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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부 최규하 권한대행 체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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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화국 박정희 내각 朴正熙 內閣 | Park Chung-hee Cabinet | ||
▲ 회의를 주재하는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겸 내각수반(사진 속 맨 왼쪽) | ||
1962년 6월 18일 ~ 1962년 7월 9일 | ||
출범 이전 | 이후 | |
송요찬 내각 | 김현철 내각 | |
최덕신 직무대행 체제 | ||
대통령 | <colbgcolor=#fff,#191919>박정희 ,/ 권한대행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 |
내각수반 | 박정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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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때 박정희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고 있었기에 입법부수장(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국가원수(대통령 권한대행), 정부수반(내각수반)까지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다. 이것이 본인도 부담스러웠는지, 민정이양을 하겠다고 약속했던 대선에 출마하기 위한 준비인지 한달만에 후임을 지명하고 물러난다.
2. 활동
화폐개혁은 민간 예금의 실태를 파악하고 그 일부를 동결하여 산업자금으로 돌리려는 목적이지만 예상치 못한 충격으로 기업활동이 정지되는 등, 경제는 오히려 위기에 빠져들었다. 미국 정부는 원조를 받는 한국 정부가 아무런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행한 화폐개혁을 크게 비난했다. 안팎의 비난에 몰려 정부는 결국 동결한 50,000여 구좌의 예금을 조기에 해제할 수밖에 없었다. 즉 화폐개혁은 졸속하게 행해진 실패작이었다.하지만 얼마 안가서 상술한 '증권 파동'을 포함한 이른바 "4대 의혹 사건"이 줄줄히 터지면서 군사정권은 도덕성에 큰 타격을 받았다. 이 사건들은 의혹이 불거지면 대충 조사하고 적당히 처벌하고 유야무야 넘어가는 식으로 끝나서, 실제로 어땠는지 정확한 진상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실제보다 복잡한 내부 사건들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결국 김종필 전 중앙정보부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한 후에 일본으로 외유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