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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주의는 자유주의에서 파생된 문화적 좌익에 가까운 사상이며, 여전히 서구권을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 자유주의의 하위 이념으로 여겨진다.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특징으로 하기에 진보주의(문화적 좌파, 자유주의 하위 이데올로기)와 전혀 별개의 전통이지만, 대한민국이나 중남미같이 우익독재를 겪은 지역에서는 진보주의가 사회주의와 친연성을 가지기도 하는 반면 공산 독재를 겪은 동유럽 지역에서는 오히려 경제적 자유주의와 엮이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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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보적 보수주의(progressive conservatism)는 보수주의 이념의 한 갈래로 보수적 가치와 전통을 옹호하면서도 진보적 가치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진보주의 자체는 좌익 정치로 분류하지만, 진보적 보수주의는 범우익 이념으로 분류하며 자유보수주의, 가부장적 보수주의, 공동체주의(공동체적 보수주의), 사회자유 보수주의(후술) 등을 사례로 거론하고 있다.자유보수주의와의 유의어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으나 자유보수주의와 달리 진보적 보수주의는 어느 정도 개념이 정립된 고전적 자유주의 요소보다는 시대, 지역마다 다소 다르게 정의되는 개혁/진보적 요소의 부분적 수용에 더 초점을 둔다.
2. 역사
진보적 보수주의는 18세기에 처음 등장하였다고 본다. 기존의 왕의 존재나 종교적 권위 등 기층질서는 유지하면서도 과학이나 교육, 기술 발전, 경제 개선 등을 위해서 계몽주의와 합리주의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믿은 이들의 철학을 계승한다. 진보적 보수주의 이념은 좀 더 고전적인 진보적 보수주의와 현대의 진보적 보수주의로 세분화해서 볼 수 있다.먼저 서구에서 진보적 보수주의가 최초로 등장한 사회적 맥락을 살펴본다면 21세기 현재와 조금 차이가 나는 것이 진보주의는 원래 19세기 산업화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사회주의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변화한 현재의 진보주의가 아니었다. 18 ~ 19세기 당시의 진보주의는 왕정복고를 꿈꾸는 반동주의적 성향을 가졌던 전근대 전통적 보수주의에 대항하는 급진주의 등의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를 의미했다. 이를 고전적 진보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즉, 사회주의가 세계를 휩쓸기 전에는 귀족을 비롯한 특권계급이 보수주의자였다면 그 보수주의자에 대항하는 주된 계급은 부르주아였다.
하지만 서구 사회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민주주의 등의 근대적 이념을 수용해가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간의 대결이 시작되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귀족 등의 특권계급과 부르주아 계급이 과거의 적대를 접고 서로 타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고전적 진보주의 가치를 수용한 진보적 보수주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통적 보수주의 문서에서 나오는 근대적 보수주의가 바로 이 진보적 보수주의와 거의 똑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영국의 대표적인 진보적 보수주의자는 에드먼드 버크, 소(小) 윌리엄 피트,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있다. 버크는 핍박받는 가톨릭의 권리를 대변하였고, 피트는 흑인 노예무역을 탄압하고 반노예주의를 견지했으며, 디즈레일리는 영국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영국의 진보적 보수주의는 '일국 보수주의'라고 칭한다.
두 번째로 흔히 말하는 진보적 보수주의 이념은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위의 진보적 보수주의를 계승하면서 20세기 사회주의 이념과 대결하면서 변모하게 되었다. 특히 유럽에서 발달한 이런 부류의 진보적 보수주의는 근대적 보수주의와 사회자유주의 관점이 결합된 것이었다. 이들은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보수적인 견해와 개인의 책임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는 것을 포함하며, 시민권 방어, 환경주의 그리고 제한된 복지 국가에 대한 지원에 대한, 사회자유주의적인 견해를 포함한다. 같은 서구권이라도 미국과 달리 영국, 독일, 북유럽 등에서는 이것을 사회보수주의로 번역하기도 한다.
현대의 대표적인 진보적 보수주의자는 앙겔라 메르켈이 손꼽힌다. 메르켈주의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진보적 요소를 유연하게 흡수하고 받아들이는 편이다. 또한 영국 보수당 내에서는 데이비드 캐머런이나 테레사 메이와 같은 개혁적 보수 노선을 따르는 Tory Reform Group이 진보적 보수주의로 분류된다.
1942년 창당된 캐나다 진보보수당은 자유보수주의와 진보적 보수주의를 표방했었다. 중도우파 정당으로써 당시 메이저 중도좌파 정당이였던 캐나다 자유당과 경쟁했었다. 2003년 우익 포퓰리즘 정당인 캐나다 개혁보수연합과 합당하여 캐나다 보수당으로 재탄생한다.
온정적 보수주의 이념 중 '일부'도 진보적 보수주의로 간주된다.[6] 쉽게 말해서 정부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를 할 책무를 강조하고 약자에 대한 포용을 강조하는 온정적 보수주의로 보면 된다. 2009년 당시 제1야당 당수였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진보적 보수주의 프로젝트를 추진하였고 이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도 스스로를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자칭하면서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 초중반에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전진적 보수주의'라는 이름으로 주창되었다.[7] 21세기 들어서 대두된 따뜻한 보수라는 개념도 진보적 보수주의와 연결된다. 대한민국에선 유승민이 2010년대에 내세운 바 있다.[8] 유승민은 공화주의까지 거론하며 이전 보수와는 사뭇 다른 자신만의 사상을 확립시킨다.
3. 주요 이념
진보적 보수주의는 자유보수주의와 비슷하게 온건 보수주의 비스무리한 개념으로 사용된다. 다만 기본적으로 좌-우 스펙트럼 상에서 보수적 관념과 전통을 기초로 진보적 요소를 수용하는 보수주의를 의미하기 때문에 우파 이념으로 분류한다. 또한 자유주의 중도우파(=자유보수주의)보다 공동체주의적 중도우파에 가까운 진영에서 스스로 진보적 보수주의라고 칭하는 경우도 많다.- 자유보수주의
- 일국 보수주의
- 록펠러 공화주의
- 기독교 민주주의 - 중도우파 이념이지만 자유주의보다는 공동체주의에 가깝다.
- 온건 보수주의
- 녹색 보수주의
- 온정적 보수주의 - 주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내세우는 개념이다.
4. 사회자유 보수주의
사회자유 보수주의 또는 사회자유주의적 보수주의(social-liberal conservatism)는 '진보적 보수주의'와 비슷한 맥락에서 사용되지만 사회문화적 의제에 더 중점을 둔다. 말 그대로 사회자유주의적 요소를 수용하는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이다. '사회자유 보수주의'는 보다 보수적인 '버크식 보수주의'(Burkean conservatism)와 구별된다. #
사회자유 보수주의는 강력한 국방, 국가정체성 수호 등 보수주의 가치를 옹호하면서도 다양성, 친환경 정책, 친이민, 사회복지, 사회적 시장경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선호하는 보수주의이다. 따라서 사회전통적 가치와 LGBT 권리 등 다양성에 기반한 가치의 조화를 중시한다. 다만 소수집단의 종교 근본주의 등 문제에 대해서는 되려 좌파진영보다 엄격한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9] 이러한 사회자유 보수주의는 2차 대전 이후 서유럽의 주류 보수주의를 지배했다. #[10] 현재는 서유럽이나 북유럽의 중도주의적 보수주의가 이러한 경향이 있다. #
한국에서 사회자유주의적 보수주의는 정치진영상 반북, 반공 성향으로 인해 보수정당을 지지하나, 친이민 친소수자 가치를 옹호하는 이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비록 한국 정치가 제1세계치고는 사회보수주의가 강하긴 하나, 한국에서는 외교/서사적 스탠스가 사회/경제 스탠스보다 좌우를 구분짓는 데에 더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의외로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소장파 계열 보수진영에서 공식적으로는 자유주의 계열인 민주당보다 되려 사회 이슈에서 개방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11][12]
2024년 코리아타임즈 기사에 따르면 "보수주의" 정당인 국민의힘 지지자 66%가 외국인 이민을 더 받아들이는데 찬성한다고 밝혔는데 정작 "자유주의"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각각 55%와 58%가 나왔다. 해당 코리아타임즈 기사에서는 보수정당 지지자가 이민 문제에서 자유주의자들보다 되려 더 진보적(progressive)이라고까지 표현했는데 이는 오히려 국민의힘 등 보수 진영이 범좌익 진영보다 민족주의(nationalist) 정서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브렉시트 이후 보수당의 투표층은 사회보수주의적인 요소가 강화되었고 심지어 반대파인 노동당도 사회 이슈에서 보수화되었다. 따라서 사회자유주의적 보수당 투표자들이 자유민주당으로 이탈한 경우도 있었다. # 정설과는 거리가 있지만, 미국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같은 민주당 중도파를 사회자유주의적 보수주의라고 묘사한 경우도 있다. # 힐러리가 사회문화적으로 진보적인 것과 달리, 한때 자유주의적 매파 끝판왕이라고 보일 정도로 강경한 안보관과 네오콘과 유사한 외교 스탠스를 보였기 때문이다.
5. 인물
진보적 보수주의자라 칭해지기도 하지만 진보주의에 좀 더 가까운 인물은 ★표 처리.- 기시다 후미오 - 소득주도 성장론에 입각하여 분배를 통한 보수주의적 안정을 추구하는 경제정책인 새로운 자본주의를 추진하고 있다.
- 김대중 - 본인은 진보적 보수주의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으며, 60년대에는 전진적 보수주의, 90년대에는 개혁적 보수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13]
- 김예지 - 보수주의 정치인(국민의힘 소속)이지만 장애인 인권문제 등에 있어서는 리버럴(자유주의, 진보주의) 진영에 가까운 입장을 내고 있다. 심지어 동성결혼 관련 입법도 찬성한다. # 계파적으로는 친유에 가깝다.
- 김종인
- 남경필
- 데이비드 캐머런 - 사회문화적 측면에서의 진보적 성향이 두드러지는 편이다. 반면에 경제에 있어서는 강력한 재정보수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 노선에 입각하여 정부지출 억제, 감세, 규제완화를 추진했다. 최저임금 인상률 또한 노동당 정권 시절의 연평균 4.43%[14]보다 낮추어, 캐머런 내각 임기동안에는 연평균 3.67%[15]에 그쳤다. # 또 2013년 12월에는 우체국을 일부 민영화했으며, 2015년 10월에는 완전히 민영화했다. # ##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 공산화를 막기 위해 무신론자들[16]을 통제[17]하는 등 보수적인 정책들을 지향하면서도, 트루먼 행정부에서 실시된 복지정책들을 일부 계승하기도 했다. 다만, 적절한 정부개입을 지지하되 정부규제보다는 친기업, 친시장 기조 하에서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우호적인 상호작용을 선호했으며, 복지정책에 있어서도 재정보수주의에 입각한 재정건전성을 중시했다. 실제로 아이젠하워는 내각을 구성할 때에도 기업인 출신들을 많이 장관으로 임명했는데, 대표적으로 재무부 장관으로는 클리블랜드 은행가 조지 험프리를 임명했으며, 국방부 장관으로는 제너럴 모터스 CEO를 역임한 찰스 E. 윌슨[18]을 임명했다. 농무부 장관으로는 아이다호의 농장주 에즈라 태프트 벤슨을 임명했으며, 노동부 장관으로는 뉴저지의 기업인 제임스 P. 미첼을 임명했다.[19][20][21] 미국 공화당 내부 온건 보수라는 점에서 넬슨 록펠러와 함께 록펠러 공화당으로 분류되지만, 그는 종교적 관용이나 낙태와 같은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좀 더 진보적인 편이었던 록펠러와 달리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 로버트 켈리 - 과거에는 이명박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호평하기도 했으나, 미국 공화당의 당적을 유지한 채로 대한민국의 보수주의 진영을 향해 지적 파산상태라고 비난하거나, 재벌에 대한 규제와 성소수자 권리 향상, 복지 확대를 지지하였으며, 자국의 정치에 대해서는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신 조 바이든을 지지하는 등, 강경한 보수 성향을 띄진 않고 있다.
- 막스 베버★ - 흔히 '좌파의 마르크스, 우파의 베버'라고 하는데, 논란의 여지가 있는 버크와 달리 베버는 지금 기준으로도 명백한 좌파였다[22]. 다만 마르크스와 달리 자유주의를 지향했던만큼 양자 간에 분명한 성향 차이가 있었던 것은 맞는데, 베버의 사상을 현대적 관점에서 따지자면, 사회자유주의나 미국식 현대자유주의에 가깝다.[23]
-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 벤저민 디즈레일리
- 시어도어 루스벨트★[24] - 다만 당적이 현대 기준 보수인 '공화당'이라서, 당시 딱히 보수주의적 노선이 확고하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지 않고, 현대 기준에서 어거지로 진보적 보수주의자 취급받는다는 지적도 있다.[25] 특히, 1970년대 이후 미국 공화당 내에서 로널드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강경 보수, 신보수주의자들이 부상하면서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아예 '사회주의자'로 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를 가부장적 보수주의자나 진보적 보수주의자로 분류하는 견해도 존재하며, 그가 셔먼 반독점법을 바탕으로 '강도 귀족'의 횡포를 적극적으로 규제한 것은 꼭 진보주의자여서라기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서독의 온건 보수 세력인 기민당이 받아들였던 독일식 경제적 자유주의인 질서자유주의와 같은 맥락이라고 보기도 한다.
- 아르민 라셰트
-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 알랭 쥐페
- 앙겔라 메르켈
- 알렉시스 드 토크빌★[26] - 19세기인 당대 기준에서는 중도좌파 성향의 진보 오를레앙주의자였으나 20세기 자유보수주의 철학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 에드먼드 버크★ - 흔히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나, 정작 본인은 보수주의자들을 혐오했다. 기존의 전통을 존중하는 성향이 분명히 있었으나, 신분제 기반의 출신성분 차별을 결사반대하는 등 진보적인 경향도 보였다. 따라서 당대에는 도리어 개혁 성향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 유승민
- 윌리엄 피트
-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 다만 그는 고보수주의자라고 분류되기도 해서 논란의 여지는 있다.
- 이기택 - 1980년대부터 진보적 보수주의를 주창했다.
- 이원복 - 과거 진보주의 성향을 자처하던 시절에 비하면 상당히 우경화했고, 이에 따라 사상적으로 편협해졌다는 지적도 받는다. 허나 경제적 자유주의에 경도된 현재도 여전히 정치적 자유주의와 문화적 자유주의를 옹호하고, 서유럽식 복지 모델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점에서, 복지 확대 및 보편적 복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대한민국 내 주류 우파와는 논조가 크게 다르다.
- 이회창 - 김대중과 마찬가지로 개혁적 보수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여담으로 이회창은 유승민의 정치 멘토 중 한 명으로 알려졌다.
- 이준석
- 자크 시라크 - 젊은 시절에는 아예 좌파 성향이었으며, 범우파로 전향한 이후에도 본인 스스로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지칭했다. 비록 총리 재임 중에는 민영화같은 신자유주의적 정책노선을 보이기도 했으나, 대통령에 출마하고 당선되자 사회격차의 해소와 지도주의적 노선에 기반한 경제정책을 내세우면서, 마거릿 대처와 존 메이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앵글로색슨 초자유주의(Anglo-Saxon ultraliberalism)라고 혹평했다.
- 조르주 퐁피두
- 조지 오스번 - 사회문화적 측면에서의 진보적 성향이 두드러지는 편으로, 이와 달리 경제에 있어서는 강력한 재정보수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 노선에 입각하여 정부지출 억제, 감세, 규제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조지 오스번 항목 참조.
- 테리사 메이
6. 여담
- 민권운동 하면 다 자유주의 내지 좌파 성향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보수주의자도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유명 자폐 인권운동가인 아리 니이먼, 위에서 언급된 시각장애인 김예지가 대표적.
7. 같이 보기
[1] 제15대 대통령 (1998년 ~ 2003년).[2] 김대중 옆으로 김종필과 조순의 모습도 보인다.[3] 제26대 국무총리 (1993년 ~ 1994년) / 신한국당 총재 (1997년) / 한나라당 총재 (1998년 ~ 2002년).[4] 제8대 연방총리 (2005년 ~ 2021년).[5] 제22대 대통령 (1995년 ~ 2007년).[6] 참고로 영국에서는 이런 진보적 보수주의를 일국 보수주의(One-nation conservatism), 일국주의(one-nationism) 또는 토리 민주주의(Tory democracy)라고도 부른다.[7] 당시 민주당 소속 재선 국회의원이자 선전부장이었던 김대중은 "정치와 경제의 근대화, 중산층 확대, 자유경제와 사회정의의 조화, (친북이 아닌 반공 성향인 경우에 한해) 진보 세력의 정치 참여 허용, 40대 청년 정치인 육성" 등을 전진적 보수주의의 골자로 설명했다. [8] 사실 90년대까지만 해도 유승민은 경제적으론 전형적인 경제적 자유주의자였으나, IMF 이후 무너지는 중산층을 보며 생각을 고쳤다고 한다.[9] 다문화주의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정체성으로써 세속주의, 사회문화적인 기본적 자유의 가치를 더 중시하기 때문.[10] 극좌적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의 영향으로 냉전 시대 정치 지형은 지금보다 좌경적이였는데 미국, 캐나다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지역에서 좌익(중도좌파~극좌 포함)은 곧 사회주의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2차대전의 트라우마로 파시즘,반동주의가 몰락하고 에스닉 내셔널리즘도 힘을 잃었기에 냉전시대 서유럽 보수주의자들은 시민자유, 시민 내셔널리즘, 자유민주주의, 복지국가 의제 등 사회자유주의적 요소를 쉽게 받아들였다.[11] 가령 건국절 지지하고 이승만/박정희의 국가관 등의 서사를 찬양하고 친일본적 외교관을 보이면서 그들의 사회보수주의엔 동의하지 않고 차별금지법과 LGBT 지지하고 친이민 성향을 보이는 보수 지지자들을 가리킬 수 있다.[12] 반대편에선 반일 친북 좌파민족주의자이고 경제적으로도 분배 정책을 중시하면서도 사회문화적으로는 호모포비아, 트랜스포비아, 반이민을 지지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가령 유명 친민주당 유튜버가 한동훈의 친이민정책이 한민족의 민족혼을 말살하는 일제식 정책이라며 반대했고 저출산에 대해선 한민족주의와 남북통일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13] 민주당계 정당 소속 정치인이었던 김대중이 보수주의자였다는 사실이 놀라울 수 있는데, 원래 민주당계 정당은 반공보수 정당이었다. 다만 김대중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에 걸쳐 진보 세력을 껴안는 행보를 보였으며, 평화민주당 때는 온건개혁주의를 자처하기도 했다. 다만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고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우클릭을 하면서 다시 온건 보수주의, 개혁적 보수주의를 천명하며 진보적 보수주의 노선으로 선회했다.[14] 1999~2010년 3.6 파운드 → 5.8 파운드[15] 2010~2016년 5.8 파운드 → 7.2 파운드[16] 무종교인과 무신론자가 25~30% 정도로 개신교 다음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가톨릭 신자보다도 많은 현재의 미국과 달리, 아이젠하워의 치세 당시에는 무신론은 공산주의와도 상당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미국의 무종교인은 10%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17] 실제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충성의 맹세에 '하나님 아래(Under God)'가 추가되었다.[18] 여담으로 이 사람이 한 가장 유명한 발언이 바로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What's good for General Motors is good for the country)로, 이 발언은 1950년대 당시 GM이 가진 미국 자동차 산업, 나아가 미국 경제 전체에 가진 막강한 영향력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당시 미국에서 GM의 포지션은 오늘날 한국에서 삼성의 포지션에 근접했다. GM공화국[19] 이에 대해 당시 리버럴들과 민주당에서는 "8명의 백만장자와 1명의 배관공 으로 채워진 내각"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는데,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데이비드 스테벤(David Stebenne)에 따르면, 아이젠하워는 만약 성공한 기업인들을 입각시키지 못한다면, 이는 사업 실패자, 정치꾼, 뉴딜 변호사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각료로 임명하지 못하는 현상을 초래할 것이다(If the leaders of successful business were excluded from consideration, the result would be an inability to get anybody to take jobs in Washington except business failures, political hacks, and New Deal lawyers)라고 일기에 작성하며 이러한 비난들에 대해 크게 불쾌해 했다고 한다. #[20] 배관공은 배관공 노조 위원장을 역임했던 노동부 장관 마틴 더킨(Martin Durkin)을 가리킨다[21] 뉴딜 변호사란 1930 ~ 40년대에 민주당 행정부들에서 기용되어 뉴딜 정책을 구성하고 변호하던 변호사들을 일컫는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남부보수파 등 당시 미국 보수 진영에서의 뉴딜 변호사들에 대한 인식은 오늘날 한국 보수 진영에서의 운동권 출신 시민단체 인사들이나 민변과 우리법연구회 출신 진보 성향 법조인들에 대한 인식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22] 베버가 몸담았던 독일민주당부터가 분명한 진보주의 정당이다.[23] 정확하게는 베버가 사회자유주의 및 미국의 현대자유주의에 이론적 기반을 확립했다.[24] Lurie, Jonathan. "William Howard Taft: The Travails of a Progressive Conservative. New York, New York, USA: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2": 196.[25] 사실 공화당은 1920년대까지만 해도 시어도어 루스벨트, 윌리엄 보라, 피오렐로 라과디아같은 소수의 진보 성향 인사들이 잔존했다.[26] Lakoff, Sandoff, "Tocqueville, Burke, and the Origins of Liberal Conservatism." The review of politics 60(3), pp. 435–464,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