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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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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종목3. 역대 일본 개최 국제 스포츠 대회4. 국내 대회

1. 개요

일본은 오늘날 다방면에서 인프라를 보유한 스포츠 강국 중 하나다.

학교 스포츠 인프라가 발달한 국가로, 교육에서 클럽 활동이 제법 큰 비중을 가진 나라답게 학창 시절 각종 스포츠를 접할 기회가 많아, 생활 체육의 저변이 넓은 편이다. 덕분에 많은 국민들이 한두 개 이상쯤은 스포츠 경험이 있는 생활체육 대국이며, 그 영향으로 올림픽에도 가장 많은 종목에 참가하는 나라 중 하나이다. 생활 체육 인프라가 뒷받침 되어 그 중에서 엘리트 체육 인재도 발굴되고 이러한 엘리트 스포츠 선수가 국제 대회에서 선전하며 해당 종목 붐을 다시 일으키는 선순환을 이루는 모범 사례가 상당히 있는 편이다.

야구, 축구 등 프로스포츠 시장도 발달해서 단일 국가 중엔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큰 스포츠 시장을 가졌다.[1] 하지만 야구를 제외한 프로스포츠의 역사는 비교적 짧은 편이다. 야구는 무려 일본제국 시절이던 1936년에 프로리그가 창설되었지만, 축구와 농구는 각각 1993년, 2015년에 프로리그가 출범하였는데 체육 인프라를 감안하면 프로화가 많이 늦은 편이다.[2][3]

야구는 미국 및 중남미 국가들과 더불어 세계 최강호 중 하나이며, WBC도 3회 우승했다. 축구도 2000년대 들어 많이 올라와 아시아에선 정상을 다투는 수준이며[4] 배구도 아시아에선 중국과 함께 1~2위를 다투는 수준이다. 농구도 2020년대 들어 많이 올라왔고, 탁구도 중국 다음가는[5] 선수층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테니스배드민턴도 생활 체육 인프라가 있다.[6]

일본의 국제대회 성적 향상의 또 다른 힘으론 일본 국적의 혼혈 혹은 귀화 스포츠 선수가 활약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나 NBA에서 활약하고 있는 루이 하치무라 등이 대표사례. 그 외에도 농구의 미국 혼혈 히루키 겐지(1985년생), 배구의 브라질 혼혈 스기야마 마르코스(1973년생) 등 찾아보면 예전부터 활약한 혼혈 일본인 선수들도 제법 있다. 육상 분야에서도 이런 사례들이 나오고 있어 꾸준히 문을 두드리고 있다.

격투기 분야도 일본에선 제법 인기있는 스포츠이다. 일단 스모유도는 명실공히 일본의 국기이며 복싱도 맞는 체급에선 다수의 세계 랭커 및 챔피언들을 보유 중이다. 예전만은 못하지만 프로레슬링도 인기 스포츠이다. 이외에도 검도, 아이키도, 가라테, 킥복싱, 슛복싱 등 무술 분야에서 종주국인 경우가 많으며[7] 성적도 좋다. 물론 유도나 가라테 정도를 제외하면 검도를 포함해 많은 일본 무술 종목은 크게 세계화되진 못했다는 한계는 있다. 한땐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도 매우 흥했지만 2000년대 K-1의 몰락과 Pride의 도산으로 2010년대 이후부턴 미국의 UFC 독주 체제가 이어지며 현재는 과거의 영광이 무색한 상황이다.

다만 일본은 중국의 탁구나 한국의 양궁처럼 압도적인 올림픽 종목은 없는 편이다. 그나마 유도가 있지만, 한국의 태권도와 비슷하게 종주국으로서 잘하는 수준이지 금메달을 싹쓸이할 정도로 압도적인 수준까진 아니다.[8] 후술되어있듯 레슬링도 꽤 강세긴 하다.

동계 스포츠의 경우, 유럽과 북미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였다. 1972년 삿포로, 1998년 나가노에서 동계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인프라도 아시아에선 선두권인 편이지만, 한국의 쇼트트랙처럼 확실한 주력 종목은 없어서 동계 올림픽에서 가장 메달을 많이 딴 아시아 국가는 2020년대까지 한국이다. 그래도 살펴보면 스피드 스케이팅이나 피겨 스케이팅 분야에서 강세인 편이다.

2. 종목

2.1. 구기 종목

2.1.1. 야구

일본 최고의 인기 프로 스포츠이다. 일본의 야구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는데 메이지 유신 직후인 1872년 미국인 교사 호레이스 윌슨(1843~1927)에 의해 도입되었으며 소케이센 정기 야구전은 1903년,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고시엔)는 1915년, 프로야구인 NPB는 1936년에 시작하였다.[9] 대회의 오랜 역사에서 볼 수 있듯 이미 일본 제국 시절에도 최고의 인기 스포츠 중 하나였다. 또한 1908년부터 미국과 야구 교류를 시작해 1934년에는 베이브 루스를 비롯한 거물급 스타들이 방문하여 일본 대표팀과 친선전을 치렀고, 이를 계기로 프로리그 설립의 필요성을 인식한 일본 야구인들은 1936년 프로야구를 발촉하였다. 비록 태평양 전쟁의 여파로 고시엔과 프로야구가 잠시 중단되었으나 전후 무력감에 젖은 일본인들에게 위안을 주는 국민 스포츠로 발전하였다.

국제 야구계에서도 일본 야구의 위상은 높다.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은 ‘야구 월드컵’격인 WBC 최다 우승(3회)이라는 가장 앞선 성적을 거두었으며[10] 일본 야구계는 오타니 쇼헤이, 스즈키 이치로 등 야구사에 남을 레전드급 선수들을 배출했다. 또한 일본의 NPB는 세계 2위의 프로야구리그로서[11] 긴 역사와 인프라를 자랑한다.[12][13] 이러한 이유로 일본은 미국, 중남미 몇몇 국가들과 더불어 세계 최정상의 야구강호로 꼽힌다.

2014년 기점으로 젊은 층, 특히 여성 층의 인기도 계속해서 증가 추세이다. 여성들 사이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응원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 카프죠시(カープ女子)[14]라는 단어가 나오기도 했다. 다만 전국 도도부현을 대상으로 응원하는 팀을 조사했을 때 오릭스 버팔로스가 제일 인기가 많다고 답한 도도부현은 하나도 없는 경우도 있어 구단 간의 인기 차이는 상당히 크다. 일반적으로 센트럴리그 구단의 인기가 퍼시픽리그 구단보다 높다.

2014년에 실시한 미쓰비시UFJ 리서치&컨설팅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이 좋아하는 최고의 스포츠는 야구였으며 일본에서 프로야구를 즐기는 인구는 3,128만 명에 이르렀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고시엔 역시 일본 공영방송인 NHK에서 전 경기를 중계하며, 매년 80만 명 이상의 관중을 동원한다. 특히 여름 고시엔은 일본에서 뜨거운 여름을 상징하는 대회로서 일본 야구 만화에서 꿈의 무대로 종종 등장할 정도로 일본 문화의 일부로 녹아들었다.

애초에 생활 스포츠화하긴 어렵다는 편견이 있는 야구지만, 관전 스포츠뿐만 아니라 생활 스포츠적인 측면에서도 일본 야구는 아마추어 체육 사회에 어느정도 녹아든 편이다. 관전 스포츠로 인기가 많지만 생활 스포츠로는 야구의 인기가 그리 높지 않은 한국과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실제 구글 어스로 일본을 보면 동네마다 야구장들이 즐비하게 널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사회인야구고교, 대학야구 경기를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프로야구 1군 경기가 정상적으로 치러질 수 있는 구장들도 몇십개가 넘는다. 그래서 지방구장 경기나 제2홈구장 경기도 상당히 많다. 프로야구 2군 경기가 가능한 구장까지 합치면 이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다만 이것도 절대치로 보면 전국민이 야구를 한다 수준은 아니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긴 하다. 특히 여자 야구는 일본도 미미한 수준이다.

실업야구인 사회인 야구도 발달한 편으로, 기업에서 운영하는 야구팀과 전문적인 야구 선수들이 활동하는 클럽 야구팀만 언제 기준인지 알 수 없지만 343개에 달한다고 한다.[15] 프로야구 출범 이후 실업야구가 프로야구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한국과 달리 일본의 사회인야구는 여전히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회인야구에서 잘하는 선수는 프로로 스카우트되고 프로에서 못해서 방출된 선수는 사회인 야구에서 뛸 수 있다.[16] 독립리그 또한 활성화되어 있으며 2020년대 기준 7개의 독립리그가 운영 중이다.

스포츠 스타 인기 순위에서도 야구선수들이 못해도 10위권, 잘하면 최상단을 점하는 경우도 많다. 일례로 2016년 1월에 나온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스타 순위에서도 1위는 차지하지 못했지만, 야구스타들의 이름이 대거 포함되었다. 대개 200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는 타자 스즈키 이치로가 많은 인기를 구가했으며, 2020년대부터는 투타겸업 오타니 쇼헤이가 다른 스포츠 스타들의 총합을 뛰어넘기도 하는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외에도 쇼와시대 야구 스타였던 나가시마 시게오는 은퇴한지 반세기가 흘렀음에도 10위 안에 제법 포함되기도 하며, 사카모토 하야토, 야나기타 유키, 오카모토 카즈마 등 NPB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이나 무라카미 무네타카, 사사키 로키, 야마모토 요시노부 등 신성들 역시 인기 순위 상위권을 점하는 편이다.
2.1.1.1. 도도부현별 인기 프로야구팀
전체적으로 연고지를 따라 응원하는 분위기가 강한 편이다.
아오모리는 홋카이도와 접한 영향으로[17] 닛폰햄의 팬이 많은 편이다.
일본 최고의 인기 구단이라 그런지 수도권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인기가 상당히 많은 편이고, 사실상 일본 전역에서 요미우리 팬을 찾아볼 수 있을 지경이다.[20] 일단 도호쿠 지역은 라쿠텐이 생기기 이전 야구를 보러 주로 도쿄로 갔기 때문에 요미우리 팬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21] 또한 이바라키현, 도치기현, 군마현, 야마나시현, 니가타현 등 딱히 연고 구단이 없는 지역들은 거의 요미우리를 응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과거 프로야구가 전 경기가 중계되지 않던 시절, 프로야구를 즐기려면 경기장을 찾아가거나 라디오 중계가 일반적이었고, TV중계는 어쩌다 한 번 해주는 것이었던 시절, 그러나 교진만큼은 모기업인 요미우리 계열인 니혼TV에서 매우 자주 중계해서 지상파로 시합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딱히 직접 보러갈 야구팀이 없는 동네의 경우 자연스럽게 TV로 가장 자주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볼 수 있던 팀인 교진을 응원하게 된 것이다.

사이타마치바는 각각 연고 야구팀을 갖고 있지만, 각각 다른 지역을 떠돌다 연고이전해온 팀들이고 도시 자체가 도쿄의 베드타운이라 거주민들도 토박이보다는 외지 출신으로 도쿄에 취직해 베드타운인 치바나 사이타마에 주택을 구입해서 정착하는 루트를 탄 거주민들이 많아 팬들의 충성심이 그리 높지 않다. 그 외에 사이타마는 축구도시라서 야구보다 축구팀인 우라와 레즈의 인기가 높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에는 DeNA, 세이부, 롯데 등이 지역밀착 마케팅으로 쿄진이 보유했던 파이를 상당수 뺏어오는 데 성공하며 해당 지역 한정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라쿠텐의 홈그라운드.
간사이 지역과 간사이에 접한 현들이 주로 응원하는 팀이며, 교토부, 오사카부, 효고현, 나라현, 와카야마현의 경우 과거 요미우리 팬을 역적 취급했던 적이 있다. 심지어는 야구팀이 두 개나 있는 도쿄에도 의외로 한신 팬들이 많다.[22] 사실 이상할 것도 없고 더 당연하다면 당연한 게 서울도 그렇지만 도쿄에는 간사이, 주고쿠 등 타지역 출신의 거주 비율이 꽤 높은 편이다. 그래서 쿄진팬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이런 타지 출신 덕분에 도쿄에서도 한신이나 카프 팬덤이 상당한 편이다.

호쿠리쿠 지방의 경우에 이시카와현이나 도야마현은 주니치와 파이를 공유하지만 후쿠이현의 경우 간사이의 영향을 많이 받아 한신팬이 우세하다. 프로야구팀이 없는 시코쿠의 경우, 전통적인 쿄진 텃밭 고치현이나 히로시마현과의 교류가 많은 에히메현과 달리 카가와현이나 도쿠시마현은 한신이 우세하다. 츄고쿠 지방인 오카야마현은 현 서부(빗츄)는 카프, 현동부(비젠, 미마사카)는 한신이 우세한 편. 다만, 2024년 팬덤 지도에서는 카가와현오카야마현의 경우 카프가 우세한 것으로 나왔다.
요코하마시가 축구 인기가 높은 지역이고 2000년대 대부분을 개막장 성적을 찍어댄 탓에 인근 지역을 연고로 하는 요미우리로 팬이 많이 유출되었으나 그래도 연고도시인 요코하마시의 지지는 단단해서 암흑기에도 버텨준 지지기반이 남아있었고 요코하마시는 일본내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거기에 모기업이 TBS에서 DeNA로 넘어간 이후에는 적극적인 마케팅과 투자로 팬층을 빠르게 키워나갔고 2016년부터는 5, 6위만 기록하던 팀의 성적까지 올라가면서 팬층이 두터워졌다.
나가노는 주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야쿠르트를 많이 응원하는데, 이유는 야쿠르트의 창업자인 시로타 미노루가 나가노 현 출신이기 때문이다.
시즈오카현에는 JR 동일본 소속 열차가 다니는 구간이 있음에도, 미에현은 간사이 권역임에도 불구하고[23] 나고야의 영향을 깊게 받아서인지 주니치 팬이 많다. 아주 오래전부터 아이치 일대를 휘어잡은 덕분에 주니치는 리그 내에서 가장 탄탄한 콘크리트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성적에 따른 관중 증감률이 크지 않은 것이 그 증거이다.
시가는 간사이 지역이지만, 모기업의 영향 때문인지 한신 못지않은 인기를 자랑하고 있으며, 사가는 과거 니시테츠 라이온즈 시절 인연으로 팬이 많은 편이지만 최근에는 소프트뱅크의 적극적인 홍보로 큐슈 권역은 거의 호크스 팬덤이 강성하다.
전통적으로 쿄진의 텃밭이었지만 파리그 팀들의 적극적인 지역밀착화로 인해 201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마린즈의 팬이 많아졌다.
오사카가 한신국이라면 히로시마는 카프국이다. 먼 옛날 시민구단 시절 후원회가 성금을 걷어 구단 자금으로 조달하기도 했고 쇼치쿠 로빈스와의 피말리는 순위 싸움 끝에 탈꼴찌에 성공하며 구단이 타이요에 흡수 합병되는 위기를 극복하는 고난의 시기가 있었기에 옛날부터 팬들의 충성도가 높았다.

오랜 시기동안 츄고쿠 권역을 중심으로 충성스러운 팬덤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2010년대 들어서 카프죠시를 위시한 여성 팬덤의 대거 유입으로 쿄진, 한신에 이어 3위권의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츄고쿠 지방 내에서 효고현과 인접한 돗토리현오카야마현은 한신 팬덤도 상당한데, 오카야마현은 현의 서부(빗츄)는 카프, 현동부(비젠, 미마사카)는 한신 팬덤이 다수인 점이지대를 형성하였으나 최근 팬덤지도에서는 카프가 우세한 것으로 나오고 있다. 또한 시코쿠 지방의 에히메현히로시마시-마츠야마시를 중심으로 교류가 많아 카프 팬덤이 다수이다.
큐슈 지방 외에도, 인접한 타 지역에도 팬이 꽤 많은 편이다. 파리그 제일의 인기팀이자 범 큐슈권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팀.
2.1.1.2. 기타
일본에서의 야구 위상을 ‘야구’라는 용어 사용에서 엿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구기종목 명칭은 모두 일본에서 만들어졌지만 현재 일본에서 야구는 그대로 부르는 반면 축구, 농구, 배구는 한자어를 더 이상 쓰지 않는다.[24] 영어 단어를 일본식으로 발음하여 축구는 삿카(サッカー), 농구는 바스켓토 보루(バスケットボール, 줄여서 바스케(バスケ)라고도 한다.), 배구는 바레보루(バレーボール)로 부른다.

여기에는 여전히 한자를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일본의 사정도 있는데 야구의 들 야(野)자는 일상에서도 많이 쓰이는 쉬운 한자이나, 축구의 찰 축(蹴)자나, 농구의 대바구니 롱(籠)자, 배구의 물리칠 배(排)자 등은 한자가 어렵기 때문이다.

2.1.2. 축구

축구 역시 일본의 주요 인기 스포츠이다. 사실 인기와는 별개로 축구가 일본 사회에서 크게 주목받게 된 시점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축구의 도입 자체는 야구와 마찬가지로 한 세기가 훌쩍 넘었지만, 비교적 근래인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야구나 스모와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의 비인기 종목이었고, 프로축구 출범 시기도 한국보다 10년 가량 늦었다.[25] 이러한 이유로 축구 대표팀의 성적도 한국에 크게 뒤쳐졌었는데, AFC 아시안컵 본선 진출은 1988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은 1998년에야 각각 처음으로 실현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급속하게 인기를 얻기 시작, 1990년대에 월드컵 개최를 목적으로 프로화가 단행되었고,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진출을 시작으로 야구와 호각세를 겨루는 인기 스포츠로 발돋움했다. 이후 축구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과 투자가 열심히 이루어져 일본 축구의 경쟁력도 빠르게 발전했고 인기도 상당히 늘었다. 2024년 9월 기준 FIFA 랭킹은 16위이며, 1990년대 이후 일본 축구는 4회의 AFC 아시안컵 우승과 7회 출전 겸 7회 연속 FIFA 월드컵 본선 진출 및 4회의 월드컵 16강 진출을 달성했고, 8회 연속 올림픽 진출 기록을 달성했으며, 아시아 최초로 2회 연속 월드컵 16강 진출을 달성했다.

일본 프로축구 리그인 J리그는 2012년 기준 경기당 평균 관중 1만 7,000명 수준이다. 2018년 현재 일본 각 리그별 팀들은 지역 밀착에 성공하면서 꾸준히 관중몰이를 하며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여자 축구는 원래 중국과 북한에 밀려 그다지 강하지 않았으나, 2008 베이징 올림픽 여자부 축구 4위를 기점으로 2010년대 들어와서 전력이 급상승하여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AFC]하고 2012 런던 올림픽에선 은메달을 차지하는 등 상당한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일본 여자 축구는 대지진으로 좌절을 겪었던 자국민들에 희망과 용기를 전해주는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여 2011년엔 나데시코 재팬이 일본 유행어 제1위로 떠오르게 되었고, 일본은 지금도 남자 축구 뿐만 아니라 여자 축구에도 통크게 투자하고 있다.

한국 선수들의 프리미어 리그 진출 붐과 비슷하게 나카타 히데토시의 이탈리아 세리에 진출에 힘입어 각종 매체의 호의적인 묘사 등으로 인해 2000년대 한동안 일본에선 세리에 A 위주로 진출하려는 경향을 보였다.[27] 2010년대에는 카가와 신지하세베 마코토 등 일본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거둔 성공을 바탕으로[28] 젊은 선수들이 독일에 활발히 진출하였으며, 2020년대에는 미토마 카오루쿠보 타케후사를 필두로 EPL이나 라리가 진출 역시 꾸준히 시도하고 있는 편이다.
2.1.2.1. 인기 프로축구팀
각 지역별로 프로축구팀이 있는 편이라 자기 거주지나 고향의 팀을 응원하는 경향이 강하다.J리그의 주요 인기팀이다. 구장은 도쿄의 위성도시인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시에 있다. 도쿄에도 J리그 팀이 두 팀이나 더 있지만 영 못하는 탓에 도쿄 사람들 중에도 우라와 레즈 팬이 제일 많다. 다만 인기가 많은 만큼 서포터즈는 막장으로(...) 악명이 높다.
J리그 최다 우승팀이다. 2018년에는 FIFA 클럽 월드컵에도 진출했다. 또한 한국인 권순태 선수가 진출한 팀이다.
황의조지롱댕 보르도로 이적하기 전 있었던 팀이다.
스페인의 유명 축구선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소속된 팀이며, 과거 김도훈이 이 팀에서 뛰면서 알려졌다.
주부 지방의 대표 도시 나고야를 연고로 하기에 성적은 그다지임에도 상당한 인기를 자랑한다. 미에현에서도 인기가 많다.

2.1.3. 럭비

럭비는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탈아론(脫亞論)'을 내세우며 '아시아의 유럽'이 되는 것을 목표로 했던 당시 일본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때문인지 메이지 정부는 럭비 종주국인 영국과 1902년 동맹을 맺기 이전부터 럭비를 장려했다. 덕분에 1920년대 이미 일본 전역에 수천 개의 럭비팀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인기였다고 한다. 현대 들어서도 대학 럭비부 출신은 취업시 기업에서 환영한다는 소리도 있다. 모리 요시로 전 일본 총리도 와세다대학 럭비부 출신이었다.

일본엔 300여 개의 실업팀과 6천여 개의 중고등학교 및 대학 팀이 있으며 등록 선수만도 13만 명에 이른다. 2003년에 톱리그라는 명칭으로 출범해, 현재는 1부만 총 12개 팀으로 구성된 프로 리그인 재팬 럭비 리그 원이 있다. 평균 관중이 1만에 육박할 정도의 인기 스포츠이며 2019 럭비 월드컵에서 일본 럭비 국가대표팀이 기대 이상의 호성적을 낸 이후로 점점 상승세를 타고 있다. 동아시아에선 유일하게 프로리그가 운영되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

당연히 아시아에선 럭비 최강국이다. 특히 가장 주류인 15인제에선 일본이 압도적 강자다.[29] 1987년부터 4년마다 열리는 럭비 월드컵에서 아시아에 배정된 1장의 출전권은 항상 일본의 것이었고, 15인제 대표팀은 2017년 이후 세계 수준의 대회를 목표로 하기 위해 아시아 대회에서 발을 뺐다.

2015 럭비 월드컵에서는 남아공 럭비 국가대표팀을 꺾는 기적을 일으켰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일본 대표팀이 국제 대회에서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참고로 저때 조별리그 3승 1패를 거두고도 탈락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물론 이것도 이전 월드컵에서 단 1승을 거둔 것에 비하면 대단한 호성적. 첫 경기 남아공전에서 승리하면서 파란을 일으키고 파죽지세로 사모아와 미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으나 스코틀랜드에 지면서 탈락했다. 이 같은 성적을 거둬 2015년에 일본에서 럭비 인기는 상상 그 이상이었고, 특히 대활약한 고로마루 아유무[30]는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31]

2019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을 개최하였으며, 이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때 우승 후보였던 아일랜드 럭비 국가대표팀, 지난 대회 걸림돌이었던 스코틀랜드 럭비 국가대표팀 등을 모조리 꺾고 전승으로 조별리그를 진출해 사상 최초로 8강에 올랐다. 8강에 진출하는 순간을 일본에서 5,500만명이 지켜봤다고 한다. 비록 8강에서 우승팀 남아공에 패했으나 자국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며 기분좋게 대회를 마무리했다.

2023년 4월, 월드 럭비는 일본을 세계에서 11번째 1티어 국가대표팀으로 분류했으며, 이에 따라 국제 대회에서 훨씬 좋은 대접과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2.1.4. 배구

배구도 인기 스포츠 중 하나이다. 참고로 일본에선 배구를 보통 바레보루(バレーボール, Volleyball의 일본식 발음)라고 부른다. 일본의 배구 중계를 보고 있자면 버라이어티 쇼를 방불케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인기 아이돌 가수를 초청해 공연을 한다거나 2지상파 TV에서는 대회기간 경기 소식을 전하기 바쁘다.

한가지 특징은 (2000년대 이후 한국과 비슷하게) 여자배구가 남자배구보다 인기가 높다. 기본적으로 배구라는 종목 자체가 여자부의 인기가 더 높은 편인데다 국제대회 성적도 여자배구가 더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배구 역시 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암흑기를 걷기도 했는데, 특히 90년대는 94년부터 97년까지 한국에 16전 전패를 당하기도 했다. 2000 시드니 올림픽 탈락의 충격으로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가 세대 교체를 실시했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64 도쿄 올림픽에서는 여자배구가 소련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할 만큼 강팀이었고 당시 소련과의 결승전은 일본에서 집계한 TV 시청률이 무려 69%[32]가 나왔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당시 일본 여자 배구대표팀을 부르던 말은 동양의 마녀(東洋の魔女)였다. 지금도 여자배구 국가대표 경기는 시청률이 높은 편이다.

남자배구는 여자배구 대비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지만, 그래도 아시아 유일의 올림픽 남자배구 금메달을 보유한 전통적인 강국이다. 여자배구는 올림픽에서 금은동 각 2개를 딸 정도로 강팀이지만, 2020년대 이전까지 남자배구는 여자배구에 훨씬 못 미쳤다.

단신이지만 끈끈한 조직력과 스피드로 승부하고, 수비가 강하다. 세터의 손에서 나오는 토스가 빠르고 이단연결이 상당히 좋은 팀이다.[33] 이러한 점 때문에 2000년대 초반 세대 교체에 실패한 한국 여자배구는 일본에 22연패라는 끔찍한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34] 그야말로 극공일증이다. 당시 일본 대표팀 멤버는 '텐상' 다케시타 요시에 세터를 필두로, 주포 구리하라 메구미, 살림꾼 다카하시 미유키, 센터 아라키 에리카, 오토모 아이, 월드리베로 사노 유코 등이 주축이었다. 다만, 일본도 세대교체에 은근 애를 먹기도 했는데, 2000년대 중반 서양식 장신 배구를 한다고 실력에 관계없이 키 큰 선수만 뽑아다가 경기하다 잠깐 폭망한 적이 있다.[35]

여자배구는 침체기를 겪다 2010년 세계선수권과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부활을 노리고 있다. 특히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똑같이 30여 년 만에 메달을 노리는 라이벌 한국과 만나 3-0 스트레이트로 승리하며 메달을 따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 남자배구는 8강에 올랐으나 여자배구는 1승4패를 기록하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25년만에 결선 토너먼트에 오르지 못하고 안방에서 탈락하는 망신을 당했다. 약체인 케냐를 상대로 올린 1승이 전부에 라이벌인 한국에 2-3으로 패했고, 이긴 쪽이 토너먼트에 오를 수 있는 최종전 도미니카 공화국전에서도 1-3으로 완패당하며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감독은 경질당했고, 일본의 팬들은 자국의 참담한 성적을 비판하고 나섰다.

도쿄 올림픽 이후 세대 교체를 단행하면서 일본 남녀배구 모두 세계에서 강호로 다시 도약하고 있다. 남자배구는 필립 블랑 감독 부임 이후 니시다 유지이시카와 유키를 중심으로 새롭게 대표팀을 재편했으며, 그 결과 2023 VNL에서 남배 강호 이탈리아브라질을 전부 잡고 46년만에 동메달을 획득하더니, 2024 VNL에는 아예 결승전에 오르며 1977년 배구 월드컵 이후 47년 만에 세계 대회 결승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올림픽에서는 고생끝에 8강에 올랐으나 우승후보 1순위 이탈리아를 만났고 업셋 직전 까지 갔으나 단 한점만 따내면 되는 상황에서 역전당하며 충격의 리버스 스윕을 당하며 일본 배구 역사상 가장 잊고 싶은 경기가 되어 버렸다. 특히 이겼으면 금메달도 노려볼만한 상황이라 일본에서는 큰 충격에 말을 못 이을 정도 였다. 홈콜 논란이 있었던 농구와도 달리 콜도 깔끔했고, 상대편이 자멸에 가깝게 서브범실을 하는데도 패배한 대패였다.

리그의 경우에는 실업리그이긴 하나 용병제도도 있고, 실력면에선 사실상 프로나 마찬가지라는 평이며, 명칭도 V프리미어리그이다.(1부리그) 프로가 아니라 실업리그이다 보니 선수들은 회사 소속 직원 신분이다. 프로화를 시도해보았지만 배구의 인기 하락으로 난관에 부딪치면서 현재도 프로화는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2.1.4.1. 배구계에서의 영향력
일본은 국내 인기 및 자금력을 발판삼아 국제배구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일본이 스폰을 많이 해주기 때문에 국제배구연맹에 일본은 그야말로 VIP급 고객이나 마찬가지다. FIVB의 후원사인 미카사[36]데상트는 물론 전 세계 상당수 팀 유니폼과 선수들 운동화를 일본 기업인 아식스, 미즈노등 이 후원한다. 국제배구연맹이 대놓고 일본을 편애할 정도다. 메이저 국제 대회와 자질구레한 대회까지 거의 모두 일본이 도맡아 개최하니 이쁠 수밖에 없다. 현재 일본은 4년 주기로 개최되는 월드컵과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을 거의 자국의 통상적인 이벤트처럼 개최하고 있고, 세계선수권도 최근 개최수 빈도가 높아졌다.[37] 그 외 월드 그랑프리와 월드 리그 투어 경기도 빠짐없이 개최한다.[38]

게다가 올림픽 최종예선은 올림픽 개최 국가가 어디건 간에 항상 일본에서만 개최될 정도로 국제배구연맹이 일본을 편애하는 편이다. 최종예선이라는 기이한 예선 방식이 만들어진 것도 1990년대 일본이 한국에 밀려 자칫하면 올림픽에 갈 수 없자 만들어낸 고안이다. 2000 시드니 올림픽 예선부터 쭉 개최하고 있다. 다른 대륙과 달리 아시아만 세계예선과 통합하여 치른다.

최종예선이기 때문에 아시아 및 유럽, 중남미 국가가 참가하는데 여기서 주최국이 일본이니 이미 일본은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기 유리한 상황이다.[39]

이러한 일본을 여러 국가들은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는데, 이미 일본의 홈어드밴티지는 위험 수위까지 올라왔기 때문이다. 국제대회 개최로 지나친 편파 판정과 유리한 경기일정을 짜는 바람에 각국의 빈축을 사고 있다. 특히, 2012년 월드리그 남자배구대회에서는 본선 잔류에 실패한 일본을 아무런 조건없이 자동 진출권을 주는 노골적 편애까지 했다. 덕분에 한국은 일본보다 상위 성적이었음에도 탈락 위기에 놓였으나 결국 한국, 일본 두 팀 모두 본선에 잔류했다. 이러한 노골적 편애에 한국, 프랑스 등 다른 여러 국가들이 국제배구연맹을 규탄하여 항의 공문을 보냈다. 여자배구의 경우 도쿄에서 열린 2012 런던 올림픽 세계 최종예선대회에서 세르비아와 짜고 승부조작을 했다는 구설수가 돌았다. 한국에게 진 일본이 올림픽 본선 진출에 빨간불이 켜지자 세르비아와 서로 윈윈하고자 짜고 경기를 했다는건데, 일본이 3-0, 3-1, 3-2로 이기거나 0-3, 1-3으로 지기기만 해도 태국이 올림픽 본선에 갈 수 있었기에 일본이 2-3으로만 지지 않으면 됐는데[40] 일본은 4세트 이후 급격한 경기운영 저하와 잦은 범실로 세르비아에게 2-3으로 패했고, 덕분에 최대 피해국은 태국이 되고 말았다. 태국으로서는 눈앞에 둔 올림픽 출전권을 놓친 셈이다. 당연히 태국은 노발대발하며, 일본과 세르비아가 서로 짜고 승부조작을 했다고 국제배구연맹에 이의 제기를 했으나 결국 승부조작 혐의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세계최종예선에서 일본은 태국과의 경기에서 또 다시 이해할 수 없는 편파판정으로 승리하며 4년 전 일을 재현했다.[41] 태국 감독의 경기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 압도적인데 '이것은 스포츠가 아니다. 일본의 쇼에 불과하다.'[42]

일본이 2020 도쿄 올림픽을 유치하자, 마침 국제배구연맹에서 약 20년 동안 유지해오던 아시아 올림픽 예선 방식을 변경했는데, 이를 두고 배구연맹이 일본에 유리하게 대회 운영을 바꾼 거 아니냐는 의혹 역시 불거졌다.

2.1.5. 농구

농구의 경우 2010년대 들어서나 통합프로리그가 만들어지는 등 인기가 야구, 축구, 배구에 비해선 아직 떨어지는 편이다. 때문에 90년대 만화 슬램덩크 등의 붐이 있었음에도, 이미 1997년부터 프로 경기가 개최된 한국보다 농구의 프로화가 많이 늦었다. 그조차도 2000년대엔 일본농구리그(JBL)와 일본프로농구리그(BJ리그)가 양대리그로 따로 출범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약 10년간 서로의 발전을 저해했다.

그러다 2014년 10월 24일 국제농구연맹(FIBA)에서 이원화된 리그를 합치지 않으면 일본농구협회(JBA)의 자격을 정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결국 JBA는 두 리그를 통합한 B.리그를 2016-2017 시즌부터 출범하였다. 새 리그는 승강제를 도입하였으며[43] 동부, 중부, 서부 3개의 컨퍼런스로 나뉘어져 있고 1부 리그 18개 팀, 2부리그 18개 팀이 존재한다. 각 리그마다 플레이오프 방식이 다른데 1부리그의 경우엔 각 컨퍼런스 1, 2위팀과 그 팀들을 제외한 팀중 정규리그 성적이 가장 좋은 2팀이 플레이오프에 올라가며 준준결승과 준결승은 2경기, 결승전은 단판으로 치러진다.

그래도 2010년대 이후 적극적인 선진 농구 흡수 및 유학 등의 효과 덕분인지 눈에 띄게 실력이 성장했다. 귀화 선수를 받아들이며 높이도 올라가고 패스돌리기 스타일에서 시원시원한 아이솔레이션 농구를 구사한다. 다만 후발주자인지라 2019 농구 월드컵에선 부진했다. 한편, 와타나베 유타, 하치무라 루이[44] 같은 선수들이 NBA에 진출하는 등 좋은 선수들은 배출하고 있다. 2023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핀란드를 잡는 이변을 만들면서 마침내 그동안의 투자에 대한 결실을 맛보았다.

남자부도 나날이 성장세지만 여자부의 성장세는 더욱 높은데, 2년마다 열리는 여자 아시안컵에서 2019년까지 4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특히 2015년 결승에선 기존 아시아 여자농구 최강국으로 평가받은 중국을 상대로 중국 원정에서 85-50이라는 대승을 거둬 당시 중국 농구계를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비록 경기는 완패했지만 강호 스페인과 슬로베니아 상대로 쉽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심지어 평가전이지만 루디 고베어가 뛰는 프랑스를 이기기도 했다. 여자농구는 결승에 진출하여 준우승을 차지했다.

2023년 농구 월드컵에서 3승 2패, 아시아 국가 중 최고 성적으로 아시아 몫의 올림픽 진출 티켓 1장을 따냈고 기존 강자 중국, 이란 대신 아시아 최강의 자리에 올랐다. 또한 아시안 게임에서 3군으로 한국 1군을 이기는(...) 충격을 선사하는 등 21세기 들어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는 프랑스 상대로 좋은 상성인지 또 한번 승리할 뻔 했으나 프랑스의 홈콜 버프 등으로 결국 패했다.

2.1.6. 테니스

1990~2000년대 다테 키미코, 스기야마아이 등이 활약했고, 2010년대 니시코리 케이, 오사카 나오미 등의 활약으로 일본 내 테니스 인기는 이전보다 많이 높아졌다.

덕분인지 일본에서 테니스는 상당히 대중적인 스포츠다. 현재 중/고교 방과 후 부활동으로서는 물론이고 대학 동아리도 활성화되어있다.

니시코리 케이는 2014년 9월 6일 US오픈에서 세계1위인 노박 조코비치를 꺾고 아시아 선수 최초로 그랜드슬램 남자 단식 결승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으며, 2014년 11월 4일에는 세계랭킹 5위까지 올랐다.[45] 그 후로 비록 메이저우승은 못했지만 꾸준한 활약으로 포브스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수입이 많은 선수리스트, ESP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선수 리스트에 아시아 선수 중 가장 높은 순위를 수차례 차지한 바 있다.

뒤이어 오사카 나오미는 2018년부터 마스터즈에서 당시 랭킹 1위 시모나 할렙을 꺾고 차지한 우승을 시작으로 US 오픈, 호주 오픈까지 우승하면서 WTA 사상 최초로 아시아 선수로서 랭킹 1위를 달성하였다.

2.1.7. 배드민턴

한국과 마찬가지로 진입장벽이 낮고 나이가 많아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 일본에서도 저변이 넓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52년 일본 협회가 국제 배드민턴 연맹에 소속된 뒤 급속도로 보급되었다. 한국, 중국, 말레이시아 등이 강세를 보이던 80년대에 들어서기 전까진 일본이 나름대로 배드민턴 강국의 역할을 했는데, 1972 뮌헨 올림픽 단식 종목에서 나카야마 노코리가 금메달, 유키 히로에가 동메달을 획득하며 메달리스트 또한 배출한 기록이 있다.

하지만 그 후로 국제대회 성적이 상당히 암울했는데,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배드민턴이 정식 종목이 된 후론 무려 20년 동안 올림픽 메달이 없었다. 하지만 2000년대 박주봉 코치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한 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후지이 미즈키, 카키와 레이카 조가 여자 복식 은메달을 획득했고, 4년 뒤 2016 리우 올림픽에선 타카하시 아야카, 마츠토모 마사키가 다시 한 번 복식에 출전해 일본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따내면서 배드민턴 강국으로의 도약을 노리고 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복식 금메달을 한 속칭 '타카마츠' 콤비를 이끈 감독이 상술했듯 한국 배드민턴 레전드 박주봉인데, 박주봉이 2004년에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한 뒤 엄청난 성적 상승을 가져온 종목이기도 하다. 일본을 꾸준히 세계랭킹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강팀으로 만들었으며, 당장 한국이 부진한 2019 전영오픈에서만 남자단식 금, 여자단식 은, 남자복식 동, 여자복식 금은동, 혼합복식 동메달로 모든 종목에서 메달을 따내며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자세한 사항은 박주봉 항목도 참조.

2.1.8. 탁구

배드민턴과 비슷하게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이후 2020 도쿄 올림픽 대비 투자를 늘려 상당한 강세를 보이는 중이다. 2018년엔 월드 투어에서 중국 선수들이 일본에서 일본의 어린 선수들에게 연달아 패배하기도 했다. 일본 언론 또한 중국의 탁구 만리장성을 넘을 수 있다며 기대를 모았다.

2020 도쿄 올림픽 혼합복식에서 미즈타니 준-이토 미마조가 일본 탁구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다만 냉정하게 보면 여전히 중국과는 제법 큰 격차가 있으며, 2020년대 중반 기준 여성은 중국 바로 다음 순위권을 형성하고 있고, 남성은 이것보단 위상이 낮아 중국이 최강국인 가운데 유럽권 등과 경쟁하고 있다.

2.1.9. 미식축구

미국과 유럽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46] 미식축구 인기가 가장 높은 나라이다. 비슷한 종목인 럭비와 비교하면 많이 밀리긴 하지만 실업리그 X리그를 바탕으로[47] 대학, 사회인 리그가 많이 활성화 돼있다. 심지어 7인제 리그도 많이 활성화되어 인프라가 상당히 크다. 일본 미식축구 리그의 규모 미국처럼 프로(실업)리그와 대학리그가 비슷한 인기를 자랑하고 아예 우승팀이 붙는 라이스 볼이라는 대회가 도쿄 돔을 항상 꽉 채울 정도다. 또한 미식축구를 소재로 한 아이실드 21이 대박을 터뜨리는등 일본 대중매체에서도 자주 나오는 스포츠이다.

U-20 미식축구 대회인 IFAF U20 WORLD CHAMPIONSHIPS 2024년 대회에서 미국을 41-20으로 잡으며 대회 첫 결승에 진출했다.

2.2. 격투기 종목

2.2.1. 스모

NHK를 비롯한 각종 언론사에서 조사하는 인기 순위에서 야구, 축구 다음가는 인기를 기록하고 있는 일본의 전통 스포츠이다. 하지만 인기와는 별개로 비슷한 전통 격투기 스포츠인 검도나 유도에 비해 수련자 수는 매우 적다. 프로스포츠로는 인기가 유지되고 있으나 생활체육으로는 잼병인 셈.[48] 이는 스모 자체가 육중한 몸으로 무대뽀로 밀어내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동작이 멋있지 않다는 인식이 있고, 노출 문제나 예전보다 다른 스포츠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관심이 줄어든 영향도 있다. 그래도 스모를 보는 일본인은 아직도 상당히 많은 모양. 역사적으로도 1928년 라디오로부터 꾸준히 스모를 중계했으며, 지금까지도 오후 4~6시 2시간 동안 NHK에서 스모를 중계한다. 이 '오오즈모'는 언제 기준인진 알 수 없으나 평균 18%라는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기도 한다.

2.2.2. 펜싱

메달권과 거리가 멀었으나, 한중이 치고 나오는 것을 보며 가능성이 있다고 봤는지 저변을 넓히다 2020 자국 대회에서 남 에페 단체전에서 첫 금을 딴 것을 시작으로, 파리 대회에서는 금2, 은1, 동2라는 자체 최고 성적을 기록한데다 파리 펜싱 전체 1위를 차지하는 기염도 토하며 새로운 메달밭 종목으로 급부상했다.

2.2.3. 복싱

일본 복싱계는 올림픽 등에 출전하는 아마추어 성적은 별로인 반면, 프로 메이저 기구의 성적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프로복싱 4대 메이저 기구에서 남자챔피언 중 일본 선수들이 한 명 이상은 다 있고 특히 WBA, WBC, IBF, WBOWBO에서는 (언제 기준인지 알 수 없지만) 일본미국보다도 챔피언이 더 많다. 다만 푸에르토리코를 미국으로 계산하면 동률이다.

201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일본인 복싱 스타들이 등장하면서 인기가 재차 높아지고 있다. 밴텀급, 슈퍼 밴텀급의 언디스퓨티드 챔피언인 이노우에 나오야와 역대급 아시아 중량급 복서 중 한 명인 무라타 료타[49] 등이 예시이다. 그 외에도 이오카 카즈토, 테라지 켄시로 등 현역 챔피언을 다수 보유 중이다.

2.2.4. 레슬링

올림픽에서 성적이 상당히 좋은 편이며, 역대 올림픽 종합 순위로 보면 3위다. 특히 여성, 경량급에서 메달을 주로 따내왔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여성부 성적이 좋아서 전체 2위를 했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세계 랭킹 1위를 800주 이상 기록한 요시다 사오리와 올림픽 4연속 금메달(2004~2016)을 따낸 이초 카오리이며, 이 둘은 일본 국민영예상까지 받았다. 도쿄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5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로 메달 종합 1위와 금메달 개수에서 1위를 달성. 파리 올림픽에서도 라이벌인 러시아가 국제 제재로 출전이 금지되면서 금메달 8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메달 종합 1위와 금메달 개수에서 압도적 1위를 달성했다.

2.2.5. 프로레슬링

역도산이 인기를 끈 1950년대부터 일본 국민 스포츠 중 하나였으며, 그가 사망한 후 일본 프로레슬링 협회가 쪼개져 신일본 프로레슬링, 프로레슬링 NOAH, 전일본 프로레슬링 등이 난립했지만 이들을 필두로 (물론 21세기 들어선 좀 내려온 경향도 있지만) 여전히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일본의 애니, 영화, 드라마 등에도 작중 프로레슬링 관련 장면이 꼭 나오며, 특히 액션 씬에서 프로레슬링 기술이 최소 한 번 이상은 나올 정도이다.

글로벌 프로레슬링 업계에서도 입지가 미국, 멕시코 다음으로 높은데, 북미에서 활동 중인 프로레슬러들 중 일본에서 활동하다 북미로 진출한 경우[50]가 제법 많으며, 예전부터 일본 출신 프로레슬러들이 세계 최고의 프로레슬링 단체인 WWE에도 진출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왔다.[51]

2.2.6. 유도

항목 참조.

2.2.7. 검도

항목 참조.

2.2.8. 가라테

항목 참조.

2.2.9. 킥복싱

항목 참조.

2.3. 기초 종목

2.3.1. 육상

올림픽 초창기 육상 강국이었다. 일본의 올림픽 첫 금메달이 육상에서 나왔다.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세단뛰기의 오다 미키오가 그 주인공이다. 이 금메달을 시작으로 일본은 올림픽 세단뛰기 종목 3연패를 달성하며 세단뛰기 세계최강국으로 군림한다.[52] 그 외 멀리뛰기, 장대높이뛰기 등에서도 메달을 획득했고 일본 최초의 여성 메달리스트 역시 800m 경기에서 배출되었다. 마라톤에서도 꾸준히 강호였다. 2차세계대전 이후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무로후시 코지가 해머던지기 금메달을 따기 전까지 일본이 올림픽 육상에서 획득한 모든 메달이 마라톤에서 나왔다. 2000 시드니 올림픽-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2연속 여자 마라톤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다만 냉정하게 보면 미국 등 전통적인 육상 강국에 비할 바는 아니고, 아시아권에서 중국과 함께 강국이라고 할 수 있다.[53] 그나마 2010년대 들어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선수들이 세계 육상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이미 2020년대 기준 일본과 중국 두 나라의 100m 10초대 미만 선수들은 백인 전체의 100m 10초대 미만 기록 선수인 3명보다 2명 더 많으며, 최고 기록 또한 0.09초나 더 빠르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400m 계주에선 릴레이 연습에 올인했는지 은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다만 개인 달리기에선 여전히 메달권은 아니고, 이후 대회에선 계주도 기존 강국들이 절치부심했는지 메달권 깜짝 성적은 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육상이 이정도라도 큰 가장 주요한 요인으론 일단 기초 종목 스포츠 인프라의 증가가 꼽히며, 트랙 종목에서 세계 수준의 꾸준한 투자와 훈련 역시 요인으로 꼽힌다. 또 혼혈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중인데 앞서 말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400m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선 캠브리지 아스카자메이카 혼혈이고[54], 2015 청소년 세계선수권 100m와 200m를 석권한 사니 브라운은 가나 혼혈이다.

2020년대 들어서는 경보를 육성 중으로, 2020 도쿄 올림픽 20km경보 은메달·동메달, 2022 오레건 육상선수권 대회에서 20km경보 금메달·은메달, 35km경보 은메달의 성과를 냈다.

2023년 부다페스트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키타구치 하루카가 여자 투창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일본 여자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세계선수권 대회의 필드 경기에서 금메달을 땄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도 키타구치 하루카가 금메달을 획득했다.

2.3.2. 수영

초등학교, 길게는 중학교까지도 수영을 체육시간에 필수적으로 하는 학교들이 많다. 초등학교는 90% 이상의 학교가 수영 시설을 갖추고 있다.[55] 일본 내 등록 선수가 45만 명에 육박한다.

일본의 수영선수로는 평영의 강자였던 기타지마 고스케가 올림픽 금메달 4개[56]를 보유하고 하기노 고스케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과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인 혼영 4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오하시 유이가 2관왕을 차지하는 등 국제대회의 메달권 선수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2.3.3. 체조

남자 기계체조가 유망한 편이다. 우치무라 코헤이는 올림픽 개인종합 2연패 및 세계선수권 6연패를 달성했다.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 동메달 1개, 2020 도쿄 올림픽에선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획득했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선 중국 선수의 큰 실수[57]로 남자 단체전 깜짝 금을 타는 등 남자 체조에서만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획득했다.

2.4. 동계 종목

2.4.1. 피겨 스케이팅

남녀 싱글에서 강세를 보이는 편이다. 여자 싱글은 러시아 신예 선수들이 많이 등장하기 전까지 메이저 대회 포디움을 차지하는 경우도 많았다.[58] 동계 스포츠 중에서도 특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덕에 매년 장기간에 걸쳐 아이스 쇼가 열리며,[59] 선수 은퇴 후에는 아이스 쇼에만 출연하는 프로 스케이터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다.

나고야는 우수한 피겨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나고야 출신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는 무라카미 카나코, 아사다 마오[60], 안도 미키, 우노 쇼마[61], 이토 미도리[62]가 있다.

센다이도 여자 싱글, 남자 싱글 최초의 일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바 있다. 일본 최초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인 아라카와 시즈카[63], 아시아 최초 올림픽 남자 싱글 2연패를 이룬 슈퍼 그랜드 슬래머 하뉴 유즈루가 센다이시 출신에 해당한다.

2.4.2. 컬링

일본 내 등록선수는 2018년 기준 약 3천명이다.

2.4.3. 스키점프

가사이 노리아키후나키 가즈요시 같은 메달리스트들이 있으며,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까지 약 20년 간 쏠쏠하게 메달을 얻어왔다. 일본 내 한 스포츠 칼럼에선 1972 삿포로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15년 간격으로 동계올림픽, 동계 아시안 게임 등을 주기적으로 유치하여 스키점프 종목을 비롯 동계 스포츠 인프라 유지와 인재확보를 이어간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2.4.4. 스피드 스케이팅

항목 참조.

2.5. 기타 종목

2.5.1. 바둑

파일:baduk_test3.png 일본의 주요 바둑 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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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카테고리의 바둑 기전은 아래 문서 참고
국제 기전 · 한국 기전 · 중국 기전 · 대만 기전 · 폐지 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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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이 전래된 이래 꾸준하게 상류 계층의 취미 가운데 하나였으며, 높으신 분들이 바둑 스승을 모시고 바둑 스승들에게 일종의 타이틀을 부여하는 문화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특히 현대 바둑사에서 일본의 위치는 중요한데, 1924년 일본기원의 설립 이후 반 세기 가량 일본 바둑의 위상은 세계의 정점이었다. 바둑 역사상 최강자를 논할때 빠지지 않는 우칭위안(呉清源)이 기타니 미노루와 신포석 연구를 일본기원에서 했다고 한다. 바둑 기사를 예술가이자 승부사로 인정하는 풍조와 함께, 바둑 기사를 꿈꾸는 많은 청소년들이 도장의 문하에서 경합을 벌이며 실력을 양성하는 원생 체계가 이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기류를 타고 1970년대 ~ 1980년대의 일본 바둑은 황금기를 맞이한다. 가토 마사오, 이시다 요시오, 후지사와 슈코, 조치훈, 린하이펑, 고바야시 고이치, 다케미야 마사키 등 현대 바둑의 시초와 응용을 논할때 빠지지 않는 대부분의 기사들이 전부 일본 기원에서 등장했다. 훗날 응씨배 첫 제패의 영광을 거머쥔 한국의 국수 조훈현 또한 어릴 적에는 세고에 겐사쿠의 문하에 있으면서 기타니 도장의 문하생들과 대국을 두며 실력을 키웠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일본 바둑은 현대 바둑의 주류에서 밀려나고 만다. 한국에서 조훈현, 서봉수, 그리고 이창호라는 절대강자의 탄생을 계기로 국제전에서 기세를 타면서 고수들이 속출하기 시작했고, 문화대혁명으로 맥이 끊기긴 했지만 바둑의 발상지이자 그 인기가 뜨거운 중국에서도 고수들이 등장했다. 한국과 중국은 서로와의 대결을 마다하지 않으며 치열하게 실력을 길러 나갔지만, 일본 바둑기사들은 일본 내 기전에만 몰두함으로써 국제 경쟁력을 상실했다. 예, 도와 기묘하게 얽혀 있는 일본 바둑의 풍조는 바둑의 현대화를 성립시키는 계기이기도 했지만, 바둑이 스피디한 두뇌싸움으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게 하는 부작용도 있었다.

치열하게 싸우는 힘바둑이 주류인 세계 기전의 기풍과는 달리 일본 기사들은 고바야시 고이치의 지하철 바둑을 비롯해 수비적인 태세 위주의 운영 바둑만 둔 것이 그 이유다. 이창호가 보여준 것처럼 수비적으로 내줄 것은 내주고 반 보만 앞서 가는 바둑 패러다임에는 막강한 잠재력이 있지만, 이창호는 당대에 독보적인 수읽기 능력으로 이 시스템의 잠재력을 100% 살려낸 것이지 수비바둑 자체가 현대의 국제기전에서 정답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더군다나 이창호의 독주로 이창호의 바둑을 분석하고 대응하는 흐름이 강해지면서, 초중반에서 흔들어 놓는다는 공격적인 메타가 등장하게 되었다. 즉 이창호를 계기로 세계 기전은 치열한 수싸움이 번뜩이는 격전의 현장으로 이행하게 되었지만, 일본 바둑은 여전히 모양새와 운영에 집착하는 바둑에 치중한 것이 몰락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고 지적할 수 있다.

2010년대에는 이야마 유타 九단(남자)과 셰이민 六단[64]이 일본 남녀 바둑계를 평정하고 독주하고 있으나, 일본기원은 일본 최강의 자리에 오른 이야마 九단과 셰 六단에 대한 국제대회 및 외국대회 출전을 상당히 제약하는 불합리한 행보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국내 기전 상금이 어지간한 국제 대회를 능가하기 때문에 기사들의 해외 진출 동기 부여가 약한 것도 있지만, 일본기원 입장에서 볼 때 스타들이 국내 기전 대신 해외 기전을 택하면 국내 기전의 스폰서가 줄어들어 바둑계의 앞날 자체가 어두워진다는 우려를 버릴 수 없는 것이다.

2017년 하반기 들어서 일본기원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들하고 인터넷 바둑(한큐바둑, 타이젬바둑, 사이버오로 등)에서 붙는 것도 자국의 딥젠고하고만 붙으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야마 유타 九단은 이 주장을 무시하고 절예, 릴라하고도 둔다. 위정치 七단도 절예하고도 접바둑을 둔다.

2.5.2. 쇼기

항목 참조.

2.5.3. 모터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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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우수한 공업 기반시설로 자동차 산업을 일찍이 일으켰다. 자동차 문화가 빠르게 정착되었고 수많은 일본 자동차 기업들이 다양한 국내외 선수권 등에 참가하고 있다. 1976년에는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아시아 최초로 포뮬러 1을 개최하고 이듬해까지 개최 후 10년 간 대회를 열지 않았다. 그러다 1987년 본격적으로 유치, 현재까지도 아시아 최고 규모의 라운드로 이어지고 있다.

자동차 뿐만이 아니라 모터사이클에서도 아시아 최고수준의 기술과 성장동력을 가지고 있다. 모터사이클 최고 대회인 모토 GP에서 오랫동안 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팩토리팀이 바로 혼다야마하 모터이다. 이외에도 스즈키, 가와사키 중공업 등도 유명하다.

세계 3대 투어링카 레이스에 포함되는 슈퍼 GT, 전 일본 F3000에서 자국 프리미엄 포뮬러 시리즈로 발전한 슈퍼 포뮬러, 내구 레이스 시리즈인 슈퍼 다이큐 등을 비롯한 국내/외 수많은 레이스 카테고리가 옛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펼쳐지고 있다. 그런 만큼 일본 내에 크고 작은 서킷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분포되어 있다. 공식적으로 대회 개최가 가능한 서킷들만 추려보면 후지 스피드웨이, 스즈카 서킷, 트윈 링 모테기, 오카야마 인터내셔널 서킷, 오토폴리스 서킷, 스포츠랜드 스고 서킷 총 6곳이 있다.[65] 이 중 후지 스피드웨이와 스즈카 서킷은 FIA 1등급 서킷[66]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차량들이 와서 경주하는 츠쿠바 서킷도 있다.

일본은 드리프트의 실질적인 고향이나 다름없다. 전직 프로 레이서 였던 츠치야 케이이치가 청년 시절 산길에서 갈고 닦은 드리프트 기술을 레이스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모든 것의 시발점이다. 흰 연기를 내뿜으며 차를 미끄러트리는 드리프트는 보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지만 타이어 소모가 극심하고 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달릴 수 있는 주행법이 있기 때문에 포장도로 경주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67] 그래서 츠치야는 드리프트가 주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대회를 직접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D1 그랑프리이다. 이후 말레이시아와 북미를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 퍼져나가 '포뮬러 드리프트'라는 대회도 생겨났다. 드리프트는 차의 움직임이 매우 역동적이라서 보는 재미가 상당하기 때문에 아직도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현재 국제 대회에서 눈에 띄게 활약하는 일본 출신 레이싱 드라이버는 고바야시 카무이(WEC, 르망 24시), 츠노다 유키(포뮬러 1), 사토 타쿠마(인디카 시리즈), 나카지마 카즈키(WEC, 르망 24시) 등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유럽이나 미국 드라이버들에 비해 큰 영향력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예전에 일본인으로써 최초로 F1에 진출한 타키 이노우에라는 인물이 있었다. 모토크로스 쪽에는 히가시노 타카유키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2.5.4. 스케이트보드

2020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호리고메 유토
2020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요소즈미 사쿠라
북미를 제외하면 보드 문화가 가장 발전한 지역 중 하나다보니 스케이트보드 성적도 괜찮은 편이다. 미국, 브라질과 함께 세계랭킹 상위권이며, 2020 도쿄 올림픽에선 금 3, 은 1, 동 1을 획득했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도 1위를 달성하며 현재 세계 최고의 스케이트보드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3. 역대 일본 개최 국제 스포츠 대회

3.1. 종합대회

3.1.1. 국제올림픽위원회 주관대회

3.1.1.1. 하계올림픽하계패럴림픽
3.1.1.2. 동계올림픽동계패럴림픽
3.1.1.3. 청소년올림픽
3.1.1.4. 스페셜 올림픽

3.1.2. 월드 게임

3.1.3. 유니버시아드

3.1.4.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주관대회

3.1.4.1. 하계 아시안 게임
3.1.4.2. 동계 아시안 게임
3.1.4.3. 장애인 아시안 게임

3.2. 세계 선수권 대회

3.2.1. 세계육상선수권대회

3.2.2. 세계컬링선수권대회

3.2.3. 피겨 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대회

3.2.4.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대회

3.3. 단일 종목 대회

3.3.1. 축구

3.3.1.1. FIFA 주관대회
3.3.1.2. 아시아 축구 연맹 주관대회

3.3.2. 야구

3.3.3. 농구

3.3.4. 배구

3.3.4.1. FIVB 월드컵
3.3.4.2. FIVB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3.3.4.3. FIVB 남자배구 세계선수권대회
3.3.4.4. FIVB 여자배구 세계선수권대회
3.3.4.5. FIVB 월드 리그
3.3.4.6. FIVB 월드 그랑프리
3.3.4.7. 아시아 남자 배구 선수권 대회
3.3.4.8. 아시아 여자 배구 선수권 대회

3.3.5. 럭비

3.3.6. 빙상

3.3.6.1. 피겨 스케이팅
3.3.6.2.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4. 국내 대회

4.1. 국민체육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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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유럽의 경우 축구만 봐도 한 국가 단위보단 유럽 단위로 움직이는 형태가 많긴 하다. 덕분인지 리그로 보면 일본이나 중국은 최상위권 규모의 리그는 없다. 그나마 일본프로야구가 2020년대 기준 전세계 프로리그 규모 중 11위로 아시아에선 가장 높다. 다만 인도 크리켓 리그가 12위라 언제 추월당할지 모르는 형국.#[2] 한국은 일본보다 10여년 이른 시기에 프로축구(1983년)와 프로농구(1997년)를 창설했다. 심지어 일본 내 인기 종목이고 세계 배구계에 영향력이 높은 배구조차 아직도 프로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비해, 한국은 2005년에 이미 프로배구를 발족했다. 야구를 제외한 주요 스포츠가 뒤늦게 프로화되거나 프로화되지 않은 이유를 일본 스포츠계에 오랫동안 만연했던 아마추어리즘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엘리트주의에 입각해 프로선수 육성을 주목적으로 먼저 시작한 한국 스포츠계와 달리 일본 스포츠계는 종목의 보급을 우선하는 아마추어 정신에서 일단 시작한 문화 차이가 있다는 주장. 물론 의견 중 하나라 정확한 사실 관계는 따져볼 문제긴 하다.[3] 반면 의외라면 의외로, 비인기 종목들의 실업리그가 운영되는 경우는 많다. 대표적으로 미식축구 리그인 X리그가 있다. 이 리그의 재미있는 특징은 리그 우승팀이 일본 대학 미식축구 우승팀과 고시엔 야구장에서 고시엔 볼이라는 경기를 치른다는 점이다.[4] 축구에서는 한국, 일본, 이란, 호주가 아시아 축구 4강으로 흔히 불리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추가되어 5강으로 불리기도 한다. 호주는 오세아니아지만 현실적 여건상 국가대표팀은 아시아 축구에 포함되어 경쟁하고 있다.[5] 2020년대 기준 독일이나 한국, 중화권 국가들과 경쟁하고 있다.[6] 테니스는 다테 키미코, 스기야마 아이, 니시코리 케이, 오사카 나오미 등 테니스 선수가 등장했고, 일본 배드민턴 급성장에는 항목에도 있듯 일본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박주봉 감독의 역량도 한몫했다.[7] 국기는 아니지만 브라질리언 주짓수 또한 일본 유술의 영향을 받았다. 주짓수라는 이름부터가 한자 유술의 일본어 발음이다. 사실 그런 식이면 가라테, 킥복싱, 슛복싱 등도 다 원류는 따로 있긴 하다만. 아이키도도 대동류 합기유술이 원류다. 참고로 한국의 합기도도 대동류 합기유술이 원류라고 알려져있다. 어찌보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동작 자체가 한계가 있다보니 무술 자체도 돌고 돈다고 볼 수 있다.[8]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남자 유도가 사상 최초로 노골드를 기록하는 등 금메달 1개, 은메달 3개, 동메달 3개에 그쳤다. 그나마 다음 올림픽인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8개로 메달 종합 1위와 금메달 개수에서 1위를 달성하여 종주국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선 홈 버프를 받아 금메달 9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메달 종합 1위와 금메달 개수에서 압도적 1위를 달성했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선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로 금메달 개수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메달 종합에선 홈 버프를 받아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 동메달 6개의 메달을 획득한 프랑스에 밀려 2위에 머물렀다.[9] 일본 최초의 프로야구는 1920년에 시작한 ‘일본운동협회‘인데 해당 조직은 1923년 관동대지진과 1929년 대공황으로 큰 타격을 입고 해산되었다. 하지만 이때의 경험이 뒤이어 1936년에 출범할 프로야구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는데 영향을 미쳤다.[10] 물론 냉정하게 보면 야구 최강국인 미국이 1군급 선수들은 국제무대에 차출하지 않거나 본인들이 무관심해 거부하는 영향도 크다. 그나마 2020년대 들어 타자권에선 WBC에 1군급 선수들이 출전하는 모양새가 갖춰지고 있으나, 투수진은 여전히 2군급이다. 어쨌든 미국의 MLB 세계화와 야구 저변 확대 움직임에 대응하여 일본은 야구 국가대표팀 '사무라이 재팬'을 앞세워 그동안 인지도에서 밀렸던 야구 국제대회의 일본 내 홍보 겸 이에 맞춰 본격적으로 육성하는 방침으로 대응, WBSC 프리미어 12를 적극적으로 후원 및 유치하고 있다. 근데 초대 우승은 한국에 뺏긴게 함정. 2023 WBC에서도 전승 우승을 차지하며 WBSC 랭킹에서 1위를 지키고 있다. 다만 주의할 것이 리그 위주로 인기있는 야구지만 해당 순위는 리그의 수준이나 규모가 아닌 국가대표 성적으로만 집계된 성적이다. 일본 야구계조차도 미국이 사실상 1위인건 인정하고 있다.[11] 물론 냉정히 말하면 애초에 전세계의 프로야구리그 자체가 미국, 일본, 한국, 대만, 멕시코 정도를 제외하면 프로리그라고 보기도 어려운 시장성이긴 하다.[12] 일본 프로야구에는 12개 구단이 존재하며 846경기 동안 2,167만 명이라는 관중(2010 시즌 기준)을 동원하여 전 세계 프로스포츠 관중 순위 2위를 차지하였다. 이처럼 야구는 일본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국민 스포츠이다. 게다가 2015년 기준 아시아에서 일본프로야구보다 많은 평균 관중 수를 동원한 리그는 없다. 그리고 2017년엔 이윽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을 추월, 전세계 평균 관중 수 1위의 야구리그가 되었다. 특히 요미우리 자이언츠한신 타이거즈는 평균 관중 4만 이상을 기록하는 초 인기구단인데, MLB에서도 한신보다 평균 관중이 높은 구단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단 한 구단 뿐이다. 이들 구단이 벌어들이는 수익도 어마어마하다.[13] 국대 축구의 위상이 압도적인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국대 축구조차 야구의 위상을 쉽게 넘보지 못한다. 일례로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은 아예 프로야구를 쉬었는데 일본은 월드컵과 무관하게 프로야구를 진행했고, 관중석은 사람이 여전히 넘쳤다.[14] 한국어로 "카프 여자"라는 뜻이며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응원하는 여자를 일컫는다.[15] 한국에서 일반적인 의미로 쓰이는 사회인 야구팀은 일본에선 풀뿌리야구(쿠사야큐, 草野球)라 불리는데 이들의 수는 당연히 훨씬 많다.[16] 한국은 2020년부터 실업야구의 부활을 선언했지만 프로에서 방출된 선수는 창단 과정에서 일찌감치 합류한 경우를 제외하면 실업야구팀에서 뛸 수 없다. 추가로 독립리그에서 뛴 선수들 역시 실업야구 선수 등록이 불가능하다.[17] 오쿠츠가루이마베츠역JR 홋카이도 소속이다. 아오모리현에서도 JR 홋카이도 소속 신칸센이 다니는 구간이 있다. 과거에는 하쿠쵸, 하마나스 등 특급, 급행 열차가 아오모리와 홋카이도를 연결했다.[18] 서부 일부만 JR 서일본 소속일 정도로 도쿄의 영향력을 깊숙히 받고 있다. 신칸센도 도쿄역 방향으로 가는 편성이 많다.[19] 철도는 JR 서일본 관할이지만, 호쿠리쿠 신칸센 개통으로 도쿄와의 교통이 편리해졌다. (덤으로 호쿠리쿠 본선 중 이 현을 지나가는 구간이 아이노카제 도야마 철도로 분리되었다.) 때문에 요미우리 팬이 많은 것.[20] 마치 뉴욕 양키스 팬을 미국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양키스보다도 요미우리 쪽이 더욱 심하다.[21] 현재는 아키타현만 요미우리 인기가 높고 다른 도호쿠 5개 현 (아오모리, 이와테, 미야기, 야마가타, 후쿠시마)들은 라쿠텐 인기가 높다.[22] 물론, 반대로 간사이 지방에도 적지 않은 쿄진 팬덤이 존재한다.[23] 이 현을 다니는 JR 노선은 JR 서일본이 아닌 JR 도카이 소속이다.[24] 특히 '축구'의 경우 중화권은 명칭이 다르기 때문에 '축구' 명칭을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25] 심지어 J리그의 전신인 실업리그 JSL도 1965년에야 겨우 출범하였다. 축구가 얼마나 오랫동안 일본에서 입지와 위상과 관심이 낮은 마이너 종목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AFC] 소속 국가대표팀 중 유일한 월드컵 우승이다.[27] 90년대 한때 세리에는 세계 1위 리그였다. 물론 현재는 EPL과 라리가에 입지를 넘겨주고 반등하지 못하고 있긴 하다만...[28] 독일이 비EU권 선수들에게 상대적으로 개방된 제도를 운용하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한국 선수들이 독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은 것 역시 차범근, 손흥민 등 성공한 출신 선수들과 더불어 제도 등의 이유가 크다.[29] 그나마 7인제 럭비에선 과거에 한국이 아시안게임을 비롯한 아시아 대회에서 일본을 누른 바 있고 최근엔 아시아 대회에서 홍콩에 밀리고 있지만, 애초에 세계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일본 7인제 대표팀에게 아시아 대회는 관심사항이 아니다.[30] 자민당 창당 60주년 행사에 참석해 축사까지 했다.[31] 사실 이 선수가 주목을 받는 것은 에이스인 것도 있지만 조니 윌킨슨과 같이 눈에 띠는 독특한 킥 준비 동작 때문인데, 일명 '고로마루 포즈'로 불리는 이것은 일본에서 대유행하여 누구나 따라하는 동작이 되었다. 그야말로 신드롬이다.[32]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33] 그러나 현재는 일본도 세대 교체중인지라 예전보다는 전력이 많이 약화됐다. 일본의 전통 강점인 이동 공격이 사라진 점도 한몫했다.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멤버들이 전성기였을 때는 정말 대단했다. 이때 시기는 한국 여자배구의 침체기로 정말 일본만 만나면 탈탈 털렸다. 오토모 아이의 이동공격은 유럽 팀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2004 아테네 올림픽 8강전 중일전에서는 세계 최초로 백이동공격을 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가하면 전위도 아니고 후위공격위치인 자리에서 이동을 하면서 때린 것이다.[34]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본선에서 3-0으로 승리한 뒤, 2011년까지 내리 22연패했다. 중간에 3승을 한 적이 있으나 일본이 2진 선수단을 내보내서 승리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1진 대결에서는 22연패나 마찬가지다.[35] 대표적인 선수가 구리하라 메구미와 잠깐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 오야마 카나다. 기무라 사오리도 한때 큰 주목을 받아 김연경과 라이벌을 이루기도 했다.[36] 주로 배구공을 제작하는 일본 기업 브랜드이다. 국제공인구이기 때문에 FIVB가 주관하는 모든 국제대회에 사용된다. 또 해외 여러 나라에서 자국 리그에서 사용된다. 우리나라는 국내기업인 신신상사에서 제작한 스타공을 사용한다.[37] 여자배구의 경우 2006, 2010년에 연이어 개최하더니 2014년 대회에 한번 이탈리아가 개최하고 2018년에 또 다시 개최했다.[38] 때문에 아시아 대회는 아예 신경도 안 쓴다. 모든 국제 세계대회를 밥먹듯이 개최하는데 정작 대륙간 선수권을 개최할 생각은 없다.[39] 올림픽 최종예선은 총 8개국이 참가하고 아시아 국가는 4개국으로 한정되어 있는데 일본은 이미 주최국이기 때문에 예선에 무리없이 참가한다. 한국 남자배구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최종예선에조차 중국에 랭킹 순위가 밀려 출전하지 못했다.[40] 일본이 세르비아에게 2-3으로 질 경우, 일본과 세르비아가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다. 쉽게 말해 안전하게 두 팀 다 올림픽 본선에 가기 위해 승부조작을 했다는게 태국팬들의 주장이다.[41] 이번에는 타 국가팀과의 승부조작이 아닌 태국과의 직접적인 경기에서 편파판정으로 경기를 이겨버렸다. 태국으로서는 가뜩이나 2012 런던 올림픽 예선 때도 좋지않은 기억이 있는데 결국 2012년과 2016년 둘다 피해는 태국이 입은 셈이다.[42] 당시 경기 영상이 유투브에 많이 올라와 있다. 마지막 5세트만 봐도 이 경기의 판정이 얼마나 형편없고 어이없는지 알수 있다. 심지어 5세트에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태국의 선수 교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는데, 태블릿 PC의 이상 때문인데도 주심은 태국 감독이 항의한다는 이유로 태국 팀에게 가차 없이 경고를 주고 일본에게 1점을 선사해버렸다. 게다가 지속적으로 일본에 유리한 판정까지 내려버렸다. 경기가 끝나고 대역전패 당한 태국 선수들은 억울한듯 통곡을 하며 우는데 가관이다. 참고로 이 올림픽 예선을 끝으로 태국 감독은 20여년 동안 지휘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결국 올림픽 본선 진출은 하지 못했다. 태국 주전 선수들도 거의 30대 은퇴를 앞두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유감이 아닐 수 없다.[43] 이는 B리그 총재 오오카와 마사아키가 J리그 행정 경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두 개의 리그를 하나로 합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한 선택이기도 하다.[44] 부친이 서아프리카인인 혼혈.[45] 이 역시 아시아 최초이며, 니시코리 이전에는 파라돈 스리차판(태국)이 2004년 9위까지 오른 적이 있다. 이후 최고 4위까지 올라갔다.[46] 독일에서 인기가 높고 영국에서도 세계화의 영향으로 젊은 층에서 인기가 있다.[47] 무려 3부리그 체제이다.[48] 다만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이벤트성 스모 대회는 제법 있는 편이다.[49] 미들급 올림픽 금메달과 WBA 우승까지 차지했다.[50] 헐크 호건, AJ 스타일스, 핀 밸러, 케니 오메가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51] 타지리후나키가 WWF 시절부터 활동했으며, 현재도 나카무라 신스케아스카, 이요 스카이 등의 선수들이 WWE에 진출했다. 단순히 진출만 했을 뿐만이 아니라 챔피언에 등극하기도 했으며, 프로레슬링 업계 최고의 이벤트인 레슬매니아에서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52] 조선인 선수 김원권이 활약한 것도 이 시기이다. 1930년대 후반~1940년대 초 일본 세단뛰기 1인자였는데, 당시 일본이 세단뛰기 세계 최강이었으니 일본 1인자가 곧 세계 1인자인 시대였다. 김원권은 비공인 세계신기록을 세운 적도 있었고 1940 도쿄 올림픽에서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으나 전쟁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해방 후 1948 런던 올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했지만 전성기가 지나서인지 12위의 성적을 기록했다.[53] 참고로 한국은 아시아권에서조차 아직은 육상 강국이라고 보긴 어렵다.[54] 나머지 3명은 혼혈이 아니었다. 사실 당시 중국도 혼혈 선수 없이 결선 진출에 성공해 5위를 기록한거 보면 대단하긴 했다.[55] 이것은 시운마루호 침몰 사고의 여파이다. 구글 지도로 일본을 보면 파란색 사각형이 여럿 보이는데, 이것이 수영 시설이다.[56] 마이클 펠프스가 나오기 전 가장 많은 개인전 금메달 갯수였다.[57] 중국이 철봉 1명이 남은 상황에서 2번 떨어지지만 않으면 뒤집히지 않을 상황이었는데 정말 2번 떨어지고 뒤집혀버렸다.[58] 단, 혼성 종목인 아이스 댄스, 페어 스케이팅에서는 다소 약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며 싱글 종목 선수가 전향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점은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선수가 없어 국내대회에서 혼성 종목이 아예 개최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 한국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59] 우리나라의 경우, 김연아의 등장 이전엔 아이스 쇼라는 개념이 없었다. 올댓스포츠에서 개최한 것 외의 아이스쇼는 현대카드와 2018년도에 차준환을 호스트로 개최한 인공지능 LG ThinQ 아이스 판타지아 아이스 쇼 뿐이다.[60]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61]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62]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63] 도쿄 출생이지만 센다이시에서 성장했으며, 방송에서도 센다이 출신이라고 언급한다.[64] 여자대만 출신이다.[65] 당장 한국보다 2배 많은 서킷이다.[66] 포뮬러 원을 개최할 수 있는 서킷[67] 랠리를 포함한 비포장 도로 경주에서는 자주 보인다.[68] 2020 도쿄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일본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호주, 그리스 다음으로,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하계올림픽을 두 번 개최한 국가가 되었다.[69] 올림픽사 최초의 동일 도시 하계 패럴림픽 2회 개최.[70] 당시 연령 제한이 19세였으며, U-20 월드컵에 대한 제도적 개편이 이루어지기 전이라 '1979 FIFA U-20 월드컵 일본' 등으로 불리지 않으며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가 정식 명칭이다.[71] 1979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와 마찬가지로 연령 제한이 17세인 선수권 대회이며 당시엔 월드컵이라 불리지 않았다.[72] 남녀 대회 일관 개최[73] 남녀 대회 일관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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