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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5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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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자조선은 현대 주류 학설에서는 인정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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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大韓民國 | Republic of Korea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파일:대한민국 국장(1963-1997).svg
국기 국장
선진조국창조 | 정의사회구현
先進祖國創造 | 正義社會具現
1981년 2월 25일 ~ 1988년 2월 24일 (7년)
역사
제5공화국 출범 1981년 2월 25일
4.13 호헌조치 1987년 4월 13일
6월 항쟁 1987년 6월 10일
6.29 선언 1987년 6월 29일
제13대 대통령 선거 1987년 12월 16일
제8차 개헌 이전 제9차 개헌 이후
대한민국 제4공화국 대한민국 제6공화국
대통령 <colbgcolor=#ffffff,#1f2023>전두환
국무총리 남덕우, 유창순, 김상협, 진의종, 노신영, 이한기, 김정렬
수도 서울특별시
정치 체제 공화제(국민주권), 권위주의 독재[1][2], 단일국가, 대통령제, 단원제, 다당제, 성문법주의(대륙법계)
면적 실효 지배 99,274km2 (1987년) | 세계 108위
내수면 비율 0.3%

1. 개요2. 관련 인물
2.1. 제5공화국 관련 인물2.2. 야당 & 재야 관련 인물
3. 관련 문서
3.1. 사건사고3.2. 5공화국의 종결과 관련된 주요 사건들3.3. 관련 문헌3.4. 관련 창작물
4. 관련 문서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12.12 군사반란5.17 내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이 제12대 대통령 취임(1981년 2월 25일)을 통해 제5공 개헌으로 개편하여 시작된 군사정권 시대를 일컫는다. 1981년 2월 25일부터 1988년 2월 24일까지 존속했다.

전두환은 1980년 8월 27일에 이미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이는 제4공화국 유신헌법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된 것이며 이후 일명 체육관 선거라는 오명으로 불리는 대통령 선거를 통해 90.11%의 득표율로 전두환은 또다시 대통령에 선출되어 제5공 개헌을 통해 제5공화국을 출범시켰다.

시대상으로는 연 평균 8% 이상의 경제 성장, 1986년부터는 1988년까지 연 10% 이상의 경제 성장 등 단군 이래의 최대 호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빠른 경제 발전과 물가 안정이 이루어졌으며 자가용이 점차 보급되어 마이카 시대의 서막이 열리는 등[3] 생활수준의 비약적인 향상과 기술 발전의 혜택[4]이 있었던 풍요로운 시대이다.[5] 그러나 역설적으로 폭압적인 언론 검열과 살인적인 인권 탄압이 자행되던 시대이기도 하다.[6]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 평화의 댐 같은 온갖 사건사고들과 인신매매[7], 성고문,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의 인권 유린이 벌어지던 제5공화국은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1988년 제6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멸망했다.

보통 5공화국이 출범한 1981년 2월 25일부터 6월 항쟁 이후 직선제를 수용한 1987년 6월 29일까지의 정치 체제를 의미하는 명칭이지만, 일반인들은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이후 전두환이 신군부를 조직해 대통령급의 권력을 장악한 1979년 12.12 군사반란 직후부터 6.29 선언 까지를 제5공화국 범주에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8] 전두환을 상징하는 12.12 군사반란, 5.18 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 등의 굵직한 사건은 실제로 제4공화국 시대에 일어났다. 하지만 대중은 제4공화국에 대해 절대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헌법을 연상시키는 편이며(즉 4공=유신), 전두환을 떠올리는 경우는 많지 않고 제5공화국이 곧 전두환의 시대(즉 5공=전두환)로 인식된다.

'제n공화국'을 학술적으로 구별하는 기준은 국가체제가 변화할 정도의 중대한 헌법 변경이 이루어졌는지의 여부인데, 이것이 '대통령'을 기준으로 놓고 정부를 구분하는[9] 일반인의 시선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 즉 5공화국의 출발은 1980년 국민투표가 통과된 시점부터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학자정치인의 경우 '삼청교육대'를 '개헌 전에 삼청교육대가 조직되었으니 이는 4공 시기 사건이다.'라고 표현하고 인식하지만, 일반인들은 '전두환이 삼청교육대 만들었으니 이는 5공 시기 사건이다.'라고 표현하고 인식하는 식. 실제로 '5공 시절에 전두환이 삼청교육대 만들어다 싹 다 잡아들였다.' 식의 표현을 듣기 어렵지 않다.[10]

그 전두환이 유일한 대통령이었음에도, 아이러니하게도 역대 공화국 중 유일하게 계엄령을 선포하지 않은 공화국이다.[11]

2. 관련 인물

2.1. 제5공화국 관련 인물

2.2. 야당 & 재야 관련 인물

3. 관련 문서

☆표시가 된 것은 제5공화국과 관련은 있으나, 제5공화국 출범 이전(1981년 2월 이전, 즉 제4공화국 시기)에 일어난 사건이다. 제5공화국에 의해 부조리하게 자행되거나 제5공화국의 부조리로 인해 촉발된 사건은 볼드체로 표기한다.

3.1. 사건사고

3.1.1. 1979년 ~ 1980년

3.1.2. 1981년

3.1.3. 1982년

3.1.4. 1983년

3.1.5. 1984년

3.1.6. 1985년

3.1.7. 1986년

3.1.8. 1987년

3.2. 5공화국의 종결과 관련된 주요 사건들

다음은 5공화국의 종결과 직접적인 연관이 되어 있는 사건들로, 연대기 순서대로 나열하였다.

3.3. 관련 문헌

3.4. 관련 창작물

작품의 갯수나 질로만 보면 현대판 여말선초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며,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격동적인 시기였던 만큼 이 시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창작물이 매우 많다. 각 인물들의 서사나 스토리거리도 매우 풍부해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기 좋다. 특히 10.26 사건부터 5.18 민주화운동 까지, 동명의 유명 영화로도 만들어진 일명 '서울의 봄' 이라 불리던 시절을 비추는 작품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온다. 후술할 작품들도 대부분 저 시기를 비추는데에 집중되어 있다.

4. 관련 문서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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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헌법 전문에서 규정한 공식적인 정치 체제 명칭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서 현재 학계에서는 방어적 민주주의 체제를 표현하는 다른 말로 보고 있다. 한편 정치 체제와 상관없이 실제로는 권위주의적으로 운영되었다.[2] 후술하듯 헌정 사상 유일무이하게 일당독재를 한 정당이기도 하다.[3] 단, 자가용의 대중화는 제6공화국 수립 이후 노태우 정부문민정부 때 본격화되었다.[4] 중화학공업이 발전, 성장하였고 지하철이 본격적으로 건설,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서울 지하철도 4호선까지 건설되었고 부산에도 지하철 노선이 생겼다. 덤으로 현행 KBS대한항공 로고도 1984년 도입된 게 2024년 현재까지 40년 동안 변함없이 쓰이고 있다.[5] 실제로 한국이 본격적으로 중진국으로 부를 만한 체급이 된 것도 80년대이다. 정확히는 1983년 한국의 1인당 GDP가 세계 평균의 80%를 넘겼고, 1984년 90%를 넘기며 세계 평균급에 이르렀으며, 1987년 세계 평균을 넘겼다. 대략적으로 오늘날로 치면 튀르키예, 중국, 말레이시아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87년의 국민소득은 3천달러를 넘겼고, 이 때엔 3저호황의 혜택을 입어 무역으로도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선 시대였다. 박정희 시대에선 경제성장률은 높았으나 무역은 만성 적자를 면치 못했기 때문에 외국인의 직접적인 투자 유치 및 수출 증대, 차관으로 인해 빚 또한 많았던 상황이었다.[6] 그나마 사법살인 자체는 박정희 시기보다는 적어졌고 독재자의 권한도 완화되긴 했지만, 인권 탄압은 이승만, 박정희 시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당시 사람들도 차라리 그때가 나았다고 할 정도였다고 할 정도였다. 5.18의 경우 비전시 상황에서 광주 시민들을 학살했기에 더 심각하다.[7] 형제복지원 사건은 너무 참혹한 사건인지라 학살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을 정도이다.[8] 대중매체에서도 이렇게 묘사되는 편으로서 제5공화국(드라마)광주특위와 같이 개최된 제5공화국 청문회 등이 이러한 오해를 가중시키기도 했다.[9] 특히 윤보선, 장면 내각, 최규하를 제외하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모두 민주적이지 않은 대통령들이라 그런 것도 크다.[10] 사실 서류적 절차보다 핵심 인물 기준으로 생각하는게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이성계는 조선으로 국호를 바꾸기 전에 공양왕으로부터 양위받아 즉위하였으니 서류상 고려 마지막 임금은 이성계이다. 하지만 이성계를 고려의 마지막 왕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11] 전두환 시절의 계엄령은 제11대 대통령 시절인 제4공화국 때 끝났으며 전두환이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10.26 사건으로 인해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최규하가 시작한 계엄령이 전두환 때까지 이어졌다가 제5공화국 출범 직전 끝난 것. 민주화 이후 출범한 제6공화국은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으로 계엄령을 선포하지 않은 공화국의 타이틀에서 제외되었다.[12] 초대 안기부장. 마지막 중앙정보부장으로 취임해 중도에 안기부로 개편되어 안기부장이 됐다.[13] 육군 중장 신분으로 경호실장을 지냈다.[14] 원래는 없는 직책이다. 청와대 입성 시 만들어서 들어갔는데 다른 보좌관들과 달리 청와대 본관에서 대통령과 함께 근무했기 때문에 그 파워가 어마어마했다. 결국은 이러한 이유로 전두환의 눈밖에 나면서 좌천됐다.[15] 역임하던 중 1982년 사망하였다.[16] 역임하던 중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으로 사망하였다.[17] 김재익의 후임으로 1987년 5월까지 역임하였다.[18] 전두환 정부 시기인 1987년 5월부터 노태우 정부 시기인 1988년 12월까지 역임하였다.[19] 노태우 정부 시기 역임하였다.[20] 문민정부 시기 역임하였다.[21] 노태우 정부 시기 역임하였다.[22] 노태우 정부 시기 역임하였다.[23] 문민정부 시기 역임하였다.[24] 문민정부 시기 역임하였다.[25] 참여정부 시기 역임하였다.[26] 장면 내각 시기 역임하였다.[27] 정책 자체는 1979년부터 만들어졌다.[28] 대법원 판결 날짜.[29] 당시 안기부가 사건발표를 한 날짜이다.[30] 이한열 열사의 사망일은 7월 5일[31] 하나회 숙청[32] 제5공화국을 설립시키기 위해 세운 과도기구.[33] 박정희중앙정보부를 계승.[34] 제3공화국 초기(1963년)에 결성되었다.[35] 단, 전두환 정부기때의 중 고등학생 두발규정은 평균적으로는 2000년대 중 고등학교의 두발규정과 큰 차이는 없었다. 1982년 두발자유화 시행 지침을 보면 파마와 염색 및 남학생의 머리카락이 귀에 닿는 것과 머리카락이 옷깃에 닿는 것은 여전히 금지였기 때문에, 여학생은 생머리, 남학생은 뒷머리까지 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며, 학교장 재량에 따라 길이 규제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남학생은 3cm 내외의 스포츠머리, 여학생은 귀밑 5cm 이내 단발이 기준인 곳도 많이 있었다. 물론 1981년까지는 대다수 중고등학교에서 남학생은 길이 1cm 이하 반삭, 여학생은 귀밑 1cm 내외의 단발 혹은 양갈레 머리를 하는 것이 기본규정이었기 때문에. 이 당시 문교부 기준에서는 이것도 많이 풀어준 것인지라 두발자유화 조치라고 명명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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