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주보돈 朱甫暾 | Ju Bodon | |
<colbgcolor=#DB1F26> 출생 | 1953년 2월 2일[1] ([age(1953-02-02)]세) |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읍 (現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 |
가족 | 장남 주성완(朱成浣)[2] 차남 주성진(朱成珍) |
학력 |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사학 / 학사) 경북대학교 대학원 (사학 / 석사[3]) 계명대학교 대학원 (역사학 / 박사[4]) |
현직 | 경북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
약력 | 한국고대사학회 고문 한국목간학회 회장 문화재청 사적분과위원회 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경북대학교 박물관 관장 한국고대사학회 회장 경북대학교 교수회 의장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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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의 역사학자, 전직 교수.2. 생애
1953년 2월 2일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읍(現 창원시 진해구)에서 중등교사로 근무하던 아버지 주일능(朱一能)[5]과 어머니 밀양 박씨 박복수(朴福守) 사이의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경북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사, 1995년 계명대학교 대학원 역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를 졸업하고 1983년 12월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2018년 2월에 정년 퇴임했다.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교수회의장, 박물관장 등을 역임하였다.주로 신라사, 가야사에 관해서 연구를 많이 하였으며,[6] 특히 한국에서 신라사 연구 방면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자로 손 꼽힌다. 금석문, 목간, 죽간 등과 같은 문자자료에 주목하여 신라사 및 한국고대사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엄청난 논문 편수와 연구성과를 학계에 제출할 만큼 학자로서의 성실함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는다.
원래는 해방 공간 이후 현대사 연구자가 되고 싶었으나 당시의 커리큘럼 문제와 연구 부재 등으로 한계가 많았다고 한다. 이후 고대사 연구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고 한다.
46년 동안의 대구 생활을 마치고 2017년 3월 29일부터 경북 경주에서 살고 있다. 신라사 최고 권위자 주보돈 교수, “신라 문화 대중화에 기여할 것”
3. 경력
1975년 신라사를 전공하던 학도로서 경주 황오시장 내 37호 고분 발굴에 발굴 단원으로 참여하였다. 15박 16일 동안에 천마총과 황남대총 발굴을 참관하였다.그리고 1977년 경북대학교 사학과 조교로 경상북도 고령군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 45호분의 발굴에 참여하기도 했다.
1983년 5월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2018년 2월에 정년퇴임을 했다. 1987년 2월 한국고대사학회 창립 멤버이며 초대 총무간사를 지냈다.
한국고대사학회 회장, 한국목간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학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 밖에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사적분과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오늘날에는 노중국 계명대 교수, 노태돈 서울대 교수 등과 함께 한국 고대사학계의 거두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학자이다. 노중국 교수가 백제사 연구로, 노태돈 교수가 고구려사 연구로 유명하다면 주보돈 교수는 신라 및 가야사 연구로 유명하다.[7] 사족으로 이 세 사람은 이종욱 서강대 교수와는 학문적으로 대척점에 서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같은 대학의 이문기 경북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이영호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역시도 한국고대사, 특히 신라사 연구로 유명하다.
가장 중점이 되는 연구 시기는 신라 중고기(中古期)이지만 신라사 전반에 걸쳐서 연구를 진행하였고 이밖에도 가야사, 백제사, 낙랑사, 고고학 연구에 관해서도 많은 연구를 제출하였다. 경북대 대학원 고고인류학과에서 신라고고학, 백제고고학, 가야고고학 강의도 이따끔씩 했다.
이밖에도 대구 및 영남지역사에 관해서도 연구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
2018년 2월에 35년 가까이 재직한 경북대에서 정년퇴임하였고 현재는 경북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4. 저서
다수의 학술논문과 단행본을 출간하였다.4.1. 주요 저작
단독 저자로서 집필한 책을 중심으로 기재한다.▲ 『신라 지방통치체제의 정비과정과 촌락』 (1998년) |
1998년 출간한 『신라 지방통치체제의 정비과정과 촌락』은 그의 박사 학위논문을 수정하여 책으로 내놓은 것으로, 그가 석사 학위 때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신라의 촌락 지배 형태에 대한 변천과정을 마립간기부터 중고기까지 다룬 저서이다. 삼국사기는 후대에 개작된 다양한 사료들을 인용하여 수록해놓았기 때문에 신라 마립간기부터 중고기대까지 당대의 지방통치양상에 대해 분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행히도 신라는 일찍이 발견된 남산신성비부터 비교적 근래에 발견된 영일 냉수리비까지 중고기 초부터 중고기 후반까지의 금석문들이 불완전하게나마 존재한다. 주보돈 교수는 이들 금석문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신라 당대의 촌락지배형태를 구체적으로 복원을 시도한 연구이다. |
▲ 『금석문과 신라사』 (2002년) |
2002년 출간한 『금석문과 신라사』는 신라사, 한국고대사, 고대한국금석문 전공자들에게는 필독서로 꼽히는 책이다. 신라의 각종 금석문을 소개하고 분석한 책이다. 영일냉수리신라비, 울진봉평신라비, 단양신라적성비 등 각종 비문과 석문, 금석문, 그리고 목간들을 소개하고 분석하고 있다. |
▲ 『임나일본부설, 다시 되살아나는 망령』 (2012년) |
임나일본부설이 나오게 된 배경을 추적하는 데 역점을 둔 책이다. 전방후원분의 출현을 매개로 임나일본부설 문제가 지속되어왔음을 주목하였다. |
▲ 『가야사 새로 읽기』 (2017년) |
2017년에는 『가야사 새로 읽기』란 저서를 통해서 기존의 통설과 완전히 다른 가야사를 제시하였으며, 역사학계 및 고고학계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
▲ 『김춘추와 그의 사람들』 (2018년) |
2018년 3월 『김춘추와 그의 사람들』(지식산업사)라는 책을 출간했다. 기사 이 저서에서 김춘추에 대해서 "사대주의자"라고 혹평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으며, 이러한 혹평은 민족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인식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삼국 사이에는 서로 같은 뿌리에서 나온 동족(同族)이라는 인식이 전혀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이었다"[8]며 "삼국은 생존을 위해 철저히 대결할 수밖에 없었고, 다만 서로 비슷하다는 동류의식만 갖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김춘추가 당나라 제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군사적으로 당을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꿈꿨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목적이 바탕이 됐다고 지적한다. 김춘추와 김유신은 권력욕에 사로잡힌 인물이라기보다는 유학을 근본이념으로 삼아 신라 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선도자였으며, 새로운 시대를 연 주역이었다고 평가했다. |
▲ 『한국 고대사의 기본 사료』 (2018년) |
2018년 6월에는 『한국 고대사의 기본 사료』(주류성)라는 책을 출간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주요 금석문 자료와 목간 등을 연구한 책이다. |
▲ 『가야사 이해의 기초』 (2018년) |
2019년 12월에는 『가야사 이해의 기초』(주류성)라는 책을 출간했다. 가야사 연구의 흐름과 주요 사료, 가야사의 전개에 대해서 서술한 책이다. |
2020년 10월에는 『신라 왕경의 이해』(주류성)라는 책을 출간했다. 신라 왕경인 경주와 관련된 연구를 모았으며 이전에 발표한 글도 있지만 대부분은 경주로 이사한 후 새로 집필한 글들이다. |
5. 관련 문서
[1] 음력 1952년 12월 19일.[2] 1984년생으로 대구한의대학교를 졸업한 뒤 한의사로 근무하고 있다.[3] 석사학위 논문: #[4] 박사학위 논문: 新羅 中古期의 地方統治와 村落(신라 중고기의 지방통치와 촌락).[5] 족보명 주재우(朱宰禹).[6] 본인은 처음에는 가야사 쪽에 더 뜻이 있었지만 가야 자체가 워낙 사료가 부족하다보니 가야와 연계성이 큰 신라사를 더 먼저, 중점적으로 다루었다고 한다.[7] 여담으로 노태돈, 노중국, 주보돈은 모두 영남과 연이 있다. 노태돈 교수는 경상남도 창녕군 출신이며, 대구의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노중국 교수는 경상북도 울진군 출신으로(다만 태어날때 울진군은 강원도 소속이었다) 계명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모과에서 교수를 지냈고, 주보돈 교수는 경상남도 진해군(현 창원시 진해구) 출신으로 이후 경북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모과에서 교수를 지냈다.[8] 사실 이 부분은 학자간에도 이견이 좀 있는 부분인데, 신라사 연구의 권위자인 주보돈 교수가 이렇게 단언한게 사실이라면 꽤 흥미로운 대목이긴 하다. 삼국통일전쟁 시기를 주로 연구한 이호영 전 단국대 교수도 앞서 비슷한 취지로 삼국시대를 '민족 의식이 없었거나 있더라도 극히 박약했던 시기'라고 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