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에서 일어난 다른 학교폭력 사건에 대한 내용은 대구 중학생 학교폭력 생중계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
2011년 12월 20일 오전 8시, 덕원중학교[1][2]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남중생 권승민 군(이하 권 군, 당시 만 13세)이 집단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 소재의 자신의 7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이다. 해당 사건 위키백과 링크이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 사건으로 알려져 있으며, 2011년 말에 우리나라의 국민과 학부모들에게 허탈감 및 공분을 안겨 준 사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소년은 길고 긴 유서를 남겼으며, 유서에 나오는 가해자들의 가혹행위가 너무 잔인해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하였다. 이 사건 이후로 한국 사회는 학교폭력에 극히 민감하게 되었으며, 경찰청은 교육부의 협조 아래 학교폭력 가해자가 미성년자일지라도 강경 처벌하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
가해자들은 학년 초인 3월 중순부터 12월까지 9개월 동안 피해학생 권 군에게 "넥슨의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를 대신 해 달라"고 명령하듯이 강요해서 강제로 컴퓨터 게임을 시켰다. 또 이들은 권 군의 돈을 빼앗기 위해 은행 통장과 현금카드를 갈취하여 계좌 비밀번호를 알아내 돈을 강제로 인출하여 빼앗았다. 갈취한 돈은 모두 간식과 PC방 목적의 유흥비로 탕진해 버리고, 만일 계좌 비밀번호를 말하지 않거나 틀린 비밀번호를 알려 주면 가차없이 처참하게 마구 두들겨 패는 만행을 저질렀다. 자신들의 숙제를 대신 시키거나 술, 담배를 사오게 하는 심부름 따위를 시킨 것은 기본이었고, 자신들이 갖고 싶은 고가의 물건이 있으면 인터넷 쇼핑몰에서 강제로 주문시켜 자신의 집으로 배달을 시키고,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자기네들끼리 배달시켜서 실컷 먹고 나서 음식값은 권 군에게 계산하라고 강요를 했다. 심지어는 약값이나 병원 진료비까지 요구했다. 만일 권 군이 참다못해 화내면서 대들고 반항하거나 자기들의 명령을 듣지 않으면 주먹과 발, 심지어는 각목이나 철근, 야구방망이 같은 흉기로 수십분 동안 수십 번씩 두들겨 패는 것은 기본이고, 라디오를 들게 하고 무릎을 꿇리고 물고문에다 라이터불로 화상을 입히려 위협을 하는 등 성인 조폭들보다 더한 이루 말할 수 없는 심한 폭행과 모욕을 가했다. 한편 희생된 권 군에게 온라인 게임을 자기들 대신 할 것을 강요했으니 가해자들이 집단괴롭힘을 가한게 가해자들이 게임에 중독돼서 그런 것으로 치부되어 선처가 요구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가해자들의 현재 나이는 만 [age(1997-12-20)]~[age(1997-01-01)]세이다.
2. 조사
사건 발생 3일 후(2011년 12월 23일) 대구수성경찰서는 피해자 권 군이 유서에서 가해자로 지목한 서원규(14), 우재관(14) 학생을 불러 조사하였다. 서원규, 우재관은 대체로 유서의 내용을 시인했으나 "장난으로 한 일인데 이렇게 되고 말았다"면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 형사미성년자가 아닌 만큼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피해자 권 군의 교우관계는 생전에 매우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2~3명 정도 소수 가해자들이 권 군을 괴롭힌 곳은 학교보다는 주로 권 군의 집이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왕따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우동기 당시 대구광역시교육감은 "대구 교육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면서 반성의 뜻을 나타냈다.
휴대전화에 들어 있던 문자 메시지를 복원했는데 더욱 끔찍한 정황이 나타났다. #, 아카이브
피해자 권 군의 친형(2011년 당시 고1, 1995년생)은 자신이 하나뿐인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면서 자책하며 지냈다고 한다. #
이후 교사인 어머니의 인터뷰도 올라왔다. #
3.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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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그동안 말을 못하지만, 매일 라면이 없어지고, 먹을 게 없어지고, 갖가지가 없어진 이유가 있어요. 제 친구들이라고 했는데, 서원규하고 우재관이라는 애들이 매일 우리 집에 와서 절 괴롭혔어요. 매일 라면을 먹거나 가져가고 쌀국수나, 용가리, 만두, 스프, 과자, 커피, 견과류, 치즈 같은 걸 매일 먹거나 가져갔어요.
3월 중순에 XXX[3]라는 애가 같이 게임을 하자고 했는데, 협박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때부터 매일 컴퓨터를 많이 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그 게임에 쓴다고 제 통장의 돈까지 가져갔고, 매일 돈을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 등수는 떨어지고, 2학기 때쯤 제가 일하면서 돈을 벌었어요. (그 애들이) 계속 돈을 달라고 해서 엄마한테 매일 돈을 달라고 했어요.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담배도 피우게 하고 오만 심부름과 숙제를 시키고, 빡지까지 써 줬어요. 게다가 매일 우리 집에 와서 때리고, 나중에는 XXX[4]이라는 애하고 같이 저를 괴롭혔어요.
키우라는 양은 더 늘고, 폭행 정도도 늘고, 수업시간에는 공부하지 말고, 시험 문제 다 찍고, 돈 벌라 하고, 물로 고문하고, 모욕을 하고, 단소로 두들겨 패고, 우리 가족을 욕하고, 문제집을 공부 못 하도록 다 가져가고, 학교에서도 몰래 따돌리고, 온갖 심부름과 숙제를 시키는 등 그런 짓을 했어요.
12월에 들어서 자살하자고 몇 번이나 결심을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 아빠가 생각나서 저를 막았어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저도 정말 미치겠어요. 또 밀레 옷을 사라고 해서 자기가 가져가고, 매일 나는 그 녀석들 때문에 엄마한테 돈 달라 하고, 화내고, 매일 게임하고, 공부 안 하고, 말도 안 듣고 뭘 사 달라는 등 계속 불효만 했어요. 전 너무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엄마에게 너무 죄송했어요. 하지만 내가 사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 가족이었기에 쉽게 죽지는 못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제 몸은 성치 않아서 매일 피곤했고, 상처도 잘 낫지 않고, 병도 잘 낫지 않았어요. 또 요즘 들어 엄마한테 전화해서 언제 오냐는 전화를 했을 거예요. 그 녀석들이 저한테 시켜서 엄마가 언제 오냐고 물은 다음 오시기 전에 나갔어요.
저, 진짜 죄송해요. 물론 이 방법이 가장 불효이기도 하지만, 제가 이대로 계속 살아있으면 오히려 살면서 더 불효를 끼칠 것 같아요. 남한테 말하려고 했지만, 협박을 했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쯤에 김○○이나 윤○○이란 애들이 자세하게 설명해 줄 거예요.
오늘은 12월 19일, 그 녀석들은 저에게 라디오를 들게 해서 무릎을 꿇리고 벌을 세웠어요. 그리고 5시 20분쯤 그 녀석들은 저를 피아노 의자에 엎드려 놓고 손을 봉쇄한 다음 저를 폭행했어요. 또 제 몸에 칼등을 새기려고 했을 때 실패하자 제 오른쪽 팔에 불을 붙이려고 했어요. 그리고 할머니 칠순잔치 사진을 보고 우리 가족들을 욕했어요. 저는 참아 보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걔들이 나가고 난 뒤 저는 제 자신이 비통했어요. 사실 알고 보면 매일 화내시지만, 마음씨 착한 우리 아빠, 나에게 베푸는 건 아낌도 없는 우리 엄마, 나에게 잘 대해 주는 우리 형을 둔 저는 정말 운이 좋은 거예요.
제가 일찍 철들지만 않았어도 저는 아마 여기 없었을 거예요. 매일 장난기 심하게 하고 철이 안 든 척했지만, 속으로는 무엇보다 우리 가족을 사랑했어요. 아마 제가 하는 일은 엄청 큰 불효인지도 몰라요. 집에 먹을 게 없어졌거나 게임을 너무 많이 한다고 혼내실 때, 부모님을 원망하기보단 그 녀석들에게 당하고 살며 효도도 한 번도 안 한 제가 너무 얄밉고 원망스러웠어요. 제 이야기는 다 끝이 났네요. 그리고 마지막 부탁인데, 그 녀석들은 저희 집 도어키 번호를 알고 있어요. 우리 집 도어키 번호 좀 바꿔 주세요. 저는 먼저 가서 100년이든 1000년이든 저희 가족을 기다릴게요.
12월 19일 전 엄마한테 무지하게 혼났어요. 저로서는 억울했지만,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그 녀석들은 그날 짜증 난다며 제 영어 자습서를 찢고 3학년 때 수업하지 말라고 XXX은 한문, XXX는 수학책을 가져갔어요. 그리고 그날 제 라디오 선을 뽑아 제 목에 묶고 끌고 다니면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라 하였고, 5시 20분쯤부터는 아까 한 이야기와 똑같아요.
저는 정말 엄마한테 죄송해서 자살도 하지 않았어요. 어제(12월 19일) 혼날 때의 엄마의 모습은 절 혼내고 계셨지만, 속으로는 저를 걱정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냥 부모님한테나 선생님, 경찰 등에게 도움을 구하려 했지만, 걔들의 보복이 너무 두려웠어요. 대부분의 학교 친구들은 저에게 잘 대해 줬어요. 예를 들면 윤○○, 김○○, ○○○, ○○○, 최○○, 이○○, 장○○, 황○○, 최○○, 전○○, 이○○, 장○○, 이○○, 김○○, 남○○, 유○○ 등 솔직히 거의 모두가 저에게 잘 해 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에요. 저는 매일매일 가족들 몰래 제 몸의 수많은 멍들을 보면서 한탄했어요.
항상 저를 아껴 주시고 가끔 저에게 용돈도 주시는 아빠, 고맙습니다.
매일 제가 불효를 했지만 웃으면서 넘어가 주시고, 저를 너무나 잘 생각해 주시는 엄마, 사랑합니다.
항상 그 녀석들이 먹을 걸 다 먹어도 나를 용서해 주고, 나에게 잘 해 주던 우리 형, 고마워.
그리고 항상 나에게 잘 대해 주던 내 친구들, 고마워.
또 학교에서 잘하는 게 없던 저를 잘 격려해 주시는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 저희 집 도어키 번호를 바꿔 주세요. 걔들이 알고 있어서 또 문 열고 저희 집에 들어올지도 몰라요.
모두들 안녕히 계세요.
아빠, 매일 공부 안 하고 화만 내는 제가 걱정되셨죠? 죄송해요.
엄마, 친구 데려온답시고 먹을 걸 먹게 해 준 제가 바보스러웠죠? 죄송해요.
형, 매일 내가 얄밉게 굴고 짜증 나게 했지? 미안해.
하지만, 내가 그런 이유는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란 걸 앞에서 밝혔으니 전 이제 여한이 없어요. 저는 원래 제가 진실을 말해서 우리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지만, 제가 진실을 말해서 억울함과 우리 가족 간의 오해와 다툼이 없어진 대신, 제 인생 아니 제 모든 것들을 포기했네요. 더 이상 가족들을 못 본다는 생각에 슬프지만 저는 오히려 그간의 오해가 다 풀려서 후련하기도 해요. 우리 가족들, 제가 이제 앞으로 없어도 제 걱정 없이 앞으로 잘 살아가기를 빌게요.
저의 가족들이 행복하다면 저도 분명 행복할 거예요. 걱정하거나 슬퍼하지 마세요. 언젠가 우리는 한 곳에서 다시 만날 거예요. 아마도 저는 좋은 곳은 못 갈 것 같지만, 우리 가족들은 꼭 좋은 곳을 갔으면 좋겠네요.
매일 남몰래 울고 제가 한 짓도 아닌데 억울하게 꾸중을 듣고 매일 괴롭힘 당하던 시절을 끝내는 대신 가족들을 볼 수가 없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그리고 제가 없다고 해서 슬퍼하시거나 저처럼 죽지 마세요. 저의 가족들이 슬프다면 저도 분명히 슬플 거예요. 부디 제가 없어도 행복하길 빌게요.
-우리 가족을 너무나 사랑하는 막내 권승민 올림-
P.S. 부모님께 한 번도 진지하게 사랑한다는 말 못 전했지만, 지금 전할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 권 군이 죽기 전 남긴 유서
이 유서만 봐도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잔혹하게 폭력을 행사했는지 알 수 있다.
4.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난 문제점들
당시에는 117이 없다든가 긴급번호라도 되지 않는 등 학교폭력에 대한 빈틈이 많았다.4.1. 언론사의 무신경함
해당 사건과 일련의 집단괴롭힘에 대한 언급 혹은 TV 토론 등에서 몇몇 인물들과 일부 언론에서 기사제목 혹은 내용에 '친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학교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단지 같은 반이나 같은 학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친구'라고 표기하였던 것이다.그러나 이는 엄연히 따지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인데 피해자에게 가해자는 절대로 친구가 아니다. 당연히 친구라고 불러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들은 인정받고 싶은 것 등에만 앞선 나머지 간접적으로 한 사람의 생명을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 반칙 행위를 한 범죄자에 불과하다. 당장 친구의 사전적 정의를 확인해 보면 이게 왜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친구는 서로 돕는 관계인데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러한 것은 비단 이 사건만이 아니라 학교를 배경으로 한 사건을 언급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고질적이고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같은 반에 있는 동급생 = 친구"라는 전혀 맞지도 않는 공식은 학교 내에서의 인간관계 및 구성을 도매금으로 묶어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인식이 학교폭력에 대해 무관심하고 알면서도 '친구끼리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무심하게 여겨지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
즉, 한국 사회가 여태껏 학교폭력을 어떠한 시선으로 보아 왔는지가 저 '친구'라는 단어에 집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표현은 고인과 유족에 대한 명예훼손일 뿐만 아니라 사건의 중대성을 왜곡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엄연히 피해자하고 가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이며 친구라는 표현으로 묶을 근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하지만 자살한 소년하고 가해자 2~3명은 결코 친구 사이라고 할 수 없다. 그저 일방적인 피해자하고 인면수심의 가해자에 불과하다. 가해자들이 저지른 악행은 마음을 터놓고 사귀는 벗에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또 유서에도 피해자가 가해자들을 친구라고 부르는 부분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애초에 서로를 친구라 부르는 사이에서 이런 비극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지 않을지 생각하게 한다.
이 '친구' 오용의 여파 때문인지 피해자의 유골함을 찾은 가해자 중 한 명인 우 모군이 사죄한답시고 남긴 메모 내용을 보면 시작부터 "여기 못난 친구 ○○가 왔어." 라고 시작해서 "못난 친구가"로 끝맺는다. 앞뒤 정황을 모르는 사람이 이 메모만 보면 친구끼리 장난이 지나쳐서 벌어진 비극쯤으로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이 효과를 노리고 친구도 아닌데 그렇게 편지를 썼을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나왔다. 후에 했던 짓을 보면 아무래도 노렸을 확률이 높다.
4.2. 고인 모욕
4.2.1. 교직원들의 망언
이런 가운데 덕원중학교 교감이라는 사람이 "자살한 애를 영웅 만들 일 있냐?"는 후안무치한 망언을 했다. 거기에 교사라는 사람들은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 강 건너 불 구경 왔냐고 화를 내는가 하면 "니들 자식이 당해봐야 알겠지" 라고 화를 내며 교무실을 나가 버리는 교사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교내의 문제가 아니라 한 학생이 괴롭힘으로 너무 힘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고 당시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었다. 이에 기자들이라면 공교육 문제, 한국의 교육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취재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교사의 입장에서 취재 기자들이 불편했을지 모르겠으나 자신들이 책임이 있는 만큼 자세를 낮추는 것이 도리임에도 불구하고 뻔뻔히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려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였다. 특히 '고인드립성 발언'은 교사로서 할 말의 수준을 넘어서 스스로 인간임을 부인하는 발언이다. 심지어 해당 교감은 덕원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덕원중학교 교감으로 부임한 첫 해부터 저런 후안무치한 망언을 내뱉었다.
[기자수첩] 애꿎은 학생 죽음 선택했는데… 학교는 "지금 여론 안 좋아 가만히 있지만…"
이런 태도로 인해 덕원중학교 교직원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른다는 비난을 받았다. 일부 기사에서는 이 학교 교사 등이 피해 학생을 지켜주지 못해서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어이 상실의 기사를 내보냈지만 정작 그들은 죄책감은 커녕 피해자가 자살을 하는 바람에 자신들에게 성가신 일이 생겼다는 태도[5]를 보였다. 사건이 드러나 이 때문에 자신들의 지위에 위협을 받고 여기저기 불려다니게 된 것에 대해 불만을 품은 교만으로밖엔 볼 수 없는 것.
또 당시 교사들의 지시사항은 '국화 등 개인적인 추모 내용 전면 금지' 및 '기자들과의 접촉 일절 금지'였다. 그 이유는 학생들의 학업 분위기 조성, 학생들의 신상 보호였다. 그러나 학년 말이었던 점, 기자들이 신원 보호를 안 할 리가 없다는 점에서 그 속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었다.
4.2.2. 정치인들의 망언
몇몇 국회의원은 빵셔틀이 뭔지도 모르고 까짓 것 심부름 좀 시킬 수 있는 거 아니냐는 태도를 보였다. 이 정도면 모르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무시하는 쪽에 가깝다. 실제로 학교폭력 사건의 상당수는 학교에서 관리자들이 자신들의 자리만 챙기려고 '피해자가 죽건 말건 학교가 무법천지가 되건 말건 무슨 상관이야. 내 자리만 지키면 그만이지'라는 투로 은폐하려 들다가 자살 등의 사태로 이어져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된 경우가 대부분. 사건 이후 각종 방송국에서 벌어진 학교폭력 관련 토론들에서도 이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학교폭력 사건들을 단지 친구들끼리 일어날 수 있는 안타까운 일로 치부하는 공직자들의 무지가 여실히 드러났다.5. 후폭풍
이 사건 이후 덕원중학교에 미친 후폭풍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었다. 특이하다고 할 만한 점은 이 사건이 발생한 시점에서 덕원중학교는 거의 공황상태가 되었고 이 점이 기사화되는 바람에 사건 발생 이듬해(2012년)부터 매년 예비 중학생(초등학교 6학년 학생. 당시 1999년 3월~2000년 2월 출생자들.)들이 그 학교의 진학을 꺼렸다.또 가해자 서원규가 피해자에게 해킹된 자신의 메이플스토리 계정을 키울 걸 요구하면서 이를 위해 협박, 폭행한 것이 드러나면서 한동안 게임 중독 문제로도 번질 기미를 보였다.[6]
10대의 자살 건수가 2009년 기준으로 1년에 약 440여 건인 점을 감안할 때[7] 앞의 사건 보도로 인한 것인지는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확실한 점은 이 사건 이후 청소년들의 자살 사건에 대한 언론사들의 관심이 급증했으며 이 사건들을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8]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의 태도가 변모하였다. 사건 전에는 여성, 청소년 관련 부서에서 처리하였고 웬만하면 훈방조치하던 사건을 반드시 근절해야 하는 민생치안 현안으로 보고 상습적인 교내외 폭력의 경우에는 구속수사[9]도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인 것.[10]
사실 이 조치는 굉장히 때 늦은 조치다. 예를 들어 중학교 1학년 때 전학간 가해 학생이 2학년 때 다시 돌아오는 상황은 그동안 수없이 많았고 줄곧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그럼 뭐 애를 감빵에 넣어 인생 조지란 거냐.", "너도 언제까지 피해자 노릇 할 거냐 작작해라."는 분위기가 그동안 전반적으로 지속되어 왔다. 당연히 이는 피해자의 심리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안하무인, 적반하장성 망언이다.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고통은 물론이며 그로 인한 후유증은 절대 쉽게 치유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해자 쉴드와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와 다를 게 없다.
이 사건 보도 이후에 학교폭력으로 인한 청소년들의 자살 사건이 연이어 보도되면서(광주·청주서도 목숨 끊어… ‘모방자살’ 우려, 아파트서 중학생 목매 숨진 채 발견 등) 얼마 동안 학교폭력 중지에 초점을 맞추는 듯했으나 1달도 지나지 않아서 미디어 규제와 게임 과몰입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여론이 흘러갔다. 심지어 여론을 뛰어넘어 밑에 학생이라고 안 봐준다는 제목의 링크와는 안 맞게 가해 학생들의 '낙인'을 찍을까봐 우려된다는 이유로 생기부 피해를 주는 것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도 피해자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는다며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
5.1. 왜 반향이 컸는가?
학교폭력 때문에 벌어진 자살 사건은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건들이 별다른 일 없이 묻혀 버린 것과는 달리 이 사건은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까닭을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실제로 이 사건이 전국적으로 화제가 된 배경에는 씁쓸하게도 한국 사회의 위선과 모순, 그리고 정치적 의도가 깊이 담겨 있다.- 1. 피해자가 남긴 유서가 제법 명문이고 어른들이 선호하는 생각하는 '착하고 어른스러운 아이'의 관념에 부합하고 있다.
만일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부모에게 원망을 토해내는 유서였다면 효의 관념에 어긋난다고 여긴 어른들의 손에 의해 세상에 공개되지 못하고 묻혔을 것이다. 실제로 집단괴롭힘으로 자살한 경우 유서에 부모나 교사를 원망하는 내용이 잔뜩 들어 있는 일이 많다. 이런 경우는 내용이 공개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11]
- 2. 피해자가 성실하고 학업 성적이 좋았으며 교우 관계가 원만하고 번듯한 교사 집안의 자녀였다.
피해자는 공부를 잘 하고 착하고 성실한, 일반적으로 어른들이 생각하는 모범생의 범주에 드는 학생이었다. 따라서 "공부 잘하는 아이"가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 공격당한 상황이 학업 성취도를 중시하고 교과 성적에 대한 보상체계가 각별한 한국 사회에 적절하게 와닿았다. 집단괴롭힘이 한국 교육의 지상명제인 공부를 방해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렸기 때문이다.
물론 집단괴롭힘은 특별한 동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가해자의 재미를 위해 벌어지는 것이므로 예외 사례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실제 학교에서는 또래들에 비해 키가 크거나, 작거나, 살이 쪘거나, 말랐거나와 같은 요인으로 인해 "조금 다르다고" 집단 괴롭힘을 일삼는 경우 역시 많다. 다만 일반적으로 집단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의 다수가 장애가 있거나 다문화가정의 아이라든가, 공부를 못하거나 신체적으로 약하거나 싸움을 못 하거나 소통능력이나 대화 능력, 사회성에 어느 정도 문제가 있는 등의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이렇게 취약한 아이들이 괴롭힘에 대한 저항능력이 약하므로 보다 만만한 먹잇감이 되기 때문이다. 보호자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는 사회적 지위가 있는 중산층 이상의 아이들과는 달리 취약 계층의 아이들은 보호자의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너무 없어서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므로 오히려 이들이 더 심각하다.
그러나 정작 보호를 받아야 할 이런 아이들이 당하고 있을 때는 무감각했다는 점에서 착하고 공부 잘 하는 아이만이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한국 사회의 위선을 드러낸 것이다. 즉 공부 못하면 보호받을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암암리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 3. 게임에 책임을 돌릴 수 있다.
가해 학생들이 온라인 게임을 억지로 시켰기 때문에 메이플 스토리와 넥슨에 책임을 돌려서 셧다운제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문제가 생겼다. 셧다운제 역풍을 맞고 있던 학부모 단체에게는 집단괴롭힘 문제를 빌미로 삼아 셧다운제를 정당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즉, 이 사건은 게임에 중독된 학생들이 일으킨 것이라고 몰아갈 수 있으며 이 사건을 부풀린 측의 뒤에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인터넷의 발달로 대중의 공론장이 생겼다고 생각하면서 그 발전에 이바지한 IT 업계와 인터넷이라는 개념 자체를 싫어하는 기성 보수 언론, 그리고 셧다운제를 추진한 학부모 단체가 있다. 쉽게 말해서 피해자 권 군은 이들로부터 고인드립을 당한 셈이다. 죽은 사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었지만 권 군처럼 악용당한 사례는 드물다.
실제로 셧다운제 덕분에 피해학생이 게임하지 않을 수 있었다(삭제됨)고 주장하는 기사가 올라온 것을 시작으로[12] 이 사건으로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한 문화관광부, 교육과학기술부를 이명박 정부가 밀어줌으로써 셧다운제 + 쿨링 오프제라는 헬게이트 코미디를 빚어내기에 이르게 되었다.[13] 셧다운제는 11년만인 2022년 폐지되었으나 쿨링 오프는 항목에서 정리되었듯 이명박근혜 집권기가 끝난 후에도 여성가족부가 개입할 여지가 남아 있다.
- 3-1. 게임만이 아니라 만화(웹툰)에도 책임을 돌렸다.
조선일보에서 1면을 동원하여 귀귀의 열혈초등학교를 조준사격하였다. 다만 열혈초등학교는 이 사건 이전에도 괴기한 드립과 과도한 폭력으로 인해 야후 웹툰 내에서도 논란이 있었던 작품이다. 언제건 논의되었어야 할 대상이라는 것.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
- 4. 일부 보수 세력에서 학생인권조례를 공격할 명분을 찾고 있었다.
이런 안타까운 비극이 정치 세력들의 정치싸움 용도로 변질되는 모습도 보였는데 사건이 이슈가 된 당시 학생인권조례가 좌우 정치 싸움의 연장선에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었기 때문에 해당 사건을 끌어들이는 경우도 잦았다.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이들은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체벌이 금지되어서 교사들의 교권이 서지 않아 학교의 질서가 무너졌고, 이 때문에 집단괴롭힘과 자살 문제가 벌어지게 되었다"는 논리를 이용해서 학생인권조례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교조가 이 사건에 대해서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침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교조가 해당 학교폭력 사태에 목소리를 낼 경우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세력의 논리에 끌려갈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조선일보 보도) 사실 사건이 일어난 당시 학생인권조례가 실시된 지역은 경기도뿐이었고 사건이 일어난 대구는 조례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둘을 결부시키는 것은 심각한 논리확대이다" 라는 지적이 많았다. 상술했듯이 정치 싸움에 비극적인 사건을 끌고 와서 논쟁을 이어간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와 무관하게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인 2011년 3월 18일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부터 학교 내 체벌은 전국적으로 금지되었고 2020년대 들어서는 학생인권조례 시행 여부나 정치 성향과는 관계 없이 학생에 대한 체벌이 아동 학대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201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학생을 계도하기 위해 체벌을 가해야 한다는 대중적인 시선과 초중등교육법 개정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체벌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체벌로써 이런 사건을 막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양 진영의 정치 논란은 둘째치고 체벌로써 교권이 서고 체벌로 학생을 다스려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한국인은 패야 말을 잘 듣는다로 대표되는 전근대적인 교육관을 잘 보여주는데 2010년대 이전부터 서구권의 아동 심리학자들과 교육학 박사들은 체벌이 학생의 폭력성을 증가시키고 지능 발달을 저해한다는 연구결과를 다수 발표했다.(# #) 달리 보면 체벌이 이 사건과 같은 잠재적인 가해자를 도리어 늘릴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셈이다. 또한 디시인사이드에 당시 학생이었다고 주장하는 유저가 쓴 글을 보면, 도리어 해당 학교는 체벌이 존재했고 학생 인권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증언이 있다. # 이미 문제의 학교 관계자들이 각종 망언을 행하기도 했고, 정치 싸움의 용도로 사건이 이용됐다는 점에서 위의 게임 책임론과 마찬가지로 피해자가 고인 모독을 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중대한 사건에 대해 사회가 면역을 갖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 수능 관련 자살 사건이 매년 수십건은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무감각한 것과 마찬가지로 집단괴롭힘 자살도 '으레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여겨지게 된다면 모처럼의 반향도 결과 없이 끝나게 될 가능성이 있다.
6. 사건 후에도 반성 없는 가해자들
위와 같이 "가해자들도 후회하고 있으며, 자살할지도 몰랐고, 괴로워하니까 봐주자"는 식의 기사가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위의 기사들을 몽땅 뒤집어 엎는 소름끼치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들은 물고문을 가한 지 며칠 뒤 다시 물고문을 하려고 계획했다.
범법자가 될 수 있는 문제를 일으켰음에도 권 군의 자살 사실을 알고서도 서로 장난치며 자신들은 처벌 안받는다며 키득대는 등 일말의 죄의식조차 가지지 않았다.[14] 기사
기사에 나온 사진 속 문자 내용만 봐도 이들이 일말의 죄의식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멍청하게 자신들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삭제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지운다 해도 통신사 서버에는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이것들이 흘린 눈물은 동정심을 모으기 위한 악어의 눈물에 불과했다.
이것으로 가해자들은 정신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정상의 범위 내에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기사에 의하면 가해 학생을 용서하려고 매일 기도한다던 피해 학생의 어머니도 아들이 물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할 말을 잃었으며 이후에는 "가해자들을 엄벌에 처하라"고 입장을 바꾸었다.
2021년 스포츠계, 연예계 학교폭력 고발 사건에 즈음하여 진행한 피해자 어머니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들은 이 사건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과하러 오지 않았다고 한다. # 피해자 어머니의 인터뷰가 진행된 2021년은 이들이 이미 교도소에서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지 6년~7년 정도 지난 시점이며 피해자 가족은 혹시 이들이 찾아와서 사죄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사도 가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 사건 이후 [age(2011-12-20)]년이 지난 후에도 가해 학생들은 피해자 가족들에게 끝내 진정한 의미의 사죄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가해자들의 근황은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런 태도를 보면 가해자들이 죄는 씻을 수 있습니다 흉내를 내며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고 살고 있는게 분명하다.
7. 구속 후 가해자들의 태도를 보는 사람들
구속 후 가해자들의 태도를 보는 관점이 크게 다르다. 적지 않은 뉴스 기사들과 사람들은 가해자들을 무슨 양심수라도 되는 듯이 비장하고 가련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보는 망언을 일삼았다. 때문에 "가해자 쪽으로부터 뇌물 먹은 게 아닌가" 하는 음모론성 주장도 나올 정도였다. 이건 뇌물의 사실 여부와는 상관 없이 가해자들을 감싸려는 잘못된 보도 태도이다. 이는 피해 학생을 두 번 죽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수감 ‘대구 자살 중학생’ 가해학생들 때늦은 눈물… 면회온 엄마에 “너무 미안해요” 불안한지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기도 한다. 후회해도 이미 엎지른 물인 것이다.
어떤 블로거는 자신의 블로그에 '가해자들의 행위가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개선될 수 있는 한때의 실수였고 이 사건은 가해자들만의 잘못이 아닌 이 사회 시스템의 잘못도 있고 더해서 가해자에게도 평생 동안 잊지 못할 상처가 될 테니 너무 가혹한 수준의 처벌을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15]]라고 적기도 했다. 당연히 상식적으로 온갖 고문을 하고 자살하고 나서도 죄책감은 커녕 히히덕거리는 행동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라는 말도 말같지도 않은 소리고 이런 악질 범죄자들의 상처 따위를 걱정하는 말 자체가 죄는 씻을 수 있습니다 흉내를 내는 정신나간 망언인지라 욕을 많이 먹었고 그 때문인지 글은 삭제되었다.
8. 재판
주범에 대해서는 징역 장기 4년에 단기 3년, 공범에 대해서는 징역 장기 3년 6월에 단기 3년의 형을 구형했다. 죄질이 나빠 엄벌이 필요하다는 까닭으로 구형된 것으로 법정 최고형이다. # 하지만 징역 1년 6개월 이상의 판결을 받으면 징병검사 없이 제2국민역[16]으로 전환되는(=군 면제) 것을 감안한다면 터무니없이 형량이 낮다는 의견이 많았다.피해자의 어머니는 재판에 나와서 엄벌을 해 줄 것을 재판부에 호소했다. #
주범의 변호인은 "책임회피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공소장에 자세히 나오는 것처럼 이번 사건은 소위 '짱'도 '일진'도 아닌 평범한 중학생이 저지른 일인 만큼[17]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엄한 처벌보다는 교화와 교육이 더 중요시돼야 한다"며 주범의 초교시절 교사가 제출한 탄원서와 함께 선처를 요청했다.
공범의 변호사는 "공범이 주범으로부터 폭행 등을 당하다 주범의 강요로 피해자를 괴롭히는데 가담한 만큼 이에 대한 정상참작이 필요하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결국 실형을 선고받았다. 주범은 장기 3년 6개월에 단기 2년 6개월, 공범은 장기 3년에 단기 2년. 형기 자체는 그리 길지 않다. #
2012년 6월 28일, 가해자들의 항소를 받아들여 각각 장기 3년과 장기 2년 6개월로 낮아졌고 상고를 기각하고 형을 확정시켰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소년범죄의 경우 웬만큼 심해도 집행유예나 보호처분이 나오는 것이 대세인 점에서 실형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며 매우 무거운 축에 속하는 것은 사실이다. 전과 기록에 남지 않는 소년원 송치도 아니고 징역이지만 전원 실형 2~3년을 받아 소년교도소 수감으로 군복무가 면제됐다는 것도 사실이다. 저 정도 형량이면 군대 갔다온 셈쳐도 무방할 정도. 게다가 어린 나이에 한 감방 생활은 티도 안 난다. 21살에 사람을 죽이고 살인의 최소 형량인 5년을 선고 받아 형량을 채우고 나온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바리스타 자격증 시험을 보고 카페를 차려 살아가기도 한다. 5년의 세월을 감방에서 보내긴 했지만 그래 봤자 아직 창창한 나이인 20대니까. 물론 이는 자영업의 경우 한해서고 정상적인 직장 취업은 절대 불가능하다.
다만 가해자들은 이 사건으로 인해 신상도 세간에 다 알려지고 나쁜 의미로 유명해지긴 했다. 그러나 얼굴은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근황도 공개되지 않았다.
2012년 8월 16일, 학교법인과 학교장, 교감, 담임교사, 가해 학생 부모 등을 상대로 유족들에게 3억 4천만~3억 6천만원씩 배상하라는 소송에서 원고에게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단, 사망 원인이 자살이기 때문에 실제 배상책임은 저 금액의 40%라고 한다. #
9. 특이점
유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피해자 권모 군의 교우관계와 학교생활은 좋은 편이었다. 이것은 소수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집을 장악하고 은밀하고 잔인하게 괴롭힌 케이스다. 피해자는 집이라는 최후의 피난처마저도 가해자에게 빼앗겼으며 가해자들은 휴대전화를 이용해 피해자를 끝도 없이 괴롭혔다. 피해자는 심리적 압박과 폭력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자격마저 박탈당한 셈. 그런 점에서 그 잔혹함과 수법이 매우 심각하다고 하겠다.피해자의 집이 주무대가 되다 보니 주위에서는 권 군의 피해 상황을 알 수 없었다. 가해자들은 권 군의 집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었다. 마음을 먹으면 언제든지 권군의 집에 들어와 권 군을 괴롭힐 수 있었다. 친구 2명이 권 군의 피해상황을 알고 그 사실을 담임교사에게 알리려고 했지만 권 군이 “나 맞아 죽는 거 보려느냐”며 말렸다고… 관련 기사 즉, 권 군에게 있어 교사는 부모를 포함하여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사태를 키울 뿐인 존재로 인식되었던 것이다.[18] 전술했던 이후 교사들의 반응을 생각해보면 교사들이 알아봤자 쉬쉬했을 것이고 오히려 보복당했을 것이다.
부부 모두 교사인 부모님이 직장생활로 부재 중인 시간에 피해자 집에 일어났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하자. 맞벌이가 보편화된 한국 사회에서 나타난 학교폭력의 새로운 형태에 가정과 학교, 사회가 모두 경각심을 가져야겠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고 이것이 강력한 후폭풍으로 작용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10. 가해자의 신상정보를 유포한 네티즌에 대해 수사
가해자 신상정보 유포자 수사 중 기사 내용에 따르면 일명 '신상털기'를 하거나 가해 학생 등의 사진과 이름 등 신상정보를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 유포한 네티즌 8명에 대해서는 수사를 계속했다고 한다. 이 수사가 경찰의 자발적인 수사인지 아니면 가해자 측에서 의뢰한 수사인지는 알 수가 없다.[19]11. 네티즌들의 반응과 결론
2000년대 초, 중, 고등학교를 다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와 비슷한 폭력을 한 번쯤은 보거나 심지어 심하면 겪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때는 학교에서 이미 왕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20] 동급생을 장애인 취급하는 행위나 빵셔틀조차 일상화되어 있었다.사건 이후의 가해자들의 태도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극히 일부 동정론도 있었으나 그마저도 위의 가해자들의 뻔뻔스러움의 극치를 달리는 인간 같잖은 반응이 나돌자 합심하여 가해자들을 까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인 12월 2일 대전광역시에서도 한 여고생이 동급생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아파트 14층에서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지적장애가 있는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한 고교생 16명에게 40시간 성교육 수강, 1년간 관찰이 다인 사실상 무죄판결을 내려 대중들과 교육계에 2배로 충격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갑이 차여지고 나서야 잠깐 눈물을 쏟고 마는 가해자들이 보여주는 죄책감과 죄인식의 미흡함은 그 어떤 경고와 교화의 말도 무색하게 만들었고 이 사건에서 보여진 윗분들의 인식과 권력을 지키기 위한 힘싸움,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집단괴롭힘과 타 문화의 배척 등으로 인해 정작 진정으로 해결해야 할 학교폭력 척결에 짙은 음영을 드리우게 되었다.
12. 사건 이후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지 채 1주일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덕원중학교 2학년에서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교우를 상대로 욕설 및 구타 등 다시 학교폭력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새 학년이 된 이후부터 실질적인 물리적 폭력은 거의 없어졌다. 그 계기가 단순한 처벌의 엄중함 때문이라는 씁쓸함은 있지만.[21]사건 이후 매년 학생들이 바뀌던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학교에서 그 사실은 사실상 전혀 거론되지 않았고, 교사들 중 덕원중을 떠난 이들도 있을 수도 있기에 당시 상황을 아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재학하던 학생들은 거의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사건으로 인해서 학교폭력에 대한 처벌이나 경각심의 수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 실시간으로 지켜보게 되었다.
2012년 1월 청와대 측은 '학교폭력 대응 태스크포스'를 구성했고 교육과학기술부도 '117 학교폭력신고센터'를 차리면서 뒤늦게나마 예방의 계기로 삼고 있다.
대구수성경찰서는 이후 '우리학교 경찰관'이라는 학교 내에 청소년계 경관이 직접 방문해 학교폭력 예방활동을 하는 제도를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다.[22] 2013년 대구광역시의 "우리학교 경찰관" 제도는 '학교전담경찰' 제도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가해/피해학생을 대상으로 멘토&멘티 활동, 가해학생 대상의 선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도 꾸준히 경찰이 참석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제도가 전국 각지에서 조금씩 다른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 경찰권이 학교 내부에 미치게 된 이후 아직까지 큰 효과는 없지만 사건 발생률만 놓고 보면 실시 초기에 비해 어느 정도 감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약 75곳에 달하는 수성구의 초ㆍ중ㆍ고등학교를 직접 방문하여 관리하는 외근경찰은 단 4명이다.
권 군의 어머니 임지영 씨는 사건 이후 전국 각지를 돌며 더 이상의 학교폭력을 막기 위해 활동하는 중이다. 2013년 3월에는 KBS대구방송총국의 세상을 잇는 담쟁이 <학교> 편 2부에서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기도 했다.[23]
가해자들은 장기형을 받았다면 2015년 하반기에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을 것이며 단기형을 받았다면 2014년 하반기에 교정 당국의 평가를 받고 조기출소했을 수도 있거나 단기형을 마치기도 전에 가석방되어 출소했을 수도 있다.[24] 출소 후 가해자들은 개명하고 식구들과 시골로 이사갔다고만 전해졌고 그 이후의 소식은 아직까지도 없다. 징역 실형을 받은 사람은 5년 동안 공무원 시험 응시 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에 해당 사건의 가해자들은 2019~2020년에 공무원 시험 응시 자격이 복구되었다.
반면 이런 집단 따돌림성 학교폭력 자살 사건과는 달리 2015년 8월 4일 새벽에는 청주시에서 1999년생 여고생을 집단 따돌림성 학교폭력으로 자살하게 한 게 아니라 뇌사시켜서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피해자는 장기기증을 한 뒤, 같은 달 16일에 사망했다.
그러다가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 등 여러 청소년에 의한 폭행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학교폭력을 넘어 아예 소년법을 손봐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13. 이 사건 이후 나아진 것이 있는가?
물론 이 사건에 대한 충격으로 대한민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뒤집어졌다. 학교폭력 실태에 대한 충격으로 이런저런 정책들이 도입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2012학년도부터 '부담임제'가 많은 학교에 도입되었고 가시적인 정책들 말고도 관련 (주로 초청)강연, (공·비공식적인)교육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전국의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어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는 평가를 받는다.이 사건 얼마 후 벌어진 대전의 명문여고라는 대전광역시 서구 대전둔산여자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자살 사건에서 가해자들이 어떠한 처벌도 안 받고 멀쩡하게 대학교에 입학했으며 거의 모든 둔산여고 학부모, 학생, 교사들이 무조건 가해자들은 잘못 없다며 가해자 편만 드는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정말 극히 민감해졌는지 심히 의문이 든다. 실제로 둔산여고 자살 사건은 이미 대전에서는 이제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수준. 가해자들은 경미한 제재나 처벌조차 받지 않았다. 피해자는 억울한데 가해자는 너무 당당한 막장 상황이 동일하게 벌어진 것.
사실 누가 학교폭력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해당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다. 교사들이 아무리 살펴도 어느 학생은 조금 공격적이라거나 어느 학생은 내성적이라는 수준 정도는 파악해도 누가 누구를 어떤 식으로 괴롭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긴 힘들다. 그런데 평범한 학생들도 동조자 또는 방관자가 된다.
2명의 여고생이 대구 중학생 사건과 거의 똑같은 이유로 자살한 대전 D여고 사건이라 불리는 대전둔산여자고등학교 사건만 해도 상당수 둔산여고 재학생들이 자살한 여학생이 불쌍하다며 이참에 학교폭력 등 괴롭힘을 추방하자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린 대전의 '여자고등학교' 중 최고의 명문인데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냐"며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기사를 내보낸 신문사로 항의성 전화를 반복했다. 또 해당 내용을 포스팅하는 블로그나 카페에 항의성 댓글을 올리는 등 기분 나쁘다는 반응만 보였다. 학교 이미지 망친다며 무조건 은폐하려 들고 가해자 편에서 가해자를 변호하는 학생들도 상당수였다. 결국 가해자들도 어떠한 징계도 없이 평범하게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2년 4개월 후에는 군대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자살이냐 타살이냐의 차이일 뿐 사이코패스스러운 괴롭힘과 피해자가 사망한 후에도 반성 안 하는 가해자의 뻔뻔한 태도는 똑같다.
14. 관련 매체
- 2012년 8월 17일 권군의 어머니 임모씨가 권군이 자살한 이후의 일들을 회고한 내용을 집필한 단행본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하루>가 형설라이프를 통해 발간되었다.
- 사건 당일 사망한 아들을 시지 천마타운 225동 도로에 떨어진 교복 차림의 추락한 시신의 형태로 직접 현장에서 목격한 것[25]과 덕원중학교의 대응이 부적절했던 것[26], 권 군의 집 비밀번호를 바꿔달라는 유언에 따라 권 군의 형에게 집 비밀번호를 바꾸기를 요청한 것, 울부짖으며 염습 참관을 하려는 권군의 형을 어머니인 자신이 친지들과 함께 손수 저지한 것, 입관할 때 권군이 사망 당시 입었던 교복을 동봉한 것[27], 화장 후 납골장소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 등 여러 에피소드뿐만 아니라 권승민군의 자살 이후 연이어 학교폭력에 따른 자살 사건이 터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28] , 가해자 측과의 갈등, "애를 영웅 만드는 거 아니냐"는 주변의 비아냥을 겪은 경험과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서술되어 있다.
- 장강명의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 이 사건을 암시하는 언급이 있다. 다만 작중에는 1998년경에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여중생이 투신한 사건으로 각색되어 있다.대구에서 집단 괴롭힘을 받던 아이가 자살한 사건 기억하시죠? 아이 부모가 학교 교사라서 더 화제가 됐던. 아주머니가 물었다.[29] 여자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네.라고 대답했다. 그 사건이 우리 영훈이 일 터지기 보름 전에 발생했어요. 아주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 영훈이 사건이 터지기 1주일 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 의정부에서 여중생이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려서 자살했어요. 이 아이는 유서를 썼는데 글을 참 잘 썼어요. 아이 부모들이 그 유서를 언론사에 보내고 가해 학생들이랑 학교 교사를 형사 고발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상이 가시겠죠. 학교 폭력 문제가 온 언론의,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된 거예요. 학교 폭력, 왕따, 일진. 그런 이야기가 아니면 기사가 안 되는 때였어요. 그리고 그때 우리 영훈이 사건이 터진 겁니다.
- 2023년 5월 11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이 사건을 다뤘다.
- 귀귀 작가의 웹툰 뉴 바이블 26~27화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고, 실제 사건처럼 권 군이 유서를 쓰고 아파트 고층으로 올라가려 하자 권 군이 탄 엘리베이터에 탄 제이가 권 군에게 "맘 같아선 내가 그 두 놈들을[30] 손 봐주고 싶지만 두 놈들은 중2. 즉 미성년자여서 그럴 수가 없다. 넌 계속 그 놈들에게 당하면서 그렇게 뛰어내려 버리면 사실상 냄비 속에서 삶아지는 지도 모른 채 결국 삶아지는 개구리나 다름없어져 버린다. 내가 널 훈련시켜 주마. 개구리가 아닌, 독을 품은 두꺼비가 되어야 한다."라면서 기운을 내게 해 주고, 제이의 수련으로 6년 후 권 군은 강한 힘과 근육질 몸을 갖게 된다. 그리고 강해진 권 군은 제이와 함께 먼저 자신의 집이 있는 도와 인접한 도에 있는 부산으로 가, 그곳에서 세 여학생에게 심한 괴롭힘과 구타를 당하고 있는 피해 소녀를 발견하고, 세 가해 여학생들에게 제이의 조언에 따라 당하는 사람의 고통을 어찌 생각하지 못하는 건가!라고 말하며 그들을 혼내 주고 피해 학생을 구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곧바로 권 군의 부모님이 여전히 살고 있는, 권 군 생전의 집으로 가서 거기서 권 군이 사라지고 나서도 6년 동안이나 그 집에서 같은 짓거리를 반복하는 뻔뻔한 두 놈들을 발견한다. 두 가해자 A, B는 권 군을 알아보고 그때처럼 권 군을 깔보며 6년간 밀린 돈 내놓고 좀 맞자고 망언을 하는데, 제이에게 "거절을 당당히 해라. 그리고 평화를 얻으려면 피 흘리며 돌진하고 맞는 일이 있어도 당당하게 나아가라!"라는 가르침을 받아 강해진 권 군은 가해자 A가 자길 때리자 역으로 이제 맞으면서도 안 위축되고 계속 맞서며, 당당하게 그 가해자를 때려눕혔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보고 겁먹은 B는 도망치다가 문 앞에 버티던 제이에게 잡혀 그동안의 악행에 대한 팩폭을 듣다가 열 받은 제이에게 십자곤을 맞아 머리가 터져 죽는다. 그렇게 가해자 둘에게서 해방된 권 군은 제이와 함께 석양을 바라보고, 해맑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결말]
15. 기타
- 인터넷에 이 사건을 검색하면 엘리베이터에서 쪼그리고 앉아 우는 학생의 사진이 몇 개 뜨는데 그 사진 속 인물은 이 사건의 피해 학생이 아니다. 2012년 6월에 집단 폭행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다른 고등학생이다.
- 덕원중학교에서는 이 사건 직전인 2011년 7월에도 여학생 박보영 양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박 양은 단짝 친구의 따돌림 문제를 알게 되어 문제 해결에 나섰으나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담임교사에게 도움을 호소하는 편지를 담임교사의 책상에 두고 나왔다. 그러나 담임교사는 단체기합이라는 어설픈 방법으로 문제에 대응하였다. 자신 때문에 같은 반 학생들이 단체기합을 받아야 했다는 죄책감과 일부 친구들을 포함한 또래 집단의 눈총을 견디지 못해 박 양은 자살하고 말았다. 담임교사의 어처구니 없는 몰상식한 대응으로 이렇게 된 것.[32]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학교 관계자들은 "박 양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이상한 헛소리를 했다. 덕원중학교 이사회에서는 교장과 교감을 보직 해임했다.
- 만화가 윤서인은 <윤서인의 뉴스라이드> 1319회에서 이 사건에 대해 "가해자 아이도 문제있듯이 괴롭힘당한 아이의 부모도 문제있다."는 내용의 웹툰을 그렸다. 당연히 해당 웹툰은 많은 비난을 받고 바로 김근태 추모 회차로 교체되었다. 헤럴드경제 기사 2010년대 기준으로도 부부 10쌍 중 4쌍이 맞벌이를 하는 수준으로 맞벌이가 상당히 흔했고 가면 갈수록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는 시대에 맞지 않는 주장을 담고 있기 때문에 반응이 매우 나빴다.
일단 학대가 이루어진 장소가 가정 내라는 점에서 적어도 부모의 맞벌이가 아이에 대한 보호를 비교적 소홀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기는 하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들은 동급생들이었지만 좀 더 나이가 많은 비행 청소년이나 나쁜 생각을 가진 어른이 이 아이가 완전히 방치된 것을 알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 보면 더욱 끔찍한 결과가 일어났을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집단괴롭힘 사건이라기보다는 현실판 나 홀로 집에에 더 가깝다고 볼 수도 있는데 부모가 부재할 경우 자기 집 안이라고 아이에게 안전한 장소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아이들은 폭력에 지극히 약하며 지혜롭고 용기 있게 대처하는 케빈은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건으로 알려주고 있다.
미국에서는 부모가 고등학생 미만의 아동을 혼자 집에 있게 할 경우 형사 처벌을 받기 때문에 맞벌이가 한국보다 활성화되어 있으면서도 영화 같은 데서 나오는 고교생의 베이비 시팅 알바가 활성화되어 있어 비교적 안전하다. 치안이 좋은 편인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미성년자에게 단순한 심부름도 혼자 못 보낸다. 또 미국 중고등학교가 스쿨버스를 운용하는 이유도 운전기사를 보호자 삼아 미성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미성년자를 심부름 혼자 보냈다가 발생한 용산 아동 성폭력 살해사건을 생각하면 한국이 치안이 좋다고 혼자 심부름 보내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건 무리다.
물론 이 사실을 한국의 부모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모를 수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수가 턱없이 부족한 보육시설이나 돌봄시설에 줄을 서 가며 아이를 맡기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문제는 한국 사회가 서구권 선진국처럼 맞벌이를 해도 안심할 정도로 아이를 안전하게 키울 만한 여건을 전혀 마련해 주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여성에게는 출산과 육아 자체가 커리어의 단절을 의미하고 하다못해 어린이집도 수 년을 대기해야 겨우 들어갈 수 있으며 기껏 들어간 보육시설들도 혼자 집에 두는 것보다 못한 여건이라는 것이 연일 밝혀지고 있는데 그러면서 육아에 대한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지우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 학생의 부모는 그나마 고용 조건이 한국에서 최고 수준으로 안정적이라는 교사였음에도 이런 상황인데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16. 관련 문서
- 집단괴롭힘
- 2011년-2012년 집단괴롭힘 자살사건
- 약한 것은 죄악[33]
- 티아라 화영 왕따 논란[34]
- 나카노후지미중학교 이지메 자살 사건
- 오코우치 사건
- 학교폭력 멈춰!
- 이동관 아들 학교폭력 가해 의혹 사건 - 발생 시기가 얼마 차이 나지 않는다.
17. 둘러보기
[1] 덕원중학교 홈페이지에는 사건 발생 이후에 사과문이 걸렸으며, 교장과 교감은 보직해임되어 결국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2] 당시 대구서부교육청 박순해 교육장(2010. 09. 01.~2012. 08. 31.)과 대구광역시교육청 우동기 교육감(2010. 07. 01.~2018. 06. 30.)은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할 수 있냐면서 해당 학교의 교장과 교감을 보직 해임시키고,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장관(2010. 08. 31.~2013. 03. 11.)에게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강구하였다.[3]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EP. 78 '세상에서 가장 긴 하루 - 대구 학교폭력'에 나온 내용을 보면 이는 서원규로 보인다.[4]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EP. 78 '세상에서 가장 긴 하루 - 대구 학교폭력'에 나온 내용을 보면 이는 우재관으로 보인다.[5] 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보인 것 부터가 사실상 죄책감도 없으며 인정받고 싶고 돈 벌고 싶은 것에만 앞선 나머지 반칙 행위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신 나간 무개념 교만꾼임을 스스로 광고한 셈이다.[6] 가해자 측에서 게임 중독을 이유로 선처를 요구하기도 하였다.[7] 참고자료 10년간 10만명 자살로 사망..40대 `최다`[8] 이는 2011년-2012년 집단괴롭힘 자살사건 문서의 하위 항목으로 편입되었다는 점이 간접적인 증거이다. 하위 항목인 위 사건의 문서가 먼저 작성되었다.[9] 일반적인 구속수사의 조건은 강력 사건 이외에 도주의 우려가 있거나 증거 훼손의 우려가 있는 경우라는 점을 감안할 때 강력사건으로서 처리한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10] 사실 소는 잃어도 외양간은 고치고 보는 게 맞지만 이건 사정이 다르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언제든지 외양간을 고칠 수 있었는데도 막장이다 싶을 정도로 소를 너무 많이 잃었다. 이 때까지 수수방관하고 있었던 게 문제.[11] 하지만 피해자가 방관자들에 대한 원망을 했는지 안 했는지를 가지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태도는 정말 옳지 않다. 오히려 피해자의 심리 상태를 그렇게 만들 정도로 잔인하게 괴롭힌 가해자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셈이다.[12] 셧다운제의 찬반 논란을 떠나서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기사다. 그렇다고 피해 학생에게 좋은 결과가 나왔냐면 그것도 아니고, 시킨 만큼 하지 못하면 더 맞았다는 말로 미루어 보아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의 기사는 적지 않은 항의를 받았는지 결국 삭제되었다.[13] 이 사건으로 인해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면서 MBC GAME 폐국 사태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소문도 있다.[14] '엄중처벌을 하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사형시켜 달라는 의견도 나올 정도였다.[15] 이런 말을 내뱉은 것 부터가 '죄는 씻을 수 있습니다' 흉내를 내는 것이다. 살인을 저지르고 뻔뻔하게 변명한 '죄는 씻을 수 있습니다' 사건의 주동자랑 종교 내용만 관련이 없을 뿐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아예 없는 맥락이다[16] 2016년 말에 전시근로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17] 가해자가 '짱'이나 '일진'과 같은 부류의 학생이 아니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고교10대천왕에 나온 가해자와 같은 중학교 출신 출연자의 말에 의하면 가해자가 학원에서 자신의 뒤에 앉았는데 모범적이고 단정해 보였다고 한다. 또 전교생의 반이 가해자를 모를 정도로 평범했다고 한다.[18] 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상당수의 학교 교사들은 자기 자리만 지키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사건을 감추려고만 들지, 제대로 해결하는 법이 거의 없다. 상당수 집단괴롭힘 사건이 드러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학교의 적극적인 은폐 때문. 학교폭력 사건이 아닌 단순 도난사건의 경우에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학교에서 조용히 묻어가려는 경향이 매우 강한 것처럼 말이다.[19] 고소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수사망에 걸려들면 서울 사는 사람이 대구수성경찰서까지 KTX 타고 왔다갔다 하며 조사받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다만 가해자 측에서 의뢰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적극적으로 수사를 할 리가 없다는 음모론성 주장도 나왔다.[20] 사실 왕따는 집단이면 어디든지 일어날 수 있는 폭력의 기본적인 형태다.[21] 비록 뒷맛이 씁쓸할지언정 처벌의 엄중함 때문이라도 가해자의 행위를 억제할 수 있는 효과가 있는 셈이다. 엄벌주의가 만능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22] 이미 미국 학교에도 "학교경찰"이라는 제도로서 학교의 치안담당이 존재하며 학교폭력이 일어날 경우 교권이 개입할 수 없고 무조건 경찰권이 개입된다. 거기다 감옥처럼 학교 내 격리시설까지 있다. 물론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에도 학교폭력이 있으나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마련됐을 뿐이다.[23] 아버지와 형 권승우도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24] 소년범이 부정기형을 선고받은 경우에는 단기형만 채우고 교정 당국의 심사를 받고 조기 출소할 수 있다. 따라서 가해자들은 단기형만 채우고 출소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25] 당시 한겨울인데도 체온이 꽤 남아 있었다고 한다. 발견 시점이 권군의 사망 시점과 가까웠다는 것. 코에서 피가 약간 나온 것 말고는 시신 상태가 온전했다고 한다. 코에서 피가 나온 이유는 권 군이 땅에 부딪쳤을 때 오른쪽 이마와 오른쪽 어깨를 다쳤고 갈비뼈가 부러져 그것이 폐에 손상을 입힌 것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26] 학급 회장, 부회장 부모는 장례식장에 들여보내 놓고 권 군과 가장 친했던 친구는 못 들어가게 해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야 하는 등.[27] 관련 문서에도 언급되지만 입고 있던 옷은 속옷까지 다 벗겨진 채로 검시나 염습이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입던 옷가지는 별도로 소각되거나 입관할 때 관에 넣는 것이 일반적.[28] 1995년 6월 김종기 씨의 아들 김대현 군이 투신한 사건과 2012년 4월 16일 경상북도 영주시 중학생 투신 사건 등등 여러 사건이 언급되었다.[29] 이 소설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처럼 대화문에도 따옴표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30] 본문에서는 그 두 가해자의 본명이 공개되어 있지만 두 가해자들은 현재 개명했기에 여기에는 저술하지 않는다.[결말] 갑자기 권 군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제이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데, 사실 권 군을 제이가 도와준 내용은 제이의 상상이었다. 제이도 권 군을 돕고 싶었지만 그 당시 제이는 미성년자 흉악범들은 안 건드리겠다고 생각한 때였기에 권 군을 도와줄 수 없었고(물론 이 사건이 터진 뒤 제이는 마음을 바꿔 미성년자 흉악범들 역시 가차없이 죽였다.), 게다가 작품 시점으로 제이는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을 과하게 응징한 이유로 교도소에 갇혀 있었기에 부산의 그 여중생 역시 도울 수 없었다. 그렇게 그 여중생은 현실처럼 누구의 도움도 못 받고 세 악마들에게 얻어맞아 쓰러졌고, 2011년 그 때, 권 군 역시 위의 사건 내용처럼 자신이 사는 아파트 고층 창문에서 투신해 숨을 거두면서 이야기는 슬프게 끝난다. 특히 이 에피소드 외의 다른 에피소드 내 범죄자들은 모두 제이에 의해 철저히 응징되었기에 실제로 보면 안타까움이 더하다.[32] 관련 기사: 자살 학생 부모의 주장, 교사의 주장 / 기타 기사: #, #, #, #[33] 공론화 이후에도 가해자들은 물론 학교 측과 정부 상층부 사람들 모두 '괴롭힌 애들이 뭐가 잘못이냐? 그렇게 약해빠져서 당하기나 한 주제에 겨우 그 정도도 못 견디고 자살한 놈하고 그런 자식새끼 강하게 못 키운 부모라는 것들이 멍청이지'에 가까운 생각을 할 정도로 교만에 들어찬 꼴을 내보였다. 말 그대로 사람을 죽여놓고 피해자가 잘못해서 죽었다고 말하는거나 마찬가지이다. 이는 당시만 해도 착하고 모질지 못한 사람들은 폭력과 부조리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팽배했으며 사실상 공식적으로 힘을 가진 사람들 중 피해자와 유족들의 편을 들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소리다. 힘없는 일반인들인 네티즌들이나 같이 화내면서 울어줬을 뿐이다.[34] 이 사건이 터진 뒤 1년도 되지 않아 트위터 사건이 터졌고 이 사건의 심각성과 맞물려 최전성기를 달리던 티아라는 순식간의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