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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타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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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위치4. 야마토 왕권과의 관계5. 역대 국왕6. 야마타이 인물

1. 개요

야마타이
邪馬臺
邪馬台 (현대 일본어의 신자체)

야마타이(邪馬臺, 야마대)는 야요이 시대 말기에서 고훈 시대 초에 해당하는 기원후 2~3세기경 일본 열도에 존재했던 정치체제 또는 나라로, 동시기 일본에 있었던 여러 군장국가, 부족과 함께 훗날 야마토 왕권을 이루는 나라이다.

2. 상세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야마타이국의 여왕 히미코(卑弥呼)에 대한 내용과 이후 위 명제 연간인 경초(景初) 2년(238)에 나시메츠시고리 등을 사신으로 보낸 것을 시작으로 야마타이국이 중국에 조공한 내용 등의 기록이 나온다. <위서> -동이전-의 기록에 따르면 (倭)에 있는 여러 나라들의 합의로 야마타이국의 히미코를 여왕으로 옹립하여(共立) 나라들 사이의 분쟁을 수습하게 했고, 야마타이국은 휘하에 30여 개 정도의 작은 나라들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삼국지》 <위서>에서 말하는 '나라'(國)란 현대의 국가개념보다는 한국사의 성읍국가에 가까운 일종의 도시국가적인 공동체를 의미한다. 즉 이 당시의 야마타이국은 일본 열도의 여러 도시국가들이 야마타이국을 중심으로 연합한 연맹체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국과 중국 역사서에서 언급되고 있는 야마타이국이 정작 일본 역사서인 《일본서기》에서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재 일본 황실에서는 만세일계를 따지기 때문이다.

3. 위치

파일:yamatoouken_nanokuni.png
한위노국왕 금인(金印)이 발굴된 지역으로부터의 거리를 표시한 지도.
진한 회색은 고훈 시대 이후 야마토 왕권의 세력 범위를 나타낸다.
히미코가 여왕으로 있었던 야마타이국('사마대국' 또는 '사마일국', 邪馬臺/壹国, '臺'의 경우 やまたいこく)에 대해서는 규슈 지역설과 긴키 지역설이 대립 중에 있다. 아직 논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도쿄대학과 규슈대학 학자들은 규슈 지역설을 주장하고, 교토대학, 오사카대학 학자들은 긴키 지역설을 주장한다. 이는 명문대학 사학과들 간의 자존심 대결이기도 하다. 규슈 지역설과 긴키 지역설은 에도 시대부터 히미코 관련 기록이 야마토 왕가를 기록한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와 얽혀 아라이 하쿠세키와 국학자들 등이 열심히 싸우던 주제 중의 하나였다.

주의할 점은 야마타이국이 당시 왜 지역의 유일한 국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당시 한반도나 중국과 교류하기 위해서는 긴키 지역보다는 규슈 지역이 지리상 훨씬 유리했다는 점이다.

신라도 중국으로 갈 만한 서해 및 서남해 바다 쪽이 고구려백제에 막혀있는 나라의 위치 때문에 중국과 교류하기 어려워 신라가 중국에 첫 사신을 보냈을 때도 고구려나 백제의 사신을 따라갔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한 이후에야 독자적으로 중국에 사신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규슈의 경우, 중국까지 바닷길을 방해하는 나라가 딱히 없으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시코쿠, 혼슈는 신라보다도 훨씬 더 멀다는 것이다. 규슈 역시 항해술이 발달한 후대 기준으로나 중국을 향해 바다로 직행할 수 있는 것이지 고대의 미흡한 항해술로는 한반도 연안을 타고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사실상 신라와 비슷한 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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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야마토 왕권과의 관계

야마타이국 긴키설의 경우, 야마타이국이 고훈 시대 야마토 왕권(ヤマト王権)의 기원이라 보고 '야마타이'(邪馬壹)라는 명칭 자체도 '야마토'를 음역한 것으로 본다.

야마타이국 규슈설의 경우, 중국 사서의 邪馬壹(야마대)라는 명칭을 읽는 방법이 야마타이가 아닌 다른 발음일 수도 있다고 보고, 규슈에 존재한 邪馬壹國과 긴키의 야마토 왕권을 서로 다른 별개의 나라라고 주장하며 긴키의 야마토 왕권(야마토 조정)이 규슈의 邪馬壹國을 침공하여 멸망시키고 정복한 것으로 본다.

이 두 개 설을 절충하여 야마타이국이 원래 규슈에 있었으나 나중에 긴키로 이동하여 야마토 왕권이 되었다는 야마타이국 동천설이란 학설도 있다. 이는 진무 천황의 동정(東征) 신화와도 연결된다.

중심지 이동설은 한국사에서도 가야 같은 데서 고고학적 근거가 조금만 애매하면 한 번씩 거쳐갈 정도로 전가의 보도로 써먹는 가설이라 그리 특별할 것도 아니다. 고조선도 중심지 이동설이 정설이다.

5. 역대 국왕

고대 일본 제국(諸國)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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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노국 왜왕 왜면국 왜왕 야마타이국 왜왕 쿠노국 왜왕
왜노국왕 스이쇼 히미코 토요 히미코코
왜5왕
찬(贊) 진(珍) 제(濟) 흥(興) 무(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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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 시호 봉호[1] 재위기간
선대 계보 미상
? ? 친위왜왕
(親魏倭王)
히미코
(卑彌呼)
180년경[2] ~ 247/248
? ? - ?[3] 247/248년경
? ? - 토요
(臺與)
248년경 ~ ?[4]
후대 계보 미상

6. 야마타이 인물



[1] 중국의 봉호.[2]후한서》에 따르면 환제에서 영제로 넘어가는 시기에, 《정사 삼국지》에 따르면 후한 말에 왜국에 대란이 있었고, 이어 히미코가 즉위했다고 했다.[3] 히미코 사후 남성 왕이 잠깐 있었다가 이후 토요가 즉위했다. 이 시기에 다시 내전이 일어나 1,000여명이 죽었다고 한다.[4] 266년 진나라에 사신 파견 이후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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