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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권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 |||||||
오환 · 선비 ,가비능, · 부여 ·고구려 · 왜 · 읍루 · 예맥 · 동옥저 · 마한 · 진한 · 변한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08b><tablebgcolor=#00008b> ||
}}}}}}}}}}}} || 文欽 문흠 | ||||
작위 | 초후(譙侯) | |||
최종직위 | 조위 | 전장군(前將軍) 양주자사(揚州刺史) | ||
손오 | 도호(都護) 가절(加節) 진북대장군(鎭北大將軍) 유주목(幽州牧) | |||
성씨 | 문(文) | |||
명 | 흠(欽) | |||
자 | 중약(仲若) | |||
아버지 | 문직(文稷) | |||
생몰연도 | ?년 ~ 257년 | |||
고향 | 예주(豫州) 초군(譙郡) 초현(譙縣) | |||
사망지 | 양주(揚州) 회남군(淮南郡) 수춘현(壽春縣)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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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손량) | 도호(都護) 가절(加節) 진북대장군(鎭北大將軍) 유주목(幽州牧) | }}}}}}}}} |
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 오나라의 무장으로 자는 중약(仲若). 예주 초군 초현 출신이며, 아들로 문앙, 문호를 두었다.2. 생애
2.1. 위나라 임관 시절
부친 문직(文稷)이 조조에게 출사해 무예로 공적을 세웠으며, 그 또한 무용으로 이름을 얻었다. 위풍의 반란 기도에 연좌되어 처벌받을 위기에 놓였다가 아버지의 공로를 참작해 용서되었고, 동향 출신인 조상과 서로 친밀하여 조예 사후 조상이 정권을 잡자 중용되었다. 하지만 덕망이 없고 오만한 성격 탓에 주변에서 수많은 미움을 받기도 했다.인간성이 저렇다보니 전리품이나 포로를 독식하는 일이 잦아 왕릉에게 탄핵되었지만, 조상은 별 취조도 없이 문흠을 관군장군으로 승진시켰고, 문흠은 이를 계기로 더욱 교만해졌다. 또 제갈탄이 양주자사로 있던 시절 그의 휘하에 있었는데, 이때 왕기는 제갈탄에게 문흠에게는 변방을 맡겨서는 안된다고 진언했지만, 제갈탄 역시 문흠을 안 좋게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휘하에 배속시켰다. 더군다나 조상이 고평릉 사변으로 숙청당한 뒤에도 문흠은 살아남아 양주 자사에 전장군까지 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년 뒤인 253년에 제갈각이 합비신성을 노리고 쳐들어오자 관구검, 장특과 더불어 이를 수비했다.
헌데 이런 전공에도 불구하고 신변에 불안함을 느끼던 그는 사마사가 조방을 폐위해 조모를 제위에 앉히자 같은 입장이던 관구검과 손잡고 255년 정월에 수춘에서 반기를 들었다. 낙가성 전투에서 아들 문앙이 분전했지만 이를 지원해야 할 문흠 자신은 길을 잃고 헤메다가 패배했으며, 사마사의 병세를 알린 윤대목의 귀띔도 알아보지 못하고 아들들과 더불어 동흥까지 올라온 손오의 군세에 망명했다.
이때 문흠이 거기장군 곽회에게 서신을 보내어 함께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곽회가 1월 30일에 죽었기 때문에 헛일이 되었다.
저는 (윤 정월) 16일에 따로 진병하여 낙가성(樂嘉城)에 이르러 사마사를 치니 사마사의 무리들이 곧이어 붕궤하여 그들이 베이고 끊어졌고 다시 그들을 용서하지 않고 다만 멀리 달려가 곧바로 낙양으로 향하려 했으나, 근거없는 소문이 먼저 이르러 관구검이 이를 다시 상세히 헤아리지 않고 또한 제가 그르친 것으로 여기니 이리하여 군대가 곧 와해되었습니다. 관구검이 되돌아 달아나니 제가 뒤쫓아가 오해를 풀려했으나 미치지 못했습니다. 저는 항(項)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왕기 등의 12군을 만나 관구검을 뒤쫓다가 진병하여 이를 쳐서 즉시 격파하였고 향하는 곳마다 전승(全勝,완승)하였습니다. 그러나 뒤에 이어지는 군대가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우선 낙가성 전투는 상술했듯 아들 문앙이 계책을 내고 분투했는데 문흠이 길 못찾고 트롤링해서 망한 전투에 가깝고 정사 삼국지나 진서 경제기나 일관적으로 문흠이 이후 사마사가 보낸 기병에 아주 뼛속까지 탈탈 털렸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나마 자치통감을 참조하면 그 와중에 문앙이 어떻게든 살려고 홀로 수백명씩 추격군 기병 죽여가면서 분전하긴 했다. 그런데 뭐? '사마사를 탈탈 털고 낙양으로 진군하려 했는데 관구검이 헛소문 믿고 도망가서 못했다?', '자기가 향하는 곳마다 완승했다?' 참 허풍도 이 정도면 예술이다.(...)
재밌는 건 문흠이 이 편지에서 "전 수춘도 함락되고 갈 곳이 없어 오나라로 갑니다. 오나라에 가서 위나라를 치고 조씨가 혈식이라도 받아먹게 하려는 충심이니 님도 봉기하시고, 진천의 병졸만으로는 봉기 힘들테니 님도 한나라(=촉한)에 귀부하셔서 같이 위나라를 치도록 합시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곽회가 물론 아내가 왕릉의 일족이라는 이유로 처형당할 뻔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글을 대놓고 쓴 것은 위화감이 있다.
이 글로 미루어 볼 때 곽회가 무조건 친사마씨가 아니라 조진-조상 일족과도 커넥션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곽회 문서로.
2.2. 오나라 임관 시절
오나라에 망명 후에는 주이, 여거 등의 장수들과는 사이가 나빴다고 전해지지만, 실권자 손준과 손침에게는 신임을 받아 가절 진북대장군에 유주목 초후로 임명되었다. 같은 위의 항장 출신 당자와 함께 여거를 공격하는 일을 맡기도 했으며, 손준에게 위를 공격하자고 주장하여 여거, 유찬, 당자, 주이 등이 서주와 청주를 습격하는 작전을 짜게 했기도 한다.2.3. 제갈탄의 난, 그리고 죽음
257년에 양주도독으로 복귀한 제갈탄이 사마소에 대항해 반기를 들며 오에 구원을 요청하자 구원군으로 참가했다. 성 밖의 포위를 돌파하고 수춘성 합류에 성공했지만, 향후 전략에 대한 견해 차이로 제갈탄과 다투다가 살해당했다. 이를 계기로 아들들인 문앙과 문호 형제는 위군에 투항하였고, 제갈탄의 군세는 결국 궤멸의 길로 접어들었다.두 차례나 위에 대항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갈탄의 난이 진압된 후에는 그의 주검을 효시하지 않고 거두어 고향에 장사지내는 것이 허락되었는데, 이는 문앙과 문호 형제가 투항한 것을 참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후 문앙이 팔왕의 난에 휘말려 삼족이 멸족당하면서 결국 문흠의 대는 끊겼다.
3. 미디어 믹스
3.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3 |
삼국지 12, 13 |
삼국지 14 |
삼국지 극후반 최강자 문앙의 아버지답게 꽤 쓸만한 무장. 일부 시리즈를 제외하고 전통적으로 무력 80대 초반, 통솔 70대 중반을 찍는다. 후반기 시나리오에서 시작할 경우 문흠보다 무력이 높은 무장이 얼마 없고 그나마도 금방 죽기 때문에 문흠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또한 전통적으로 의리가 낮고 야망이 높아 배신을 잘 하기 때문에 관리는 잘 해줄 필요가 있다. 벌거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인물인데도 아들 문앙이 워낙 쩔어주는 무략을 지닌 인물이다 보니 그래도 무력은 전시리즈 통틀어 80대 초반~70대 후반 밑으로 내려가본 적이 없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문흠의 최고의 가치는 본인보다 동시대 최강자인 큰아들 문앙의 존재. 덕분에 문앙과 비교되어 다소 평가 절하되는 편이 있다. 그러나 문앙의 등장이 워낙 느려서 영웅집결이 아닌 이상 제대로 쓸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쓸 기회가 많은 문흠 쪽이 더 유용한 경우도 많다. 문앙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문앙의 출생년도가 실제 출생년보다 훨씬 빠르게 책정되어있는데도 이 정도다.
삼국지 2에서는 지력이 29밖에 안돼 완전 닭대가리지만 무력은 81이다. 하지만 문흠이 등장한 시기에는 허저와 주태도 살아있어서 잉여.
삼국지 3에서는 마치 담웅이나 이이마냥 무력을 80씩이나 찍고도 장군이 못된다. 수전지휘가 바닥을 기기 때문인데 관구검과 비교해보면 무력이 다소 높은 것을 제외하면 능력치가 사실상 같다. 장군이 못되는 것도 같고 수전지휘가 바닥을 기는 것도 같으며 닭대가리 지력인 것도 같다. 육지 74, 수지 29, 무력 80, 지력 30, 정치 21, 매력 61으로 그나마 매력이 61이라서 육지나 수지중에 하나를 17까지만 올리면 장군이 될 수 있다. 숨겨진 능력치는 야망 10, 운 7, 냉정 8, 용맹 10인데 야망은 제갈탄과 같이 궐기한 점이, 용맹은 문앙의 존재가 반영되어 비교적 후하게 받았다. 그래도 문흠도 꽤나 좋은 전투용 요원[1]이니 손오 방면 전장에서 아주 요긴하게 쓸수 있다. 다만 반대로 낮은 의리덕에 가까 손오 쪽에서 이들을 등용해서 조위를 털어먹는데 쓸 수도 있다. 어느 쪽에 속하든 매우 든든한 전투 요원. 별개로 일러스트는 왠지 문관같이 나왔다.
삼국지 6에서는 어중간한 무장.
삼국지 9에서는 76/82/56/33에 분전, 돌진, 몽충, 매도를 소유하고 있다. 제사도 가지고 있지만 아들은 돌격, 주사를 가지고 있어서 완벽한 아들의 하위호환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정도면 주장급으로 충분하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74/83/43/32/18. 이 정도만 되어도 후기 시나리오에선 꽤나 쓸만하다. 이때부터는 워낙 질 좋은 장수들 씨가 말라서 질보다 일단 장수수가 많은 게 장땡이다. 특기는 징병, 돌격, 기습, 회복, 기염, 반격 6개인데 능력치에 맞게 전투, 일기토쪽에 치우쳐져있지만 매력이 18인데 훈련이 아닌 징병을 보유한 게 좀 흠.(
삼국지 11의 능력치는 10에서 매력이 조금 오르고 나머지는 변동 없이 통솔 74/무력 83/ 지력 43/ 정치 34/ 매력 22, 병종적성은 창병 A/극병 A/노병 B/기병 B/병기 C/수군 C이다. 후반부 장수 중 무력치 상위권이지만 아쉽게도 특기가 없으며 여전히 의리가 낮지만 의형제로 해결이 가능하니 큰 문제는 안 된다. 이 시리즈부터 일러스트가 수염을 단 얼굴로 나왔다. 윤대목, 손준과 친애무장으로 설정되어있고, 악연으로 엮인 주이와 사이가 나빴던 제갈탄이 혐오무장으로 설정되어 있다.
삼국지 12에서는 전작에서 매력만 삭제되고 전법은 무력상승으로, 잉여 전법이지만 그래도 대타격이 있는 문앙의 보조용으로 쓸 수 있다. 참고로 11까지 나오던 작은아들 문호는 12에서 삭제되었다. 일러스트는 범용한 얼굴에다 고심하는 표정을 하고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74/83/43/34. 특기는 훈련 5, 신속 3, 분전 5, 연전 4, 공성 6, 수영 5, 일기 3. 전수특기는 공성으로 전법은 특공. 강유북벌 시나리오에서 광릉에서 거병한 반란 세력의 군주로 등장. 위와 오 사이에 끼어있는 약소세력이다. 역시 큰아들(문앙)만 믿고 갈 수밖에 없다. 참고로 관구검은 북평 쪽에 떨어져있고 제갈탄은 수춘에 거병했다.
삼국지 14에서는 일러스트가 두 손으로 검 손잡이를 잡고 입을 벌린 상태로 분투하는 모습으로 변경되었으며 능력치는 통솔 74, 무력 83, 지력 43, 정치 33, 매력 20으로 전작에 비해 정치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개수, 분쇄, 공명, 격분, 오만, PK에서는 오만 개성이 삭제되고 난폭 개성이 추가되었으며 주의는 아도, 정책은 학익강화 Lv 4, 진형은 어린, 학익, 전법은 분전, 대갈, 매성, 친애무장은 손준, 윤대목, 조상, 혐오무장은 왕릉, 제갈탄, 주이다.
3.2. 진삼국무쌍 시리즈
활약이 후반기에 집중된 무장인 만큼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는 초기 시리즈에서 클론으로도 참전하지 못했다. 그나마 진삼국무쌍 3에서 위나라 호위병 디폴트 네임중 하나로 등장했다.다만 제갈량 사후의 시나리오를 다루게 된 진삼국무쌍 6부터는 클론 무장으로 참전하게 됐으며 이와 함께 비중이 상당히 높아졌다. 클론 무장인데도 불구하고 6에서도 7에서도 등장하는 컷씬이 마련되어 있으며, 아예 곽회에게 감명받아 위나라를 위해 싸우겠다고 한다. 그 때문에 관구검&문흠의 난이 일어난 것. 심지어 사마사와 일기토까지 한다! 그리고 아들 문앙과 함께 사마사를 죽일뻔 하기도 하는 등, 여러 모로 존재감이 높다. 10분 24초부터 보면 된다. 6에서는 사마씨의 전횡에 분노한다는 명분으로 오나라로 투항해 제갈탄과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키며, 연의대로 장기전을 대비해 성 안 백성들을 내보내 식량을 절약하자고 했다가 제갈탄의 손에 죽는다.
진삼국무쌍 7에서는 큰아들 문앙이 진나라 소속으로 정식 참전함에 따라 비중이 늘어남과 동시에 캐릭터성도 더 살아나서, 능력은 뛰어나지만 비열한 캐릭터가 되었다. 이점은 위와 오 사이에 어부지리를 찾으려는 면, 제갈탄의 난에서 자기들의 안전을 신경쓰는 행동으로 더욱더 강조된다. 덕분에 아들 문앙만 고생한다. 특히 진나라 스토리의 사실 루트와 IF 루트를 구분짓는 분기점인 허창 전투에서는 패배하긴 하지만 결국 사마사를 죽이는 목적을 달성하고 만다. 세상에... 덧붙여 죽는 이벤트가 조금 달라졌는데, 제갈탄이 황제 조모의 지원군[2]을 맞이하기 위해 성문을 열려고 하자 폭언을 내뱉다가[3] 제갈탄에게 썰린다.
다만 도망가는 것은 사실 루트 기준으로, 허창 전투에서 사마사의 구출 성공을 가정한 IF 루트에서는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발악하다가 사마소의 편에 붙은 아들 문앙의 손에 제지당한다. 아래가 바로 그 이벤트.
문흠 : (창을 들고 비틀거리며) 아직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 손으로...
(이때 문앙이 멀리서 척창을 던져 문흠의 창을 맞춰 떨어뜨린다.)
문앙 : 아버지... 이제 그만 하십시오! 아버지께서는 정도를 지나치셨습니다!
문흠 : 이놈... 자식이 아비에게 대드는 것이냐! 자식 주제에 아비를...!
(이때 옆에서 병졸들이 튀어나와 문흠을 연행해 간다.)
문흠 : (끌려가며) 놔라! 젠장... 나는! 놔라!
문앙 : (투구를 벗으며) 작별입니다, 아버지...
(이때 문앙이 멀리서 척창을 던져 문흠의 창을 맞춰 떨어뜨린다.)
문앙 : 아버지... 이제 그만 하십시오! 아버지께서는 정도를 지나치셨습니다!
문흠 : 이놈... 자식이 아비에게 대드는 것이냐! 자식 주제에 아비를...!
(이때 옆에서 병졸들이 튀어나와 문흠을 연행해 간다.)
문흠 : (끌려가며) 놔라! 젠장... 나는! 놔라!
문앙 : (투구를 벗으며) 작별입니다, 아버지...
보면 알겠지만, 클론 무장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성이 점점 잡히는 케이스에 속한다. 그래서인지 이런 모습들을 차기작에서 문흠의 참전을 예견하는 복선으로 보는 의견도 많은 편이다. 아들 문앙과 엮을 요소도 있고. 다른 시선으로 봐서는 IF 시나리오에서 아들 2명에게 배신당한 불쌍한 인물로도 볼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문앙의 장성모드 특별대화 상대이기도 한데, 대화내용을 보면 자식의 공부와 무예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지원하고, 자식의 성장에 큰 기대를 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인다.
진삼국무쌍 BLAST 등장인물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1px; margin-top:-8px; margin-bottom:-6px" | 위 | SR | 하후돈, 곽가, 장료, 견희, 순욱(SR), 조비, 조조, 왕이, 문빙(낭아봉)(SR), 조인, 가후, 장합, 만총(요필)(SR), 악진 | |
R | 순욱(장검), 조홍(쌍월), 만총(타구곤), 문빙(언월도), 변씨(피리), 문흠(극), 화타(구조), 하후희(위복장)(피리), 조절(권), 장창포(피리), 조모(쌍인검), 조식(비연검), 최씨(양인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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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 우번(도), 여대(도), 하제(선곤), 원희(권), 주치(극), 제갈각(비연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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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 주창(귀신수갑), 하후희(촉복장)(피리), 엄안(박도), 왕평(양인창), 제갈씨(순패검), 왕도(양인창), 미당(쌍모), 호제(용창), 왕열(쌍두추), 비의(비연검), 마량(비연검), 마속(비연검), 이씨(쌍두추), 요화(R)(열격도) | |||
N | 간옹(구조), 부사인(신세검), 요화(열격도), 미방(쌍검), 습씨(십자극), 장익(순패검), 황호(비연검) | |||
진 | SR | 사마소, 왕원희, 종회, 문앙, 사마의, 사마사, 가충, 하후패, 제갈탄, 등애(나선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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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 | SR | 원소 | ||
R | 안량(연인자), 문추(아벽) | |||
N | 없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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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 수경선생(R), 화웅(극), 우길(폭탄), 기령(쌍모), 화만(귀신수갑), 하태후(구조), 번옥봉(권), 풍씨(권), 마등(극), 한수(쌍월) | |||
N | 동백(십자극), 곽사(극), 황조(아벽), 이각(박도), 수경선생(쌍검), 유표(구조), 엄백호(쇄분동), 왕윤(비연검), 원술(신세검), 장수(비연검), 추씨(피리), 장로(도) |
그리고 진삼국무쌍 BLAST에 추가 무장으로 참전. 일러스트가 상당히 호평을 받고 있는데, 7의 캐릭터성인 능력은 뛰어나지만 비열한 맹장이라는 캐릭터를 잘 살려냈다는 평가다. 또한 진나라에 무쌍 무장이 상대적으로 부족함을 생각하면 정식 넘버링 시리즈에 등장할 가능성도 꽤 높은 편이다.
3.3. 삼국전투기
슬레이드로 등장한다.[4][5] 상용 전투 (1)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며 처음 등장했으며, 소개컷에서는 막강한 전투력과 더러운 성격을 지녔으며, 허저가 사마의에게 그를 소개할 때 성격 빼면 모두 특A급 운운 하며 띄워줬으나 신성 전투 즈음에선 그냥 멍청이 소녀감성 거품으로 전락했다.상용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서황 사후 인재 부족으로 고민하던 사마의에게 허저가 그를 추천했다. 위풍의 반란에 연루됐었기 때문에 목숨은 건졌음에도 출세하지 못했다고 언급됐다.
본격적인 등장은 상용 전투 (2)편 부터다. 등장하자마자 로빈의 모습을 한 누군가[6]를 자기 카레에는 당근을 넣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며 날려버리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했다. 그걸 본 사마의가 힘이 남아돈다고 하자 누구냐고 물었고, 사마의가 자기소개를 하자 네가 표기면 난 거시기대장군이라며 멱살을 잡지만, 사마의가 뿜어내는 오라를 느끼고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직감했는지 바로 멱살을 풀고 자기에겐 무슨 볼 일이냐며 물었다. 이후 사마의에게 교독으로 임명됐다. 이후 사마의가 완으로 출정할 때 함께 출정했다. 이후 사마의가 맹달을 잡으러 출진하려 하자 대군을 움직이려면 폐하에게 표를 올리고 승인을 받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으나 사마의가 모든 책임은 자기가 진다고 말하면서 사마의와 함께 상용으로 향했다. 사마의가 방릉신성을 공략하고자 8면 공격을 선택하자 공성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엄청난 손실이 있을 수밖에 없는 하천에서의 공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명하다니 역시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고 평했다. 신성의 수비가 뚫린 이후에는 맹달과 맞붙어 그를 참하기도 했다.
석정 전투 편에서는 사마의, 제갈탄과 함께 완에서 함대를 정비하고 있다고 묘사됐다.
신성 전투 편에서 오랜만에 재등장. 250년 기준 여강태수로 왕릉, 제갈탄에 이은 회남 방면의 3인자였지만 상당히 입지가 좋지 못했고,[7] 이 때문에 언제 죄가 엮여 날아갈지 모르니 공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여 오 토벌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묘사되었다. 문흠은 주이에게[8] 서신을 보내 항복하는 척 한 뒤 뒷통수를 치려 했지만 주이가 이를 간파하여 방심하지 않고 여거의 2만 대군과 같이 문흠을 찾아오자 문흠은 그냥 꽁무니를 뺐다고 묘사된다.
낙가 전투 편에서는 신성 전투 편에서도 나왔듯 조상이 죽으면서 계속 위태위태한 행보를 걷고 있었고, 그 때문에 이풍과 하후현이 죽으며 비슷한 처지가 된 관구검과 죽이 맞아 합심해서 사마사 퇴진을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켰다.[9] 이후 관구검과 수춘에서 항성으로 진출하지만 사마사 측이 빠른 대응을 하면서 항성에서 포위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문흠은 앞이 완전히 막혔는데 수춘으로 물러나야 하냐고 관구검에게 물었고 이에 관구검은 그럼 그야말로 수춘에서 집중포화를 맞을 거라며 거절했다. 관구검이 무조건 앞을 뚫을 수밖에 없다고 하자 창고가 있는 남돈 공격을 제안했지만 창고가 있으니 역으로 방비가 튼튼할 거라며 거절당했고, 관구검의 의견에 따라 가장 방비가 약할 것으로 추정되는 낙가를 노리기로 정한 뒤 관구검의 최정예 병력을 받고 낙가로 출진했다.
그러나 사마사는 관구검-문흠 연합이 낙가로 움직일 것을 예측하고 있었기에 진작 본진의 병력을 끌고 낙가로 도착해 있었고, 문흠은 낙가에 도착한 뒤 위의 대군을 보고 멘붕했다. 문흠은 이제 끝이라고 좌절했지만 문앙이 딱 보니 저쪽도 막 도착해 정비도 안 된 것 같고 어차피 끝이라면 붙어보고 끝내자고 하여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해 야습을 계획한다. 그리고 문앙이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사마사의 부대를 패닉 상태로 몰아넣는 데는 성공했으나 문흠이 약속했던 양동에 실패하면서 사마사를 잡는 데는 실패했다.[10]
이후 항성으로 도망칠 때까지 계속 고주망태 모드로 일관했으며, 항성 도착 이후 관구검에게 추가 지원을 요청하려 했지만 관구검은 이미 도망친 뒤였다. 결국 별다른 수가 없다고 판단한 문흠은 문앙의 제안으로 오의 손준에게 투항하기로 정하고 수춘으로 이동했다. 제갈탄이 부장 조진을 보내 이들을 추격하게 하며 위기에 처하는 듯 했지만, 오에서 마중을 온 정봉이 조진을 쓸어버리며 무사히 오에 투항했다. 손준의 당신같은 무력형 장수가 꼭 필요했다는 말에 무력형인 거냐며 어이없어하는 개그씬을 찍기도 했다.
전투외편 5편에서는 일단 항복은 했지만 자신들의 토대를 더 탄탄히 하기 위해 뭔가 성과를 내려고 했고, 손준에게 이제까지 오는 합비에만 집착하다 보니 위가 그쪽으로 집중해서 막을 수가 있었다며 결국 합비를 노리더라도 때로는 다른 루트로 위를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손준이 얼마 안 가 사망해서 북벌은 흐지부지된 걸로 묘사된다. 그 밖에는 난을 일으킨 여거를 포위한 장수 중 하나로도 묘사된다.
수춘2 전투 편에서는 손침의 명으로 당자 등과 함께 제갈탄을 지원하러 수춘으로 향했다. 그리고 위의 왕기 등이 수춘을 완전히 포위하기 전에 북산으로 돌아들어가 수춘 입성에 성공했다.
주이가 거듭된 패전 끝에 손침에게 죽임을 당한 뒤 장반이 오는 표면상으로만 도움을 주겠다고 하고 성패를 관망만 하려 한다며 결사항전을 주장하자 손침이 자신들을 버릴 것 같냐며[11] 조금 더 기다리면 지원군이 올 거라며 쓸데없는 전력 낭비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며 반대했다. 결국 제갈탄은 문흠의 말을 들어 계속 수성을 이어갔지만 식량이 다 떨어져 가는데도 지원군이 오지 않자 자기가 한 말을 뒤집어 결사항전을 주장했다. 그렇게 나가서 싸우게 됐지만 참호와 보루 때문에 제대로 된 공격조차 어려운 상황에 놓여 버렸다.
결국 군량이 완전히 바닥났고, 문흠은 제갈탄에게 제갈탄의 군을 버리고 자신의 오군 정예로 활로를 열자고 제안했다. 제갈탄은 당연히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자기 병력까지 버리라는 거냐며 거부했고 문흠은 이에 최고결정권자가 띨띨한 결정을 해 놓고 자기 탓을 하는 거냐며 역으로 제갈탄을 쏘아붙였는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제갈탄에게 넌 항상 고상한 척은 다 하는 주제에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는 법은 없었다고 인신공격을 시도했고 넌 리더 실격이니 그냥 다 자기에게 넘기라고 말하다가 분노한 제갈탄에게 살해당하며 죽었다.
3.4. 반삼국지
왕릉과 함께 세트메뉴로 등장한다. 용문산을 지키다가 제갈첨이 왕릉을 공격하자 맞서 싸우는데, 제갈첨에게 팔을 다치고 만다. 아들 문앙이 잘 버티고 있었으나 문흠이 다치는 걸 보고 마음이 어지러워졌으며, 결국 버티지 못하고 모두 퇴각한다. 용문산을 잃은 소식을 사마소에게 전하자 사마소는 왕릉과 문흠을 압송해버리는데, 이에 문앙이 분노하여 두 사람을 구출하고 한나라 쪽으로 투항한다. 문흠은 전투일선에서 물러나 상처를 치료하러 의양으로 갔다가, 제갈량을 만나 태수를 제수받고 등장 종료.[1] 장군은 못 되지만 무력 80, 육지 74로 꽤 쓸만하다. 특히 후반부 시나리오에서는 더욱더.[2] 7에서의 제갈탄의 난은 조모가 제갈탄에게 바람을 불어넣어서 일어난 것으로 묘사된다. 전투 시작 전의 이벤트에서 제갈탄이 황제의 밀서를 받는 부분이 있다.[3] 개라고 비하받는 제갈탄에게 "이 개X끼야!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멋대로 성문을 열다니 제정신이야?!" 라고 해버렸다. 마침 제갈탄도 문흠의 비열한 성격이 마음에 안들던차에 자기와 황제를 싸잡아 까자 열뻗쳐서 죽여버리고 반란군은 그대로 붕괴된다.[4] 투구는 타이틀 컷에서 소개될 때만 잠시 들고 나왔으며 작중에서는 그냥 맨얼굴로 다닌다.[5] 참고로 제갈탄의 패러디가 데드풀이란 것을 감안한다면 적절하다.[6] 나중에 하안도 로빈으로 패러디되어 나오지만, 상용 전투 편에서 문흠에게 날아간 이 인물이 하안인지는 불명이다. 일단 정사에서 문흠은 조상 일파거나 긴밀한 관계의 있던 인물이었으니 하안일 가능성이 없진 않은데, 문흠이 하안을 막 대할 수 있는 위치였냐 하면 그건 상당히 애매해지기 때문이다.[7] 문흠은 앞에 언급한 1~2인자인 왕릉과 제갈탄과 모두 사이가 좋지 못했다. 친구 조상이 살아있을 때는 문제가 안 됐지만 사마의가 정권을 잡으면서 일이 꼬인 것. 문흠은 사마의가 발굴한 인재 아니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는데 사실 본작에서의 상용 전투 편에서의 문흠의 행적은 작가의 창작이고 실제 정사에서는 조상이 정권을 잡을 때까지 찌그러져 살다가 친구 조상이 권력을 잡자 본격적으로 기가 펴진 것이다.[8] 이 때 문흠이 주이를 박살내려는 데 집착하는 이유도 살짝 언급된다. 과거 문흠은 거점이 부족하기에 오가 계속 여강을 노린다고 여겨 수많은 거점과 보루를 세웠지만, 주이가 그 거점들과 보루를 전부 각개격파해버렸기 때문에 앙심을 품은 것으로 묘사된다.[9] 본디 관구검은 회남의 군 통수권자로 수춘에 있었고, 문흠이 여강태수에서 양주자사로 승진하며 뭉칠 수 있었다고 서술됐다.[10] 문앙이 양동을 제안할 때 문흠이 제대로 못 듣는 장면으로 복선을 깔아 놨었다.[11] 같이 온 당자는 주이가 죽은 이상 다음 대도독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하고, 또한 전씨 형제들은 오나라 최고 명가이니 손침은 자신들을 버리지 않을 거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