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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8-26 11:44:19

유경선

송서(宋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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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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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1·2·3권 「무제기(武帝紀)」 4권 「소제기(少帝紀)」 5권 「문제기(文帝紀)」
유유(劉裕) 유의부 유의륭
6권 「효무제기(孝武帝紀)」 7권 전폐제기(前廢帝紀)」 8권 「명제기(明帝紀)」
유준(劉駿) 유자업 유욱(劉彧)
9권 「후폐제기(後廢帝紀)」 10권 「순제기(順帝紀)」
유욱(劉昱) 유준(劉準)
※ 11권 ~ 40권은 志에 해당. 송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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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3f51ba> 41권 「후비전(后妃傳)」 ||
조안종 · 소문수 · 장애친 · 장궐 · 사마무영 · 호도안 · 원제규 · 노혜남 · 왕헌원 · 하영완 · 심용희 · 왕정풍 · 진묘등 · 강간규 · 진법용 · 사범경
42권 「유목지등전(劉穆之等傳)」 43권 「서선지등전(徐羨之等傳)」 44권 「사회전(謝晦傳)」
유목지 · 왕홍 서선지 · 부량 · 단도제 사회
45권 「왕진악등전(王鎮惡等傳)」 46권 「조륜지등전(趙倫之等傳)」 47권 「유회숙등전(劉懷肅等傳)」
왕진악 · 단소 · 상정 · 유회신 · 유수 조륜지 · 왕의 · 장소 유회숙 · 맹회옥 ,맹용부, · 유경선 · 단지
48권 「주령석등전(朱齡石等傳)」 49권 「손처등전(孫處等傳)」 50권 「호번등전(胡藩等傳)」
주령석 · 모수지 · 부홍지 손처 · 괴은 · 유종 · 우구진 호번 · 유강조 · 원호지 · 장흥세
51권 「종실전(宗室傳)」
유도린 · 유도규 · 유준고
52권 「유열등전(庾悅等傳)」 53권 「장무도등전(張茂度等傳)」 54권 「공계공등전(孔季恭等傳)」
유열 · 왕탄 · 사경인(1) · 원담 · 저숙도(2) 장무도(3) ,장영, · 유등지 ,유병지, · 사방명 · 강이 공계공 · 양현보 · 심담경
55권 「장도등전(臧燾等傳)」 56권 「사첨등전(謝瞻等傳)」 57권 「채곽전(蔡廓傳)」
장도 · 서광 · 부륭 사첨 · 공림지 채곽
58권 「왕혜등전(王惠等傳)」 59권 「은순등전(殷淳 等傳)」 60권 「범태등전(范泰等傳)」
왕혜 · 사홍미 · 왕구 은순 · 장창 · 하언 · 강지연 범태 · 왕준지 · 왕소지 · 순백자
61권 「무삼왕전(武三王傳)」
유의진 · 유의공 · 유의계
62권 「양흔등전(羊欣等傳)」 63권 「왕화등전(王華等傳)」 64권 「정선지등전(鄭鮮之等傳)」
양흔 · 장부 · 왕미 왕화 · 왕담수 · 은경인 · 심연지 정선지 · 배송지 · 하승천
65권 「길한등전(吉翰等傳)」 66권 「왕경홍등전(王敬弘等傳)」 67권 「사령운전(謝靈運傳)」
길한 · 유도산 · 두기 · 신념 왕경홍(4) · 하상지 사령운
68권 「무이왕전(武二王傳)」
유의강 · 유의선
69권 「유담등전(劉湛等傳)」 70권 「원숙전(袁淑傳)」 71권 「서담지등전(徐湛之等傳)」
유담 · 범엽 원숙 서담지 · 강담 · 왕승작
72권 「문구왕전(文九王傳)」
유삭 · 유굉 · 유창 · 유휴인 · 유휴우 · 유휴업 · 유휴천 · 유이부 · 유휴약
73권 「안연지전(顏延之傳)」 74권 「장질등전(臧質等傳)」 75권 「왕승달등전(王僧達等傳)」
안연지 장질 · 노상 · 심유지 왕승달 · 안준
76권 「주수지등전(朱脩之等傳)」 77권 「유원경등전(柳元景等傳)」 78권 「소사화등전(蕭思話等傳)」
주수지 · 종각 · 왕현모 유원경 · 안사백 · 심경지 소사화 · 유연손
79권 「문오왕전(文五王傳)」
유탄 · 유위 · 유혼 · 유휴무 · 유휴범
80권 「효무십사왕전(孝武十四王傳)」
유자상 · 유자훈 · 유자방 · 유자욱 · 유자란 · 유자인 · 유자진 · 유자원 · 유자우 · 유자맹 · 유자운 · 유자사(劉子師) · 유자소 · 유자사(劉子嗣) · 유찬
81권 「유수지등전(劉秀之等傳)」 82권 「주랑등전(周朗等傳)」 83권 「종월등전(宗越等傳)」
유수지 · 고침 · 고기지 주랑 · 심회문 종월 · 오희 · 황회
84권 「등완등전(鄧琬等傳)」 85권 「사장등전(謝莊等傳)」 86권 「은효조등전(殷孝祖等傳)」
등완 · 원의 · 공기(孔覬) 사장 · 왕경문(5) 은효조 · 유면
87권 「소혜개등전(蕭惠開等傳)」 88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89권 「원찬전(袁粲傳)」
소혜개 · 은염 설안도 · 심문수 · 최도고 원찬
90권 「명사왕전(明四王傳)」
유우 · 유홰 · 유숭 · 유희
91권 「효의전(孝義傳)」
공영 · 유유(劉瑜) · 가은 · 곽세도 · 자원평 · 엄세기 · 오규 · 반종 · 장진지 · 왕팽 · 장공 · 서경 · 손법종 · 범숙손 · 복천여 · 허소선 · 여제민 · 손극 · 하자평
92권 「양리전(良吏傳)」
왕진지 · 두혜도 · 서활 · 육휘 · 완장지 · 강병지 · 왕흠지
93권 「은일전(隱逸傳)」
대옹 · 종병 · 주속지 · 왕홍지 · 완만영 · 공순지 · 유응지 · 공기(龚祈) · 적법사 · 도잠 · 종욱지 · 심도건 · 곽희림 · 뇌차종 · 주백년 · 왕소 · 관강지
94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완전부 · 왕도륭 · 양운장
95권 「삭로전(索虜傳)」 96권 「선비토욕혼(鮮卑吐谷渾)」
삭로 토욕혼
97권 「이만전(夷蠻傳)」
임읍국 · 부남국 · 가라타국 · 가라단국 · 반황국 · 반달국 · 사파파달국 · 사자국 · 가비려국 · 고구려 · 백제국 · 왜국 · 형옹주만 · 예주만
98권 「저호전(氐胡傳)」 99권 「이흉전(二凶傳)」
구지 · 저거몽손 유소(劉劭) · 유준(劉濬)
100권 「자서전(自序傳)」
심약
(1) 본명이 사유(謝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인(景仁)으로 표기되었다.
(2)본명이 저유지(褚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숙도(叔度)로 표기되었다.
(3) 본명이 장유(張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무도(茂度)로 표기되었다.
(4) 본명이 왕유지(王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홍(敬弘)으로 표기되었다.
(5) 본명이 왕욱(王彧)으로 유욱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문(景文)으로 표기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3f51ba><tablebgcolor=#3f51b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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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송본기상(宋本紀上)」 2권 「송본기중(宋本紀中)」 3권 「송본기하(宋本紀下)」
유유(裕) · 유의부 유의륭 · 유준(駿) · 유자업 유욱(彧) · 유욱(昱) · 유준(準)
4권 「제본기상(齊本紀上)」 5권 「제본기하(齊本紀下)」
소도성 · 소색 소소업 · 소소문 · 소란 · 소보권 · 소보융
6·7권 「양본기상·중(梁本紀上·中)」 8권 「양본기하(梁本紀下)」
소연 소강 · 소역 · 소방지
9권 「진본기상(陳本紀上)」 10권 「진본기하(陳本紀下)」
진패선 · 진천 · 진백종 진욱 · 진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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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1·12권 「후비전(后妃傳)」 ||
조안종 · 소문수 · 장애친 · 장궐 · 사마무영 · 호도안 · 원제규 · 왕헌원 · 은숙의 · 하영완 · 심용희 · 왕정풍 · 진묘등 · 강간규 · 진법용 · 사범경 · 진도정 · 유지용 · 배혜소 · 왕보명 · 하정영 · 왕소명 · 유혜단 · 저영거 · 왕순화 · 장상유 · 치휘 · 왕영빈 · 정영광 · 완영영 · 서소패 · 장요아 · 심묘용 · 왕황후 · 유경언 · 심무화 · 장여화
13·14권 「송종실급제왕전(宋宗室及諸王傳)」
유도린 · 유도규 · 유의경 · 유준고 · 유의진 · 유의강 · 유의공 · 유의선 · 유의계 · 유소 · 유준(濬) · 유삭 · 유굉 · 유탄 · 유위 · 유창 · 유혼 · 유휴인 · 유휴우 · 유휴무 · 유휴업 · 유휴천 · 유이부 · 유휴범 · 유휴약 · 유자상 · 유자훈 · 유자방 · 유자욱 · 유자란 · 유자인 · 유자진 · 유자원 · 유자우 · 유자맹 · 유자운 · 유자사(劉子師) · 유자소 · 유자사(劉子嗣) · 유찬 · 유우 · 유홰 · 유숭 · 유희
15권 「유목지등전(劉穆之等傳)」 16권 「왕진악등전(王鎮惡等傳)」
유목지 · 서선지 · 부량 · 단도제 왕진악 · 주령석 · 모수지 · 부홍지 · 주수지 · 왕현모
17권 「유경선등전(劉敬宣等傳)」
유경선 · 유회숙 · 유수 · 손처 · 괴은 · 상정 · 유종 · 우구진 · 맹회옥 · 호번 · 유강조
18권 「조륜지등전(趙倫之等傳)」 19권 「사회등전(謝晦等傳))」
조륜지 · 소사화 · 장도 사회 · 사유 · 사방명 · 사령운
20권 「사홍미전(謝弘微傳)」 21권 「왕홍전(王弘傳)」 22권 「왕담수전(王曇首傳)」
사홍미 왕홍 왕담수 ,왕훈,
23권 「왕탄등전(王誕等傳)」 24권 「왕유지등전(王裕之等傳)」 25권 「왕의등전(王懿等傳)」
왕탄 · 왕화 · 왕혜 · 왕욱 왕유지 · 왕진지 · 왕소지 · 왕열지 · 왕준지 왕의 · 도언지 · 원호지 · 장흥세
26권 「원담전(袁湛傳)」 27권 「공정등전(孔靖等傳)」 28권 「저유지전(褚裕之傳)」
원담 공정 · 공림지 · 은경인 저유지
29권 「채곽전(蔡廓傳)」 30권 「하상지전(何尙之傳)」 31권 「장유전(張裕傳)」
채곽 하상지 장유 ,장승,
32권 「장소전(張邵傳)」 33권 「범태등전(范泰等傳)」 34권 「안연지등전(顔延之等傳)」
장소 범태 · 순백자 · 서광 · 정선지 · 배송지 · 하승천 안연지 · 심회문 · 주랑
35권 「유담등전(劉湛等傳)」 36권 「양흔등전(羊欣等傳)」 37권 「심경지등전(沈慶之等傳)」
유담 · 유열 · 고침 · 고기지 양흔 · 양현보 · 심연지 · 강이 · 강병지 심경지 · 종각
38권 「유원경전(柳元景傳)」 39권 「은효조등전(殷孝祖等傳)」 40권 「노상등전(魯爽等傳)」
유원경 은효조 · 유면 노상 · 설안도 · 등완 · 종월 · 오희 · 황회
41권 「제종실전(齊宗室傳)」
소도도 · 소도생 · 소요광 · 소요흔 · 소면 · 소경선 · 소적부 · · 소탄 · 소탄지
42·43권 「제고제제자전(齊高帝諸子傳)」
소억 · 소영 · 소황 · 소엽 · 소고 · 소장 · 소삭 · 소감 · 소봉 · 소예 · 소갱 · 소구 · 소현
44권 「제무제제자·제문혜제자·명제제자전(齊高帝諸子·文惠諸子·明帝諸子傳)」
소장무 · 소자량 · 소자경(卿) · 소자향 · 소자경(敬) · 소자무 · 소자륭 · 소자진 · 소자명 · 소자한 · 소자륜 · 소자정 · 소자악 · 소자문
소자준 · 소자림 · 소자건 · 소자하 · 소소수 · 소소찬 · 소보의 · 소보현 · 소보원 · 소보인 · 소보유 · 소보숭 · 소보정
45권 「왕경칙등전(王敬則等傳」 46권 「이안인등전(李安人等傳)」
왕경칙 · 진현달 · 장경아 · 최혜경 이안인 · 대승정 · 환강 · 초도 · 조무 · 여안국 · 주산도 · 주반룡 · 왕광지
47권 「순백옥등전(荀伯玉等傳)」 48권 「육징등전(陸澄等傳)」
순백옥 · 최조사 · 설연 · 우종 · 호해지 · 우완지 · 유휴 · 강석 육징 · 육혜효 · 육궐
49권 「유고지등전(庾杲之等傳)」 50권 「유환등전(劉瓛等傳)」
유고지 · 왕심 · 공규 · 유회진 유환 · 명승소 · 유이 · 유규
51·52권 「양종실전(梁宗室傳)」
소경 ,소매 소발 소앙 소욱, · 소의 · 소부 · 소창 · 소융 · 소굉 ,소정인 소정의 소정덕 소정립, 소수 · 소위 · 소회 · 소담
53권 「양무제자전(梁武帝諸子傳)」
소통 · 소종 · 소적 · 소속 · 소윤 · 소기
54권 「양간문제자·원제제자전(梁簡文帝諸子·元帝諸子傳)」
소대기 · 소대심 · 소대관 · 소대림 · 소대련 · 소대춘 · 소대성 · 소대봉 · 소대아 · 소대장 · 소대균 · 소대위 · 소대훈 · 소대구 · 소대흔 · 소대지 · 소대원 · 소방등 · 소방제 · 소방구 · 소방략
55권 「왕무등전(王茂等傳)」
왕무 · 조경종 · 조의종 · 석천문 · 하후상 · 길사첨 · 채도공 · 양공칙 · 등원기 · 장혜소 · 장징 · 풍도근 · 강현 · 창의지
56권 「장홍책등전(張弘策等傳)」 57권 「심약등전(沈約等傳)」 58권 「위예등전(韋叡等傳)」
장홍책 · 유역 · 정소숙 · 여승진 · 악애 심약 · 범운 위예 · 배수
59권 「강엄등전(江淹等傳)」 60권 「범수등전(范岫等傳)」 61권 「진백지등전(陳伯之等傳)」
강엄 · 임방 · 왕승유 범수 · 부소 · 공휴원 · 강혁 · 서면 · 허무 · 은균 진백지 · 진경지 · 난흠
62권 「하창등전(賀瑒等傳)」 63권 「왕신념등전(王神念等傳)」 64권 「강자일등전( 江子一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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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권 「진종실제왕전(陳宗室諸王傳)」
진의 · 진상 · 진혜기 · 진창 · 진담랑 · 진백무 · 진백산 · 진백고 · 진백공 · 진백인 · 진백의 · 진백례 · 진백지 · 진백모
진숙릉 · 진숙영 · 진숙견 · 진숙명 · 진숙경 · 진숙헌 · 진숙제 · 진숙문 · 진숙달 · 진숙탄 · 진숙표 · 진숙웅 · 진숙중 · 진숙엄 · 진숙신 · 진숙우 · 진숙평 · 진숙오 · 진숙흥 · 진숙선 · 진숙목 · 진숙검 · 진숙징 · 진숙소 · 진숙광 · 진숙순 · 진숙모 · 진숙현 · 진숙륭 · 진숙영
진심 · 진장 · 진윤 · 진억 · 진언 · 진경 · 진건 · 진념 · 진지 · 진전 · 진번
66권 「두승명등전(杜僧明等傳)」
두승명 · 주문육 · 후진 · 후안도 · 구양위 · 황법구 · 순우량 · 장소달 · 오명철
67권 「호영등전(胡穎等傳)」
호영 · 서도 · 두릉 · 주철무(1) · 정령세 · 심각 · 육자륭 · 전도집 · 낙문아 · 손창 · 서세보 · 주부 · 순랑 · 주경 · 노실달 · 소마하 · 임충 · 번의
68권 「조지례등전(趙知禮等傳)」
조지례 · 채경력 · 종원요 · 한자고 · 화교 · 유사지 · 사기 · 모희 · 심군리 · 육산재
69권 「심형등전(沈炯等傳)」
심형 · 우려 · 부재 · 고야왕 · 요찰
70권 「순리전(循吏傳)」
길한 · 두기 · 신념 · 두혜도 · 완장지 · 견법숭 · 부염 · 우원 · 왕홍궤 · 심우 · 범술증 · 손겸 · 하원 · 곽조심
71권 「유림전(儒林傳)」
복만용 · 하동지 · 엄식지 · 사마경 · 변화 · 최령은 · 공첨 · 노광 · 심준(峻) · 공자구 · 황간 · 심수 · 척곤 · 정작 · 전완 · 장기 · 고월 · 척곤 · 왕원규
72권 「문학전(文學傳)」
구영국 · 단초 · 변빈 · 구거원 · 왕지심 · 최위조 · 조충지 · 가희경 · 원준 · 유소(昭) · 종영 · 주흥사 · 오균 · 유협 · 하사징 · 임효공 · 안협 · 기소유 · 두지위 · 안황 · 잠지경 · 하지원 · 서백양 · 장정견 · 완탁
73·74권 「효의전(孝義傳)」
공영 · 유유(瑜) · 가은 · 곽세통 · 엄세기 · 오규 · 반종 · 장진지 · 구걸 · 사각수 · 왕팽 · 장공 · 서경 · 손법종 · 범숙손 · 복천여 · 허소선 · 여제인 · 손극 · 하자평 · 최회순 · 왕허지 · 오경지 · 소예명 · 소교처양 · 공손승원 · 오흔지 · 한계백 · 구관선 · 손담 · 화보 · 해숙겸 · 한영민 · 유풍 · 봉연백 · 오달지 · 왕문수 · 악이지 · 손법종 · 유도민 · 등담공 · 도계직 · 심숭소 · 순장 · 길분 · 견염 · 조발호 · 한회명 · 저수 · 장경인 · 도자장 · 성경준 · 이경서 · 사린 · 은불해 · 사마고 · 장소
75·76권 「은일전(隐逸傳)」
도잠 · 종소문 · 심도건 · 공순지 · 주속지 · 대옹 · 적법사 · 뇌차종 · 곽희림 · 유응지 · 공기 · 주백년 · 관강지 · 어부 · 저백옥 · 고환 · 두경산 · 장영서 · 오포 · 서백진 · 심인사 · 완효서 · 등욱 · 도홍경 · 제갈거 · 유혜비 · 범원엽 · 유선 · 장효수 · 유승선
77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서원 · 완전부 · 기승진 · 유계종 · 여법량 · 여문현 · 여법진 · 주석진 · 육험 · 사마신 · 시문경 · 심객경 · 공범
78·79권 「이맥전(夷貊傳)」
임읍 · 부남 · 중천축국 · 사자국 · 고구려 · 백제국 · 신라 · · 부상국· 하남왕국 · 탕창 등지 · 무흥국 · 형옹주·예주만 · 고창 · 쿠처 · 우전국 · 파사국 ·연연
80권 「적신전(賊臣傳)」
후경 ,왕위, · 웅담랑 · 주적 · 유이 · 진보응
(1) 본명이 주철호(周鐵虎)로 당태조로 추존된 이호(李虎)를 피휘하여 무(武)로 개칭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 ||
<colbgcolor=#800080><colcolor=#fff> 劉敬宣
유경선
작호 무강현남(武岡縣男)
유(劉)
이름 경선(敬宣)
만수(萬壽)
생몰 371년 ~ 415년
출신 팽성군(彭城郡)
부친 유뢰지

1. 개요2. 생애
2.1. 초기 생애2.2. 왕공의 거병2.3. 손은의 난2.4. 망명, 그리고 다시 귀순

[clearfix]

1. 개요

동진의 관료로 자는 만수(萬壽)이며, 유뢰지의 아들이다.

2. 생애

2.1. 초기 생애

유뢰지의 아들로 371년에 태어났다. 유경선은 8살에 어머니를 잃고 밤낮으로 슬퍼하여 친척들이 유경선을 기이하게 여겼다. 보국장군 환서(桓序)가 무호(蕪湖)에 진수할 때 유뢰지는 환서의 참군사로 있었는데, 유경선은 사람들이 욕불을 하는 것을 보고 머리 위에 있는 금거울을 벗어서 어머니를 위해 욕불을 하다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환서는 유뢰지에게 유경선은 이미 집안의 효자가 되었으니 틀림없이 나라의 충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경선은 이후 전장군 왕공과 정로장군 사마원현 밑에서 참군을 역임했다.

2.2. 왕공의 거병

398년, 왕공이 사마상지 일파의 토벌을 명분으로 삼아 다시 거병했다. 당시 유뢰지는 왕공의 사마, 보국장군, 진릉군 태수로 있었으나 왕공의 업신여김을 받아 왕공에게 불만이 가득했다. 왕공이 거병할 때 유뢰지는 왕공의 선봉이 되었는데, 회계왕 사마도자가 유뢰지에게 서신을 보내 왕공을 배반하라고 하였다. 유뢰지가 유경선을 불러 의견을 물을 때 유경선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조정이 비록 주나라 성왕강왕 때의 융성함은 없고 한나라 환제영제 때의 어지러움은 없으나, 왕공은 어지러운 틈을 타서 이득을 취하고 군대를 의지하며 황실을 능멸하려고 합니다. 아버님은 왕공과 골육지친도 아니고 군신의 관계도 아니며 비록 함께 일한 것은 잠시 뿐이지만 지향하는 바가 같지 않습니다. 오늘 왕공을 토벌하는데 정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유경선의 말을 받아들인 유뢰지는 결국 죽리(竹里)에 이르러 왕공의 수하 장수인 안연(顔延)을 참수한 뒤 유경선에게는 고아지 등을 이끌고 왕공을 습격하도록 명했다. 유경선은 말을 달려 왕공의 군대를 궤멸시켰다. 사마원현이 후장군으로 진호되자, 유경선은 자의참군(諮議參軍)이 되었고 영삭장군(寧朔將軍)이 더해졌다.

2.3. 손은의 난

399년, 손은이 반란을 일으켰다. 유경선은 유뢰지를 따라 손은의 난 진압에 참가했으며, 기병을 이끌고 손은의 후방을 급습하여 손은은 협공을 두려워하여 결국 달아났다. 또한 회계군을 평정했으며, 임해군 태수가 더해지고 종사중랑으로 옮겼다.

401년, 손은이 다시 협구(浹口)로 진군하여 구장(句章)에 진수한 유유를 공격했으나 여러 차례 유유를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유경선은 이에 원군을 자청하고 유유를 도와 손은을 물리쳤다. 유경선은 나라의 혼란을 염려한 가운데 여러 차례 손은을 격파한 유유와 친분을 맺기 시작했다.

2.4. 망명, 그리고 다시 귀순

402년, 사마원현이 표기장군이 되자 유경선은 표기부의 속관으로 전임되었다. 그러나 사마원현이 교만하고 방탕해지는 모습을 본 유경선은 연회에서 술도 마시지 않아서 사마원현은 유경선에게 불만을 품었다. 뒤이어 유경선은 보국장군이 되었다.

환현을 토벌할 때 사마원현은 정토대도독으로 임명되었으나 날마다 술에 빠졌다. 유뢰지는 사마원현을 만나려고 했지만 사마원현을 만날 수 없었다. 한편 환현이 율주(溧洲)에 도착하여 유뢰지에게 서신을 보내자, 유뢰지는 마음이 흔들려 사마원현을 배신하려고 했다. 유경선은 동탁의 사건을 거론하며 반대했으나 유뢰지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유경선을 환현에게 인질로 보냈다. 하지만 환현은 몰래 유뢰지를 제거하려고 했고 유경선을 안심시키기 위해 잔치를 베풀고 유경선과 함께 서화를 감상했으며, 이때 유경선을 자의참군으로 삼았다.

사마도자 부자가 제거된 뒤 유뢰지는 정동장군, 회계군 태수로 전출되었는데, 이것이 환현이 자신의 병권을 빼앗기 위한 음모임을 알고 한탄했다. 유경선은 유뢰지에게 환현을 쳐야 한다고 말했으나, 유뢰지는 오히려 망설였다가 다음날을 기일로 잡아 환현을 치려고 했다. 하지만 저녁이 되어도 유경선이 돌아오지 않자, 유뢰지는 광릉으로 달아나 환현을 제거하고자 거병하려고 했지만 유뢰지는 벌써 3번이나 배신을 했기에 장수들의 신망이 없었다. 유경선은 수도인 건강으로 돌아왔지만, 유뢰지는 이를 알지 못했고 유경선이 환현에게 사로잡혔을 것이라 판단하여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안 유경선은 사마휴지, 고아지와 합류하고 장강을 건너 후진요흥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요흥은 관동에서 1천의 군대를 모아 유경선에게 주었고 유경선은 다시 팽성으로 가서 군대를 모았다. 환현이 손무종을 파견하여 기주 자사 유궤(劉軌)를 공격하자, 유궤는 유경선과 고아지 등에게 산양(山陽)으로 가서 손무종을 막도록 명했으나, 손무종을 이기지 못했다. 창평간(昌平澗)에서 다시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하여 이번에는 남연모용덕에게 망명한다.

404년, 유경선은 남연에서 청주의 최씨, 봉씨, 선비의 호족과 연합하여 모용덕에게 반기를 들고 사마휴지를 추대하려고 했다. 고아지는 모용덕의 사공이었던 유궤를 끌어들이려고 했으나, 유경선은 유궤를 끌어들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간언했다. 고아지는 유경선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궤에게 계획을 이야기했지만 과연 유궤는 따르지 않았고 결국 고아지와 유궤가 죽었다. 한편 동진에서는 유유가 환현을 몰아내고 유경선에게 서신을 보냈다. 유경선은 유유의 서신에 호응하여 동진으로 돌아와 보국장군, 진릉군 태수로 임명되고 아버지의 작위인 무강현남(武岡縣男)을 습봉했다.

유경선의 귀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환흠이 저족의 양추(楊秋)와 합세하여 역양을 침공한다. 이때 유경선은 건위장군 제갈장민과 함께 출병하여 환흠을 물리치고 연고(練固)에서 양추를 참수하여 건위장군, 강주 자사로 승진하였다. 유경선은 강주에 부임하여 군량과 선박을 비축하였다. 환현의 조카인 환량이 강주 자사를 자칭하며 예장을 침공하고 환량이 다시 부굉(苻宏)을 파견하여 여릉을 침공하자, 유경선은 이들을 모두 토벌해 격파하였다.

유의는 유경선의 참군을 지낸 적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유의를 호걸이라고 칭찬하자, 유경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릇 비상한 재주라면 따로 배치해야 하는데 왜 유의를 호걸로 칭할 수 있소? 유의의 성품은 겉으로는 너그럽지만 속으로는 시기하며, 스스로 자만하여 거만하기 때문에 만약 하루아침에 기회를 얻으면 역시 윗사람을 능멸하여 재앙을 입을 것이오.

유의는 유경선의 발언을 매우 원망하여 이때부터 유경선을 매우 미워했다. 유경선은 결국 불안해져서 강주자사의 직책을 사양한다는 표문을 조정에 올렸고 관군장군(冠軍將軍), 선성군 내사, 양성군 태수가 되었다. 407년, 유유는 유경선에게 공을 세우게 하고자 가절을 내리고 5천의 군사를 주어 초종을 토벌하도록 명했다. 국자박사(國子博士) 주지(周祗)는 유경선의 출병을 반대하는 서신을 유유에게 전했으나 유유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경선은 감정촉제군사(監征蜀諸軍事)으로 임명되어 삼협으로 입성한 뒤 진무장군 온조(溫祚)에게 외수(外水)에서 진군하도록 명했고, 자신은 익주 자사 포루(鮑陋), 보국장군 문처무(文處茂), 용양장군 시연조(時延祖)를 이끌고 점강(墊江)을 따라 진군하였다. 유경선은 성도에서 500리 정도 떨어진 황호(黃虎)에 도착해서 초도복(譙道福)과 60여 일 대치하며 10여 번의 크고 작은 싸움을 벌였지만 초도복이 굳게 지키며 감히 나오지 않으니 유경선은 진군하지 못했다. 게다가 군량이 떨어지고 전염병까지 퍼지면서 죽은 사람이 태반이나 되었기에 결국 군대를 이끌고 귀환했다. 유경선은 탄핵을 받아 면직되었고 봉호가 3분의 1로 깎였다.

409년, 유유가 남연을 정벌할 때 유경선은 자의참군(諮議參軍)으로 제수되고 관군장군(冠軍將軍)이 더해졌다. 임구에서 모용초가 출병하자, 유경선은 연주 자사 유번(劉藩) 등과 함께 분투하여 모용초를 대파하였다. 용양장군 맹용부가 전사하자, 유경선은 맹용부의 군대를 이끌고 광고(廣固)를 포위하며 여러 차례 공성책을 바쳤다. 그리고 모용초을 사로잡을 때 모용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지 유경선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하기만 했다.

유유가 남연을 정벌한 틈을 타 노순이 반란을 일으키고 수도 건강으로 침공하자, 유경선은 선비의 호반돌기(虎班突騎)를 거느려 노순을 방어하였다. 뒤에 유경선은 사지절(使持節), 도독마두회서제군군사(都督馬頭淮西諸軍郡事), 진만호군(鎭蠻護軍), 회서안풍2군태수, 양국내사로 옮겼다. 그리고 노순이 달아나자, 유경선은 노순을 물리치면서 좌위장군으로 전임되고 산기상시가 더해졌다.

415년, 우위장군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유경선의 참군을 지냈던 사마도사(司馬道賜)는 동진 종실의 먼 친족이었는데, 유유가 사마휴지를 토벌할 때 벽려도수(辟閭道秀), 왕맹자(王猛子) 등과 몰래 연합하여 모반을 꾀했다. 사마도사는 스스로 제왕(齊王)을 칭하며 벽려도수를 청주자사로 삼고 광고를 점령하며 거병하여 사마휴지에게 호응하였다. 뒤에 유경선은 벽려도수를 불러 공무를 의논하고 다른 사람들을 다 물리게 했는데, 왕맹자는 뒤에서 주저하다가 유경선의 호신용 칼을 뽑아 유경선을 살해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유경선의 부하들이 나와서 사마도사와 왕맹자 등을 토벌하고 모두 참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