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al fascism
1. 개요
교권 파시즘은 파시즘의 정치경제적 교리를 교권주의와 결합시킨 이념이다. 종교 조직을 동원해 파시즘적 정치를 행하거나 성직자가 파시즘 정권에서 지도적 역할을 한다. 근본주의 또는 종교극단주의와 비슷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른데 교권 파시즘은 종교를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사용해 파시즘 정권을 이루는 것이고 일반적인 종교 근본주의 또는 종교극단주의는 파시즘적인 (또는 사회적으로 수구적인) 교리를 수단으로 근본주의 아젠다를 유지시키는 것이다.이 용어는 1920년대 이탈리아 왕국에서 베니토 무솔리니 및 그를 지지한 가톨릭 정당인 이탈리아 인민당을 설명하는 말로써 처음 사용되었다. 무솔리니를 반대하다가 1924년 망명을 나간 기독교 민주주의 신부 루이지 스투르초(Luigi Sturzo)가 고안자라고 한다. 1922년 로마 진군으로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기 전부터 북이탈리아에서는 가톨릭을 파시즘에 융합하려는 교인들이 있었는데 이들 역시 교권 파시스트라고 불렸다.
기독교 파시즘이 급진화된 교권 파시즘은 전간기에 유럽 각지의 극우 정치세력들 사이에서 형성되었다. 서유럽의 교권 파시즘은 역사적, 사상적 맥락에서 전통주의 가톨릭과 여러모로 관련이 있다.
이렇게 유럽에서는 그리스도교가 파시즘과 결탁했듯 일본 제국에서도 불교가 파시즘과 결탁해서 권력을 착취하고 각종 악행들의 선봉에 섰던 적이 있다.
2. 상세
파시즘이 기존정치와 근대에 대한 반항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파시즘 거물들의 최고봉인 아돌프 히틀러나 괴벨스, 마르틴 보어만 같은 인물들이 종교에 대해서 냉소적이었기 때문에 종교와 파시즘은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지만 관련연구에 따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1] 우선 파시즘이 기존 엘리트들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종교도 협상 대상이 되곤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교황과 무솔리니의 라테라노 조약이다. 종교 파시즘은 아예 종교가 민족주의를 대체해서 파시즘적 열정을 부여한다고 보는 경우다. 이에 대해 스탠리 페인 교수는 종교의 계율과 가치가 파시즘 지도자를 제약하기 때문에 종교가 어느 정도 세속화되어야 이러한 것들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벨기에, 루마니아, 스페인, 핀란드, 포르투갈,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의 파시스트들은 종교를 매우 중시했다.한편 교권 파시즘은 일본에서도 존재했는데 국가신토가 그 예 중 하나다. 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의 책 '불교 파시즘(Zen at War)'에서는 일본의 불교에도 교권 파시즘적 면모가 있다며 이런 면을 낱낱히 파헤치며 고발했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는 '생사일여 (生死一如)'의 논리를 뒤집어서 천황을 위하여 삶을 살고 천황의 적들을 죽이는 것임이 선행이란 교리를 만들어버리고 이를 선동의 수단으로 삼았다. 전후 서방세계 기독교 계열의 교권 파시즘 세력은 공산화와 해방이 이뤄지면서 부역자들을 추적하고 철저히 파괴시킨 반면 일본에선 그러한 일이 전무했기 때문에 불교 계열 교권 파시즘 세력들은 현재에도 어느 정도 살아있다.
로버트 팩스튼은 민족주의를 파시즘이 택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보고 종교 파시즘의 출현 가능성을 긍정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종교는 그 정체성 측면에서는 국가(nation)만큼이나 강력할지도 모른다. 일부 문화권에서는 실제로 종교적 정체성이 국가적 정체성보다도 훨씬 더 강력하다. 종교근본주의에서는 종교 내의 단합과 활력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국가의 단합과 활력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게 작용한다. 이런 공동체에서는 종교에 기반한 파시즘의 출현이 가능하다. 결국 그 어떤 파시즘도 상징이나 구호가 다른 형태의 파시즘과 비슷할 이유는 없으며, 실제로 그러하듯이 각 나라의 애국주의 레퍼토리들을 얼마든지 끌어들일 수 있다.
3. 관련 인물 및 단체, 조직들
-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와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팔랑헤 (스페인국)
- 국가 파시스트당의 이탈리아 왕국
- 콘스탄틴 로자예프스키의 러시아 파시스트당 (만주국)
- 안테 파벨리치의 우스타샤 (크로아티아 독립국)
- 코르넬리우 젤레아 코드레아누와 호리아 시마의 대천사 미카엘 군단 (루마니아 왕국)
- 레온 루프니크 (슬로베니아)
- 렉스당 (벨기에)
- 라푸아 운동 (핀란드)
- 요제프 티소의 슬로바키아 인민당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 유고슬라비아 국민운동 (세르비아 구국정부)
-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의 국민대중행동 (포르투갈 제2공화국)
- 엥겔베르트 돌푸스와 쿠르트 슈슈니크의 조국전선 (오스트리아 연방국)
- 국가신토 (일본 제국)
- 윌리엄 더들리 펠리 (미국)[2]
- 찰스 코글린 (미국)[3]
- 볼레스와프 피아세스키의 국민급진기지 팔랑가 (폴란드 제2공화국)
- 프랑수아 드 라 로크(프랑스)
- 플리누 사우가두의 브라질 통합주의 행동 (브라질 합중 공화국)[4]
- 제럴드 L. K. 스미스 (미국)[5]
- 피에르 시도스 (프랑스)
4. 기타
미국의 극우 개신교 인사들이 이끌었던 나치 운동이나 전간기 핀란드의 '라푸아 운동'은 드물게도 전통적 권위주의나 보수주의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 개신교 우파의 극우 운동이 파시즘까지 급진화된 사례로써 주목할 만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팩스튼이 언급하진 않았으나 남아프리카 연방의 오제바브란트바흐 역시 교권 파시즘으로 볼 여지가 다분하고 충분하다.여기서 논란이 되는 부분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파시스트인가 아닌가의 여부다. 팩스튼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파시스트가 아니라고 보지만 이슬람 파시즘이란 개념을 주장하며 이들 역시 파시스트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파시즘의 요소중 하나인 내셔널리즘을 서구 문명의 잔재로 보고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여담으로 팩스튼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보단 차라리 현대 이스라엘이 파시즘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은 GDP 대비 군사비용, 방위비용 지출이 7~8%에 달하는 사실상 병영국가인 데다 그에 덩달아서 사회 분위기도 매우 보수적, 폭압적, 억압적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도 자국이 군국주의 국가가 되어 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대표적으로 Uri Ben-Eliezer의 견해가 있다.
다만 기본적으로 교권 파시즘은 근본주의나 원리주의와는 다른 개념이다. 교권 파시즘 같은 종교 내셔널리즘은 종교를 네이션(nation)의 구심점으로 삼는 것에 중점을 두지 교리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교권 파시즘을 비롯한 종교 내셔널리즘 중에서는 껍데기를 까 보면 세속주의적인 경우도 있다. 물론 교권 파시즘과 근본주의가 결합되는 사례도 있긴 하지만 동의어나 유의어로 볼 순 없다.[6]
인도의 인도 인민당과 시브 세나가 표방하는 힌두트바가 교권 파시즘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이 주장은 학계에서도 논란거리다.
[1] 기본적으로 종교를 어떻게 보느냐와 어떻게 대하느냐는 결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비록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에 대해선 노예근성과 몽매함으로 점철된 미신 쯤으로 취급했으며 신에 대해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모호한 입장을 취하였지만 그럼에도 스스로를 유신론자로 규정한다는 점에 있어선 한결같았고 가톨릭 세례자임을 어필하거나 여러 교회들의 예배에 참석하는 등 종교를 무작정 배척하기보다는 자신의 목적에 맞게 활용하려고 하였다. 무솔리니는 자신의 아이들을 가톨릭 세례를 받게 하기도 했고 성당을 지어줌으로써 가톨릭을 정치적 지지세력으로 포섭하고자 애썼다.[2] 개신교, 목사[3] 1916년 정식서임을 받은 가톨릭 신부.[4] 가톨릭 성향.[5] 개신교, 크리스천 교회(제자회) 소속.[6] 예를 들어 헤즈볼라는 이슬람을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 단체이지만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나 알카에다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정당과는 정체성이 크게 다르며 오히려 세속주의 정당에 가까운 면모가 훨씬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