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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https://namu.wiki/acl/|{{{#!html <span style="color: var(--espejo-link-color, var(--text-color))">ACL 탭</span>}}}]]을 확인하세요.1. 개요
부부가 같이 일하며 돈을 버는 것을 말한다. 반댓말은 외벌이.2. 역사
현대에 나타난 현상 같지만, 알고 보면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현상이다. 서양에서는 맞벌이라는 개념이 처음 논의가 된 것은 산업 혁명 이후 외벌이가 보편화된 19세기 중반~20세기 초반, 한국에서는 이촌향도가 활발해져 도시에서는 밭일 등을 여성이 할 수 없게 된 1960년대부터다. 다시 말해 전업주부, 외벌이와 맞벌이는 서민에게는 근대 이후에 생긴 개념이라는 것이다. 중화권과 한반도에서 생활 습관으로까지 자리잡은 유교에서는 내외관, 삼종지도, 공적 영역을 남성이 할 것을 중시하여 거의 외벌이의 가정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었으나, 경제적인 문제로 이를 실천하기가 꽤 어려웠기 때문이다.인류 역사의 대부분이 자급자족으로 이뤄지던 사회였던 만큼, 부부가 함께 일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또한 중세 유럽의 경우, 남편과 아내가 공동으로 농사를 짓거나 기술직에서도 부부가 같이 일하던 사례는 매우 흔했다. 농업이나 가내수공업은 온 가족이 일을 하므로 맞벌이라 할 수 있고, 심지어 양반 집안에서도 남편은 훈장을 하고 아내는 삯바느질을 하면서 생계를 꾸리는 경우가 있었다. 강정일당이 그런 케이스. 일제강점기의 잡지에서도 팔도의 여성들이 매우 다양한 경제 활동(수공업, 장사, 농사, 나물 캐기 등)을 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1] 지금도 여성의 경제활동으로 잘 알려진 것이 제주도의 해녀, 한산모시와 같은 것이 있다. 도라지 타령도 여성이 부르는 것으로 묘사되며, 흥부전에서도 흥부 아내의 품팔이가 묘사되며, 섬집아기라는 동요도 해방 직후에 쓰인 오래된 곡이다. 다만 이런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안일'을 하는 사대부 가문의 부인, 부유한 집의 부인보다 낮았기 때문에 이런 경제활동이 잘 알려지지 못한 것이다.
한국사를 돌이켜보면, 조선 후기 즈음에는 지금보다 훨씬 남자와 여자의 일이 구분되어 있었다. # 맞벌이기는 하지만 '농사와 길쌈[2]'이 여성의 일이고, 바깥 일로 대변되는 논농사 같은 힘든 일을 남성이 해야 한다는 규범적 인식이 정해져 있었다. 아예 아내라는 말의 어원 자체가 '안해', 안 사람이라는 뜻이다. 16세기경 등장한 표현으로 과거에는 성 역할이 구분이 되기는 해도 이렇게 엄격하지는 않았다. 삼국시대 정도만 해도 정창원 신라 양탄자처럼 여성이 자기 이름을 걸고 자신의 물건을 수출하거나, 고구려 평강공주가 좋은 말을 감별할 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여성이 맞벌이를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리학이 임진왜란 이후로 강력하게 교조화에 가까울 정도로 강조되며, 상류층을 중심으로 예기에 등장하는 '내외'를 강조하면서 여성이 '안일'을 할 것이 강조된 것이다. '장가'라고 하여 신랑이 여자 집에서 신혼 생활을 할 정도였던 민족 문화를 가진 과거에서 점차 남성에게 주어지는 경제적 부담이 커졌다. 게다가 유교는 자식을 부모가 돌볼 것을 가장 중시했기 때문에 육아에 있어서 여성은 더 밖으로 나가는 것이 어려웠다. 현재까지 서구의 보모 같은 문화를 한국인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에는 제주도 등 일부 해안지역, 경기도[3]나 강원도, 이북 같은 곳이 아니라면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맞벌이기는 해도 집 안이나 근처에서 일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만 해도 지역별 차이도 있어, 함경도 같은 곳은 노인 세대, 면장의 풍기문란이라는 반발이 있어도 젊은 여성이 시장에 활발히 참여했으나 현재의 남한 지역은 경기-강원 등지나 해안 지역을 빼면 여성이 시장에 가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여겼다. # 이렇게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아내를 집에 데려다놓으면 양반처럼 '문지방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는' 일을 실천할 수 있다고 여기기도 하고 길쌈과 육아만 가능하고 농사일조차 안 시키는 경우마저 있었다고 한다. (pdf) 그러나 근대화가 되면서 이 정도로 보수적인 풍습은 '바깥일'에 대한 부정적인 잔재는 남겼으나 제주도나 해안가, 이북이나 그 근처에서는 저런 풍조가 약하여 여성이 시장 정도는 돌아다니는 등의 변화로 이어졌다. 제주도에는 아예 '아내'라는 말에 대응되는 단어가 없고 '각시' 등으로 결혼한 여자를 불렀다. 그런데 이런 여자의 밖일에 그리 부정적이지 않은 지역은 제주도를 제외하면 많은 곳이 북한에 넘어가서 분단 이후에도 '바깥일'에 대한 부정적인 풍조가 강했다. 한국에서 백희엽 씨 같이 여성으로 돈을 많이 번 거물도 이북 출신이었다.
한국에서 소위 과거의 '외벌이'라는 것은 한국인이 '외벌이'라고 떠올릴 때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 아내는 집안일 돕는 사람으로 불렸지만 실제로는 농사, 가게, 부업, 삯바느질, 하숙, 김장까지 상당한 생산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세 자영업 보조, 무급가족종사자 같은 유형이 좀 많았다. 1970년 농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48.2%, 1975년 51.8%, 1979년 54.2%로 커졌다는 자료가 있을 정도로 노동을 하는데 '외벌이'로 주장되는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 전원일기 같은 20세기 농촌을 다룬 작품에서도 아예 가사일뿐 아니라 농사일이라는 경제활동을 어머니가 힘들지만 당연스럽게 하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 한국어에서도 '억척스럽다', '생활력', '생활전선에 나서다'처럼 가정의 여성의 실질적 경제활동을 묘사하는 단어가 좀 있기도 하다. 계모임 같은 금융적인 활동도 있었다.
다만 사회적 명칭은 맞벌이가 아니라 "남편 일을 돕는다", "살림하면서 부업한다", "가게를 같이 본다"에 가까웠던 것이다. 이웃, 친인척의 돌봄 같은 것도 현재보단 많았어서 단순히 아버지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20세기에는 가족규범과 성별 역할 인식이 모두 남성 임금소득을 중심으로 현실을 정리했기 때문에 여성이 실질적 생산활동을 하는 건 안 보이던 것에 가깝다. 이것은 한국만 이런 것도 아니고 '유교적 언어'는 아니지만 영어권과 서유럽은 상류층의 외벌이가 국민들에게 공통적이었던 것으로 주장되는 경우, 파트타임 등을 무시하는 경우도 많다.
미국의 경우 산업혁명 초기까지는 조선시대와 유사한 가내수공업 등이 있었으나, 생산력의 발전으로 19세기말까지 이런 노동 참여가 줄어들었다. # 그러나 1890년 이후로 계속 여성의 노동 참여율이 증가하던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고, 독일을 제외한 모든 서구의 국가가 이런 식이었다. # 독일도 제2차 세계대전 때만 맞벌이가 줄었다가 다시 느는 추세였다. 한국도 여성의 노동 참여율은 스페인보다 높고, 미국보다 낮으나 프랑스와 비슷한 추세로 증가해오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집에서 하는 일과 비슷한, 전통적 관념에서 벗어나지 않는 양잠 등을 70년대 즈음 추진하다가, 당시 이촌향도로 인해 여성이 기존에 하던 일을 못하게 되면서 아예 주부로 일하는 형식의 외벌이가 잠시 대세가 되었다. 이후 점차적으로 여성도 교육을 많이 받게 되고, 한국에서도 사회진출이 활발해졌다.
세계적으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고 노동법 발전과 함께 노동시간이 점차 줄어듬에 따라, 맞벌이는 현대사회 가족의 주요한 형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허나 한국에서는 서양에서 100년 넘게 점진적으로 나타나던 일이 30년 안쪽의 기간 동안 급속도로 진행되어 현대의 맞벌이는 문화적 적응이 어려운 것에서 비롯된 여러 문제점을 가져오기도 했다. 즉, 일터-가정 간의 거리가 멀어진 만큼, 집안에 남겨진 아이들을 관리할 시간, 수단이 부족해졌다. 반면에 노동시간은 여전히 길며, 육아를 병행하는 직장인에 대한 배려가 적기에 여전히 문제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부모와 오래 있지 못하거나, 부모와 아닌 사람과 더 많이 친하면 이상하다는 인식도 강하기에 맞벌이로 일어날 수 있는 후자와 같은 상황을 꺼리기도 한다. 이처럼 일과 가정의 병행이 한국에서 유달리 어려운 것이 저출산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시각도 많다. 유목 문화권(몽골,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이나 전쟁이나 기후 문제로 혹독한 생활 환경(북유럽, 이스라엘, 베트남 등) 속에서 오래 전부터 여성이 일하던 전통을 가진 국가는 산업화 속에서도 출산율 감소가 심하지 않았지만, 한중일의 경우 이런 생활양식이 익숙하지 않았기에 양육을 하면 일의 병행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서구권에서도 앞서 언급한 북유럽이나, 프랑스는 이 경향이 약하지만 독일어권(구 동독 지역 제외)이 이 경향이 좀 있어서 아예 일하러 가면 라벤무터(Rabenmutter, '까마귀처럼' 자식을 방치하는 엄마)라고 부르며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있다.
3. 현재의 모습
2024년 기준 한국의 맞벌이 비율은 48.2%이다. 이 중 30~39세가 58.9%로 제일 높았다.# 2022년 기사에 따르면 '직장 여성' 비율은 중국(76%), 미국(65%), 일본(58%)순으로 높았다.# 2018년에는 베트남의 맞벌이 비율이 74%로 동남아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보통은 남편 혼자 버는 걸 외벌이라고 말하지만 요즘은 반대로 아내 혼자 버는 경우도 있다. 이를 셔터맨이라고 한다. 한국보다 일찍 전업주부 남성이 나타나기 시작한 일본도, 여전히 한국 사회만큼 시선이 차갑다. 성평등을 강조하는 서양 역시 굉장히 수가 적다. 서양에서 남성도 전업주부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는 건 사실이나, 현실적으로는 수가 많지 않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젊은 세대의 경우 남녀 모두 과반수가 맞벌이와 공동 육아를 선호한다고 조사됐다.## 결혼 정보업체의 데이터에 따르면 결혼 적령기 한국 남성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외모와 나이이고, 그다음으로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이 '직업이 있는가'라고 한다. 그리고 선호하는 여성의 직업은 변호사 같은 고소득 직종보다는 공무원, 교사 등 출산과 양육 등 여성의 커리어를 위협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무난하게 휴직과 복직을 할 수 있는 안정된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일본에서도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여자력이 높은 남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늘었다. 이에 아이를 돌볼 줄 아는 남성을 선호하는 일본의 이쿠멘育メン (육아育児+이케멘イケメン)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애초에 어느 쪽이 아이를 보든지 간에 상대방이 병에 걸리거나 하면 다른 쪽이 애를 봐줘야 하므로 기본적 집안일은 할 줄 알아야 한다. 그에 비례해서 일본 남성들도 맞벌이 선호 비율이 늘었다.# 의외로 일본의 맞벌이 비율은 한국보다 높다.
중국, 북유럽 국가(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이스라엘, 동남아시아 국가(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등), 아시아의 유목 문화의 잔재가 있는 국가(카자흐스탄, 몽골 등)처럼 여성의 강인함 내지 생활력이 중시되는 전통이 있는 나라도 맞벌이가 흔하다.
북유럽은 극도의 평등주의 때문에 여성이 힘을 기르는 모습도 있으며, 베트남과 이스라엘은 쯩 자매, 드보라와 같은 잔 다르크 같은 여전사의 이야기가 있고 특히 이스라엘은 일반인을 징병하는 여군이 있을 정도로 여성도 강인해야 함을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카자흐스탄과 몽골의 경우 혹독한 자연 환경 속에서 여성이 연약하면 살아갈 수 없다는 인식이 있어, 가부장제가 존재하나 동시에 여성의 직업 참여가 활발하다.
한국인들은 베트남만 보아도 여자도 궂은일을 마다않는 모습에 컬처 쇼크를 받기도 한다. 심지어 사업가는 베트남에서는 여성이 더 많다고 한다. # 캄보디아도 크메르 제국 시대부터 중국인들이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가 활발하다며 놀라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도 제주도처럼 생활력이 중시되는 지방은 60%는 맞벌이를 할 정도로 맞벌이가 좀 흔하나 저런 나라에는 못 미친다고 한다. # 동남아시아에서는 자식을 다른 친인척이 종종 돌봐주기도 하고, 여성이 남성 못지않은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이나 아버지의 양육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부류의 성평등 사상이 강한 북유럽은 공공적인 양육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아이가 어려서도 생활력(아르바이트 등)이 높도록 자식 교육을 시킨다.
다만, 중국의 경우 맞벌이 비율이 높다고 여성 인권이 높다고 말하는 것은 공산주의의 여성 인권 특성상 그 의도와 맥락이 상당 부분 생략되어 있다. 이는 여성의 노동 참여를 유도하는 명분일 뿐이며, 가부장제 타파는 부수적인 결과에 불과하다. 공산혁명이 여성의 경제활동 제약은 해체했지만, "남자가 경제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실제 공산주의와 다른[4] 전통적 기대는 해체하지 못했다. 오히려 개혁개방 이후의 성비 불균형과 결혼시장 경쟁이 그 기대를 강화해버렸다.
그럼에도 중국은 평균 소득이 낮아서 맞벌이 비율이 상당히 높고, 여성이 일을 하지 않으면 이혼 시 재산분리법이 잘 갖추어지지 않은 중국에서는 불이익을 볼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경우가 흔하다. 중국의 재산분할법에서는 결혼 전의 개인 재산은 결혼 후에도 개인 소유로 간주되며, 이 재산은 이혼 시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결혼 후 부부가 번 공동재산만을 기여도를 고려하여 분할하기에 이는 한국과 다소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한국에서는 결혼 전의 재산도 분할될 수 있다.##] 심지어, 중국의 이혼율은 동아시아 국가 중 단연 1위이자 인구 1천만 이상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전 세계 톱 10에 든다#[5]
이러한 중국의 높은 이혼율 때문에 최근 중국 정부는 이혼을 쉽게 못하게 법을 바꾸겠다고 통보하였고, 이는 많은 중국인 여성들의 분노를 유발하여 오히려 비혼을 선언하는 여성들이 급격히 늘었고, 중국 남녀 간의 젠더전쟁으로까지 불거졌다.#
그나마 중국에서 남자가 집안일을 잘하는 지역은 화둥지구와 중난지구를 의미하며, 나머지 지역은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화둥지구와 중난지구에서는 금융업이나 서비스업이 발달한 지역 특성상 경제권이 여자에게 있는 경우도 많다. 아내가 외벌이로 돈을 벌어오는 경우가 꽤 많다 보니 결혼에서 주도권을 쥐는 사회 분위기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동북지방과 산둥성은 가부장제 분위기가 굉장히 강하다.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맞벌이를 선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과거 여성은 안일을 하라던 내외 사상이 도덕 수준으로 강조되었고, 타 문화권보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정성을 강조하는 집중적 양육의 풍조가 강하며, 취업경쟁이 치열한 동북아시아에서는 중국을 포함하여 임신 시 육아휴직 중 불이익을 받거나 직장을 그만두라는 압력을 받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아닌 이상, 육아휴직을 길게 쓰기 어렵고, 협박이나 발령 등의 불이익도 빈번하다. '워킹맘'은 직장 생활, 아이 양육, 가사 노동의 삼중고를 겪는다. 경력 단절 여성은 재취업 시 이전과 같은 보수를 받기 어렵다. 이로 인해 비출산을 선택하는 여성들도 있다. 전업주부가 되는 것도 여성에게 부담이다. 경력이 끊기고 경제적으로 남편에게 의지해야 하며, 시부모의 간섭 문제도 있다. 젊은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전업주부 전향에 부정적이며,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기혼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자발적 전업주부 선택이 있지만, 후회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의 경우에는 요즘 국가와 기업들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기 위해 여러 노력 중에 있다.
4. 장점
-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인류는 보수적이고 전통이 많이 남은 사회, 남존여비가 심한 곳에서조차도 여성이 실질적인 경제 활동은 하고 살고 있다. 평등하게 둘 다 일하면 외벌이로 빚어지는 경제적 부담을 완화해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남존여비가 강했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조차 빈 살만 같은 지도자가 여성의 직업 참여를 권장한다. 인권적인 문제도 강하기에 탈레반 치하 아프가니스탄처럼 맞벌이를 규제하려는 경우에는 시위까지 벌어진다. # 외벌이를 지지하는 근거였던 유교적 내외관이 들어와도 한국에서 '밭일', '장사' 등의 맞벌이가 사라지지 않은 이유가 외벌이가 조선시대 양반이나 산업화 이후 도시 부유층 정도나 가능한 굉장한 경제력을 요구하는 풍습이었기 때문이다.
- 이슬람 국가인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에서도 봉제 산업을 여성이 이끌고 있으며, 중동 시골 농촌에서는 대부분의 서민층 여성이 파종과 수확 같은 중노동을 한다. 집안일의 연장이라며 경제 활동이 아닌 것처럼 포장되어 통계에서도 '경제 활동 참가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지, 실제로는 경제 활동이다. 탈레반 치하 아프가니스탄에서조차 아내의 가내수공업이 없으면 남편이 돈을 못 벌어온다. 정말 여성이 육아에'만' 전념하는 건 이런 곳에서도 재력과시 수단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도가 이것을 오일머니를 통해 원주민 한정 거의 실현하던 국가였으나 탈석유 시대에 대한 대비로 앞서 언급했던 여성 직업 참여가 권장되는 흐름이다.
- 여성의 밖일을 특히 부정적으로 보던, 여성이 걷지 못하게 전족이 유행하던 시기의 중국도 직물 짜기와 같은 경제활동을 여성이 활발히 했다. 심하게는 전족을 하며 잎따기 같은 일을 하던 지역도 존재했다. 최상류층에게나 '난 정말 일할 필요도 없는 여성'이라는 신분 과시용의 전족의 용도가 받아들여지기 쉬웠다.
- 서양에서도 영국 빅토리아 시대, 미국의 1950년대 같은 외벌이가 '유행'하던 시기에조차 경제력 상위 20~30% 이상에서나 꿈꿀 수 있던 것이었다. 19세기에는 하녀로 일하는 사람이 많았고 손이 작다며 공장 고용주들이 여성을 선호하기도 했다. 20세기에는 캐셔 같은 일을 하며 '용돈 벌이'로 둘러대거나 유색인종이면 가정부 같은 더 힘든 일도 했다. 비공식적인 '부업'으로 잡혀서 경제활동을 안 했다는 통계가 나오지만 경제활동 자체를 이런 시대에도 안 하지는 않았다. 트래드와이프(Tradwife)라는 50년대식 복장으로 외벌이를 하는 모습이 틱톡에 나오기도 했는데 이들조차 사실상 인플루엔서로 협찬이나 굿즈나 광고 수입으로 돈벌이를 한다.
- 서구권의 경우, 남편이 갑부라고 해서 아내가 가만히 내조만 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아 '조용한 내조'가 대부분인[8] 한국 재벌가와는 차이가 있다. 본래 자신이 해 왔던 일을 하는 경우도 있고, 아니었더라도 자선사업을 하거나 상류층의 사교 파티를 기획하거나 참석하는 등의 바깥 일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9] 아내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지적이고, 사회적 영향력이 클수록 남편의 사회적 지위도 덩달아 올라간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유럽권 귀족사회의 전통처럼 훈육이나 기타 돌봄을 아예 '전문 인력'에게 맡겨버리는 경우도 잦고, 관련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노랜즈 칼리지 같은 기관까지 존재한다. 교육도 어머니보다 전문 튜터가 잘 한다고 생각하며, 부모 품에서만 자라면 잘 못 큰다는 양육문화가 있어서 기숙학교에서 자식이 사춘기를 보내게 하는 경우도 매우 잦다.[10]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편인 초우트 로즈마리 홀 또한 사립기숙학교이다.
- 이혼이나 사별 후, 기타 부당한 경우에 대항할 경제력을 갖출 수 있다. 배우자의 부당한 대우로 이혼하고 싶은데도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 억지로 참고 살아야 할 필요가 없어진다. 북한이 남존여비가 강하다는 주장도 2010년대 초반까지나 시골의 이야기로, 여성이 시장이 처음 활성화된 90년대 후반 무렵에는 나라의 직장에서 돈을 안줘서 남자가 바깥일을 한다는 관습적 잔재로 인해 밀려난 것에 가까웠으나, 반사작용으로 주로 여성이 시장에서 돈을 벌면서, 남편도 밥을 해주는 것 같은 집안일을 돕는 풍조나 2010년대 후반에는 선물을 해주는 풍조가 도시지역에서 생기고 있다. 다만 대부분의 탈북민이 단속이 그나마 덜한 2010년대 중반 이전에 한국에 정착하고, 간혹 고향 남자들에게 한국과 유사한 젠더 사상을 갖는 여성[11]도 있어 이런 사실이 잘 알려지지 못한다. 무능한 남편을 쓸모가 없다며 '낮전등'이라며 놀리는 풍조도 있다고 한다.
5. 단점
그리고는 뭔가 일어났습니다. 임금이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된 것입니다. 1970년대 후반에 뭔가 일어났습니다.
여기 다우 존스의 산업 평균 지수의 등락을 보여주는 차트가 있습니다. 뭔가 일어났습니다. 1986, 1987, 1988년도. 저는 이 시기에 일어나기 시작한 걸로 생각합니다. 주식시장이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기업들의 수익이 갑자기 좋아진 걸까요? 회사들이 높은 수익을 보인 것은 임금을 계속 낮췄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은 스스로 많은 보수를 지급하기 시작했습니다. 평균적인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 보다 몇 배나 많게. 각자 10억 달러 이상을 챙겼죠.
그렇게 임금은 정체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물건을 구매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첫 번째 대처 기제는 70년대 후반에 나왔는데, 여자들이 직장에 나가기 시작한 겁니다. 이 시기에 젊은 엄마들이 대거 노동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그들이 직장에 나서기 시작한 건, 멋진 전문직이 여자에게 개방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일터에 나선 주된 원인은 정체된 가정의 소득을 지탱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돈을 더 벌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죠..
출처
여기 다우 존스의 산업 평균 지수의 등락을 보여주는 차트가 있습니다. 뭔가 일어났습니다. 1986, 1987, 1988년도. 저는 이 시기에 일어나기 시작한 걸로 생각합니다. 주식시장이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기업들의 수익이 갑자기 좋아진 걸까요? 회사들이 높은 수익을 보인 것은 임금을 계속 낮췄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은 스스로 많은 보수를 지급하기 시작했습니다. 평균적인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 보다 몇 배나 많게. 각자 10억 달러 이상을 챙겼죠.
그렇게 임금은 정체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물건을 구매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첫 번째 대처 기제는 70년대 후반에 나왔는데, 여자들이 직장에 나가기 시작한 겁니다. 이 시기에 젊은 엄마들이 대거 노동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그들이 직장에 나서기 시작한 건, 멋진 전문직이 여자에게 개방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일터에 나선 주된 원인은 정체된 가정의 소득을 지탱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돈을 더 벌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죠..
출처
대학 때 선생님이 "맞벌이는 크게 보아 괜찮다. 하지만 그 의도가 진짜 여성의 사회 진출인지, 맞벌이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급여수준으로 싸게 부려먹기 위함인지는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라고 한 말은 잊지 않으려 한다.
출처
출처
- 부모 모두가 직장에 나가 있는 만큼 자식이 방치되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형제가 있다면 모를까 외동이라면 또래보다 외로움을 더 심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어 스트레스 취약성이 높으며, 사회성과 대인관계 형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받음이 보고된 바 있다. 특히 청소년기 이후에는 동년배 사이의 압력에 자연히 더 취약해져 알코올 중독, 흡연, 마약, 유흥 등의 비행에 빠질 확률이 높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은 "부모의 관심 부족 및 소통 부족으로 인한 고립감과 적대감"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Steven B. Mertens, Nancy Flowers 등에 의해 행해진 연구[12]에 의하면 하루에 3시간 이상 집에 혼자 남겨진 중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 행동장애를 일으킬 확률 및 수준이 높고, 우울증 환아의 비율이 높으며, 자존감 수준도 낮다고 한다. 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와 같이 팬데믹 사태가 창궐할 경우 온라인 수업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져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
- 저출산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자녀 양육 문제도 일어난다. 양육 시설에 맡길 경우에는 추가로 양육비가 들어가고, 친정이나 시가에 맡겨도 돈을 보내야 한다. 특히 외지에서 일하는 맞벌이인 경우에는 아예 몇 년씩 친가나 본가에 맡기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엔 아이가 부모를 어색해하는 일이 많다. 양육 시설이나 친척들한테 자식을 맡기지 않고 집에 자녀들을 방치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자녀와 부모 간 관계가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문제 때문에 고소득자나 중산층이 아닌 한 그냥 한 쪽, 사실상 거의 아내가 일을 때려치는 게 더 유리한 경우가 많고, 실제로 자녀가 아직 어린 2~30대는 자녀가 꽤 장성한 40대 이후보다 맞벌이 비율이 낮다. 요즘에는 비단 아기나 유치원생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성장한 초등학생 정도의 아동을 부모의 귀가 전까지 돌봐주는 서비스도 존재하나, 이 부분에서도 역시나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건 마찬가지다.
- 자녀 양육과 비슷한 문제로 노인 봉양 문제가 있다. 물론 전업주부가 있다고 노인 봉양이 쉬운 건 아니지만, 부모가 상당히 연로한 데다 뇌졸중, 치매, 파킨슨병 같은 일상 생활에 곤란을 겪는 병을 앓을 때 하필 자녀, 사위, 며느리가 모두 경제 활동을 한다면 상대적으로 더 비참한 처지가 된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양육시설과 마찬가지로 요양원이라는 선지가 있기는 하나 당연히 양육시설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큰돈이 든다.
- 집안일 문제도 있다. 흔히 맞벌이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보통은 여성이 가사일을 더 하는 경우가 많기에 문제가 발생한다. 맞벌이를 하면 둘 다 일하느라 피곤해 죽겠는 마당에 여자 혼자만 집에서 집안일까지 해야 한다면 당연히 불공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의 경우 2017년 서울시 맞벌이 가정의 가사분담 시간은 여성이 하루 평균 2시간 20분, 남성이 19분으로 7배 이상 높았다. #
[1] 현대의 한국 농촌 노인도 이와 비슷하게 일을 하고, 부모나 조부모가 농촌에서 일하던 많은 한국인들은 잘 들어보면 여성의 '밭일' 같은 것이 옛날을 언급할 때 등장한다는 것을 아는 경우도 많다. 다만 몇몇 양반 집안에서는 양란 이후 성리학이 교조화되어 공자의 말이라는 소문이 돌던 삼종지도를 주장하며 여자란 '하는 일은 술과 식사를 제공하는 것에 있을 뿐'이라는 주장을 한 경우도 있었고 일부 지역에서도 이런 주장을 흉내내어 양반 행세를 하려든 경우도 있었다. 반면에 중국에서는 전족과 같은 풍습이 맞벌이는 하되 집안에서 벌어야 한다는 교조적 관념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다.[2] 옷감을 짜는 일이다. 추석 때 고구려 건국 초기인 유리왕 때도 길쌈 대회가 있었다고 할 정도로 매우 오래된 풍습이다.[3] 안성의 여성은 유기 장사 등을 하기도 했다. #[4] 원조 마르크스주의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따르면 남자가 제공해야 한다"는 관념 자체를 부르주아 가족의 잔재로 보았다. 여성이 사회적 노동에 참여하고, 가사나 육아가 사회화(공공 탁아소, 공동식당 등)되면 남녀 간 경제적 종속 관계가 사라진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에서 이것을 실현하는데는 실패하여, 소련 시절도 겪은 현대 러시아가 경제적으로 더 남성에게 의존하는 문화적 태도가 데이트 비용을 중심으로 특히 한국보다도 강하다.[5] 여담으로, 2013년 한국의 조이혼율은 2.3이었으며, 같은 해 일본은 2.0, 미국은 3.6이었다. 동아시아와 북미의 이혼율이 다른 나라, 특히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에서는 법적 결혼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결혼 신고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이혼 통계에 포함되지 않아 이혼율이 낮게 나타난다. 반면, 미국과 남미 등지에서는 법적으로 결혼을 하고 이혼 통계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으며, 사회적 인식이 관대하여 이혼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다.[6] 그렇다고 한 쪽 월급이 세전 1000만 원을 넘어가는 경우에는 의미가 별로 없어진다.[7] 단, 맞벌이라고 다 많이 버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정말 가난한 집안의 경우에도 맞벌이인 경우가 제법 많다. 가난하니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의 경우 소득이 낮은 것은 (어떤 까닭으로건) 고소득의 직업을 구할 능력/형편이 안 되는 경우다. 그러다 보니 두 명이 번다고 해도 둘 다 소득이 매우 낮아 웬만한 외벌이보다 훨씬 못버는 경우도 많다. 또한 둘이 일하긴 하지만 두 명이 같이 자영업을 할 경우 알바비 지출은 줄어들 수 있으나 소득이 크게 증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8] 삼성그룹은 여성이 활발히 외부 활동을 한 편이지만, 현대그룹, LG그룹은 조용한 내조로 유명하다. 당장 방송인이었던 노현정만 해도 현대가에 시집간 후에는 거의 외부 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9] 아무래도 멜린다 게이츠가 가장 유명하지만, 상당수 서구권 대부호의 아내들에게는 '자선사업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고, 자선단체의 공동대표인 경우도 제법 있다. 프리실라 챈(마크 저커버그), 매켄지 스콧(제프 베이조스), 줄리아 코크(코크 가문), 코니 스나이더(스티브 발머) 등이 있다. 패리스 힐튼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패리스도 명문 힐튼가 출신이다), 서구권 특성상 사교계에서의 능력이 사업에서의 성공까지 이어지기도 하기에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10] 영국 국서였던 필립 마운트배튼은 자신들의 자녀를 모두 스코틀랜드에 있는 기숙학교로 보냈는데, 워낙 이때의 기억이 끔찍했던 모양인지 필립 마운트배튼의 아들인 찰스 3세는 자식들을 모두 이튼 칼리지로 보냈다. 그 이튼 칼리지도 결국엔 기숙학교이다.[11] 탈북민은 70% 이상이 여성이다.[12]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