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서(宋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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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본명이 저유지(褚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숙도(叔度)로 표기되었다.
(3) 본명이 장유(張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무도(茂度)로 표기되었다.
(4) 본명이 왕유지(王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홍(敬弘)으로 표기되었다.
(5) 본명이 왕욱(王彧)으로 유욱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문(景文)으로 표기되었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3f51ba><tablebgcolor=#3f51b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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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f51ba><colcolor=#fff> 宗越 종월 | |
작위 | 축양현자(筑陽縣子) → 시안현후(始安縣侯) |
성 | 종(宗) |
이름 | 월(越) |
자 | 언종(彦宗) |
생몰 | 408년 ~ 465년 |
출신 | 남양군(南陽郡) 섭현(葉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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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북조시대 유송의 장수. 효무제와 전폐제로부터 중용되었으나 명제에게 주벌되었다.2. 생애
종월의 집안은 본래 하남(河南) 출신이었지만, 영가의 난으로 중원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남양군(南陽郡) 완현(宛縣)으로 옮겨 살았으며, 토단(土斷) 정책에 따라 남양군 완현에 속하게 되었다. 종월의 집안은 본래 남양군에서는 차문(次門)[1]이었는데, 안북장군(安北將軍) 조륜지가 옹주자사(雍州刺史)가 되어 양양에 부임할 때 양양에 성씨가 너무 많다고 판단하여 장사(長史) 범기지(范覬之)에게 씨족을 정리하게 했고, 그 결과 종월의 집안은 역문(役門)[2]으로 격하되었다.종월은 처음에 군의 아전으로 관리 생활을 시작했다. 종월의 아버지가 이전에 한 만인에게 살해당했는데, 아버지의 원수가 군으로 들어오자 종월은 저잣거리에서 아버지의 원수를 죽였다. 태수 하후목(夏侯穆)은 종월의 뜻을 가상히 여기고 그를 대주(隊主)로 발탁하였다. 또한 군에서 약탈을 저지르는 만인이 있었는데, 태수가 종월에게 이를 토벌하게 해서 종월은 왕왕 이를 진압해서 전공을 세웠다.
종월은 집안이 가난해서 말을 사지 못하고 항상 칼과 방패를 찬 채 단독으로 출진하여 종월을 당해낼 수 있는 적군이 없었다. 종월은 승리할 때마다 군으로부터 5,000전을 받았고 이 보상으로 말을 살 수 있었다. 뒤에 옹주로 부름을 받아 대주가 되었으며, 무릉왕 유준이 양양에 진수한 뒤 양무장군(揚武將軍)이 되었다.
447년, 종월은 문제에게 가문의 위상을 회복함과 동시에 가족들을 관군현(冠軍縣)으로 옮겨달라고 주청하여 문제의 허락을 받아냈다. 450년, 유원경의 북벌에 종군하여 마당(馬幢)을 거느리고 유원호(柳元怙)에게 소속되어 전공을 세웠다. 종월은 돌아와서 후군부 참군독호(參軍督護)가 되었다. 이때 수왕 유탄이 종월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대는 누구이기에 우리 부에서 네 글자의 관명을 얻었는가?
종월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불너구리가 아직 죽지 않았다면 자의참군(諮議參軍)이 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유탄은 크게 웃었다.
종월은 뒤에 유원경이 서양만(西陽蠻)을 정벌할 때 종군했으며, 남중랑장(南中郎將) 무릉왕 유준이 유소를 토벌할 때 장겸행참군(長兼行參軍)으로 전임되어 신정(新亭)에서 전공을 세웠다. 무릉왕 유준은 뒤에 스스로 황제에 오르니 이가 제4대 황제인 효무제였다. 효무제가 즉위한 뒤 종월은 대사마(大司馬) 강하왕(江夏王) 유의공(劉義恭)의 헹참군, 제양태수(濟陽太守)를 맡았으며, 용양장군(龍驤將軍)이 더해졌다.
454년, 장질, 노상, 유의선, 서유보가 효무제에 대항하고자 거병하자, 종월은 역양(歷陽)에 주둔하였다. 노상은 정덕현을 파견하여 대현(大峴)을 점령했고, 정덕현은 별도로 양호흥(楊胡興)과 유촉(劉蜀)을 파견하여 역양을 공격하였다. 종월은 보병과 기병 500명을 이끌고 성에서 서쪽으로부터 10여 리 떨어진 곳에서 이들과 전투를 벌여 양호흥과 유촉을 참수하였다. 노상의 반란이 종식된 뒤 종월은 다시 양산(梁山)으로 진군하여 장질과 전투를 벌였고 이때 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강릉(江陵)까지 추격했다. 한편 조정에서 주수지를 형주자사로 삼았는데, 주수지가 형주자사로 부임하기 전에 종월은 강릉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유의선의 자녀들을 겁탈해서 면직되고 상방(尙方)에 수감되었다. 머지않아 종월은 효무제로부터 용서를 받아 이전의 벼슬로 복귀했고 축양현자(筑陽縣子)에 봉해져서 식읍 400호를 받았다. 종월은 다시 서양왕(西陽王) 유자상의 중병참군(中兵參軍)으로 옮겼고 장군의 칭호는 예전과 같이 받았다.
459년, 장수교위(長水校尉)로 전임되었다. 한편 경릉왕(竟陵王) 유탄이 광릉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종월은 기병들을 이끌고 심경지에게 소속되어 유탄의 반란을 진압하고자 종군하였다. 성이 함락된 뒤 종월은 효무제의 명을 받아 광릉성의 남자들을 수천 명을 죽였다. 종월은 먼저 구타를 하거나 얼굴을 채찍으로 때리면서 이런 행위를 매우 즐겼다. 460년, 시안현자(始安縣子)로 개봉되었다.
464년, 신안왕(新安王) 유자란의 중병참군으로 옮겼고 보국장군(輔國將軍)이 더해졌다. 같은 해, 효무제가 붕어하고 효무제의 태자인 유자업이 즉위하니 이가 제5대 황제인 전폐제였다. 종월은 전폐제가 즉위한 뒤 도독사주예주여남신채여양영천4주제군사(督司州豫州汝南新蔡汝陽潁川四郡諸軍事), 영삭장군(寧朔將軍), 사주자사가 되었으며, 뒤이어 여남신채2군태수를 겸임하였다.
465년, 종월은 유격장군(遊擊將軍), 직합(直閤)에 임명되었다. 또한 남제음태수를 겸임하고 작위가 후로 올라갔으며, 식읍 200호를 추가로 받았다. 종월은 다시 관군장군(冠軍將軍)이 더해지고 남동해태수를 겸임하였으며, 유격장군은 그대로 받았다. 종월은 담금, 동태일(童太壹) 등과 함께 전폐제를 위하여 진력하여 하매(何邁)를 비롯한 대신들을 주살하였으며, 전폐제는 종월 등을 자신의 측근으로 믿고 의지하여 그들에게 비단과 미녀를 잔뜩 하사했다. 종월 등은 거칠고 사나운 무인이었으며, 식견보다는 한때의 감정으로 일을 처리했고 전폐제에게 두 마음을 품지 않았다.
전폐제가 형주(荊州), 상주(湘州)를 순시하고자 할 때 종월 등에게 출궁하여 머무르도록 명했다. 그리고 종월을 비롯한 근위병들이 없는 틈을 타서 수적지가 전폐제를 살해하고 상동왕(湘東王) 유욱을 황제로 세우니 이가 제6대 황제인 명제였다. 사태가 진정된 뒤 종월 등이 입궁하니 명제는 그들을 후대하였다. 종월은 이전의 관직을 그대로 받으면서 남제음태수를 겸임하였다.
하지만 종월 등은 자신들이 전폐제를 위해 진력했기 때문에 명제가 자신들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고 염려했고 명제가 비록 그들을 후대했지만 속으로는 명제를 두려워했다. 명제 또한 종월 등을 궁중에 두려고 하지 않아서 종월 등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들이 포악한 군주를 만나 오랫동안 근면하고 고생했는데, 이제는 고락을 바꾸고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땅을 얻어야 한다. 병마가 많은 군은 경들의 선택에 따르겠다.
이미 명제를 두려워했던 종월 등은 명제의 명을 듣고 서로 낯빛이 변해서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들은 자신의 모반을 심유지에게 알렸는데, 심유지가 이들의 모반을 명제에게 알리면서 종월 등은 결국 투옥되어 옥중에서 사사되었다.
3. 여담
- 종월은 진영을 세우고 포진하는 것에 뛰어나서 매양 수만 명이 주둔했다. 종월은 스스로 말에 올라 앞으로 나아가면서 군인들에게 자신의 뒤를 따르도록 명했으며, 종월의 말이 멈추면 진영이 완성되었는데, 여기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심유지가 은효조를 대신하여 남토전봉(南討前鋒)이 되었을 때 은효조가 전사하여 군사들이 모두 두려워했는데 심유지는 이때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종월이 매우 아깝기 때문에 남보다 뛰어난 점을 가지고 있다.
- 종월은 아랫사람들을 엄혹하게 다스렸으며, 고문하여 죽이는 것을 좋아했다. 또한 사소한 원한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군법으로 다스렸다. 당시 왕현모가 아랫사람들을 다스릴 때도 은혜를 적게 베풀었는데, 장병들이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5년 동안 군인이 될지언정 왕현모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왕현모의 휘하에 있다면 그런대로 괜찮겠지만 종월의 휘하에 있다면 종월이 우리를 죽일 것이다.
- 종월은 광릉에서 잔혹한 고문을 일삼았는데, 먼저 창자를 도려내고 구멍을 뚫었으며, 얼굴과 배를 채찍으로 때린 뒤 상처가 난 부위에 쓴술을 붓고 형틀로 사람을 죽였다. 이 내용은 송서 천문지에 나오는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