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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19:07:48

아마추어


1. 개요2. 역사
2.1. 스포츠2.2. 학문
3. 아마추어리즘4. 부정적 뉘앙스5. 아마추어 분야 목록6. 유사 개념7. 여담8. 동음이의어
8.1. 이승철의 노래8.2. 전기 공학에서 전기자를 가리키는 단어8.3.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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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마추어(amateur)란 프로의 반의어로 직업이 아니라 취미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을 뜻한다. 주로 예술, 스포츠 분야에서 쓰인다.

어원은 라틴어로, amator(사랑하는 사람)에서 프랑스어 amateur로 이어졌다. 원래 의미는 ‘애호가‘, 즉 업이 아니라 좋아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2. 역사

2.1. 스포츠

스포츠에는 고대에도 프로가 있었다. 상금을 걸고 싸우는 복서레슬러들은 기원전부터 존재했으며, 고대 전쟁과 관련된 다양한 스포츠(창던지기, 판크라티온, 원반던지기 등)에서 여러 도시국가의 선수들이 경쟁했다. 현대 올림픽의 아마추어리즘의 영향으로 고대 올림픽에서도 아마추어만 출전이 허락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았다. 올림픽에서 승리한 선수는 출신 국가도시로부터 막대한 상금을 받았으며, 당시에도 이미 “젊은이들이 올림픽 상금을 탐내 일은 안 하고 운동 연습만 한다“며 비판하는 이들이 있었을 정도다.

고대 그리스에 이어 고대 로마 시대에서 프로 스포츠는 정점을 찍었다. 실전 검투, 전차 경기 등이 (영화들을 통해 널리 알려지며) 특히 유명하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경기가 열려 로마 시민들을 열광시켰다. 이 시기에는 스포츠 트레이닝이 오늘날처럼 체계적이고 과학적이지 않았기에, 선천적인 재능이 있는 프로 스포츠맨은 현대의 스포츠맨은 꿈도 꿀 수 없는 무패 행진을 이어가곤 했다. 근현대의 프로 복서들은 대개 100~200승 정도를 거둬도 전설로 취급받지만, AD 1세기 경에 활동했던 프로 복서인 타소스의 테오게네스(Θεαγένης ὁ Θάσιος)는 대략 1,000승을 거뒀다고 한다.[1]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수입을 벌어들인 프로 스포츠맨은 2세기에 로마에서 대활약한 전차경주 선수인 가이우스 아풀레이우스 디오클레스로, 그가 평생 발어들인 상금은 순금으로 2.6톤에 달했다. 로마 및 동로마 시대에 프로 스포츠는 스폰서,[2] 팬클럽,[3] 광고 계약, 관련 상품, 난폭한 팬들[4]의 난동 등, 오늘날의 스포츠계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행태를 이미 나타내고 있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러한 형태의 프로 스포츠는 유럽에서 중세를 맞으면서 쇠퇴했다. 중세 유럽은 장원 위주의 소규모 자급자족 경제로 규모가 축소되었고, 프로 경기를 운영할 만한 경제력은 없었다. 이 시기에 대규모 스포츠 경기라고 한다면 기사의 무술 연습을 겸한 형태의 마상창시합 정도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5]

이처럼 과거에도 프로 스포츠인은 존재했지만 프로가 아닌 이를 아마추어라고 부르진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아마추어의 개념은 비교적 근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의미로 유럽에서 아마추어란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말이다. 아마추어는 원래 학문(수학, 문학 등)이나 스포츠를 직업으로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을 말했다. 당시 아마추어들이 즐기는 스포츠 중 대표적인 것이 사냥, 승마, 항해(요트 등)였으며 해당 분야를 생업으로 삼는 이들, 즉 직업 사냥꾼, 마부, 선원같은 이들과 아마추어들 간에는 어마어마한 경제적인 신분 격차가 존재했다. 때문에 현대와는 위상이 정반대였다. 현대에서야 프로에 비해 떨어진다는 인식이지만, 당시 상류층은 일을 하지 않아도 생계가 보장되는 유한계급이었으므로 프로 뺨치는 실력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대중매체가 생겨나면서 프로 스포츠가 활성화되었고 스포츠는 전문 스포츠인, 즉 프로가 주도하는 세계가 되었다. 특히나 자본주의와 결합하면서 인기 절정의 프로 스포츠인은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한 수입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6] 거금이 오가는 판에서 선수들은 더욱 필사적이었고 기량 역시 아마추어(즐기는 사람)를 아득히 능가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아마추어는 프로 스포츠인에 비하여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를 보여주는 예가 올림픽으로, 초창기인 20세기 초까지 아마추어적 가치를 매우 중시하였으나 1980년대 이후 IOC에서는 아마추어 헌장을 삭제하였다.

프로 문서에서 다루는 바와 같이 스포츠계에서 '프로 스포츠 선수'는 다른 분야에서와 용법이 좀 다르다. '프로'는 '전업'을 주로 의미하지만, 현대 스포츠에서는 스포츠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전업 스포츠 선수라고 해서 다 프로 선수인 것인 아니다. 스포츠계에서는 개인사업자(프리랜서)로서 활동하는 선수만을 프로 선수로 본다. 개인경기는 대회참가로 버는 돈이나 입상할 때 상금이 소득원이 된다.[7] 단체경기라도 자기 사업의 일환으로 돈을 받고 그 팀을 위해 싸워주는 것이며, 단체 소속 직원은 아니다. 개인경기 선수는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 돈을 주기도 한다. 때문에 전문 스포츠 선수 중에서도 아마추어로 분류되는 이들이 있다. 가령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들은 아마추어지만 취미로 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 선수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들은 소속팀의 직원이기에 프로 선수가 아닌 아마추어에 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력이 있음에도 일부러 프로 전향을 하지 않은 선수들도 많았다. 선수 시절에 받는 돈은 적어도 은퇴 후가 보장되니까. 이러한 구분은 위에서 보듯 프로스포츠에 거대 자본이 쏠린 영향으로 개인사업자의 형태로도 직원 방식만큼, 어쩌면 훨씬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게 됨에 따라 생겨난 현상으로 보인다.공산권 국가의 스포츠 선수들도 이렇게 국가로부터 월급을 받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이념상 프로 스포츠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즐기기 위한 스포츠'라는 의미의 아마추어리즘은 현재 조기축구회, 사회인야구중산층이 사뭇 다른 모습으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20세기라는 긴 세월 동안 있었던 여러 사회적 격변(문화 향유 계층의 확대, 대중매체의 발전, 중산층의 확산, 귀족의 몰락 등)이 스포츠계에도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2. 학문

아마추어와 직업인이 공존하는 분야는 다양하다. 학문계도 아마추어가 지배했던 시기가 꽤 길다. “아마추어 학자“라고 표현하면 오늘날엔 뭔가 어설프게 들리지만 당시 학계는 아마추어 학자들이 지배했다. 근대에 과학이 본격적으로 기술과 결합하여 과학기술의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는[8] 대학 외에 달리 학자를 고용할 기업이나 연구소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전업 학자"라는 것이 매우 있기 힘들었다.

그런 이유로 근현대 천문학, 물리학, 화학, 수학의 발전을 이룬 학자들은 요즘 관점으로는 신기하게도 다 본업은 따로 있다. 천문학의 윌리엄 허셜(본업은 음악가), 물리학의 아이작 뉴턴(조폐국장 등 공무원이 본업) 등 고전 과학계의 거물들이 그러하다.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처럼 어릴적에 이미 천재성을 인정받아 평생 대학과 학예원에서 생계 걱정 없이 연구에 몰두하거나, 아메데오 아보가드로 백작[9]처럼 작위와 영지가 있어 학문 연구를 즐거운 취미생활로 영유한 운 좋은 과학자들도 있었지만, 이런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한 대부분의 근대 과학의 발전은 생업에 종사하는 와중에도 과학에 대한 열정을 불사른 아마추어 과학자들이 일구어낸 것이다. 현대 과학에서도 이런 경우가 없지는 않으며, 일례로 특수 상대성 이론알베르트 아인슈타인스위스 특허국에서 일할 때 짬짬이 쓴 논문이었다.[10]

과학의 연구가 국가나 조직의 영향 아래 들어가게 된 시작점은 18세기 말 프리스틀리라부아지에의 연구 환경 차이에서 발견된다. 라부아지에는 왕립 기관에 소속된 과학자였지만[11] 약간 더 이른 시기의 프리스틀리는 신기한 실험들을 유력자들에게 선보여서 후원을 받는 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런 방식은 어디서 월급을 다달이 받는 것이 아니니 본격적인 직업으로 기능하기에는 불안정성이 컸다. 라부아지에의 형태가 오늘날 국가 연구원과 비슷하지만 그런 예는 그 즈음에서야 알음알음 나타나던 단계였고 대부분의 과학 연구는 귀족들의 후원을 받거나 본인의 사비를 털어서 이루어졌다("공기의 발명" 참고).[12]

오늘날에는 과학 역시 대학, 기업과 연구소들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어 순수과학(특히 수학)을 제외하면 아마추어 과학자들이 활약하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특히나 오늘날의 첨단 과학은 고가의 장비들을 필요로 하는 때가 많아 개인이 진행하기 매우 어려워졌다.[13]

3. 아마추어리즘

아마추어리즘이란 스포츠를 생계 수단이 아니라 '즐기기 위한 활동'으로 한다는 사고 방식이다. 줄리어스 어빙의 말을 인용하자면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라도 딱히 하기 싫을 때는 그냥 안 해도 되는 사람"이다.

아마추어리즘의 논리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스포츠는 자유 시간에 즐기기 위해서 하는 활동이다. 금전적, 물질적 이익을 얻는 것은 스포츠 활동에서 놀이 요소를 잃어버리게 하여 스포츠를 직업 활동으로 변질시켜 버린다.
  2. 직업으로서 자기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는 사람이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 하고 있는 사람보다 더 잘 하는 것은 경기를 해볼 것도 없이 당연하다. 따라서 두 사람이 한꺼번에 경기를 하는 것은 공평 및 평등의 조건에 위배된다.

어쨌든 이런 가치관 때문에 실력과는 별개로 프로가 되는 걸 꺼리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 직업적인 조건은 차치하고서라도 독립, 인디, 언더그라운드로 활동해도 프로라는 꼬리표 때문에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이를테면 '정말로 좋아하니까' 멋대로 하고 싶다는 이유로 오히려 프로가 되는 것을 꺼리는 경우다. '취미가 직업이 되면 더 이상 즐겁지 않다.' 라는 말이 이런 아마추어리즘의 생각을 잘 대변해 준다 볼 수 있다.

사실 아마추어라고 해서 함부로 무시하면 안 되는데 '취미'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라 각자 생각하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프로급 일정을 가지고 프로급으로 훈련하고 프로급 실력을 가져도 그걸로 굳이 돈 벌 생각이 없으면 아마다. 그렇다 보니 가끔 괴수들이 출현하는 경우가 있고, 이들이 친 사고가 바로 '내가 해도 이것보단 잘하겠다.'의 사례가 된다. 의외로 이런 경우를 예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본업 뛰면서 취미로 낸 작품 하나가 문학상을 수상한다든지 취미삼아 동인지를 냈는데 공식 작가의 단행본보다 훨씬 잘 팔렸다든지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사이클링이라던지 철인3종 같은 일반인들의 참여가 활성화된 종목에서도 프로급 실력을 가진 선수들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아무리 국제 대회에 나가서 명성을 떨쳐도 생계 유지 수단으로 다른 직업에 종사하면 아마추어다.

영국 귀족식 스포츠의 대명사인 골프나 테니스다 유명하다. 골프 대회에 아마추어가 나가서 우승을 한다고 한들 상금을 받을 수는 없다. 트로피같은 기념품은 받을 수 있지만 상금이 몇억이라고 한들 실비 이상은 한푼도 받을 수 없다. 테니스는 아마추어 우대를 보였던 대표적인 종목으로 1960년대 중반까지 윔블던같은 주요 대회는 아마추어만 출전할 수 있었다. 이후 프로에게 문호를 개방하면서 '오픈'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즉 프로에게도 오픈한다는 것이다.

한편 프로 스포츠라고 해서 오로지 이기는 것에만 전념할 수는 없다. 가령 재미를 떨어뜨리거나, 격식적인 플레이 - 즉 페어플레이를 파괴하는 치사한 플레이를 하는 것에 대한[14]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축구의 '안티 풋볼', e-스포츠의 '날빌'에 대한 논쟁이 그 예이다. 이는 프로 스포츠란 것이 관중의 재미도 고려해야 하는 공연의 성질도 띠고 있기 때문에[15] 나타나는 현상이다.

4. 부정적 뉘앙스

어떤 문제의 어려움이나 위험을, 모르거나 과소평가하는 사람을 지칭하기도 한다.

오타쿠 계에서는 상업 작품이 처참한 퀄리티를 보여줄 때 아마추어 같다고 한다.

현대에는 어쩐지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것처럼 굉장히 뭣한 표현으로만 쓰이고 있다. "아마추어!"라는 말이 반쯤 욕으로 쓰이기도 한다. 개그맨 황현희는 2008~2009년 개그콘서트황현희 PD의 소비자 고발 코너에서 "왜 이래? 아마추어 같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었다.

5. 아마추어 분야 목록

6. 유사 개념

7. 여담

한글로는 마추어라 표기되는 경우가 잦고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 상으로도 그렇게 정립되어 있으나 IPA 상에서는 /ˈæmətə(r)/ 내지는 /-tʃə(r)/라 첫 음절은 보다는 에 가깝다.[16] 오히려 해당 표기에 발음이 가까운 단어는 armature(/ɑ́:rmətʃər)로, 이쪽은 인형 등의 '뼈대'[17], 동식물의 이빨이나 가시와 같은 '방호 기관', 전기공학에서 '전기자'를 가리키는 전혀 다른 단어이다.

투잡을 하는 경우에는 아마추어로 봐야 할지 좀 애매하다. 양쪽 다 공식적인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주 수입원이 한쪽에 치우친 경우.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고있지만 음반을 내는 가수라든가, 자영업을 하고있지만 가끔 학회에 논문을 발표하는 학자라든가.

바둑에서는 단과 급을 표기할 때 아마추어는 아라비아 숫자, 프로는 한자로 적는 관습이 있다. 주로 '아마'라고 줄여서 '아마 7단' 식으로 적는다.

프로복싱, 아마복싱이나 프로레슬링, 아마레슬링은 이름이 아마추어라고 해서 후자들의 실력이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

일부 분야는 프로가 아닌데 그 분야를 파는 자체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경우가 있다. 교통수단이나 입시 관련 활동같이 업계 사람이 아닌 이상 평범한 일상을 사는 일반인은 신경쓸 일이 사실상 없는 활동 혹은 너무 진입장벽이 높아서 생업에 지장이 갈 정도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부 취미의 경우[18] 돈을 벌지 않고 취미로만 파는 사람들은 종종 사회 부적응자 취급을 받는 경우가 그 예시.

8. 동음이의어

8.1. 이승철의 노래


가수 이승철이 부른 노래다. 눈화장이 부담스럽다.

슈퍼스타K4 개막식에서 최초 공개되었으며, 이승철 역시 "슈퍼스타K만을 생각하며 애정을 가득담아 부른 노래"라고 밝혔다. 가사 역시 '힘들고 지친 상황에도 프로를 향해 도전하는 아마추어들의 오디션'이라는 슈퍼스타K의 컨셉에 부합한다.

이후 슈퍼스타K 본방송에서도 엔딩에 이 노래를 삽입했다.

복면가왕에서 희로애락도 락이다가 10연승 도전곡으로 부른 곡이다.
[ 가사 펼치기 · 접기 ]
살며 살아 가는 행복
눈을 뜨는 것도 숨이 벅찬것도
고된 하루가 있다는 행복을
나는 왜 몰랐을까

나나 나나 나나 난나나나

아직 모르는게 많아
내세울 것 없는 실수투성이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그냥 즐기는거야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기에
모두가 처음 서 보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란 무대에선
모두다 같은 아마추어야

나나 나나 나나 나나 나나나

지쳐 걸어갈 수 있고
아이 눈을 보며 웃을 수 있고
조금 늦어져도 상관없잖아
그냥 즐기는거야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기에
모두가 처음 서보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란 무대에선
모두다 같은 아마추어야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길을 찾아 내 꿈을 찾아서
나의 길을 가면 언젠가
꿈이 나를 기다리겠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기에
모두가 처음 서보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란 무대에선
모두다 같은 아마추어야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기에
모두가 처음 서보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란 무대에선
모두다 같은 아마추어야

When I am dreaming and I have wishes
We will be together in our lives the dreams come true.

When I am dreaming and I have wishes
We will be together in our lives the dreams come true.

8.2. 전기 공학에서 전기자를 가리키는 단어


Armature,

전자기력을 이용할 목적으로 코일을 가지고 있고 회전할 수 있는 물체로서, 발전기에서 유도 기전을 발생시키는 발전자와 전동기(모터)의 전동자를 한데 일컫는 말이다. 회전자라고도 불린다.

8.3. 영화

20세기 스튜디오 영화 아마추어 문서 참고.

[1] 1400승이란 설도 있다.[2] 로마 시대의 유명한 스포츠 스폰서들은 기업이 아니라 부유한 로마 시민들이었다. 술라, 폼페이우스, 그리고 물론 카이사르 등의 권력자들이 종종 시민들을 위한 스포츠 이벤트를 후원하곤 했다.[3] “데모스”라 불리는 팬 집단들이 각 팀을 열성적으로 응원했다.[4] 니카의 반란을 일으킨 두 당파는 원래 전차경주 팬클럽이었다.[5] 실제로 마상창시합은 '토너먼트' 등 오늘날의 스포츠에도 어느 정도 흔적을 남겼다. 후술할 '프리랜서'라는 말도 마상창시합에서 유래했는데 말 그대로 자유로운 랜서라는 뜻이다. # 하지만 프리랜서의 어원에 대해서는 시합과는 무관하게 기사로서 자유롭게 계약하는 용병 등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6] 때문에 20세기에도 공산권에서는 프로 스포츠의 발전이 다소 저조했다. 쿠바가 야구 강국이기는 하지만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는 국가에서 봉급을 받기 때문에 아마추어로 분류되는 것이 그 예이다. 스포츠인이 대체로 국가에 소속된 공산권의 문화는 올림픽에서 국가 경쟁의 가치, 아마추어주의와 결합되었고 공산권 국가들은 (도핑 의혹이 제법 있으나#) 올림픽에서 상당한 성적을 거두었다.[7] 단체경기에서도 그런 면이 있긴 하나 주소득은 자기 소속팀에서 받는 돈이다.[8] 오늘날에는 과학기술이 워낙에 강조되어 과학 연구를 하면 무조건 기술이 발전할 것 같지만, 실제로 과학 연구와 기술 발전은 바로 연결되지 않으며 오랜 세월 동안 별개의 세계였다. 사실 요즈음에도 그 격차는 있어서 기술과 무관한 과학 연구는 (특히 응용과학이 주류인 한국 같은 곳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경향이 있다.[9] 게다가 아보가드로는 법대 나온 법학자다. 물리학과 화학은 그에게 문자 그대로 취미였다.[10] 아인슈타인이 친구에게 보낸 서신에서 그는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본업이 따로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내가 배관공이나 소매상같은 직업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었을 것 같네“). 당시 사람들은 이를 재미있는 우스개 정도로 생각했으며 시카고 배관공 협회에서 아인슈타인에게 명예 회원 자격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오늘날 아인슈타인의 이 말은 그의 마음 속 고뇌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연구소나 국가기관에 종속되어 연구를 하는 직업 과학자는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는 연구를(예를 들어 대량살상무기의 개발) 해야 할 때도 있지만, 과학 연구가 취미일 뿐이며 생계나 직업적 의무와 무관한 아마추어 과학자는 그런 상황에서 연구를 그만둬버리면 되기 때문이다.[11] 화약과의 연관성으로 왕립 병기창에서 근무했으며 자택과 연구실도 병기창 건물 근처에 있었다. 왕립 병기창은 바스티유 감옥 근처였다고 전해진다. 결국에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으로 촉발된 프랑스 혁명으로 라부아지에는 처형당했으므로 얄궂은 일이다.[12] "공기의 발명"이라는 제목은 이러한 프리스틀리의 연구 양상을 묘사한 글귀이다. 공기야 원래부터 있었으니 '발견'이 맞지만, 과학 실험의 후원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프리스틀리가 본격적으로 창안해냈다는 것이다. 후원 주체가 국가나 기업이 되었을 뿐 오늘날에도 "이 연구는 이러이러한 성과가 예측된다"를 어필하여 연구비를 따내야 한다는 점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13] 입자물리학 연구의 핵심 기기인 입자가속기 같은 것은 전세계를 통틀어도 수십 개밖에 없다. 이런 것은 국가가 나서야지 개인이 갖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14] 이 범위는 다소 애매해서, 품위를 떨어뜨리는 정도를 넘어서 명백하게 규칙을 어기면 반칙이 된다.[15] 프로 스포츠의 수입의 상당 부분은 관중의 참여에서 오는 것이지, 승리 그 자체에서 이득이 창출되는 것은 아니다. 관중이 선수의 승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승리가 이득이 되는 것이지, 관중이 좋아하지 않는 방식의 승리는 수익을 얻는 데 오히려 불리해진다.[16] 사실 a가 단독으로 들어간 단어 중에서 영어로 /ㅏ/로 읽는 단어들이 더 드물다.[17] 3D 그래픽 프로그램인 Blender에서 사용되는 뼈대가 바로 이 명칭을 사용한다.[18] 예를 들어 E스포츠 마이너 종목 선수가 있다. 보통 마이너 종목은 전원 아마추어거나 프로팀과 아마추어가 혼합된 세미프로 방식이다 보니 프로팀 소속인 선수조차도 금전적인 문제로 은퇴하는 경우가 잦다. 특히 세미프로는 더 심각한데 그래도 돈을 버는 프로게이머들이 있다 보니 아마추어 선수라고 해도 대회에 나가려면 프로 선수들처럼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꾸준히 연습해야 하다 보니 학업을 계속하거나 일반 직장에 다니기는 쉽지 않은 편이다. 결국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선수의 이미지가 엄청 좋거나 하지 않는 이상 그거 할 시간에 은퇴하고 공부/취준이나 하라는 조롱이 자주 나오는 편이다.