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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3:35

김형욱 실종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상세3. 국가정보원의 조사 결과
3.1. 조사 결과에 대한 의문점3.2. 김형욱 유족들의 반발
4. 김형욱의 최후에 대한 그 밖의 주장
4.1. 양계장 닭모이 설4.2. 기타 설
5. 매체6. 둘러보기

1. 개요

1979년 10월 7일대한민국의 전 중앙정보부장인 당시 54세였던 김형욱실종된 영구 미제사건.

2. 상세

김형욱은 본래 역대 최장기 중앙정보부장으로서 6년 동안 재임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다가 3선 개헌에 반대했다는 명목으로 박정희 정권에 토사구팽당하자[1] 1973년 미국으로 망명[2] 박정희 정권의 치부를 미국에 공개하는 코리아게이트 사건을 일으키고 당시 박정희가 보낸 여러 인사들에 의해 각종 회유와 귀국 종용을 받은 김형욱1979년 앞서 언급된 중앙정보부 해외담당차장 윤일균[3]으로부터 원고료로 거액을 준다는 말을 듣고 그와 만나 돈과 원고를 교환했고 프랑스 파리로 가라는 말을 들었다.[4]

1979년 10월 1일 김형욱프랑스 파리에 도착했고 파리의 모 호텔에서 6일 동안 머무르다가 10월 7일 그곳에서 행방불명됐다. 10월 1일 파리의 A호텔에서 10월 7일까지 투숙했다가 10월 7일 오전 7시 30분경 파리의 B 호텔에 10월 12일까지 투숙하겠다고 하고 짐을 놓고 10월 7일 오전 11시 30분경 인근 카지노에서 그날 밤까지 카드게임을 한 것이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 목격되었다.[5] 예정 투숙일인 10월 12일이 되어서도 김형욱의 짐이 그대로 남겨져 있어서 호텔 관계자가 경찰에 신고했다. 이때 남은 김형욱의 유품은 밤색 중형가방과 골프세트인데 후일 김형욱의 가족들이 챙겨갔다.

그의 실종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며 공식적인 국가정보원의 조사 결과가 있으나 시원치 않은 구석이 있어 의문이 남아 있다.

이 사건에 대한 특종은 조선일보가 최초로 터뜨렸다. 1979년 10월 16일 조선일보 1면에 실린 '김형욱씨 파리서 행방불명, 1주일 째 호텔에 안 나타나'라는 제목의 박스기사였다. 조선일보의 최초 보도가 나가자 대한민국의 여러 신문의 파리 특파원들이 김형욱의 호텔 숙소에 찾아가서 소지품들을 발견하였고 이후 며칠 동안 여러 언론에서 계속해서 후속보도가 실렸다.

이 보도 자체가 박정희 정부로서는 엄청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는데 정부에서는 김형욱의 사망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가[6] 그러던 중 갑자기 대한민국에서 엄청난 사건이 터지면서 이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사건 당시 김형욱의 나이는 54세로, 당시에도 그렇게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지병을 무시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고 이미 소소한 지병이 있었기 때문에 김형욱의 가족들은 이 시점에서 김형욱이 이미 사망했다고 잠정 결론을 짓고 2001년 장남 김정한이 사망하자 2002년 가족 묘를 만들 때 김형욱의 몫까지 만들어 김형욱의 가묘를 만들었다. 거기다 김형욱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딘가 숨어서 살아있다고 해도 2024년 현재 시점에는 이미 99세, 2025년에는 100세가 되기 때문에 박정희에 의한 납치 암살설이 맞든, 납치되지 않고 어딘가에 숨어서 천수를 누렸다고 해도 현재는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23년(98세) 기준 1925년생 생존율은 이미 1.2%만 생존해있다. 이미 실종 5년만인 1984년 향년 59세로 공식적으로 이미 사망 처리하기도 했다.

3. 국가정보원의 조사 결과

2005년 5월 26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진실위)는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의 지시로 권총으로 암살당했다는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발표는 서울 내곡동 국정원 강당에서 김만복 기조실장과 진실위의 위원들이 공동 발표하는 기자회견 형식으로 이뤄졌다. 참고로 당시 진실위에서 사건 조사에 참여하였고 국정원과 함께 김형욱 실종 사건 발표도 담당했던 위원이 바로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였는데 한 교수는 이후 저작물들과 연구서, 칼럼, 인터뷰 등을 통해 당시 진실위의 사건 조사 내용과 사건 관련 당사자들의 증언 등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참고로 진실위의 국정원간사를 맡았던 사람이 나중에 국정원장이 되는 김만복 당시 기조실장이었는데 그는 이 사건의 조사를 자신했다고 한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김형욱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지시에 의해 프랑스에서 연수 중이던 중정요원에 의해 납치, 살해당했다는 것은 이미 예전부터 중앙정보부 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한다. 김만복 실장은 김형욱을 살해한 요원들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었고 이미 그들에 대한 설득 작업도 진행 중이었는데 "업보는 우리 세대가 짊어지고 가자"며 관련자들에게 인간적인 설득까지 했으며 결국 당사자들이 김만복에게 상당한 정도의 진상을 털어놓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문제는 이 사건 관련자들이 당시 그들에게 '작전'을 직접 지시했던 전 프랑스 공사 겸 중앙정보부 프랑스 거점장 이상열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했다는 것이다. 이상열이 그때까지만 해도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7]

어쨌든 발표된 조사 결과를 요약하자면 대략적으로 이러했다.
79년 10월 1일, 이상열 공사가 한국으로 귀국하여 김재규 부장을 두 차례 만났으며 다음날 파리로 돌아갔다.[8] 당시 이상열 주 프랑스 공사는 중앙정보부 프랑스 거점장을 겸하고 있었다. 사건 수행은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으로 현지에서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던 A요원, B요원이 담당했다. 이들은 동유럽 출신 협력자 2명을 10만 달러에 고용했다. 김형욱 전 부장은 이상열 공사에게 돈을 빌려 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 공사는 전주를 소개시켜 주겠다며 10월 7일 샹젤리제 거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A요원과 협력자 2명이 나타나 이 공사의 승용차를 이용해 김형욱을 납치해서 파리 근교로 끌고 갔다. 협력자가 소련제 소음권총 7발을 발사해 살해했다. 살해한 시신은 낙엽으로 덮어두었다. 이상열 공사는 A요원에게 관저에서 결과를 보고받았다. 그는 김형욱 부장의 여권과 지갑은 자신이 갖고 나머지 소지품을 철저히 인멸한 뒤 귀국할 것을 지시했다. A요원이 귀국 후 10월 13일 직접 김재규 부장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김재규는 직접 A요원을 불러 거액의 돈 봉투를 쥐어주며 앞으로의 근무나 생활의 편의를 봐주겠다고 약속했다. 10월 18일 이상열 공사도 은밀히 귀국해 김재규 부장에게 직접 보고하고 다음날 파리로 돌아갔다.

3.1. 조사 결과에 대한 의문점

3.2. 김형욱 유족들의 반발

김형욱의 유족들은 이 조사 결과를 믿지 않았으며 결과조차도 매우 부실하다고 주장하였다. A요원과 B요원의 진술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사용한 총기는 분실했으며 시신을 낙엽으로 덮어 두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매우 부실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유족 측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어쨌든 국정원 과거사 위원회의 발표와 전직 중앙정보부 관계자의 직접적 증언을 인용한 언론 보도 사이에는 몇 가지 일치하는 지점이 있다. 중앙정보부와 연관된 파리 현지 요원들이 권력의 고위 인사로부터 지시를 받았고 김형욱이 프랑스 파리로 유인당했으며 이후 파리 근교에서 중정 소속의 요원 혹은 해당 요원의 고용인들에 의해 살해당했고 살해 직후 김형욱의 시신을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점이다.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를지언정 대략적인 몇 가지의 얼개는 일치하는 셈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사건 관계자들의 입을 열 방법이 아예 없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실종 사건에 깊이 개입되었을 박정희 대통령,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차지철 경호실장 이 세 사람은 김형욱의 실종으로부터 약 20여일 뒤 10.26 사건에 휘말려 둘은 그 당일에 죽고 한 명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니 말이다.

4. 김형욱의 최후에 대한 그 밖의 주장

4.1. 양계장 닭모이 설

2005년 전직 중앙정보부 요원이라고 밝힌 사람이 자신이 김형욱을 죽였다고 주장하였다. 중앙정보부 소속 공작원 출신이라고 밝힌 인물은 《시사저널》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자신이 사건 직전에 박정희를 직접 만났고 중앙정보부의 지시 없이 조력자들의 도움만 받아서 스스로 사건을 수행했으며 프랑스 파리에서 납치 당일 김형욱을 마취시킨 뒤 반쯤 의식불명이 된 김형욱을 파리 근교까지 찾아가서 산 채로 머리부터 양계장 대형 믹서(해머밀)에 넣어 갈아 죽였다고 설명했다. 즉, 시신은 닭모이가 되었다는 것이다.[15] 이는 폐차장을 비롯한 다른 방법과는 다르게 시신의 흔적조차 찾기가 불가능한 방식이므로 일반인들도 이 설을 사실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위에서 서술된 진실위의 조사 결과 발표 당시 시사저널과 이 내용을 인터뷰한 당사자가 중정 출신이 맞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김경재도 자신의 저서 '박정희 시대의 마지막 20일'을 통해 위에 소개된 동일한 인물로부터 들은 동일한 내용을 주장했지만 시사저널 인터뷰보다 훨씬 자세한 주장을 했는데 해당 주장을 한 인물이 '조용박'[16]이라는 사람이고 코드명은 '천보산'이며 일본에서 조총련 간부를 지낸 부친의 영향을 받아 일본으로 밀항한 뒤 남파 교육을 받고 남파 공작원으로 활동하다가 남한에서 전향하여 다시 북파 공작원으로 활동했던 중정 요원 출신이라고 하며 김형욱을 산 채로 집어넣은 것이 아니라 목을 꺾고 마취제를 입에 집어넣은 뒤 양계장 믹서에 넣었으며 결정적으로 이 사건이 김재규 라인이 아니라 차지철 라인을 통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

한편 이 사건을 오랫동안 추적하였으며 최초 시사저널 보도를 작성했던 주인공이자 현재 시사IN 기자로 활동하는 정희상은 이후에도 국정원과 진실위의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를 여러 차례 작성하였다.#1, #2 정희상 기자는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개봉할 즈음 새로운 기사를 썼는데 양계장 닭모이설의 주인공인 조용박이 2007년에 국정원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통장을 자신에게 확인시켜 줬으며 국정원은 왜 김형욱 암살과 무관하다던 조 씨에게 돈을 건넸던 것인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정희상 기자는 국정원과 진실위의 당시 발표에 대해 큰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정희상 기자의 저서 '팩트와 권력'에서 더욱 자세히 소개되기도 했다.#

논픽션 남산의 부장들[17]을 집필한 김충식 전 기자는 한 방송에 나와 '양계장 암살설'을 긍정하며 "정부의 입장으로 그걸 발표할 경우에 프랑스와의 외교 관계에서 일종의 부채를 공식화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냥 사체를 낙엽에 파묻고 말았다라고 처리를 발표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MBCPD수첩2005년 5월 3일 방송분에서 위의 '양계장 닭모이 암살설'을 방송한 적이 있었는데 결론은 '그랬을 가능성이 낮다' 였다. 취재진은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했던 이모 씨와 함께 일본, 프랑스로 검증 차원의 동행취재를 수행했고 당시 프랑스에 중형 닭모이 기계가 보급되지 않았다는 점, 해당 인물이 프랑스와 파리의 지리나 정확한 살해 장소를 특정하지 못했다는 점 등을 들어 '닭모이 암살설'은 신빙성이 낮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인 2005년 7월 23일 방영된 SBS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당시 실제 프랑스에 중형 닭모이 기계가 보급되고 있었다는 증언을 확인했으며[18] 시사저널 측에서도 PD수첩의 보도를 반박하는 장문의 기사를 냈고 PD수첩에서는 다시 시사저널에 대한 반박문을 내는 등 한동안 이런저런 논쟁이 계속되었다. 결국 결론이 제대로 나지 않고 흐지부지되었다.

4.2. 기타 설


이상의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명확히 증명된 바가 없다.김형욱 미스터리, 누구 말이 맞나

5. 매체

근현대사의 대표적인 미스터리로 방송에서도 여러 번 다루어졌다. 특히 가설 중 양계장 닭모이설은 증거가 부족하여 진위 여부는 알 수 없긴 하지만 사건 자체가 주는 임팩트 때문인지 창작물에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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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2공화국: 박정희 내각
1961년 5.16 군사정변 · 국가재건최고회의 설립 · 혁명재판 · 전국 18개 학군단 창설 · 수도방위사령부 창설 · 농어촌고리채법 · 은행국유화(금융기관에 대한 임시조치법) · 경제기획원 설립 · 중앙정보부 창설 · 한국전력주식회사 창설 · 농업협동조합 창설 ·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 · 연호에 관한 법률 개정
1962년 서력기원 사용 · 문화재보호법 제정 ·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발표 · 울산공업센터 지정 · 주민등록법 제정 · 화폐개혁 · 4대 의혹 사건 · 마포아파트 준공 · 김종필-오히라 메모 · 대한항공공사 설립 · 5차 개헌 공포 · 제1차 국민투표
1963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족 · 민주공화당 창당 · 3.16 성명 · 감사원 개원 · 의정부역-능곡역 구간 교외선 개통 · 서울 대확장 · 부산 직할시 승격 · 박정희 의장 예편 후 민주공화당 입당 · 삼양라면 출시 · 서울가정법원 개원 · 제5대 대통령 선거 · 제6대 국회의원 선거 · 구로공단 조성 · 황태성 사건 · 의료보험법 제정
대한민국 제3공화국: 박정희 정부 제1-3기
1963년 국가안전보장회의 설치 · 파독 근로자 파견
1964년 미터법 실시 · 삼분폭리사건 ·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보완계획안 발표 · 울산정유공장 준공 · 무장군인 법원 난입 사건 · 6.3 항쟁 · 베트남 전쟁 파병안 통과 · 제1차 인민혁명당 사건 · 무즙 파동 · 서독 공식 방문 · 국가기술자격 시행
1965년 한국독립당 내란 음모 사건 · 독도 밀약 · 수출제일주의 표방 · 제2한강교 준공 · 춘천댐 준공 · 광복회 발족 · F-5 20대 도입 · 원충연 반혁명 사건 · 한일기본조약 조인(한일협정 반대투쟁) · 전매청 신탄진공장 준공 · 야당 불참 속 한일협정 비준 및 베트남 전쟁 파병 동의안 가결 · 베트남 전쟁 1개 전투사단 파병 · 이승만 대통령 서거 · 한국해외개발공사 발족 · 농어촌 전화 사업 추진
1966년 KIST 설립 · 국세청 발족 · 장면 별세 · 태릉선수촌 설립 · 한미행정협정 조인 ·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 해병대 공군비행학교 습격사건 · 국회 오물 투척 사건 · 사카린 밀수 사건
1967년 산림청 개청 · 해군 당포함 격침 사건 · 한국외환은행 발족 · 대도시 그린벨트 설정 · 짜빈동 전투 · GATT 가입 · 과학기술처 신설 · 제6대 대통령 선거 · 제7대 국회의원 선거 ·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발표 · 동백림 사건 · 한국수자원개발공사 설립 · 지리산국립공원 지정 · 정부종합청사 착공
1968년 1.21 사태 ·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 684부대 창설 · 서울사범대학 독서회 사건 ·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설립 · 향토예비군 창설 · 주민등록법 개정 · 통일혁명당 사건 · 만화 검열제 · 육군3사관학교 창설 ·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 주민등록증 발급 실시 · 국민교육헌장 발표 · 경부고속도로 서울-수원-오산 구간 개통 · 경인고속도로 개통
1969년 교련 과목 개설 · 한국도로공사 발족 · 가정의례준칙 · 서울 중학교 무시험 제도 · 금화시민아파트 준공 · 경부고속도로 오산-천안-대전 구간 개통 · 호남정유 여수공장 준공 ·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 · MBC 개국 · 3선 개헌 · 제2차 국민투표 · 제3한강교 개통 · 울산고속도로 개통 · 경부고속도로 대구-부산 구간 개통
1970년 정인숙 살해사건 ·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 · 포항종합제철소 착공 · 새마을운동 제창 · 우편번호제 도입 · 경부고속도로 대전-대구 구간 개통 (완공) · 호남고속도로 대전-전주 구간 개통 · 백원 주화 발행 · 국방과학연구소 설립 · 병무청 설립 · 모산 수학여행 참사 · 전태일 분신 사건 · 번개사업 · 남영호 침몰사고 · 4대강유역 종합개발 계획 확정 · 정부종합청사 개청
1971년 전국 중입시험 폐지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 · 고리 원자력 발전소 기공 · KAIS 설립 · 주한미군 7사단 철수 · 제7대 대통령 선거 · 진산 파동 · 제8대 국회의원 선거 ·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 광주대단지 사건 · 브레튼우즈 체제 종료 · 실미도 사건 · 국토종합계획 발표 · 통일로 개통 · 영동고속도로 신갈-새말 구간 개통 · 대연각호텔 화재
1972년 정병섭군 자살사건 · 경주고도개발 10개년 계획 확정 · 7.4 남북 공동 성명 · 통일미 개발 · 8.3 사채 동결 조치 · 제1차 남북 적십자 회담 · 10월 유신 · 울산석유화학단지 준공 · 제3차 국민투표 · 통일주체국민회의 발족 · 제7차 개헌 · 서울시민회관 화재 사고
대한민국 제4공화국: 박정희 정부 제4-5기
1973년 중화학공업화 선언 · 치산녹화 10개년 계획 추진 · 남서울아파트 분양 · 장발 및 미니스커트 단속 · 승압사업 개시 · 제9대 국회의원 선거 · KBS 설립 · 베트남 전쟁 종전 · 유신정우회 창립 · 윤필용 사건 ·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 · 서울어린이대공원 개장 · 1973 서울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 화전민정리 5개년 계획 수립 · 포항종합제철소 준공 · 대덕연구단지 착공 · 불국사 복원공사 준공 ·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정 · 김대중 납치 사건 · 소양강댐 준공 · 제1차 오일쇼크 ·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 · 태백선 고한-황지 구간 개통(완공) · 호남고속도로 전주-순천 구간, 담양지선 개통(완공) · 남해고속도로 개통 · 친아랍 성명 4개 조항 발표
1974년 율곡사업 추진 · 긴급조치 1·2호 선포 · 긴급조치 3호 · 현대울산조선소 제1호선 진수 · YTL30호 침몰 사건 · 서울/부산 고등학교 평준화 첫 실시 · 창원국가산업단지 조성 · 민청학련 사건 · 긴급조치 4호 선포 · 팔당댐 준공 · 속초해전 · 제2차 인민혁명당 사건 · 박정희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 ·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 · 수도권 전철 1호선 개통 · 새마을호 운행 시작 · 긴급조치 1·4호 해제 · 현대조선폭동사건 · 대왕코너 화재사고 · 주안국가산업단지 준공 ·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
1975년 제4차 국민투표 · 한강 이북지역 택지개발금지조치 · 핵확산금지조약 비준 · 민방위 결성 · 긴급조치 7호 선포 ·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사형 집행 · 김상진 할복 사건 · 종합무역상사 제도 실시 · 여의도 국회의사당 준공 · 영동고속도로 새말-강릉 구간 개통(완공) · 동해고속도로 개통 · 여천석유화학단지 기공 · 학원 침투 간첩단 사건 ·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개장 · 1975 서울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1976년 포항 석유 발견 사건 ·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 한독맥주 사건 ·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 서울 UFO 격추미수 사건 ·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 난동 사건 · 한국수출입은행 발족 · 잠수교 개통 · 국산자동차 현대 포니 첫 수출 · 코리아게이트 · 안동댐 준공 · 함평 고구마 사건 · 직업훈련기본법 제정
1977년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 백지계획 발표 · 박흥숙 살인사건 · 월성 원자력 발전소 기공 · 고리 원자력 발전소 1호기 가동 · 의료보험 시행 · 부가가치세 시행 · 남해화학 여수공장 완공 · 반국가행위자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 · 구마고속도로 개통 · 이리역 폭발사고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 발족 · 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 · 여천석유화학단지 준공 ·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 · 제9대 대통령 선거 · 8.8 조치 시행 · 백곰 미사일 발사 성공 · 자연보호헌장 선포 ·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사건 ·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1979년 서울 지하철 2호선 착공 · 정부 제2청사 착공 · 보문관광단지 개장 · 고리 원자력 발전소 3, 4호기 착공 · 2차 오일 쇼크 · YH 사건 · 성수대교 개통 · 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 파동 · 김형욱 실종 사건 · 부마항쟁 · 삽교천방조제 준공 · 10.26 사건 · 최규하 권한대행 체제 · 서울의 봄 · YWCA 위장결혼식 사건 · 12.12 군사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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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나마 1969년 중앙정보부장에서 물러난 후 백수로 야인 생활을 하다가 1971년 민주공화당 전국구 5번으로 제8대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불과 1년 만인 1972년 10월 유신으로 국회 자체가 해산되면서 의원직을 자동 상실하였다.[2] 어떻게 보면 김형욱은 남한판 이한영으로 볼 수 있다. 둘 다 독재자의 측근으로 한때는 본국에서 호의호식했다는 점과 타국에 망명해 조용히 살다가 회고록을 출판해 본국의 독재자에게 어그로를 끌어 망명국 땅에서 암살당했다는 점까지 똑같다.[3] 훗날 중앙정보부장 직무대행을 역임했다.[4] 김형욱과 친분이 있던 어느 여자 배우의 회유와 연락을 받고 프랑스 파리로 갔다는 이 있었으나 그때 파리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발견되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5] 이 점 때문에 10월 7일 사망이 아니라 10월 8일 사망이라고 추정하는 경우도 있다. 애초에 서울과 파리는 7시간 차이가 나기 때문에 한국 시간으론 이미 10월 8일이다.[6] 그런 거 신경 쓸 새도 없이 1979년 10월 16일~20일에 부마항쟁이 일어나서 진압하느라 바빴다. 물론 김형욱 실종 건에 대해 미국 지미 카터 행정부의 한국에 대한 압박도 상당했지만.[7] 이상열은 예전부터 김재규와는 각별한 사이였다고 한다. 김재규가 과거 3사단 부사단장을 지낼 때 이상열이 그의 부관이었고 김재규가 보안사령관을 지낼 때도 함께 보안사에 근무했으며 김재규의 동생 김항규와 이상열은 젊은 시절부터 오랜 친구이기도 했다.[8] 진실위는 이상열 공사가 이때 김재규 부장에게 김형욱 살해 계획을 보고하고 소련제 소음 권총과 독침을 수령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9] 당시 발표에 따르면 A요원은 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정보부를 그만두었고 B요원은 상당 기간 재직하며 고위 간부에 올랐다고 한다. A요원과 B요원이 종교에 의지하며 정신적인 고통을 견뎠다는 일화는 조사 결과 발표 당시 실제로 공개되었던 내용이다.[10] 하지만 김형욱을 정권에 위협이 되는 인물로 판단하고 그를 제거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제거를 명령한 명령권자조차도 제거 대상의 생사를 모호하게 알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정권 차원에서는 김형욱의 생사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저 사회에 나타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고 명령권자가 시신을 직접 확인했다면 그런 시도 자체가 살해 사주를 했다는 근거가 되며 표적의 제거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가 하는 것 자체가 살해 동기나 살해범을 추론하는데 혼선을 줄 수 있다.[11] 국정원 후배들도 진실을 위해 이제 증언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정보기관 출신은 비밀을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한다"며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12] 이 부분은 요원들의 연막일 수 있다. 정석대로 분해해서 인멸했어도 아예 한겹 더 덮어 분실했다고 하는 것.[13] 물론 이 보고서의 정보 소스가 일본 정부-주미 일본 대사관-미국 국무부-주한 미국 대사관이라는 4단계 전언이라는 점은 상당한 약점이다.[14] 이 주장대로면 실종 이전에도 이미 공작에 당할 뻔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도망 다니는 와중에 화를 낼 일이라면 이런 공작 정도다.[15] 김기영의 1971년 영화 화녀에 납치한 여자를 갈아넣어 닭 먹이로 준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이 설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화녀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2009년 영화 실종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16] 여러 기사를 미루어 보아 동일한 이름으로 소개되긴 하는데 해당 이름이 가명인지 실명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17] 나중에 영화화된다.[18] 그러나 해당 인물이 프랑스와 파리의 지리나 정확한 살해 장소를 특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반박되지 못했다.[19] 김진명은 자신의 소설에서 이 설을 채택했다.[20] 신상옥 감독은 사건 당시 전 아내 최은희와 함께 납북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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