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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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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산맥 및 산경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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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미지는 산림청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이미지다.
1. 개요2. 논란3. 의의4. 기타5. 전체 구간
5.1. 중심 산5.2. 고개
6.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백두대간 사진.jpg
[1]
1. "백두대간"이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말한다.
2. "백두대간보호지역"이란 백두대간 중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어 제6조에 따라 산림청장이 지정ㆍ고시하는 지역을 말한다.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한자로는 ,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으로는 Baekdudaegan이라고 쓴다. 혹자는 한반도척추라 부르기도 한다. 대간은 산줄기가 이어지는 지형이라, 지리학에서 지질을 중심으로 구분하는 산맥과 비교하면 개념이 매우 다르다. 대간의 간(幹)이란 한자가 '줄기 간'이므로,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는 큰 (산)줄기라는 뜻이다.

14세기 고려공민왕 때 사람인 우필흥(于必興)이 공민왕에게 올린 상소문에 "아국(我國)은 백두에서 시작하여 지리에서 끝난다."라는 구절이 있으므로, 늦어도 14세기나 그 이전에 백두대간을 가리키는 개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헌상으로 백두대간이라는 단어 자체는 18세기 이중환이 쓴 택리지(1751)에 처음 나타난다. 비슷한 시기 이익이 쓴 성호사설(1760)에도 백두대간이란 단어가 나타나는데, 이중환이나 이익이나 모두 백두대간, 백두대맥(白頭大脈), 백두남맥(白頭南脈), 백두정간(白頭正幹) 등을 혼용하므로 아직 '백두대간'과 다른 단어를 혼용했음을 알 수 있다.

2. 논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백두대간과 정간/정맥은 18세기 신경준[申景濬, 1712-1781][2]이 썼다고 추정하는 산경표(山經表)를 기본으로 한다.[3] 여기서 대간 / 정간 / 정맥은 근대적 지리 개념인 산맥과는 개념이 다르다.

산경표의 저자는 족보를 쓰는 방법에 따라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대간과, 대간에서 갈라진 정간/정맥들을 이루는 산줄기를 정리하였는데, 족보 쓰는 방법을 따랐으므로 산경표를 '산들의 족보'라고 말하기도 한다.

백두대간이란 개념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잊혔으나, 1980년에 아마추어 고지도 연구가 이우형(李祐炯)이 인사동에서 산경표를 찾아내어 다시 빛을 받았다. 이우형은 백두대간을 그 시기의 전국구 트롤러였던 산악인 커뮤니티에 적극적으로 알렸고, 산악인들도 이에 호응하여 백두대간 줄기를 직접 발로 밟으며 확인하였다. 백두대간이란 개념은 이렇게 다시 빛을 받아 세상에 드러났다.

구한말에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郎, 1856-1935)가 1900년부터 1902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14개월 동안 한반도를 답사하고 1903년에 태백, 소백, 차령, 노령, 마식령 등 산맥 명칭과 분류를 명명하는데 이 때 추가령(楸哥嶺, 원산 근처 고개) 부근에 지질을 구조적으로 분할하는 추가령 구조곡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여, 태백산맥과 낭림산맥을 별도로 분류하였다. 현재 추가령은 북한이 실효지배하므로 현장 지질조사를 할 수는 없지만, 대한지리학회나 지질학회 등 학계에서도 철원군 근처의 지형을 연구하며 이 용어를 사용한다. 추가령을 북한이 실효지배할 뿐, 추가령 구조곡은 경기도 북부에서 강원도 북부에 이르는 길다란 단층선곡(斷層線谷)을 가리키므로 남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직접 추가령에 가지 않더라도 추가령 구조곡에 포함되는 경기도 북부(파주, 연천) 지방을 조사하여, 추가령 구조곡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입증하였다.[4]

2005년에는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한반도 산맥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국토연구원이 다시 제기하기도 했다. 대한지리학회 측에서는 이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백두대간에 대한 반박만 요약하면, "산맥"이라는 단어는 눈에 보이는 지형(분수계)을 기준으로 삼지 않으며 지반운동을 파악하려는 도구인데, 국토연구원은 민족주의 역사관과 대중적 홍보에만 집중한 나머지 산맥에 대한 지질학적 개념을 싸그리 무시하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대한지리학회는 '사기극' 같은 과격한 표현까지 사용하며 공개토론을 제안했지만 성사되지 못했고, 2007년에도 비슷한 논쟁이 벌어졌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위 논쟁에서 중요한 점은 추가령 구조곡을 산맥이 끊어졌다고 볼 것인가, 이어졌다고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학술적인, 그리고 국제적인 산맥 개념은 눈에 보이는 연속적인 산(분수계)이 아니므로 산의 연속으로 보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한반도 지질구조는 추가령 구조곡을 경계로 남북간 차이가 있기 때문에[5] 추가령 구조곡이 단절인가 연속인가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추가령 구조곡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한반도 남북간 지질학적 구조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추가령이 인근 산에 비해 저지대 고개라고는 하지만 해발 599m로 일반인이라면 연속된 산의 일부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추가령은 분수령의 역할을 하는 고개가 아니라 개석곡의 경사급변점에 해당된다.[6] 즉 추가령지점에서도 안변 남대천(동해)이 남서쪽으로 즉 상류방향으로 계속 한참을 파고 들어가 강원도 세포군에 위치한 경원선 성산역부근 넓은 평지에서 물줄기가 희미해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성산역부근에 휴화산인 680고지가 있고 바로 아래 남쪽에 임진강의 지류인 평안천(서해)이 흐르는 걸로 봐서 680고지가 물줄기를 동서로 분수역할을 하는 즉 백두대간이 680고지를 통과하는 걸 의미하는데 백두대간이 통과한다고 하기엔 산세가 너무 약하다[7]. 또한 미약한 산세와 주변 넓은 평지 때문에[8] 고미탄천(서해), 평안천(서해), 안변남대천(동해)끼리 하천 유역쟁탈전(특히 홍수때)이 벌어져 상류상실, 유로절단, 소택지화, 호소화, 매몰과 평탄화 등 현상이 나타나므로 680고지가 완벽히 동해와 서해방향으로 가르는 분수 역할을 한다고 보기가 어렵다.

한편, 지리학회는 일반인의 이러한 시각을 존중하여 산맥과 구별되는 '산줄기 지도'를 제안하기도 하였다. 지반운동으로 생긴 산맥에 비해 눈에 보이는 공간적인 연속성에 방점을 찍은 개념이다. 다만 산맥은 학술적 용어이므로 완전히 별개이다.

학술적으로는 추가령 구조곡에서 백두대간이 끊어진다고 보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는 분단고착화와 연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게다가, 하필이면 이 지역은 휴전선이 있는 곳이기도 한 탓에 정확한 조사가 어려워서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판단하기가 어려운 면도 있기 때문에 남북통일 이후 백두대간을 정밀하게 측량하는 과정이 필요할 듯 하다.

3. 의의

전근대 실제 생활권인 하천의 유역과 수계를 반영한 만큼, 백두대간 및 여기서 뻗어나온 산줄기들을 기준으로 삼아 삼국시대에 국가 경계선이 생겼고 조선시대에 행정구역을 정했기 때문에. 백두대간은 인문학적 연구에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이는 전 국토의 지형에 따른 강의 형성, 유역의 발달과 그 세력을 쉽게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특히 당시의 조운(漕運)과 관계된 지리인식을 반영하고 광역의 생활문화권을 구분하는 지표가 된적다.

한반도 하천 유역권은 백두대간의 정간과 정맥에 따라 구분되어지며 주요 경제 생활권에도 영향을 미쳤다. 정간과 정맥에 따라 언어와 풍속이 달라지고, 인문지리적 특성이 나누어지기도 한다.

가령 금남정맥은 금강 상류유역과 만경강 유역을 구분하는 산줄기로, 동쪽 경계를 따라 흐르는 하천은 금강 상류를 이루며, 서쪽 사면을 따라 흐르는 물은 만경강을 이룬다. 이 산줄기가 시작되는 주화산에서 남쪽으로 연결되는 호남정맥과 함께 충청남도, 전라북도의 동쪽 산간지방과 서쪽 해안의 평야지대를 구분하고 있다. 실제로 이 정맥의 동쪽에 위치한 충청남도 금산군은 현재는 행정적으로 충청남도지만, 오랜 기간 전라도에 속했거니와 생활, 풍속도 전북 내륙지역의 영향을 받았다.

남북한 모두 걸쳐 있기 때문에 종종 민족의식을 홍보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식물학적으로는 백두대간을 거치는 고산지대가 한국의 고산식물 분포를 잘 보여준다. 남한에는 백두대간이나 제주도 한라산에만 서식하는 식물상이 있다.

4. 기타

현재 백두대간 중간에 휴전선이 지나기 때문에 남한에서는 절반밖에 종주할 수 없다. 만약 남북통일이 된다면 분명히 백두대간 종주 붐이 일어날 것이다. 물론, 종주 난이도는 당연히 북쪽 부분이 훨씬 더 높다. 게다가 북부 지역은 2,000 m 이상의 산이 널렸고 사람들의 손이 쉽게 닿지 않는 지역이므로 야생동물을 만날 수도 있다.

블랙야크에서 주관하는 백두대간eco트레일 프로그램을 통해 백두대간 종주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산림청 홈페이지에 백두대간 종주 구간을 표시하는 지도가 있지만, 일부는 국립공원 비법정탐방로에 해당되는 구간도 존재한다.[9]

분단 이후 백두대간을 종주한 사람이 단 한 명 존재한다. 무려 외국인이다. 뉴질랜드에서 왔으며 이름은 로저 셰퍼드[10]. 휴전선 구역은 종주하지 못했을 듯하다. 했다면 뉴스에 나왔을 것이다.[11] 개인 유튜브 채널이 존재한다.

백두대간의 이름을 따서 국립백두대간수목원경상북도 봉화군에 설립하였다.

시베리아호랑이의 이명인 백두산호랑이는 백두산에서 따온 게 아니라 백두대간에서 따온 것이다.

백두대간과 그 인근 지역이 산지인 탓에 백두대간 연선 지역은 대부분 인구가 계속 줄고 고령화율이 높아 백두대간 연선의 대부분 지역이 소멸 고위험 지역인 상황이며 소멸 고위험에 해당하지 않는 곳도 소멸위험지수가 전부 0.5 미만이기 때문에 나머지 지역들마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었다. 즉, 소멸위험지수가 0.5 이상인 곳은 단 1곳도 없다.

5. 전체 구간

백두산 병사봉(장군봉) -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는 1,400여 km 구간이다.[12] 역사적으로 알려진 곳은 굵게 표기하였다.

5.1. 중심 산

5.2. 고개

고개 이름높이(m)관통도로기타사항
분수령(추가령) 5번 국도경원선 통과
철령685m 31번 국도
진부령540m46번 국도강원도에서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가장 낮은 고개
미시령767m56번 지방도설악과 금강의 경계
미시령터널 개통
마등령1,220m등산로
한계령920m44번 국도
조침령1,013m418번 지방도터널 개통
구룡령1,013m56번 국도
진고개900m6번 국도, 59번 국도
선자령1,400m등산로
대관령832m456번 지방도영동고속도로
닭목령(닭목재)700m415번 지방도
삽당령721m35번 국도
백복령780m42번 국도
댓재815m28번 지방도
건의령(한의령)840m424번 지방도건의령터널 개통
삼수령(피재, 큰피재)920m35번 국도낙동정맥 분기[35]
두문동재(싸리재)1,268m(싸리재 기준)38번 국도터널 개통
어평재(화방재)936m31번 국도
도래기재750m88번 지방도
마구령820m28번 지방도
고치령760m임도
죽령689m5번 국도, 36번 국도중앙고속도로 죽령터널 개통
묘적령1,015m등산로
저수령850m927번 지방도
벌재625m59번 국도
하늘재525m등산로삼국시대 최초로 개통된 백두대간 관통도로
조령(문경새재)642m등산로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새재터널은 이화령 인근으로 통과
이화령548m3번 국도, 34번 국도터널 개통
버리미기재 922번 지방도
늘재 32번 지방도, 49번 지방도
밤티재 997번 지방도
화령재 25번 국도서산영덕고속도로 통과
신의터재
지기재 901번 지방도
개머리재
큰재 68번 지방도
장동재
추풍령221m4번 국도백두대간 전체에서 가장 낮은 고개 경부고속도로 통과
괘방령300m514번 지방도
우두령720m901번 지방도
부항령680m1089번 지방도터널 개통
덕산재(주치령)640m30번 국도
소사고개645m1089번 지방도
신풍령(빼재)930m37번 국도터널 개통
육십령734m26번 국도남쪽에 통영대전고속도로 터널이 관통
무릉고개926m743번 지방도금남호남정맥 분기
복성이재545m751번 지방도
사치재500m광주대구고속도로터널 개통
유치재460m 동쪽에 743번 지방도 통과
여원재477m24번 국도
정령치1,172m737번 지방도
성삼재1,102m861번 지방도
벽소령1,403m등산로(1023번 지방도)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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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적대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능선. 두타산(좌)과 청옥산(우)[2] 영조대의 문관, 지리학자. 호는 여암. <강계지>, <동국여지지>, <산경표>를 비롯한 다양한 지리서, 지도를 제작했다. 영조의 명으로 편찬된 백과사전인 동국문헌비고의 지리파트 여지고(輿地考)를 담당했다.[3] 신경준이 쓴 책을 본 다른 사람이 썼다는 주장도 있다.[4] 추가령에서 경기도 북부로 한북정맥(漢北正脈)이 산줄기를 뻗는다. 한북정맥 중 사람들이 알 만한 산이라면 북한산이 있다.[5] 추가령 구조곡을 기준으로 북쪽 지역은 10억 년 이상된 선캄브리아대 변성암류와 고생대 지층이 대개인 반면, 남쪽 지역은 중생대 지층도 넓게 분포한다.[6] 이민부, 이광률. 추가령 구조곡의 지역지형 연구. 대한지리학회지 2016;51(4):473-490[7] 이민부, 이광률, 김남신. 추가령 열곡의 철원-평강 용암대지 형성에 따른 하계망 혼란과 재편성. 대한지리학회지 2044;39(6):833-844[8] 주변 넓은 평지도 해발 600 m는 되기 때문에 680고지는 무척 낮아보인다.[9] 여담으로 산림청과 국립공원공단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협력이 잘 안되는 편이다.[10] 개인 인스타그램도 존재 하며 @hikekorea로 검색하면 된다.[11] 휴전선 구간은 미확인 지뢰지대로 인하여 남북한 모두 불허 했을 가능성이 높다.[12] 산림청은 1400여 km로 소개하지만 전문가 의견은 대략 1600~1700여 km로 파악한다.[13] 현 지도에는 백두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백두산은 일제잔재이며 원 명칭은 오강산이 맞다.[14] 추가령 구조곡과 분수령은 다른고개이다. 서울기준 원산으로 향하는 경원선철도가 먼저 지나가는 고개가 분수령이고 그다음이 추가령인데, 분수령과 추가령 사이에 남대천이 발원한다. 백두대간이 경유하는 고개는 바로 이 고개 이다.[15] 정확히는 식개산 남쪽에서 분기한다. 남한 지도에선 두류산으로 표기하고 있다.[16] 지도에는 박달령으로 표기되어 있다.[17] 아시아 최초의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가 건설 되었다.[18] 미수복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이포리와 회양군 내금강면 속사동리를 연결하던 고개[19] 남한에서 접근이 가능한 최북단 지점은 향로봉이나, 1년에 단 한차례 개방하는 관계로 실질적으로 아무런 제약없이 종주가 가능한 지점은 진부령까지이다.[20] 중간에 비법정탐방로가 여럿 존재해서 실제 비법정탐방로를 타지않고 진행한다면 약 750km까지 거리가 늘어난다.[21] 설악산 대청봉에서 희운각 대피소로 바로 연결되는 이박사능선이 백두대간 마루금이나, 급경사 및 낙석위험으로 인하여 등산로를 내기가 어렵다. 대청봉 - 중청대피소 - 소청봉 -희운각으로 우회하여 등산로가 개설되었다.[22] 홍천과 강릉의 자연경계이며, 오대산국립공원 비법정탐방로에 속해 있다.[a] 오대산국립공원 영역이지만 삼양목장 사유지에 포함되어 있다.[a] 오대산국립공원 역역이지만 삼양목장 사유지에 포함되어 있다.[25] 백복령과 생계령 사이에 자병산이 있었지만 석회석 채굴로 인하여 절반이상 소실되었다. 사실상 단절구간[26] 죽현(竹峴)[27] 새목재와 차갓재 사이에 백두대간중간지점 표석이 설치 되어 있다. 남한측 종주 가능구간만 계산 했을때 중간지점 이다.[28] 대간 마루금은 정상을 경유하지 않고 희양산 사선봉 방향으로 진행된다.[29] 자연적 의미의 속리산 시작점이 이 곳 이다.[30] 백두대간상 덕유산의 자연경계는 여기까지다.[31] 남덕유산으로 알려져 있다.[32] 자연적 의미의 덕유산 시작점이 이 곳 이다.[33] 지리산국립공원 비법정탐방로 내에 있다.[34] 한반도 남부 최고봉.[35] 정확히는 인근 매봉산에서 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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