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서(宋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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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본명이 저유지(褚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숙도(叔度)로 표기되었다.
(3) 본명이 장유(張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무도(茂度)로 표기되었다.
(4) 본명이 왕유지(王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홍(敬弘)으로 표기되었다.
(5) 본명이 왕욱(王彧)으로 유욱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문(景文)으로 표기되었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3f51ba><tablebgcolor=#3f51ba> ||
1. 개요
范曄(398년 ~ 445년)
유송의 관료이자 역사가로 범태의 아들이며, 자는 울종(蔚宗)이다. 《후한서》의 저자로 알려진 인물이었지만 사생활에서 비판을 받았고 마지막에는 역모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2. 생애
범엽의 조상은 순양군(順陽郡) 출신으로, 범엽은 398년 산음현(山陰縣)에서 태어났다. 범엽의 집안은 서진대의 관료인 범귀를 시조로 하는 순양 범씨였다. 범엽은 명문 출신이지만 첩의 소생으로 범태의 서자였다. 범엽의 어머니는 뒷간에서 범엽을 낳았는데, 범엽이 태어날 때 이마가 벽돌에 맞아 상처가 나서 아명을 전(塼)으로 정했다. 범엽은 백부 범홍지의 작위인 무흥현오등후(武興縣五等侯)를 습봉하였다.범엽은 어린 시절에 배우기를 좋아해서 경서와 사서를 읽었으며, 문장을 잘 지었고 예서에 능하였으며, 음률에 해박했다. 414년, 주에서 주부(主簿)로 벽소했으나 이를 거절했다. 뒤에 범엽은 유송이 들어서면서 팽성왕 유의강의 참군이 되었고 상서외병랑(尙書外兵郞), 형주(荊州) 별가종사사(別駕從事史), 비서승(秘書丞)을 역임했다.
428년, 아버지 범태의 상을 당하여 벼슬에서 물러났다가 정서대장군(征南大將軍) 단도제의 사마가 되었고 신채군 태수를 겸임하였다. 단도제가 북벌을 단행할 때 범엽은 자신의 병을 핑계로 동행을 사양했으나 문제 유의륭은 이를 윤허하지 않았고 범엽에게 수로를 통해 물자를 조달하라는 명을 내렸다. 단도제가 회군한 뒤 범엽은 사도부 종사중랑(從事中郞)이 되었고 상서이부랑(尙書吏部郞)을 역임했다.
432년, 팽성왕 유의강의 친모인 태비 왕씨가 죽었다. 장례를 치르는 날 밤에 유의강의 옛 관료들이 동부(東府)에 모였고 당시 범엽의 동생 사도부 좨주 범광연(范廣淵)이 당직으로 있었다. 이때 범엽은 좌서속(左西屬) 왕심(王深)과 함께 범광연의 처소에 머무르며 밤에 술을 마시고 북창를 열고 만가를 감상했다. 결국 이런 모습이 유의강의 분노를 사서 범엽은 선성군 태수로 좌천되었다. 범엽은 자신이 좌천되어 뜻을 이루지 못한 것에 우울해져서 자신의 울적함을 달래고자 임지에서 후한의 사적을 정리하였고 이때 완성된 사서가 바로 《후한서》였다.
438년, 진군장군(鎭軍將軍) 장사왕(長沙王) 유의흔의 장사로 옮기고 영삭장군(寧朔將軍)이 더해졌다. 한편 범태의 적남이자 범엽의 형인 범호(范暠)가 의도군 태수로 부임하면서 범호의 적모도 의도군으로 동행했는데, 439년 범호의 적모가 사망할 때 범엽은 병을 핑계로 제때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가 한참 뒤에 기첩들을 데리고 장례식에 참여했다. 이 때문에 범엽은 어사중승 유손(劉損)에게 고발되었으나 문제는 범엽의 재능을 총애했기에 그에게 벌을 내리지 않았다.
장례를 마친뒤 범엽은 후군장군(後軍將軍) 시흥왕(始興王) 유준의 장사가 되었고 남하비군 태수를 겸임하였다. 범엽이 양주(揚州)로 주둔할 때 양주의 사무는 모두 범엽이 처리했다. 뒤이어 좌위장군(左衛將軍), 태자첨사(太子詹事)로 옮겼다. 범엽은 비파를 잘 연주했고 새로운 곡을 작곡할 수 있었다. 문제는 범엽의 노래를 듣고 싶었는데, 범엽은 일부러 모른 척하고 문제에게 곡을 연주하려고 하지 않았다. 한번은 문제가 대신들과 연회를 열 때 문제는 범엽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래를 부르고 싶으니 경은 연주를 하시오.
범엽은 문제의 명에 따라 연주를 했다가 문제가 노래를 끝내니 같이 연주를 끝냈다.뒤에 공희선이 범엽의 사위인 사종을 통해 범엽에게 접근했다. 공희선은 도박에서 일부러 져서 범엽에게 자신의 재산을 범엽에게 넘겼고, 범엽 또한 공희선의 재산에 관심이 있었고 공희선의 재능을 높이 샀기 때문에 공희선과 사이가 좋아지게 되었다. 공희선이 처음에 범엽을 역모에 가담시키려고 할 때 범엽은 이를 거부했는데 공희선이 다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인께서 만약 조정이 장인을 후하게 대우한다고 생각한다면 무슨 연유로 혼약을 맺지 않는 것입니까, 집안이 부족해서입니까? 사람들은 장인을 개돼지로 취급하는데, 장인은 충성을 다하여 죽으시려고 하니 이 또한 어리석지 않습니까?
범엽은 공희선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결국 공희선의 역모에 가담하게 되었다.그러나 이후 서담지가 이러한 사실을 문제에게 고발해서 공희선의 역모가 발각되었고, 범엽도 이에 연루되어 처형됨으로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범엽은 심연지와 더불어 문제로부터 대우를 받았고 매번 동시에 불려가는 일이 많았다. 범엽이 만약 먼저 도착하면 반드시 심연지를 기다렸다가 같이 들어갔지만, 심연지가 먼저 도착하면 홀로 문제에게 불려가기도 해서 범엽은 원한이 생겼다.
범엽은 유의강의 부하 관리를 역임하며 유의강의 인정을 받았지만 선성군으로 좌천되면서 유의강과는 사이가 틀어졌다. 하지만 사종이 범엽에게 돌아와서 유의강이 범엽에게 사죄하고 싶고 다시 예전의 관계를 회복하자는 말을 전했다. 범엽은 문제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문제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신이 양한의 고사를 살펴보니 번왕들은 저주나 남의 재난에 쾌재를 부르면 곧바로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하물며 유의강의 간사한 마음과 행적이 드러나서 사방이 알고 있지만 지금은 아무런 탈이 없기 때문에 소신은 잘 모르겠습니다. 또한 커다란 병폐가 상존하면 틀림없이 반란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형제들 사이의 일은 신하들이 입 밖에 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소신은 폐하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말씀을 올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범엽의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