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중국 | 러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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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중국, 러시아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에 속해 있다. 이중 미국이 초강대국에 속해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 다음의 강대국들이며 이들은 모두 핵보유국이다. 미중러는 어느 나라에도 휘둘리지 않고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셋뿐인 나라들이며,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매우 높고, 국제정세를 단독으로 논할 수 있다. 이에 따라 3국은 서로 견제를 하고 있다.[1]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19세기 러시아 제국과 청나라에서 미국으로 상당한 규모의 인구 이동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러시아계 미국인, 중국계 미국인 문서 참고.19세기 당시 미국으로 이민한 중국인의 성비는 9~99:1 수준의 극단적인 남초 그룹이었다면 러시아계 미국인들의 경우 종교 박해를 피해 이주한 아슈케나지 유대인이나 독일계 러시아인 재침례파 혹은 폴란드계 등이 많았고, 남녀 성비가 균일한 편이었다. 러시아 출신 이민자들은 자신들을 박해하는 지긋지긋한 러시아를 떠나서 종교의 자유가 있는 곳에 영구 정착하기 위해 미국을 선택했다. 반면 중국계 이민자들은 외모가 확연하게 다른데다가 미국 사회 내에서 이런저런 따돌림을 당하는 입장이었고, 상술한 것처럼 성비마저 남초라서 미국 내에서 결혼이 쉽지 않았다. 초창기 중국인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미국에 영구정착을 희망하기보다는 미국에서 돈을 벌어서 중국 고향으로 금의환향하겠다는 성향이 더 강했는데, 이는 현대 미국 사회에서 동아시아 출신 이민자=언젠가는 떠날 이방인이라는 고정 관념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2.2. 20세기
자세한 내용은 미소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중소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
러시아 혁명과 적백내전 당시 엄청난 수의 백군 난민들 수만여 명이 미하일 이바노프 장군 등을 따라 20세기 초반 중화민국에 정착하였다. 이들을 백계 러시아인(white émigré)이라고 불렀다. 특히 이미 러시아 타운이 구비되어 있던 하얼빈을 중심으로 대규모 러시아인 난민 공동체가 형성되었다.[2][3] 하얼빈의 러시아인 공동체는 일제의 만주 침공과 만주국 설립 와중에 심한 탄압을 당했으며, 이 와중에 하얼빈의 러시아인 상당수는 기회가 되는 대로 상하이를 통해서 외국으로 망명했다. 이들의 최종 행선지는 대개 미국과 캐나다, 서유럽, 호주 등이었다.
2.2.1. 1930~1945
자세한 내용은 무기대여법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태평양 전쟁 문서 참고하십시오.
중일전쟁이 태평양 전선으로 확대됐다. 일본 제국이 진주만 폭격을 시작하면서 미국은 일본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했고 태평양 전쟁이 확대됐다. 1945년 8월 소련군이 8월의 폭풍 작전을 전개하여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서 일본제국 군대를 소거하는데, 이는 한국 입장에서는 남북 분단의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2.2.2. 1945~1960
자세한 내용은 냉전 문서 참고하십시오.3국은 제2차 세계 대전이후에는 핵전쟁 위협 하에서 서로 대치하는데 이를 냉전으로 칭한다.
1946~1949년 사이에는 그리스 내전이 발발하지만 그리스 공산당이 패전하고 그리스는 제1세계 국가로 편입되었다.
북한의 김일성이 남침을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할 때마다 스탈린은 이를 48차례나 계속 묵살하였으나 결국 김일성의 끈질긴 요청 때문에 이를 허락하면서 한국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UN군의 참전으로 남북통일이 실현될 뻔도 했으나 중국이 인해전술을 구사하며(명목상으로는 항미원조 의용군이라는 명목 하에 파견) UN군을 공격하였고, 결국 중국 때문에 남북분단이 결정적으로 고착화되고 말았다.
냉전 시절에는 미국과 소련이 정치적인 대결을 자주 했고 대리전이 자주 있었다. 아프리카, 중남미에는 독립군과 게릴라들이 소련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 NATO를 결성했고 소련은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결성했다.
2.2.3. 1960~1985
자세한 내용은 키신저-저우언라이 회담 문서 참고하십시오.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수교하면서 지원했다. 60년대에는 소련과 중국간에 갈등이 일어나 중소국경분쟁이 일어나기도 하는 등 전쟁이 일어날 뻔 했다. 게다가 소련은 쿠바에 미사일을 두면서 쿠바 미사일 위기가 일어나 전쟁이 일어날 뻔 했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소간에 갈등이 일어나 데탕트가 일어났다. 다른 한편으로는 1973년 미국의 사주를 받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의 민주 정권을 무너트릴 당시 소련 측에서는 피노체트 쿠데타를 규탄하였으나, 당시 미국과 친하고 소련과 갈라섰던 입장이었던 중국은 피노체트 정권의 반대파 대숙청 대학살을 대놓고 두둔하였다.
1980년대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항의하는 차원에서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였다. 불참한 국가 중에서는 미국 편에서 소련을 견제하던 상황이었던 중국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에 대한 보복으로 제2세계 국가 상당수는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보이콧하였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이란 괴뢰국을 세웠는데, 이에 미국과 중국은 함께 무자헤딘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소련을 견제했다.
2.2.4. 1985~1999
자세한 내용은 탈냉전 문서 참고하십시오.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장기화되는 과정에서 체르노빌에서 원자력 사고가 일어났다. 고르바초프가 집권하면서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했다. 88년 서울 올림픽때 미국, 소련, 공산권 국가들이 모두 함께 올림픽에 참가했다. 89년에 소련은 무자헤딘의 격렬한 저항을 받아 군대를 철수했다.
91년에 소련 해체가 일어나 러시아가 출범한 뒤에는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었다.
2.3. 21세기
2.3.1. 2000 ~ 2008
조지 W. 부시와 네오콘의 대중동 외교 정책(이른바 테러와의 전쟁) 실패로 인해 국제 유가가 폭등하고 이는 완전히 몰락한 줄 알았던 러시아 경제의 부흥으로 이어졌다. 2008년에 남오세티야 전쟁이 일어나면서 갈등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 2008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장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총리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사진.
2.3.2. 2009 ~ 2016
자세한 내용은 신냉전 문서 참고하십시오.뒤늦게 버락 오바마가 러시아 견제를 시도하지만, 이미 전임자 부시가 망쳐놓은 상황을(이를테면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라든지) 개선하기는 어려웠다. 버락 오바마는 상식은 있는 사람이었고 무능한 사람도 아니었으나 부시가 뒤집어 까놓은 중동 상황을 제대로 수습하기도 어려웠고, 아랍의 봄 당시 어설픈 대처로 결국 시리아 내전을 장기화시키고 말았다.
오바마의 외교 정책 중 대중동 정책 실패야 전임자의 실책 때문에 그렇다고 치더라도, 중국 견제에 실패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대실책이었다.[4]
오바마 재임 기간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미국 내에선 오바마의 대중 무역정책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는데 이와 관련, 오바마는 2008년 터진 금융위기로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오바마 새 회고록 "원자바오는 노련, 후진타오는 졸린 사람"
오바마 새 회고록 "원자바오는 노련, 후진타오는 졸린 사람"
- 오바마 대통령의 재임기간 동안 중국의 1인당 GDP는 8~9년 만에 2693달러에서 8147달러로 널뛰기하였다. 문제는 같은 기간 서방과 우호적인 인도의 경제는 중국의 성장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데 당시 아직 미국은 "인도를 지원하여 중국을 견제시킨다."라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지 못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0년대 중반에 우크라이나에서 유로마이단이 일어났고 러시아가 크림반도 합병, 돈바스 전쟁을 일으키자 미국은 러시아를 제재했다. 그러나 제재결과 러시아는 오히려 EU와의 교류가 감소하고 대신 중국과 더 밀착하기 시작했다.[5]
2.3.3. 2016 ~ 2019
오바마 정권 재임 중반기 일어난 유가 치킨게임의 결과 자체적인 산업 기반이 부실했던 산유국 상당수는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제는 중국이 뒤에서 백업해주는 상황이다보니 유가 폭락 당시 러시아가 입었던 경제 피해는 제3국인 브라질 경제가 불구가 된 정도에 비하면 양호한 수준이었다.# 러시아, 중국과 함께 BRICS 가입국이던 브라질을 놓고 비교해보자. 2013년 기준 1인당 GDP가 12,300 달러였던 브라질은 2020년 기준 1인당 GDP가 6천 달러대로 절반 가까이 감소하였다. 2013년 기준 15,974달러에 달했던 러시아의 1인당 GDP는 러시아가 2014년 이래 서방으로부터 이런저런 경제제재를 받았음에도 오히려 브라질보다 선방한 수준인 10,126달러 정도로 감소하는데 그쳤다. 러시아 경제는 2014년 사우디발 유가 치킨 게임 과정에서 알제리, 아제르바이잔, 브라질 등등 여타 개도국 산유국들에 비해서 오히려 선방하는 상황인데, 중국 경제의 백업이 없었다면 러시아 경제가 이런저런 직접적인 제재에도 불구 이정도까지 선방했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렵다.이란과 러시아, 터키의 1인당 GDP 변화 그래프 비교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면서부터 강경 반중 노선을 시사하였고, 이에 따라 2018년에는 미중 무역 전쟁이 발발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2017년 집권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크 폼페이오와 함께 오바마의 반러친중 외교에 반대되는 친러반중 외교 정책을 시행하였다. 도널드 트럼프의 친 푸틴 성향은# EU와 미국 사이에 상당한 트러블을 일으켰다.#
2019년 8월 29일, 트럼프 대통령이 우주사령부 설립을 허용하자 미중러 3국간 우주경쟁이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2.3.4. 2020년대
2020년초부터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퍼지면서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도 민간 감정이 악화되기는 했다. 러시아 역시 출입국조치 관련해서 중국의 통계는 전혀 신뢰하지 않고 있다.# ## 그러나 현재 서방으로부터 갖가지 경제제재를 받는 러시아 입장에서 코로나19로 악화된 국민감정은 별로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미국에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사회 각계각층에서 반중감정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를 반영하듯 미국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발족한 이른바 쿼드를 단순한 코로나 대처를 넘어 중국과 견제하는 국제 협력 체제로 전환, 확대시키려 노력 중이다. 그리고 2021년 9월에는 AUKUS를 결성했다.
미국은 상술한 것처럼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는 반러친중, 트럼프 행정부 친러반중 등등 다각도의 접근을 통해 양국을 갈라치기하는 전법을 시도하였으나 통하지는 않았고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는 양국을 모두 동시에 다 타격하는 방향으로 갈피를 잡고 있다.
달개발과 관련해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일본 등이 뛰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3.4.1. 2022년-2023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면서 미국측은 러시아를 제재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로 정했다. 중국은 이에 대해 러시아를 지원중이다. 3월 29일에 미중러 3국이 아프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회동하기로 했다.#6월 8일, 미 재무부가 미국인의 러시아 채권 구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7월, 미중러 3국이 동남아에서 외교경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월 8일, 러시아가 미국의 자국 내 핵무기 사찰 일시 중단을 통보했다.#
8월 5일, 미중러 3국은 달 탐사에서 서로 경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북극에서 중러 양국을 견제하기 위해 북극 특사직을 신설하기로 했다.#
중러양국이 가스대금 결제는 루블화와 위안화로 각각 결제하고 반미연대를 강화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가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기 위해 군비 증강에 나서면서 미국 방산업계가 호황을 맞았다.#
12월 26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중러 양국이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지만, 바이든 대통령과는 새해 축하 인사는 없다고 밝혔다.#
2023년 1월 9일, 미국 국방부는 중국과 러시아, 이란의 생화학무기 위협에 맞서 포괄적 방어체계를 검토하기로 했다.#
2월 24일, 미국 정부가 대러 제재를 발표하면서 중국 기업도 포함시켰다.# 중국이 일방적인 제재와 핵전쟁을 반대하는 등 자체 평화안을 통해 미국과 러시아의 세력 약화를 노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 관련 조약인 '뉴스타트' 중단을 선언하면서 미중러 간의 무한 핵경쟁이 일어날 우려가 커졌다.#
2월 25일, 윌리엄 번스 CIA국장이 중국이 러시아를 지원했다고 주장하자 중국 측이 반발했다.#1#2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해서 미중러 3국이 경쟁하고 있다.#
4월 7일, 미국 재무부가 동맹국들과 함께 중국에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돕지말라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8월 6일, 중러 양국이 알래스카 인근을 합동 순찰하자 미국 측이 함정을 급파시켰다.#
2024년 9월 16일, 중국이 러시아산 우라늄을 수입해 제조한 뒤 미국에 수출했다는 의혹이 생기자 미국 측이 조사에 나섰다.#
10월 18일, 미국 재무부가 러시아와 협력해 드론을 제작한 중국 업체들을 제재했다.#
3. 문화 교류
자세한 내용은 미국/문화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중국/문화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러시아/문화 문서 참고하십시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은 세계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사이지만, 경제와 군사력 같은 하드 파워 뿐만 아니라 정치와 문화 등 소프트 파워를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하며 다른 국가들이 선망하고 벤치마킹을 할 정도로 강해야 패권국이 될 수 있다. 중국의 소프트 파워 부재는 중국공산당 일당 독재 & 지나친 중화사상 및 한족 우월주의가 유지되는 이상 중국이 계속하여 뒤쳐질 수밖에 없는 분야이다.
과거에 중국 전통 문화가 한국과 일본의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것과 다르게, 오늘날 중국 현대 문화는 한국과 일본에게 별로 어필하지 못하고 있고 반대로 재패니메이션과 망가로 대표되는 일본 문화와 한류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가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문화 산업에서 규모의 경제가 갖는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중국의 소프트 파워의 현실은 엄청난 부진이다. 모국어가 중국어가 아닌 사람들 중에서 중국어를 학습하는 인구는 2020년대 들어서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라는 통계가 이를 반영한다.#1#2
오늘날의 중국 문화의 빈약함은 20세기 중후반 소련 문화가 가지는 위상과 비교해도 그 차이와 한계가 명확하다. 연극이나 발레 등 공연예술에선 소련의 파워가 어마어마했으며, 소련 영화의 경우 상업적으로는 미국 영화에 밀렸을지 몰라도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등 유수의 영화 감독들이 세계 영화사 발전에 한 획을 그었다. 음악 부문에서도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하차투리안 같은 걸출한 작곡가들이 계속 쏟아져나왔다.
소련의 문학도 러시아 제국 시대에 비해 약화되었을지언정 푸시킨, 레르몬토프, 톨스토이, 체호프, 고골, 투르게네프의 문학작품을 민간에 보급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6], 러시아 혁명 당시 국외로 망명한 러시아계 난민들이 러시아 문학을 전세계에 보급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러시아 문학 황금기에 질적으로 비견할 만한 중국인 작가로는 루쉰이 있지만, 그나마도 오늘날 중국 교과서에서 그의 대표작 아Q정전을 교과과정에서 애국주의가 부족하다고 빼버리면서 중국 지식인들이 한탄했다.
4. 교통 교류
3국은 아직 무비자정책은 도입하지 않고 있다. 미국측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비자를 요구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도 미국에 대해선 무비자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는 양국 국민들이 일부 지역에 관광하는 경우에는 무비자를 적용하고 있다. 미국측은 러시아인들이 괌, 북마리아나 제도로 갈때에는 무비자를 일부 허용했고 러시아측은 알래스카 주민들이 추코트카에 가는 경우에는 무비자를 허용하고 있다.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측은 러시아 항공사가 미국 영공 비행을 금지시켰다.#
5. 경제 교류
자세한 내용은 미국/경제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중국/경제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러시아/경제 문서 참고하십시오.
미국은 2014년 크림 위기 이래 러시아에 대해 제재를 하다보니 러시아와는 경제교류가 제한적이지만, 중국과는 엄청난 규모의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여러 다국적 기업이 중국과 러시아에서 인기가 많은 편이다. 그리고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가 중국과 러시아에서 인기가 많다.
러시아 갑부들중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경제업무를 맡는 경우가 자주 있다. 중국 갑부들도 미국과 러시아에 많이 진출해서 경제교류가 3국이 활발한 편이다. 미국 국채의 경우, 중국이 많이 사들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2010년대 중반과 후반부터 미국의 제재를 받으면서 탈달러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러시아측은 달러 자산을 전부 매각하고 유로, 위안, 루블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일어나면서 미국은 러시아를 제재했고 SWIFT에서도 배제했다. 이에 따라 중국측은 러시아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달러화 사용을 줄이고 위안화 사용을 늘리면서 위안화를 많이 사용하는 국가 3위에 올랐다.#
2023년 4월 24일, 러시아 측은 탈달러 현상이 가속돼 루블, 위안화 비중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6. 군사 교류
자세한 내용은 미군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중국 인민해방군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러시아군 문서 참고하십시오.
냉전 시절에 미국과 소련은 여러차례 대리전을 벌인바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핵무기가 개발된 것을 계기로 양측 모두에서 핵실험이 자주 이뤄졌고 미국과 소련, 중국은 엄청난 양의 핵 전력을 비축하게 되었다. 소련 해체 이후에는 미국이 초강대국이 되었고 소련군이 해체된 뒤에 러시아군이 소련군을 계승했다. 90년대부터 중국이 군비를 늘리고 군사력을 늘리는 등 미국과 대립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제재를 받으면서 양국간에도 군사협력이 자주 이뤄지고 있다.
군사력에선 미국이 1위를 차지하고 있고 2위와 3위는 각각 러시아와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6.1. 해외 주둔 군대
자세한 내용은 해외 주둔 미군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해외 주둔 러시아군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해외 주둔 중국군 문서 참고하십시오.
7. 대사관
워싱턴시에 주미 러시아 대사관과 주미 중국 대사관, 모스크바시에 주러 미국 대사관과 주러 중국 대사관, 베이징시에 주중 미국 대사관과 주중 러시아 대사관이 존재한다. 3국은 상대국의 일부 도시에 영사관을 두기도 했다.2018년에 트럼프 행정부가 주 휴스턴 중국 영사관 폐쇄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에 중국측은 청두시의 미국영사관폐쇄를 명령했다. 2020년에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내 미국 영사관을 폐쇄한다고 밝히면서 모스크바시의 주러대사관만 남았다.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관련해 미국측이 대러제재를 실시했다. 이에 주러 미국대사관의 인원을 감축시키고 주유엔 러시아 외교사절단을 추방시켰다.#
8. 관련 기사
- 미·중·러·인·일 다 뛰어들었다…'하늘에 떠 있는 광산' 달 전쟁 - 중앙일보
- 美 "중국에 '러시아 지원 말라' 메시지 효과적으로 전달" - 연합뉴스
- 푸틴 '뉴스타트' 중단 압박...美中러, 무한 '핵 경쟁' 우려 커져 - YTN
- 中 "제재·핵전쟁 반대"…미·러 동시 때린 '우크라 평화안' 속내 - 중앙일보
- [미중러 신냉전시대 개막되나①] 빅3 군사대국의 군비경쟁 이유는 - 뉴시스
- [이슈분석]한반도 이니셔티브 잡기 위한 미중러의 경쟁 - 국민일보
- 트럼프 취임과 스트롱 미중러…국제 질서 격변 - TV조선
- [석학 인터뷰] 美 월트 "우크라이나 전쟁 끝나면 미중러 경쟁 '다극체제' 본격화" - 한국일보
- "동남아, 내게 오라"... 돈과 힘 앞세운 미중러 '외교대첩' - 한국일보
- 러, 탈달러 가속…재무장관 "루블·위안 결제 비중 70%" - 뉴시스
- [러·우크라 전쟁 1년, 국제정치 구도 격변] 미국 vs 중·러 갈등 고조, 한반도에 불똥 우려…굳건한 한·미동맹 바탕으로 정교한 외교 필요 - 중앙SUNDAY
- 신간 『미중러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 매일경제
- 미중러는 지금 스텔스폭격기 개발戰 - 아시아경제
- 美 중거리미사일 亞 배치에 미중러 연일 대립 격화 - 아주경제
- [사설] 안보위기 재촉하는 미중러 갈등 - 신아일보
9. 관련 문서
- 미국/외교
- 중국/외교 / 중국/외교/비판
- 러시아/외교
- G7[7] / BRICS[8]
- 북극이사회[9]
- 광역두만개발계획[10]
- 최강논쟁
- vs놀이
- 미군 vs 러시아군 (미군 vs 소련군) / 미해군 vs 러시아 해군 / 미군 vs 중국군 / 미해군 vs 중국 해군 / 러시아군 vs 중국군 / 러시아 해군 vs 중국 해군
- 미국 VS 러시아(미국 VS 소련) / 미국 VS 중국
- 차이메리카
- 국력
- 제3차 세계대전
- 핵전쟁
- 중국 위협론
- 상임이사국[11]
- G2 / 강대국 / 초강대국
- NATO / 바르샤바 조약기구 / 상하이 협력 기구
- 미국/역사
- 중국/역사
- 러시아/역사
- 냉전 / 한국 전쟁 / 쿠바 미사일 위기 / 중소결렬 / 중소국경분쟁 / 데탕트 /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 신냉전 / 유로마이단 / 돈바스 전쟁 / 미중 무역 전쟁 / 미국-중국 패권 경쟁 /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 코로나19 / 2020년 벨라루스 시위 / 라이언에어 4978편 벨라루스 강제착륙 사건 / 2021년 미얀마 민주화 운동 /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 신장 재교육 캠프 / 신장 목화 논란
- 미국-중국 경제 비교
- 러시아/경제
- 미군 / 중국 인민해방군 / 러시아군 (소련군)
- 미국/문화
- 중국/문화
- 러시아/문화
- 미국인 / 중국인 / 러시아인 / 러시아계 중국인 / 중국계 러시아인 / 러시아계 미국인 / 중국계 미국인
- 영어(미국식 영어) / 중국어(표준 중국어) / 러시아어
- 미국 요리 / 러시아 요리 / 중국 요리
- 대국관계일람/아메리카 국가/북아메리카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동유럽 국가
[1] 중국과 러시아 양국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일시적인 협력은 진행 중이나, 이것도 일시적인 것뿐이지 앞으로 외교관계에 어떠한 변화가 존재할 지는 알 수 없는 상태에 가깝다.[2] 731 부대 희생자 중 상당수가 하얼빈에서 거주하던 러시아 백군 난민이었다. 일본에서는 이들이 소련군 전쟁 포로라고 날조하고 있으나 피실험자 상당수가 임신부를 포함한 여성이었다. 출처는 영문 위키의 731 부대 항목과 링크[3] 미국의 저명한 러시아사 학자였던 니콜라스 랴자노프스키도 하얼빈으로 피난한 이후 미국으로 망명한 백군 난민의 후손이다.[4] 파리드 자카리아 같은 엉터리 참모들을 신뢰한 것이 문제였다.[5] 한동안 (2000년대 이후부터 크림 위기 전까지) 경제가 회복된 러시아는 서방으로부터 여러 생필품을 수입하던 상황이었으나 2014년 경제제재 이후 수입품을 한국이나 중국으로부터 충당하기 시작하였는데, 한국인 입장에서 쉽게 설명하자면 아직도 오리온 초코파이나 오뚜기 마요네즈 등 한국산 식자재가 러시아에 인기가 있는 이유가 크림 위기 이후 경제제재 등으로 프랑스나 이탈리아산 식자재를 구입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6] 다만 도스토옙스키의 경우 기독교적 성격 때문에 소련과 성향이 잘 안 맞는 이유로 소련 사회에서는 불온도서로 취급되었고, 대신 러시아의 반공 성향 난민들에게 더 많은 인기를 끌었다.[7] 러시아도 잠시 가입했지만, 2010년대에 탈퇴되었다.[8] 미국은 가입하지 않았다.[9] 중국은 옵서버에 가입되어 있다.[10] 미국은 가입하지 않았다.[11] 3국 모두 상임이사국에 속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