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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한의 지도. |
1. 개요
弁韓변한(弁韓)은 고대 한반도 남부에 위치한 삼한 중 지금의 전라도 남쪽과 동쪽 및 경상도의 남쪽과 서쪽 지역으로, 남해에 접했으며 서쪽은 마한, 동쪽은 진한에 접해 있었다. 12개의 부족 국가 연맹체로, 후대에는 가야로 칭해졌다. 다른 이름인 '변진'(弁辰)으로 표기되는 경우도 있다.
사실 가야는 좌•우에 위치한 백제나 신라와 달리 멸망하는 순간까지 중앙집권형 고대국가로 변화하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소국의 모임에 불과했기 때문에, 몇 백년의 기간 동안 바뀌는 부분은 있지만 큰 틀에서는 변한 = 가야라고 볼 수 있다.[1] 이는 변한-가야 내에서 마한 내 백제국, 진한 내 사로국과 같이 압도적인 강자가 역사 기간 내내 등장하지 못하고, 소국들 사이에 힘의 균형이 장기간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금관국이 변한~전기 가야 시대에 특출난 강자였으나 중앙집권형 국가로 꽃피기도 전에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에게 짓눌려 버리고 말았다. 후기 가야 시대의 강자였던 반파국 역시 금관국, 안라국 등 주변 세력을 압도하고, 변한 지역을 일원적인 정치체로 통합하는데 실패했다.
당대 기록인《삼국지》<위지> - 동이전 -에 따르면, 현대에는 같은 경상도로 묶인 진한 지역과는 언어, 법속, 의식주가 똑같았고, 단 제사 풍속만 달랐다고 한다.[2][3] 애초에 '진한과 변한 사람들은 뒤섞여 산다(雜居)'고 표현하고 있었으므로 경계 자체가 뚜렷하지 않았다. 고고학적으로도 진한과 변한이 구분되는 부분은 그다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무덤만 해도 진한과 변한이 거의 공통 양식으로 규정지을 수 있을 만큼 비슷하다가 서기 4세기 후반쯤 가야 가야의 석곽묘, 신라의 적석목곽묘로 구분되기 시작한다. 얼핏 보면 낙동강이 변한과 진한의 경계선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세세하게 따지면 부산 지역 같이 낙동강 동쪽이 변한권이라든가, 반대로 낙동강 서쪽이 진한권인 경우도 있었다. 대체로 낙동강 상류는 진한, 중류와 하류는 변한이었다.
이상한 점이 있다면 서진 사람인 진수의《삼국지》보다 후대에 유송 사람 범엽이 쓴《후한서》<동이열전>에서는 《삼국지》와 다르게 진한과 변한의 언어와 풍속이 다르다고 기록한 것이다. 참고로《후한서》가《삼국지》보다 더 나중에 쓰인 책인데, 무슨 영향으로 내용이 바뀌었는지는 불명이다.
변한 지역이 그대로 이어진 가야도 그렇지만, 철광석 생산으로 유명하여 마한, 한사군, 동예, 왜 등이 모두 변한의 철을 수입해갔다. 당시 변한에서는 덩이쇠가 화폐처럼 사용되었다고 한다.
위 기록과 같이 변한은 해상무역에서 큰 성과를 올렸는데, 삼천포 앞바다 연안은 변한이 중국(한나라), 일본(야요이 시대)과 뱃길 무역을 하기 위한 국제 항로였고, 지금은 창선삼천포대교가 놓인 작은 섬 늑도는 변한의 국제무역지구[4]로 기능했다. 지금 보면 조그마한 늑도가 당시에 국제무역항으로 크게 번성했던 이유는 삼천포 연안의 창선도와 늑도 사이의 수로가 전라남도 진도군 연안에 위치한 울돌목과 함께 전국에서 손꼽히는 물살이 거친 해역이라서 삼천포 연안을 지나는 무역선들이 거센 조류를 피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잔잔한 늑도 앞의 바다로 피해 정박했기 때문이었다. 늑도의 유적이 특이한 점은 늑도를 직접 지배하는 뚜렷한 토착 세력의 존재 없이, 배를 타고 온 외국 상인들의 집결지 역할 위주였다는 것이다.
변한에는 여러 나라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나라는 구야(狗邪)국, 즉 지금의 김해시에 위치한 금관국의 전신이었다. 구야국은 한반도 서해안과 낙동강 수로, 일본으로 가는 대한해협 항로 3개 선의 교차점에 있어 고대 교역의 중심지로 번영했고, 중국측 사서에까지 그 사실이 남았다.
그 외에 안야(安邪)국[5]이 꼽힌다.《삼국지》- 동이전 -에 기록된 '우호(優呼)'를, 큰 세력을 가진 일부 군장을 특별히 우대하는 칭호로 해석하는 견해에 따르면 구야국과 안야국의 신지에게 우호가 주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안야국은 변한 지역에서 돋보이는 위상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이후 가야 시기까지 주변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선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단 가야 후기의 맹주격이었던 대가야가 있었던 고령군에서는 아직 변한 시대까지는 그다지 주변 지역보다 특출난 모습을 고고학적으로 찾아보기 힘들었다.
특히 구야국은《삼국지》<위지> - 왜인전 -에서도 왜국으로 가는 길을 설명할 때 기점으로 소개되는 등 변한시대의 교통 요지였던 것을 엿볼 수 있으며, 위에 나온 활발한 철무역에 관해서도 특히 무게가 많이 나가는 철재의 운반은 낙동강 등 수운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상식적인데, 낙동강 최하류 입•출구에서 대부분의 변한 상류 지역 수운을 제어할 수 있는 구야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큰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6]
라는 기록이 존재하지만 당시 신라는 경주 지역 이외로 세력을 뻗지 못했고, 신라의 가야 지역 공략은 한참 후대인 서기 6세기 법흥왕 - 진흥왕 시기에 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신라가 혁거세 거서간 재위 당시의 변한 지역을 직접 지배했을 가능성은 물론 상국으로 군림해 간접 지배했을 가능성조차 없다.[7] 백제 온조왕 시기(서기 1세기)의 마한 정벌 기록이 후대의 사건을 앞당긴 것으로 평가받는 것과 비슷하다.
2. 변한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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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지도는 천관우설과 정인보설을 적절히 혼합한 지도로, 현대까지 그나마 가장 정확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 |||||||
| <colbgcolor=#4374d9><colcolor=#ffffff> (1) | 미리미동국(彌離彌凍國) | <colbgcolor=#4374d9><colcolor=#ffffff> (2) | 접도국(接塗國) | <colbgcolor=#4374d9><colcolor=#ffffff> (3) |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 | <colbgcolor=#4374d9><colcolor=#ffffff> (4) | 고순시국(古淳是國) |
| (5) | 반로국(半路國) | (6) | 악노국(樂奴國) | (7) | 미오야마국(彌烏邪馬國) | (8) | 감로국(甘路國) |
| (9) | 구야국(狗邪國) | (10) | 주조마국(走漕馬國) | (11) | 안야국(安邪國) | (12) | 독로국(瀆盧國) |
변한의 구성국 목록 및 추정되는 위치이며, 변한의 역사는 아직까지 추측뿐이다. 이병도설과 천관우설, 정인보설, 김태식설 등이 있다.
그나마 비정되는 정설이 있는 케이스는 금관국과 안라국으로 이어질 것이 거의 분명한 구야국과 안야국, 그리고 밀양과 고성으로 비정되는 미리미동국과 고자미동국 정도다. 나머지는 누가 무슨 주장을 해도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아래 표에서는 보통 비정되는 지역, 그리고 이설 순으로 소개한다.
| 국가명 | 현재 추정 위치 | 소개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감로국(甘路國)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 이 지역은《삼국사기》에서 진한으로 표기되고, 일찌감치 신라 영역에 편입되었다. | ||
| 거칠산국(居漆山國) | 부산광역시 동래구 일대 | ||||
| 걸손국(乞湌國) |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일대 | ||||
| 고순시국(古淳是國) | 경상남도 진주시 일대. 천관우는 경상남도 사천시 일대로 비정했다. | ||||
|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 | 경상남도 고성군 일대 | 훗날 고자국(소가야)으로 발전했다. | |||
| 구야국(狗邪國) | 경상남도 김해시 | 훗날 금관국(금관가야)으로 발전했다. | |||
| 군미국(軍彌國) | 경상남도 사천시 곤양면과 곤명면 일대 | ||||
| 다라국(多羅國) |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일대 | ||||
| 독로국(瀆盧國) | 경상남도 거제시 일대 | '왜와 접한다'라고 위치가 암시되어 있다. | |||
| 미리미동국(彌離彌凍國) | 경상남도 밀양시 일대 | ||||
| 미오야마국(彌烏邪馬國) | 경상남도 창원시 일대. 이병도는 고령군으로 비정했지만 이 지역은 반파국의 땅이다. | 이후 골포국으로 발전했다. | |||
| 반로국(半路國) | 경상북도 고령군 일대 | 훗날 대가야로 발전했다. 반로국(半路國)이라는 표기는 반파국(伴跛國)의 오기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 |||
| 벽진국(樂奴國) | 경상북도 성주군 | 훗날 성산가야로 불렸다. | |||
| 사이기국(斯二岐國) | 경상남도 합천군 저포리 | ||||
| 산반하국(散半下國) |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유곡면 | ||||
| 악노국(樂奴國)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 ||||
| 안야국(安邪國) | 경상남도 함안군 일대 | 훗날 안라국(아라가야)으로 발전했다. | |||
| 임례국(稔禮國) |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 ||||
| 자타국(子他國) | 경상남도 진주시 | ||||
| 접도국(接塗國)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 훗날 칠포국으로 발전했다. | |||
| 주조마국(走漕馬國) | 경상남도 함양군. | 가야 후기의 나라들 중 졸마국과 같은 나라로 비정하기도 한다. | |||
| 탁기탄(啄己呑)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 ||||
| 탁순국(接塗國)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 }}}}}}}}} | |||
3. 관련 기록
| 위서(魏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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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욱 ,정효, · 곽가 · 동소 유엽 ,유도, · 장제 · 유방 ,손자, | 유복 ,유정, · 사마랑 · 양습 ,왕사, 장기 ,유초 장집, · 온회 ,맹건, · 가규 ,가충, | 임준 · 소칙 · 두기(畿) ,두서 악상, 정혼 ,정태, · 창자 ,안비 영호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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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color=#fff> 19권 「임성진소왕전(任城陳蕭王傳)」 | 20권 「무문세왕공전(武文世王公傳)」 | ||||
| 조창 · 조식 ,양수 정의 정이, · 조웅 | 조앙 · 조삭 · 조충 ·조거 · 조우 ·조림(林) · 조곤 · 조현 ·조간 ·조표 ·조정 ·조림(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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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찬 ,진림 완우 유정, · 위기 · 유이 · 유소 · 부하 | 환계 · 진군 ,진태, · 진교 · 서선 · 위진 · 노육 | 화흡 · 상림 ,시묘, · 양준 ·두습 · 조엄 · 배잠 ,배수, | |||
| <rowcolor=#fff> 24권 「한최고손왕전(韓崔高孫王傳)」 | 25권 「신비양부고당륭전(辛毗楊阜高堂隆傳)」 | 26권 「만전견곽전(滿田牽郭傳)」 | |||
| 한기 · 최림 · 고유 · 손례 · 왕관 | 신비 ,신헌영, · 양부 ,왕이, · 고당륭 ,잔잠, | 만총 · 전예 · 견초 · 곽회 | |||
| <rowcolor=#fff> 27권 「서호이왕전(徐胡二王傳)」 | 28권 「왕관구제갈등종전(王毌丘諸葛鄧鍾傳)」 | ||||
| 서막 · 호질 ,호위, · 왕창 · 왕기 | 왕릉 ,선고 영호우, · 관구검 ,문흠, · 제갈탄 ,당자, · 등애 ,주태, · 종회 ,장창포 왕필, | ||||
| <rowcolor=#fff> 29권 「방기전(方技傳)」 | |||||
| 화타 · 두기(夔) ,마균, · 주건평 · 주선 · 관로 | |||||
| <rowcolor=#fff> 30권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 |||||
| 오환 · 선비 ,가비능, · 부여 ·고구려 · 왜 · 읍루 · 예맥 · 동옥저 · 마한 · 진한 · 변한 | |||||
| 관련 틀: |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08b><tablebgcolor=#00008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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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韓)은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마한(馬韓), 둘째는 진한(辰韓), 셋째는 변진(弁辰)이다. (중략)
변진(弁辰) 사람들은 진한(辰韓) 사람들과 뒤섞여 사는데, 성곽과 의복은 모두 진한(辰韓)과 같으나 언어와 풍속은 다른 점이 있다.
변진(弁辰) 사람들은 진한(辰韓) 사람들과 뒤섞여 사는데, 성곽과 의복은 모두 진한(辰韓)과 같으나 언어와 풍속은 다른 점이 있다.
弁辰與辰韓雜居, 城郭衣服皆同, 言語風俗有異. 其人形皆長大, 美髮, 衣服絜清. 而刑法嚴峻. 其國近倭, 故頗有文身者.
변진(弁辰)은 진한과 잡거하는데 성곽(城郭), 의복(衣服)이 모두 같고 언어와 풍속에 다른 점이 있다. 그 사람들의 형체가 모두 장대(長大)하며 머릿결이 곱고 의복이 청결한데 형법은 엄준(嚴峻)하다. 그 나라는 왜(倭)와 가까우므로, 문신한 자가 약간 있다.(기국근왜, 고파유문신자. 其國近倭, 故頗有文身者.)[8]
변진(弁辰)은 진한과 잡거하는데 성곽(城郭), 의복(衣服)이 모두 같고 언어와 풍속에 다른 점이 있다. 그 사람들의 형체가 모두 장대(長大)하며 머릿결이 곱고 의복이 청결한데 형법은 엄준(嚴峻)하다. 그 나라는 왜(倭)와 가까우므로, 문신한 자가 약간 있다.(기국근왜, 고파유문신자. 其國近倭, 故頗有文身者.)[8]
3.2. 《삼국지》<위지> - 오환선비동이전 -
弁辰亦十二國, 又有諸小別邑,各有渠帥, 大者名臣智, 其次有險側, 次有樊濊, 次有殺奚, 次有邑借。有已國, 不斯國, 弁辰彌離彌凍國, 弁辰接塗國, 勤耆國, 難彌離彌凍國, 弁辰古資彌凍國, 弁辰古淳是國, 奚國, 弁辰半路國, 弁辰樂奴國, 軍彌國(弁軍彌國), 弁辰彌烏邪馬國, 如湛國, 弁辰甘路國, 戶路國, 州鮮國, 馬延國, 弁辰狗邪國, 弁辰走漕馬國、弁辰安邪國, 馬延國, 弁辰瀆盧國, 斯盧國, 優由國。弁,辰韓合二十四國,大國四五千家, 小國六七百家,總四五萬戶。其十二國屬辰王。辰王常用馬韓人作之, 世世相繼。辰王不得自立爲王。【魏略曰 明其爲流移之人 故爲馬韓所制。】
변진(弁辰 = 변한) 또한 12국이다. 여러 작은 별읍(別邑)이 있고, 각각 거수(渠帥)가 존재하는데 큰 것은 신지(臣智)라 하고, 그 다음은 험측(險側), 그 다음은 번예(樊濊), 그 다음은 살해(殺奚), 그 다음은 읍차(邑借)가 있다.
변한과 진한은 모두 24개국인데 대국은 4,000~5,000가(家), 소국은 600~700가(家)로 총 40,000~50,000호다. 그 12국은 진왕(辰王)에 속한다. 진왕은 항상 마한 사람이 맡아 세세토록 계승한다.
弁辰與辰韓雜居,亦有城郭。衣服居處與辰韓同。言語法俗相似,祠祭鬼神有異,施皆在戶西。其瀆盧國與倭接界。十二國亦有王,其人形皆大。衣服,長髮。亦作廣幅細布。法俗特嚴峻。
변진은 진한과 잡거하고 또한 성곽이 있다. 의복과 거처는 진한과 같다. 언어와 법속이 서로 비슷한데 귀신에 제사 지내는 것은 다른 점이 있고, 부엌을 문의 서쪽에 둔다. (변진) 독로국은 왜와 접한다. 12국에 또한 왕이 있는데 그 사람의 형체가 모두 크다. 의복은 청결하고 머리카락이 길며 또한 광폭세포[9]를 짓는다. 법속이 특히 준엄하다.
변진(弁辰 = 변한) 또한 12국이다. 여러 작은 별읍(別邑)이 있고, 각각 거수(渠帥)가 존재하는데 큰 것은 신지(臣智)라 하고, 그 다음은 험측(險側), 그 다음은 번예(樊濊), 그 다음은 살해(殺奚), 그 다음은 읍차(邑借)가 있다.
변한과 진한은 모두 24개국인데 대국은 4,000~5,000가(家), 소국은 600~700가(家)로 총 40,000~50,000호다. 그 12국은 진왕(辰王)에 속한다. 진왕은 항상 마한 사람이 맡아 세세토록 계승한다.
弁辰與辰韓雜居,亦有城郭。衣服居處與辰韓同。言語法俗相似,祠祭鬼神有異,施皆在戶西。其瀆盧國與倭接界。十二國亦有王,其人形皆大。衣服,長髮。亦作廣幅細布。法俗特嚴峻。
변진은 진한과 잡거하고 또한 성곽이 있다. 의복과 거처는 진한과 같다. 언어와 법속이 서로 비슷한데 귀신에 제사 지내는 것은 다른 점이 있고, 부엌을 문의 서쪽에 둔다. (변진) 독로국은 왜와 접한다. 12국에 또한 왕이 있는데 그 사람의 형체가 모두 크다. 의복은 청결하고 머리카락이 길며 또한 광폭세포[9]를 짓는다. 법속이 특히 준엄하다.
접한다 이 부분을 왜 강조하냐면, 경계를 이루어서 접한다는 의미인데, 이는 한반도에 있는 변한과 일본 본토의 왜로 해석하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로국을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마도와 접하고 있는 거제와 부산 지역으로 비정하는 것이지만, 이걸 기준으로 해도 '접한다'는 표현을 쓰기 좀 뭐한 것이 사실이다. 아래에 있는 《후한서 》<동이열전>의 '近倭'(근왜)라는 표현과 비교해보자.
천관우(千寬宇)는 이에 대하여, ‘접(接)’에는 간단한 사서[10]에도 나와 있듯이 ‘연속(連續)’의 뜻과 함께 ‘근(近)’의 뜻이 있어, 위의 경우 “독로국(瀆盧國)은 왜(倭)와 지경이 가깝다”라는 뜻으로 봐야 한다고 했으며, “왜인(倭人)은 대해중(大海中)에 있다”라는 것이 - 왜인전(倭人傳) - 의 대전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11]
한편 김정학(金廷鶴)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끝이 났고, 남쪽은 왜와 접한다.”
에 대해 “남쪽에 왜(倭)와 접(接)한다”고 했는데, 진수(陳壽)가《삼국지》의 자료로 삼은《위략》(魏略)에는 이 문구(文句)가 없다. 즉《한원》(翰苑)에 적혀 있는《위략》(魏略)의 일문(逸文)에는 “한(韓)은 대방(帶方)의 남쪽에 있고, 동•서(東西)는 바다로 끝이 났다.”
고 되어 있다. 진수는 실제로 한반도 남부의 삼한 지방을 여행한 일이 없으며,《위략》(魏略)을 자료로 하여《삼국지》의 문장을 엮었기 때문에, 한의 남쪽에 왜(倭)가 있다는 지식에서, “남쪽은 왜(倭)와 접(接)한다”라고 문장을 엮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실제로 한(韓)과 왜(倭)가 땅을 접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없다.진왕은 스스로 즉위하지 못한다.[12]
이저국, 불사국, 변진미리미동국, 변진접도국, 근기국, 난미리미동국, 변진고자미동국, 변진고순시국, 염해국, 변진반로국, 변(진)낙노국, 군미국, 변(진?)군미국, 변진미오사마국, 여담국, 변진감로국, 호로국, 주선국, 마연국, 변진구야국, 변진주조마국, 변진안야국, 마연국, 변진독로국, 사로국, 우유국이 있다.
26개국이지만 마연국이 중복이고, 군미국과 변군미국을 동일한 국가로 본다면 24개국이다.
4. 역사귀속과 계승인식
4.1. 기원
新舊唐書 云 卞韓苗裔在樂浪之地. 後漢書 云 卞韓在南 馬韓在西 辰韓在東
《신당서》와《구당서》에서 이르기를 변한은 낙랑의 후예로 낙랑 땅에 있다.《후한서》에 이르기를 변한은 남쪽에 있고, 마한은 서쪽에 있으며, 진한은 동쪽에 있다.
《삼국유사》<변한백제> 中
《신당서》와《구당서》에서 이르기를 변한은 낙랑의 후예로 낙랑 땅에 있다.《후한서》에 이르기를 변한은 남쪽에 있고, 마한은 서쪽에 있으며, 진한은 동쪽에 있다.
《삼국유사》<변한백제> 中
본래 삼조선(三朝鮮)의 구도(舊都)다. 당요(唐堯) 무진년에 신인(神人)이 박달나무 아래에 내려오니, 나라 사람들이 (그를) 세워 임금을 삼아 평양에 도읍하고, 이름을 단군(檀君)이라고 했으니, 이것이 전조선(前朝鮮)이요,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이기고 기자(箕子)를 이 땅에 봉했으니, 이것이 후조선(後朝鮮)이며, 그의 41대 손(孫) 준(準) 때에 이르러, 연(燕)나라 사람 위만(衛滿)이 망명(亡命)하여 무리 1,000여 명을 모아 가지고 와서 준(準)의 땅을 빼앗아 왕검성(王儉城)[13]에 도읍하니, 이것이 위만조선(衛滿朝鮮)이었다. 그 손자 우거(右渠)가 〈한나라의〉 조명(詔命)을 잘 받들지 아니하매, 한나라 무제(武帝) 원봉(元封) 2년에 장수를 보내어 이를 쳐서, 진번(眞蕃)·임둔(臨屯)·낙랑(樂浪)·현도(玄菟)의 4군(郡)으로 정하여 유주(幽州)에 예속시켰다. 반고(班固)의 《전한서》(前漢書)에 이르기를, “현토와 낙랑은 본래 기자(箕子)를 봉한 곳인데, 소제(昭帝) 시원(始元) 원년에 임둔·낙랑으로써 동부도호(東府都護)를 설치했다.”라고 했으며,《당서》(唐書)에 이르기를, “변한(卞韓)은 낙랑 땅에 있다.”고 했다.
《세종실록》<지리지> - 평안도 평양부 -
《구당서》와《신당서》에서는 변한이 낙랑으로부터 기원했다고 봤다. 이 “낙랑”은 한사군의 낙랑군이 아니라 “낙랑”이라는 별호를 가진 통일신라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14] 당시 중국(당나라)에서는 옛 삼한의 기원 및 역사 대신 삼국=삼한이라는 식으로 대체/변형된 개념을 들어 이를 차용한 것으로 보이며, 계승국이 분명한 마한과 진한을 제외한 변한을 고구려에 대응시키곤 했다. 연남생의 귀부로 668년 숙적인 고구려를 평정하자 당나라 조정에서 그에게 내린 시호가 '변국공'(卞國公)이었다.《세종실록》<지리지> - 평안도 평양부 -
4.2. 계승
현대에는 기본적으로 변한이 가야로 계승된 것으로 보나, 과거에는 어디로 계승된 것인지 확실하게 알지 못하여 고구려로 계승된다는 주장도 있었고, 백제로 계승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또한 삼한이 '한국사의 국가와 민족'을 통칭하게 되면서 변한은 한국 자체를 부르는 명칭으로도 굳어졌다.최치원이 이르기를 변한은 백제다. (중략) 혹자는 낙랑 땅에서 나와 변한에 나라를 세워 마한 등과 대치한 적이 있었다고 한 것은 온조 이전에 있었던 일로, 도읍이 낙랑의 북쪽에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또한 혹자는 구룡산(九龍山) 역시 변나산(卞那山)으로 불렀다는 이유를 들어, 함부로 고구려를 변한이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마땅히 옛 현인(최치원)의 견해가 옳다고 봐야 한다. 백제 땅에 변산(卞山)이 있었기 때문에 변한이라 한 것이다.
《삼국유사》<변한백제> 中
통일신라 말기의 지식인이었던 최치원은 변한이 백제로 계승된다고 봤다.《삼국유사》<변한백제> 中
高麗位頭大兄理大夫後部軍主高延壽·大兄前部軍主高惠真等, 幷馬韓酋長.
고려 위두대형 이대부 후부군주 고연수, 대형 전부군주 고혜진은 병마한 추장[15]이다.
《전당문》, 태종 황제, 645년
고려 위두대형 이대부 후부군주 고연수, 대형 전부군주 고혜진은 병마한 추장[15]이다.
《전당문》, 태종 황제, 645년
당나라로 도망쳐 고종에게 항복한 연남생은 변국공(卞國公)의 작위를 받았다. 봉국(封國)이 된 변국(卞國)은 바로 이 문서의 변한인데, 당시엔 삼한이 곧 고구려, 신라, 백제였기에 연남생에게 변한을 봉한 것이다. 연남생의 아들 연헌성, 손자 연현은까지 3대가 변국공의 작위를 세습했다.
고려시대 중반 최대의 권신이자 외척이었던 이자겸의 아내 최씨와 우봉 최씨 세습 무신정권의 제2대 수장이었던 최우의 아내 정씨는 '변한국대부인'(弁韓國大夫人)이라는 작위를 받았다.
고려 왕조의 제11대 왕이자 최전성기의 명군이었던 문종 인효대왕의 아들 왕음의 작위는 변한후(卞韓侯), 즉 변한국의 후작이었다.
훗날 마지막 왕으로 옹립된 공양왕은 즉위 후, 자신의 고조부와 고조모를 각각 변한국 영헌공(卞韓國 英憲公), 변한국 순안비(卞韓國 順安妃)로 추존했다.
조선 왕조 초기 성녕대군의 사후 봉국도 이 문서의 변한이었다. 원래 조선은 성리학적 명분에 따른 제후국이라 전대인 고려 때처럼 왕족에게 국가를 봉하고 오등작을 줄 수 없었지만, 철혈군주였던 태종 이방원은 그런 것에 굴하지 않는 왕이었다.
5. 외부 링크
6. 같이보기
[1] 변한과 가야가 연결되는 것인지, 구별되는 것인지, 구분한다면 어느 시점으로 구분할지는 학계에서 의견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학계쪽 용어로는 가야사의 시작이 변한(=가야 전기)이고, 서기 5세기부터 가야 후기라는 전기론(前期論), 변한이 가야의 모태지만 둘은 구분해야 하며 서기 3세기까진 변한, 4세기 이후는 가야라는 시각을 전사론(前史論)이라고 한다. 전기나 전사나 실질적으로 동일한 개념이라고 봐서 원사론(原史論)이라고 정의해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대체로는 서기 3세기 말에서 4세기 초쯤을 변한과 가야의 구분시점이라고 보는 편이다. 그 이전까지는 지역별로 특색있는 유물이 나타나지 않고, 변한과 진한이 제사를 빼곤 비슷했다는《삼국지》의 기록과 일치하기 때문이다.[2] 주보돈은《삼국지》기사에서 진한인의 경우 이주민이라는 자의식이 있다고 나오는데 반면, 변한인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비록 진한과 변한 모두 토착인이 다수긴 하지만 지배집단이 외래계인 진한과 토착인인 변한으로 나눠진다면, 모시는 조상신이 다르다는 것이《삼국지》를 쓴 진수에게는 제사를 지내는 신이 다른 것으로 비춰진 것이 아닐까 추론하기도 했다.[3] 어차피 제사의 예법이란 건 보수적인 문화라 현대에도 집안마다, 소지역마다 서로 신기해할 정도로 다른 경우가 많으니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4] 단순히 선박들이 정박만 하며 잠시 머무르는게 아니라 당시 야요이 시대의 일본인들이 늑도에서 거주하며 생활한 흔적들도 남아있기에 지금으로 치면 자유무역지구 같은 곳이었다.[5] 지금의 함안군인 안라국의 전신이었다.[6] 이런 김해 구야국, 즉 금관국 세력이 훗날 쇠퇴하는 것도 낙동강 동안을 신라가 대략 장악하면서 낙동강이 교통로에서 최전방 경계선으로 바뀌게 되고, 대가야 등이 섬진강 같은 대체 루트를 뚫으면서 금관국이 교통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이었다.[7] 단, 여기서 변한이 항복했다고 한 것을 사로국 주변에 위치한 변한쪽 군소 세력을 병합한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8] 《고사기》와《일본서기》를 보면 문신은 일본인의 문화가 아니라 에조인, 즉 아이누인의 문화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서기 3세기에 쓰여진《삼국지》<위지> - 왜인전 - 에 따르면 남자는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모두 얼굴과 몸에 문신을 했다.[9] 廣幅細布: 폭이 넓고 고운 베[10] 辭書: 辭典(사전)[11] 천관우. 1976년. 《가라사 연구》. 서울 : 일조각. 1991년. 201쪽.[12] 《위략》에 이르기를 유이민이 뛰어났으므로 마한의 제어를 받았다.[13] 곧 평양부(平壤府)다.[14] 《신당서》와《구당서》는 10~11세기,《삼국유사》는 13세기에 서술되었다. 여기서 통일신라 지역을 "낙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당나라가 신라 왕들을 낙랑군왕으로 책봉했기 때문이다. 변한 당시에는 이 지역이 낙랑으로 불리지 않았다.[15] 변한+마한을 가리킨 건지, 아니면 마한 전체를 아우른다는 뜻으로 쓴 건지 확실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