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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03:01:33

신사본청

<colbgcolor=#504C4B> [ruby(神社本庁, ruby=じんじゃほんちょう)]
신사본청 | Association of Shinto Shrines
파일:신사본청.png
파일:Logo_white_negate.png
본부 <colbgcolor=#FFF,#000>도쿄도 시부야구 요요기1초메 1-2
(東京都渋谷区代々木一丁目1-2)
본종 신궁(神宮)
전신 황전강구소(皇典講究所)
대일본신기회(大日本神祇会)
신궁봉재회(神宮奉斎会)
설립 1946년 2월 3일
종류 포괄종교법인
회원 일본 전국의 8만여 신사
임원
총재 이케다 아츠코[1](池田厚子)
총리 타카츠카사 나오타케[2](鷹司尚武)
총장 아시하라 타카호(芦原髙穗)(총리 지명)
타나카 츠네키요(田中恆清)(연임 주장)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Association_of_Shinto_Shrines_2010.jpg
도쿄도 시부야구의 신사본청 청사. 일본 전통 신사 건축 양식을 본따 지었다.

1. 개요2. 위치3. 연혁4. 역사5. 별표신사6. 비소속 신사
6.1. 소속 신사의 탈퇴6.2. 야스쿠니 신사
7. 정치

[clearfix]

1. 개요

신사본청은 이세 신궁을 본부로 하여 전국 각 지역의 신사 8만여 곳을 관리하는 일본의 민간종교법인이다.

2. 위치

신사본청은 이세 신궁을 총본사로 삼는데, 실질적 운영을 담당하는 본부는 도쿄도 시부야구 요요기1초메 1-2로, 메이지 신궁 동북쪽에 바로 접해 있다.

3. 연혁

4. 역사

본래 신토는 자연 발생한 신앙이고, 신불습합이나 전국시대에 기독교의 영향을 받는 등 이교와 융합하거나 각 지방의 토속문화에 적응하는 다신교적인 종교지만, 일본 제국 시기 국가신토 정책에 따라 일본인을 단합하기 위하여 전국의 신사를 일원화하는 관리체계를 설립했다. 전국의 신사들을 근대사격제도로 등급을 매기고, 국가 차원에서 신토 관련 제례나 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을 만들었다. 1871년 메이지 정부는 종전의 신기관을 폐지히고 신기성(神祇省)을 만들어 신토를 관리토록 하였는데, 이후 신기성은 교부성(教部省)[3]이나 신기원(神祇院) 등으로 명칭이 바뀌고 조직의 격 또한 달라졌다.

신기원이 위에서 관리하는 조직이라면 밑에서 관리하는 조직도 필요했다. 이에 국립신토학교인 황전강구소(皇典講究所)가 창설되었다. 황전강구소는 국학원(國學院)이라는 교육기관을 설립했는데, 후에 국학원대학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그 밖에 메이지 정부는 신궁봉재회(神宮奉斎会) 등 친정부적인 신토계 인사들이 모인 조직을 후원하였다. 신궁봉재회는 신궁교가 개칭한 단체로 이세 신궁 신앙을 주관하는 곳이었다. 한편, 일본 내 관폐대사 등 '격을 받은' 신사에서 일하는 신토가들이 모인 대일본신기회(大日本神祇会)라는 단체가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1946년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국가신토 체계를 유지하던 신기원 조직과 근대사격제도를 폐지했다. 기존에 일본 정부와 관련되어 운영되던 황전강구소나 대일본신기회, 신궁봉재회 등은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되어 저마다 생존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앞 3개 단체가 서로 조직을 합친 뒤 민간종교법인으로 등록한 단체가 바로 '신사본청'이다. 대외적으로는 신사본청의 기원이 1872년 신궁교 창교라고 주장하지만, 직접적인 기원은 황전강구소·대일본신기회·신궁봉재회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6년에 통합한 것이다. 민간종교법인인데도 관공서처럼 '청(庁)'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전신인 이 3개 단체가 모두 과거에는 반쯤 국영단체였기 때문인 듯하다. 다만 현재 신사본청은 본법인이 국가신토로부터 기원하였음을 최대한 부정하는 방침을 취한다. 그 연혁도 이세 신궁 내 신관들의 모임을 기원으로 두거나 대일본제국 헌법의 종교의 자유 조항을 강조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도도부현마다 하나의 신사청(神社庁)이 있고 도도부현을 복수의 지구로 나누어 지부를 설치한다.

5. 별표신사

근대사격제도가 폐지된 뒤 신사본청에 소속된 모든 신사는 이론적으로는 '평등'하지만, 아무래도 역사나 규모 등에서 일반 신사처럼 처리할 수 없는 곳들이 있었다. 1948년 신사본청은 별표신사(別表神社)라는 이름으로 묶어 관리하기로 하였다. 여기서 별표(別表)란 한국에서 흔히 문서에 '별표 참조'라고 할 때의 그 '별표'이다. '별개의 표에 이름을 넣고 관리하는 신사'란 뜻일 뿐이다. 별표신사는 그저 신사본청에서 행정적으로 따로 관리하려는 구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신사본청에서 평범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뜻이 되어 등급이 되어버렸다.

이세 신궁 역시 본래는 '평범하게 대할 수 없는 신토시설'이지만, 너무나 존엄하단 이유로 어떤 구분도 하지 않았다. 이세 신궁이 너무 존엄하다고 어떤 등급도 매기지 않음은 근대사격제도 시절의 방침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6. 비소속 신사

신사본청이 일본의 모든 신사를 다 관할하지는 않는다. 가마쿠라궁(鎌倉宮)과 후시미이나리타이샤, 닛코 동조궁 등 유명한 신토 시설이면서도 신사본청에 가입하지 않은 곳도 있다. 일본 신사의 총본부 같은 위치지만, 과거에 신사합사정책으로 지방신사들로부터 거하게 원한을 산 적이 있어서 여기 가입된 신사라도 딱히 신사본청에 충실하다고는 볼 수 없다.

신사들이 신사본청에 등록해야 한다고 강제하는 법규는 없지만 상당수 신사들이 신사본청에 소속되었는데, 비소속 신사는 대부분 신토가 아니라 사이비(컬트, カルト)로 취급받아 지자체의 공식행사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신사본청이 관공 소속이 아닌 민간종교법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한계부락(고령인구가 너무 많고 인구가 적은 마을)으로 지정될 정도인 시골 깡촌에는 본청에 등록 안 된 신사들도 소수 있긴 한데, 이런 신사들은 '니들이 우릴 이단 취급하든 말든 우리 고향에서는 조상 대대로 모시던 신을 모신다'는 식으로 무시한다.

6.1. 소속 신사의 탈퇴

신사본청이 예하 신사들에게 공포정치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내부사정이 꽤나 복잡하다고 한다. 메이지 신궁이 2004년에 신사본청에서 탈퇴했다가 2010년에 복귀하기도 했다. 2020년 6월에도 카가와현 고토히라궁(金刀比羅宮)이 신사본청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단 소식이 보도되어 신토계가 크게 놀라기도 했다. (도쿄신문 기사) 패전 이전 근대사격제도에 따른 고토히라궁의 사격은 고작 국폐중사(国幣中社)에 불과했지만, 역사도 깊거니와 일본 전역에 6백여 말사를 두어서 영향력도 큰 신사이다. 신사본청에서도 고토히라궁의 탈퇴를 두고 메이지 신궁이 탈퇴하기로 결정했을 때만큼이나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하는 판.

고토히라궁이 밝힌 공식적인 탈퇴이유는 다음과 같다. 2019년 나루히토 천황의 대상제(大嘗祭)[4] 때 신사본청이 여러 신사에 돈을 나누어주는데, 고토히라궁에는 제때 전달해주지 않아서 더 이상 신뢰할 수가 없다는 것.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복잡한, 신사본청과 신토계 내부의 정치적 알력싸움이 원인이라고 보는 일본인들이 대다수이다.

6.2. 야스쿠니 신사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법률상 단립종교법인(単立宗教法人)으로 분류되어 신사본청에 속하지 않는다. 이는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수호 신사이며, 언젠가 국가에 반환될 것이기에, 특정 종교법인의 포괄적인 관리하에 들어가지 않는다."라는 야스쿠니 신사와 신사본청 쌍방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야스쿠니 신사가 신사본청의 관할이 아니면서도 신사본청이 '야스쿠니 신사 숭경봉찬회(靖國神社崇敬奉賛会)'의 법인 회원으로 가입돼있는 등 이 둘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7. 정치

파일:일본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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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현대 기준 일본에서 Ethnic nationalism이 아닌 단순 Nationalism을 지칭할 때에는 '민족주의'(民族主義)라는 용어보다는 '내셔널리즘'(ナショナリズム)이라는 용어가 선호된다. 일본에서 '민족주의'는 전적으로 Ethnic nationalism을 의미하는데, 이는 과거 천황제 파시즘과 결합해 야마토 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웠던 극우 민족주의를 연상시키는 데다가, (야마토 민족이 아닌) 류큐인이나 아이누인같은 전통적 일본 내 소수민족까지 배제하기 때문에 현재의 주류 보수우익에서 거리를 두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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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 시대에는 일본 정부가 종교정책에 어긋나는 불순한 신사나 신위를 '신사합사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강압적으로 폐지하기도 했다. 현대에도 비록 신사본청이 공식적으로는 '민간종교법인'임에도 불구하고, 신사본청과 일본 정부 간 연결 및 신토 고위급 인사의 교권 파시즘을 꿈꾸는 듯한 우경화가 계속 논란이 된다. 일본 최대의 극우단체 일본회의의 회원 중에도 연관이 있을 정도. 과거 우생보호법 폐지 시 존속을 주장하여 막장성을 인증했다. 한때 "일본인으로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포스터로 일본의 자국 찬양을 홍보했다가 물의가 많았다.

[1] 황적이탈황족이자 이세 신궁의 제3대 여성 제주(祭主)이다.[2] 다카쓰카사 종가의 제28대 당주이다.[3] 국민교화를 강조하기위해 설립했지만 문부성과 역할이 겹쳐 폐지됨[4] 천황이 즉위하고 처음으로 아마테라스에게 바치는 추수감사제. 신토적으로는 이 의식을 해야만 비로소 새 천황으로서 종교적인 인정을 받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