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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30 11:14:38

황국협회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 정당
대한제국 ~ 미군정
(1897 ~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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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중추원
大韓帝國中樞院
중추원 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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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황국협회 로고.svg
황국협회

16석
파일:독립협회 검은색 글자.svg
17석
※ 중추원은 독립협회의 해산으로 사실상 기능이 정지됐다.
재적
50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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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황국협회 로고.svg
황국협회
한자 명칭 皇國協會
창립일 1898년 6월 30일
한성부 (現 서울특별시)
전신 혜강공국
이념 보수주의 (대한제국)
전통주의
왕당주의 (친(親)고종)
상권수호운동
보호무역주의
전제적 계몽주의[1]
친러
창립자 홍종우
중추원 의관
16석 / 50석 (33.0%) (해산 직전)
1. 개요2. 활동3. 성향4. 여담5. 주요 인물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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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황국협회 로고.svg

김옥균 암살로 유명한 홍종우, 길영수 등과 보부상들이 이끈 협회.

중추원에서 독립협회자유주의, 급진주의좌파 성향을 보였다면 황국협회는 이에 반대하는 보수주의, 전통주의우파 포지션이였다. 물론 1948년 민주공화정 정부 수립으로써 출발한 오늘날 대한민국의 보수정당계•민주당계•진보정당계 진영논리와는 거의 무관하다.[2]

2. 활동

19세기 말, 서재필독립협회가 점점 세력을 키워나가자 이에 위협을 느낀 보수파들이 설립한 협회. 사실상 정부의 어용단체나 다름없는데다가 독립협회를 탄압한 끝에 독립협회 해산에 큰 기여를 하여 현대의 평가는 많이 박한 편이다.[3]

3. 성향

황국협회의 구성원은 당연하게 보부상들이었다. 이들은 독립협회와 대척점에 있었는데 독립협회는 한양의 시전 상인들의 후원을 받고 있었고 지주들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경제체제를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어 외국의 물산이 자유롭게 들어온다면 보부상과 같은 소상들은 몰락하는 것이 당연하였고 이에 반발하였다.[4] 거기에다 여흥민씨 가문과의 연줄 역시 존재하여 황국협회의 수뇌부는 그들과 협력하여 각종 인력 동원등을 하였다.[5]

4. 여담

황국중앙총상회라는 이름이 비슷한 단체가 있다. 이쪽은 서울 시전상인들이 모인 상권수호운동 단체이다. 황국협회와는 정반대로, 만민공동회를 지원하는 등 독립협회와 협력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둘다 황국과 상인이 들어간다는 점 때문에 한능검이나 공무원 시험에서 간혹 출제되곤 한다.

홍종우, 길영수, 이기동이 황국협회를 함께 이끌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이 사람들의 성명 중 1자씩을 따 ‘홍길동’으로 불렀다는 말도 있다.

5. 주요 인물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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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 사상의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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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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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국협회
주요 3대 이념의 분파 (사회주의 · 자유주의 · 보수주의) · 기타(내셔널리즘 · 생태주의 · 포퓰리즘)
* 국민주의는 근대(modern)에 탄생한 이념이다. 따라서 21세기 기준 서구 선진국에서 국민보수주의가 강경 우익인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근대적/현대적(modern) 보수주의이며, 고전적(classical) 보수주의에 속하지 않는다.
상징 | 역사 |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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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종우 등은 전제군주제를 유지하면서 온건하게 개혁을 이끌기를 바랬다.[2] (1919년 임정법통론이든 1948년 건국론이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설립할 시기 주요 인사들은 공화주의자들이였고 특히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본인부터 독립협회 출신 인사인데다가 대통령 되고 나선 아예 대한제국 황실을 탄압까지 했다. 건국 이래 대한민국 보수주의는 공화주의를 공기처럼 상식으로 여기고, 대한제국 시기 보수주의 전통과 거의 단절되어 있다.[3] 사실 독립협회 해산의 계기를 준 것은 중추원 설립 후 국외로 추방된 서재필과 반역죄로 쫓기던 박영효를 대신으로 추천한(...) 독립협회 자신들이었지만, 이들이 어용단체로서 독립협회 탄압에 앞장선 것도 사실이었기에 평가가 나쁜건 딱히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4]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사실 보부상들은 조선초에 이미 부상단(負商團)이라는 것이 결성되어 있었으며, 그 뒤에도 조정에서는 국가 대사나 국난 위기 때 이들을 수시로 사역하였다. 이러한 조직과는 별도로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행상을 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교환경제가 이루어지도록 중간자 역할들로 조선후기 각 지역에서 생겨난 3~5일장의 실질적인 주역들이였다.(물가변동의 직접적인 체험자들) 또한 구미열강들의 물산들은 공산품들이였지만, 이들이 조선에서 가져가는 것들은 주로 쌀이였다.(개항이후 대부분의 구미열강들은 조선에 대한 상품성이 없다고 생각하였지만, 인근의 청나라와 일본이 집중적으로 침투하고 있었다.)[5]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여흥민씨 가문과의 개인적인 연결이라고 하기보다는 조정에서 통제되고 있는 보부상단체들을 정권을 일끌고 있던 민씨들이 사용하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