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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야마구치구미 장례식에 참석하는 두목 다오카 카즈오(田岡一雄)[1]와 간부들의 사진[2]
1. 개요2. 명칭3. 역사4. 구성
4.1. 위계4.2. 형태4.3. 수입4.4. 마약과 범죄행위4.5. 정치권과의 유착4.6. 출신
4.6.1. 재일교포 야쿠자4.6.2. 그 외
4.7. 처벌4.8. 무기4.9. 다이몬(代紋)
5. 폭력단 대책법과 폭력단 배제조례6. 폭대법의 영향7. 현황 및 현실8. 이미지9. 전문지10. 야쿠자 은어11. 조직 일람
11.1. 지정 폭력단11.2. 주요 비지정폭력단11.3. 해산된 주요 조직11.4. 일본 조직의 특징
12. 관련 인물
12.1. 한국계
13. 야쿠자와 관련된 작품 및 등장요소들
13.1. 대중문화에서의 모습13.2. 야쿠자물을 주로 다루는 사람들13.3. 야쿠자 세계를 비중 있게 다루는 작품13.4.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야쿠자 집단과 가문13.5. 야쿠자와 관계있는 설정의 캐릭터

[clearfix]

1. 개요

ヤクザ, やくざ / Yakuza

일본에서 조직을 형성하여 폭력을 휘두르며 직업적으로 범죄 활동에 종사하여, 수입을 얻고 있는 자를 말한다. 별칭은 'Japanese Mafia(일본 마피아)'다.

사실 '야쿠자' 단어 자체는 시중에서 떠도는 속어로서 특정 단체, 조직의 명칭은 커녕, 제대로 된 명사도 아니다. 야쿠자들은 스스로를 임협(닌쿄) 또는 극도(極道, 고쿠도)자칭한다. 1980년대는 협객(俠客)이라는 자칭도 많이 사용했고, 지금도 야쿠자가 아닌 사람이 야쿠자와 직접 대화할 때 야쿠자를 높여 부르려면 이 단어를 쓴다. 한편 경찰 등 정부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는 폭력단(暴力団 보료쿠단)이며, 그 중에서도 일정 조건을 만족하여 경찰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있는 폭력단을 지정폭력단(指定暴力団 시테이보료쿠단)이라고 한다.

일본 경찰청 조직범죄대책부 조직범죄대책기획과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일본 내에 야쿠자로 분류되는 이들은 10년 전을 기점으로 급감세에 있다.

1960년대 중후반 벌어진 제1차 정상작전(일본 경찰의 야쿠자 조직 해산 작전.) 이후 각지에서 군림하던 조직들이 해산과 재구성을 거듭하여 2015년 8월경 까지 전체 야쿠자의 절반 가량은 일본 야쿠자 3대 조직인 야마구치구미(山口組), 스미요시카이(住吉会), 이나가와카이(稲川会) 소속의 하위조직이 되었고, 나머지 절반 역시 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2020년 기준 경찰의 단속과 폭대법으로 인한 자금확보가 어려워서 야쿠자들의 숫자는 크게 줄고 있다. 야마구치구미 약 8,900명, 스미요시카이 약 4,500명, 이나가와카이 약 3,400명으로 3대 조직이라 불리는 거대 조직의 구성원 숫자가 줄고 다른 폭력단들도 마찬가지다.

야마구치에서 분리된 고베야마구치구미도 분리 당시 6,600명에서 절반 정도인 3,000명 수준으로 줄었다. 현재는 야마구치구미, 고베야마구치구미, 스미요시카이, 이나가와카이라는 4개 조직의 구도가 된 상태이다.

하지만 4대 야마구치구미의 분열 당시 규모가 현재의 고베야마구치구미보다도 컸던 이치와카이가 5년 정도의 항쟁 후 다시 야마구치구미에 재흡수되었던 사례도 있었기에 앞으로 어떠한 추세로 진행될지 섣불리 판단하기는 힘들다.

2017년 2월에는 고베야마구치구미에서 '닌교(任侠·임협·남자답고 용감함) 야마구치'가 떨어져 나와 야마구치 구미는 3등분 되었다. 日 최대 야쿠자 ‘넘버2’ 출소…‘유혈 참극’ 시작되나?

2020년 1월 닌교야마구치구미가 갑자기 조직명을 키즈나카이라 바꾸고 야마구치란 이름을 버렸다. 현지에선 야마구치 삼국지에서 빠져서 독자생존을 모색하고 있다는 평이다. 키즈나카이도 조직원이 감소세로 분열당시 770명에서 현재는 610명 규모이다.

2020년 4월 2일 일본 경찰청의 발표에 따르면 2020년 초 현재 일본 전국의 폭력단원 숫자는 28,200명으로 폭력단 세력의 피크인 1963년 184,100명에 비하면 그 세가 크게 줄어들었다.

2. 명칭

야쿠자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많은 설이 있으며, 그 중에서는 하나후다로 하는 도박오이초카부(おいちょかぶ)의 필패수인 893 조합에서 나왔다는 설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오이초카부는 패 3장을 뽑아 숫자 합의 끝자리를 가장 높게 만드는 도박으로, 카부 도박에는 "7 이상을 뽑으면 다음 장을 뽑지 않아도 된다"는 기본 규칙이 있다.[3] 만일 첫 장을 뽑아 8, 둘째 장을 뽑아 9가 나오면 끝자리가 7이 되는 좋은 조합이다. 여기서 일반적인 사람들은 손을 멈추겠지만, 비상식적으로 모 아니면 도를 고집하는 사람이면 한 장을 더 뽑아 좋아야 본전, 나쁘면 3을 뽑아 망통(0)을 만들고 자멸할 것이다.

이처럼 쓸모 없는 조합인 8(や), 9(く), 3(ざ)를 단어로 만들고 '쓸모 없는 존재, 인생을 무모한 도박처럼 살아가는 인간'[4]이라는 의미로 사용해왔으며, 나중에는 후자의 의미가 '사회적으로 실패한 자들이 반사회적인 의식을 갖고 행동하는 집단'으로 변하여 바쿠토를 일컫는 단어가 되었다는 설이다.[5]

일본 야쿠자 조직은 그 기원에 따라 크게 '바쿠토(博徒)'와 '테키야(的屋)'로 나뉘는데, 바쿠토는 도박장을 운영하거나 뒤를 봐주는 무리에서 출발한 조직이고, 테키야는 노점상을 운영하거나 제비뽑기나 화살이나 공기총으로 쏘아서 목표물을 넘어뜨리면 경품을 타가는 류의 사행성(射倖性) 게임을 운영하던 조직을 말하는 것이다. 바쿠토라는 말 자체가 '도박하는 무리'라는 뜻이고, 테키야라는 말 자체가 사행성 게임을 하는 하는 과녁(的)이 있는 점포라는 뜻이다. 그래서 야쿠자라는 말의 어원이 도박장에서 뒤에 앉아서 관리하는 직책 또는 그들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즉, 어깨들이 도박장을 직접 운영하거나, 뒤를 봐주려면 도박판 뒤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그 관리자(役, やく)[6]의 자리(座, ざ)라서 야쿠자(役座, やくざ)인 것. 일본의 지역 마츠리(축제)에 수없이 등장하는 야시장 노점상이 거의 테키야 야쿠자 계열이 관리하는 거라 보면 된다. 심지어는 타코야키를 파는 야쿠자들이 있을 정도다. 직접 장사를 하거나 자릿세를 받는 식이다.[7] 2022년에 사망한 한국인 조규화가 이끌던 고쿠도카이(極道会)가 테키야 계열 최대의 조직이었으며, 지정 폭력단 중 유일한 테키야 계열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바쿠토.

이 어원과 바쿠토 테키야의 어원과 구분에 대해서는 일본 방송에서까지 정식으로 다루고 언급한 내용이다. 일본 언론이 다루는 내용에 의하면 # 博打場の取締役[8]が座る場所, 즉 도박장의 책임자 혹은 관리자(役)가 앉는(座) 장소가 그 기원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893 설은 거짓이라고 하고 있다.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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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구성

야쿠자들은 자신들의 패거리를 XX구미(組) 또는 XX카이(会)라고 부른다. 일본에서 구미,[9] 카이는 보통 곤고구미(金鋼組)처럼 일반적인 건설 회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명칭인데, 야쿠자가 이런 명칭을 쓰게 된 이유는 1884년에 '오카리코미(大刈込み)'라는 도박단속법이 발표되면서 아쿠자들이 도박사업을 숨기기 위해 건설회사 이름으로 쓰이던 구미를 자신들 패거리의 이름으로 썼고, 이것이 야쿠자 구미의 시초가 된다. 한때는 구미나 카이 외에도 XX흥업(興業) 또는 XX흥산(興産)이라는 간판을 내거는 조직도 제법 있었는데, 이쪽은 興이라는 글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주로 예능계와 유착한 조직이다.[10] 다만, 현재는 예능계 자체가 적극적으로 폭력단과의 근절을 추진한 탓에 흥업, 흥산 계열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야쿠자와 그 산하 단체는 조직명을 대놓고 밝히고 영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스스로 명칭을 붙이는 순간 폭력단체 구성이라는 폭처법에 걸려서 최대 사형까지 언도받을 수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야쿠자 조직 결성 또한 결사의 자유로 인정하기 때문이다.[11] 그래서 1명이라도 범죄 혐의가 적발되면 줄줄이 끌려들어가는 한국 조폭들과 달리 야쿠자는 매체에서 흔히 등장하는 그런 일 시킨 적 없다는 뻔한 꼬리 자르기가 가능한 것이다.

역대 두목들이 많아질수록 '몇대~ (~代目)'라고 앞에 기재하는데(예: 로쿠다이메 야마구치구미 六代目山口組(6대째 산구조)), 이는 조직의 역사와 관록을 내세워 무게감을 주기 위한 목적이 크다. 이는 폭력단과 구조가 유사한 폭주족도 비슷하지만, 신세대라고 할 수 있는 한구레는 점조직 형태를 띠기 때문에 보기 힘든 편이다.

4.1. 위계

야쿠자 구미의 위계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다.

다음은 일반적인 부류가 아닌 특별한 부류인 경우로 다음과 같다.

부두목부터 조직원까지 모두 다 같은 두목의 자식들로 같은 항렬이지만 먼저 가입한 순서에 따라 연공서열은 존재한다. 요즘은 기업형으로 조직을 개편하면서 일반기업의 직급을 차용하고 있다. 일본 최대의 조직 야마구치구미도 1차 단체는 일반 기업의 직급을 차용하고 있다. 총두목은 회장이고 간부들은 이사나 간사, 혼부쵸(本部長)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조직의 고문 역할을 하는 직책도 참여(산요参与)[21] → 고문 → 최고 고문 이런식으로 나뉘어져 있다. 대행이라는 직급도 있는데 해당 직급의 인물이 사망 또는 수감등의 이유로 부재시 그 자리를 대신하는 직급이다.

4.2. 형태

야쿠자 조직의 구성은 철저한 가부장제 위계질서에 기반하고 있다. 야쿠자 입단식인 사카즈키고토는 이러한 관계를 맺는 결의 의식으로, 이 의식에서 사용한 술잔은 반드시 잘 간수해야 하며 어떠한 형태로든 손상이 가는 순간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를 잃어버리면 파문당해도 할 말이 없다고 한다. 단 사카즈키고토를 해도 나중에 사이가 틀어지거나 하는 경우 술잔을 반납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서로간의 관계를 끊은걸로 본다.[22] 부모와 자식의 연을 맺는 오야꼬 사카즈키 외에 의형제의 사카즈키(교다이 사카즈키)를 맺으면 서로 나이나 세력을 따져 형, 동생을 정하고 서로 위치가 비슷한 경우 그냥 교다이라 부른다.

우리가 잘 아는 야쿠자 두목의 별칭 오야붕(親分)은 부모(親)에 해당한다(分)는 의미로, 수하 조직원들인 꼬붕(子分)들의 아버지라는 의미다. 꼬붕들 사이에서도 가입한 순서에 따라서 서열이 존재하는데 먼저 가입한 조직원을 아니키(アニキ/兄貴), 또는 더 줄여서 아니(兄ィ)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대로 선배 조직원은 후배 조직원을 샤테이(舎弟)라고 부른다. 동기들 간에는 서로를 쿄다이(兄弟)라 부른다.[23] 그 외에는 아무리 야쿠자와 친해도 단순 유착관계일 뿐이다.

그리고 야쿠자 조직끼리 합병되거나 동맹 혹은 쿄다이 사카즈키고토를 맺어 가까운 사이가 되면 소속이 달라도 서로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춰야 하는 일이 생긴다. 그래서 두목끼리는 일단 '형제'이지만 조직의 규모와 위상, 혹은 두목 본인의 연령이나 관록에 따라 실질적으론 격차가 생길 수 있다.[24] 하부 조직원들 역시 관계에 따라 서로를 백부 내지는 숙부 취급하여 오지키(オジキ/叔父貴 또는 伯父貴)라 불러야 한다.[25]

반대로 조직원들이 자체적으로 세력을 키워 자신들만의 조직을 설립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대부분은 오야붕이 설립한 조직의 산하 조직으로 들어간다. 이럴 경우 어느어느 카이 산하 누구누구 구미 하는 식으로 간판을 걸기 때문에 바로 알 수 있다. 조직원들이 각각 산하 조직을 만들어서 자신의 꼬붕을 갖게 되면, 자신의 샤테이나 아니키는 자신의 꼬붕에게 오지키로 불린다.

이러한 가족 관계를 모방한 내부 서열은 야쿠자 조직 내부 뿐만 아니라 야쿠자 조직 간에도 이루어지기 때문에 거대 야쿠자 조직은 그 조직 규모가 큰 것도 있지만 하부 조직이 암세포처럼 뿌리 깊게 퍼져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만화 엠블럼 TAKE2의 예를 들자면 광역지정 폭력단 칸토 핫슈미 타가미 연합회(1차 조직) 內 타가미 우메자와 일가(2차 조직) 內 제2대 카이에다파(3차 조직) 內 토시오파(4차 조직) 부두목 에바라 싱고와 같은 말단 조직의 간부라는 긴 직함을 가지게 된다. 실제 일본에서 이 정도의 대규모 조직은 3개 정도밖에 안 된다. 상위 조직의 두목이 될 경우 보통 자신의 조직은 부두목에게 넘겨주고 승격하기 때문에 하부조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지는 않는다. 이런 피라미드 형태의 조직이기 때문에 맨윗층의 1차 단체 조직의 간부들은 모두 2차 단체의 두목급들이다. 그래서 1차 단체가 수십명 수준이라도 그 밑에 수백명의 조직원이 있을 수 있다. 1차 조직 두목의 직계 간부를 직참(直参)이라 부르는데 원래 에도시대 쇼군의 직계 가신들을 의미했다.

이런 상하관계는 그 자체로 조직 내, 조직 간 권력 관계를 체계화 시키는 목적도 있지만 동시에 야쿠자 조직들 특유의 고유한 자금 유통 체제와도 관련이 있다. 간단히 말해 거대 조직 내 하위 조직들은 각자 고유한 사업 기반을 가지고 수익을 올리지만 상위 조직의 보호[26]를 받는 만큼 그들에게 상납금을 바쳐야 하고, 뜯어간 은 상위 조직의 주요한 자금 수입원이 된다. 다단계 판매와 매우 유사한 행태다.

여기서 종종 특이하게 나타나는 게 3차나 4차 조직이 1차의 직계로 독립되는 케이스이다. 야쿠자 조직들은 기본적으로 아래 방향으로 독립해나가지만 종종 독립해나간 한 조직이 유별나게 많은 수익을 올릴 경우 1차 조직은 2차, 3차 조직 선을 거치면서 수익이 줄어드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높은 수익을 보이는 하위 조직을 독립 시켜서 자신들의 직계로 만들어 버린다. 이러면 당연히 직계가 된 조직은 조직 내 권력을 더 많이 잡을 수 있고 1차 조직에만 돈을 바치면 되니 이득이고, 1차 조직은 더 직접적으로 돈을 많이 받을 수 있으니 이득이다. 하지만 2차, 3차 조직의 입장에서는 주요한 수입원을 빼앗긴 격이니 열이 받을 수밖에 없다 보니, 거대 야쿠자 조직 내의 내부 항쟁은 대부분 이러한 독립 직계 및 상납금 문제로부터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다단계식 수익 구조 체계는 대체적으로 초기 야쿠자 조직들에서도 나타나는 모습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체계화 된 것은 야마구치구미의 다오카 카즈오가 전국적으로 조직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인 모습이 되었으며, 사실상 일본 내 야쿠자 조직들은 항쟁 사건의 조율이 용이하고, 거대 조직의 안정적인 수입원이 확보된다는 특성 때문에 이러한 조직 구조를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폭대법 이후 수익 구조의 악화와 젊은 층 유입의 감소로 인해 조직 자체의 존속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아지니 시간이 지날수록 느슨해져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오늘날에 와서는 대규모 야쿠자 조직들의 경우 수뇌부는 지금까지 벌어 놓은 돈을 활용해 각종 투자를 하는 등 돈놀이를 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실질적인 물리적 폭력이나 지역 관리는 외국계 폭력 조직이나 젊은이들로 구성된 조직에 돈을 주고 외주를 맡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구성원과 준구성원이라는 기본의 야쿠자 조직 체계가 폭력단대처법에 의해 집중 규제되면서 이를 우회하기 위해 아예 야쿠자 조직과는 별개의 조직에 이런 범죄행위를 외주를 준다. 그 결과 원래 이런 역할을 맡았던 최하위의 소규모 야쿠자 조직들은 수입원을 상실하여 씨가 말라버리고 있다. 이것은 RICO 법령으로 철퇴를 맞고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미국의 마피아도 같은 실정이다.

4.3. 수입

주 수입원은 초기엔 소상공인에 대한 보호비 갈취, 도박, 사채 등이었다. 전후 혼란기의 도쿄 등 대도시의 조직들은 흥행사와 연계하여 싸구려 흥행사업을 벌이고, 해안지역 도시에 위치한 조직은 항만하역 등과 관련된 이권개입을 주 수입원으로 삼았다.

지금은 마약이 주 수입원인데. 예전엔 마약 제조나 수입 그리고 유통 모두 담당해왔으나 폭대법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아져, 현재에는 한구레같은 폭대법에서 빗겨나 있는 외부 조직에게 유통 아웃소싱을 맡기고 있다.

연예계의 경우는 에도 시대의 바쿠토 시절에도 가부키나 순례공연을 후원했을 정도로, 일본 폭력조직과 연예계와의 결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전쟁 전 서커스와 비슷하게 예능회사가 연예인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공연을 주최했던 옛날에는 지역의 야쿠자 조직들이 지역주민들에게 표를 강매한 후 예능회사와 수익의 일부를 나누거나, 아예 공연 자체를 방해한 후 수익의 일부를 강탈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후 TV와 라디오가 대중화되면서부터는 주로 특정 회사와 거래를 맺고 경쟁기업들을 야쿠자 조직이 대신 짓밟거나 방해하는 행위가 많아졌는데, 실제로 전후 1960~70년대에 크게 성장한 일본 대형 예능회사들은 이러한 폭력 조직의 개입에 의한 알 수 없는 이유에서의 경쟁기업의 몰락으로 성공한 케이스가 상당히 많았다. 추가적으로 폭력 조직들이 회사창립이나 운영과정에 자금을 투자해서 대규모 확장을 도운것은 덤이다. 폭대법 이후에는 대놓고 개입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체적으로는 기업 자체에 폭력 조직이 더러운 자금을 투입해서 기업의 확장을 돕는 한편 돈세탁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예능계의 이런 폭력단과의 관계 때문에 야쿠자 간의 내부투쟁[27]으로 인해 연예계 관계자가 부상당하는 일도 발생한다. 이 외에도 유명 엔카 가수 키타지마 사부로이나가와카이 신년 모임에 참석했다가 자숙하기도 했다.

스포츠에도 많이 개입을 해서 복싱이나 격투기 대회에도 야쿠자가 연루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본의 전통 스포츠인 스모는 야쿠자 업계와의 연루가 종종 발각되고 하였다. 물론 프로레슬링 공연도 야쿠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일본 대부분의 식당에서 사용하는 물수건 납품으로 수입을 얻는 경우도 있다. 야쿠자에게 납품받는 물수건은 '카시오시보리'라고 하는데, 일반 물수건과 전혀 다를 게 없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어떠한 형태로든 압박을 가해서 사실상 강매한다. 그렇다보니 야쿠자가 많은 카부키쵸 등의 식당이나 주점 등에서 주로 사용한다.[28] 물론 경찰에 신고하면 해결되지만 보복이 무서워서 그냥 사용하는 곳이 많다. 어차피 식당은 물수건이 필수이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비교적 음지에 속하는 AV 사업에도 큰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개중에서도 몰카, 투고류와 같은 일반인 대상의 리벤지 포르노노모를 주로 다룬다. 다만 아동 포르노 등의 미성년자를 이용한 경우는 일본에서의 처벌 수위 역시 높은데다가 공급책도 마땅치 않고 거기에 그에 따른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감수해야 하므로, 오사카의 아즈마구미처럼 아예 막 나가는 조직이 아니라면 손대지 않는다고 한다. 아동 포르노의 경우 필연적으로 아동 학대를 수반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건설업도 야쿠자의 전통적인 수입원이다. 공기업을 통한 개발이 이루어지는 한국과 다르게 일본은 전통적으로 도시확장을 민간 건설과 철도 회사들이 담당해왔는데. 한국은 공공개발이기 때문에 토지수용제도로 공시지가에서 얼마 이상의 땅값을 보상만 해주면 되지만 일본은 수용제도 없이 알박기가 무한정으로 이루어지는 판이라, 토지 강제수용 같은 더러운 일을 맡아줄 역할을 자연스럽게 차지해 왔다. 거기에 건설 인력수급 창구 역할도 하는데 사채업자들로부터 엄청난 빚을 떠안고 있는 채무자들을 소개받아 그들을 협박해서 외딴 곳의 건설현장에 파견하고,[29] 빚을 갚는다는 명목과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임금의 대부분을 갈취해 노예처럼 이용하는 것이다.[30] 실제로 동일본 대지진 복구 사업과 관련하여 지역 복구 업체와 작당해 일부 야쿠자 조직들이 노숙자와 채무자들을 소개한 정황이 발각되기도 했다.

폭력단 대책법 수립 이후 대부분의 지정폭력단은 직접적인 불법사업 운영이 힘들어졌고 결국 기업사제라는 방식으로 조직원 일부를 형식적으로 파문, 지정폭력단구성원에서 벗어나게 한 후 이들을 통해 기업을 운영시키거나 불법적인 사업을 운영하여 폭력단 대책법을 회피하곤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도 폭력단 대책법의 개정으로 막히자 최근에는 아예 공생자라고 하여 폭력단과 완전히 관계가 없는 증권전문가나 금융브로커들과 협력해서 공생사업을 벌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러한 공생자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폭력단이 주로 불법적인 사업을 통해 모은 막대한 자금을 이들 공생자들이 각종 페이퍼 컴퍼니 등을 이용해 주식시장에 투자를 한다거나, 합법적인 회사운영에 끼어들어 돈을 긁어모으는 방식이다. 공생자들은 그 자체로 폭력단과는 본래 관계없는 일반인이었다보니 폭대법으로 바로 잡아내기가 어렵고, 대부분 사업, 금융의 전문가들이라 정부규제를 회피하는 법을 잘 알기 때문에 야쿠자 조직과의 공생관계가 무난하게 성립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공생관계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제쿠라는 이자카야 체인이 연관된 사건이다. 제쿠는 몇년간 엄청난 속도로 성장한 후 거액의 자금이 외부로 유출되어 회사가 무너졌는데, 오오바 히코쿠라는 금융 브로커가 야쿠자로부터 24억엔에 달하는 자금을 받아 사업확장자금이 필요했던 제쿠에 투자했고, 그에 해당하는 6만주를 추가발행해 금융 브로커에게 제공했다. 이 금융 브로커는 이렇게 얻어낸 주식을 이용해 경영에 직접 개입, 실질적인 기업오너가 되었고, 자금투자에 참여한 야쿠자 조직 두목들에게 불법적으로 자금을 유출시킨 것이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약 30억엔 이상이 이렇게 유출되었다고 한다. 사실상 돈세탁을 겸한 거대한 사기횡령이다.

실제로 이러한 합법과 불법의 경계 사이에서 막대한 불법자금을 이용한 투자사업방식은 폭력단대책법 이후 일본 거대 야쿠자 조직들의 주요 수입원으로 자리잡았으며, 이들은 라이브도어 사건이나, 일본의 IT버블 등에서도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고 알려져있다. 특히 일본의 IT버블 당시 야쿠자 조직들이 벤처기업 붐을 이용해 엄청난 돈을 긁어모아 성장한 경우가 많았다는 건 널리 알려져있다. 다만 이러한 불법투자외의 갈취같은 이전까지 많이 이루어졌던 불법행위들은 대부분 폭대법과 경찰의 단속에 의해 봉쇄되었기 때문에 소규모 조직들은 자금원이 거의 말라서 망해가고 있다. 사실상 막대한 자금을 투자로 굴릴 수 있는 거대 야쿠자 조직들만 살아남게 된 것이다.

조직의 합법, 불법적인 일로 번 돈은 일정부분을 떼어 윗조직이나 두목에게 상납한다. 이러한 돈은 최고위에 위치한 1차단체 조직들의 주수입원이다. 야쿠자 조직들은 피라미드 형태의 위계형태를 가지고, 각 조직들은 조직내 구성원이 일정이상 성장하면 자신의 하위조직으로 독립시켜서 사업을 맡게해 조직을 키워나가는데, 이렇게 독립한 하위단체들은 자신을 독립시켜준 상위단체에게 상납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일정주기마다 바치게된다. 결과적으로 최상층에 위치한 1차단체들은 하부 2차 조직으로부터, 2차 조직은 3차 조직으로부터 다단계 형태의 막대한 자금을 상납받게되고, 이 상납금을 바탕으로 위에서 나온 대규모 불법투자로 엄청난 양의 돈을 긁어모으고있다.[31]

4.4. 마약과 범죄행위

마약의 경우는 야쿠자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다오카 카즈오가 생전에 거듭 마약만은 손대지 말 것을 강조한 관계로, 표면상으로는 마약에 손대지 않는 편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다오카 카즈오가 말년에 정치에 입문하기 위해 야쿠자 조직 자체를 우익 정치단체로 포장시킬 일에 주력하고 있을 당시 언론에 표방하여 이미지를 관리를 위한 접대용 멘트에 불과했다. 어느 폭력 조직이고 정계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대외적인 이미지를 엄청나게 관리한다. 과거 1공화국 시절 조폭들도 그랬고, 콜롬비아 카르텔들도 그러했다. 사실 다오카 카즈오의 이 발언은 이나가와카이 항목에도 나와있는 내용이지만 일종의 관동 진출의 교두보 마련을 위한 꼼수성 발언에 가까웠다. 당시 다오카는 정치적 동맹관계인 다나카 세이겐의 조언을 받아들여 마약유통근절동맹이라는 형식상의 기구를 설립, 관동지역에 인맥을 확보하고자 하였는데 마약을 손대지 말라고 이야기한 건 사실 이 시기에 주로 날린 멘트다.

이후 21세기에도 표면상으로는 어느 조직이든 "우린 마약만은 손대지 않는다"라는 멘트를 호기롭게 날리지만 하부조직에서는 알아서 다 판다. 다만 하부조직이 마약을 팔다 발각당하면 상부조직에서는 "우린 모르는 일"이라며 하부조직에 파문장을 날리고 적당한 희생양을 골라 경찰에 자수시키며 도마뱀 꼬리 자르듯 빠진다. 혹은 언론매체나 개인이 야쿠자 조직을 취재할 때 "우린 마약은 안 만진다"는 대답을 곡해하기도 하는데, 마약은 우리 조직 사업이 아니라서 안 만진다는 의미를 협객이라서 안 만지다는 식으로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1969년 하타노 아키라(秦野章) 경시총감[32]"야쿠자가 마약을 안 만진다는 말은, 어부생선을 안 만진다는 말과 같다"며 다오카 카즈오의 발언에 일침을 놓기도 했다.

1970~80년대엔 한국에서 한국 조폭들 및 한국 기술자들과 손을 잡고 히로뽕을 제조한 뒤 일본으로 밀수해서 판매하는 광범위한 마약 판매망이 유명했다. 이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가 마약왕이다.

실제로 조직의 우두머리가 수하들에게 딱히 범죄행위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고, 윗대가리들에게 돈을 많이 갖다 바칠수록 조직 내에서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으며, 조직에 몸담은 이상 가장 효과적이고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범죄인 것일 뿐. 덕분에 돈이 벌리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는지라 온갖 사업영역에 발을 들이고 있다. 개중에는 비교적 합법적으로 돈을 굴리는 야쿠자들도 있는 편. 한마디로 조직의 상위단체들은 돈을 가져오라는 지시만 내릴 뿐 표면상으로 하위단체들의 사업내역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말단을 잡아내더라도 윗대가리까지 잡아넣기는 힘든 구조로 되어 있다. 상술됐다시피 야쿠자는 피라미드 형식인데 약을 파는 단체는 4차, 5차, 6차 단체 같은 진짜 말단 조직 중 말단이다.

왜냐하면 문제가 생기면 조직원을 파문해버리는 식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보통 "이놈은 우리 조직에서 쫓아낸 놈이니 이놈이 뭔 짓을 하든 우리 조직과는 상관 없습니다."는 취지의 통지문을 각 조직에 돌린다. 특히 조직원이 체포당해 범죄가 드러날 경우 경찰과 검찰한테 이놈은 우리 조직에서 쫓겨난 놈이라 우리랑 상관 없다고 하기에 두목이 처벌받을 일을 피한다. 게다가 두목이 직접 명령을 내리는 게 아니라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말을 하고 부하가 그걸 알아서 해석해서 실행하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두목을 엮어 넣기가 매우 어렵다.

옛날에 야쿠자의 출세코스는 큰 돈을 만들어 상부에 바치거나 젊은 시절 조직을 위해 살인이나 큰 범죄를 저지르고[33] 15년~20년정도 복역한 뒤 풀려나와 거액의 보상금과 함께 간부로 출세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렇게 복역하는 조직원은 당연히 옥바라지는 물론이고 가족들도 세심하게 지원을 받았다. 예컨데 야마구치구미 고도카이 같은 경우 가족에 대한 병원비 지원은 물론이고 자식이나 손자가 입학하면 남자는 자전거를 여자는 오르간을 선물로 준다고 한다. 이런식으로 고도카이의 지원이 철저한 것은 '우리가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감옥에 가있는 조직원들 덕분임을 항상 잊지 말아라.'라는 이념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야쿠자들의 처벌이 엄격해진 현재는 한명을 죽여도 무기징역을 받는 경우가 많아져서 쉽게 젊은이들을 쓰기 어렵기 때문에[34] 요즘은 이미 은퇴 직전의 노인 야쿠자들이나 생활이 어려운 야쿠자들이 교도소에 가면 어느정도 치료도 되고 생활도 되기도 하니, 조직에서 남은 가족들을 부양 하는 조건으로 총대를 메고 교도소에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출처

복역 중인 야쿠자를 두목이나 주요 간부가 입양 하는 경우도 있는데 구치소에서 재판 중인 야쿠자 같은 경우 증거인멸 우려나 외부와 말을 맞출 수 있기 때문에 면회는 가족이나 변호사만 가능하다. 따라서 편의상 이렇게 하는 것이다. 아무나 이렇게 하는 건 아니고 특히 공훈이 있거나 두목이 신임하는 경우에 입양을 해서 오야코 사카즈키 정도가 아니라 진짜 가족관계가 되는 경우도 있다.

4.5. 정치권과의 유착

야쿠자 조직 가운데 아예 우익 정치결사를 표방하고 있는 조직들도 많으며 뿌리부터가 우익단체에서 시작한 조직들도 많다. 이를 임협계 우익단체라 하는데 많은 가선우익이나 전통적인 보수우익 단체들이 야쿠자와 연관되어있다. 모든 야쿠자는 우익인데 애초에 사카즈키고토부터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에게 맹세하는 의식이고 천황제에 반대하는 야쿠자는 없다. 이런 현상은 이미 야쿠자들과 정계가 연계되기 시작한 1800년대 말부터 있었지만 특히 아시아주의를 제창한 도야마 미츠루(頭山満)의 현양사(겐요샤), 흑룡회 등을 보듯이 그 뿌리는 유서깊다.[35]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하고 미군정을 거치면서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이 활성화되는데, 특히 1960~70년대 안보투쟁 시대가 되면 좌파계열 노조와 학생운동권이 일본 사회를 뒤흔들 정도의 막강한 세력으로 성장한다.[36] 이러자 일본의 보수우익 세력들은 이들을 분쇄하기 위해 야쿠자들을 적극적으로 정치깡패로 활용했다.[37]

오늘날 일본 최대의 야쿠자인 야마구치구미 또한 고베항의 항만노조를 견제하려던 자민당의 실력자 고노 이치로의 후원하에 급성장하였으며 고다마 요시오, 다나카 세이겐 같은 인물들이 정치권과 야쿠자를 연결하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한국의 군사정권시기 동아시아 반공 동맹을 맺으려는 미국의 후원과 한일 우익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재일교포 야쿠자들이 우익활동을 하면서 조총련을 감시, 견제하고 한국 정부에서 훈장을 받은 사례도 있다. 양원석이나 정건영의 사례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렇게 정치권, 특히 자민당과 유착한 야쿠자들은 그 대가로 많은 이권과 특혜를 받았고 범죄를 저질러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등 야쿠자 세력이 일본으로 뻗어나가는데 큰 일조를 했다. 하지만 이들이 저지르는 행동이 너무 과격해지고 이토 잇쵸 나가사키시 시장 총격사건을 보듯이 범죄로 문제가 많아지자 일본 정치권은 야쿠자를 규제하려고 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 결과물이 폭력단 대책법(폭대법)이다.

4.6. 출신

재일교포부라쿠민은 야쿠자의 길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 공안조사청 조사 제2부 부장을 역임한 스가누마 미츠히로는, 6대 야마구치구미의 2인자인 타카야마 키요시로부터 야쿠자에서의 재일교포와 부라쿠민의 비중이 전체의 9할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단 본래부터 재일교포 같은 비일본계 비중이 큰 편인 관서계 조직인 야마구치구미의 2인자가 정보원인 만큼 어느 정도 걸러들을 필요는 있다. 애초에 야쿠자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수치적인 정확성을 바라는 것도 무리다. 그외 일본인들에게는 기타큐슈가 야쿠자의 활동무대로 이 지방출신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4.6.1. 재일교포 야쿠자

시사저널에서 1994년 취재한 교포 야쿠자 이야기
월간조선에서 교쿠도카이 조규화를 인터뷰한 내용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야쿠자 수백명 기사#

재일교포들은 기본적으로 주류 사회에서 소외되었기에 주류 일본인보다 범죄에 빠질 위험이 매우 높았다.[38] 재일교포 야쿠자 조직은 주로 야쿠자 조직 내에서도 핵심적인 행동대장의 역할을 주로 맡아왔기에 조직 내 영향력도 크지만, 동시에 여러가지 면에서 차별을 받는 경우가 과거에는 많았다. 전후 대부분의 재일교포 폭력조직들은 구렌타이의 형태로 활동하였는데, 미군정이 물러난 이후부터는 이들이 구렌타이 조직채로 기존의 야쿠자 조직에 편입되어 조직구성원이 되었다. 이들은 기존의 야쿠자 조직에 흡수되면서 초창기 야쿠자 조직간 항쟁의 최전선에서 소모품처럼 쓰였는데, 실제로 가장 야쿠자간 항쟁이 치열했던 시기 '무투파'로 유명했던 조직들에는 재일교포 야쿠자 조직들이 많았다. 이후 고도성장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재일교포 야쿠자 조직들은 폭력이 아닌 막대한 자금원을 확보하게 되는데, 바로 한국과의 커넥션이 그것이다. 현재에 와선 아예 귀화하는 부류도 많고 아직도 그 비중은 확실히 무시 못할 정도.

야마구치구미 사상 최강의 전투군단이라 불리던 구성원 대다수가 재일 교포인 야나가와구미는 전성기에 2차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정상작전 당시 10대 광역폭력단에 유일하게 포함되었고 해산 당시 산하73단체 사카즈키를 한 조직원만 1,700명 가량이었다. 여기에 준구성원을 포함하면 최소 2,800명 이상으로 추정되었다. 해산 이후 야마구치구미 본부로부터 절연당한 야나가와구미 초대 구미쵸인 야나가와 지로(양원석)과 야나가와구미 2대 구미쵸인 다니가와 고타로(강동화)는 야마구치구미 본가의 비공식 고문 역 및 픽서로 활동했으며 야나가와구미 4천왕이라 불리던 노자와 기타로, 이시다 쇼로쿠(박태춘), 가네다 산슌(김삼준), 후지와라 테이타로가 이끌던 각 조직은 3대 야마구치구미 2차단체로 승격하였고 나중에 초대 다쿠미구미 부조장이 되는 구라모토 히로후미, 구로사와구미 부조장이었고 고쿠세이카이 초대 회장이 되는 마에다 가즈오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재일교포 조직원들은 야마구치구미 계열의 타 조직으로 흡수되어 핵심 전투력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이렇게 재일교포 야쿠자들이 일본 최대 야쿠자인 야마구치구미를 비롯해 각 지역 조직에서 큰 세력을 이룰 수 있던 여러 요인 중 가장 큰 요인은, 전후부터 1990년대까지 지속 되던 한일 간의 마약 커넥션과 한국 여성을 이용한 매춘에서 찾을 수 있다.

전후 미군정 통치기 미군정의 묵인하에 각 도시의 암시장을 삼국인들이 장악하던 시기 구렌타이계열 한국계 야쿠자들은 당시에도 큰 돈이 되던 히로뽕[39]을 한국에서 구하기 시작한다. 그 당시 한국에는 전쟁 기간 동안 히로뽕 제조에 징용되었던 조선인들이 제조기술자가 되어 대거 귀국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싼값에 순도가 높은 히로뽕의 밀조가 쉽게 이뤄질 수 있었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워 조업을 가장한 한국 어선 등을 이용해 손쉽게 입수할 수도 있었다.

또한 재일교포 야쿠자들은 한국 여성을 이용한 매춘업으로 많은 돈을 벌어 다른 일본인 야쿠자들보다 자본금이 많았다. 당시 일본 버블경제때 "지나가던 개도 1만엔찰을 물고 다닌다" 할 정도로 경제성장이 있었고 일본인 매춘부들의 숫자가 적어지면서 한국 여성을 꾀어서 매춘을 시켜 돈을 벌게한 재일교포 야쿠자들이 많았다. 한국 여성들에게 여행도 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다고 꼬셔 여권을 뺏고 강제로 마약까지 투약시켜 일을 시키며 불법이라는 것에 의해 일본인들에게 폭행까지 당하고 말을 잘 안 들을시에는 일부러 경찰에 단속되게 하여 가지고 있는 소지금도 모두 강탈되게 하고 강제 출국시킨다. 특히 야쿠자를 멀리하자는 사회 운동이 활발하여 키타 큐슈에 유명한 쿠도카이(工藤会)의 회장이 사형선고를 받았듯이 야쿠자가 연계되어도 불법 성매매에 철퇴를 내리고 있다.

즉 재일교포 야쿠자는 한국과 연관된 사업을 해서 성공한 케이스이며 어떻게 보면 같은 한국인을 이용하여 일본에서 돈을 번 매국노적인 행동을 계속하였다. 따라서 재일교포 야쿠자가 많아서 한국이 실질적으로 이득을 본 것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다.[40]

마약 유통으로 목돈을 만지기 시작한 재일교포 야쿠자들은, 이후 깡패들의 전통적인 돈벌이인 마약[41], 도박[42], 매춘, 흥행[43], 정치[44] 산업 대부분을 하나둘 차지해 가며 엄청난 자금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이는 각 조직의 결속 강화 확대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야쿠자 세계에서 높아져가는 위상을 이용해 한일협정 시에는 정건영토우세이카이를 필두로 한일 양국의 정보원 및 브로커로써 큰 활약을 해가며 부관페리 사업권 등 한일간 진행되던 사업 이권들을 얻어내며 야쿠자 세계에서 더욱더 강력한 지위를 얻는 계기가 되었고 역대 한국 군사정권과는 김대중 납치 사건 개입, 조총련에 대한 탄압 등 중앙정보부, 보안사와 협력하면서 우익 반공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신뢰를 쌓아 대한민국 훈장을 받는 재일 야쿠자들도 나왔다. 1960~70년대 일본 내 스포츠행사에 참가한 한국 국가대표팀의 체재 비용 지원,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1988 서울 올림픽 등의 대형 국가행사에 자금원조 및 각종 장학재단에 기부 등으로 훈장의 명분은 만들었다.

또 한국의 조직폭력단과 결의형제를 맺고 한국 조직들과 같이 사업을 하면서 우호적인 연대를 다졌다. 한국의 사채 시장 진출이나 호텔 관광, 스포츠 공연 사업, 카지노 관련 사업에 많은 투자를 했고 야쿠자의 사업 노하우를 한국 조폭에게 전수하는 등 한-일 양국 폭력단의 우호관계는 뿌리 깊다. 자금력이 권력이 되는 것은 야쿠자 세계에도 변함이 없어 자금력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재일교포 야쿠자들이 각 조직의 최상층부를 차지하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 일례로 오사카에서 대형 캬바레를 운영하던 한록춘은 다오카 가즈오에게 거액을 상납하고 그 댓가로 샤테이 사카즈키를 받아 후지카이를 결성해 야쿠자 생활을 시작, 야마구치구미가 오사카에 확실히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된 재일교포 구렌타이계 야쿠자인 메이유카이와의 항쟁 후 해산한 메이유카이 조직을 거의 그대로 흡수하며 오사카에서 야나가와구미와 더불어 큰 세력을 지니게 되었다. 메이유카이 사건 당시 24명이 구속되는 큰 희생을 해가며 활약한 야나가와구미는 당시의 활약을 인정받아 야마구치구미의 2차단체로 승격하며 대규모 조직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다진다. 현재 후지카이에서 개칭된 잇신카이의 초대 오야붕이었던 한록춘은 꾸준히 야마구치구미의 고문으로 활동했으며 2014년 공개된 재산만 한화 1조 5천억 원 정도로 추정되는 오사카 중심부 도톤보리 등지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거품경제 형성 시기 경제 야쿠자로 조직의 변모를 꾀하던 각 조직들은 허영중 등을 포함한 한국계 야쿠자들에게 의지를 많이 하였고[45] 이런 변화 속에 다카야마 기요시 등의 한국계 야쿠자들은 또 다른 재력을 손에 넣으며 야쿠자 리세션의 첨병역할을 하였다.

일본에서 거품경제가 꺼지고 한국에서 범죄와의 전쟁이 시작된 1990년대 이후 한국산 히로뽕 밀조가 정부의 단속으로 거의 사라진 후로는 한국계 야쿠자들은 일본 시중은행들의 저금리 대출과 오랜기간 구축해온 한일정재계와의 인맥을 통해 한국 사채 시장에 침투했다. 폭대법에 의해 지정된 22개의 지정 폭력단 중 2016년경 5개의 조직이 한국계가 오야붕으로 있으며 과거 오야붕이었던 경우까지 합치면 절반에 가까운 9개의 지정폭력단이 재일교포계가 오야붕으로서 관계가 있다.

관동지역 지정폭력단 5개 중 스미요시카이를 제외한 마쓰바카이, 교쿠토카이, 소아이카이, 이나가와카이는 한국계가 오야붕이었거나 현재 오야붕이고, 규슈 지역 야쿠자조직은 김인순의 후쿠하쿠카이와 박정호[46]의 나미카와카이를 비롯해 전통적으로 재일교포세가 강하며, 간사이의 오사카 교토 주고쿠의 히로시마 시모노세키 주부의 나고야 역시 재일교포세가 막강하다. 덧붙여 6대 야마구치구미 내 최대파벌 고도카이 핵심에도 재일교포 출신들이 많다고 한다.

특히 2015년 야마구치구미와 고베 야마구치구미의 분열은 6대째가 되며 조직 넘버2인 와카가시라,[47] 넘버3인 통괄위원장,[48] 넘버4인 총본부장[49] 등의 핵심요직에 집권하며 조직 내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한 나고야계 야쿠자조직들의 기존 파벌들에 대한 차별이 3대 야마구치구미 와카가시라, 5대 야마구치구미 구미초를 배출하며 야마구치구미의 적통이라 자부하던 야마켄구미를 포함한 다쿠미구미 등 기존 고베계 파벌들의 응집 및 반발이 원인이 되었다는 추정마저 존재한다. 고베 야마구치구미 간부 요직과 산하의 야마켄구미와 타쿠미구미 이케다구미 마사키구미 등 역시 내부를 들여다보면 예전에 해산된 야나가와구미 출신들 및 한국계가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그와 대비해 2011년 일본 경시청의 발표에 의하면 현재 일본내 야쿠자의 98.5% 정도가 일본 국적이며 한국 국적 및 조선적[50]은 1.5% 이하라고 한다. 재일교포 출신 야쿠자들이 많다고는 하나 애당초 위에도 언급되었듯 야쿠자 조직들 내에서는 부라쿠민 출신의 조직원들 또한 그에 못지 않게 많았으며 재일교포 출신이라 해도 부인은 일본 여성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 후손들은 일본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며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또한 여기에는 조직의 간부급을 제외한 행동대원 급의 재일교포계 야쿠자의 상당수가 이미 은퇴 및 귀화를 한 영향이 크며 신규로 유입되는 재일교포계 야쿠자는 이미 일본으로 귀화해버린 케이스가 대부분이고 재일교포의 일본 내 위상이 상승하며 더 이상 범죄에 가담하는 인구가 급격히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51]

4.6.2. 그 외

기사 출처(총 4페이지)

아주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겠지만, 놀랍게도 스미요시카이의 간부이자 스미요시카이 하부 조직의 두목을 역임했던 이란인 야쿠자도 있다. 위 신문기사는 2014년에 사이타마 현에서 총도법 위반으로 체포된 스미요시카이 3차 단체의 전직 두목 나세리 라드 아무로라(Nasseri Rad Amurora)[52]에 대한 내용으로, 일본어도 매우 유창했던 데다 체포된 이후로는 조사 과정에서 일관되게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면서도 경찰을 상대로 넉살좋고 대담한 언행을 보이는 등 경찰에 불려간 전형적인 야쿠자 간부처럼 행동했기에 외국인 범죄 전문 수사관도 "완전히 야쿠자 오야붕 그 자체"라고 평했다. 당시 이란정부 및 이란 대사관에선 반응을 달리 보이지 않은것으로 보인다.

1979년(쇼와 54년)에 일본으로 넘어왔고, 3년 뒤인 1982년에 어떤 스미요시카이 계열 조직의 조직원에게 제의를 받아 조직원이 되었으며, 1986년에 일본인 여성과 혼인(체포된 시기인 2014년 시점으로 이미 이혼)함으로써 영주권 자격을 취득했다. 아무로라가 두목을 맡았던 조직이 비록 작은 3차단체라고는 하지만, 외국인이 야쿠자 간부 직위에 올라가 있었다는 사실에 경찰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고, 어느 경시청 간부는 폭처법과 폭력단배제조례 때문에 사업이 곤란해진 야쿠자들이 독자적인 마약 및 총기 밀수 루트를 가진 이란인 범죄조직과의 연줄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 연줄을 위해 스미요시카이에서 아무로라를 중용했을 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4.7. 처벌

야쿠자의 처벌은 반성(근신) < 체벌 < 유비츠메(指詰め) < 파문 < 절연 < 처단 이 있다.

여기에 제적 처분이 있는데 단순한 처벌이라기 보다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조직원이 고령이나 질병, 자금난, 갱생 등의 이유로 원만하게 조직에서 손을 씻고 싶지만, 은퇴하기에는 너무 젊다고 판단되거나, 기타 은퇴로 인정 되지 않은 경우 조직에 허락을 받고 탈퇴하여 '제적' 되는 것이다. 이때 그냥 나가는 경우도 있고, 단지를 하고 나가는 경우도 있다.[53] 즉 원만한 퇴사라고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의미는 본래라면 파문에 처할 상황이지만, 그간의 공적과 의리를 보건데 강한 처분을 하기 어려운 경우 파문보다는 단계가 낮으면서 조직에서 쫒아내는 것이다.[54] 또한 조직에서 나가지만은 파문, 절연과는 달리 조직과 원만하게 교류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파문보다는 강도가 낮은 완곡한 표현의 제명 처분인 것이다.

파문의 경우 조직에서 큰 잘못을 저지르거나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꼴통을 쫓아낼 때 쓴다. 감당이 안된다고 그냥 내쳐버리면 다른 조직원들 입장에서 자신들도 언젠가 사소한 걸로 트집 잡혀 쫓겨날 것을 우려해 반란이나 배신을 할 수도 있으니 쫓아내더라도 최소한 조직원들이 수긍할만한 명분이 필요하다. 이렇게 조직에서 쫓겨나 조직과 관련 없다는 의미지만, 복권이 가능하므로 이를 이용해 위에 서술된 대로 사건 발생 시 수뇌부의 안위를 위해 수뇌부를 대신해 총대를 맨 조직원이 파문을 당하고 자수한 뒤 출소 후 높은 지위와 함께 복권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55] 비슷하게 경찰과 언론의 주목을 피하기 위해 꼬리자르듯이 위장 파문을 하고 나중에 조용해지면 슬며시 복권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절연이라는 특이한 처벌이 있는데, 파문과 마찬가지로 해당 조직원과 조직 사이의 인연을 끊어버리는 처벌인 것은 비슷하나 그 양상이 다르다. 파문의 경우 복권이 가능하지만, 절연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으로 판단하기에 복권되지 않는다. 보통 야쿠자 업계에서도 배신이나 조직을 와해 직전까지 만드는 등 엄청나게 큰 일을 저질러야 절연이 합당하다고 판단한다. 문제는 그만한 사안을 아무런 페널티 없는 절연 하나로 퉁치는 게 한심해 보인다는 것인데, 이렇게 절연을 하는 이유는 처단을 하기 어려운 상대이기 때문이다. 즉 처단을 해야 하는데, 그 대상자가 다른 조직에 붙거나 혹은 자체 세력을 구축하는 등의 이유로 처단이 사실상 어려워지면 이도 저도 못하게 되며 조직의 위신도 떨어지기에 나름대로 상징적인 처분이라도 내려 조직의 체면을 세울 용도로 절연 처분을 내리는 것. 근데 이 절연 처분도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위장 절연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위장 파문과 비슷하게 취급되며 원래라면 조직 복귀는 절대 안되지만 위장인 경우 복귀 취급하거나 복귀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세상사가 다 원칙적으로만 돌아가지는 않는 것이다.#[56]

파문과 절연은 통보를 위해 문서를 대상자에게 보내는데, 파문은 검은색 글씨로, 절연은 빨간색 글씨로 쓴다.[57] 또한 다른 조직에도 팩스나 메일 혹은 직접 파문장이나 절연장을 돌려 이 대상자가 무슨 이유로 조직에서 쫓겨났다고 알린다. 악질적인 행태로 처벌받아 쫓겨나면 이렇듯 주변 조직에 문서를 다 돌려서 일체 교류를 금지해 줄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야쿠자 업계에서 발붙이기 어려워진다.[58] 상술했듯이 경찰에 알리는 경우도 있는데 더 이상 이 조직원이 조직과 상관없다는 것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59] 이런 것들이 언론에 유출돼서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는 경우도 있다.

처단의 경우는 직접 암살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상자가 사형을 당할 정도의 죄가 있으면서 대상자가 조직의 기밀을 누설할 위험이 없는 경우 무기명으로 경찰에 그 혐의로 신고해서 사형[60] 당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는데 합법적인 절차를 통한 처단이라 효율적이라고 한다.

4.8. 무기

서브컬처에서는 시라사야를 꼭 사용하는 것처럼 그리지만, 실제로는 밀수권총폭탄,[61] 수류탄 같은 화기류를 사용한다. 시라사야 항목에 들어가면 알 수 있겠지만 시라사야는 칼날 보관용이지 전투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손을 보호하는 코등이가 없어서 잘못 휘두르다가 손이 절단 될 수 있다. 실제로 2013년 4월에 야쿠자 2명이 살인죄로 사형당한 일이 있는데 이들의 혐의는 다른 조직의 조직원 2명을 권총으로 살해한 것이었다. 그리고 칼을 쓸 경우 시라사야 형태가 아닌 그냥 일본도를 사용한다. 전통방식으로 제조한 일본도는 도검으로 분류되지 않으므로 이쪽이 더 낫다. 야쿠자에게 사채를 쓰지 않는 이상 죽을 때 까지 대화를 나눌 일도 없다. 야쿠자도 괜히 무고한 사람에게 총이나 무기로 공격하지 않는다.

어쨌든 대한민국 조직폭력배와는 달리 도 좀 더 잘 사용한다.[62] 물론 일본도 총기 소지가 아예 금지되어있기 때문에[63] 실제로 총을 쓰기 시작하면 일본 경찰청 조직범죄대책부가 움직여서 강하게 처벌한다. 총기사용 범죄는 형량이 점점 세지고 있기도 하고, 야쿠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총은 상대방에게 '강한 메시지'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가급적 신중하게 쓴다고 한다. 따라서 작은 항쟁에 총까지 쓸 일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가급적 둔기류나 칼을 쓴다. 한편 총을 밀수하는 루트는 러시아 루트, 필리핀 루트, 미국 루트, 남미 루트, 중국 루트, 남아프리카 루트 등이 있다. 이 중 러시아와 필리핀 루트의 비중이 크다.55페이지 참조 가끔 자동사격이 가능한 돌격소총이나 경기관총, 혹은 로켓 런처(!)까지 밀수를 시도해서 챙겨두는 조직도 있는데, 총성 때문에 권총 하나도 신중히 쓰는 야쿠자 조직들이 이것까지 꺼내들었다면 지역 조직 간의 항쟁이 겉잡을 수 없이 번졌다는 이야기가 되므로 정말 조직의 존폐가 걸린 비상상황이 아닌이상 어지간하면 잘 쓰진 않는다.

참고로 어떤 일본 서브컬쳐물에서든 야쿠자가 권총을 들고 설친다면 그 권총은 아주 높은 확률로 TT 권총중국제 카피인 54식 권총이다. 정식명칭보다는 흑성이라는 통칭으로 부르는 경우가 더 많지만 그것도 그냥 '챠카'와 같은 은어로 부르는 일이 더 많은 듯. 일본에서도 총도법이 시끄럽기 때문에 중국산의 카피를 또 카피해서 쓰는 경우도 있다. 물론 명중율이나 신뢰성은 전혀 없다. 야쿠자의 총기살인 스타일이 표적에게 근접해서 난사한 뒤 도주, 총기는 범행 후 바로 유기하는 1회성이기 때문에 명중율이나 내구성 따윈 신경 안 쓰는 이유도 있다. 워낙에 야쿠자들이 자주 사용했던 탓에 테러리스트의 상징인 AK-47이나 마피아의 상징인 톰슨 기관단총과 비슷한 취급. 요즘에는 레드 마피아와의 연계로 본토마카로프 권총이나 2006년 이후로는 필리핀제나 중국제 복제품 M1911도 많이 유입되고 있다. 2014년 시점에서는 거의 필리핀제 복제총기가 점령해서 중국의 54식이나 러시아 토카레프가 오히려 희귀해진 편이다. 야쿠자들한테도 토카레프 권총이 가격은 저렴하지만 그만큼 나쁘다는 인식은 있으며 또 러시아제 권총은 전용 토카레프 탄을 쓰기 때문에 탄약의 수급도 어렵다. 따라서 미국제 권총이나 오스트리아제 글록 권총 같은것이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위급시에 한발이라도 걸리면 곤란하기 때문에 리볼버의 사용 역시 꾸준하다.

물론 이들이 밀수했다가 걸린 무기를 보면 권총만 있는 게 아니다. 기관단총, 돌격소총, 유탄 발사기, 심지어 대전차로켓까지 밀수했다가 걸렸다. 이쯤되면 거의 테러 단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참고로 해당 링크의 사진이 포함된 실제 사건의 기사는 순서대로 2012년 후쿠오카의 키시라 켄고(岸良研吾)와 2011년의 간 마사토모(菅正知), 둘 다 야쿠자들 중에서도 가장 무식한 조직으로 악명 높은 쿠도카이 계열이고, 마지막 1장은 2006년 요코하마의 이나가와카이 계열 하부 조직 보스 마츠다 타다시(松田真知)의 사례이다.

2019년 11월 27일에는 필리핀에서 복제, 제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AR-15 자동소총에 고베야마구치 간부가 사살당해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줬다. 일본 경찰은 특수경찰까지 동원하여 검거에 나섰고 범인은 교토 시내에서 금방 체포됐다. 차 안에 있다가 기동대와 SAT가 포위해서 접근해오자 투항하여 체포된다.

4.9. 다이몬(代紋)

파일:야마구치구미.svg 파일:스미요시카이.svg 파일:이나가와카이.svg
やまぐちぐみ
야마구치구미
すみよしかい
스미요시카이
いながわかい
이나가와카이

왼쪽에서부터 야마구치구미. 스미요시카이, 이나가와카이의 다이몬이다.

가몬의 야쿠자 버전이라고 보면 되는데 거창한 조직을 상징하는 문장을 만들어서 쓴다. 본부에 걸어놓거나 명함에 인쇄해서 붙이거나 조직의 문서에 문양으로 쓰고, 또 뱃지 문양으로 쓰는 등 쓰임새는 다양하다. 조직의 통제와 단결의 상징으로 매우 효과적이며, 또한 다른 조직과의 식별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이런 문양을 만드는 전통이 생겼다.

옛날에는 간토의 조직들은 선대와 후대의 다이몬이 다른 경우가 있었으나 현대에는 옛 다이몬을 그대로 계승해서 물려 쓴다. 야쿠자 만화, 대표적으로 엠블럼 TAKE2에서 이런 다이몬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엠블럼의 원제가 바로 이 다이몬이다.

매양 야쿠자들이 "다이몬이 무겁다", "다이몬을 짊어진", "다이몬의 가치를 알아라" 운운하면서 조직의 무게감을 설명하는데도 말버릇처럼 쓰인다. 엠블럼 테이크2에선 뱃지의 무게라고 나오는데 정확히는 뱃지에 그려진 다이몬을 가리키는 것이다.

5. 폭력단 대책법과 폭력단 배제조례

위키피디아 폭력단(야쿠자) 미니강좌
법령번호 헤이세이 3년(1991년) 5월 15일 법률 제77호
다른 형벌과의 경계선, 본법은 이하의 행위를 금지한다.
  • 입막음료를 요구하는 행위
  • 기부금이나 찬조금 등을 요구하는 행위
  • 하청 감가 등을 요구하는 행위
  • 경호원 대동을 요구하는 행위
  • 고금리의 채권을 징수하는 행위, 빚의 면제나 빚반제의 유예를 요구하는 행위
  • 부당한 대출 및 어음의 할인또는 부당한 주식의 매입을 요구하는 행위
  • (이하 생략)
  • 이외에 조직원이 흉기를 사용한 항쟁으로 타인의 생명, 신체를 상해하거나 재산을 침해한 범죄가 일어났을 때, 조직이나 조직원의 위력을 사용하여 모금 행위를 한 경우에 대해 조직의 수장이 손해배상 할 것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이들 규정은 민법이 규정한 불법행위 책임을 별도로 지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64]
2011년서부터는 폭력단 대책법을 더 강화한 폭력단 배제조례를 전국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다.기사 폭배조례는 야쿠자를 사실상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조례로 야쿠자는 자신의 명의로 휴대폰 개설[65], 은행거래, 자동차 명의, 사회보장보험도 안될 뿐더러 모임 장소를 빌려주거나 주택을 빌려주거나 하는 일반인과의 접촉 자체를 막음으로서 정상적인 사회생활 자체를 아예 못하도록 막고 있다. 생활고에 시달린 소규모 야쿠자 조직들은 대거 해산되고 있으며 야쿠자들은 폭배조례를 피하기 위해 타인의 명의를 쓰거나 한구레를 이용하거나 점조직화 하면서 점점 지하화[66] 하고 있다.[67]

6. 폭대법의 영향

야마구치구미, 이나가와카이, 스미요시카이 등 22개의 폭력단이 본법을 따르는 지정폭력단이 되어 일본 경찰공안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혹시라도 야쿠자가 괜한 시비를 걸거나 폭력을 행사하면 일본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 곧바로 경찰 기동대 소속 총기대책부대(銃器対策部隊)가[68] 달려와서 죽지 않을만큼 족친다. 당신의 신변보호 역시 당연히 해준다. [69]흉기가 아니라 그냥 문신을 보이면서 위협해도 체포 대상이다. 실제로 야마구치구미 하부단체인 심복회의 조장이 운전 중 자신에게 경적을 울린 대학생들에게 문신을 보이며 "니들 내가 야쿠자인 건 알고 경적을 울린 거냐?"라고 위협하자 대학생 하나가 "흐미 야쿠자가 협박하네." 하면서 바로 110에 신고해서 출동한 경찰에 체포된 사례가 있다. 이런 야쿠자들을 전문적으로 수사하는 강력계 형사들을 은어로 마루보(マル暴)라 부른다.[70]

결과적으로 조직원 수가 줄어들고,[71]전국 각지의 사무실이 철거되었으며, 야쿠자 간의 내부투쟁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내부투쟁이 일어나더라도 예전과 달리 최대한 깔끔하게 끝내게 되는 등 야쿠자는 전체적으로 위축된 양상을 띠고 있다. 물론 야쿠자간의 항쟁이 벌어질 때마다 사람 수십명씩 죽어나가는 건 변함이 없다.

특히 일본 국내에서의 대부분의 불법적인 범죄행위에 의한 주 수입원이 줄어든 것이 큰데, 소규모 야쿠자 조직들이 의존했던 갈취와 같은 직접적 범죄행위들이 폭대법 이후 상당부분 봉쇄되자 하부조직이 수입원의 부재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야쿠자 조직의 수익구조는 하부조직들이 직접적인 범죄행위로 수익을 벌어들여 상납금 형태로 위에 올리면 상부조직이 방대한 인맥을 활용한 투자나 사기로 돈을 굴리거나 돈세탁을 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있는데, 하부조직들의 수입원이 사실상 말라감에도 상부조직은 여전히 쌓아둔 막대한 자금과 인맥을 활용해 탄탄한 자금줄을 유지하면서도, 하부조직에 돈을 풀긴 커녕 꾸준히 상납금을 요구하면서 하부조직들이 이에 반발하여 하부조직과 상부조직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야쿠자 조직내의 내분은 대부분 이러한 이유로 발생중이다.

여하튼 현재 야쿠자들은 해당 법을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 열공 중이라고 한다. 폭대법이 처음 등장했을 때 1호로 가장 먼저 지정된 조직들이 바로 위에서 언급된 3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구미, 스미요시카이, 이나가와카이다. 괜히 이들이 3대 야쿠자 조직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7. 현황 및 현실

[알쓸신세] 해삼 따고 멜론 서리…日 야쿠자 어쩌다 좀도둑 전락했나

오늘날 야쿠자 조직들은 과거와는 그 양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한국의 조직폭력배, 중화권의 삼합회의 쇠퇴와 유사하다. 운신의 폭을 묶는 폭대법의 영향도 크지만, 사회의 변화로 인해 신규조직원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야쿠자 조직의 규모 자체는 크게 줄고 있다. 실제로 과거에는 먹고살기 힘들어서 야쿠자가 되었다고 하지만, 현대 일본에서는 그 정도로 먹고살기 힘들지 않기 때문에 평범한 젊은이들이 폭력 조직 쪽에 관심을 가질 일이 없다. 다시말해 하다 못해 프리터만 해도 50~60 언저리까지 혼자만 산다면 훨씬 건전하고 안전하게 생계영위가 잘 되는데, 굳이 신체나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심심하면 재떨이를 머리에 맞거나 연장 들고 설치는 야쿠자가 되고 싶어 하진 않는다.[72] 거기에 개인주의가 대세가 되면서 범죄의 늪에 빠진 젊은이들도 전근대적인 규율에 묶인 야쿠자는 거부하고, 자기들끼리 뭉쳐서 한구레가 되거나 이런저런 작은 범죄로 먹고사는 잡범이 되거나, 하다 못해 그냥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리는 게 더 수익면에서도, 안정성면에서도 좋기 때문이다.

그렇게 2000년도 초반부터 제기되어 일본의 초고령화 현상 역시 야쿠자도 예외는 없었다. 2017년 시점에서 경시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일본 전역의 야쿠자 조직원 중 50대 이상 중년 조직원의 비율이 40%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로 인해 오늘날에는 주로 물리적인 폭력을 기반으로 하는 갈취사업 등의 규모가 크게 줄어들고 주로 사기와 불법투자행각이 주요 수입원이 되고 있다. 야쿠자 규모도 급감 최대조직인 야마구치구미는 10년 전에 비해 3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73] 스미요시카이와 이나가와 카이도 50%가량으로 구성원 수가 감소하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전체 야쿠자수 대비 3대 조직의 구성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70%대에서 변함이 없으므로 결국 일본 내 야쿠자 조직들 전체가 다 이런 경향이라는 것이다.

2018년 시점에서는 정말 야쿠자는 인권이 없는 시대에 돌입했다. 사실 사람 취급도 안 해주지만. 일본인이나 하다못해 외국인도 발급되는 건강보험증이 발급되지 않아 건강보험 적용이 안되어 다치기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치료비 폭탄을 껴안게 되며, 야쿠자라는 사실이 들키면 은행에서 서비스를 거부한다.[74] 어디로 이사를 가려고 해도 야쿠자라는 사실이 들키면 이지메 당하고 쫓겨나기 일쑤. 폭대법과 폭배조례 적용을 면하려면 야쿠자에서 탈퇴하고도 5년은 지나야 한다.[75]후쿠오카 현경에 따르면 그동안 현경의 지원과 수입감소, 각종 규제로 야쿠자 생활을 접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두목과 간부라고 한다. 또한 한국의 국민참여재판에 해당하는 재판원 재판에서도 야쿠자에 불리한 평결이 나왔을 경우 배심원에 대한 보복의 우려가 있는 관계로 야쿠자 관련 사건의 재판만은 무조건 제외시킨다고 한다.

이로 인해 야쿠자의 위세가 크게 줄어들고 범죄 또한 크게 줄어들기는 했으나, 반대로 폭력 조직 대응 문제가 복잡해진 부분도 존재한다.

첫번째로, 기존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조직을 연명할 수 없으니 자본이 존재하는 거대 조직의 본가는 양지(합법)로 나와 기업화를 진행하고, 합법적으로 얻은 자본을 통해서 음지의 폭력조직로 조용히 지원해주는 형태로 양측에 발을 걸치는 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아무리 야쿠자조직이라고 하더라도 합법의 틀에 있는 기업이라면 경시청이 적극적으로 잡아들이기는 어렵다.[76]

두 번째로는, 이런 기업화가 될 수 없거나, 거부하는 조직들은 조직 형태를 유지할 수 없어, 점조직 형태로 분할됐다. 이는 다시말해 국가 기관에서 관리하기 훨씬 어려운 삼합회한구레, 갱스터 등이 되었다는 말이 되어 대응이 어려워진 부분들이 존재한다.

2018년 10월 11일에 일본 야쿠자가 2020년 도쿄 올림픽 관련 시설의 건설을 위해 노숙자들을 동원하고 돈을 빼앗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본 건설 업계에 여전히 야쿠자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건설업은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기업화된 폭력 조직이 건설업 관련 기업을 차리는 등으로 여러 업종들 중에서도 특히 폭력조직들이 선호하는 업종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에도 건설업 계열로 넘어간 전직 야쿠자 조직들이 존재하는 만큼 올림픽 같은 대규모 사업에서 야쿠자 조직이 끼어드는 건 사실상 예견된 일이었다는 시각이 많다. 2010년대 중반까지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이뤄진 도호쿠 지역의 복원사업에 야쿠자 조직들이 일부 끼어들어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는데, 올림픽 준비가 본격화되기 시작하자 야쿠자 조직들이 이쪽에 기웃거리다 일어난 사태이다.

사회 변화로 인해, 2019년 일본 경시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전반적으로 주요 조직들의 구성원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 경기불황과 폭대법으로 인해 자금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야쿠자들의 숫자가 줄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렇게 야쿠자의 활동 영역이 좁아지자 되려 야쿠자들끼리의 다툼이 격화되는 모습이 보여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9년 11월에 야마구치구미 조직원이 고베 야마구치구미 간부를 M16 소총으로 30발을 사격해 사살하는 사건이 벌어져 충격을 주었다.#, #

2020년 이후로는 일본에 코로나 19가 퍼지자 야쿠자 조직원들이 감염되는 사례가 생겨서 각 조직이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특히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감염이 폭발되어 젊은 야쿠자 조직원이 병원에서 치료받는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기사 거기다가 전통적으로 데키야가 주로 관여하는 마츠리의 노점상도 감염 위험 때문에 금지되자 수익이 궁한 야쿠자들이 특히 힘들어하고 있다고 한다.

여러 요인으로 인해 일본 경찰청 산하 전국폭력추방운동추진센터 자료를 인용해 2011년에 70,300명에 달했던 야쿠자 수가 2020년에 25,900명으로 줄었다고 보도했다.#

자금난과 소수인원화가 되어가니 2010년대 중반부터는 마약 거래에 집중하는 야쿠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예전에는 마약거래를 안 한다라는 것은 헛소리로 간주하면 된다. 전후 야쿠자조직에 투신한 재일교포 조직원들의 주 사업이 한국발 필로폰 사업이었고, 이 경로가 막히자 야쿠자들은 직접 조직원들을 동남아지역에 파견해서 현지에 조직을 구축하고 메스암페타민 수입을 진행하기도 했다. 가까운 거리에 필로폰과 메스암페타민의 수입처가 존재했다 보니 코카인 수요가 없었다가, 코카인이 동양권 마약시장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자 야쿠자조직들은 남미지역의 일본인 이민자들을 이용해 코카인을 수입해 왔는데, 미국의 작전으로 남미 카르텔들이 무너지자 멕시코 카르텔 하고까지 거래를 넓히기 시작한 것뿐이다.[77]

그렇다고 스케일이 작은것은 또 아닌게, 일본의 야쿠자 보스가 미얀마 반군단체가 보유한 핵물질을 다른 나라에 팔려다가 적발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8. 이미지

보통 야쿠자라고 하면 정형화된 이미지를 가진 일본의 범죄 조직부터 떠올리지만, 일본 본토에서는 야쿠자라는 단어의 용례를 자국에 한정시키지 않고 범죄 조직 전반에 걸쳐 적용시키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즉 한국의 조폭, 이탈리아와 미국의 마피아, 미국의 바이커 갱, 갱스터, 중국의 삼합회, 남미의 카르텔 등을 전부 야쿠자라는 표현으로 퉁칠 수 있다는 것.

만화영화에서는 의리를 중시하고 잘못한 놈이 할복을 하는 등 사무라이의 후손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사무라이의 후손이 야쿠자가 되려면 몇 대째 등성조차 못하고 극도로 몰락해서 낭인이 되거나 대죄를 지어 할복이 아닌 참수형을 당해 폐문쯤은 당해야 가능하다. 야쿠자가 사무라이의 후손이라는 설은 일본의 각종 매체에서 몰이해로 인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다. 진짜 사무라이의 후손들은 메이지 유신 이후 대부분 군대나 경찰에 입대하거나 정부관료로 일했고 다이묘나 주요 유신지사 급은 화족으로 편입되었다.[78]

걸핏하면 손가락 잘라대는 유비츠메 의식이 있는 건 사실이다. 손가락 하나를 모두 자르는 게 아니라 손가락 한 마디씩 자르는 의식이다. 보통 잘 안쓰는 왼손 새끼 손가락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매체 등에서는 아무나 잘라대지만 실제로는 직책에 따라 가치가 다르고 잔을 받지 않은 조직원이나 일반인의 손가락은 전혀 가치가 없어서 자른다고 봐주지 않는다.

일본 야쿠자 하면, 드럼통에 넣어서 바다에 빠뜨린다카더라 전설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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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리 대신 고열로 처리한다는 뜬소문도 있으나, 이는 사실이라고 하기 어렵다. 일단 3,000°C라고 하면 단순히 '뜨겁네'라고 인식할 수준이 아니다. 3,000°C라는 온도 자체가 산업에서 거의 쓰이지 않을 정도로 만들어내기 힘든 초고열이다. 그냥 가스레인지 켰다가 끄듯이 만들 수 있는 온도가 아니라는 것.[79] 저만한 온도를 내기 위해서 드는 시간만 해도 오래 걸리고, 식히는 데는 더 오래 걸린다. 한 번 쓰고 마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극심한 비효율이다. 해당 온도를 견디기 위한 용기 또한 내열성 벽돌을 써야 하는데 애초에 3,000°C를 버티는 내화물 자체도 드물 뿐더러 엄청나게 비싸다. 참고로 알루미늄 녹는점 600°C, 철 녹는점 1,500°C. 3,000°C면 텅스텐쯤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 온도는 어떻게 유지할 건가? 3,000°C면 가스레인지로는 못 만들고, 포스코 같은 제철소에서 쓰는 전기 고로를 가져와도 어렵다. 애초에 철의 녹는점도 아니고 끓는점, 즉 기체가 되는 온도가 3,000°C이다. 참고로 전기 고로도 3,000°C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무엇보다 아스팔트는 200°C 가량에서 만들어진다.

다만 굳이 가능성을 논해 보자면, 작가가 치밀한 취재를 한 후 만화를 그리기로 유명한 사채꾼 우시지마의 에피소드 중 야쿠자 조직에서 폐기물 처리 기업을 운영하면서 그곳에서 시체까지 처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그 기업운영을 나메리카와라는 등장인물이 도맡아하고 시체를 흔적도 없이 만든후 처리하는 장면이 나오며, 비슷한 애니메이션인 휴먼버그대학교에서는 아모우구미가 오오카와 석재공장의 아스팔트 시설을 빌려서 시체를 처리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당연히 일반 가정에서는 만들지 못하는 온도니 그런 전문 기업을 아예 운영하는 야쿠자의 스케일을 볼 수 있다. 또, 실제에서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닌게, 시멘트 소성로의 경우 3,000°C까지는 아니지만 약 2,000°C까지는 온도가 올라간다. 즉, 시멘트 회사를 가지고 있거나 거래한다면 가능한 일이라는 얘기다.

애완동물 장례업을 등록한 후, 평소에는 애완동물을 화장하다가 때가 되면 사람을 태워서 처리한다는 루머도 존재한다. 역시나 루머인 만큼 신빙성은 낮다.

미국에서 이 야쿠자를 영화계로 의식하기 시작했는데, 우후죽순으로 야쿠자 영화가 만들어졌다. 로버트 미첨의 <야쿠자>마츠다 유사쿠블랙 레인 등등 말이다. <블랙 레인>은 세계적으로 대박이 나서 마츠다 유사쿠를 세계적인 배우로 만들어줬다. 그 전에 마츠다 유사쿠는 야쿠자 영화의 주연이나 조연으로 나왔다. 안타깝게도 <블랙 레인>이 개봉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반대로 야쿠자를 쓰레기로 보면서 야쿠자의 현실을 은근히 꼬집던 일본 영화감독 이타미 주조는 1992년 영화 <민보의 여자>에서 호텔 경영을 두고 야쿠자들을 적나라하게 현실적으로 묘사해 실제로 야쿠자들에게 폭행당했다. 그 이후로도 야쿠자들의 압력으로 온갖 고생을 하다가 1997년 어처구니 없는 불륜 사건에 휘말려 사회적 매장을 당했고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하겠다면서 스스로 투신하여 64살로 자살했다. 그런데 이 자살이 여러가지로 굉장히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아서 지금도 곧잘 재조명된다. 외국 저널리스트들 중에는 아예 자살이 아닌 야쿠자에 의한 살인이라고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 대표적 인물로 음모론 전문가 겸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사우스웰이 있다.

덕분에 일본 만화에서도 야쿠자가 악랄하게 나오면서 그래도 좋은 놈도 있다고 넌지시 조금이나마 좋게 나오는 것도 이런 영향이 크다는 분석까지 있다.

일본 만화 가면전사 아쿠메츠를 보면 폭대법을 만들어 야쿠자를 조이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말단 부하가 잘못하면 조직의 간부, 심지어는 보스에게 책임소재를 묻는 법으로 보인다.

데즈카 오사무도 실화를 바탕으로 대부의 아들이라는 작품을 그렸는데 여기서는 야쿠자의 아들과 친구를 한 주인공 데즈카의 이야기, 약골 데즈카를 보호해주고 체력을 단련시켜주고 대신에 데즈카가 그린 미소녀 만화를 받게 되는 이야기이다. 조폭관련 이야기인데 아련하다. 특히 마지막에 야쿠자 아들은 카미카제의 이슬이 되고 성장한 데즈카는 그것을 회상하는 장면이 명장면. 야쿠자의 아들은 특공하는 순간에도 데즈카가 준 그림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야쿠자의 세계에서는 인정보다는 의리를 더 가치에 둔다고 한다. 노래도 "인협의 세계에서는 인정보다는 의리~"라는 노래도 있다. 쇼와잔협전에서 나온 카라지시보탄이라는 노래다. 이 영화가 나올때는 한창 야쿠자를 협객으로 그리는 임협물이 유행할 때였다. 물론 수틀리면 서로 죽이고 죽는 세계라서 전혀 의미가 없다.

일본 문화에서 본격적으로 야쿠자를 리얼리즘에 기반하여 다루게 된 것은 영화 의리없는 전쟁 이후다. 그 전까지는 다소 낭만적으로 그리는 풍조가 있었는데, 이 이후 오히려 리얼하게 그려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야쿠자 세계"를 묘사했다며 야쿠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었다. 이 영화가 역으로 영향을 준 사례도 꽤 있다고 한다.

일본의 공산주의 계열 학자인 미야자키 마나부는 야쿠자의 아들이지만, 전공투에 참가하여 투쟁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 쓴 야쿠자 관련 서적인 <야쿠자, 음지의 권력자들>에 의하면, 재일교포들 중 일부는 야쿠자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건 사실이다. 실제 야마구치구미가 관동에 진출하는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이 당시 관동지방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던 재일교포 야쿠자 조직이라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

사실 1960년대 일본 청년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야쿠자 영화다. 특히 좌익 학생운동가들이 야쿠자 영화를 많이 봤는데, 자기들만의 룰, 의리, 파벌간의 대립, 배신, 음모,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우정같은 것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묘하게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다만 보다 정확히는 그냥 당시에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야쿠자물 자체가 유행이었다. 애초에 과격한 액션과 야한장면이 많이 나오는 영화들에 당시 젊은이들이 거기에 안빠지면 이상한거기도했다. 전공투 시대의 학생운동가들은 서브컬쳐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야쿠자 영화도 많이 봤다고 한다. 근데 아이러니한게 현실의 야쿠자들은 대부분 우익이며 역사를 보면 1947~1949년엔 일본 공산당과 좌파인사 숙청에 참여했다. 예나 지금이나 아직도 대부분 극우계열이다. 사실 세계적으로 극좌와 극우는 서로 비슷한 면이 꽤 많다.

9. 전문지

야쿠자를 다루는 전문지는 실화시대가 있었다. 2019년 종간했다. 야쿠자들이 직접 발행하는 잡지도 있다. 교쿠토카이의 <한없는 전진>이나 야마구치구미에서 발행하는 <야마구치 시보> 등이 있다. 다루는 내용은 깡패짓에 관련된 법률과 조직원들의 시(詩)같은 걸 싣는다.

야쿠자들과 유착된 전문지들은 객관적인 시선을 못 보여줄때가 많기 때문에 프리랜서 기자들이나 작가들이 기고를 하는 대중지가 야쿠자 소식을 얻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 중 야쿠자 최고 전문가로 불리는 미조구치 아츠시(溝口敦) 기자의 글들이 볼만하다. 친한 야쿠자 내부 소식통으로부터 정보를 얻어서 취합한 뒤 공개하는데 야쿠자 측의 홍보나 역정보에 이용당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여러 쏠쏠한 정보들이 대중에 공개되는 것도 이런 기자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미조구치 아츠시 같은 경우 야쿠자한테 본인과 아들이 테러를 당하기도 했는데 본인은 "살균에는 햇빛에 노출시키는 것이 제일이다"라는 미국 대법관 루이스. D. 브랜다이스의 신념을 모토로 삼고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미조구치 아츠기 기자는 철저한 야쿠자 전문보도로 수십년 명성을 쌓아서 2003년에 코단샤 논픽션상, 일본 저널리스트 회의상, 편집자 선택잡지 저널리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금도 야쿠자 보도나 다큐멘터리에선 빠지지 않고 해설역으로 등장한다. 베스트셀러 저서를 여러권 썼으며 영화와 만화의 원작 저서도 썼다.

2008년엔 월간조선에서 미조구치 아츠시 기자의 야쿠자와 한국 조직폭력배 관련 글을 번역하기도 했는데 옛날 글이라 시대적으로 오래된 면도 있고, 야쿠자측의 정보나 언론기사만 보고 써서 잘못 이해한 내용도 있지만[80] 이나가와카이가 한국 골프대회를 후원했다는 내용이나 일본계 사채자금이 한국으로 진출했다는 내용, 야쿠자측의 각성제 제조에 한국 폭력단의 협조가 절실하다는 내용, 한국 폭력단이 태국으로 자주 진출한다는 내용 등등 흥미로운 정보가 있다.기사

2021년 5월에 미조구치 아츠시 기자는 야마구치구미 50년간의 취재를 종합한 책을 발간했다. 그간 만나본 거물급 두목들과 간부들간의 인터뷰와 일화를 종합한 책이라고 한다. 야마구치구미 50년의 흥망을 자세히 적었으며 본인과 아들이 테러까지 당했지만 굴하지 않고 꿋꿋이 취재를 한 열정이 느껴진다. 미조구치 기자는 "왜 야마구치구미를 취재했는가?" 에 대한 질문에 스스로 "인간적인 느낌이 들고, 재미가 있습니다. 인간의 업이 농축되어있고, 욕망, 분노, 질투, 샐러리맨 사회도 '그놈을 때려죽이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그들은 진짜로 죽여버린다, 당하면 보복한다, 어떻게 보면 알기 쉽고 흙냄새가 납니다. 드라마가 있어요" 라고 말했다. 이렇듯 오랜 신뢰관계를 쌓았는지 야쿠자 측에서도 미조구치 기자를 묘하게 신용하는 느낌이 있어, 젊은이가 취재후보에 오르면 "그 녀석은 말단이라 미조구치 씨를 만날 짬이 안된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한다. 식사 정도야 같이 하지만 돈을 받는다거나 골프,마작을 같이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관련기사

한편 주간문춘이나 프라이데이 같은 주간지들도 특집 기사와 흥미거리로 야쿠자 내부사정 등을 소개하기도 한다. 특히 야쿠자들이 프라이데이를 좋아한다고 한다.

10. 야쿠자 은어

사회에 통용되는 은어가 야쿠자 은어로 쓰이는 경우도 있고 야쿠자 은어가 유명해져서 일본 사회의 은어가 된 경우도 있다.

11. 조직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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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 지정폭력단 지도.(24단체) 광역 폭력단 같은 경우 다른 지방에도 지부나 방계 조직들이 있다.

11.1. 지정 폭력단

11.2. 주요 비지정폭력단

11.3. 해산된 주요 조직

11.4. 일본 조직의 특징

상기한 조직들 외에도 군소규모의 조직들 혹은 큰 조직의 방계조직들이 굉장히 많다. 이런 단체들을 2차, 3차 단체라 하는데 대두목의 사제가 작은 조직의 두목이 되는 일종의 중세시대 봉건제와 유사하다. 또 대두목의 직계 가신들을 직상(직참直参)이라 하는데 이런 직참들은 하급조직의 두목들보다 보통 위에 있다. 또 서로 다른 조직이라해도 사카즈키 의식을 통해 의형제를 맺어 친척조직으로 활동하면서 서로서로 유대를 다지고 있다. 개중에는 중국이나 대만, 한국 쪽 폭력조직들과 연대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런 정형화되고 조직화된 조직들보다 느슨한 한구레 조직들이 더 설치고 있으며 기존 조직의 하위 조직들이 자금난이나 폭력단 배제 조례로 조직 유지가 어려워지자 해산하거나 한구레처럼 변하고 있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대형조직들이 폭처법으로 조직유지가 어려워지자 음지에 숨어서 반달화되고 점조직처럼 변하는 현상이 야쿠자계에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의외로 폭력단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100]조직의 존재 자체는 허용하고 있다.[101] 하지만 일본도 한국 폭처법 못지않게 강력한 폭력단 대책법(폭대법)으로 야쿠자들을 통제하며 소위 '지정폭력단'이라해서 세력이 크고 강한 조직들을 지정하여 감시, 관리하고 있다.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서 폭력배를 국가적으로 용인하거나 크도록 놔두는 것이라 오해해서는 안된다.

쿠도카이가 제기한 위헌소송에 대해 후쿠오카 지방법원은 "폭력단도 개인의 결합인 단체,결사이며, 구성하는 개인에 대해서는 그 헌법상의 인권 보장 규정은 당연히 효력이 미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그 결사나 행동 등을 금지하고, 규제하는 것은 헌법의 기본적 인권 보장의 취지를 무시하고 각 조항을 형편화해, 개인의 사상,양심을 탄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고 지적했다. 또한 "법 3조에 따른 지정폭력단의 지정처분은 그 지정된 단체가 법에 저촉되어 존재를 허락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불식할 수 없으며 그 지정된 단체의 구성원이, 말하자면 폭력적 행위를 상습하는 자와의 인상을 받는 것은 면할 수 없는 곳이며, 또 헌법 14조 1항에 말하는 사회적 신분이란, 사람이 사회에 있어서 갖는 계속적인 지위를 말하는 것이다(대법원 쇼와 39년 5월 27일 판결민집 18권 4호 676페이지)" 라고 판결하고 있다. 다만 폭대법이 위헌이라는 소송에 대해서 "폭력단의 구성원에게는 법이 기획하는 규제는 스스로 다른 인권 침해를 저지되는 결과에 된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중략) (따라서) 폭대법에 의한 규제의 목적은, 공공의 복지의 관점으로부터의 것이고, 일단의 합리성이 있는 제도 라고 할 수 있다"며 헌법 21조 1항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했다.출처 2017년 3월 28일 판례 타임즈 894호 92페이지 일본어 위키 폭대법 즉 폭력단도 결사의 자유에 속하는 결사단체인 것은 맞지만 그 단체를 규제하는 폭대법은 합헌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조직이 지정폭력단에 지정되면 그만큼 경찰과 검찰의 감시가 매우 심해지고 조직원들의 범죄에도 두목이 연대책임을 물어서 배상을 해야하며 심지어 자동차를 자기 명의로 거래할 수 없거나 부동산 거래, 은행거래, 휴대폰도 자기 명의로 개설이 안될 정도로 일상생활에서 가혹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특히 손해배상 청구를 방해하거나 보복을 할 경우 가중처벌을 받는다. 야쿠자들은 이 법을 피하기 위해 타인의 명의를 쓰는 방법으로 요리조리 피해가지만 걸리게 될 경우 엄한 처벌을 받게 된다. 심지어 공공임대주택에서도 지정이 안되거나 쫒겨나고, 골프장 출입금지 정책도 있으며 폭력단 관계자임을 숨기고 거래를 해도 나중에 발각될 경우 사기죄가 적용되어 처벌받는다. 게다가 본인 명의 은행계좌가 없으니 사회복지 혜택을 받기도 힘들다. 은퇴를 하거나 탈퇴를 해도 5년 동안은 조직 관계자로 취급돼서 이같은 폭대법과 폭배조례의 대상이 된다. 즉 야쿠자들에게 굉장한 제약을 가하는 제도인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일본 정부가 사실상 야쿠자를 사회적으로 말살해버리겠다라고 할 정도로 가혹한 제재이다. 다만 이 법으로 인해 야쿠자들의 자식들마저 부모가 야쿠자인게 들통나 차별받는 경우도 있으며 조직원이 일반적인 기업에 취직하는 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적인 차별과 냉대가 악순환이 돼서 야쿠자 조직을 못빠져나온다라는 비판도 있다. 야쿠자들은 이러한 폭대법과 폭배조례가 인권 탄압이라고 길길이 뛰고 있으며 변호사들을 동원해 위헌 소송도 몇차례 한적이 있지만 어째 흐지부지된듯하다.

더해서 개정된 폭대법으로 항쟁 중인 조직들은 '특정 위험 지정폭력단'으로 지정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지정된 조직은 특별 경계의 대상이 되고, 공안위원회가 정한 경계 지역에서 "조직 사무소 신설 및 출입", "대립 폭력단 주변에서 활보", "같은 폭력단 조직원 5명 이상 모이는 것" 등을 실시 했을 경우, 경찰은 즉시 체포 할 수 있다.

12. 관련 인물

12.1. 한국계

13. 야쿠자와 관련된 작품 및 등장요소들

13.1. 대중문화에서의 모습

13.2. 야쿠자물을 주로 다루는 사람들

13.3. 야쿠자 세계를 비중 있게 다루는 작품

13.4.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야쿠자 집단과 가문

13.5. 야쿠자와 관계있는 설정의 캐릭터


[1] 야마구치구미의 제2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야쿠자와 야마구치구미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다오카의 사후 야마구치구미는 후임 조장 다케나카 마사히사의 암살과 암살을 주도한 이치와카이와의 전쟁, 그리고 폭력단 배제법과 배제 조례로 인해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2] AP통신에서 아사히 신문의 사진을 잘못 인용해서 1985년 암살당한 4대 두목 다케나카 마사히사의 1988년 추도식 회합이라고 보도했으나 실제로는 1980년 사진이다. 가운데 흰색 코트를 입은 인물은 1981년 사망한 3대 두목 다오카 카즈오가 명백하다.[3] 2~3장을 뽑아서 끗수를 가린다는 점에선 서양 도박인 바카라와 비슷하다. 다만 바카라는 6 이상이면 더 뽑지 않고, 두 번째 장에서 합이 8 혹은 9가 되면 자동 승리한다는 점 등이 세세하게 다르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고.[4] 코드 기어스 드라마 CD에서 이 의미대로 쓰인 적이 있다. 오뎅집 자영업하는 나나리를 혼자 두고 매일매일 도박이나 유령회사 매입매수 등 확률 게임에만 미친 듯이 달려드는 를르슈에게 "이 야쿠자 같이 사는 썩어빠진 근성을 고쳐주겠다"라고 한 것이 그 예.[5] 한국에서 양아치라는 단어의 의미가 '동냥하는 사람'에서 '불량배, 건달'로 변화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6] 일본 마작리치마작에서 족보 및 점수계산에 쓰이는 표현인 역(役)과 같은 한자다. 몇몇 작품에서 의도치 않게 역이 아닌 '약'으로 오역된 이유다.[7] 대중문화 중에서 만화 블랙 라군의 야쿠자 마츠자키 긴지는 평상시에 야시장 게임판을 관리하는 모습으로 나오고, 엠블럼 TAKE2의 3부(키사라즈 편)에서는 타코야키 소스를 두고 말단들끼리 싸워서 사람이 죽기도 한다. 그 밖의 작품에서도 보통 '원체 돈을 벌 수단이 없어서 이거라도 하는 가난한 조직'을 묘사하는 클리셰로 나온다.[8] 취체역. 낯설긴 하지만 사실 과거 우리나라도 (법인의 직책 중 하나인) '이사'를 가리키던 표현이었다.[9] 과거 우리나라에서 회사 명칭으로 많이 사용되었던 '흥업'과는 다르게 '구미(組)'의 한국식 발음인 '조'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조'라는 형식의 이름을 가졌던 회사는 거의 없었다. 이에 대한 이유는 현재까지도 자세히 밝혀지지는 않았다.[10] 1960, 70년대 대중연극의 태반은 야쿠자와 연결되어 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당시엔 야쿠자와 예능계의 유착이 심했다고 한다. 2020년대에도 운영 중인 요시모토 흥업 역시 야쿠자와의 밀월관계인 걸로 의심받고 있다.[11] 이 때문에 한국의 폭처법이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위헌의심 주장도 꾸준히 제기된다. 그러므로 한국 조폭들은 조직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며, 그 대신 자기들끼리 "어디어디 식구" 내지는 "누구누구 형님 밑에 있다."는 표현을 쓴다. 우리가 잘 아는 XX파, OO파 하는 것은 조직이 지은 이름이 아니라 수사 기관에서 수사 편의상 붙이는 별칭이다. 그 때문에 '딸기맛미역파'같은 희한한 이름도 있다.[12] xx회, xx연합, xx동맹 등의 조직명을 쓰는 조직에서 우두머리를 회장으로 칭한다.[13] xx일가(一家) 등의 조직명을 쓰는 조직에서 두목을 총장이라 부르곤 한다.[14] 그래서 아웃레이지 비욘드 같은 영화나 엠블럼 TAKE2 같은 만화 등의 야쿠자물을 보면 두목들이 대규모 사건의 마무리를 위해 은퇴하면서도 막상 그것을 기자회견마냥 떠들썩하게 발표하는데, 체면치레에 치중하는 것도 있지만 조직의 유지를 위해 모든 비난을 자신이 스스로 뒤집어쓰는 것에 가깝다. 태평양 건너 미국의 마피아도 공개선언이 없다 뿐이지 하극상을 못 이길 것 같으면 스스로 내려온 경우가 제법 된다. 물론 미국답게 아득바득 버티다가 시체로 발견시체로★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다.[15] 실제로 와카가시라나 샤테이가시라 정도 되면 비서가 다 딸려 있으며 실제 보좌는 비서가 다 한다.[16] 대표격 인물이 야마구치 구미의 나카니시 카즈오다. 4대 조장과 와카가시라 사후, 조장 대행을 역임했으며 5대조장 후보이기도 했다.[17] 그래서인지 용과 같이 시리즈의 북미판에서도 Advisor로 번역되었다.[18] 인물 소개 및 보스전 시 원문으로 드러난다.[19] 용과 같이 시리즈로 예를 들자면 카츠야 나오키, 이와미 츠네오 등이 있다.[20] 호주의 사망 또는 기타의 사유로 호주권이 상실될 경우 호주 상속인이 전 호주의 법률상 지위를 이어받는 신분 상속.[21] 카운슬러 정도의 고문 직책으로 가장 낮은 고문 직책이며 이 사이에 특별참여나 상담역이 있을 수도 있다. 조직마다 다르다.[22] 술잔의 중요성에 대한 묘사는 엠블럼 TAKE2를 참고하면 좋다. 주인공 아쿠츠 조지의 부하 사이토는 모종의 이유로 주인공과 척을 지고 대형사고를 쳤다가 형님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겠다는 각오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술잔을 챙기러 돌아가는 바람에 히로자와 형사에게 행선지를 들켰다. 또한 이 사건이 정리된 후 조지는 어떻게든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로 핫슈 타가미 연합회의 회장 쿠도 에이지와 쿄다이 사카즈키를 맺었던 술잔을 돌려주고, 쿠도가 이 술잔을 주먹으로 깨면서 형제 관계가 끊긴다.[23] 용과 같이 시리즈에서 마지마 고로사에지마 타이가가 서로를 쿄다이라고 자주 부르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따져보면 키류 카즈마니시키야마 아키라카자마 신타로라는 같은 오야붕을 모시니 쿄다이인 셈이지만, 야쿠자를 넘어서서 가까운 사이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인지 서로 '니시키', '키류'라고 부른다.[24] 엠블럼 TAKE2 40권에서는 주인공 아쿠츠 조지(아쿠츠 파 두목, 前 카이에다 파 3대 두목)와 나카야마 카즈오(타가미 우메자와 일가 두목)가 형제관계가 되자 츠치하시 토시(아쿠츠 파 간부, 조지의 사제)가 시무라 카츠야(카이에다 파 4대 두목, 타가미 우메자와 일가 조직원)의 부하인 아키야마 겐(카이에다 파 4대 부두목)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헷갈려하는 장면이 나온다. 연령으로는 아키야마가 토시보다 위이지만, 조직 항렬상 아쿠츠와 나카야마가 동급이면 아쿠츠의 부하인 토시는 나카야마의 부하인 시무라와 동급인 셈이 되므로, 항렬상으로는 토시가 아키야마보다 윗급이 된다. 물론 실제로는 항렬이 밥 먹여주는 게 아니기에 항렬만 믿고 설쳤다가는 칼부림 나기 딱 좋고 실제로도 이들은 대립하기도 하며, 그 이전에 주인공 조지가 항렬의 맹점을 이용해 에바라 싱고로부터 살아남는 장면도 나온다.[25] GTO(만화)의 초기정발판인 "반항하지마!"에서는 오니즈카 에이키치(영길)가 임시로 마련한 거처인 데코토라 벽면에 틀어놓은 야쿠자 영화에서 척 봐도 스가와라 분타를 닮은 야쿠자가 "오지키의 원수~!!"라고 외치면서 달려오는데, 여기서 말하는 오지키와 같으므로 "숙부님의 원수~!!"라고 번역하는 게 맞다. 인명으로 착각한 모양.[26] 문자 그대로의 보호도 있지만 대개 '강자에 의한 평화'를 의미한다. 요구대로 하지 않으면 깽판을 치는 일종의 협박인 것. 서양의 길거리 갱단의 주 수입원인 보호비가 바로 이런 형태다.[27] 일본에선 '항쟁'(抗爭)이라 한다. 한국에서 '항쟁'은 주로 압제자, 외세에 맞선 민중의 투쟁이란 뜻으로 쓰지만 일본어에선 야쿠자, 무장정치조직 안의 무력투쟁도 항쟁이라 표현한다.[28] 엠블럼 TAKE2에서는 상대조직의 조직원이 "우리도 여기에 물수건을 대고 싶다. 그게 안 되면 액자나 화분이라도 들여놓게 해 주던가."라며 사실상 구역을 두고 시비 거는 장면이 나온다. 한편 용과 같이 시리즈 중 2편은 호스티스 클럽을 운영하면서 내부 인테리어도 변경할 수 있는데, 실제 야쿠자의 행태를 아는 사람이라면 굉장히 기분이 묘한 장면이다. 물론 게임이라서 주인공 키류 카즈마의 자비로 충당하지만 말이다.[29] 도박묵시록 카이지제애그룹은 사실상 야쿠자 그 자체다. 효도 카즈타카 1인에 의한 독재, 대기업의 탈을 쓴 고리사채와 불법도박의 총본산, 법이 닿지 않는 곳에서 행해지는 온갖 물리적-심리적 협박 등...[30] 원한 해결 사무소의 주인공 원한해결사가 주로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야쿠자와 얽히게 만들어서 사회적 파멸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야쿠자가 등장했다 하면 보통 남자는 오지의 노역장으로, 여자는 사창가로 끌려가는 결말이 많이 나온다.[31] 다만 최근엔 폭대법의 강화로 하위단체의 주수입원인 갈취, 협박 등의 직접적인 형태의 폭력범죄들이 대부분 봉쇄되었다보니 하위단체들은 정기적으로 내는 상납금 문제로 상위단체와의 갈등이 지속적으로 심해지고있는 상황이다. 위에서는 정기적으로 돈을 바치라고 닥달하는데, 정작 정부가 법으로 수입원을 틀어막은 상황에서 도와주지도 않으니 불만이 계속 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32] 후일 일본 법무상까지 역임했던 인물로 말년에는 방한하면서 개인자격이지만 일본의 식민지배를 반성한다고 밝혔다. 2002년 별세.[33] 이걸 보통 지기리를 건다라고 한다.[34] 반대로 말하면 젊은이들이 감옥에 과감하게 가는 조직일 수록 인적자원, 경제자원, 구심력이 강한 조직이라는 뜻이라고 한다.[35] 다만 막부시기의 야쿠자들은 당시 권력의 중심이었던 막부에 기생해서 돈을 벌고 있었기때문에, 많은 조직들이 친막성향을 보여, 존왕양이운동 당시에는 천황을 옹위하는 세력들과 적대관계를 형성하고있었다. 이러한 경향이 뒤바뀐건 시미즈노 지로쵸라는 악명높은 야쿠자가 존왕양이파를 지원해서 막부를 옹호하던 야쿠자조직들을 정리하고 큰 세력을 얻은 이후이다. 즉 본질적으로 야쿠자 조직들은 천황제에 찬성한다기보다는 천황제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일본의 중심권력층을 지지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36] 당시 일본 신좌파중 일부는 안보투쟁 패배 이후 대중들한테서 고립되자,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골수로 극단적인 이념에만 열광하는 테러조직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요도호 공중 납치 사건아사마 산장 사건으로 전 일본을 충격에 빠트린 적군파가 대표적이다.[37] 이미 미군정이 소위 역코스 정책을 채택한 1947년부터 미국의 묵인아래 대기업들은 노조탄압과 '레드 퍼지'에 야쿠자들을 동원하고 있었다. 마피아도 이탈리아와 미국 모두에서 지역 유지나 자본가들이 소작쟁의나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용역깡패 노릇을 하면서 큰 역사가 있다.[38] 이러한 현상은 미국 20세기 전반부까지의 이탈리아계 미국인, 아일랜드계 미국인 마피아, 20세기 이후의 히스패닉, 흑인 갱스터나 유럽 각국에 포진한 각종 이민자 출신의 갱단 등, 소외된 민족이 있는 나라라면 정도의 차이일뿐 항상 있는 현상이었다.[39] 일본 현지에선 가쿠세이자이, 즉 각성제라 흔히 부르고 은어로는 "샤부"라고 많이 부른다.[40] 간혹 일본 현지의 넷 우익들 중에는 일부 조직들이 조총련을 통해 대북송금을 한다는 음모론을 퍼뜨리기도 하나 아무런 근거가 없다.[41] 히로뽕 유통. 2000년 기점으로 히로뽕 밀수루트가 중국과 북한으로 변경된 이후에도 각성제관리법 위반으로 검거된 외국인 중 한국국적이 40% 정도를 꾸준히 차지한다.[42] 빠칭코 운영, 보호비 갈취, 경품교환소 운영.[43] 연예흥행사업 및 연예기획사 운영, 프로레슬링, 야구, 권투, 스모 등의 스포츠 도박 및 흥행 사업.(야쿠자를 은퇴한 양원석은 일본 IBF 초대 커미셔너로 활약하며 일본 복싱계에 큰 영향력을 끼쳤고 연예계에선 미소라 히바리, 사이조 히데키 등과 스포츠계에선 역도산, 타카노하나, 장훈 등의 수많은 재일 한국인들이 두각을 내며 서로에게 시너지효과를 가져왔다.)[44] 전후부터 1960, 70년대 안보투쟁시기까지 북한의 일본 거점이었던 조총련을 향한 백색테러, 민단장악.[45] 전후 상당기간 제도권 금융 대출이 힘들던 대다수의 재일교포들의 사채이용률은 높을 수밖에 없었고 이를 배경으로 일본 사채 및 부동산 시장에서 재일교포 큰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자금확보 및 사채회수에 한국계 야쿠자들이 많이 이용되어 왔기에 총회꾼, 불법대출, 주가조작, 한일 커넥션을 통한 자금세탁에 활용되기에도 유리하였다.[46] 도진카이에서 회장 승계문제로 갈라져 나와 야쿠자 항쟁에 유래없을 중화기들을 동원해 항쟁을 벌였던 재일교포계 조직인 규슈 세이도카이의 2대 가이쵸였으며 항쟁 후 해산하였다가 나미카와무쓰미카이로 재결성해 개칭한 나미카와카이의 회장.[47] 고도카이 총재 다카야마 기요시.[48] 교쿠신렌고카이 회장 하시모토 히로후미(강홍문). 3대 야마켄구미 와카가시라였고 2003년부터 3대 야마켄구미 조장대행을 하며 실질적으로 야마켄구미를 이끌던 강홍문은 2005년 야마켄구미 4대 구미쵸가 이노우에 구니오로 승계될 당시 자신의 교쿠신렌고카이를 이끌고 야마구치구미 2차단체로 독립 직계 단체로 승격한다.(야마켄구미 산하단체였을 당시에도 웬만한 직계단체 보다 큰 세력을 가진 무투파 유력 단체였다.) 2015년 4대 야마켄구미를 중심으로 고베 야마구치구미를 구성해 6대 야마구치구미를 독립할 당시 강홍문은 야쿠자 은퇴를 고려하였으나 6대 야마구치구미 구미초인 쓰카사 시노부의 회유와 압력에 야마켄구미와 거리를 두게되고 고베야마구치 구미 분열에 가담하지 않게된다. 쿄쿠신렌고카이는 야마구치구미 내에서 독보적인 연예계 커넥션을 가지고 있으며 오랜기간 일본 최대 게닌 사무소인 요시모토 흥업을 비롯, 연예계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시마다 신스케의 은퇴 역시 깊은 관련이 있다.[49] 오하라구미 구미초 오하라 히로노부(윤광희). 초대 다쿠미구미 샤테이카시라보좌 및 본부장이었다. 1989년 타쿠미 마사루가 5대 야마구치구미 와카가시라 취임 시 독립 직계단체로 승격한다. 항쟁에 적극적으로 앞장 섰던 무투파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분열사태에 타쿠미구미와 입장을 달리 했다.[50] 조선적은 북한의 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에서 대한민국 국적 또는 일본으로의 귀화를 선택하지 않은 식민지 전 조선국적을 뜻한다. 대부분 조총련 계열활동을 한다.[51] 단 재일교포의 현재 비율은 일본 인구의 0.5~0.6%로, 인구 대비 야쿠자의 비율은 여전히 토종 일본인에 비해 2~3배 가까이 높긴 하다. 귀화한 한국계 일본인을 합치면 한국계의 비율은 아직도 꽤 높다고 봐야 한다.[52] 신문기사에 따라서 일본식으로 성씨를 앞에 두고 이름을 뒤에 표기(아무로라 나세리, アムロラー・ナーセリー)하기도 한다.[53] 단 요즘 단지도 함부로 하면 단지강요라고 두목이 처벌 받기 때문에 일반적이지는 않다. 따라서 어느정도의 돈을 내고 탈퇴하는 경우가 많다.[54] 강제 은퇴 취급이기 때문에 근신이나 좌천하고는 다르다. 이때 어지간하면 제적된 경우 복귀는 어렵지만, 세상일이 다 원칙대로 돌아가는 건 아니기 때문에 파문보다는 강도가 낮은 처벌이라 조직과 원만하게 협상이나 화해가 되면 복귀하는 케이스도 있다.[55] 물론 '파문'이라는 명칭이 있다 뿐이지,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각국의 조폭들이 "너, 나 대신 감방 다녀와라"하는 거랑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실컷 감방 다녀와도 천대받는 경우가 꽤 되고, 그 결과 감방에 있을 때 증언을 하고 형량을 낮추는 사법거래에 응하기도 한다. 조직범죄가 기존의 정규 조직원 활용에서 외주를 주는 방식으로 선회하게 된 원인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56] 한데 어떤 케이스는 새로운 두목에게 구 두목의 가신이 일단 위장 절연되었는데 몰래 경찰에 신고하고 진짜 절연돼서 뒤통수를 맞은 사례도 있다. 조직 간 암투에 희생당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57] 조직마다 양식이 달라서 빨간색 글씨 파문도 있다. 이 경우 절연과 비슷하게 취급된다. 또한 절연됐을 경우 절연자의 얼굴 사진을 추가하기도 한다. 이런 문서는 보통 인쇄된 글씨로 타이핑해서 보내지만, 전통을 중시하거나 특히 중요한 경우 수기로 써서 보내기도 한다.[58] 다만 평판이 좋고 인맥이 넓은 대상자가 단순한 권력 다툼이나 두목과의 불화로 쫓겨난 경우 파문된 것도 무시하고 독립하여 새로운 조직을 창설하거나, 다른 조직에서 받아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런 케이스인 경우 갈등이 커져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으로 의리없는 전쟁의 모티브인 히로시마 항쟁의 주인공 미노 코조가 있다.[59] 위장 파문이 있기 때문에 이런 문서를 봐도 경찰은 쉽게 믿지 않고 정말 사고 쳐서 쫓겨났는지, 위장 처벌인지 면밀히 살핀다.[60] 일본은 사형이 집행되는 국가이다.[61] 주로 공사장에서 훔친 발파용 다이너마이트를 썼다.[62] 사실 한국 조폭이 불법 루트로 총을 못들여오는 건 아니지만, 총기규제가 엄청나게 빡빡한 대한민국에선 사람들이 어느정도 모여있는 곳에서 총성 하나만 울려도 대사건이며, 까딱 잘못하다간 경찰에게 사건이 넘어가서 넘어 온갖 특수장비로 중무장한 경찰특공대에게 묵사발이 날 수도 있고 만일 TT 권총이나 마카로프등 북한 측 요원들이 자주 사용하는 중국,러시아제 무기라면 북한과의 연관성을 의심한 국가정보원의 방첩 수사망과 함께 군 특수부대들에게 싸그리 소탕당할수도 있다.[63] 사실 일본이 민간 총기규제에 대해서는 한국보다 더 강한편인데 한국과 달리 실탄사격장이 불법이며 사냥용 총 소지도 한국에 비하면 빡센 편이다.[64] 한마디로 민법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으면 그것도 배상하고 이 조항의 손해배상 책임도 지라는 의미다. 폭대법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쇼와 시절까지는 소위 젊은 조직원들이 사고를 쳐도 조직원 선에서 총대를 매고 감옥에 가거나 하부조직선에서 배상하고 도마뱀 꼬리 자르듯 해결하는 일이 가능했다. 그러나 폭대법이 제정되고 난 후 부터는 조직의 본가 두목한테도 무과실책임을 물어서 배상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야쿠자들의 운신폭이 크게 줄어들었고 범죄 피해자들이 민사소송으로 제대로 피해보상 받는 일이 가능해졌다. 가난한 젊은 실행범이 배상해봤자 그동안은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본가 두목들은 충분히 돈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연대책임을 물어서 배상하기 싫었던 본가에서 하부조직원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했고 범죄율 감소효과도 일어났다.[65] 그러니까 불법체류 외국인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게 된다는 소리이다.(...)[66] 예컨대 본부에 등록해야하는 직참들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에는 철저히 숨은 조직원이 돼서 조직에 등록도 안하고 심지어 문신도 안하는 기업사제가 되는 식으로 숨어있는 것이다.관련기사 기사에 따르면 지금은 과거와 달리 조직원이 많다고 자랑하는 그런 시대는 아니라고 한다. 조직에 등록을 안하면 일단 폭배조례는 피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신입들은 가급적 등록을 안시킨다고 한다. 최근 야쿠자들이 노인들이 많아 보이는 것도 이미 경찰 관리대상인 간부급 노인들은 어쩔 수 없지만 젊은이들은 폭배조례를 피하기 위해 등록을 안시키거나 야쿠자와 한구레의 중간쯤 느낌으로 빼서 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본 경찰의 통계로 수십명 규모의 작은 조직이 지정폭력단이 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 규모가 그정도라기 보다는 직참들이 그 정도고 실제 조직원은 그 밑에 숨어있는 인원들이 있어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조직폭력배와 유사한 느낌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67] 한편 역으로 폭배조례를 악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일반 시민을 야쿠자 관계자인것처럼 말하면서 조직에서 내쫒는 파문장을 거래처에 배송하는 방식으로 명예를 훼손하는 사건도 적발된 바 있다. 폭배조례에 따라 야쿠자와 사업관계를 가지면 안되기 때문에 거래처에서 문의와 거래중지가 쇄도했고 이에 따라 일반 시민이 큰 피해를 입은 것이다. 대립하는 관계인 인간을 사회적으로 매장하기 위해 폭배조례를 악용한 것. 이 사건의 당사자는 H씨로 오우미잇가의 다카야마 총장과 친분 관계였으나 야쿠자 조직원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오우미잇가의 조직원들과 트러블이 있었고 이들이 H씨를 음해하기 위해 가짜 파문장을 뿌린 것이다. 몇몇 저널리스트들이 오우미잇가의 조직원들과 인터뷰하고 H씨는 야쿠자의 숨겨진 기업사제라는 기사를 냈으나 명예훼손 소송 결과 모두 H씨가 승소하였다고 한다.기사[68] 일본의 특수경찰로 한국의 경찰특공대, 미국의 SWAT에 해당된다. 야쿠자 소탕을 전문적으로 하기에 아쿠자에게선 죽음의 사신이다.[69] 당연하겠지만 외국인에게 아무 이유없이 상해를 입히는데 정부가 방치하면 외교문제가 생긴다. 만약 한국인인 당신이라면 일본 경찰과 한국 대사관 혹은 총영사관에 신고하자.[70] 각 지역 경찰청 및 도쿄 경시청의 조직범죄 대책부 소속으로 대 폭력단 전문 수사 형사들이다.[71] 폭력단대책법 시행 20년째인 2011년 당시 기준 으로 일본 경찰은 야쿠자 전체 숫자가 약 6,000여명이 감소한 걸로 추산하고 있다. 무한팽창하던 야쿠자 조직이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2021년 현재는 이보다 더 줄어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72] 사실 이와 같은 논리로 자위대의 모집난과 이유가 같다.[73] 이는 고베야마구치구미의 독립에 따른 영향을 고려해야겠지만, 고베야마구치구미의 구성원 수를 합쳐도 10년 전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74] 예를들어 은행의 경우 이미 개설해 놓은 계좌도 현금을 싹 빼주고 강제해지당한다.[75] 2021년 영화 '야쿠자와 가족'에서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05년, 살인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14년 뒤인 2019년에 출소한 켄지가 마주친 현실은 폭력단 대책법의 영향으로 대다수의 조직원들이 조직을 떠나버려 조직의 규모가 대폭 축소되어 버린 데다, 보스조차 암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고 다 늙은 조직원들이 남의 어업장에 몰래 들어와 장어 치어 훔치고 밥값 벌었다고 시시덕거리는 걸 관망하는 시궁창 같은 현실이었다. 게다가 과거 호형호제 하던 호소노는 방사능 처리장에서 일하며, 자신까지 범죄자 취급 당하는 것이 두려워 켄지를 피한다. 심지어 과거 내연녀였던 유카조차 자신이 야쿠자와 얽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직장인 공무원 자리에까지 해고당해 켄지에게 제발 자신과 헤어져 달라며 오열했고, 켄지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아야도 이지메를 당해 부득이하게 전학을 가게 되었다.[76]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돈맛(...)을 보고 합법적인 기업화가 되어 음지를 통하지 않더라도 정상적으로 부를 창출하는 집단(=회사, 기업)이 되고, 음지에서는 손을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77]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대표적인 조직인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과 손잡고 코카인 170kg(시가 100억 엔 상당)를 몰래 들여왔다가 걸린 이나가와카이 간부, 스미요시카이 간부가 발각되었다.[78] 오히려 야쿠자의 대부분은 여타의 범죄 단체들이 그렇듯 빈민이거나 일본 내에서 차별받는 이들, 소외된 민족들이 주류이다.[79] 그래도 감이 오지 않는다면 용접할 때 순간온도가 대략 그쯤 된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가스레인지 불꽃 온도가 약 1,400~1,600°C 정도 된다.[80] 예컨대 한국 조폭은 군대를 다녀와서 사격에 능하다거나, 청하위생파가 최대조직이라던가, 한국 조폭은 본명으로 활동이 불가능하다던가 하는 잘못된 내용이 있다. 한국 조폭이 징병제 하에서 군대를 갔다오는 인원도 있지만 어렸을적 범죄를 저질러서 모두 군대를 가는 건 아니고 군출신이라고 딱히 사격이 능한건 아니니 일본인이 한국 징병제에 가지고 있는 막연한 환상이라고 보는 게 옳다. 한국 조폭의 인원수에 대한 내용은 조폭 항목에도 적혀있지만 경찰 통계에 잡힌 인원만으로 실제 인원숫자가 아니다. 본명으로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건 아마도 범단으로 조직구성을 대놓고 할 수 없다는 걸 말하는 것 같다.[81] 즉, 이라고 볼 수 있다.[82] 영어로 치면 'transporter'[83] 재일출신으로 한국명은 김효지[84] 다카야마 도쿠타로의 친아들이다.[85] 이때의 사건으로 인해 큐슈는 수라의 나라라는 별명을 인터넷상에서 얻었다.[86] 1988년에는 삼합회랑 경쟁하다가 산탄총덤프트럭으로 애먼 중화인민공화국 후쿠오카 영사관을 공격했고, 2000년엔 시모노세키 시장 선거를 도와주겠다며 당시 모리 요시로 아래에서 내각부 수석차관을 역임중이던 아베 신조에게 돈을 갈취하려다 아베가 이를 거부하자 아베의 의원 사무실과 자택에 화염병을 던진 전력까지 있다.#[87] 사실 여기엔 반전이 있는데 아베 신조의 비서가 구도카이를 찾아가 상대방 후보를 비방하는 유인물을 살포할 것을 사주하고 입을 싹 닦자 빡친 쿠도카이측이 시모노세키의 아베 신조의 사무실과 집에 화염병을 투척한 것이다. 그러나 아베가 언론, 경찰 등에 압력을 넣어 이런 사실은 보도되지 못하고 애꿎은(...) 쿠도카이 조직원들만 깜빵에 갔다 와야 했고 2007년에 이르러서야 전모가 밝혀졌다. 이러한 내막을 몰랐던 일반 시민들은 정치인을 건드리는 건 야마구치구미도 못하는 짓인데 과연 쿠도카이답다는 반응이었다.[88] 2021년 현재도 구치소에 수감중이다. 전 어협 조합장 사살사건, 어협 조합장 아들 테러사건, 전 경찰 간부 총격사건, 간호사 습격사건 관련으로 1심 재판에서 지정 폭력단 조직의 두목으로는 사상 최초로 사형이 선고 되었다.[89] 이 어협 조합장은 야마구치계 폭력단 관계자로 젊은 시절 항쟁에서 쿠도카이 간부를 살해한 과거가 있었다. 가뜩이나 찍힌 상태에서 이권개입을 거절하자 살해했다는 추측이 유력하다.[90] 치과의사로 살해된 전 어협조합장의 손자[91] 민간인 총격사건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이었다.[92] 여담이지만 이 조직의 산하 신세이카이(眞誠会)에는 예전에 아다치구를 근거지로 한 불량 청년부 조직 극청회(極青会)가 있었다. 그리고 극청회의 두목은 고작 18세 소년이었고, 그 소년의 할아버지는 야쿠자 출신 정치인, 고모부는 야쿠자 고위 간부고, 아버지는 증권사 사장, 어머니는 피아노 강사였으며, 여동생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 한 불쌍한 여고생을 감금폭행살인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러 20년을 선고받고 이미 출소하였다. 피해자가 겪은 일이 너무나 잔혹하여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이다. 범인들이 출소한 뒤 주범 한 명은 교쿠토카이와 관련이 있다고 하면서 한구레짓을 하고 다니고, 한 명은 신세이카이에 가입하여 야쿠자 생활을 했다고 한다.[93] 영화 의리없는 전쟁의 오오토모구미의 모델이다.[94] 유명한 배우 스가와라 분타나 와카야마 토미사부로와 매우 친했고 한국의 전국구 두목인 조창조와의 교분도 깊었다. 그래서 한국 워커힐 호텔 카지노로 많이 놀러왔다고 한다. 야마구치구미 시절부터 무투파로 이름이 높았지만 계속 싸움을 하다가는 폭대법이 성립이 될거라고 우려하는 신중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2020년 9월 1일 향년 90세로 사망했다.[95] 회장 나카노 타로는 아이즈코테츠카이와 타쿠미 마사루가 서로 공모해서 5대 두목의 심복인 자신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믿었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사건이 일어난지 얼마 안됐는데도 오사카의 타쿠미 마사루가 일의 실패를 이미 알고 있는 걸 보고 음모를 직감했다고 한다.[96] 여담으로 사살 계획의 총지휘역인 요시노는 한국으로 도망쳤으나 이후 한국 아파트에서 의문사한다. 또 한명의 실행범은 고베에서 숨어지내다 쓸쓸히 병사한다. 나머지 실행범들은 도망쳤으나 이후 계속된 수사로 차례로 체포되어 실행범 3명은 징역 20년, 현장 사살을 지휘한 나카노카이 하부조직인 자이츠구미 두목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2018~2020년 사이 실행범 3명은 모두 만기출소했는데 이때에도 이들의 대한 소식이 업계 관계자나 잡지에서 잠깐 화제가 됐었다. 기사에 따르면 현재 야마구치구미도 2개로 분열돼있고 20년만에 출소한 지라 세상이 너무 바뀌어서 정양이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실행범 중 한명인 Y는 출소때 고베 야마구치구미 소속 이케다구미의 후배가 마중을 나왔다고 하며 이 후배는 과거 나카노카이 소속이었던 이타리류카이(至龍会)의 일원으로 실행범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어 20년간 편지로 교제했다고 한다. 한편 타쿠미구미로서는 전 두목의 원수지만 20년전 일이고 실행범에 불과하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한 일로 더 이상 원한을 갖진 않고 보복하진 않을 것이라는 이리에 타다시 현 두목의 말이 있었고, 이 말이 Y에게도 전달됐다고 한다.[97] 타쿠미 마사루 암살은 대담한 히트였는데 신고베 오리엔탈 호텔 티라운지 구석에서 타쿠미가 야마구치구미 최고 간부들이었던 기시모토 사이조, 노가미 테츠오와 점심 식사 겸 차를 마시고 있을 때 히트팀이 나타나 권총을 마구 난사해 살해했다. 기시모토나 노가미는 무사였다. 훗날 기시모토는 그때를 회상하며 '총에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맞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여하간 뻥 뚫린 장소였던지라 운이 나쁘게도 옆 테이블에 민간인 치과의사가 앉아 있었고 유탄에 맞아 병원에 옮겨젔지만 이내 사망했다.[98] 이 나카노카이 내부 항쟁 사건은 야마구치구미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데 이를 관망하던 고도카이의 츠카사 시노부가 6대째로 떠오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설에는 타쿠미 마사루 암살 사건은 조직의 실권을 쥐고 있던 타쿠미와 갈등이 있던 5대 와타나베 두목의 양해를 받았다는 말도 있기 때문에 지금도 전모는 베일에 쌓여있는 일이다. 즉 추정하자면, 와타나베 두목과 타쿠미 부두목의 갈등으로 부두목이 두목의 심복 나카노를 제거하려 했고 이에 실패하자 와타나베 두목이 나카노를 부추겨서 부두목 타쿠미를 제거했다. 처음엔 파문 정도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사건의 전모를 알아챈 고도카이를 비롯한 집행부의 강요로 나카노는 절연당해 버림 받고 5대 와타나베 두목도 은퇴했다는 쿠데타 시나리오가 유력한 가설이다. 이러한 야마구치구미 내부 암투를 이용해 사건의 결정적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추정되는 고도카이의 츠카사 시노부가 6대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때 밀려난 와타나베 두목의 출신조직인 야마켄구미와 고베파는 나고야를 중심으로한 고도카이의 전횡을 참다못해 결국 2015년 야마구치구미 조직 분열사태를 주도하여 조직을 깨고 만다.[99] 나카노 타로는 이후 뇌졸중으로 쓰러져 요양하다가 2021년 1월 사망하였다. 5대 야마구치구미의 심복이었고 징역의 나카노 타로, 무투파 나카노 타로로 불렸을 정도로 거친 인물이었지만, 나카노 타로의 아들이 학교에서 싸움을 벌이자 직접 찾아가 아들이 폐를 끼쳤다고 사과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100] 미조구치 아츠시 기자 대담 참고기사.기사2[101] 즉 일본은 민주적인 결사의 자유는 허용하되 이들을 양지로 끌어내서 더 감시하고 관리, 통제하기 쉽게 만든 것이다. 마치 '일본에는 저렇게 대놓고 야쿠자가 설치는데 참 이상한 나라네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본식의 관리 통제 방식 역시 효율적이다.[102] 工藤連合草野一家の組員の7割はマイノリティ、つまり被差別部落や在日韓国朝鮮人で構成されていることや、警察国家と化した日本社会への警鐘、組長と組員が顔を合わせたこともないような広域組織化ではなく、その土地土地に根付いた、地域密着型の分権ヤクザこそが今後のヤクザのあるべき姿なのではないか?という主張等々を、いささか彼の代名詞的である愛嬌道的なユーモアな語り口ではなく、かなり真面目一辺倒でインタビュアーの質問に答えていた。 쿠도연합 쿠사노일가의 회원의 7할은 마이너리티, 즉 피차별 부락이나 재일한국조선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고, 경찰국가화한 일본 사회에 대한 경종, 조장과 조원이 만난 적도 없는 광역 조직화가 아니라, 그 토지에 뿌리 내린, 지역 밀착형의 분권 야쿠자가 향후의 야쿠자가 있어야 할 모습이 아닐까?라고 하는 주장들을, 약간 그의 대명사적인 애교도적인 유머적인 말투가 아니고, 꽤 성실 일변도로 인터뷰어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었다. - 블로그 인용.[103] 램지어가 어떤 의도로 논문을 썼는지, 아니면 램지어는 그냥 무미건조하게 사실을 썼는데 한국 기자들이 악의적으로 왜곡을 한건지 몰라도 죽은 미조시타 히데오로서는 상당히 억울한 부분이 있을듯 하다.[104] 쇼와 덴노를 시작으로 당시 역대 일본의 주요 수상들뿐만 아니라 해외로는 하이에크나 덩샤오핑과도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한 인물이다.[105] 원곡과 콜라보를 한 영상도 있는데 참고로 원곡을 부르는 사람은 의리없는 전쟁의 텐세이카이 회장인 다케다 아키라 역으로 나왔던 고바야시 아키라이다.[106] 원문 どっちがヤクザかわからん.[107] 이때문에 나카지마는 새끼 손가락이 하나 없다.[108] 실제로 쌍팔년도 야쿠자는 그런 식으로 배지를 자랑스럽게 과시하며 다니는 경우도 많았지만, 폭대법이 강화된 이후로 그런 사례는 없어졌다.[109] 그러니까 메이지, 다이쇼, 쇼와 초기[110] 여자 야쿠자가 설치는 것[111] 참고로 타카쿠라 켄은 단골로 출연했다.[112] 특히 "딜러" 역할.[113] 마피아 영화인 <대부3>에서 헬기에 의해 수많은 패밀리 두목들이 몰살당할 때 어떤 마피아가 자신의 '행운의 코트'를 붙잡느라 총알을 못 피하고 죽었다.[114] 환금과정이 불법이다.[115] 유튜브에서 삼합회 싸움 같은 것을 검색해보면 연장이랍시고 청룡도를 들고 쳐들어가는 게 CCTV에 찍힌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116] 조직원들이 하이테크 무장(복합 돌격소총)을 하고 나온다거나 닌자 부대를 보유하고 있다거나.[117] 애초에 이 게임은 병맛게임이라 이것보다도 괴기스러운 상황들이 자주 펼쳐지기에 이 정도는 평범한 편이다(...)[118] 파르페나 크레이프, 푸딩같은 달달한 디저트를 좋아하고 고양이, 강아지를 보면 뿅간다거나 프리큐어를 즐겨보는 설정이 많다.[119] 사실상 메이드라는 존재를 야쿠자로 치환한 작품이다.[120] 야쿠자가 쇠퇴한 시기를 반영한 용과 같이 7 이후부터는 Yakuza대신 Like a Dragon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2024년 여름, Yakuza Wars라는 상표를 출원하면서 현재 쇠퇴기에 접어든 야쿠자가 아닌 과거 야쿠자의 전성기 이야기를 다룬다는 추측이 생기고 있다.[121] 영화의 엔딩이 호쿠리쿠 야쿠자가 아사다구미(야마구치구미)를 이용하다가 호쿠리쿠를 외부 세력이 못들어오게 지킨다며 아사다구미(야마구치구미) 간부를 상대하는 걸로 끝난다. 가뜩이나 실제 주인공이 된 인물인 카와우치 히로시와 갈등 중이었던 야마구치구미 간부 스가타니 마사오가 이를 보고 격노하여 주인공의 모티브가 된 인물인 카와우치 히로시를 쏴죽이는 소위 삼국사건이 발생했다. 야마구치구미 집행부는 이를 중요한 사건으로 여겨 스가타니를 절연했다. 이 사건 이후 후카사쿠 킨지는 실록물에 손을 뗀다. 영화에는 양원석을 모티브로 잡은 카나이구미의 호쿠리쿠 진공도 묘사된다.[122] 일본제국령 미서부 파트에서 제법 비중있게 등장한다. 일본이 점령한 미서부 영토에 영역을 넓혀서 암약하는데 태생이 범죄조직이다보니 일본제국 정부와는 다소 엇박자가 있다. 작중에서는 일종의 제3세력처럼 묘사된다.[123] 카케로의 경우 스스로를 야쿠자라고 칭한 적은 없지만, 도박장을 관리하던 인물이 조직을 세워 작중 현재까지 계속 그 일을 한다는 점에서 야쿠자의 기원과 유사하다. 쿠라라 파야 빼도박도 못할 야쿠자.[124] 이쪽은 평범한 집안이었다가 야쿠자와 엮이게 되었다.[125] 코단샤와 함께 야쿠자 조직명에 자기네들 회사 이름을 쓰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치죠 라쿠 항목 참고.[126] 용과 같이 시리즈와 세계관이 같기 때문에 동성회가 나오고 배경도 카무로쵸다.[127] 이들 조직의 정확한 명칭은 나오지 않고 그냥 야쿠자라고 불린다.[128] 겐지 아버지가 야쿠자의 보스다.[129] 아버지가 나라오카 조직에 소속했는대 야쿠자들간 전쟁중 사망해버리자 나라오카와 켄이 대신 키웠다. 켄지처럼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는지 싸움 실력도 있는편.[130] 두 조직간 항쟁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들의 교제가 시작된다.[131] 쿠즈류 후유히코는 "초고교급 야쿠자"이고 쿠즈류 나츠미는 쿠즈류 후유히코의 여동생이다. 페코야마 페코는 이들을 지키는 히트맨이다.[132] 조장인 위의 경쟁조직 두목들과 다르게 동맹장(맹주)이다.[133] 캐릭터 설정이 대폭 변경된 세 번째 시간선의 첫 작품인 본작에서 야쿠자의 가문이 된 타카하시 가문 출신이지만 둘 다 야쿠자로서의 삶을 청산하기 위해 가문과 등을 졌다.[134] 공식적으로는 가부키 배우가 본업이지만 비밀리에 야쿠자를 이끌고 있다.[135] 작중에선 자세히 언급은 되지 않았지만 정황상으로는 야쿠자로 추정된다.[136] 야쿠자 모델 게임에선 정점에 달해있는 작품이기에, 등장인물 80% 가량이 야쿠자 소속이다.[137] 정작 주인공인 키류 카즈마와 카스가 이치반은 야쿠자가 아니다.[138] 야쿠자로 나오진 않지만 캐릭터 모델이 야쿠자 전문 배우고 전반적인 모습이 야쿠자에 왔다. 그리고 캐릭터 이름도 야쿠자의 의식 사카즈키에서 따왔다.[139] 제목에서 암시되듯 주인공 캐릭터와 납치된 히로인만 직책이 야쿠자일뿐 게임 자체의 분위기는 코믹한 저작권 개무시 패러디 액션 게임이다.[140] 본명 시오미 겐. 작중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인 히토츠바시파의 4대째 두목이긴 한데, 본인의 4대째 계승에 반발하여 떨어져 나간 치요다회로부터우 암살 위협때문에 부두목 이시카와의 권유로 전신 성형수술을 받았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겉모습과는 달리 신체연령은 그대로.[141] 야쿠자의 딸이다[142] 아이러니 한건, 오렌 이시이는 일본, 중국, 미국피 섞인 혼혈이라는 것이다.[143] 악성격절마경 신주쿠에서 잡몹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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