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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식 기와집 한옥의 건축 |
1. 개요
한옥(韓屋)은 한민족의 전통적인 가옥이다.한옥은 한반도와 만주[1]의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으며, 이러한 건축의 발전은 한국인의 재래식 의식주와 생활 양식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한민족 고유의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한옥이란 말 자체는 구한말에 문호가 개방되고 그에 따라 외국의 방식으로 이질적인 건축양식이 들어오면서 처음 생긴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한민족이 식민지 시기를 겪고 해방 후에는 산업화와 현대화를 거쳐, 전통적인 한옥이 서양식 건축물(洋屋)에 밀려서 오히려 소수가 되자, 한민족의 전통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을 부르는 단어로서 한옥이란 단어가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2] 현대 한국의 건축 양식은 다른 나라와 비견하면 큰 차이[3]가 있으므로 외국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 한반도에 건설되고 있는 한민족이 사는 주택도 한옥이라고 할 수 있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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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한국 건축#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한국 건축#|]] 부분을 참고하십시오.한옥은 석기 시대 막집, 움집같은 수혈식 구조에서 시작됐으며 역사 시대까지도 마한은 비슷한 형태의 주거가 이뤄졌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가야의 고상 가옥, 만주같은 북부에서는 구들이 사용된 원초적 한옥 구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삼국 시대의 가옥은 경주 북군동 기와집모양 토기 같은 여러 유물이나 벽화 등을 통해 형태를 유추할 수 있다. 대부분 평민들이 살던 곳은 단칸집이지만 여러 기둥을 세워 지은 비교적 넓은, 현대인의 기준에서 가옥이라 부를만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 시기 중국에서 기와와 단청이 전래되어 왕궁같은 상류층의 가옥들은 오늘날 흔히 떠올리는 기와로 된 화려한 가옥의 형태를 갖췄다.
대체로 고구려 등의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는 구들이 이어져 내려오고 열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창문과 문을 좁게 틀었다. 반면 비교적 따뜻한 남쪽에서는 대체로 그보다 개방적인 형태를 띄었다. 다만 이런 구조의 개방성은 위도에 따라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고, 국지적인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반도 남부에서도 경북 등의 산간지대에서는 바람과 보온에 신경을 많이 써 폐쇄적인 구조, 복잡한 평면, 작은 개구부 등의 특징을 가진 가옥이 많았다.[4] 타 지방에 살던 사람이 중부지방으로 이주하면서 그 형태가 중부지방에서 보이는 경우도 있다.
신라와 고려 시대에는 귀족 문화의 융성과 함께 매우 사치스러운 주택을 지었다. 신라 말에는 황동 등 금속 부착물로 집을 장식하기도 했고[5], 심지어 금입택이라 하여 황금으로 집을 덮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6] 고려시대에는 화려한 귀족문화가 극에 달해 고려 청자로된 청와(청자 지붕)를 올리는 것이 유행했다.
이 시대에는 입식 생활을 하여 타일을 깔기도 했고, 단청을 칠하거나 복층 구조, 누각에 기단을 쌓고 난간을 설치하는 등 조선 시대와는 매우 다른 형태의 한옥 양상이 나타났다. 또한 풍수지리 사상의 전래와 함께 배산임수와 같은 건축 법칙들을 따르기도 했으며 이 시기 마을 유적에 따르면 온돌이 보편화되기도 했다. 물론 이 시기 하층민은 땅을 파고 지은 수혈식 초가집에서 생활했다.
조선 시대에는 사치를 백안시하는 유교 문화가 주류로 자리잡으면서 보다 검소한 주택 형태를 추구하게 되었다. 물론 고려의 영향이 남았던 전기에는 궁궐에서 청기와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실록에 남아 있으며, 경복궁 복원 사업을 위해 궁터에서 발굴 작업을 한 결과 다량의 청와가 발견되어 경복궁의 건물 다수가 청와 건물이었음을 입증하였다. 참고로 현대에 남아있는 궁궐 전각 중에서 유일한 청와 건물은 창덕궁 선정전이다. # 그리고 복층 구조를 지닌 집이 있는 등 조선 시대의 이미지와 상반되는 기록들도 상당수 있다.
지방에서는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한옥 고택들처럼 공간을 넓게 사용한 건물군으로 이뤄진 주택과 초가집 등이 있었으며, 한양의 사대문 안 도시나 마포나루 등 포구 등에는 북촌 한옥 같이 단일 건물이 ㅁ 자나 ㄹ 자로 꺾이고 꺾여서 공간 활용도를 높인 구조가 구한말 사진에서 확인된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정세권 등의 사업가들 영향으로 개량 한옥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이러한 도시형 한옥들이 빼곡하게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서구식 건물이 들어서며 한옥은 본격적으로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이 시기 일본식 건축물과 근대식 건물이 대거 들어서면서 부산, 목포, 서울, 인천, 평양 등 대도시에서는 한옥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물론 과도기의 영향으로 양식과, 한식의 형태가 뒤섞인 한옥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도 한국 전쟁과 새마을 운동을 거치면서 기존 한국인의 주거 형태에 큰 변화를 거쳤고, 재래식 가옥들이 신식 가옥들로 대체되면서 한옥은 과거의 주거 형태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한옥의 구조는 여전히 한국의 주거생활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현대 한국의 대다수가 주거하는 아파트는 한옥의 구조를 받아들여 일본이나 서양권의 아파트와 다르게 거실을 대청마루, 안마당으로 재해석해 거실을 기준으로 방사형으로 방이 붙어있는 구조를 띄고 있다.
그 외에도 높이가 낮은 주택들은 담장이나 지붕을 검은색 기와나 파란색 기와나 빨간색 기와로 덮은 집이 많은 편이다.
3. 구조
3.1. 재료
지역이나 재산, 지위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나무, 흙, 돌, 짚 등을 이용하여 만든다. 나무와 짚으로 뼈대를 만들고 황토를 발라 벽을 만든 뒤 어느 정도 굳으면 한지를 붙여 마무리 한다. 돌의 경우엔 밑돌로 쓰며 온돌을 내장시키고 주방과 연결한다. 때문에 주방은 방보다 낮은 곳에 위치하여 남는 지붕칸에 다락을 만들어 썼다. 지붕도 위의 재료들중 하나를 선택하여 쌓아놓는다. 부자집의 경우엔 기와[7]로 지붕을 덮었다.3.2. 뼈대의 형태
크게 수직으로 하중을 지탱해주는 기둥과, 가로로 하중을 지탱해주는 보로 나뉘는 구조다. 기둥밑에는 주춧돌을 두어 땅속의 수분이 기둥에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고 기둥과 보로 토대를 구성했으면 그위로 서까래를 얹어 지붕의 뼈대를 만들고 널판지와 기와를 얹는 식이다. 한옥의 모든 구조는 지붕의 무게를 버티는 것이 관건이다. 기와 - 흙 - 적심(흙을 받치기 위한 나무 껍데기쪽의 널판자) - 개판(서까래 사이를 덮어주는 판자) - 서까래 - 도리(서까래 받침목 : 통상 마지막 도리를 얹는 일을 상량이라고 한다.) - 장여(도리 받침: 원형의 도리는 돌아가기에 원형으로 홈을 파서 이 도리를 잡아주는 부재를 말한다.) - 보(제일 큰 보를 대들보, 맨 위에 있는 보를 종보, 사이에 보가 하나 더 있다면 중보라고 부른다.) - 창방(기둥사이에 횡방향으로 결합되는 부재로 기둥머리에서 보와 창방이 십자 형태로 결구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이러한 결구로 기둥은 횡방향, 종방향으로 기둥머리에 하중이 집중된다.) - 기둥 - 주춧돌 - 기단 - 지정 - 나대지의 순으로 지붕 전체의 무게가 내려오는 구조이다. 기와까지 올라갔을 때 한옥 지붕의 무게는 톤 단위로 계산될 정도로 무거워진다. 오죽하면 기와를 쌓는 번와공사중 기와를 지붕 위에 두며 공사할 때 한 곳에 두면 절대로 안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이를 '기와나누기'라고 부른다.기와 한옥은 이를 버티기 위해 지름이 7치(21cm) 이상인 기둥을 쓴다. 그러나 초가한옥은 지붕의 무게가 비교적 가벼워 통상 6치(18 cm) 가량이면 건축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통상 가장 큰 지붕을 가진 사찰이나 궁궐의 경우에는 1자(지름 30 cm) 이상의 나무가 기본적인 크기가 된다. 이는 공포와 관련되어 있는데 대들보 위에 장여를 놓고 바로 서까래를 걸면 천장이 높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열대기후가 아닌 한반도에서 원하는 만큼의 길고 굵고 곧은 나무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공포를 포개어 쌓아 놓고 지붕을 강제로 높인다. 이것이 공포가 등장한 계기였다.
한편 내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처마를 더욱 바깥으로 빼내어 강수로부터 건물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선호도 있다. 규모에서 비롯되는 위엄은 중요한 요소이지만 천장을 높이기 위해 공포로 기둥을 쌓았다는 가설은 한 가지 맹점을 가진다. 처마 내밀기가 같다는 전제에서 서까래의 위치가 높아진다는 것은 기둥하부가 빗물에 썩는 것을 막을 수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밀히 말하면 올바른 표현은 '위엄을 갖추기 위해서 낮은 천장을 기피하기 때문에 공포가 등장했다.'보다는 '한정된 기둥의 높이로 최대한의 규모의 건물을 짓고자 한다면 공포로 도리의 위치를 높이면서 동시에 출목도리 등 서까래를 더 길게 내밀 수 있는 설계로 기둥 하부를 보호하기 위해 등장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3.3. 지붕의 형태
한옥은 조선왕조의 신분제도의 영향을 받아 지붕의 형태가 다르게 보이기도 하였는데 왕족이나 양반 계급의 경우는 장식적이고 호화롭게 보이는 기와 지붕을 사용하였고 일반 평민 계급의 경우는 짚으로 이은 초가 지붕을 사용하였던 것이 특징이다. 기와의 수명은 10년 이상이고 초가의 경우 2~3년에 불과하다. 기나긴 장마철에 비가 조금씩 새는 것이 다반사이기에 초가 한옥와 기와 한옥의 선택은 부의 편중에 의해 선택이 나뉜다.초가한옥에서는 휘고 짧은 나무를 선택하기에 지붕이 낮다. 기와한옥의 경우 곧고 굵은 나무를 구해 짓기에 지붕이 상대적으로 높아 단열은 초가한옥이 우수한 편이다. 근본적으로 참나무에 비해 열량이 높은 소나무를 장작으로 썼던 한반도에서 구들에 장작으로 난방을 하면 등이 뜨거울 정도로 온도가 상승한다. 그래서 완벽한 단열보다는 뜨거움울 적당히 감해줄 위풍을 허용하고 또 필요하기까지 하다.
정면에서 보면 사다리꼴의 모양에 측면은 삼각형의 모양을 띤 것이 우진각지붕인데 이는 보통 초가한옥의 근본을 이룬다. 정면에서 보면 사각형에 사다리꼴이 붙어 있는 형태가 팔작지붕이라고 한다. 이러한 팔작지붕은 멋스러움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처마를 길게 내뻗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보통 5자 이상을 내미는데 모퉁이 처마는 추녀를 사용하여 10자 이상 내미는 경우도 있다. 모퉁이 기둥이 비에 젖고 강한 햇빛에 노출되면 뒤틀림이 발생하고 이는 집의 근본 축이 돌아가는 경우까지 이어지기에 비와 강한 햇볕으로부터 보호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이런 구조가 나온 듯하다. 이에 반해 초가 한옥에서 기둥은 벽을 만들고 진흙으로 덮기에 처마 길이를 길게 할 필요성이 별로 없다.
가장 안정적인 구조는 맞배 지붕인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각형의 두 면이 만나는 구조이다. 측면은 따로 지붕을 만들지 아니한다. 비로부터 벽 구조를 보호하기 위해 서까래를 따라 한자로 8자 모양으로 크고 넓은 나무를 다는데, 이를 '박공'[8]이라고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박공 밑에 나무 판을 대는데 이를 풍판이라고 한다.[9] 강수, 바람으로부터 벽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다.
지붕의 형태는 대략 아래와 같이 구분된다.
3.3.1. 맞배집
지붕구조가 제일 간단한 형태로, 마주보는 두 개의 지붕면이 있고 측면에는 지붕이 없는 대신, 박공이라는 삼각형의 벽이 있다. 보통 행랑, 곳간 등의 간단한 건물 혹은 사당 건물에서 많이 보인다. 흔히 팔작지붕이 아름답고 대중이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맞배지붕만의 심플하고 경건한 느낌이 있기 때문에 자주 사용 됐다. 맞배지붕으로 지어진 건물 중에 가장 으뜸은 단연 '종묘'일 것이다.
3.3.2. 팔작집
팔작이란 우진각집의 양쪽 측면 지붕 윗부분을 수직으로 잘라낸 모양의 지붕을 말한다. 이 경우 수직처리 된 부분의 삼각형 모양을 합각이라고 한다. 맞배지붕의 특징이 엄숙하고 경건한 느낌이라면 팔작지붕은 화려한 느낌을 준다. 이렇듯이 가장 화려하고 장식적이기 때문에 궁궐과 불교건축의 중요한 건물에서, 살림집에서는 안채·사랑채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한옥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지붕 모양이다.
3.3.3. 우진각집
마주보는 지붕 전후와 좌우, 네 면 모두가 경사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는 집이다. 지붕 앞뒤에서 보면 사다리꼴 형태이고, 측면에서는 삼각형 형태이다. 한국에서는 면과 면이 만나는 데에 있는 큰 서까래인 추녀로 쓸 큰 부재 수급이 어려웠기에 큰 건물에 사용하지 못하고 민가나 초가에서 주로 사용한 방식이다. 또한 지붕 중에서는 4면에서 가장 목재가 드러나지 않는 구조기 때문에 외적의 공격을 받기 쉬운 성문 등 군사적 건물에 자주 쓰인다. 불화살이나 포탄이 떨어질 경우 나무와 닿지 않게 한다. 숭례문이나 경복궁 등의 문들을 생각해보면 된다.
3.4. 주거의 형태
한옥은 신분제도가 짙었던 조선왕조 때 이르러서 계급마다 주택 선호방식이나 건축방식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였는데 왕족(王族)이나 상류층 양반의 경우 신분과 남녀 그리고 장유(長幼)를 구분하여 공간을 만들고 주거 공간을 상중하로 나뉘었는데 상(上)의 공간은 안채와 사랑채가 속하여 남녀 양반이 주로 사용하였고 중(中)의 공간은 중문간 행랑채로 양반을 보좌하는 청지기나 서기(書記) 그리고 집사 등이 사용했으며 하(下)의 공간은 대문 주변에 위치해 있는 행랑채로 주로 양반댁 머슴이나 노비들이 사용하던 점을 보아 사람 뿐만 아니라 한옥의 구조에 있어서도 신분제도가 큰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일반 평민의 경우에는 양반과 달리 장식적인 면보다 기능성과 안전성을 중시하여 쉽게 구할 수 있는 돌과 나무를 사용하고 벽에 짚과 흙을 발라서 적은 비용으로 방수와 보온의 역할을 할 수 있게 짓는 점이 특징이었다.
3.5. 지역별 특징
| |
| 각 지역별 가옥의 평면도 |
남부 지역이나 제주도같은 경우 배랑이 열려있고 통로가 개방되어 통풍이 잘되어 있는 반면 함경도나 평안도같이 북부 지방에 위치한 한옥들은 공간이 폐쇄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함경도식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인 정주간은 겨울이 추워 마당 대신 실내에서 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 만들어졌다.
목수의 특징인지 시대의 유형인지 지역의 특징인지 확실히 서술해야 한다. 위에 적었듯, 남부지방이라도 바람이 많은 지방은 오히려 여기서 말하는 '북부'의 특징을 보인다. 남부지방, 북부지방이라기보다는 추운지방, 더운지방으로 구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북부 해안지방과 남부 산간지방 중 어느 지방이 더 추울지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4. 공간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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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한옥/공간 배치#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한옥/공간 배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서민들이 사는 한옥은 대개 한 채 정도의 규모였으므로 공간이 크게 구분되지 않았으나, 양반가의 경우는 식구가 많아 안채·사랑채·행랑채·별채 등의 여러 채로 지어졌으며, 용도에 따라 공간이 구분되어 사용되었다.
5. 장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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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한옥/장단점#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한옥/장단점#|]] 부분을 참고하십시오.현재 한옥이 현대 한국인 주거 형태의 한 축으로 다시 일어서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아직 남아 있다. 과거 한옥과 양옥 교체기를 경험한 세대들의 화장실이나 냉난방 같은 문제들은 많이 해결되고 있고, 또 최근 들어 정부 차원에서도 자재 규격을 설정하는 등 신축 한옥의 비용 절감과 용이함을 늘리려는 시도가 있긴 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단계다. 자세한 것은 한국 전통건축의 장단점 항목을 참고하길 바란다.
6. 현재
6.1. 긍정적인 재평가와 변화
2015년 6월 개원한 서울 흥천어린이집.[10] 사진출처: 불교신문 2015년 10월 국토교통부 올해의 한옥상을 수상했으며, 서울시 최초의 한옥 어린이집이다.
불편하다는 이미지로 현대 한국인들에 의해 멀리되었지만 최근 들어 그 가치가 상당히 재평가되고 있다. 1960~70년대에만 하더라도 그저 헐어버릴 대상이었지만 2000년대 중반 웰빙 바람과 함께 아토피같은 문제를 일으키는 아파트에 대비되며 건강할 거란 이미지로 주목받더니 2010년대에는 사람들이 보다 더 개성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해지면서 특유의 고풍스런 멋과 전통이 있는 고즈넉한 한옥에 관심이 더 높아져가고 있다. 기존의 고택들이 개량되어 TV나 인터넷, 블로그 등에 소개되기도 하며 이런 고택에서 숙박하는 한옥스테이의 인기도 높아졌다.
안동 하회마을, 경주양동마을, 산청 남사예담촌, 북촌한옥마을, 전주 한옥마을 등 한옥 밀집 지역이 관광지, 혹은 지역명소로 각광받으면서 전국의 여러 지자체들도 관광 활성화 겸 거주 목적으로 신식 한옥마을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서울시 또한 북촌, 서촌의 한옥 보존 계획을 넘어서 서울한옥포털을 만들었고 혜화동 주민센터 등 공공 건축물들을 한옥 건립하고 있으며(공공한옥), 성북동 재개발 지구에 시범적으로 현대화 된 한옥 주택 지구를 만들었다. 은평뉴타운을 조성하면서 만든 은평한옥마을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공주시, 경주시, 부여군 등 과거 수도였던 지자체들을 중심으로 한옥 신축시 지원금을 주는 등 한옥 신축을 장려하고 있는데 실제로 이 도시들은 2010년대에 건립된 신축 한옥이 여럿 있으며, 주거용 이외에도 카페와 음식점, 체험관,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주시는 전통 도시 브랜드화에 맞춰 한옥 건립에 적극적인데 캠퍼스 곳곳에 한옥을 만들고 한옥학과를 개설한 전북대학교, 덕진공원 연화정도서관 등이 있다.
건축 공법적으로도 수입 목재의 등장으로 길이가 긴 나무를 구하기 쉬워지다 보니 조선 후기 건축에서 비교적 짧은 나무를 이어 긴 부재를 만드는 방식이 다시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수입 목재 외에도 공학목재를 이용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산 낙엽송을 이용한 대형 부재도 생산되어 복층 구조 같은 대형 한옥 구조 건축이 쉬워졌다. 또 현대식 시설을 도입하여 기존의 불편하다는 편견에서도 탈피하고 있다.
전통적인 한옥에 대한 지진에 대한 저항성인 내진설계에 대한 자료 미비로 인해 전통 한옥의 건축물 허가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서양 중목이나 경목구조의 목조주택은 바닥을 고정하는 형태이지만, 주춧돌에 기둥을 올려놓는 한옥의 특성상 내진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는 자료를 얻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신한옥으로 인증을 받으면 무리 없이 통과되어 건축할 수 있다.
6.2. 한옥에 대한 교조적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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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평양 시가지 속 2층한옥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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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평양시내 2층 한옥 상점가의 모습 |
하지만 이런 2층 한옥이나, 화장실, 세면대가 설치된 한옥을 보고 "이건 한옥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건 한마디로 편견에 의해 범하게 되는 오류이다.
당장 상술한 한옥의 역사 문단과 위 사진속 한옥들처럼 한국의 전통 가옥은 수천년의 긴 세월 동안 당연히 특정한 형태를 늘 유지해오지 않고 1층, 2층, 3층 등의 형식으로 층수와 모습이 변하여 왔다. 그랬다면 진정한 한옥은 땅파서 풀떼기를 얹은 집이 되어야 한다. 시대적 발전과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에 따라 계속해서 변형되고 계승되어 온, 유동적인 이미지로서 이해하는 것이 한옥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며, 당연히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려온 전통 가옥 양식의 특정 요소들을 가져와 현대인의 요구와 기술과 접목시켜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당연히 전통에 반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한옥의 역사의 연장선상에 서서 전통을 계승하고 유지해나가는 일인 것이다.
구한말 사진뿐만 아니라 김홍도의 월야선유도(月夜船遊圖)에도 고상가옥과 유사한 형태의 2층 한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여담으로 요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수한 단층 한옥이 조선 후기에 절대적으로 보편화된 것에 대해서는 17세기 조선 소빙하기설과 연결지어서 이해하는 시각도 있다. 당시 추위를 이기기 위해 사람들이 나무를 다 땔감으로 베어가 자재로 쓸 목재가 없어지고,[11] 구들장을 까는 것이 필수가 되면서 이런 무거운 바닥을 2층 이상에 설치하긴 힘들기 때문에 복층 구조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져서 그런지, 전국적으로 수수한 단층 한옥 형태로 나아가게 됐다고 한다. 이것과 관련된 내용은 경신대기근 문서를 참조하자.
6.3. 조선집
구한말~일제강점기에 많이 지어진 일종의 퓨전 한옥. 건축 용어로는 한양절충식(韓洋折衷式) 한옥으로 칭한다. 전통 한옥에 근대 건축 기법을 도입해 수도, 전기가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행랑방과 장독대, 창고 위치를 실용적으로 재배치하고 대청에는 유리문을 달고 처마에 잇대어 함석으로 된 챙을 다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한 한옥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사업가인 정세권 등에 의해 많이 지어져 주로 조선인 서민들이 들어가 살 수 있도록 전통 한옥에 비해 작은 규모로 지어졌다. 오늘날 남아있는 한옥들 중 상당수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조선집이다. 현재의 북촌한옥마을이 있는 가회동, 삼청동과 익선동, 성북동, 혜화동, 창신동, 보문동, 행당동, 휘경동, 서대문 및 왕십리 일대 등 곳곳에서 발견되며 현재도 남아있어 관광코스가 된 곳도 있고 때론 낙후된 주택으로 지정되어 허물어 새 집으로 바뀌고 있다.6.4. "양옥집"과의 비교?
흔히 현대식 아파트나 저상주택, 고층빌딩 등을 양옥(洋屋. 서양 가옥)이라 부르며 한옥의 기능성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주장을 하거나, 반대로 양옥의 화려함이나 견고함을 한옥에 비교하는 경우가 잦은데 이는 건축의 기본도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한옥은 기원을 따지자면 삼국시대,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한옥"의 스테레오타입은 조선 후기(17~19세기)에 만들어졌다. 반면 아파트나 고층빌딩은 20세기 르 코르뷔지에에 의해 양식이 완성된, 매우 후대의 건축이다. 즉 실제로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한옥"에 배치되는 "양옥"이란 중세~근세 유럽의 팀버프레임 혹은 벽돌건축이며, 철근 콘크리트나 철골을 쓰는 건축은 한옥보다 훨씬 후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전근대와 비교할 수 없이 발전하고 압도적인 기술과 에너지로 약간의 설계상 비효율 정도는 충분히 감당 가능해진 시점에 성립된 것이다.
따라서 한옥과 아파트를 일대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데, 실제로 아파트는 한옥은 물론 한옥과 동일 세대에 있는 양옥들보다도 훨씬 더 발전된 형태의 건축이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실제로 한옥에 비해 자연 냉난방 구조가 불리하고 자연 친화성이 낮은데, 그 이유는 현대 기술력을 사용하면 냉난방은 에어컨과 히터, 송풍관을 써서 강제로 가동할 수 있고, 자연 친화성은 건물을 헐어버리고 자재를 공장으로 보내 재활용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즉, 애초 전기문명을 상정하고 설계된 현대 건축과 한옥을 비교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옥이 아파트나 빌딩보다 초라하고 소박하다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한옥은 타워크레인이나 대량 생산된 유리와 시멘트, 철근이 없던 시대에 발달되어 왔기 때문이다. 역사상 최고층 동양 목조건축 중 하나라는 황룡사 9층 목탑은 당시 전성기를 누리던 신라의 국력과 왕권이 투입된 대사업이었는데, 기술이 발달한 20세기에는 일개 기업이 그보다 훨씬 높은 건물을 쑥쑥 올리게 되었다. 근본적인 기술 격차와 그 전제를 무시하고 둘을 비교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많은 발달을 거쳐온 전통이라는 이유로 무술을 탱크나 전투기에 비교하는 것과 같으며, 지향점이 다른 거주형태에서 우열을 가릴 수는 없는 것이다.
7. 관련 문서
7.1. 한옥 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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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목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7.2. 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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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한옥마을#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한옥마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7.3. 한옥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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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한옥호텔#|]] 부분을 참고하십시오.7.4. 민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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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민속촌#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민속촌#|]] 부분을 참고하십시오.8. 한옥의 종류
| 한옥의 종류 | |||||
| 초가집 | 기와집 | 너와집 | 귀틀집 | 샛집 | 투막집 |
9. 구성 요소
[1] 조선 시대 후기부터 전국에 보편화된 한민족의 온돌문화는 고구려의 건축양식에서 왔다. 백제나 신라는 온돌을 쓰지 않았다. 고구려와 발해가 멸망하면서 만주에서 온돌문화가 사라졌지만 온돌문화는 고려를 통해서 한민족에 계승되었고, 조선시대에 소빙하기가 도래하면서 전국에 퍼졌다.[2] 실제로 개화기부터 현대까지 지어진 건물을 부르는 건축양식은 없다. 산업화시기에 지어진 주공 아파트를 모더니즘 양식으로 지어졌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굳이 양옥이란 단어나 모더니즘 양식이라는 단어를 민간에서 쓰지는 않는다. 즉 소수가 된 덕에 한옥이란 분류가 민간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게 바뀐 것이다.[3] 일반적으로는 한옥으로 여겨지지 않는 한국식 아파트 역시 외국의 공동 주택 양식과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아파트의 거실은 한옥의 마당과 용도가 동일하다.[4] 경주 양동마을, 안동 하회마을의 가옥 양식이 이를 잘 보여준다.[5] 안압지에서 이러한 유물이 출토되기도 했는데, 정작 안압지 전각 복원시에는 이런 장식을 복원하지 않고 조선시대 건물처럼 만들어버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6] 일본의 금각사나 현대의 일부 건축물 중 이런 건물을 볼 수 있다.[7] 모래가 섞인 양질의 점토를 바탕흙으로 하여, 와통 및 막새틀 등의 제작도구를 사용하여 일정한 모양으로 성형하여, 가마 속에서 1,000℃ 이상의 높은 온도로 구워 낸 건축 재료이다.[8]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박공을 전통건축에서만 사용하는 용어로 오해하기 쉬운데 동서고금 공통적으로 삼각지붕은 일반적인데, 삼각지붕을 만들며 생기는 삼각 부분을 '박공부'라 칭한다. 여기에 덧대는 판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9] 박공부 풍판이라고 부른다. 풍판끼리는 졸대 클리어파일 같은 방식으로 결합된다.[10] 돈암동에 있으며 흥천사 부지에 있다.[11] 구한 말 기록과 사진을 봐도 한양 주변의 산들이 전부 민둥산이다. 복구에 실패한 북한은 지금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