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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2-20 17:59:53

이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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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한국 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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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1c1c1,#4a4a4a> 고조선 · 삼국 · 남북국
(BC 4C~AD 936년)
<colbgcolor=#eeeeee,#222222> · 가요 [[고조선|
고조선
]] 저자 미상(공무도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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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 월명사(제망매가), 충담사(찬기파랑가), 처용(처용가), 최치원(추야우중), 득오(모죽지랑가), 의상(화엄일승법계도), 김위홍(삼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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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 유리명왕(황조가), 을지문덕(여수장우중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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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 저자 미상(정읍사), 무왕(서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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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 저자 미상(구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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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 양태사(야청도의성)
설화 · 소설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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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총(화왕계)
산문 [[신라|
신라
]] 원효(금강삼매경론 · 대승기신론소 · 판비량론), 혜초(왕오천축국전), 최치원(토황소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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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 이문진(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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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 고흥(서기), 저자 미상(백제본기), 혜균(대승사론현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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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 이광현(금액환단백문결)
금석문 [[신라|
신라
]] 진흥왕(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저자 미상(임신서기석), 김○○, 한눌유(문무왕릉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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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 장수왕(광개토대왕릉비 · 중원고구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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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 저자 미상(미륵사지 금제사리봉영기), 정지원(금동정지원명삼존여래입상 금석문), 사택지적(사택지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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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 저자 미상(정혜공주 묘비명 · 정효공주 묘비명)
고려 시대
(936년~13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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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저자 미상(청산별곡), 저자 미상(가시리), 저자 미상(동동), 저자 미상(쌍화점), 경한(직지심체요절), 나옹(나옹화상가송 · 청산은 나를 보고), 균여(보현십원가), 이규보(동명왕편), 우탁(탄로가), 이방원(하여가), 정몽주(단심가), 정서(정과정)
설화 · 소설 [[고려|
고려
]] 한림의 유생들(한림별곡), 이규보(국선생전), 임춘(국순전), 저자 미상(최치원), 저자 미상(조신의 꿈), 저자 미상(김현감호), 김부식(온달 설화), 일연(단군 신화 · 주몽 신화 · 만파식적)
산문 [[고려|
고려
]] 김부식(삼국사기), 일연(삼국유사), 지눌(권수정혜결사문 · 원돈성불론), 의천(천태사교의주 · 대각국사문집), 각훈(해동고승전), 이승휴(제왕운기), 이규보(동국이상국집), 이인로(파한집), 최자(보한집), 이제현(역옹패설), 혁련정(균여전)
조선 시대
(1392년~19세기)
· 시조 [[조선|
조선 전기
]] 신사임당(유대관령망친령 · 사친), 정인지(용비어천가), 정극인(상춘곡), 성삼문(이 몸이 죽어 가서), 황진이(동짓달 기나긴 밤을), 세종(훈민정음, 월인천강지곡), 정철(관동별곡 · 사미인곡), 허난설헌(규원가), 홍랑(묏버들 가려 꺾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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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 박인로(누항사), 윤선도(어부사시사 · 오우가), 이매창(고인), 김천택(청구영언), 김수장(해동가요), 김인겸(일동장유가), 정학유(농가월령가), 저자 미상(사설시조)
소설 [[조선|
조선 전기
]] 김시습(금오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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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 허균(홍길동전), 김만중(구운몽 · 사씨남정기), 조성기(창선감의록), 박지원(허생전 · 양반전 · 호질), 저자 미상(임경업전), 저자 미상(유충렬전), 저자 미상(최고운전), 저자 미상(운영전), 저자 미상(박씨전), 저자 미상(임진록), 저자 미상(춘향전), 저자 미상(심청전), 저자 미상(흥부전), 저자 미상(토끼전), 저자 미상(전우치전)
산문 [[조선|
조선 전기
]] 유효통(향약집성방), 인수대비(내훈), 서거정(동문선), 김구(화전별곡), 보우(권념요록), 이황(성학십도), 이이(성학집요), 이응태 부인(이응태 묘 출토 편지)
[[조선|
조선 후기
]] 류성룡(징비록), 이순신(난중일기), 이중환(택리지), 박지원(열하일기), 혜경궁 홍씨(한중록), 박제가(북학의), 정약용(목민심서 · 경세유표 · 흠흠신서), 의유당(의유당관북유람일기), 휴정(선가귀감), 홍만종(해동이적)
언해 [[조선|
조선
]] 수양대군, 김수온 외 (석보상절), 유윤겸 외(두시언해)
개화기 · 일제강점기
(19세기 말~1945년)
· 가사 [[구한말|파일: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제작 태극기.svg
조선 말기
]] 이종원(동심가)
[[대한제국|파일:대한제국 국기.svg
대한제국
]] 최남선(해에게서 소년에게)
[[일제강점기|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일제강점기
]] 김기림(바다와 나비), 한용운(님의 침묵 · 조선불교유신론), 심훈(그날이 오면 · 상록수), 김소월(진달래꽃 · 초혼), 윤동주(서시 · 별 헤는 밤), 이상(오감도), 정지용(향수 · 유리창), 백석(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이육사(광야 · 청포도), 임화(우리 오빠와 화로), 김영랑(모란이 피기까지는), 이상화(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유치환(깃발)
소설 · [[대한제국|파일:대한제국 국기.svg
대한제국
]] 이인직(혈의 누 · 은세계), 이해조(자유종), 안국선(금수회의록)
[[일제강점기|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일제강점기
]] 강경애(인간문제), 홍명희(임꺽정), 이광수(무정), 염상섭(삼대 · 만세전), 김동인(감자 · 배따라기), 현진건(운수 좋은 날 · B사감과 러브레터), 채만식(태평천하 · 레디메이드 인생 · 탁류), 이효석(메밀꽃 필 무렵), 김유정(동백꽃 · 봄·봄), 이상(날개), 박태원(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 천변풍경), 계용묵(백치 아다다), 오영진(맹진사댁 경사), 최서해(탈출기), 한설야(과도기), 이태준(달밤 · 돌다리), 이기영(고향)
산문 [[구한말|파일: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제작 태극기.svg
조선 말기
]] 유길준(서유견문)
[[일제강점기|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일제강점기
]] 신채호(조선상고사), 김구(백범일지), 여운형(조선독립의 당위성 · 동경기행), 이태준(무서록), 장준하(돌베게)
아동문학 [[일제강점기|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일제강점기
]] 백석(집게네 네 형제), 마해송(곶감과 호랑이), 이원수(고향의 봄 · 숲 속 나라), 현덕(하늘은 맑건만)
현대
(1945년~21세기)
· 가사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해방·전후 ~ 1970년대
]] 김지하(타는 목마름으로 · 오적 · 무화과), 고은(만인보), 박목월(나그네), 조지훈(승무 · 낙화), 서정주(국화 옆에서), 김수영(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 ), 김춘수(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신동엽(껍데기는 가라), 손로원(봄날은 간다), 신경림(농무 · 목계 장터), 이형기(낙화), 천상병(귀천), 백기완(묏비나리)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0년대~2020년대
]] 김민기(아침이슬 · 상록수), 나태주(풀꽃), 도종환(접시꽃 당신 · 흔들리며 피는 꽃), 박노해(노동의 새벽), 박주연(너에게로 또 다시), 안도현(너에게 묻는다), 이영훈(사랑이 지나가면), 장정일(샴푸의 요정), 기형도(입 속의 검은 잎), 최영미(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승자(삼십세), 정호승(슬픔이 기쁨에게), 제페토(그 쇳물 쓰지 마라), 허수경(혼자 가는 먼 집), 황지우(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소설 ·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해방·전후 ~ 1970년대
]] 황순원(소나기 · 카인의 후예), 박경리(토지 · 김약국의 딸들), 최인훈(광장), 이청준(당신들의 천국), 김승옥(무진기행), 윤흥길(장마 ·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조세희(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현기영(순이 삼촌), 황석영(장길산 · 삼포 가는 길 · 황석영 삼국지), 오정희(중국인 거리 · 유년의 뜰), 이강백(파수꾼 · 결혼), 하근찬(수난이대 · 흰종이 수염 · 야호), 이범선(오발탄), 손창섭(비오는 날 · 잉여인간), 김동리(무녀도 · 역마)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0년대 ~ 2000년대
]] 조정래(태백산맥), 이문열(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이문열 평역 삼국지), 최인호(고래사냥 · 상도 · 해신), 복거일(비명을 찾아서), 최명희(혼불), 양귀자(원미동 사람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신경숙(엄마를 부탁해), 은희경(새의 선물), 윤대녕(은어낚시통신), 공지영(고등어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마광수(즐거운 사라),박완서(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이영도(드래곤 라자)[1], 이우혁(퇴마록)[2]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0년대 ~ 2020년대
]] 조창인(가시고기), 김훈(칼의 노래), 한강(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김영하(살인자의 기억법), 박상영(대도시의 사랑법), 장강명(표백), 정보라(저주토끼), 정유정(종의 기원, 7년의 밤), 김초엽(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3], 천선란(천 개의 파랑)[4], 손원평(아몬드)
파일:북한 국기.svg 김일성(꽃파는 처녀), 홍석중(황진이), 백남룡(벗), 반디(고발, 붉은 세월)
아동문학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강소천(꿈을 찍는 사진관), 권정생(강아지똥 · 엄마 까투리), 김려령(완득이 · 우아한 거짓말), 백희나(구름빵), 이금이(너도 하늘말나리야), 조흔파(얄개전)
산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윤오영(방망이 깎던 노인), 이양하(신록예찬), 피천득(인연), 법정(무소유), 홍세화(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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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펼치기 · 접기 ]

[1] 태성 · 천재교육 교과서 등재[2] 중앙교육·대한교과서·지학사 교과서 등재[3] 민음사 오늘의작가상 수상, 일본 성운상 후보, 중국 성운상 수상, 한국과학문학상 수상, 구연정. (2024). 서구의 기술담론을 재맥락화하는 한국SF의 문학적 실험 :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중심으로. 스토리앤이미지텔링, 28, 13-37.[4] 기술철학적 관점에서 본 SF 성장소설과 인간-비인간의 앙상블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을 중심으로. 진선영(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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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 이무영 이태준 정지용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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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箱 | Ri Sang
[1]
파일:external/file2.instiz.net/6052f8a4ffd30d2923db78df8eb2f091.jpg
본명 김해경(金海卿)
출생 1910년 9월 23일
한성부 서서 인달방 사직동계 사직동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7길 18)[2][3]
사망 1937년 4월 17일 (향년 26세)
도쿄부 도쿄시 혼고구 도쿄제국대학 부속 병원
(現 도쿄도 분쿄구 도쿄대학 부속 병원)
직업 시인, 소설가, 수필가, 건축가,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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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필명 이상 (李箱)[4]
비구(比久)[5]
보산(甫山)[6]
하융(河戎)[7]
본관 강릉 김씨[8]
가족 아버지 김연창[9], 어머니 박세창
남동생 김운경, 여동생 김옥희
배우자 변동림 (1936년 결혼)[A]
친인척 처조카 구본웅[11]
학력 신명학교 (졸업)[12]
보성고등보통학교 (졸업)[13]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 / 졸업)[14]
장지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미아리 산69 미아리공동묘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반포리[15]
미상[16]
신체 168cm, 51kg (1926년 17세 기준)
등단 『12월 12일』
(十二月 十二日, 1930,《조선》)
대표작 오감도
(烏瞰圖, 1934,《조선중앙일보》)
날개
(1936,《조광》)
}}}}}}}}}

1. 개요2. 생애
2.1. 성장기2.2. 필명의 유래2.3. 데뷔 이후2.4. 일본에서의 사망
3. 평가4. 연인 관계5. 여담
5.1. 수능 및 모의고사 출제 관련
6. 매체7. 작품 목록8. 가계도9. 둘러보기

1. 개요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 소설 <날개>
일제강점기 조선의 작가.

모더니스트이자 아방가르드 작가였으며, 1930년 등단 후 약 7년 동안 다수의 시, 소설, 수필 등을 집필하며 인간 사회의 도구적 합리성을 극복하고 미적 자율성을 정립하고자 했다.[17] 그의 초현실주의적 작품 활동은 한국 근대 문학이 국제적·선진적 사조에 합류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2. 생애

파일:화실의 이상.jpg
경성고등공업학교의 화실에서
파일:external/dimg.donga.com/28096080.1.jpg
경성고등공업학교의 건축과 실습실에서
파일:external/file2.instiz.net/6773bb973eab07cf4faf6ac0ab6d1969.jpg
1929년 졸업 앨범 '추억의 가지가지'에서[18]
파일:186372059183516.png
동기 원용석과 함께[19]
파일:시인 이상.jpg
문학가로 활동할 당시
파일:external/blogimg.ohmynews.com/1130018575.jpg
1936년 흥천사에서[20]
파일:attachment/Isang_01.jpg
1936년 창문사에서
파일:SSI_20180126172132.jpg
변동림과의 혼인 당시

2.1. 성장기

1910년 아버지 김연창(金演昌)과 어머니 박세창(朴世昌)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태어나고 3년 후인 1913년 몰락한 양반인 백부 김연필의 집으로 입양되었다. 김연필은 어린 이상의 천재성이 집안을 일으킬 것이라 여겨 유교와 한문을 교육시키며 그를 지원해 주었으나, 애정은 주지 않은 채 엄하게만 대했다고 한다.[21] 이상의 여동생인 김옥희는 이상 특유의 염세적인 성격이 이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추측했다.

어렸을 때부터 길바닥에 버려져 있던 목단 열 끗을 똑같이 그려내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자 없이도 반듯한 직선을 긋는 등 그림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으며, 본인 또한 화가를 꿈꾸었다. 그러나 가난한 화가보다 배곯을 일 없는 기술자가 되라는 김연필의 반대로, 이상은 보성고등학교를 졸업 후 1927년 경성고등공업학교에 입학해 1929년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하였고,[22]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건축 기사로 복무하였다.

2.2. 필명의 유래

그의 필명인 이상의 유래에 대해서는 많은 추측이 있다. 유력한 설은 친구 구본웅이 선물한 미술 도구 상자에서 따왔다는 설로, 경성고등공업학교에 입학했을 당시 선물받은 오얏나무(李)로 만들어진 상자(箱)를 받고 이에 감동해 필명을 이상(李箱)으로 지었다는 설이다.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졸업 앨범에 동기들의 친필과 함께 기재한 짧은 글[23]에도 본인을 이상이라고 칭했다. 그 외 친구 김기림 등의 주장에 의하면 조선총독부에서 건축 기사로 일했을 당시 인부가 그의 성을 김씨가 아닌 이씨로 착각해 그를 이이라고 부른 것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다.

이외 다른 필명인 비구(比久), 보산(甫山), 하융(河戎)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이 중 하융(河戎)은 뜻[24]을 보면 그의 본명인 김해경의 뜻[25]을 비튼 것으로 추정된다.

2.3. 데뷔 이후

건축 기사가 된 지 1년이 지난 1930년, 그는 조선 총독부에서 발간하던 잡지 '조선'에서 장편 소설 《12월 12일》을 9회 동안 연재한 것을 시작으로 문학계에 데뷔했다. 퇴사 전까지 그는 이상(李箱)을 포함해 비구(比久), 보산(甫山) 등의 필명으로 조선 총독부에서 발간하는 잡지에 작품들을 투고했다.

그러던 1931년, 그는 갑작스럽게 폐결핵을 진단받았다. 이상은 하루에 담배를 50개피 이상 피는 것을 자신의 일과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엄청난 골초였는데, 그 때문인지 병세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어 담당의가 그의 폐를 확인하고는 형체도 안 보인다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였다. 결국 1933년부터는 각혈까지 시작되었고, 건축기사 일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상은 조선총독부에서 퇴사하고 황해도에 있는 배천 온천으로 요양을 간다.

요양 후 서울로 돌아온 이상은 종로1가에 다방 제비를 차리고, 온천에서 알게 된 기생 금홍을 다방의 마담 자리에 앉혀 동거하기 시작했다. 이상은 이때부터 박태원, 정지용, 김기림, 이태준 등의 문학가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는데, 이중 정지용의 주선을 통해 가톨릭청년에서 시 꽃나무와 이런시를 발표했고, 이듬해인 1934년에는 순수 문학 단체 구인회에 가입했다. 또한 이태준의 도움을 받아 조선중앙일보에서 오감도를 연재했지만, 독자들의 거센 반발로 인해 15회 만에 연재를 중지하였다.

1935년 경영난에 시달린 끝에 다방 제비를 폐업하고[b] 금홍과 결별하게 된다. 이상은 틈틈이 창작 활동을 이어나가는 동시에 인사동에 쓰루(鶴), 종로1가에 69와 같은 다방을 차례로 운영했지만 모두 제비와 같은 이유로 남에게 양도했고, 그러고도 다시 명동에 무기(むぎ)라는 다방을 열었으나 이것 또한 망하고 만다.

1936년에는 친구 구본웅의 아버지 구자혁이 운영하던 출판사인 창문사에 잠시 취직하여 출판물의 편집과 교정을 도맡다가 퇴사했다.[27] 동년 6월에는 수필가 변동림과 결혼하여 경성 황금정에서 신혼 생활을 하는데, 이때 소설 지주회시날개를 발표하여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2.4. 일본에서의 사망

점차 죽음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 이상은 지인들에게 인사를 남긴 후, 1936년 9월 성장을 위해 평소 동경했던 일본의 도쿄로 떠난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 도쿄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내가 생각하던 마루노우치(丸(まる)の内) 빌딩은 적어도 이 '마루비루(丸の内ビル)의 네 갑절은 되는 굉장한 것이었다. 뉴욕 브로드웨이에 가서도 나는 똑같은 환멸을 당할는지. 어쨌든 '이 도시는 몹시 가솔린내가 나는구나!'가 동경의 첫인상이다.

(중략)
낮의 긴자는 밤의 긴자를 위한 해골이기 때문에 적잖이 추하다. '살롱 하루' 굽이치는 네온사인을 구성하는 부지깽이 같은 철골들의 얼크러진 모양은 밤새고 난 여급의 퍼머넌트 웨이브처럼 남루하다.
— 이상, 수필 '동경'
그러나저러나 동경 오기는 왔는데 나는 지금 누워 있소그려. 매일 오후면 똑 기동 못 할 정도로 열이 나서 성가셔서 죽겠소그려.

동경이란 참 치사스러운 도십디다. 예다 대면 경성이란 얼마나 인심 좋고 살기 좋은 '한적한 농촌'인지 모르겠습디다.

어디를 가도 구미가 당기는 것이 없소그려! 꼴사납게도 표피적인 서구적 악습의 말하자면 그나마도 그저 분자식이 겨우 여기 수입이 되어서 진짜 행세를 하는 꼴이란 참 구역질이 날 일이오.

나는 참 동경이 이따위 비속 그것과 같은 물건인 줄은 그래도 몰랐소. 그래도 뭣이 있겠거니 했더니 과연 속 빈 강정 그것이오.

한화휴제[28]―나도 보아서 내달 중에 서울로 도로 갈까 하오. 여기 있댔자 몸이나 자꾸 축이 가고 겸하여 머리가 혼란하여 불시에 발광할 것 같소. 첫째 이 가솔린 냄새 미만[29] 넘쳐흐르는 것 같은 거리가 참 싫소.
— 이상, 김기림에게 쓴 편지 중 일부, 1936년 11월 29일자
도쿄에 대한 환멸과 주변인들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병의 악화로 이상의 심신은 날이 갈수록 쇠약해졌다. 이상은 4월 중에 서울로 돌아가려 했으나, 1937년 2월 공원을 배회하던 중, 불령선인으로 체포되면서 도쿄 니시칸다(西神田) 경시청 경찰서[30]에 투옥되고 말았다. 사실 별다른 혐의가 있던 것은 아니고, 수염도 깎지 않고 머리도 산발로 하고 다니는 꾀죄죄한 모습이 수상쩍어서[31] 체포된 거라 투옥된 지 34일 만에 병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결국 폐결핵으로 인해 동경제국대학 부속 병원에서 4월 17일 새벽 4시 2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사망 전 급히 도쿄로 온 아내 변동림에게 그는 "센비키야의 메론이 먹고 싶다"라는 유언을 남겼다.[32]
나는 열두 시간 기차를 타고 여덟 시간 연락선을 타고 또 스물네 시간 기차를 타고 동경에 닿았다. 동대 병원 입원실로 직행하다. 이상의 입원실, 다다미가 깔린 방들, 그중의 한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상이 거기 누워 있었다. 인기척에 눈을 크게 뜨다. 반가운 표정이 움직인다. 나는 무릎을 꿇고 그 옆에 앉아 손을 잡다. 안심하는 듯 눈을 다시 감는다. 나는 긴장해서 슬프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살릴 수 있나, 죽어간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상은 눈을 떠보다 다시 감는다. 떴다 감았다. 귀에 가까이 대고 "무엇이 먹고 싶어?", "셈비끼야의 메론." 이라고 하는 그 가느다란 목소리를 믿고 나는 철없이 천필옥에 메론을 사러 나갔다. 안 나갔으면 상은 몇 마디 더 낱말을 중얼거렸을지도 모르는데. 멜론을 들고 와 깎아서 대접했지만 상은 받아넘기지 못했다. 향취가 좋다고 미소 짓는 듯 표정이 한 번 더 움직였을 뿐 눈은 감겨진 채로. 나는 다시 손을 잡고 가끔 눈을 크게 뜨는 것을 지켜보고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 김향안, 에세이 <월하의 마음> 397쪽 중

사후 이상의 시신은 조선으로 옮겨져 18일 전에 폐결핵으로 숨진 절친 김유정과 합동 영결식으로 화장되었다.

3. 평가

이상을 가리켜 혹은 악덕의 시인, 데카당의 작가라 한다. 그가 그리는 세계가 주장 데카당적 생활면이요, 또 등장시키는 인물이 주로 여급(女給)이라든지 거기 붙어사는 생활력 없는 거미 같은 사람이라 해서 하는 소리일 게다. 그러나 그것을 언뜻 보아 눈에 띄는 표면이고, 하나하나의 작품을 지니고 있는 모럴의 핵심은 차라리 추한 현실과 데카당의 진흙탕을 넘어 애정과 인간성의 절대의 경지를 추구해 마지않는, 어찌 보면 청교도적인 면에 있는 듯하다. 그 작품에 가끔 매우 친절한 측광(側光)을 던져 주는 그의 수상(隨想) 등속에서 우리는 그의 참말 의도를 잘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김기림, <이상의 문학의 한 모> 중
친구인 문학 평론가 김기림 등과 함께 일제 강점기 조선 문학, 더 나아가 한국 문학의 모더니즘과 전위성을 개척한 작가들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더 나아가 한국 문학사를 통틀어 손에 꼽히는 천재 작가라고 평가받는다. 그는 숫자와 기호의 남발, 그리고 문법적으로 어딘가 이상한 서술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등의 독보적인 행보를 보였으며, 이러한 작품 활동은 그가 사망한 지 100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그가 '혁신적' 혹은 '난해'하다는 평을 받도록 하는 요인이 되었다.

흔히 이상이라고 한다면 시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그의 시는 꽤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오감도 등의 난해 시들이 그러한데, 이런 시들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쉬운 서정시도 아닌 데다 이상 특유의 난해한 서술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상이 이런 시들을 창작했던 것은 기존의 문법 틀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련의 시도들로, 띄어쓰기가 없는 다다이즘적 문장을 쓰거나 기호나 숫자 등을 배치해 어떤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을 사용했다. 다만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와 달리 음절 단위의 문장으로 구성된 한국어와 애초부터 띄어쓰기가 없는 일본어로는 다다이즘을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독자들 또한 시에 대해 납득하지 못했다.[33]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문학가들 사이에서는 커다란 이슈로 떠올랐다. 이상의 동료와 친구들은 그의 천재성에 주목해 그가 작품을 연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그의 영향을 받은 삼사문학[34]이라는 동인도 생겼다.

소설, 수필 등의 산문에서는 이상의 문학적 사상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주로 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과 불안, 그리고 사람 간의 관계에서 오는 불행을 초현실주의적으로 묘사해 현실을 탐구했다. 예를 들어, 수필 산촌여정과 권태에서는 현대화되고 서구화된 일상에 익숙해진 도시인이 외부와 단절되어 전통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시골에서의 일상에 적응하지 못해 권태에 빠지는 모습을, 조춘점묘에서는 사방이 벽으로 둘러쌓인 빌딩과 그 빌딩의 소유자인 보험 회사를 은유하며 개인으로서 존재하지 못하는 부조리한 현대인의 삶을 비판하였다.

이러한 그의 작품 세계는 형식적으로 이루어진 세상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상은 이러한 현실을 철저하게 파헤치고 자기 자신에 대해 고찰함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쓰인 작품들은 다소 퇴폐적이고 비뚤어졌다는 감상을 주어 독자들에게 외면받기 십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은 꿋꿋이 창작을 이어나갔으며, 사망 후 그에 대한 수많은 연구와 해석으로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4. 연인 관계

알려진 이상의 첫 번째 연인은 그가 운영했던 다방 제비의 마담인 금홍이었다. 금홍은 이상이 요양을 위해 갔던 배천 온천에서 만난 기생으로, 이상은 그녀를 사랑해서 다방 제비를 차려 그녀를 데려와 함께 운영했다. 그러나 다방은 인기가 없어 항상 경영난에 시달렸고[b] 이 때문에 이상과 금홍은 자주 다퉜다. 결국 1935년에 둘은 결별하고 다방 제비 또한 폐업하게 된다.

이후 이상은 부모의 집을 담보삼아 인사동에 위치한 카페 쓰루를 인수하여 운영했는데, 이때 카페 엔젤에서 근무하던 권순옥을 여급으로 데려온다. 권순옥은 이상이 4년 전에 만났던 여성으로, 이상에게 'D. H. 로렌스의 모조품'이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이상은 권순옥을 사랑했으나, 똑같이 권순옥을 사랑했던 친구인 소설가 정인택이 권순옥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자신을 비관하며 자살 기도를 하였고, 이를 본 이상은 결국 권순옥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이후 정인택과 권순옥은 결혼했는데, 놀랍게도 그들의 결혼식 사회를 이상이 봐주었다. 권순옥은 한국 전쟁 때 정인택과 함께 월북했으나 정인택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후, 이상의 또 다른 친구인 박태원과 결혼하고 이름을 권영희로 개명한다. 관련 글 박태원이 <갑오농민전쟁>을 쓰던 도중 건강이 악화되자, 권영희는 그를 도와 <갑오농민전쟁> 2부, 3부를 같이 썼다. 문제는 박태원이 남한에 처자식[36]을 두고 월북하는 바람에 이 소설의 저작권까지 꼬여서 재출판이 어렵다고 한다. 자세한 건 박태원 문서 참조.

카페 쓰루의 폐업 이후, 카페 무기를 차린 이상은 이번엔 카페의 손님이자 친구 구본웅의 이모[37]인 수필가 변동림에게 빠지게 되었고, 어느 날 고백한 것을 계기로 1936년 6월에 결혼한다[A]. 그러나 이상은 결혼 4개월 만에 새출발을 하겠다며 도쿄로 떠났고, 변동림과는 죽기 전에서야 다시 만나게 된다. 이후 변동림은 이상과 사별한 지 7년 후인 1944년에 화가 김환기와 재혼했고 남편 김환기의 이전 호를 따서 김향안(金鄕岸)으로 이름을 바꾸어 프랑스의 소르본 대학교와 에콜 드 루브르 등에서 미술을 공부해 미술 평론을 썼다. 그녀는 수필을 쓰며 이상의 자취를 정리하는 데 큰 공헌을 했으며, 2004년에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를 다룬 창작물로는 소설 <천재들의 초상>, 뮤지컬 <라흐헤스트>가 있다.

5. 여담

5.1. 수능 및 모의고사 출제 관련

파일:attachment/ogd001.jpg 파일:ogd002.png
2003 수능 언어영역 출제 2009 교육청 모의고사 출제[43]

2003년 수능 언어영역[44] 문제의 경우 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의 내용과는 전혀 관계없는 문제로 출제되어 난이도가 높지 않았다. 본 시는 오감도의 제 4호다. 문제에서 말하는 '윗글'은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내용이다.

위 문제의 답은 1번이다. 사실 보기로 제시된 이상의 시는 볼 필요도 없다. 수능이나 SAT 등의 시험에서 볼 수 있는 법칙으로, 주어진 글의 난이도와 문제의 난이도는 서로 반비례한다. 여기서는 지문이 어려우니 문제는 거꾸로 쉬운 것이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한자가 다수 포함된 고전 문학의 단어 설명이 부실할 경우 100% 확률로 문학 작품을 전혀 안 읽어도 풀 수 있다. 수능에서 한자 독해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상의 시는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전형적인 시를 해제하는 관점에서 풀 수 있는 게 아니라 국어국문학과의 오랜 연구로 그나마 대부분 풀린 거고 그마저도 오감도는 미해결이다. 그런데 진짜 이상 시로 문제를 내면 출제 위원들도 오락가락할 것이다.

1~5번 보기에서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라고 했으니 다른 지문과 비교하였을 때 오류가 있는 것을 찾는 편법으로 풀 수 있다. 특히 3번 보기에선 독자들이 시인을 '미쳤다'고 표현했다 하였고 5번 보기에선 편집진의 압력으로 연재가 중단되었다고 했으며 2번 보기에선 기존의 언어 체계를 불신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아주 상식선에서 생각했을 때 이 보기 중 적어도 2개가 맞다면 이 시가 1번 보기에서 주장하는 당시 현대 시의 주류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굳이 헷갈린다면 3번 보기와 헷갈릴 수도 있는데 그때 이 시를 보면 된다. 배배 꼬고 의미 불명의 표현법을 사용한 작품이 보통 당대에 인기가 있고 주류가 되었던 경우는 파블로 피카소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없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서 그렇다.

이런 내용도 없어 보이는 이상한 시가 나왔을 때 일반 독자들에게 '미쳤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만약 1번 보기가 적절했고 정말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시였다면 적어도 독자들에게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미쳤다는 소리까지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2009년 7월 교육청 모의고사에서 시가 다시 한번 등장했다. 다만 듣기 평가 문항이었기 때문에 해설을 들려줄 수 있었고 그 해설을 토대로 문제를 냈다고 한다. 2006년 수능에 수필 '조춘점묘'가 등장했고 2014년 수능 국어영역에서 A, B형 공통 문항으로 수필 '권태'가 마지막 지문으로 출제되었다. 소설인 날개도 한번 나왔다.

6. 매체

7. 작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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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가계도[A]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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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통적 운율·정서를 계승한 시인.[2] 조국 광복 염원·의지 및 부정적 현실 극복을 다룬 시인.[3] 정치적 이념을 배제한 순수 서정시를 추구한 유파. 특정 사상이나 계급주의적 관점을 강조하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에 반발하며 등장했으며, 시 동인지 《시 문학》을 중심으로 순수 서정시 운동을 주도했다.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 신석정 등의 시인이 활동했다.[4] 부정적 현실을 지식인의 관점에서 비판한 소설이 많았다. 특히 의식의 흐름 기법이 많이 쓰였다. 대표적으로 이상날개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있다.[5] 장편소설 중에서도 일제 강점기에 부정적 인물이 득세하던 현실을 반영한 소설이 이때 주목받았다. 대표적으로 채만식태평천하, 염상섭삼대가 있다.[6] 계몽주의에 기반한 농촌 계몽 소설, 향토적 삶을 다룬 향토적 농촌 소설, 식민지 지배와 통치 제도의 억압성과 부조리로 인한 농촌의 현실을 다룬 현실 비판적 농촌 소설이 있다.[7] 만주 사변 이후 더욱 극심해진 일제의 사상 통제와 검열을 피해, 역사적 사건을 다루어 민족 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다.[8] 당시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중일전쟁태평양 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심화되어 아예 한국어 사용 자체를 금지할 지경에 이른 관계로 주제 의식이 모호하고 불분명한 몇몇 단편들만 간신히 명맥을 이었다. 대표적으로 순수 소설인 황순원'별'이 1941년에 발표되었다. 이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전후세대(1920년대생) 작가들은 체계적인 한글 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다른 세대와 비교도 안되는 굴곡진 인생 경험을 했음에도 이를 풀어내는데 한계가 있었고 이전 세대와 60년대 부상한 한글세대(김승옥 등) 사이에 끼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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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상 본인이 사용한 로마자 표기. 현대에 들어서는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따라 주로 Yi Sang으로 표기되며, 간혹 Lee Sang으로 표기되는 경우도 있다.[2] 지번: 통인동 154-10[3] 현재 해당 위치에는 이상의 집이라는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다.[4] 가장 많이 사용한 필명. 한자로는 '李箱'이라 표기하나, 동료 소설가이자 친구였던 박태원의 결혼식에서는 예외적으로 '以上’이라고 표기했다.[5] 단편 소설 '지도의 암실'을 발표할 때 사용한 필명.[6] 단편 소설 '휴업과 사정'을 발표할 때 사용한 필명.[7] 소설 등의 삽화를 그릴 때 사용한 필명.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의 삽화 또한 해당 필명을 쓰고 그려주었다.[8] 36세 경(卿) 항렬.[9] 호적명 김영창(金永昌)[A] 변동림은 이상과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 관계였으므로 족보에 이름이 등재되어 있지 않다.[11] 구본웅의 이모 변동림과 결혼하여 족보상으로는 이상이 구본웅의 이모부이다. 물론 이상과 구본웅은 또래이며 동료였다. 단지 변동림이 구본웅보다 10살 어린 이모여서 그런 것이다.[12] 순헌황귀비의 남동생이자 진명여학교 설립자 엄준원이 설립한 학교로, 현재의 누상동에 위치해 있다.[13] 본래는 동광학교에 입학했으나 보성고보와 통폐합되었다.[14]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의 전신이지만 당시 구제대학이 아니었으며, 구제전문학교인 고등실업학교(고등상업학교, 고등농림학교, 고등공업학교 등)였기에 정식 학사를 수여한 것 아니었다. 그러나 조선인으로선 웬만한 수재가 아니면 입학하기 힘든 엘리트 학교였다. 당시 건축과 졸업생들 중 조선인은 이상 한 명뿐이었다.[15] 미아리공동묘지가 도시 개발이 진행되면서 광주군 언주면의 공동묘지(현 국립중앙도서관 일대)로 이장되었다.[16] 6.25 전쟁 중 수차례 폭격이 떨어져 묘가 소실되었고, 이후 이상의 묘가 있던 곳의 일대 역시 새마을운동 등 여러 개발 사업을 거치면서 현재는 정확한 소재지를 찾을 수가 없어진 상태다.[17] 저자 '이상'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예술지식백과, 문화체육관광부 문화포털 참조.[18] 전체 사진 특이한 옷차림을 콘셉트로 한 사진으로, 여기서 이상은 여성 한복을 입어 여장을 했다.[19] 왼쪽이 원용석, 오른쪽이 이상으로, 이 둘은 보성고등보통학교와 경성고등공업학교를 같이 다닌 동기다. 이 사진은 현대에 이르러 이상을 소개할 때 자주 인용되는 사진이 되었다.[20] 친구인 정인택과 옛 연인 권순옥의 결혼식 당시이다. 이상은 이들 결혼식의 사회자를 담당했다.[21] 일례로, 이상이 새어머니에게 차별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백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22] 일본 제국 기준으로는 직공 학교 수준이었을지언정, 당시 경성고등공업학교에서는 도쿄대학 공학부에서도 사용하던 교재로 수업했기 때문에 1920년대 기준의 최신 수학·과학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이는 훗날 그의 시풍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게 된다.[23] 보고도 모르는 것을 폭로시켜라! 그것은 발명보다도 발견! 거기에도 노력은 필요하다. 「李箱」[24] 강(河)의 오랑캐(戎)[25] 바다(海)의 벼슬(卿)[b] 다방을 운영할 당시 손님에게 주문과는 다른 음료를 내주는 등의 기행을 저지른 적이 많았는데 이랬으니 장사가 잘될 리 없다.[27] 창문사에서 근무하던 중에 구인회의 창간호이자 종간호인 시와 소설을 편집 및 발간했다.[28] 閑話休題,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함. 어떤 내용을 써 나갈 때 한동안 다른 내용을 쓰다가 다시 본래의 내용으로 돌아갈 때 쓰는 말로써, 현대에도 사용하는 어휘 중에서는 각설(却說) 등에 갈음하여 쓸 수 있는 말이다.[29] 彌蔓, 널리 퍼짐[30] 지금의 지요다 일대. 이상 외에도 2·8 독립 선언식의 11명 대표인 윤창석과 김철수 등의 독립운동가들이 구금되었던 경찰서로도 알려져 있다.[31] 당시 일본은 중일 전쟁 직전으로 군국주의가 절정에 이르러던 때여서 단정하게 차려입고 다니지 않으면 거동 수상자라고 단정하여 전부 체포하고 보던 시기였다.[32] 센비키야(千疋屋), 한자 독음으로 천필옥은 고급 과일과 과일 디저트를 판매하는 명품 상점이다. 1834년 도쿄 긴자에 오픈해서 현재까지도 영업 중이다.[33]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일화가 오감도가 처음 신문에 게재되었을 때였다. 당시 조선중앙일보에는 시를 읽은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쳤으며, "이런 개소리를 내뱉은 이상을 죽여야 한다"는 과격한 내용의 투고까지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생애 문단에서 전술했듯이 작품을 다 발표하지 못하고 중간에 연재를 중지했다.[34] 1934년 9월 1일 창간된 순문예 동인지. 회원 중에 황순원도 있었다. 창간 멤버(신백수·이시우·정현웅·조풍연) 중 조풍연, 정현웅을 제외하면 모더니즘과 초현실주의를 추구했다고 한다. 이상은 이들과 만나 문학에 대한 토론을 하기도 했다.[b] [36] 참고로 이 전처의 딸의 아들, 즉 외손자가 바로 영화감독 봉준호다.[37] 족보상 이모라지만 변동림이 구본웅보다 10살이나 어렸다(변동림 1916년생, 구본웅 1906년생). 변동림의 아버지인 변국선(卞國璿)이 늦은 나이에 젊은 첩을 통해 낳은 딸이었기 때문. 변국선의 본처 소생인 이복언니 변동숙이 구본웅의 계모.[A] [39] 'CROSS에는 기름이 묻어 있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40] 해당 시에서 기독과 반대되는 인물로 알 카포네가 나왔다.[41] 33은 남녀가 성교하는 모습을 은유한 것이며 18은 그 18이 맞다고 한다.[42] 정확히는 집터의 일부 위에 지어진 집이다. 실제 생가는 300평 정도의 넓은 집이었으나 이상 사후 10개의 필지로 분할, 판매되어 그 위에 다른 여러 집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후에 연구를 통해 생가가 아닌 이상의 백부인 김연필의 집이었음이 밝혀지기도 하였고 이에 대한 논란이 확대되어 지정문화재에서 해제되기도 했다. 따라서 생가라는 표현은 엄밀히 따지자면 틀린 말이다.[43] 숫자가 좌우 반전이라서 이미지로 인용할 수밖에 없다.[44] 현 국어영역[45] 날개거울이 주요 모티브가 되었으며, 그 외에도 오감도, 위독, 건축무한육면각체, 꽃나무, 산촌여정, 최저낙원, 슬픈 이야기, 절벽, 기와가전 등의 구절이 게임 내에서 인용되었다.[A] [47] 월북 이전부터 김운경은 가족들과 자주 마찰을 빚었으며, 6.25 당시 월북해 버려 가족과의 연이 끊기고 말았다. 때문에 생전 여동생 김옥희와 어머니 박세창은 그에 대한 말을 거의 꺼내지 않았다고 하며, 특히 박세창은 김운경을 두고 "사상적으로...."라고 말끝을 흐리며 이야기하길 꺼렸다고 한다.[48]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 작곡 전공 석·박사. 스탠퍼드 대학교 컴퓨터음악 및 공학연구소(CCRMA) 연구원 역임. 현재 재독(在獨). 문도희 박사가 작곡한 i21이 예술의 전당에서 아이패드와 현악4중주단과의 협연으로 세계 초연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