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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부 요시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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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부 요시하루
羽生善治 / Yoshiharu Habu
파일:sty1801050014-f2.jpg
직업 쇼기 기사
소속 일본쇼기연맹
생년월일 1970년 9월 27일 ([age(1970-09-27)]세)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학력 도쿄 도립 우에노 고등학교[1]
출신지 사이타마현 토코로자와시
입단 1985년
단급 九단
통산 타이틀 획득 99기(역대 1위)[2]
일반 기전 우승 횟수 46회(역대 1위)
비공식 기전 우승 횟수 8회(역대 1위)
순위전 B1
용왕전 1조
통산 승-패 1484승 632패
홈페이지 일본쇼기연맹

1. 개요2. 주요 기전 성적3. 경력4. 국민영예상 수상5. 체스6. 기타

[clearfix]

1. 개요

사이타마현 출신의 일본 쇼기 기사이다.

보유하고 있는 영세칭호는 19세 명인(十九世名人), 영세용왕(永世竜王), 영세왕위(永世王位), 명예왕좌(名誉王座), 영세기왕(永世棋王), 영세기성(永世棋聖), 영세왕장(永世王将)으로 이를 영세7관(永世七冠)으로 줄여서 부른다.[3] 이외에 쇼기 NHK배에서 통산 10회 우승하면 받을 수 있는 명예 NHK배 선수권자(名誉NHK杯選手権者) 칭호도 획득했다.

위의 커리어를 보면 대충 감이 오겠지만, 현대 일본 쇼기계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살아있는 전설로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

특이한 점으로, 쇼기와 같은 보드게임 선수라면 기본 요소라고 여기는 '포커 페이스'와는 거리가 멀다. 대국을 할 때 감정이 그대로 나타난다. 포커마작 등과 달리 바둑, 체스, 장기 같은 보드게임은 경기 내 정보가 모두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포커 페이스가 딱히 필요하지는 않다. 물론 표정이나 몸짓 등으로 상대에게 심리전을 걸 수는 있다. 장면 예시 대국 막바지에 하부 요시하루가 외통수순을 찾아내기 전 고통스러워하며 생각하는 장면이다. 근데 이 아저씨 나중에 이기고서도 고통스러운 표정을 한다(...)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1991년에 슈퍼 패미컴으로 이 하부 요시하루가 주인공인 쇼기 게임이 발매된 적이 있다.

2. 주요 기전 성적

통산 타이틀전 등장 횟수 138회(1위), 통산 타이틀 획득 99회(1위), 일반기전 누적 우승 45회(1위)

<용왕전(竜王戦)>
통산 우승 7회(1989, 1992, 1994, 1995, 2001, 2002, 2017)

<명인전>
통산 우승 9회(1994, 1995, 1996, 2003, 2008, 2009, 2010, 2014, 2015)

<왕위전>
통산 우승 18회(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4, 2005, 2006,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왕좌전>
통산 우승 24회(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2, 2013, 2014, 2015, 2016)[4]

<기왕전>
통산 우승 13회(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4)

<기성전>
통산 우승 16회(1993전, 1993후, 1994전, 1994후, 1995, 2000,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왕장전>
통산 우승 12회(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2, 2004, 2005, 2006, 2007, 2008)

<NHK배 TV쇼기 선수권대회>[5]
통산 우승 11회(1988, 1991, 1995, 1997, 1998, 2000, 2008, 2009, 2010, 2011, 2018)

3. 경력

1985년 12월 18일에 프로기사로 데뷔했다. 당시 하부의 나이는 15세로, 역대 세번째 중학생 프로기사였다.

프로기사 데뷔 첫 해라고 볼 수 있는 1986년 당시 승률은 40승 14패(0.741). 당시 프로기사 중 1위였다.

1987년 12월 천왕전에서 우승. 당시 하부의 나이는 17세 2개월로 전체 기사 참여 기전 최연소 우승이었다.[6]

그리고 당시에는 아직 주목받는 천재 신인 기사 정도였던 하부 五단을 일약 스타로 만든 건 1988년 제 38회 NHK배 쇼기 토너먼트다. 이 대회에서 하부는 3회전 오오야마 九단[7], 4회전 카토 히후미 九단, 준결승전 타니가와 九단, 결승전 나카하라 九단을 모조리 꺾고 우승했다. 상대들은 모두 당대 최고의 쇼기 기사로 여겨지며 쇼기 타이틀 중 탑클래스인 명인 획득기록이 있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전설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고작 五단이었던 하부에게 모두 졌다.[8] 특히 4회전 카토 히후미 九단과 대국하던 중 나온 5二은장은 지금도 회자되는, 그야말로 역사에 남는 신의 한 수. 1988년 하부의 성적은 최다경기&최다승&최다승률&최다연승 4부문 독점 1위였다. [9]

1989년 19세 나이로 첫 용왕 타이틀전에 도전했다. 그리고 당시 용왕이었던 시마 아키라 九단을 상대로 접전 끝에 4승 3패로 쇼기계 2대 메이저 타이틀(용왕과 명인) 중 하나인 용왕 타이틀 획득에 성공했다. 1989년 당시의 하부의 선수(先手)[10] 승률은 29승 2패로 9할을 넘겼다. 이듬해 1990년 12월 타니가와 九단에게 용왕 타이틀을 탈취당해 잠시 무관이 되었지만, 1991년 3월 기왕 타이틀을 획득. 이후 2018년에 무관이 될 때까지 타이틀을 최소한 1개 이상 보유했다.

1992년 후쿠자키 九단과의 왕좌전에서 승리, 왕좌 타이틀 획득으로 처음으로 복수의 타이틀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후 오랜 기간(19년) 왕좌전 연승, 당시 역대 최고 기록이었던 오오야마 九단의 기록을 갱신했다. 같은 해 자신에게서 용왕 타이틀을 빼앗은 타니가와 九단과 이번에는 다시 도전자로 용왕전에서 승부, 그리고 승리하여 용왕 타이틀을 탈환했다. 첫 3관왕.

이후 1993년 타니가와 九단에게서 기성 타이틀 탈취, 고다 九단에게서 왕위 타이틀을 탈취해 5관왕에 올랐다. 쇼기 역사상 5관을 동시보유한 사람은 하부를 제외하곤 단 두 명[11]밖에 없었다. 하부는 이때 처음으로 7관왕을 의식했다고 한다. 그 이후 사토 九단에게 용왕 타이틀을 탈취당해 잠시 4관왕이 되었었으나...

1994년 순위전에서 B급에서 A급으로 승급, 그리고 A급 1위를 달성하여 명인전 도전권을 획득했다. 그리고 당시 명인이었던 요네나가 九단와의 7번기에서는 4승 2패로 승리, 명인 타이틀을 획득했다. 동년 사토 九단에게서 다시 용왕 타이틀을 탈환하여 '사상 최초'로 6관왕에 올랐다. 전 타이틀 보유까지 남은 타이틀은 타니가와 九단이 보유한 왕장 하나뿐이었다.

1995년 타니가와 九단과 왕장 타이틀전을 치렀으나, 7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쉽게 패배하여 타이틀 획득에 실패했다. 타이틀 방어전에서는 진 적이 있었지만 도전자로 임한 타이틀전에서는 항상 승리했던 하부 九단에게는 첫 타이틀 도전 실패였다. 하지만 그 이후 1년간 명인, 용왕, 기왕, 기성, 왕위, 왕좌 모든 타이틀 방어전에서 승리하여 6관왕 방어에 성공했다. 왕장 리그에서도 5승 1패로 2년 연속 왕장 도전권을 획득. 그리고 마침내 1996년 타니가와 九단과의 승부에서 4연승으로 깔끔하게 왕장 탈취에 성공하여 사상 최초 7관왕이 되었다. 하지만 같은 해 7월에 미우라 히로유키 九단에게 기성을 탈취당해 7관 독점은 약 5개월만에 끝났다.

다른 타이틀은 잘 방위해 진작에 영세칭호 자격을 취득한 반면, 격이 높은 명인, 용왕 타이틀에서는 비교적 약했다. 방어에 성공하면 통산 7기로 영세용왕 자격을 받을 수 있던 2003년 16기 용왕전에서 모리우치 토시유키 九단에게 0-4 스트레이트로 패배했다. 게다가 2004년 영세명인 자격이 걸린 62기 명인전에서 도전자 모리우치 토시유키 九단에게 2-4로 명인을 탈취당해 18세 명인 칭호는 2007년에 모리우치가 가져갔다.

2008년 21기 용왕전은 당시 용왕 와타나베 아키라 九단이 연속 4기 획득, 도전자 하부 九단이 통산 6기 획득한 상태였기 때문에 누가 이기든 사상 첫 영세용왕이 나오는 승부였다. 이 승부에서 하부는 3연승으로 앞서 나갔으나, 이후 4연패로 리버스 스윕을 당해, 또 첫 영세용왕의 기회를 놓쳤다.

2008년 명인전에서 모리우치 九단을 4-2로 꺾고 19세 명인 자격을 취득, 사상 첫 영세 6관을 달성했다. 2003년 이후 5년만에 달성한 대기록이다.

2016년에 명인 타이틀도 잃고, 2017년에는 왕위와 왕좌 타이틀 방어에도 실패하여 기성 타이틀 하나만 남는 등 그 전과 비교하여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기에 여기저기서 힘이 다한 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는데...

2017년 12월 5일 제30기 용왕전 결승 7번승부에서 용왕 와타나베 아키라를 5국만에 4승 1패로 꺾고 제 30기 용왕에 등극함과 동시에 영세용왕[12]의 칭호를 획득, 영세7관이라는 유례없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2002년 이후 15년 만에 극적으로 용왕 타이틀 탈환 겸 영세용왕 획득, 그리고 무엇보다 영세7관 기록을 세우며 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부의 이야기를 만화로 만들려고 하면 편집부에서 너무 리얼리티가 없다고 퇴짜 맞는단 농담이 나올 정도(...) 게다가 지금까지 쌓아온 기록이 너무 넘사벽이라 잘 하면 영세7관 2회차도 가능하지 않느냔 소리도 나왔다. 그야말로 괴물.

팬들 사이에서는 영세 7관의 기세를 몰아 2018년도에 명인 타이틀도 다시 탈환하지 않겠느냔 희망적인 관측도 나왔었다. A급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여 76기 명인 도전자 자격을 얻어 명인 타이틀을 2년 연속 방어한 사토 아마히코(佐藤天彦) 九단과 7번기에 들어갔지만 아쉽게도 4:2 스코어로 명인위 탈환 실패. 그런데 그 이후에 공식전 5연패를 당하거나, 기성전에서 토요시마 마사유키 八단에게 3:2 스코어로 타이틀을 뺏기는 등 영 성적이 좋지 않았다. 유일하게 사수했던 용왕위도 히로세 아키히토 八단[13]을 상대로 최종국까지 간 접전 끝에 3:4로 패하여 빼았겼고 타이틀 통산 100기 달성에 실패했다. 이로 인해 1991년 이후로 27년 만에 무관이 되었다.

다만 무관이 되었어도 그 실력은 크게 녹슬지 않았다는 평이다. 순위전 A급에서 7승 2패로 서열 2위에 오르며 여전히 정상급 실력을 보여줬기 때문. 거기에 2019년 3월 17일 NHK배 결승에서 고다 九단에게 승리하며 11번째 우승, 일반기전 우승 수 45회로 역대 1위에 오르게 된다. 이 우승으로 1987년 부터 31년간 타이틀전을 포함한 기전에서 우승하는 기록을 경신했다. NHK배는 쇼와 마지막 우승(1988)과 헤이세이 마지막 우승(2018)을 모두 거머쥐었다. 특히 2018년 NHK배는 제한시간이 짧기 때문에 보통 젊은 기사들이 활약하는 경우가 많은 기전이지만 당시 4강에 오른 기사가 하부와 동년배인 '하부 세대'로만 이루어져서[14] 화제가 되었다.

다만 8대 기전에서는 2019년 내내 날개 없이 추락했다. 왕장전&기왕전에서 히로세 아키히토 八단에게 패 기성전&예왕전에서는 스가이 타츠야 七단에게 패, 순위전에서는 7승 2패라는 호성적을 거뒀지만 명인전 성적이 더 좋은 기사가 있어서 명인전 도전기에는 오르지 못했고, 용왕전&왕위전도 키무라 카즈키 九단에게 패해 2019년에 획득 가능성이 있는 타이틀은 왕좌전만 남았다. 문제는 왕좌전 도전 문턱에 2019년에 각종 기전에서 우승을 기록하고 있는 와타나베 3관(기왕/왕장/기성) or 토요시마 명인(왕위도 가지고 있어서 2관)이 기다리므로, 2019년 내 타이틀 획득이 힘들어 보인다는 것. 결국 왕좌전에서 토요시마 명인에게 패배하여 2019년 내 타이틀 획득은 불가능해졌다. 다만 2019년 타이틀로는 아직 기왕전과 왕장전이 남아 있지만 이쪽은 2019년도 기준 토요시마 마사유키 명인을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지지 않아 무적 포스를 내뿜는 와타나베 아키라 3관이라 갈 길이 멀다.[15] 물론 하부가 전성기에 비해 성적이 낮음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최상급 기사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무관으로 전락하긴 했지만 용왕전에서 3위 결정전까지 갔고, 순위전 A급 2위, 왕위전 도전자 결정전, 왕좌전 4강 등 각종 타이틀에서 여전히 타이틀 바로 직전까지 갔으며, 하부를 떨어트린 상대들은 2019년 그야말로 무적포스를 뽐내는 토요시마 마사유키 명인, 와타나베 아키라 3관, 키무라 카즈키 왕위에 하부의 인간 상성인 스가이 타츠야였다.[16] 결국 2019년도 마지막 타이틀 도전 가능성이 있었던 왕장전 리그에서 4승 2패로 고배를 마시며 2019년을 무관으로 마쳤다. 그리고 이제는 각종 타이틀전에서 예선부터 참여하게 됨에 따라 타이틀 획득은 더 험난해지게 되었다.[17]

2020년도 기전에서도 성적이 썩 좋지 못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예선부터 시작해야되는 예왕전&기성전은 광탈했고, 순위전에서는 역대 개인 최하 성적인 A급 5위로 마무리해 명인 타이틀 도전자에 오르지 못했다. 왕좌전에서 1회전 광탈을 하게 되어 한때 19년을 독점했던 타이틀전에서 예선으로 떨어졌다. 왕위전은 백조 2위로 후지이 소타 七단에 밀려 탈락하긴 했지만 내년 리그 잔류는 확정지었다.

2020 용왕전에선 1조 우승을 거머쥐고 도전자 결정전에 진출해 9월 19일 우승하며 용왕전 도전자가 되었다. 용왕전 1조 우승자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도전자가 되지 못해 일종의 징크스로 여겨졌는데 하부가 이걸 최초로 깨버린건 덤. 이로서, 토요시마 마사유키의 '타이틀 탈취 이후 첫 방어'[18] 혹은 하부의 '통산 타이틀 100기 달성' 둘 중에 하나는 반드시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용왕위 탈취에 실패하고, 왕장전에서도 4승2패로 3위에 머물며 2020년도 기전에서도 무관이 확정되었다. 내년부터 예선부터 참가하게 된 타이틀전은 기성전, 예왕전, 왕좌전 3개 기전이다.

앞으로도 타이틀 획득은 가능성이 낮은 상황인게, 2018년부터 독보적인 성적을 보이기 시작한 와타나베 아키라, 토요시마 마사유키, 나가세 타쿠야에 후지이 소타 2관을 더한 4강 체제가 확립되었고, 하부의 경우 기량 저하가 역력하다. 이미 최고령 도전자의 나이에도 접근 중인 것도 문제점.

2020년 성적은 20승 20패로 정확하게 5할이다. 순위전에서 겨우 살아남았으며, 용왕전 1조에서도 4위 결정전까지 밀렸고, 왕좌전과 기성전은 광탈당했다. 현재 통산 승률은 0.702.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위전에서만큼은 3연승을 기록 중이다. 과연 현 왕위인 후지이 소타를 만날 지 관건. 결국 25승 21패로 시즌을 마무리 했다. 커리어 로우를 기록했으며, 5년 내리 6할 승률을 기록하지 못했다.

2021년 중순~2022년 초까지 진행되는 제80기 순위전 8국에서 나가세 타쿠야 왕좌에게 패하며 2승 6패로 남은 대국에 상관없이 B1 강급이 확정되었다.[19] 그 동안 턱걸이로 지켜오고 있던 승률도 커리어 최초로 5할 미만이 나왔고, 연속 A급 랭크도 29회로 마감되었다.

2022년부터 시작된 제81기 순위전에서 10월 초 기준 2승 3패를 거두며 딱 중위권 성적을 내고 있다. 2022년에는 어느 정도 승률을 회복해, 12월 1일 시점에서 21승 10패를 기록 중이다. 11월 22일 왕장전 도전자 결정 리그에서 토요시마 마사유키 九단을 꺾고 6전 전승으로 리그를 돌파, 2년만에 타이틀 도전 자격을 획득했다. 현 왕장은 후지이 소타 九단으로 승리하면 통산 100번째 타이틀을 차지하게 되지만, 후지이와의 역대 전적이 1승 7패로 열세라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7번기에서 2승 2패까지 만드는 저력을 보여줬지만, 5~6국을 연속으로 내주며 종합 전적 2:4로 왕장 획득에는 실패했다.

2023-2024년도의 성적은 33승 23패를 기록했다. 순위전에서는 7승 5패 공동 3위의 리그 성적으로 B1 등급을 유지했다. 2023년 6월에는 일본쇼기연맹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11월에는 신설된 달인전 결승에서 마루야마 九단을 이기고 우승, 50세 이상 현역 기사만 참가 가능한 제한 기전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공식 기전 우승을 추가했다.

4. 국민영예상 수상

파일:2018iyamahabu.jpg

2018년 1월 5일 아베 신조 총리가 하부 요시하루에게 국민영예상[20]을 표창한다고 결정했다. 각의가 끝난 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바둑 기사 이야마 유타 九단과 함께 선정되었는데, 이야마는 연간 그랜드슬램[21] 포함 7관왕 2회를 달성한 업적을 인정받아 선정되었다. 두 사람은 2018년 2월 13일 표창받았다. 하부 요시하루는 역대 25번째, 이야마 유타는 26번째 국민영예상 수상자로 정리되었다. 쇼기/바둑계에서는 사상 최초이다.

하부 요시하루에 대한 국민영예상 수상 사유는 아래와 같다.
将棋界を牽引する棋士の第一人者として、
쇼기계를 견인하는 기사의 제1인자로,
1996年に初めて七冠を同時に制覇するなど、比類なき功績を重ね、
1996년에 최초로 7관을 동시에 제패하는 등 탁월한 업적을 거듭하여,
将棋界初の永世七冠という歴史に刻まれる偉業を達成、
쇼기계 최초 영세 7관왕이라는 역사에 새겨질 위업을 달성,
多くの国民に夢と感動を、社会に明るい希望と勇気を与えることに顕著な業績があった。
많은 국민들에게 꿈과 감동을, 일본 사회에 밝은 희망과 용기를 주는 데에 현저한 업적이 있다.

파일:jpp026199077-1-e1520393209541.jpg

2018년 2월 13일 진행된 국민영예상 시상식. 왼쪽이 이야마 유타 九단, 가운데 아베 신조 수상, 오른쪽 하부 요시하루 九단.

5. 체스

FIDE
체스에서도 고수. 단순히 쇼기 기사 치고는 잘한다는 수준을 넘어서 일본 최강급의 실력자다.

국제체스연맹 공인 마스터(FIDE Master, FM)다. 또한 상당 기간 일본 최강의 체스 플레이어다. 과거형인 이유는 워낙 빡빡하게 돌아가는 쇼기 대국 일정을 소화하고 남는 시간에만 체스 대회에 출장하므로 소화 대국 수가 적어서 랭킹 포인트가 부족한 경향이 있기 때문. 그럼에도 일본 랭킹은 2~3위권을 유지 중이다.

6. 기타

하부 세대가 대두하기 전까지는 오오야마가 그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제자들을 누르고 장기집권 중이었다. 그러나 중학생 프로기사 등으로 데뷔하기 시작한 하부 세대는 기존의 쇼기 프로기사들이 호걸이나 기인 같은 이미지로 인식되던 것과는 달리 쇼기를 데이터로 입문한 첫세대에 해당한다. 프로기사의 내제자로 들어가 스승의 수발 등을 하면서 승부사 기질이나 인격수양 등을 하던 것과는 다르게 게임 감각으로 쇼기를 파고들어 이른 시기부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세대의 필두에 해당하는 인물.

결정적인 착수를 할 때 손끝을 떠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22][23]

워낙 이쪽 업계에서 전설적이다보니, 쇼기를 주제로 한 관련매체에서 자주 등장한다.

도박묵시록 카이지 초반에 토네가와 유키오의 연설에서 승리한 사람들의 예시로 노모 히데오, 스즈키 이치로와 함께 언급된다. 한국에서도 알려진 앞의 두 사람과는 달리 하부는 한국에서의 인지도가 낮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이 만화를 통해 그를 알게 된 독자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3월의 라이온세계관 최강자 소야 토지의 모델이다. 중학생 때 프로기사로 데뷔, 사상 최초 7관왕 등. 작중 소야 명인의 압도적인 강함을 보면 하부 요시하루의 대단함을 조금이나마 실감할 수 있을지도? 그런데 이제는 하부가 사상 첫 영세7관까지 달성해버려서 만화보다 더 괴물이 되었다(...)

역시 쇼기를 주제로 한 라이트 노벨 용왕이 하는 일!에서도 명인이라는 이름으로 모델이 되어 등장한다. 당연히 이 작품에서도 세계관 최강의 쇼기 기사다. 발매 당시에는 딱 하부 요시하루와 타이틀 획득 개수가 동일한 캐릭터 였지만 정작 현실에서 하부 요시하루가 2017년에 영세7관 칭호를 획득함으로서 발매 당시 기준으로는 너프가 아니었지만 여기서도 현실이 픽션 최종 보스를 능가한 꼴이 되고 말았다.

피겨 스타 하뉴 유즈루와 (읽는 법은 다르지만) 성의 한자가 같다. 하뉴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에 도전하던 2월 16일 본인도 일본의 쇼기 신성 후지이 소타 五단과 아사히배 오픈전 준결승에서 첫 공식전 대국을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국은 후지이 五단의 승리로 끝났고 후지이 五단은 결승에서도 승리해 우승을 차지했다.

프로 단위는 九단이지만 실제로 '하부 九단'이라는 호칭을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특이한 이력이 있다. 1991년 3월 기왕을 차지한 이래로 단 한 번도 무관이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 마지막으로 사용된 단위는 六단으로 1990년 용왕위 상실 당시는 타이틀 홀더는 전(前) XX이라는 호칭을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었고 바로 다음해 3월에 기왕을 차지해 하부 기왕으로 불렸기 때문에 七~八단의 단위 또한 사용한 적이 없다. 이 때문에 일본 쇼기팬들에게 '하부 九단'이란 호칭 자체가 굉장히 낯설었다.[24]

2017년부터 보유했던 타이틀을 상실하여 2017년 말에 기성 1관까지 몰렸다. 와타나베 아키라 九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둬 다시 2관까지 올랐으나, 2018년에 기성&용왕을 모두 상실해 27년 만에 무관, 29년만에 하부 요시하루 九단이 되었다.

27년 동안 무관이었던 적이 없었고, 쇼기계에서의 영향력이 엄청난 인물이 무관이 된 터라 일본쇼기연맹에서도 곤란하다고 느낀 모양. 그래서 12월 23일부터 하부 九단과 칭호 협의를 시작했다. 타니가와 코지, 사토 야스미츠, 모리우치 토시유키처럼 그대로 단위로 불러 하부 九단으로 부르는 방법과, 용왕전 규정에 의한 전 용왕 호칭을 되살려 쓰는 것을 고려했다고 한다.[25] 결과는 12월 25일에 발표될 예정. 그리고 이 호칭 문제 때문에 뜬금없이 타니가와 코지 九단도 하부 九단의 광팬들에게 덩달아서 까였다.[26] 다만 이전 타니가와 九단처럼 하부 九단도 전 용왕 칭호를 고사해 29년만에 단위를 사용하기로 했다.

슬하에 딸 3명을 두었다. 아내도 가수 출신 연예인 하타다 리에로 쇼기팬들 사이에선 꽤나 유명하다. 다만, 아내의 이미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닌데, 루머에 자주 시달리기도 하며 가끔씩 트인낭을 시전해서 남편인 하부까지 덩달아 욕을 먹곤 한다. 대표적인 예로 2018년 명인전, 기성전, 용왕전 때 트위터로 남편의 상대를 까는 무례한 말을 시전해 바가지로 욕먹었고 결국 용왕전 직후 트위터를 비공개로 돌리는 촌극을 보여줬다.

하부와 같은 또래인 69년~70년생 기사들은 타니가와 코지 명인 시대 이래 90년대~2000년대 약 20년간 쇼기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했으며 이 세대에만 영세칭호 유자격자가 3명이나 있다.[27] 이를 일반적으로 하부 세대라고 부른다. 요절한 무라야마 사토시와 타이틀을 획득한 적이 없는 센자키 마나부를 제외하면 전원이 타이틀 경험자이다. 흔히 하부 세대라고 할 경우 하부 요시하루 19세명인, 무라야마 사토시 九단[28], 사토 야스미츠 영세기성, 센자키 마나부 九단, 마루야마 타다히사 九단, 후지이 타케시 九단, 모리우치 토시유키 18세명인[29], 고다 마사타카 九단 등 8명을 가리킨다.

2019년 하반기 들어 건강이상설이 돌았다. 아내 하부 리에의 말에 의하면 심각한 질병은 아니고 다리에 통증이 있다는 듯. 문제는 쇼기의 타이틀전은 정좌로 둔다는 점이다. 하반신 질병이 있는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질병 없는 사람보다 체력의 소모가 심해져 불리할 수밖에 없다. 2019년 9월 14일 치른 JT배 8강에서 와타나베 아키라 3관과 대국이 끝난 후 일어나다 엉덩방아를 찧고 고꾸라지기도 했다. 2018년부터 급격하게 성적이 나빠진 것도 병의 영향일 수 있다.[30] 이후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실제로 발 쪽의 통증이 심각해서 2019년 6월 무렵에는 난간에 기대지 않으면 걸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9월 무렵엔 훨씬 나아지기는 했지만 장고 대국은 다소 힘들다고.

하부 요시하루의 목소리가 알람으로 울리는 캐릭터 알람 시계가 있다.

명인전에서 모리우치 토시유키(森内俊之)와 대국할 때 방송사고를 목격하기도 했다. 대국이 오래 걸리면서 경기를 참관하던 기록원과 관전기사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어버린 것. 이 때문에 하부와 모리우치는 웃음을 참으며 대국을 해야 했다.일명 '일본 장기방송 중 방송사고' 짤이 이 것이다.


[1] 입학은 도립 후지모리 고교였으나, 대국 때문에 등교일수가 부족해지자 우에노 고교의 통신제로 전입해 졸업했다.[2] 용왕 7기, 명인 9기, 왕위 18기, 왕좌 24기, 기왕 13기, 왕장 12기, 기성 16기[3] 영세 칭호는 한 타이틀을 5기 연속으로 우승하거나 통산 5기/10기(단 용왕전은 7기) 이상 우승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칭호이다. 즉, 영세 7관은 7개 타이틀을 모두 제각각 연속 5기나 통산 5~10기 이상 우승했다는 의미가 된다. 참고로 일본 바둑계에서는 영세칭호에 해당하는 명예칭호(혼인보는 영세칭호) 부여 조건이 약간 달라서 5회 연속 타이틀 방어시 획득 가능&은퇴 혹은 60세 이후부터 사용이 가능하다. 단, 10연패 혹은 혼인보전의 경우 9연패에 성공하면 즉시 사용이 가능하다. 혼인보전 10연패에 성공한 조치훈 九단과 이야마 유타 九단이 은퇴하지 않았음에도 각각 25세 혼인보, 26세 혼인보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4] 1992~2010년까지 19연패를 달성해 쇼기 연속우승 최장 기록을 보유중.[5] 타이틀 전은 아니지만, 상당히 권위있는 대회다.[6] 2018년에 후지이 소타가 15세 6개월의 나이로 아사히배에서 우승하며 이 기록을 경신했다.[7] 다만 당시 오오야마九단은 고령이었기 때문에(1923년생) 전성기 때만큼의 기력은 보여주지 못하던 상황이었다.[8] 이해하기 쉽게 스타크래프트로 비유하자면 신인 선수가 msl에서 임요환, 김택용, 이제동, 이영호를 연전으로 만나 죄다 이긴 것과 비슷하다.[9] 80전 64승 16패(0.80), 18연승.[10] 먼저 착수하는 것[11] 상술한 오오야마 15세 명인, 나카하라 16세 명인[12] 제2대 영세용왕이다. 제1대 영세용왕은 언급된 와타나베 아키라 용왕. 이렇게 된 사연은 문서 참고.[13] 2~30대 기사들 중에선 손꼽히는 강자로 불리는 기사. 제40기 신인왕전 우승과 2010년 왕위 타이틀을 딴 경력이 있다. 현재 순위전 A급 소속.[14] 하부 九단, 모리우치 九단, 고다 九단, 마루야마 九단. 모두 1970 ~ 1971년 생이고 NHK배 우승 경력이 있다.[15] 아무리 뛰어난 기사라도 1년간 승률은 8할 정도. 5판을 두면 1판은 진다는 게 통계다. 당연히 예선부터 시작하면 대국 수가 많아지고 여기엔 실력이 부쩍 오른 신인들&기존의 상위급 기사들이 우글대서 본선에 오르는 것조차도 험난한 레벨. 그 예로 데뷔 이래 승률 85%를 찍은 초특급 영건 후지이 소타 七단이 프로기사 데뷔 3년차임에도 여전히 무관인 것을 보면 예선의 험난함을 알 수 있다.[16] 2019년 타이틀은 토요시마 마사유키, 와타나베 아키라, 키무라 카즈키, 나가세 타쿠야 4명이 사실상 장악하다시피 했다.[17] 물론 여전히 용왕전 1조, 왕위전 백조 1위, 왕좌전은 4위, 왕장전은 공동 2위로 리그 잔류에 성공했기 때문에 아예 예선으로 떨어진건 기성전, 예왕전 뿐이다.[18] 정상급 기사이지만 유독 타이틀과는 거리가 멀어 무관의 제왕이니 하는 조롱을 듣기도 했으나, 2018년 기성 획득 후 왕위, 명인까지 획득하며 3관에 올랐다. 이후 기성과 왕위 타이틀 방어에 실패했지만 용왕 타이틀을 획득해 용왕 명인이 되었고, 명인 타이틀 방어에 실패한 후, 예왕 타이틀을 획득해 3년째 타이틀 방어에는 실패했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타이틀을 획득하고 있는 중이었다.[19] A급으로 승급한 후지이 소타 용왕과 스왑되는 모양새가 되었다.[20] 일본에서 학문, 문화 분야 최고의 상이다. 한국으로 치면 금관문화훈장과 비슷하다.[21] 한 해에 일본 바둑계 7대 기전 타이틀을 전부 제패하는 것을 의미한다.[22] 용왕이 하는 일!에서 명인의 버릇으로도 나온다.[23] 한국 바둑기사 이세돌 九단도 하부 요시하루와 같은 버릇이 있다.[24] 과거 1관이 되었을 당시에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던 왕좌 타이틀이 있었다. 사실 하부 요시하루가 그동안 단위로 불릴 기회가 없었던 것은 근 20년간 독점하다시피 했던 왕좌·왕위 및 10년간 놓지 않았던 기성 타이틀 덕분이었는데, 이 타이틀을 모두 잃어버렸다.[25] 용왕전과 명인전은 전 용왕과 전 명인 칭호를 사용할 수 있다고 대회 규정으로 정해져 있다. 다만 1998년 타니가와 코지 九단이 사용하지 않은 이래 20여 년간 해당 조문은 사문화된 상황. 사실 규정대로 실시하지 않는 경우는 이 경우만이 아니다. 왕장전도 원칙적으로는 무조건 7차전까지 진행하고 만약 4차전에서 한쪽 스코어가 4:0이라면 다음 경기는 패배하는 쪽이 쪽이 향떼기 접쇼기로 대국을 하도록 규정되었지만, 마스다 코조의 진야 사건(14세 명인을 상대로 3:0이 되어 4차전에서 향을 떼는 상황이 되었으나 상대의 명예를 위해 기권패함.) 이래로 4:0일 경우 그대로 타이틀전을 마치게 되어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26] 전 용왕 및 전 명인 칭호를 사문화시키고, 현역 시절에 영세칭호를 처음으로 사용하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 일단 이유는 있는데 타니가와 코지는 당시 용왕 명인의 2관이었던 상황에서 두 타이틀을 순식간에 상실해 원칙대로라면 전 용왕명인이라 불려야했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며 고사했다. 그 뒤로부터 용왕과 명인 타이틀을 상실하더라도 전 용왕, 전 명인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27] 하부가 영세7관이고, 동세대에 영세칭호 유자격자가 3명이나 있어서 실감이 나지 않을 지도 모르나, 쇼기계에서 이 영세칭호 자격을 획득한 기사는 실력제 명인 시대 이래로 키무라 요시오 14세 명인, 츠카사 마사오 명예 十단(영세 九단), 오오야마 야스하루 15세명인(영세5관), 나카하라 마코토 16세 명인(영세5관), 요네나가 쿠니오 영세기성, 타니가와 코지 九단(17세명인), 하부 요시하루 九단(영세7관), 모리우치 토시유키 九단(18세 명인), 와타나베 아키라 2관(영세2관), 사토 야스미츠 九단(영세기성)까지 총 10명밖에 없을 정도로 획득하기 매우 어려운 칭호다.[28] 천재 기사 사토시, 사토시의 청춘의 모델로 '관동의 하부, 관서의 무라야마'라던가 '종반은 무라야마에게 물어라.'는 말까지 있는 천재 기사였으나 지병으로 네프로제 증후군을 앓다가 방광암으로 발전하여 사망했다. 생전 단위는 八단이었으나 사후 九단으로 추증되었다.[29] 하부의 라이벌으로 불리던 인물로 다른 타이틀전에서는 고전했으나 명인전에서만 귀신같이 강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승률이 3할임에도 불구하고 2011~2013년 당시 명인전과 용왕전에서만 강하단 이미지가 있어서 하부 팬들에게 '3할 명인' 등으로 평가절하되기도 했다.[30] 바둑에서는 일찍부터 의자 대국이 도입되었고, 쇼기에서도 선천성 근질환 장애가 있는 여류기사 카토 유리아 여류 초단에 한하여 의자 대국을 허용하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의자 대국으로 전환하라는 목소리도 나오는 한편, 하부 리에의 평소 트인낭 행적 때문에 2ch 명인이라고 까이는 형편. 5ch 쇼기/체스판에서는 '남편이 실력으로 진 게 아니라 아파서 졌어요.'라고 징징거리는 것이라고 조롱하는 반응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