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유신 정권 당시인 1978년 경상북도 영양군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농협에서 불하한 씨감자 문제를 놓고 지역농협이 농민들을 속이자 이에 분노한 농민들이 가톨릭 농민회와 연대하여 보상을 요구하며 투쟁한 사건.일명 '오원춘 사건'이라고 하며 함평 고구마 사건과 함께 벌어진 공무원들의 농민에 대해 벌인 대표적인 기만행위이며, 박종상(가브리엘) 신부 구타 유기사건과 함께 1970년대에 벌어진 대표적인 한국 천주교와 정부 사이의 충돌 사건이다.
참고로 똑같이 오원춘 사건이라 지칭되는 수원 토막살인 사건과는 다른 사건이다. 본 문서에서 다루는 오원춘(吳元春, 세례명 알퐁소)은 1950년생 한국인 농부이며 살인 사건의 가해자로 유명한 오원춘(吴原春, 우위안춘)은 1970년생 중국인(조선족) 무기징역수로 둘은 동명이인이다.
2. 사건의 발단
1978년 경상북도 영양군 청기면 농민들은 군청과 농협에서 알선한 씨감자를 심었지만, 싹이 나지 않아 농사를 망치게 되었다. 이 때 가톨릭농민회 임원이었던 오원춘이 당국을 상대로 피해 보상을 받았고, 이 사실을 토대로 그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서 피해 농민들에게 어떻게 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알릴 목적으로 강연을 했다. 덕분에 농민들의 보상 신청이 확산될 것 같게 되자,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해진 공무원들은 오원춘을 요주의 인물로 지정하고 감시했다. 그러다가 한창 바쁜 농사철에 오원춘은 갑자기 행방불명되었다.3. 공방 및 과정
보름 만에 나타난 오원춘은 영양 본당 신부를 찾아가, 자기가 기관원들에게 납치되어 포항시와 울릉군 지역으로 끌려 다니면서 모진 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분개한 천주교 안동교구 신부들이 주축이 되어 '짓밟히는 농민운동'이라는 문건을 제작했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조직을 통해 7월 17일 전국에 이 사건을 폭로했다.그러자 경상북도청 경찰국은[1] 안동교구가 농민운동을 탄압했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정호경(루도비코) 신부를 비롯한 성직자들과 가톨릭농민회 간부를 구속했으며, 이 때 주교관에 들이닥쳐서 사람들을 끌고 가기까지 했다. 심지어 오원춘은 자신과 안면이 있었던 다방 아가씨와 여행 갔던 일을 납치라고 왜곡, 조작했다는 증언까지 했다. 가톨릭은 빨갱이라는 말도 이 때 나왔다.
이리하여 이 사건은 전국적 정치 투쟁으로 확산되었다. 8월 6일 안동교구 주교좌 목성동 성당[2]에서는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안동교구장인 프랑스인 두봉(르네 뒤퐁) 주교를 비롯한 120여 명의 사제, 600여 명의 가톨릭농민회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도회를 열었다.
기도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순교자 찬가」[3]를 부르며 성당에서 나와 안동시청 분수대[4]까지 구속자 석방과 농민운동 탄압 중지, 긴급조치ㆍ유신헌법 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안동 최초로 가두 촛불시위를 벌였다.
시위 후 사제단과 가톨릭농민회원 80여 명은 목성동 성당으로 돌아와 무기한 항의 농성에 들어갔다. 당시 언론 매체들은 이들을 죽창으로 무장한 폭도들이라고 보도했지만 안동 시민들은 저녁이면 거리에 나와 농성장에서 나오는 옥외 방송을 들으며 더위를 식혔고,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격려 방문을 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움직임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어 8월 9일 강원도 원주시와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8월 20일에는 서울특별시 명동성당에서 1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주최한 전국 최대의 기도회가 열렸다. 기도회는 경기도 인천시를 비롯해 수원시, 전라남도 광주시, 전주시, 경남 마산시 등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전국적인 교계와 농민운동계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불리하게 전개되었는데, 당사자 오원춘은 변호인들에게는 자신이 납치되었다고 말하다가 법정 심문에서는 눈치를 보면서 딴소리를 했다고 한다. 이러한 행동의 원인은 이후 수사관들의 강압적인 심문과 고문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4. 결과
오원춘은 재판에서 긴급조치 위반죄로 징역 2년형을 선고 받았으나, 10.26 사건으로 인해 1979년 12월 8일에 긴급조치가 해제된 뒤 석방되었다.이 때다 싶었던 유신정권은 두봉 주교를 이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하였으나, 프랑스 출신 종교인을 함부로 체포할 수는 없었기에 대신 바티칸에 외무부 장관을 보내 외국인이 국내 정치에 간섭한다고 항의 하였다. 마침 두봉 주교도 취임시(1969년)에 '나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10년 동안 교구 기반만 닦고 퇴임하겠다.'고 말한 상태라서 이미 사임서를 내놓고 재가를 기다리던 상태였다.
교황청이 쉽게 결정을 못 내리자, 당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과 당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이던 윤공희 빅토리노 대주교를 소환해 이 문제를 논의했다. 이 때 나온 말이 '지금 두봉 주교님을 사임시키면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의 주교 추방에 협력하는 셈이 됩니다. 사임을 반려해 주십시오."였다. 결국 두봉 주교는 10년 정도 더 교구장직을 수행하다가 한국에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인 1990년에 은퇴했다. 이후 20년 가까이 더 지나 두봉 주교는 특별 국적증서 수여자로 선정되어 한국인이 되었다.
5. 그 외
- 이 사건의 중심 인물이었던 오원춘 씨는 현재도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으며 고막이 파열되어 귀가 안 들리는 등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정신적/육체적 고통이 크다고 한다. 2002년에는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으나 3위로 낙선하였다. 한편 이 사건을 계기로 가톨릭농민회(약칭 카농[5])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농민운동이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 향후 2004년 실화극장 죄와 벌에서도 74회의 에피소드로 방송되었다. 다만 이 사건의 중심 인물인 오원춘은 재연 배우가 연기했으며, 검사 역은 정욱, 변호사 역은 실제 천주교 신자인 배우 이성용(세례명: 그레고리오)이 연기했다.[6]
- 두봉 주교 역시 농사와 사목활동으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단, 안동교구장으로 근무하던 안동시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고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서 유기농 농사를 지으며, 이를 인근 주민들과 나누어 먹는 소박한 삶을 살고 있다. 2022년 1월 26일에는 tvN의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직접 출연하여 유재석과 조세호에게 이 사건의 일화를 직접 설명해주기도 했다.
[1] 지금의 시·도경찰청(행정안전부 소속의 광역경찰청)과 전혀 다른 직제로서 XX도청 직할의 XX부국이다. 제1공화국은 미군정청의 경무부(警務部)와 관구경찰청(管區警察廳)을 내무부의 치안국과 10개 도청의 경찰국으로 축소했기 때문에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지방공무원으로 근무한 경찰관들은 박봉과 격무에 시달렸다. 또한 당시는 지방자치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무부가 모든 도청의 고위직(예를 들면 대한민국 대통령→도지사/국무총리→부지사/내무부 장관→국장/내무부 차관→과장)을 임명하여 파견하는 방식으로 경찰국을 통제했다.[2] 당시 위치는 현재 목성동 성당이 운영하고 있는 성심유치원 아래의 2층짜리 건물이었으며 천주교 안동교구 가톨릭센터로 활용하다가 2019년 천주교 안동교구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역사관으로 조성하기 위해 내부 수리중이다. 목성동 본당은 윗쪽으로 이전했다.[3] <가톨릭성가> 283번.[4] 당시 안동시청은 현재 안동시보건소 부지에 위치해 있었고 당시 분수대는 현재도 운영중이다.[5] 가농이 맞지만, 가톨릭계나 농업계나 카농이란 말을 훨씬 많이 쓴다. 가농이 의외로 발음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아직도 카농이라는 표현이 보편화되어 있다.[6] 다만 실화극장 죄와 벌에서 나온 당시 사건의 내용은 순화된 것이며, 실제 당시의 모습은 죄와 벌에 나왔던 모습보다 더욱 심했다고 한다. 당시 대구지방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었고 사건 담당 검사는 서돈양 검사였고 황인철, 이돈명, 홍성우 변호인단을 꾸려서 진행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