갑산군 영역보다 훨씬 넓은 고을이었다. 장진군, 신흥군, 풍산군, 혜산군 등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무렵에 신설된 행정구역으로 즉 조선시대 대부분의 기간동안 이 2개 고을이 사실상 개마고원 전체를 관할하고 있던 상황이었다.삼수군과 갑산군이 위치한 개마고원은 한반도 최고의 오지(奧地)로 매우 험하고 추운 지역이다. 현대 기준 1월 평균 기온이 갑산은 -22.8℃(삼지연)~-15.0℃(풍산)에, 삼수는 -20.2℃(장진호)~-15.5℃(장진) 또는 -18.2℃(삼수읍내(금수))~-16.4℃(신갈파진)[1]에 달할 정도다. 게다가 조선시대는 전 지구적으로 소빙하기였던 시기이므로 이보다 더욱 추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춥고 험하고 농사에도 부적합하기 때문에 사는 사람도 얼마 없는 오지였기 때문에 유배지로 아주 딱인 지역이라 조선시대 내내 유배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입증하듯 이 지역으로 유배된 인물 중 대다수가 유배가 풀릴 때까지 살아남지 못 했다. 다만 윤선도의 경우, 70살이 넘은 나이로 삼수군에 위리안치되었는데, 놀랍게도 살아 돌아왔다. 게다가 세상을 떠날 즈음인 1671년에는 경신대기근까지 한창인 상황이었는데, 그 상황에서도 유유자적한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어떤 의미로 대단한 사람이다.
여기에서 나온 속담이 있는데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먹고나 보자." 이건 '금강산도 식후경' 처럼 경치가 아름답다는 의미가 아니고 거꾸로의 의미다. 귀양을 갈 정도로 신세를 망치는 한이 있어도 일단은 먹고 보자는,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라는 말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는 간도로 이주한 등장인물들이 잡담을 나누다 누가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운운하자 "여기가 어딘지 모르냐"며 웃음거리가 되는 장면이 있을 정도로 오지 취급이었다.
3. 삼수갑산 지역의 현재
북한 치하에서 '삼수갑산'이라는 관용어가 나온 시대의 구 삼수군이 량강도 삼수군·김정숙군(신파군), 함경남도 장진군과 자강도 랑림군(일부)으로 쪼개졌고, 구 갑산군이 량강도 혜산시·삼지연시·운흥군·보천군·풍서군·김형권군 (구 풍산군) 일부 및 함경남도 허천군 일부·부전군(일부)으로 쪼개졌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이북5도위원회 기준으로 삼수가 삼수, 장진으로, 갑산이 갑산, 풍산, 혜산으로 나뉘여 모두 함경남도에 속한다고 여긴다.북측은 량강도와 함경남북도를 따로 보는 경향도 있으나, 조선 8도의 행정구역 체계를 따를 때도 함경도의 지역으로 여겨졌다. 1990년대 이전의 남측 문헌은 이곳을 함경남도의 지역으로 소개하는 경우도 있는데, 과거에는 교과서에 북측 행정구역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 치하에서 북부내륙선이 생기는 등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량강도 자체가 여전히 오지다. 고속도로를 건설할 계획 자체는 꿈도 못 꾸고, 평의선이나 평라선 같은 주요 철도도 전혀 없다. 량강도가 탈북민이 함경북도와 더불어 워낙 많은 지역이기에 이곳에 대한 이야기가 남한에서 잘 알려져 있어 덜 그런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리고, 국경지대가 꽤 잘 산다는 것도 고난의 행군 무렵 이야기다. 밀수 단속이 심해서 2010년대 후반에 탈북한 탈북민 스스로 "도의 중심도시 중 혜산시가 가장 못 산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삼수군은 그나마 읍내에서 지역의 중견도시인 혜산시 시내로 가기 쉽지만, 갑산군은 삼수호라는 큰 호수가 시내쪽의 교통을 방해하고 철도조차 없어 여전히 오지나 다름없는 곳이다. 그나마 혜산시조차도 평안도 지역의 중견도시보다 인구가 적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삼지연시는 북한에서 밀어주는 신도시가 되었으나 북한에서 가장 혹독하게 추운 도시가 되었다.
북한에서도 김일성 때부터 삼수갑산은 유배지로 애용되었다는 보도도 있다. # 대표적으로 한국에서 유명한 시인 백석은 삼수군으로 추방당했다.
4. 여담
이 2곳만이 단독으로 갑산부였던 적이 있다.대한민국에서는 '산'수갑산으로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하다. 산수갑산으로 구글에 검색해보면 오히려 삼수갑산보다 검색결과 숫자가 더 많고, 식당 이름으로 사용하는 예부터 해서 굉장히 많은 검색결과를 찾아볼 수 있다. 아무래도 남북분단으로 북한에 넘어간 삼수군이란 지명이 남한 사람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것이 주 원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