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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마 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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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마 유타
井山裕太 / Iyama Yuta

第二十六世本因坊 文裕 [1]
파일:20180105s00041000124000p_view.jpg
생년월일 <colbgcolor=#fffff9,#191919>1989년 5월 24일 ([age(1989-05-24)]세)
오사카부 히가시오사카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직업 바둑 기사
가족 부모님, 아내, 아들(2020년생)
소속 일본기원 관서총본부[2]
입단 2002년
단수 九단
현 보유 타이틀 왕좌, 기성(碁聖), 십단, 용성
누적 우승 경력 76회
주요 경력 7관왕 2회, 연간 그랜드슬램 달성
한큐바둑
닉네임
Callaway(P), jpgo01(P)
타이젬바둑
닉네임
detective
홈페이지 일본기원 이야마 유타 소개 페이지

1. 개요2. 생애
2.1. 프로 입단 이전2.2. 2002~2015년2.3. 2016년2.4. 2017년2.5. 2018년2.6. 2019년2.7. 2020년2.8. 2021년2.9. 2022년2.10. 2023년2.11. 2024년
3. 국민영예상 수상4. 별명5. 기타6. 약력7. 저서

[clearfix]

1. 개요

일본바둑 기사.

2. 생애

2.1. 프로 입단 이전

오사카에서 태어나, 5살 때 아버지가 사준 게임으로 바둑을 배웠다. 6살 때 이시이 구니오(石井邦生) 九단[3]의 제자가 되었는데, 이시이 九단은 이례적으로 이야마 유타와 1000국 가량 대국하며(대부분 인터넷 바둑) 직접 가르쳤다.[4]

2.2. 2002~2015년

2002년에 입단했다.[5] 2005년 아함동산배에서 우승하며 일본 바둑 사상 최연소 우승(16세 4개월)을 달성했고, 2009년 명인전에서 장쉬 명인을 종합 전적 4-1로 꺾고 명인 타이틀을 획득하며 최연소 7대 기전 타이틀 획득(20세 4개월) 기록과, 최단 기간 九단 승단(8년 10개월)[6] 기록을 세웠다.

2013년 3월 14일에 장쉬 기성을 종합 전적 4-2로 꺾고 기성(棋聖) 타이틀을 획득하며 일본 바둑계 최초로 7대 기전 6관왕에 등극했다. 동시에 사상 3번째로 그랜드슬램[7]도 달성했다. 동년 10월 17일에는 야마시타 게이고 명인을 종합 전적 4-1로 꺾고 명인 타이틀을 획득, 사상 2번째로 대삼관(大三冠)[8]을 달성했다. 하지만 십단전에서 계속 가로막혀 7관왕 달성이 미뤄지다가,[9] 2014년 12월 왕좌전, 천원전 도전기에서 패하며 4관왕까지 물러났다. 2015년에는 다시 십단전을 제외한 6관왕에 복귀했고 십단전 도전기에서도 위정치 七단(당시)을 꺾고 도전권을 획득했다.

2.3. 2016년

2016년 3월 8일부터 열린 십단전에서 이다 아쓰시 십단을 종합 전적 3-1로 꺾고 십단 타이틀을 획득, 일본 바둑 사상 최초로 7관왕에 등극했다.

6월 30일 혼인보전에서 다카오 신지 九단을 종합 전적 4-1로 꺾고 5연패에 성공, 영세 혼인보(26세 혼인보) 자격을 획득했다. 혼인보 가문에 들어간 예명은 몬유(文裕)로, 文은 문수보살(文殊菩薩), 裕는 이름 유타(裕太)에서 따온 것이다.

2016년 들어서부터 중국의 예후바둑이나 한국의 타이젬 바둑 등을 통해 인터넷 대국을 많이 하기 시작했는데, 이 인터넷 바둑에서는 박정환 九단과는 호각이었지만, 중국스웨 九단[10]이나 커제 九단, 저우루이양 九단, 한국의 신진서 六단(당시)이나 이동훈 八단(당시), 김지석 九단 등 다른 정상급 기사들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이 인터넷 대국들은 공식 대국이 아니지만, 이야마 九단이 국제기전에 많이 나온다고 해도 일본 국내에서처럼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 근거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11월 13일 명인전 제7국에서 다카오 신지에게 흑 2집 반 차로 패배. 종합 전적 3-4로 명인 타이틀을 상실했다.[11] 동시에 7대 기전 타이틀 독점도 종료.

2016년 말에 알파고타이젬한큐바둑에서 한중일 탑기사들에게 60전 전승을 거둘 때 일본 기사로는 유일하게 대결했는데,# 이 때 알파고를 상대로 가장 잘 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른 내로라 하는 한중의 탑기사들도 초반 50수만 지나면 죄다 불리했는데 이야마 유타는 어느 정도 대등하거나 혹은 유리한 장면까지 끌고 갔다. 다만 결과는 아쉽게도 이야마 유타의 패배로 끝났다.[12]

2.4. 2017년

1월 29일 하세배 1차전에서 중국 1위 커제를 상대로 225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결승에서는 2차전에서 박정환을 꺾고 결승에 올라온 커제와의 재대결에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2017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인간 기사 중 유일하게 딥젠고에 패배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최종 성적도 3전 전패로 최하위.

5월 31일 LG배에서 중국 저우루이양을 꺾고 8강에 진출했다.

8월 초 명인전 본선리그에서 8전 전승을 거두고 명인전 도전권을 획득했다.

그리고 명인전 도전기 7번기에서 다카오 신지를 종합 전적 4-1로 꺾고 명인 타이틀을 탈환, 약 1년 만에 다시 7관왕에 등극했다.[13][14]

11월 13일 일본에서 열린 LG배 8강전에서 양딩신을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일본 기사의 메이저 세계 대회 4강행은 2011년 마지막 후지쯔배에서 이야마 유타 본인이 3위에 오른 이후 6년 만이다.

파일:work-001-wfwhhe.jpg

LG배 4강전 종국 직후. 커제가 초반에 우세하던 흐름에서 도저히 질 수 없는 바둑을 졌다며 괴로워했다.

그리고 이틀 뒤 4강전에서 현 세계 최강자 커제마저 흑으로 격파하며 결승에 진출, 본인에게 있어 첫 메이저 세계 대회 우승에 매우 가까워졌다.(결승 상대는 중국의 셰얼하오) 참고로 장쉬 九단의 LG배 우승 이후로 일본기원 소속 기사는 약 12년 동안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이 없다. 사실 결승까지 올라간 건[15]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준우승에 그치며 마무리가 좋지 못했다.

2.5. 2018년

2018년 1월 한중일 명인전에서 중국 롄샤오와 한국 이세돌에 연달아 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2월 5~8일 LG배 결승에서 중국 셰얼하오에게 종합 전적 1-2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LG배 결승에서 셰얼하오한테 패배하며 준우승에 그쳤을 때 괴로워하는 인터뷰를 한 이후에 마지막에 한 말은 "나의 도전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겁니다."였다.

3월 월드바둑챔피언십 결승에서 박정환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5월 2일 TV 바둑 아시아 선수권대회에서 판팅위에게 패해 1회전에서 탈락했다.

5월 18일 LG배 32강전에서 자오천위에게 패배했다. 초반 실리 싸움에서 자오천위에게 밀리며 중앙 지향적인 판을 구사하였고, 중앙에 40집 가까이 되는 큰 집을 만들며 역전하나 싶었는데 우변에서부터 중앙으로 들어간 삭감 수를 잘 처리하다가 막판에 잘못 받으면서 중앙이 돌파당하자 아쉽게 돌을 거두었다.

7월 24일 중국에서 열린 세계 대회 바이링배 16강전에서 롄샤오에게 승리했다. 그러나 이틀 뒤 8강전에서는 구쯔하오에게 패해 탈락했다.

7월 28일 한국에서 열린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 16강전에서 강동윤에게 패했다.

8월 3일 기성(碁聖)전 3국에서 쉬자위안에게 패배. 종합 전적 0-3으로 기성(碁聖) 타이틀을 상실했다. 동시에 7대 기전 타이틀 독점도 종료. 참고로 일본 7대 기전 타이틀 방어전에서 이야마 유타가 영봉패를 당한 건 이번이 최초다.

8월 14일 일본 한큐 바둑 축제 대국에서 시바노 도라마루에게 패했다.

9월 4~6일 삼성화재배 32강전에서 2승 1패를 거두며 일본 기사 중 유일하게 통과했다. 10월 1일 16강전에서 리쉬안하오에게 승리. 그러나 다음날 8강전에서 그해 LG배 결승 상대였던 셰얼하오와 다시 만나 또 졌다.

11월 2일 명인전 최종국에서 장쉬 九단에게 패배. 종합 전적 3-4로 명인 타이틀을 상실했다.[16]

12월 13일 왕좌전 최종국에서 이치리키 료에게 승리. 종합 전적 3-2로 왕좌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12월 19일 천원전 최종국에서 야마시타 게이고에게 승리. 종합 전적 3-2로 천원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이로써 7대 기전 우승 횟수는 역대 최다인 43회가 되었다.[17]

2.6. 2019년

2월 18일 농심배에 일본 대표팀의 주장으로 출전했지만, 박정환에게 패했다.

3월 15일 기성(棋聖)전 최종국에서 도전자 야마시타 게이고에게 승리. 종합 전적 4-3으로 7연패를 달성했다.

3월 19일 월드바둑챔피언십 준결승에서 커제에게 패해 탈락했다.

4월 19일 십단전 4국에서 무라카와 다이스케에게 패배. 종합 전적 1-3으로 십단 타이틀을 상실했다.

5월 6일 일본 그랜드 챔피언전에서 시바노 도라마루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29일 LG배 16강전에서 커제에게 패해 탈락했다.

6월 21일 TV바둑 아시아 선수권 7강전에서 신민준 九단에게 불계패했다.

7월 4일 혼인보전 6국에서 도전자인 고노 린에게 승리. 종합 전적 4-2로 8연패를 달성했다.

8월 3일 국수산맥배 16강전에서 변상일에게 패배. 2년 연속 첫 판에서 탈락했다.

14일 봉황고성배 8강전에서 스웨에게 패해 탈락했다.

30일 삼성화재배 32강전에서 탕웨이싱에게 패배했다.

11월 26일 제21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본선 2차전 9국에서 파죽의 7연승을 달리던 양딩신에게 209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그러나 2020년 8월 18일에 인터넷 원격대국으로 열린 본선 3차전 10국에서는 박정환에게 흑 불계패했다.[18]

11월 29일 왕좌전 결승 4국에서 도전자 시바노 도라마루에게 반집 차로 패배. 종합 전적 1-3로 왕좌 타이틀을 상실했다. 타이틀을 방어했다면 명예 왕좌 칭호를 획득할 수 있었지만 무산되고 말았다.

12월 18일 천원전 결승 5국에서 쉬자위안에게 승리. 종합 전적 3-2로 5연패를 달성했다.

2.7. 2020년

3월 6일 기성(棋聖)전 결승 6국에서 고노 린에게 승리. 종합 전적 4-2로 8연패를 달성했다.

3월 NHK배 결승에서 이치리키 료에게 승리를 거두고 통산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6월부터 시작한 혼인보전에서[19] 도전자로 올라온 시바노 도라마루 명인과 7번기를 치렀다. 1~3국은 불계승. 4국은 불계패. 7월 9일에 열린 5국에서 백 4집 반승을 거두고 종합 전적 4-1로 혼인보전 9연패에 성공했다.[20]

7월 29일 춘란배 24강전에서 신민준에게 패했다.

8월 초 명인전 본선리그에서 8전 전승을 거두고 명인전 도전권을 획득했다.

9월 8일 응씨배 28강전에서 구쯔하오에게 역전패했다.

10월 3일 교토에서 열린 일본 아함동산배 결승에서 야마시타 게이고를 꺾고 5년 만에 우승했다.

8월 말부터 진행된 시바노 도라마루와의 명인전 도전기에서는 4국까지 3승 1패를 기록하며 압도했고, 10월 13~14일에 열린 제5국에서 불계승을 거두며 종합 전적 4-1로 명인 타이틀을 탈취했다.[21]

11월 14일에 개막한 중국바둑을조리그에 일중우호팀(or 중일우호대)[22]의 일원으로 참가해,# 5승 3패를 기록했다.#

12월 16일 천원전 결승 5국에서 이치리키 료에게 패배. 종합 전적 2-3으로 천원 타이틀을 상실했다.

2.8. 2021년

2월 22일 농심배에 일본 대표팀의 4번째 주자로 출전했지만, 신진서에게 불계패했다.

3월 5일 기성(棋聖)전 결승 5국에서 도전자 고노 린에게 승리. 종합 전적 4-1로 9연패를 달성했다.

5월 6일 기성(碁聖)전 도전자 결정전에서 이다 아쓰시에게 승리. 이치리키 료 九단과 도전 5번기를 치르게 되었다.

6월 12일 중국바둑갑조리그에 첫 출전. 셰커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5월 11일부터 시바노 도라마루를 상대로 혼인보 타이틀 방어전을 치렀다. 제1국에서는 불계승을 거뒀으나, 제2~4국에서 내리 불계패를 당하며 위기에 몰렸다.[23] 하지만, 제5~6국에서 내리 불계승을 거두며 최종국인 제7국까지 끌고 갔고, 7월 6~7일에 열린 최종국에서도 불계승을 거두고 종합 전적 4-3으로 혼인보전 10연패를 달성했다.[24]

8월 29일 기성(碁聖)전 결승 5국에서 이치리키 료에게 백 불계승을 거두고 종합 전적 3-2로 기성(碁聖) 타이틀을 탈취했다.

10월 2일 아함동산배 결승에서 쉬자위안에게 패배하며 준우승. 연속 우승 기회를 놓쳤다.

11월 5일 명인전 결승 7국에서 이치리키 료에게 승리. 종합 전적 4-3으로 명인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11월 27일 제23회 농심배에 일본 대표팀의 세 번째 주자로 출전,[25] 본선 2차전 제6국에서 중국 대표팀의 두 번째 주자 판팅위를 상대로 182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11월 28일 농심배 본선 2차전 제7국에서 한국 대표팀의 세 번째 주자로 나온 변상일의 대마를 잡고 140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두며 이번 대회 참가 기사 중 최초로 2연승을 기록했다.

11월 29일 농심배 본선 2차전 제8국에서 중국 대표팀의 세 번째 주자 리친청 九단을 시종일관 압도하는 좋은 모습을 보여준 끝에 백 불계승을 거두고 파죽의 3연승을 이어갔다. 일본 대표팀 입장에선 17회 대회에서 이치리키 료가 3연승을 거둔 이후 6년 만에 나온 기록.[26]

11월 30일 농심배 본선 2차전 제9국에서 한국 대표팀의 네 번째 주자 신민준 九단을 상대로 불리한 형세를 타개하기 위한 승부수를 띄워 상대의 착각을 유도했고, 이게 제대로 먹혀든 덕분에 흑 불계승을 거두고 농심배 일본 대표 최초로 대회 4연승에 성공했다.

12월 9일 왕좌전 제5국에서 시바노 도라마루를 상대로 불계승을 거두고 종합 전적 3-2로 왕좌 타이틀 탈취에 성공, 7대 기전 5관왕이 되었다.

2.9. 2022년

2월 21일 농심배 10차전에서 중국 미위팅에게 패하면서 4승 1패로 대회를 마쳤다. 아울러 농심배 통산 7승으로 하네 나오키와 함께 일본 대표 최다승 타이 기록을 세웠고, 대회 최초로 통산 10패를 기록했다.

3월 18일에 열린 제46회 (대)기성전 제7국 2일차 대국에서 도전자 이치리키 료에게 불계패하며 종합 전적 3-4로 기성(棋聖) 타이틀을 상실, 기성(棋聖)전 10연패 달성에 실패했다.

3월 22일 제14회 춘란배 24강전에서 김지석에게 불계패했다.

5월 10일부터 진행된 제77회 혼인보전 도전 7번기에서 이치리키 료에게 종합 전적 4-0으로 승리하며 혼인보 타이틀 방어에 성공함과 동시에 일본 바둑계 연속우승 신기록인 11연패를 달성했다.

7월 27일에 열린 제47회 기성(碁聖)전 제3국에서 도전자 이치리키 료에게 불계승을 거두며 종합 전적 3-0으로 기성(碁聖)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8월 13일 제8회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 16강전에서 김지석에게 반집패했다.

10월 1일 일본 아함동산배 결승에서 히라타 도모야에게 1집 반 차이로 패배하며 2년 연속 준우승에 그쳤다.

11월 3일 명인전 최종 7국에서 시바노 도라마루에게 패하며 종합 전적 3-4로 명인 타이틀을 상실했다.

11월 18일 왕좌전 제3국에서 위정치에게 승리를 거두며 종합 전적 3-0으로 왕좌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11월 29일 제24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에 일본 대표팀 마지막 주자로 출전해서 중국 대표팀 3번째 주자 롄샤오를 꺾었다.

12월 26일 제31기 용성전 결승에서 유키 사토시를 꺾고 우승했다.

2.10. 2023년

2월 20일 농심배 제10국에서 한국 대표팀 3번째 주자 박정환에게 2집 반 차이로 패배하며 1승 1패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5월 5일 제1회 취저우 난가배 세계 바둑 오픈 32강전에서 셰얼하오에게 2집 반 차이로 패했다.

7월 19일과 20일에 진행된 제78회 혼인보전 도전 7번기 최종 7국에서 이치리키 료에게 불계패하며 종합 전적 3-4으로 혼인보 타이틀을 상실했다.

7월 28일에 열린 제48회 기성(碁聖)전 제3국에서 도전자 이치리키 료에게 백 불계승을 거두며 종합 전적 3-0으로 기성(碁聖) 타이틀 3년 연속 방어에 성공했다.

8월 3일 제5회 Mlily 몽백합배 세계 바둑 오픈전 64강전에서 중국 양카이원에게 불계패했다.

9월 24일~10월 3일 열리는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바둑 경기에 출전하는 일본 바둑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9월 29일~10월 1일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바둑 남자 단체전에서 예선 4위로 4강에 진출했지만, 10월 2일 열린 4강전에서는 한국에게 패배하며 동메달 결정전으로 밀렸다. 10월 3일 열린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대만에게 승리를 거두며 동메달을 획득했다.

11월 2일과 3일에 진행된 제48회 명인전 도전 7번기 제6국에서 시바노 도라마루에게 불계패하며 종합 전적 2-4로 명인 타이틀 획득에 실패했다.

11월 16일 제28회 삼성화재배 월드 바둑 마스터스 32강전에서 김명훈에게 불계패했다.

12월 8일 제71회 왕좌전 5국에서 위정치에게 승리하며 종합 전적 3-2로 왕좌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12월 24일 아함동산배 결승에서 이치리키 료에게 불계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2.11. 2024년

2월 19일 제25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에 일본 대표팀 마지막 주자로 출전했지만 신진서에게 패했다.

3월 7~8일에 열린 제48회 (대)기성전 도전기 최종국 2일차 대국에서 이치리키 료에게 패하며 종합 전적 3-4로 기성(棋聖) 타이틀 획득에 실패했다.

3월 19일 제15회 춘란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24강전에서 미위팅에게 패했다.

4월 21일 제10회 응씨배 세계 프로 바둑 선수권 대회 28강전에서 원성진에게 패했다.

30일 제62회 십단전 도전기 최종국에서 시바노 도라마루에게 승리하며 종합 전적 3-2로 십단 타이틀을 획득했다.

6월 29일 난가배 준결승전에서 구쯔하오에게 패하며 대회를 마쳤다.

7월 19일 제49회 (소)기성전 도전기 3국에서 시바노 도라마루에 승리하며 3-0으로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8월 3일 국수산맥배 16강전에서 강승민에게 패했다.

9월 8일 농심배에 일본 2번째 선수로 나섰지만 한국 김명훈에게 패했다.

3. 국민영예상 수상

파일:2018iyamahabu.jpg

2016년에 일본 바둑계 최초로 7대 기전 완전 제패를 달성했던 이야마 유타는 2017년에 다시 한번 7대 기전을 독차지하며 연간 그랜드슬램[27]까지 달성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1월 5일국민영예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이날 오전 각의가 끝난 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그리고 2018년 2월 13일에 시상식이 열렸다.# 쇼기의 하부 요시하루는 25번째, 이야마 유타는 26번째 수상자로 확정. 바둑/쇼기계에서는 사상 최초로 국민영예상 수상자가 나왔다.

이야마 유타에 대한 국민영예상 시상 사유는 아래와 같다.
囲碁界を牽引する棋士の第一人者として、
바둑계를 견인하는 기사의 1인자로,
顕著な功績を重ね続け、年間グランドスラムを含む、
현저한 공적을 거듭, 연간 그랜드슬램을 포함,
囲碁界初の2度の七冠同時制覇という歴史に刻まれる偉業を達成、
바둑계 최초의 2회 7관왕이라는 역사에 새겨질 위업을 달성,
多くの国民に夢と感動を、社会に明るい希望と勇気を与えることに顕著な業績があった。
많은 국민들에게 꿈과 감동을, 일본 사회에 밝은 희망과 용기를 주는 데에 현저한 업적이 있다.

이야마 유타의 수상 결정 소감은 아래와 같다.
この度、国民栄誉賞を受賞させていただく事となり、大変光栄であるのと同時に、身の引き締まる思いです。
이번 국민영예상을 수상하는 것은 큰 영광인 동시에, 몸이 굳어지는 느낌입니다.
棋士としてまだまだ発展途上の自分がこのような賞をいただいて良いのかという思いはありますが、今後に期待していただいているものと理解しております。
기사로써 아직 발전 중인 제가 이런 상을 받아도 되느냐는 고민이 있습니다만, 앞으로의 성적을 기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少しずつでも前に進んでいけるよう、これからも誠心誠意、囲碁に向き合っ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성심성의껏 바둑판 앞에 앉겠습니다.

이야마 유타의 스승 "이시이 구니오" 九단의 소감
国民栄誉賞受賞、誠に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국민영예상 수상,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全国数百万の囲碁ファンの皆様方はこの朗報に拍手喝采を送って下さることでしょうし、私も身の震えるような思いをしています。
전국 수백만명의 바둑팬 분들께서는 이 소식에 박수 갈채를 보내고 있고, 저도 몸이 떨리며 같은 마음입니다.
井山君はプロ棋士になって16年になりますが、これからの道程の方が数倍も長いのです。
이야마 군은 프로 기사가 된지 16년이 되었는데(2002년 입단), 앞으로의 여정이 몇 배나 깁니다.
この素晴らしい栄誉と重みを担ってこの受賞を励みとし、これまで以上に研鑽に努め囲碁界の発展のために尽力して下さい。
이번 수상이라는 위대한 영예와 무게를 안고, 이번 수상을 격려로, 지금까지 이상으로 연구에 힘쓰며 바둑계 발전에 진력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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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3일 진행된 국민영예상 시상식. 왼쪽이 이야마 유타 九단, 가운데 아베 신조 수상, 오른쪽 하부 요시하루 九단.

이야마 유타는 사상 첫 헤이세이 시대 출생자가 국민영예상을 수상한 사례로 기록에 남게 되었다.[28]

4. 별명

바둑 갤러리, 사이버오로, 타이젬바둑 등에서 불리는 별명은 거봉센세다. 두 글자로는 '거봉'이라 부르고, 한 글자로 축약할 때는 '봉'이라고 부른다. 아예 Iyama “The Grape” Yuta Sensei라는 별명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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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Master vs 이야마 유타. 흑 알파고, 백 이야마.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알파고를 거봉 상태로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바둑에서 이런 거봉 모양은 중복의 표본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두면 안 되는 안 좋은 모양이다. 대국은 결국 알파고가 이겼지만 이야마 유타 九단의 알파고 거봉 상태 만들기가 워낙 충격적이었기에 별명으로 굳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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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명은 바둑 갤러리 위주로 쓰이면서 여러 군데로 퍼져나갔는데, 기어이 한국기원 월간바둑 2018년 1월호에서 거봉 '선생'으로 언어순화(?)해서 공식적으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바둑 갤러리의 반응은 "바갤럼은 바둑계 어디에나 있다" 아카이브

한국에서 '거봉센세'로 불리는 것에 대해 이야마 유타 九단의 반응은 아래와 같다.
내게 그런 별명이 붙은 줄 몰랐는데 기분 좋다. 별명을 붙여준 한국 팬들에게 감사한다. 알파고 마스터와 대국은 초반에는 복잡했는데 나중에는 잘 풀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판 전체로 보면 알파고의 대세관에 내가 미치지 못했던 거 같다.
- 알파고를 포도송이 만든 일본의 ‘거봉 선생’(중앙일보)

5. 기타

6. 약력


<일본 7대 기전 타이틀>
<기타 기전>

7.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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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26세 혼인보 몬유. 자세한 내용은 혼인보전 문서 참조.[2] 일본기원간사이 지부 격인 단체. 관서기원이 일본기원으로부터 분리 독립한 1950년에 일본기원 잔류파 기사들이 뭉쳐서 발족했다.[3] 1941년 10월 20일 후쿠오카현 출생의 바둑 기사로 이전까지 국내외에서 뚜렷한 성적을 전혀 보여 주지 못하다가 2001년 제14회 후지쯔배 본선 1회전에서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이창호 九단을 불계로 꺾어서 엄청난 화제를 일으켰던 주인공이다.[4] 훗날 이야마 유타 九단은 스승의 집과 자신의 집 간의 거리가 워낙 멀어 어린 나이에 왔다 갔다 하며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받기 힘든 터라 원거리 대국이 가능한 인터넷 바둑을 자연스럽게 이용하게 되었다고 밝혔다.[5] 원생 리그에서 46연승을 포함, 71승 8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입단했다.[6] 일본기원 승단 규정에 따르면 소속 기사가 7대 기전 중에서도 3대 메이저 타이틀(기성(棋聖)전, 명인전, 혼인보전)을 획득할 경우 九단으로 승단하게 된다.[7] 7대 기전을 전부 1번 이상 우승하는 것을 일본에서는 그랜드슬램이라고 부르는데 조치훈이 1987년에 최초로 달성했고, 2010년에는 장쉬가 2번째로 달성했다.[8] 기성(棋聖), 명인, 혼인보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하는 것으로 조치훈 九단이 1983년에 최초로 달성했다.[9] 2013년 4월 도전기에서 유키 사토시, 2014년 1월 도전자 결정전에서 다카오 신지, 11월 8강전에서 고바야시 사토루에게 패했다.[10] 9월 10일 스웨 九단과 이야마 九단의 인터넷 대국에서는 이야마 九단이 만방으로 깨져서 집 차가 50집 이상 벌어지는 바람에 조기에 불계패를 선언하기도 했다.[11] 초반 3연패를 당한 후 3연승을 거두며 승부를 최종국까지 끌고 갔지만 최종국에서 접전 끝에 패배했다.[12] 참고로 알파고가 둔 수들 중에 충격을 받은 수는 없다고 한다.[13] 한 해에 7대 기전을 한 기사가 모두 우승한것은 최초이다.[14] 참고로 전관왕은 아니다. 일본에는 7대 기전 외에도 NHK배, 용성전, 아함동산배 등이 있는데, 2017년에 이야마는 용성전과 아함동산배에서는 우승하지 못했다.[15] 대진운이 좋았다며 운빨 탓을 할 수도 없는게, 이야마 유타는 32강 이영구 九단, 16강 저우루이양 九단, 8강 양딩신 五단, 4강 커제 九단을 꺾고 결승까지 올라간 것이다. 이영구도 한국에서 10위권 내에 드는 기사고 양딩신도 중국에서 10위권 안에 있는 잘나가는 신예. 저우루이양과 커제는 세계대회 우승자 출신으로 이야마 유타는 말할 것도 없는 강한 기사들만 다 이기고 올라간 것이다.[16] 1~2, 4국을 이기며 좋은 기세를 이어가는 듯했으나, 5국부터 3연패를 당했다.[17] 종전 최다 우승 기록은 조치훈의 42회였다.[18] 초반에는 팽팽하게 맞섰지만, 중간에 큰 실수를 하는 바람에 185수 만에 불계패를 선언했다.[19] 본래 5월부터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19 사태로 1달 연기되었다.[20] 이로써 이야마 유타는 일본기원 규정에 따라 은퇴하거나 60세가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혼인보 몬유(本因坊 文裕) 칭호를 바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21] 그와 동시에 통산 3번째 대삼관을 달성했다.#[22] 일본기원의 이야마 유타, 무쓰우라 유타, 후쿠오카 코타로, 관서기원위정치[23] 특히 제2국에서는 초반에 큰 실수를 하는 바람에 2일차 일정 시작하자마자 AI 그래프가 밑바닥으로 떨어졌고, 결국 96수 만에 불계패를 선언했다.[24] 사상 2번째 달성. 참고로 사상 최초 달성자는 조치훈 九단이다.[25] 본래 이치리키 료 九단이나 위정치 八단이 세 번째 주자로 나가는게 전략상 맞지만, 이치리키는 이틀 전인 25일 후쿠오카에서 천원전 제3국을 치른 영향으로 만전의 상태가 아니고 위정치는 26~28일에 관서기원 주최로 열리는 관서 바둑 오픈 토너먼트에 참가 중이라 어쩔 수 없이 이야마 유타 九단이 조기 투입되었다고 한다.[26] 당시 본선 1라운드에서 선봉으로 출전한 이치리키 료가 백찬희-판윈러-민상연을 꺾었다.[27] 한 해에 7대 기전 타이틀을 전부 제패하는 것을 의미한다.[28] 그 뒤로 받은 헤이세이 시대 출생자는 2014, 2018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인 하뉴 유즈루다. 메이저리그에서 MVP를 받은 오타니 쇼헤이는 일본 정부에서 상을 주기로 하였으나 본인이 거절하였다. 하뉴와 오타니는 1994년생이다.[29] 이야마 유타가 자신의 키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는지 여부는 불명이지만 일본의 몇몇 정보 블로거들은 이야마의 키를 164cm로 소개하고 있다.#[30] 인터넷 대국은 예외. 오른손으로 마우스를 잡는다.[31] 기성(棋聖): 1~3월 / 십단: 3~4월 / 혼인보: 5~7월 / 기성(碁聖): 6~8월 / 명인: 9~11월 / 왕좌&천원: 10~12월 일정으로 기전이 열린다. 사실상 1년 내내 일본 7대 기전 대국 스케줄이 꽉 찬 셈.[32] 2020년에는 이야마 유타와 시바노 도라마루가 혼인보전 7번기에 전념하기 위해 LG배 출전을 포기했다. 6월 4일 뉴스[33] 한국 국내 기전 중에 큰 상금이 걸린 대회가 별로 없어서 국제 기전에 꼭 참가하고 싶어하고, 중국바둑갑조리그에 용병으로 참여하고 싶어하는 한국기원의 기사들과는 처지가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34] 한 해에 7대 기전을 모두 석권한 최초의 기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