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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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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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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insen01.jpg

1. 개요2. 편찬3. 분류
3.1. 황별3.2. 신별3.3. 제번
3.3.1. 백제계3.3.2. 임나(가야)계3.3.3. 신라계3.3.4. 고구려계3.3.5. 한(漢)계3.3.6. 기타
4. 한국어 도서5.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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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찬성씨록([ruby(新撰姓氏録, ruby=しんせんしょうじろく)])은 815년에 고대 일본성씨들의 계보를 모아 만든 책이다. 총 1,182씨의 계보가 실려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원본이 아니라 초략본으로, 내용 자체는 매우 간략하다.

2. 편찬

《신찬성씨록》은 수도 헤이안쿄케나이를 본관으로 하는 1,182씨족의 계보를 한데 모아 만들었다. 간무 천황은 799년에 각 가문에게 출자와 씨성의 문제점을 바로잡고자 본계장을 제출하라고 명했으나, 이를 집대성한 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806년에 세상을 떴다. 간무 천황의 칙령으로부터 16년 후인 815년, 간무 천황의 아들인 사가 천황의 치세에 이르러서 편찬이 완료되었다.[1] 편찬에는 간무 천황의 아들인 만다 친왕(万多親王)과 간무 덴노의 측근들이 참여했다.

귀족에서 분파된 씨족은 본계장의 내용이 맞는지 종중의 장자에게 확인을 받아 제출하도록 했다. 다만 각 가문이 제출한 내용을 걸러내거나 정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대부분은 제출된 본계장의 내용을 그대로 기록했다. 서문에 의하면 계보를 바치지 않은 가문이 반이 넘었다. 본계장을 제출하지 않아도 책에 싣지만 않을 뿐 처벌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완성된 책의 분량이 상당하여, 본문 30권과 목록 1권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815년 7월에 작성한 상표문이 포함되었다. 원본은 가마쿠라 시대까지는 보존되었던 듯하지만, 현재는 달랑 1/10인 초략본 3권만 남았다. 다른 문헌에 인용된 일문(逸文)들을 바탕으로 그 전모를 추측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서에 보이지 않는 씨족과 인명이 상당수 나타나며, 그중에는 한반도 도래계 씨족도 많다. 따라서 이 책은 일본 고대사는 물론 한일관계사나 한국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통한다.
원래 생겨난 바를 근본으로 하면 곧 3체(三體)가 있고, 그 무리로 나누어진 것을 구별하면 곧 3례(三例)가 있다. 천신과 지기의 혈통을 신별(神別)이라고 하고, 천황과 황자의 갈래는 황별(皇別)이라고 하고, 대한(大漢)과 삼한(三韓)의 종족을 제번(諸蕃)이라고 한다. 이를 3체라고 한다.
갈래가 나누어진 조상과 특별히 가문을 세운 선조는 출자(出自)라고 기록 하였다. 고기(古記)와 본계(本系)에 모두 기록되어 실려 있거나, 고기에는 실려 있으나 본계에 빠졌거나, 본계에 실려 있으나 고기에 빠진 경우는, 동조지후(同祖之後)라고 기록하였다. 조상과 씨명은 고기에 비록 잃어버리거나 빠졌더라도, 선조를 세운 것에 잘못이 없으나, 다만 사안이 매우 의심스러우면, 지후(之後)라고 기록하였다. 이를 3례라고 한다.
《신찬성씨록》 서문 중 발췌
서문과 같이 성씨는 황별과 신별, 제번의 3체로 구분된다. 쉽게 말해서 황별은 천황가의 후예, 신별은 일본 신화의 신족인 아마츠카미, 쿠니츠카미의 후예를 자칭하는 가문이다. 제번은 한반도중국에서 건너온 도래인의 후예를 자칭하는 가문이다. 서문에 보면 신별을 황별보다 먼저 두고 있는데, 편찬하면서 황별을 우선시하도록 바뀌었다. 시조와 본계를 확인할 수 없는 씨족은 미정잡성(未定雜姓)으로 분류했다.

3례는 서술 방식을 말한다. 3례에서 판단 기준이 되는 고기(古記)란 《고사기》와 《일본서기》, 《속일본기》 등의 역사서를 포함해 조정에서 보관하던 문서들이며, 본계(本系)는 각 가문에서 작성해서 올린 족보이다. 총 30권 중에 황별이 1권부터 10권, 신별이 11권부터 20권, 제번이 21권부터 29권이었다. 마지막 30권은 미정잡성이었다. 씨족들은 본관에 따라 정리되었다. 헤이안쿄의 좌경(左京)과 우경(右京), 야마시로(山城), 야마토(大和), 셋츠(摂津), 카와치(河内), 이즈미(和泉)의 순서다.[2]

서문에 따르면 제번 씨족에 사성을 허용한 것이이야말로 《신찬성씨록》 편찬의 동기를 제공한 것처럼 보인다. 《일본서기》 기사와 함께 보자.
칙을 내리기를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은 오랫동안 성스러운 교화를 사모하여 우리나라에 의탁하여 왔다. 성(姓)을 내려주기를 원하였으므로 모두 들어주라. 그 호적의 기록에 성과 족(族)이 없는 경우 이치에 온당하지 않더라도 마땅히 개정하게 하라"고 하였다.
《일본서기》 권20 고켄 천황 덴표호지(天平寶字) 원년(757년) 4월 4일#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 제번 출신 사람들에게 원하는 대로 허락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이전의 성과 뒤에 받은 성이 같아지고, 외국과 일본의 씨족이 서로 뒤섞이게 되었다. 각지의 서민들이 고귀한 신분의 후손이라고 내세우고, 삼한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일본 신의 후예라고 일컫게 되었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바뀌니 알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게 되었다. 덴표호지(天平寶字, 757~765) 말에 그 다툼이 더욱 빈번해져서, 이에 이름있는 학자들을 모아 씨족지를 편찬하였으나 초안이 만들어지는 중에 어려움을 만나서 여러 학자들은 흩어지고 편찬은 중단되었다.
《신찬성씨록》 서문 중 발췌
서문에 따르면, 당시 일본 지배층은 씨성의 문란이 신분제로 이루어진 국가의 질서를 흔드는 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국가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출자를 참칭하는 것은 황별과 신별에도 해당하는 현상이었기 때문에 서문처럼 제번 탓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신찬성씨록》 편찬의 목적은 천황을 정점으로 한 율령 국가의 지배 질서를 안정시키려는, 보다 거시적인 것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한반도와 중국 국가들을 포함한 제번을 규정하고 제번을 황별과 신별 아래에 배치함으로서 천황과 일본 중심의 세계관을 완성하고자 한 의도 역시 엿보인다.
표기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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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칭호, 씨족명, 인명, 지명, 연호 등은 일본식으로 표기합니다. 도서명, 관직명은 한국식으로 표기합니다.
 * 도래계 씨족의 인명은 한국식으로 표기합니다. 일본에서 받은 성씨를 사용할 때에는 일본식으로 표기합니다.
 * 기타 단어들은 한국식으로 표기합니다.

3. 분류

3.1. 황별

황별은 모두 335씨족으로 되어 있다. 이 중 수도의 좌경과 우경이 각각 104씨, 81씨로 합하면 전체의 55%를 차지한다. 결사팔대(欠史八代)라고 하여 치적이 전혀 기록되지 않은 2대 스이제이 천황부터 9대 가이카 천황까지의 여덟 천황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씨족이 187씨로 무려 56%에 이른다. 사실상 천황의 계보를 얻고 싶은 귀족들이 후대에 조작한 결과이다. 현 일본 황실의 직계 조상으로 여겨지는 게이타이 천황 이후는 51씨로 전체의 15%에 불과하다. 이 15%만이 실질적인 실제 천황 후손의 씨족이라고 볼 수 있다.

황별은 마히토(真人)의 성을 받은 씨족부터 시작한다. 마히토의 다음에는 아소미(朝臣) 성을 받은 씨족이 이어진다. 그러나 마히토의 성을 받았다고 반드시 상위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실제로는 아소미 성을 받은 씨족의 인사가 더 높은 관위에 오른 경우가 많았다. 아소미의 필두는 사가 천황의 여덟 자녀들이 신적강하하면서 받은 미나모토노아소미(源朝臣)이다.

좌경황별의 12번째 씨족은 오호하라노마히토(大原真人)인데, 출자가 비다쓰 천황의 손자인 '백제왕(百済王)'이라고 되어 있다. 일본 황족이자 백제왕인 인물의 정체에 대해서는 비다쓰 천황의 손자로 황위에 오른 조메이 천황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조메이 천황의 형제들 중 한 명이라는 설에 대해 서술했다. 그리고 시조가 같다고 하는 8씨족이 더 있다.
오호하라노마히토(大原真人) 출자는 비다쓰 천황의 손자 백제왕이다. 속일본기와 부합한다.
시마네노마히토(島根真人) 위와 시조가 같다. 백제친왕(百済親王)의 후손이다.
도요쿠니노마히토(豊国真人) 위와 시조가 같다. 속일본기와 부합한다.
야마노헤노마히토(山於真人) 위와 시조가 같다.
요시노노마히토(吉野真人) 위와 시조가 같다.
구하타노마히토(桑田真人) 위와 시조가 같다.
이케노헤노마히토(池上真人) 위와 시조가 같다.
우나카미노마히토(海上真人) 위와 시조가 같다. 속일본기와 부합한다.
기요하라노마히토(清原真人) 구하타노마히토와 시조가 같다. 백제친왕의 후손이다.

3.2. 신별

파일:성씨록12.jpg

신별은 모두 404씨족이고, 천신(天神) 265씨, 천손(天孫) 109씨, 지기(地祇) 30씨로 구성된다. 천신 계열은 아마테라스의 손자인 니니기가 강림할 때 같이 내려온 신들의 자손이 많다. 천손은 니니기로부터 진무 천황 직전까지 3대 사이의 후손들이다. 지기는 일본 토착신들의 후손을 말한다.
=> 신별은 한반도에서 건너오자마자 천황이 되거나 혹은 천황가에 봉사하는 귀족들이 현실의 주종 관계를 신화의 세계에 투영시켜 만들어낸 계보로 해석된다. 현실적으로 인간이 신의 자손일 수는 없지만, 자신의 선조가 다른 씨족들보다 오래 전부터 천황가 가까이에서 일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하면 된다. 권력의 중심에 있던 후지와라 가문이 가장 위에 배치되었으며, 그 일족인 나카토미(中臣) 씨족들이 뒤를 잇는다. 우대신 후지와라노 소노히토(藤原園人)와 참의 후지와라노 오츠구(藤原緒嗣)가 편찬에 참여한 영향도 있을 것이다.

후지와라노아소미(藤原朝臣)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최고 명문가치고는 분량이 적지만, 다른 가문들에 비하면 아주 후한 편이다. 남아 있는 것이 초략본이다보니 보통은 시조의 이름만 간신히 밝혀 놓았지만 후지와라의 경우는 우지(氏)와 가바네(姓)를 받은 조상의 관직과 그 시점까지 나타난다.
출자는 츠하야무스비노미코토(津速魂命)의 3세손 아마노코야네노미코토(天児屋命)[3]이다. 23세손 내대신(内大臣) 대직관(大織冠) 나카토미노무라지 카마코(中臣連鎌子)[고기(古記)에는 카마타리(鎌足)라고 한다.]는 덴지 천황 8년(669년)에 후지와라우지(藤原氏)를 받았다. 그 아들인 정1위증 태정대신 후히토(不比等)는 덴무 천황 13년(685년)에 아소미(朝臣)의 성을 받았다.

3.3. 제번

제번은 한(漢) 163씨, 백제 104씨, 고구려 41씨, 신라 9씨, 임나 9씨 등 총 326씨이다. 좌경과 우경을 합쳐 수도를 본관으로 하는 씨족이 174씨로 전체의 53%이고, 다음으로는 가와치국이 55씨이다. 한계(漢系) 씨족 가운데에는 진한시대 황제의 후예라는 경우가 많고, 기타 위 무황제문제, 수 양제, 공손연, 손권 등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자신의 선조가 일본에 건너간 당시 중국에 있던 왕조의 군주를 시조로 삼았다는 견해가 있다.

스스로를 한반도 도래인의 후예로 주장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한반도 도래인의 후예로 추정되는 경우에는 아래에 목록을 작성했다. 제번 항목이 먼저이고, 황별 및 신별과 미정잡성에서 한반도 도래인의 후손임이 드러나는 씨족들은 기타 항목에 있다. 책의 항목별로 한반도 도래인 씨족 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체 1,182씨족 가운데 26%를 차지한다.
항목 한계 백제계 고구려계 신라계 임나계 황별 신별 미정잡성 책 전체
씨족 수 92 104 41 9 9 14 3 38 310 1,182

《신찬성씨록》을 참고할 때 유의할 점은, 일본 고대의 씨족 개념은 실제 혈연관계보다는 정치적 의도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대의 씨족은 시조로부터 비롯된 직무의 세습을 바탕으로 결합했다. 우리나라 족보와 같은 부계제는 일본 고대 사회에서 통하지 않았다. 씨족 수장의 지위가 반드시 아버지에서 아들로 전해지지는 않았으며, 방계 친족 혹은 사위까지 포함하는 넓은 범위에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다. 일본 고대 성씨의 중요한 기능은 직위와 직능의 기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건너갔다고 주장하는 씨족들 중에도 실제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은 집단도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중국 황제를 시조로 삼은 씨족의 경우도 반드시 혈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3.3.1. 백제계

파일:성씨록02.jpg
본관 좌경
(左京)
우경
(右京)
야마시로
(山城)
야마토
(大和)
셋쓰
(摂津)
가와치
(河内)
이즈미
(和泉)
씨족 수 14 46 6 6 9 15 8 104
백제계는 한반도 도래계 씨족 중 가장 수가 많으며, 백제의 왕족이나 관인의 후예라고 자칭하는 씨족이 여럿 있다. 좌경에서 첫째로 수록된 야마토노아소미(和朝臣)간무 덴노의 모친인 타카노노 니이가사의 집안으로, 황실의 외척이었다. 원래 성은 야마토노후히토(和史)였는데 간무 덴노가 783년에 일족 35명에게 아소미(朝臣)의 성을 내렸다.[4]일본후기》에는 야마토노아소미 이에마로(和朝臣家麻呂, 734~804)에 대해 '재주와 학식은 없었으나 천황의 외척이었으므로 특별히 발탁되어 승진하였다.'라고 했다.# 낙하산 인사였던 셈이다. 다카노노 니이가사도 사후에나 황태후로 추증된 것으로 볼 때, 원래는 가문의 격이 높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 좌경 14씨
* 야마토노아소미(和朝臣): 출자는 백제국왕 도모왕(都慕王) 18세손 무령왕이다.
* 구다라노아소미(百済朝臣): 출자는 백제국 도모왕 30세손 혜왕이다.
* 구다라노키미(百済公): 출자는 백제국 도모왕 24세손 문연왕(汶淵王)이다.
* 츠키노무라지(調連): 미즈우미노무라지(水海連)와 시조가 같다. 백제국 노리사주(努理使主)[5]의 후손이다. 오진 천황 시절에 귀화했다. 그 손자 아구태(阿久太)의 아들은 미화(弥和)이고, 다음은 하야(賀夜), 다음은 마리(麻利)라고 한다. 미화는 겐조 천황 시절에 누에를 쳐서 비단을 바쳐 츠키노오비토(調首)라는 성을 받았다.
* 하야시노무라지(林連): 출자는 백제국인 목귀공(木貴公)이다.[6]
* 가구야마노무라지(香山連): 출자는 백제국인 달솔(達率) 형원상(荊員常)이다.[7]
* 다카츠키노무라지(高槻連): 출자는 백제국인 달솔 명진(名進)이다.
* 히로타노무라지(広田連): 출자는 백제국인 신신군(辛臣君)이다.
* 이시노노무라지(石野連): 출자는 백제국인 근속왕(近速王)의 손자 억뢰복류(憶頼福留)이다.
* 가무사키노무라지(神前連): 출자는 백제국인 정6위상 가수군(賈受君)이다.
* 마스타노무라지(沙田史): 출자는 백제국인 의보니왕(意保尼王)이다.
* 오호오카노미야츠코(大丘造): 출자는 백제국 속고왕(速古王) 12세손 은솔(恩率) 고난연자(高難延子)이다.
* 오타카노오미(小高使主): 출자는 백제국인 모갑성가수류기(毛甲姓加須流気)이다.
* 아스카베(飛鳥部): 백제국인 국본목길지(国本木吉志)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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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에서 가장 위에 배치된 구다라노코키시(百済王, 백제왕) 씨족은 의자왕의 아들로 일본에 도래한 부여선광에서 출발했다. 도래계 씨족 중에 왕(王)의 가바네를 받은 씨족 셋 중 하나다.[8] 간무 덴노가 “구다라노코키시씨는 짐의 외척이다(百済王等者朕之外戚也)”[9]라고 할 정도로 헤이안 초기에 특별대우를 받았다. 나중에는 아예 칙을 내려, 그간의 공적을 나열하면서 구다라노코키시씨에게 과역과 잡요를 영구히 면했다.[10] 간무 덴노의 외척인 야마토노아소미(和朝臣) 씨족과 그의 총신인 츠노무라지 마미치(津連真道, 741~814)가 속한 스가노노아소미(菅野朝臣) 씨족이 각자 백제 왕족의 후손이라는 계보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구다라노코키시씨의 승인이 필요했다. 구다라노코키시씨는 백제계 씨족의 구심점이자 후견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스가노노아소미(菅野朝臣)와 동조 관계인 6씨족은 원래 6세기에 활동한 백제계 관료인 왕진이(王辰爾) 일족의 후손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790년 츠노무라지 마미치(津連真道)가 백제왕씨들과 함께 스스로를 백제 왕족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면서 스가노노아소미의 성을 받았다. 도래계 씨족들은 일본 이주 전 본국에서의 지위에 따라 성을 받았는데, 아소미(朝臣, 조신) 성은 왕족에 준할 만큼 격이 높았던 가문에게 주어졌다. 아소미 성을 받기 위해 백제 왕족으로 계보를 바꾸려면 구다라노코키시씨의 보증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결과 ‘귀수왕-진손왕-태아랑왕-해양군-오정군-3씨족’의 새로운 계보가 탄생했다.
구다라노코키시 닌죠(百濟王仁貞), 구다라노코키시 겐신(百濟王元信), 구다라노코키시 츄신(百濟王忠信), 츠노무라지 마미치(津連眞道) 등이 표를 올려, “저희들은 본계가 백제국 귀수왕(貴須王)에서 나왔습니다. 귀수왕은 백제가 처음 일어난 때로부터 제16대 왕입니다... 귀수왕은 공경하게 사신의 뜻을 받들고 종족 중에서 택하여 그 손자인 진손왕(辰孫王) 일명 지종왕(智宗王)을 보내어 사신을 따라 입조하게 하였습니다... 닌토쿠 덴노는 진손왕의 장자인 태아랑왕(太阿郞王)을 근시로 삼았습니다. 태아랑왕의 아들은 해양군(亥陽君)이며, 해양군의 아들은 오정군(午定君)인데 오정군은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맏아들은 미사(味沙), 가운데는 진이(辰爾), 막내 아들은 마려(麻呂)입니다. 이들로부터 3성이 처음 나누어졌는데, 각각 맡은 직책을 따라 성씨를 이름했습니다. 후지이(葛井)·후네(船)·츠노무라지(津連)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연성(連姓)을 고쳐 아소미(朝臣)의 성을 내려 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이에 칙을 내려 사는 곳의 이름을 따서 스가노노아소미(菅野朝臣)이라는 성을 내려 주었다.
《속일본기》 권40 간무 덴노 엔랴쿠 9년(790년) 7월 17일#
가와치에는 곤지(昆支)의 후예를 자칭하는 아스카베노미야츠코(飛鳥戸造) 씨족이 있다. 씨족명은 가와치국 아스카군(安宿郡)에서 유래했으며, 이 지역에 곤지의 후예씨족이 모여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삼대실록》에는 아스카베노미야츠코 씨족의 인물을 언급하면서 곤지의 후예라고 밝혀놓고 있다.[14] 오사카부 하비키노시[15]에 있는 아스카베신사(飛鳥戸神社)는 헤이안 시대의 법령집인 《연희식(延喜式)》에도 나오는 오래된 곳으로, 곤지를 모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근에는 아스카센즈카(飛鳥千塚) 고분군이 있는데, 아스카베 일족이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3.3.2. 임나(가야)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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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좌경
(左京)
우경
(右京)
야마시로
(山城)
야마토
(大和)
셋쓰
(摂津)
가와치
(河内)
이즈미
(和泉)
씨족 수 3 0 1 2 3 0 0 9
임나의 후예를 자칭하는 9씨족의 출자는 모두 임나국 왕 혹은 왕족이다. 하라하실왕(賀羅賀室王)은 가실왕으로 보인다. 都怒賀阿羅斯止=都怒何阿羅志止=都奴加阿羅志等으로 본다. 좌리왕(佐利王)은 좌리금(左李金)과 동일인으로 추정한다. 아라라노키미(荒々公)는 안라국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풍귀왕(豊貴王)도 안라의 왕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좌경 3씨
* 미치타노무라지(道田連): 출자는 임나국 하라하실왕(賀羅賀室王)이다.
* 오호이치노오비토(大市首): 출자는 임나국인 도노하아라사지(都怒賀阿羅斯止)이다.
* 시미즈노오비토(清水首): 출자는 임나국인 도노하아라지지(都怒何阿羅志止)이다.
* 야마시로 1씨
* 다타라노키미(多々良公): 출자는 어간명국주(御間名国主)[16] 이리구모왕(尓利久牟王)이다. 긴메이 덴노 시절에 투항해 귀화했다. 금다다리(金多々利)와 금호거(金乎居) 등을 바쳤다. 천황이 칭찬하여 다타라노키미(多々良公)라는 성을 내렸다.
* 야마토 2씨
* 히라타노오비토(辟田首): 출자는 임나국주 도노가아라지등(都奴加阿羅志等)이다.
* 오호토모노미야츠코(大伴造): 출자는 임나국주 용주왕(龍主王)의 손자 좌리왕(佐利王)이다.
* 셋쓰 3씨
* 도요츠노미야츠코(豊津造): 출자는 임나국인 좌리금(左李金)[또는 좌리기모(佐利己牟)]이다.
* 가라히토(韓人): 도요츠노미야츠코와 시조가 같다. 좌리금(左李金)[또는 좌리기모(佐利己牟)]의 후손이다.
* 아라라노키미(荒々公): 임나국 풍귀왕(豊貴王)의 후손이다.

3.3.3. 신라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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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좌경
(左京)
우경
(右京)
야마시로
(山城)
야마토
(大和)
셋쓰
(摂津)
가와치
(河内)
이즈미
(和泉)
씨족 수 1 3 1 1 1 1 1 9
* 좌경 1씨
* 다치바나모리(橘守): 미야케노무라지(三宅連)와 시조가 같다. 천일모명(天日桙命)의 후손이다.
* 우경 3씨
* 미야케노무라지(三宅連): 신라국왕의 아들 천일모명(天日桙命)의 후손이다.
* 도요하라노무라지(豊原連): 신라국인 일려비마려(壱呂比麻呂)의 후손이다.
* 우나하라노미야츠코(海原造): 신라국인 진광사(進広肆)[17] 김가지모례(金加志毛礼)의 후손이다.
* 야마시로 1씨
* 마키노후히토(真城史): 출자는 신라국인 김씨존(金氏尊)이다.
* 야마토 1씨
* 이토이노미야츠코(糸井造): 미야케노무라지와 시조가 같다. 신라국인 천일창명(天日槍命)의 후손이다.
* 셋쓰 1씨
* 미야케노무라지(三宅連): 신라국왕의 아들 천일모명(天日桙命)의 후손이다.
* 가와치 1씨
* 후카와(伏丸): 출자는 신라국인 연노리척간(燕怒利尺干)이다.[18]
* 이즈미 1씨
* 히네노미야츠코(日根造): 출자는 신라국인 억사부사주(億斯富使主)이다.

3.3.4. 고구려계

파일:성씨록03.jpg
본관 좌경
(左京)
우경
(右京)
야마시로
(山城)
야마토
(大和)
셋쓰
(摂津)
가와치
(河内)
이즈미
(和泉)
씨족 수 15 9 5 6 3 3 0 41
고구려계 씨족들 중에는 시조가 5부의 귀족 출신일 경우 소속을 함께 표기한 경우가 있다. 《신찬성씨록》에는 고호노쿠스시노오미(後部薬使主), 고호노와우(後部王) 등, 아예 출신 부 이름을 성씨로 삼은 사례가 나타난다. 사서에는 《신찬성씨록》에 없는 상부(上部), 하부(下部), 전부(前部), 후부(後部), 계루부(桂婁部)[19]의 성씨가 다양하게 등장한다.
좌경에서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고마노아소미(高麗朝臣) 씨족은 원래 세나(肖奈)라는 성을 썼다. 이들은 고구려 멸망시에 일본으로 망명한 세나노 후쿠토쿠(肖奈福德)의 후손이며, 고구려 유민들이 모여 살던 무사시국 고마군(高麗郡)[20] 출신이었다.# 성으로 보아 5부 가운데 소노부(消奴部) 출신으로 추정된다. 이 씨족은 이후 세나노코키시(肖奈王)을 거쳐 고마노아소미(高麗朝臣) 성을 썼다. 고마군의 책임자로 동일본의 무사시국에 자리잡은 고마노코키시(高麗王)씨를 대신하여 중앙에서 고구려계 씨족의 대표 노릇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리'에서 유래된 성씨도 여럿 보이는데, 연개소문을 일본에서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라 불렸던 것을 고려하면 이 '이리'는 연개소문의 연(淵)씨 일족일 가능성이 높다. 고구려 말기에 최고 권력을 누렸던 가문이고 연남생연남건 묘지명에 적힌 가문의 내력을 고려하면 연개소문 이전부터 이미 연씨 일족은 대단한 권력자 집안으로 추정되기에 고씨 태왕가가 아닌 귀족 가문을 기준으로 하면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 좌경 15씨
* 고마노아소미(高麗朝臣): 출자는 고구려왕 호태(好台)의 7세손 연전왕(延典王)이다.
* 도요하라노무라지(豊原連): 출자는 고려국인 상부왕(上部王) 충마려(虫麻呂)이다.[21]
* 후타기노무라지(福当連): 출자는 고려국인 전부(前部) 능루(能婁)이다.
* 미카사노무라지(御笠連): 출자는 고려국인 종5위하 고장자(高庄子)이다.
* 이즈미노무라지(出水連): 출자는 고려국인 후부(後部) 능고형(能皷兄)이다.
* 니히키노무라지(新城連): 출자는 고려국인 고복유(高福裕)이다.
* 오유카노무라지(男牀連): 출자는 고려국인 고도사(高道士)이다.
* 가우노후히토(高史): 출자는 고려국 원라군(元羅郡) 저왕(杵王)의 9세손 연나왕(延挐王)이다.
* 헤키노미야츠코(日置造): 출자는 고려국인 이리수의미(伊利須意弥)이다.
* 후타기노미야츠코(福当造): 출자는 고려국인 전부 지발(志発)이다.
* 가와치노미타미노오비토(河内民首): 출자는 고려국인 안류왕(安劉王)이다.
* 고호노쿠스시노오미(後部薬使主): 출자는 고려국인 대형(大兄) 억덕(憶徳)이다.
* 와우(王): 출자는 고려국인 종5위하 왕중문(王仲文)[법명은 동루(東楼)][22]이다.
* 가우(高): 고려국인 고조근(高助斤)의 후손이다.
* 가우(高): 고려국인 종5위하 고금장(高金蔵)[법명은 신성(信成)]이다.
* 우경 9씨
* 나가세노무라지(長背連): 출자는 고려국주(高麗国主) 추모(鄒牟)[일명 주몽(朱蒙)]이다. 긴메이 덴노 시절에 무리를 이끌고 투항해 귀화했다. 용모가 아름답고 체격이 컸다. 특히 그 등이 길었다. 따라서 장배왕(長背王)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 나니하노무라지(難波連): 출자는 고려국 호태왕(好太王)이다.[23]
* 시마키노후히토(島岐史): 출자는 고려국 능기왕(能祁王)이다.
* 시마노후히토(島史): 출자는 고려국 화흥(和興)이다.
* 고마노오비토(狛首): 출자는 고려국 안강상왕(安岡上王)이다.
* 다카타노오비토(高田首): 출자는 고려국인 다고자사주(多高子使主)이다.
* 헤키노미야츠코(日置造): 출자는 고려국인 이리수사주(伊利須使主)[일명 이화수(伊和須)]이다.
* 다카야스노시모스구리(高安下村主): 출자는 고려국인 대령(大鈴)이다.
* 고호노와우(後部王): 고려국 장왕(長王) 주(周)의 후손이다.
* 야마시로 5씨
* 기후미노무라지(黄文連): 출자는 고려국인 구사기왕(久斯祁王)이다.
* 구하하라노후히토(桑原史): 출자는 맥국인(狛国人) 한흉(漢胷)의 후손이다.
* 다카이노미야츠코(高井造): 출자는 고려국주 추모왕의 20세손 여안기왕(汝安祁王)이다.
* 고마노미야츠코(狛造): 출자는 고려국주 부련왕(夫連王)이다.
* 야사카노미야츠코(八坂造): 출자는 맥국인 유천마내의리좌(留川麻乃意利佐)이다.[24]
* 야마토 6씨
* 헤키노미야츠코(日置造): 출자는 고려국인 이리수사주(伊利須使主)이다.
* 도리이노스쿠네(鳥井宿祢): 헤키노미야츠코와 시조가 같다. 이리수사주의 후손이다.
* 사카이노스쿠네(栄井宿祢): 헤키노미야츠코와 시조가 같다. 이리수사주의 아들인 마호신(麻弖臣)의 후손이다.
* 요시이노스쿠네(吉井宿祢): 헤키노미야츠코와 시조가 같다. 이리수사주의 후손이다.
* 야마토노미야츠코(和造): 헤키노미야츠코와 시조가 같다. 이리수사주의 후손이다.
* 헤키노쿠라히토(日置倉人): 헤키노미야츠코와 시조가 같다. 이리수사주의 형 허려사주(許呂使主)의 후손이다.
* 셋쓰 3씨
* 구하하라노후히토(桑原史): 구하하라노스구리(桑原村主)와 시조가 같다. 고려국인 만덕사주(万徳使主)의 후손이다.
* 헤키노미야츠코(日置造): 도리이노스쿠네와 시조가 같다. 이리수사주(伊利須使主)의 후손이다.
* 타카야스노아야히토(高安漢人): 출자는 맥국인 소수수(小須須)이다.
* 가와치 3씨
* 오호코마노무라지(大狛連): 출자는 고려국인 이리사사례사(伊利斯沙礼斯)이다.
* 오호코마노무라지(大狛連): 출자는 고려국 일사복귀왕(溢士福貴王)이다.
* 시마모토(島本): 고려국인 이리화수사주(伊理和須使主)의 후손이다.

3.3.5. 한(漢)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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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는 모두 163씨족이다. 그 중에는 한반도 도래인이면서 시조는 중국계로 밝힌 씨족이 많다. 그 이유는 당시 선진국이었던 중국 출신이라고 주장하여 더욱 고귀하고 유리한 계보를 가지고 높은 급의 성을 받아 현실적인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진짜 중국계 한국계 일본인인 것일 수도 있다. 당시에는 이런 식으로 계보를 바꾸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아야(あや)라고 읽히는 漢은 韓의 차자 표기이며, 많은 경우에 중국계가 아니라 한반도계 도래인을 일컫는다는 견해가 있다. 그나저나 한국계인지 의심스럽지만 한국계를 칭하는 사례도 동북아시아에 여럿 있었으니[25] 여러모로 어려운 부분이다.
계통 하타
(秦)
아지사주
(阿智使主)
왕인
(王仁)
다리수수
(多利須須)
사문영
(沙門詠)
만덕사주
(万徳使主)
하치타노쿠스시
(蜂田薬師)
기타
씨족 수 31 30 7 4 3 2 2 13 92
모든 제번 가운데 가장 위에 놓인 하타 31씨족은 행적으로 보아 신라계 도래인으로 추정되나, 스스로를 진시황의 후손이라고 밝혀 놓았다. 하타씨의 조상으로 일본에 건너간 궁월군은 《일본서기》에 백제 사람이라고 되어 있기는 하다.# 신라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던 일본 조정의 분위기 때문에 하타씨들이 그렇게 꾸며낸 것으로 보인다.

파일:성씨록09.jpg
다음은 백제에서 건너간 아지사주(阿智使主)의 후손들로, 후한 영제의 후손으로 개변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오진 덴노 20년(289년)에 야마토노아야노아타히(倭漢直)의 선조인 아지사주와 아들 도가사주(都加使主)가 17현의 무리를 이끌고 귀화했다.# 이후 하타씨와 함께 대표적인 도래계 씨족으로 꼽히는 야마토노아야(東漢) 씨족으로 이어졌다. 야마토노아야씨에 대해서, 4세기 말부터 5세기 사이에 일본에 건너간 가야계 이주민의 흔적이 다수 확인되는 것을 근거로 안라국 출신 도래인이라는 견해가 있다. 안라=안야=아야이고, 그들이 출신국명을 그대로 성씨로 삼았다는 이야기이다.
《속일본기》 간무 천황 엔랴쿠 4년(785년) 6월조에 따르면, 사카노우에노 카리타마로(坂上苅田麻呂)는 표문을 올리면서 자신이 후한 영제의 증손인 아지왕의 후손이라고 했다.# 카리타마로의 아들인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의 훙전(薨傳)[32]에도 그가 아지사주의 후손이라는 내용이 있다.# 사카노우에 가문에 대한 신찬성씨록의 원문 내용은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가문 계보인 《사카노우에계도(坂上系圖)》에 남아 오늘날까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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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fff,#1f2023>아지사주(阿智使主): 《성씨록》 제23권에 이르기를, 아지왕(阿智王)오진 천황의 시대에 본국의 난을 피하여 어머니와 처자, 모제인 천흥덕(迁興德)과 일곱 성의 한인(漢人)을 이끌고 귀화하였다.

일곱 성의 첫 번째는 단(段)[고기(古記)에는 단광공(段光公), 자는 부등(宮等)이라고 하였다. 어떤 책에서는 원성(員姓)이라고 하였다.]이다. 이는 고향촌주(高向村主), 고향사(高向史), 고향조사(高向調使), 평수(評首), 민사주수(民使主首) 등의 조상이다.
다음은 이성(李姓)이다. 이는 형부사(刑部史)의 조상이다.
다음은 조곽성(皂郭姓)이다. 이는 판합부수(坂合部首), 좌대수(佐大首) 등의 조상이다.
다음은 주성(朱姓)이다. 이는 소시(小市), 좌나의(佐奈宜)의 조상이다.
다음은 다성(多姓)이다. 이는 회전조사(檜前調使) 등의 조상이다.
다음은 조성(皂姓)이다. 이는 야마토국(大和國) 우다군(宇太郡) 좌파다촌주(佐波多村主). 장번부(長幡部) 등의 조상이다.
다음은 고성(高姓)이다. 이는 회전촌주(檜前村主)의 조상이다.

천황이 이들이 온 뜻을 긍휼하게 여겨 아지왕이라고 이름지어 사주(使主)로 삼고 이에 야마토국 히노쿠마군(檜隈郡)[33]의 마을을 주어 살도록 하였다. 이때 아지사주(阿智使主)가 아뢰기를, “신이 입조할 때 본향 사람들이 이미 흩어졌는데, 지금 듣건대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나라에 있다고 합니다. 바라옵건대 사람을 보내 불러오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천황이 곧 사신을 보내어 불러오게 하였다. 닌토쿠 천황 시대에 온 마을이 따라 왔다.

지금의 고향촌주(高向村主), 서파다촌주(西波多村主), 평방촌주(平方村主), 석촌촌주(石村村主), 능파촌주(能波村主), 위촌촌주(危寸村主), 장야촌주(長野村主), 비가촌주(卑加村主), 모소산촌주(茅沼山村主), 고궁촌주(高宮村主), 대석촌주(大石村主), 비조촌주(飛鳥村主), 서대우촌주(西大友村主), 장전촌주(長田村主), 금부촌주(錦部村主), 전촌촌주(田村村主), 인해촌주(忍海村主), 좌미촌주(佐味村主), 상원촌주(桑原村主), 백조촌주(白鳥村主), 액전촌주(額田村主), 모좌촌주(牟佐村主), 갑하촌주(甲賀村主), 파작촌주(破作村主), 파마촌주(播磨村主), 한인촌주(漢人村主), 금래촌주(今來村主), 석촌촌주(石寸村主), 금작촌주(金作村主), 미장취각촌주(尾張吹角村主) 등은 그 후손이다.

그때 아지왕이 아뢰기를, ‘‘이마키군(今來郡)을 세우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후에 고쳐서 다카이치군(高市郡)라고 하였다. 그런데 사람은 많고 살 땅은 좁아서, 다시 여러 지역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셋쓰(攝津), 스루가(參河), 오미(近江), 하리마(播磨), 아와(阿波) 등의 한인촌주(漢人村主)가 이들이다.



도가사주(都加使主): 《성씨록》에 이르기를 아지사주의 아들 도가사주(都加使主)유랴쿠 천황 시대에 사주(使主)를 고쳐 직(直)의 가바네를 받았다. 자손들은 그로 인하여 가바네를 쓰게 되었다. 아들인 산본직(山本直)은 형복(兄腹)의 조상이다.[본명은 산저(山猪)이다.] 둘째 아들 지노직(志努直)은 중복(中腹)의 조상이다.[일명 성노(成怒)이다.] 셋째 아들 이파지직(爾波伎直)은 제복(弟腹)의 조상이다.



산본직(山本直): 《성씨록》에 이르기를 산본직(山本直)은 민기촌(民忌寸), 회원숙녜(檜原宿禰), 평전숙녜(平田宿禰), 평전기촌(平田忌寸), 율촌기촌(栗村忌寸), 소곡기촌(小谷忌寸)[이세국 안키군(奄芸郡)], 민기촌(民忌寸), 경기촌(軽忌寸), 하신기촌(夏身忌寸), 한국기촌(韓国忌寸), 신가기촌(新家忌寸), 문기촌(門忌寸), 요원기촌(蓼原忌寸), 고전기촌(高田忌寸), 국멱기촌(国覔忌寸)[무쓰국 니이타군(新田郡)], 전정기촌(田井忌寸), 수기촌(狩忌寸), 동문부기촌(東文部忌寸), 장미기촌(長尾忌寸), 회전직(檜前直)[야마토국 가츠조군(葛上郡)], 곡숙녜(谷宿禰), 문부곡기촌(文部谷忌寸), 문부강기촌(文部岡忌寸), 노기촌(路忌寸), 노숙녜(路宿禰) 등 25성의 조상이다.



지노직(志努直): 《성씨록》에 이르기를 지노(志努)는 중복(中腹)의 조상이다. 동한비직(東漢費直: 야마토노아야노아타히)[34] 여러 씨족의 기록에는 성노(成怒)[또는 진노(真奴)]비직(費直)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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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사카노우에계도(坂上系圖)》에 따른, 아지사주와 함께 온 사람들의 후손이다.
파일:성씨록10.jpg
아래는 대대로 문인 관료로 활동하던 왕인의 후손 7씨족이다. 전한 고제의 후예로 개변했다. 791년에는 후미노이미키 모오토(文忌寸最弟)와 다케후노무라지 마카타(武生連真象)가 요청해 스쿠네의 성을 받으면서 자신들의 선조에 대해 밝혔다. 특기할 점은 785년에 아지사주의 후손인 야마토노후미(東文)[36] 씨족이 먼저 높은 급의 스쿠네(宿禰) 성을 받았으니 자신들에게도 같은 성을 내려 달라고 하는 부분이다. 당시 경쟁적으로 계보를 가상하고 높은 등급의 성을 받고자 했던 사회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야마토노후미 씨족이 후한 영제의 후손으로 개변하자, 왕인 씨족은 전한 고제로부터 시작하는 더 오래된 계보를 만들어냈다.[37]
“후미노이미키(文忌村) 등에게는 원래 두 가문이 있어 야마토노후미(東文)는 아타히(直)라 하고 가와치노후미(西文)은 오비토(首)라 부르는데, 서로 하는 일에 따른 것으로 그 유래가 오래되었습니다. 이제 야마토노후미는 집안을 들어 이미 스쿠네(宿禰)로 올랐는데, 가와치노후미는 은혜를 입지 못하고 아직도 이미키(忌寸)에 머물러 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똑같이 영화로운 칭호를 내리셔서 영원히 자손을 위한 계책을 삼게 해 주십시오”라 하였다. 칙을 내려 그 본계를 물으니 모오토 등은, “한 고제의 후손 난(鸞)이라 하는 사람의 후손 왕구(王狗)가 백제에 옮겨와 이르렀는데, 백제 구소왕(久素王) 때에 성조에서 사신을 보내어 문인을 찾으니 구소왕이 곧 그(王狗)의 손자인 왕인(王仁)을 바쳤습니다. 이가 곧 후미(文)·다케후(武生) 등의 선조입니다”라 하였다. 이에 모오토 및 마카타 등 8인에게 스쿠네(宿禰)의 성을 내렸다.
《속일본기》 권40 간무 천황 엔랴쿠 10년(791년) 4월 8일#
다케후노무라지 마카타(武生連真象)가 속한 씨족의 성은 원래 우마(馬)였다. 이름처럼 교통과 육상 운송을 담당하는 씨족이었다. 겐쇼 천황 시절인 716년에 우마노후히토 이마로(馬史伊麻呂)가 신라의 말 두 마리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765년에는 일족 44명이 다케후노무라지(武生連)의 성을 받았다.[38]
* 좌경
* 후미노스쿠네(文宿祢): 출자는 한 고황제의 후손인 난왕(鸞王)이다.
* 후미노이미키(文忌寸): 후미노스쿠네와 시조가 같다. 우이고수(宇尓古首)의 후손이다.
* 다케후노스쿠네(武生宿祢): 후미노스쿠네와 시조가 같다. 왕인의 후손인 아랑고수(阿浪古首)의 후손이다.
* 사쿠라노노오비토(桜野首): 다케후노스쿠네와 시조가 같다. 아랑고수(阿浪古首)의 후손이다.
* 우경
* 구루스노오비토(栗栖首): 후미노스쿠네와 시조가 같다. 왕인의 후손이다.
* 가와치
* 고시노무라지(古志連): 후미노스쿠네와 시조가 같다. 왕인의 후손이다.
* 이즈미
* 고시노무라지(古志連): 후미노스쿠네와 시조가 같다. 왕인의 후손이다.

아래는 오국 사람 태리수수 내지 전리수수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씨족들이다. 그러나 백제계에 백제인 다리수수(多利須須)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씨족이 셋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 중국계로 개변한 사례이다.
* 다쿠미노미야츠코(工造): 본관은 좌경. 출자는 오국인(呉国人) 태리수수(太利須須)이다.
* 하후리베(祝部): 본관은 좌경. 다쿠미노미야츠코와 시조가 같다. 오국인 전리수수(田利須須)의 후손이다.
* 다쿠미노미야츠코(工造): 본관은 야마시로. 출자는 오국인 전리수수이다.
* 하후리베(祝部): 본관은 야마시로. 다쿠미노미야츠코와 시조가 같다. 오국인 전리수수의 후손이다.

아래는 덴지 천황 때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문영(沙門詠)의 후손이다. 《속일본기》에 실린 다카오카노스쿠네노 히라마로(高丘宿禰比良麻呂)의 사망 기사에, 그의 조부 사문영이 백제에서 귀화했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연민수(2021)는 사문영이 백제의 명문가인 사씨(사택씨)의 일원이었다고 보았다. 반면 서보경(2022)은 사문(沙門)을 승려의 다른 말로 이해하고 승려 영(詠)으로 보았다. 그리고 후손들이 조정에서 문필 사무를 두고 왕진이 계통의 씨족과 경쟁할 때에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해 보다 유리한 계보를 만들어낸 것으로 추정했다.
* 다카오카노스쿠네(高丘宿祢): 본관은 가와치. 출자는 백제국 공족대부(公族大夫) 고후(高侯)의 후손 광릉고목(広陵高穆)의 후손이다.
* 오호이시(大石): 본관은 좌경. 다카오카노스쿠네와 시조가 같다. 광릉고목의 후손이다.
* 오호야마노이미키(大山忌寸): 본관은 우경. 다카오카노스쿠네와 시조가 같다. 광릉고목의 후손이다.

아래는 만덕사주 혹은 만득사주를 출자로 삼은 씨족인데, 셋쓰국 제번 고려의 구하하라노후히토(桑原史) 씨족은 고려국인 만덕사주의 후손이라고 자칭하고 있다. 중국 황제의 후예라고 칭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고 계보를 개변한 것으로 보인다. 《속일본기》에는 후한 출신 선조가 고구려를 거쳐 일본에 귀화한 사람들이, 조상은 같은데 각자 성이 다르니 고쳐서 하나로 해달라고 요청하자 고켄 천황이 구하하라노아타히(桑原直)의 성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 구하하라스구리(桑原村主): 본관은 좌경. 출자는 한 고제 7세손 만덕사주(万徳使主)이다.
* 구하하라노아타히(桑原直): 본관은 야마토. 구하하라노스구리와 시조가 같다. 한 고제 7세손 만득사주(万得使主)의 후손이다.

아래는 하치타노쿠스시(蜂田薬師) 씨족이다. 《속일본후기》에는 가문의 선조가 백제인이라고 밝히고 있어서, 시조를 오나라 사람으로 개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 하치타노쿠스시(蜂田薬師): 본관은 이즈미. 출자는 오주(呉主) 손권왕(孫権王)이다.
* 하치타노쿠스시(蜂田薬師): 본관은 이즈미. 출자는 오국인(呉国人) 도구이리구이(都久尓理久尓)이다.[고기에는 노구리(怒久利)라고 한다.]

다음은 중국계 후예임을 주장하지만 실질적인 시조는 도래계로 보이는 경우다.
* 야고노이미키(楊侯忌寸): 본관은 좌경. 출자는 수 양제의 후손 달솔(達率) 양후아자왕(楊侯阿子王)이다.
* 야고노후히토(楊胡史): 본관은 좌경. 야고노이미키와 시조가 같다.
* 야고노후히토(楊胡史): 본관은 이즈미. 야고노이미키와 시조가 같다. 달솔 양공아료왕(楊公阿了王)의 후손이다.
* 와카에노미야츠코(若江造): 본관은 좌경. 출자는 후한 영제의 후예인 나솔(奈率) 장안력(張安力)이다.
* 니시고리노스구리(錦織村主): 본관은 우경. 출자는 가라쿠니인(韓国人) 파노지(波努志)이다.
* 니시고리노스구리(錦部村主): 본관은 야마시로. 니시고리노스구리와 시조가 같다. 파능지(波能志)의 후손이다.
* 구라히토(椋人): 본관은 우경. 아조사주(阿祖使主)의 아들 무세(武勢)의 후손이다.
* 도요오카노무라지(豊岡連): 본관은 야마시로. 출자는 한 고제의 후예인 이수구모치사주(伊須久牟治使主)이다.
* 아사츠마노미야츠코(朝妻造): 본관은 야마토. 출자는 가라쿠니인(韓国人) 도류사주(都留使主)이다.
* 시가노이미키(志賀忌寸): 본관은 셋쓰. 출자는 후한 효헌제(孝献帝)이다.[39]
* 마무타노스구리(茨田勝): 본관은 가와치. 출자는 오국왕(呉国王) 손호(孫皓)의 후손 의부가모지군(意富加牟枳君)[40]이다. 닌토쿠 천황 시절에 살 땅으로 마무타노무라(茨田邑)를 받았다. 따라서 마무타노스구리가 되었다.

다음은 백제계 항목에 같은 씨족인 오호하라노후히토(大原史)가 출자를 한인(漢人) 목성아류소서성령귀(木姓阿留素西姓令貴)라 하여 기술되어 있는 경우이다.
* 오호하라노후히토(大原史): 본관은 우경. 출자는 한인 서성령귀(西姓令貴)이다.
* 오호하라노후히토(大原史): 본관은 셋쓰. 출자는 한인 서성령귀이다.

3.3.6. 기타

황별, 신별과 117씨족의 미정잡성 가운데 한반도 도래인의 후손으로 볼 수 있는 씨족들이다.
다음은 와니(和邇, 和珥) 씨족으로, 오진 덴노부터 비다쓰 덴노때까지 황후와 후비를 배출한 명족이었다. 백제계 혹은 신라계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아래 기치타노무라지(吉田連) 씨족은 백제인 달솔 길대상(吉大尙)으로부터 나온 백제계 도래인이었는데, 자신들의 조상을 일본에서 파견된 장군의 후손으로 둔갑시키면서 황별로 개변한 사례이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길대상은 약에 대해 잘 알아 관위를 받았다. 《회풍조(懷風藻)》에 의하면 문예에도 재주가 있었던 것 같다. 《속일본후기#와 《일본 몬토쿠 덴노 실록#에 씨족의 유래가 보인다. 808년에 헤이제이 덴노의 명으로 편찬된 《대동유취방(大同類聚方)》이라는 의서에는 이 집안 사람들의 14가지 처방이 기록되어 있어, 대대로 의약업에 종사했음을 알 수 있다.
아래의 마노노오미(真野臣) 씨족은 백제계 도래씨족으로 추정된다. 씨족의 이름은 거주지인 오미국(近江国) 마노향(真野鄕)에서 유래하는데, 이 지역 최대 호족은 와니베(和迩部) 씨족이며, 그 일족인 마노노오미 씨족은 5세기 중반 한반도에서 이주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다음 마무타(茨田) 씨족은 원래 하타씨 계통이다. 그들은 5세기 후반에 마무타노츠츠미(茨田堤)[46]라는 제방을 쌓아 경지를 확보해 가와치국 북부의 호족으로 성장했다. 그 실력을 바탕으로 게이타이 덴노와 밀착해 마무타노스쿠네(茨田宿祢) 성을 쓰게 되었다. 나라 시대에는 방계의 마무타 씨족이 도다이지 대불 조성에 공을 세워 출세했다. 마무타 씨족은 《신찬성씨록》을 편찬한 만다 친왕(万多親王)[47]과도 매우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비교적 관위가 낮은데도 황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계(漢系)로 분류된 마무타노스구리(茨田勝)는 의부가모지군(意富加牟枳君)의 후손으로 되어 있는데, 제번 스구리(村主)씨족의 시조인 의보하라지왕(意宝荷羅支王)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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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국어 도서

5. 참고 문헌



[1] 814년에 일단 완성한 뒤 개정하여 815년 상표문을 올리면서 최종으로 마무리했다.[2] 헤이안쿄 천도 이전에는 키나이의 국(国)들을 나열할 때 야마토가 첫째, 야마시로가 둘째에 놓여 있었다. 야마시로에 있는 헤이안쿄로 천도하고 나자 야마시로를 더 앞에 놓는 모습이 보인다.[3] 아마테라스가 아마노이와토에 숨었을 때 축사를 한 신이다. 천손강림 때에 니니기와 함께 내려왔다고 한다.[4] 《속일본기》 엔랴쿠 2년 4월 20일조, 左京人外從五位下和史國守等卅五人賜姓朝臣.[5]고사기》에 닌토쿠 천황의 황후에게 누에를 헌상했다는 기록이 있는 백제계 도래인 노리능미(奴理能美)와 동일인으로 보인다. 황후가 궁을 비운 틈에 닌토쿠 천황이 다른 여성을 가까이 하자, 그 소식을 듣고 분개한 황후는 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야마시로에 있는 노리능미의 집으로 가 버렸다. 신하들과 노리능미가 ‘황후께서는 단지 신기한 벌레(누에)를 보러 오셨을 뿐’이리며 둘을 중재하게 된다. 닌토쿠 천황 역시 ‘그런 신기한 벌레가 있다면 나도 보고 싶다’며 노리능미의 집으로 찾아간다. 노리능미의 집은 오늘날 교토부 교타나베시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6] 목귀공은 덴지 천황 때에 관위를 받은 목소귀자(木素貴子)와 동일인으로 보인다.#[7] 《속일본기》 쇼무 천황 진키 원년(724년)조에는 정7위하 형궤무(荊軌武)에게 가구야마노무라지의 성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8] 다른 두 경우는 고구려계 씨족이 받았다. 703년 약광이 받은 고마노코키시(高麗王), 747년 소나복신(肖奈福信)등 소나씨 일족이 받은 세나노코키시(肖奈王)이다.[9] 《속일본기》 엔랴쿠 9년(790년) 2월 27일조.[10] 《유취삼대격(類聚三代格)》 권17 엔랴쿠 16년(797년) 5월 28일조, 宜百濟王等課幷雑徭永従蠲除.#[11] 《일본서기》 덴지 덴노 8년(669년) 기사에는 귀실집사(鬼室集斯)를 오미국 가모군(蒲生郡)에 살게 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 지역 신사에서 귀실집사의 묘비가 발견되어 그를 신으로 모시고 이름을 기시츠 신사(鬼室神社)라고 했다. 그의 후손들이 언제 헤이안쿄로 이주했는지는 알 수 없다.[12] 망명한 백제인 달솔 답본춘초(答㶱春初)의 후손인 답본양춘(答本陽春)이 받은 성씨이다. 중국 문헌 중에 준왕(準)을 회(淮)라고 적은 판본이 있어 그것을 보고 본계장을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13] 노리사주(努理使主)와 동일인이라고 본다.[14] 《일본삼대실록》 세이와 덴노###[15] 옛 아스카군이 있던 곳. 나라현의 아스카와 구별하기 위해 가와치아스카(河內飛鳥)라고 불렀다.[16] 어간명(御間名)과 임나(任那) 모두 일본에서 ‘미마나’라고 읽힌다.[17] 685년 제정된 48관위 가운데 48번째인 하급 관직.[18] 척간(尺干)은 아척간(阿尺干), 사척간(沙尺干) 등의 신라 관등에 자주 보인다.[19] 고구려 유민 중 게루(卦婁, 괘루)를 성으로 삼은 사례가 나타난다.#[20] 오늘날의 사이타마현 히다카시에 있었다. 이곳에는 고구려 왕족이라는 약광을 모시는 고마 신사(高麗神社)가 남아 있다.[21] 상부(上部)의 왕충마려(王虫麻呂)라고 볼 수도 있다.[22] 《속일본기》 겐쇼 덴노 요로(養老) 5년(721년)에 이름이 보인다.#[23] 이 씨족의 원래 성씨는 나니하노쿠스시(難波藥師)였다. 《속일본기》 고켄 덴노조에는 이 씨족의 고구려인 조상 덕래(德來)가 백제에 귀화했다가 유랴쿠 덴노 때에 일본으로 넘어갔다고 되어 있다.# 이 씨족은 유래에 걸맞게 주로 의약 분야 관직에서 일했다.[24] 교토에 있는 야사카 신사를 대대로 맡아 온 씨족이라고 한다. 의리좌(意利佐)는 곧 야사카 신사를 창건했다고 하는 이리지(伊利之) 혹은 아래의 이리수사주(伊利須使主)와 동일인이라는 이야기.[25] 예를 들면 금나라라던가[26] 두 이름은 일본식 발음이 거의 비슷하다.[27] 하타노사케노키미(秦酒公, 진주공)와 동일인이다.[28] 전한 시대의 단위를 적용하면 18미터 정도 되는 길이다.[29] 유랴쿠 덴노 시대(456~479)의 궁궐. 오늘날의 나라현 사쿠라이시에 있었다고 한다. 발음이 같은 泊瀬朝倉宮라고도 한다.[30] 이미키(忌寸)와 같다.[31] 《일본서기》 긴메이 천황조에는 백제인이라는 기록이 있다.#[32] 역사서에서 어떤 인물의 사망을 알리는 기사. 사망 기사, 가문 소개, 관직에서의 활동, 편찬자의 논평, 사망 시점의 연령 등으로 구성된다.[33] 이어서 나오는 이마키군, 다카이치군과 함께 오늘날 나라현 아스카 지역의 지명이다.[34] 아타히의 가바네는 직(直), 비(費) 또는 비직(費直)이라고 썼다.[35] 아지사주의 아들 도가사주가 아타히(直)의 가바네를 받은 후의 이름이다.[36] 아지사주의 후손인 야마토노아야(東漢)씨로부터 분기된 씨족. 아지사주 후예 씨족은 동쪽의 야마토국에, 왕인 후예 씨족은 서쪽인 카와치국에 터전을 잡았기 때문에 두 씨족을 야마토노후미(東文), 카와치노후미(西文)라고 불렀다. 모두 문필 실무직을 맡았기 때문에 성에 文이 들어간다.[37] 다만 왕씨 가문은 한사군 시절 한반도로 이주한 중국계 가문이 한사군이 멸망하자 중국에 돌아가지 않고 백제에 귀화한 가문으로 보기 때문에 중국과 아예 연이 없던 건 아니었다.[38] 《속일본기》 권26 쇼토쿠 천황 덴표진고 원년(765년) 12월 5일조, 右京人外從五位下馬毘登國人河內國古市郡人正六位上馬毘登益人等卌四人賜姓武生連.[39] 《속일본기》 엔랴쿠 6년(787)조에는 백제계로 추정되는 오호토모노스구리(大友村主)에게 시가노이미키의 성을 주었다는 기사가 있다. 右京人正六位上大友村主廣道... 並改本姓賜志賀忌寸.[40] 제번 스구리(村主)씨족의 시조인 의보하라지왕(意宝荷羅支王)과 관련된다.[41] 《일본후기》에는 아스카베미야츠코(飛鳥戶造) 씨족 사람들이 구다라노스쿠네 성을 받았다는 기사가 있다.#[42] 진무 덴노의 형이다.[43] 원문은 파문(巴汶)이라고 되어 있으나, 역사서와의 대조를 통해 기문으로 수정된다.[44] 일본 조정에서 파견하던 지방관 혹은 외교 사절을 지칭한다.[45] 685년에 제정된 일본 관위의 하나.[46] 요도가와(淀川) 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쌓은 제방. 오사카부 카도마시에 흔적이 남아 있다.[47]일본후기》 간무 덴노 엔랴쿠 23년(804년)조에는 改茨田親王名爲萬多, '마무타 친왕의 이름을 고쳐 만다라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48] 오늘날의 야마구치현인 나가토국(長門国)의 옛 이름이다.[49] 스진 덴노의 이름이 미마키였다.[50] 《일본서기》 스이닌 덴노 2년(기원전 28년)의 기사에 이 이야기와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51] 하타씨와 관련된 신사에서는 하타노 가와가쓰(秦河勝)를 오사케오카미(大避大神)이라 하며 모신다. 하타씨와 관련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